화가들의 마스터피스 - 유명한 그림 뒤 숨겨진 이야기
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조아라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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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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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Cry baby, cry baby, cry baby.

Honey, welcome back home.


[중략]

 

Honey, your heartache, too?

And if you need me, you know

That I’ll always be around if you ever want me.

 

 

-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Cry Baby(1971) 노랫말 -





명화는 걸작의 동의어다. 매우 훌륭한 예술 작품(傑作)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서 유명해진 것(名畫)이다명화와 걸작의 정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다. 하지만 명화와 걸작으로 불릴 만한 자격 및 조건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생각보다 복잡하다.


명화와 걸작에 피어나는 영롱한 빛은 세월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성경 첫 장면에 따르면 하느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한 뒤에 빛을 만들었다. 빛나는 명화의 창조주는 예술가다. 그러나 명화는 예술가가 빛이(명화가) 생겨라!’라고 말해서 한순간에 나온 것이 아니다천재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예술가는 명화를 뚝딱 만들지 않는다. 예술가는 그림이 본인이 보기에[주1]좋았다고 생각할 때까지 붓을 잡고 휘두르는 사람이다. 명화 나와라 뚝딱!”하고 주문을 외치면서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는다.


엄마 품속에 먹고 자란 아기는 거대한 세상에 나오자마자 우렁차게 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머리에서 태어나 완성된 예술 작품은 말이 없다. 예술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응애, 저 명화예요라고 말하지 않는다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남긴 명언을 빌리자면 명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캔버스에서 태어나는 것은 대중의 반응과 평가를 기다리는 예술 작품이다. 부모의 마음을 지닌 예술가는 갓 태어난 예술 작품을 귀한 걸작으로 생각한다. 예술가는 당연히 갓난 예술 작품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멋진 명화로 성장하길 원한다. 하지만 갓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의 말이 부드럽고 달콤한 모유 같은 칭찬이 아닌 뾰족한 꼬챙이처럼 생겼다면? 대중의 쌀쌀한 말은 갓난 예술 작품의 연약한 귀를 따갑게 만드는 소음이 된다. 뾰족한 소음이 무서운 갓난 예술 작품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2]이다. 대중은 예쁘고 귀엽고 빛나는 걸작을 좋아한다. 그들의 눈에는 울기만 하는 예술 작품이 귀엽지 않은 실패작으로 보인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진 갓난 예술 작품에도 한 줄기 빛이 있다. 그 빛은 아주 얇아서 희미하다. 대중의 눈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퍼진다그 모습이 화려하지 않지만,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언젠가는 찾아온다. 평범한 예술 작품은 그렇게 어엿한 명화가 되고, 무색에 가까운 빛은 알록달록 아름다워진다.


화가들의 마스터피스: 유명한 그림 뒤 숨겨진 이야기는 명화의 화려한 빛에 가려진 긴 어둠을 들려준다. 긴 어둠책의 부제인 유명한 그림 뒤 숨겨진 이야기, 갓난 예술 작품이 갓생사는 명화가 되기까지 앓아야 했던 성장통이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비너스의 탄생』(1485년경)은 바다에 일은 거품에서 태어난 사랑의 신 비너스[Venus, 그리스 신화 속 이름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몸을 우아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거대한 조개 위에 서 있는 비너스의 자세는 너무나도 유명하다이 작품 속에 모든 남자가 홀딱 반하게 만드는 사랑의 신이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는데도 처음에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1815년 우피치 미술관에서 공개된 이후부터 그림 속 비너스의 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것만 보면 미쳐버린 남성 시인과 소설가들은 미술관에서 폭발한 비너스의 빛에 압도당한다. 그들이 여러 번 비너스를 언급하고 칭송함으로써 긴 어둠을 먹고 자란 보티첼리의 그림은 빛나는 명화로 만들어지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모나리자』(1503년경)도 처음에는 여인을 그린 평범한 초상화였다. 희미한 미소의 의미도 수수께끼고, 미소 짓는 여인의 정체도 수수께끼인 모나리자는 어떻게 루브르의 A급 명화가 되었을까. 우리는 모나리자의 우아함과 다빈치 특유의 천재성 덕분에 명화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빛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다빈치와 그의 주변 사람들도 아니요, 건물 전체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루브르도 아니다. 모나리자를 명화로 키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여행 안내자들이다. 자본주의가 도시에 스며들던 19세기 이후부터 중산층은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졌다. 돈 많은 귀족만 드나들던 미술관에 중산층의 발길이 잦아졌다. 관광업도 발전하면서 파리의 여행 안내자들은 관광객들에게 파리의 명소들을 소개했다. 그 명소 중 하나가 모나리자가 사는 집, 루브르다. 과장이 살짝 더해진 여행 안내자들의 입소문, 여기에 모나리자의 미소에 피어나는 수수께끼의 빛을 직접 느낀 관광객들의 입소문이 더해져서 모나리자는 가까이서 보기 힘든 특A급 명화가 되었다


저자는 모나리자의 예를 들면서 명화의 조건이 단순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앞서 말한대로 명화의 조건은 생각보다 복잡하다무조건 잘 만들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명화가 되지 않는다여기서 명화의 여러 가지 조건을 나열하지 않겠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예술가의 인생은 짧고, 예술가의 작품이 진정한 예술로 인정받는 시간은 길다그 시간 속에 예술 작품은 까다로운 대중의 시선과 날이 서린 폭력적인 언어를 묵묵히 귀 기울여 들었다. 성장통은 너무 아팠지만 참고 견뎠다. 쓰디쓴 인내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예술 작품의 빛은 무관심과 혹평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어둠을 뚫어냈다. 한 송이 명화로 피우기 위해 작품은 먹구름 같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3]. 우리는 명화라는 이름으로 남은 멋진 어른을 바라보고 있다. 한때 어두운 아기였던 그림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4].






<cyrus의 주석>



[1]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공동 번역 성서창세기, 1:3~4)




[2]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마지막 행.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3]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2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4]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중에서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 21


 1855~1856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에드몽 드 공쿠르(Edmond de Goncourt)와 그의 형제 (Jules de Goncourt)[5]은 마치 조각상 같은 금발의 비너스가 발푸르기스의 밤을 주관하는 파우스트 전설 속 환영 같다며 칭송했다.



[5] 에드몽이 형, 쥘이 동생이다. 따라서 그의 동생이라고 써야 한다.





* 31


 수년간 초상화의 모델과 그녀의 묘한 미소를 둘러싼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생산되었다. 소문인즉 모델은 레오나르도의 정부였고, 비밀을 가진 여인이자 좋은 새어머니였다는 것이다.[주6]



[6] 모나리자모델이 다 빈치의 새어머니’라는 소문의 진원지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의 기억>이라는 글에서 다빈치의 유년 시절을 정신분석학적 방식으로 분석했다











프로이트가 분석한 다빈치의 작품은 <성 안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1519년경). 성 안나(그림 가운데)는 마리아의 어머니다. 그림에서 아기 예수를 안으려는 여성이 마리아. 프로이트는 성 안나의 얼굴이 마리아보다 젊게 그려진 것에 주목한다. 프로이트의 견해를 바탕으로 다빈치의 그림을 해석하면, 아기 예수는 젊은 두 어머니와 같이 있. 프로이트는 두 어머니로 해석할 수 있는 성 안나와 마리아가 각각 어린 다빈치를 키운 친모와 새어머니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의 기억>프로이트 전집의 열네 번째 책 예술, 문학, 정신분석(열린책들, 2020년)에 수록되어 있다. 성 안나의 미소는 모나리자 미소와 유사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다빈치의 새어머니가 모나리자의 모델이라는 견해가 나온 듯하다.






* 34


(월터 페이터의) 르네상스 역사 연구』 [7]



[7] 본서 25에 언급된 월터 페이터(Walter Pater)의 저서 제목은 르네상스 역사에 관한 연구. <르네상스 역사에 관한 연구>34쪽의 <르네상스 역사 연구>는 내용이 같은 책이다. 페이터의 저서는 르네상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번역본은 총 3종이다. 문예출판사(이덕형 옮김, 1982), 종로서적(김병익 옮김, 1988), 학고재(이시영 옮김, 2001)에서 출간되었지만, 모두 절판되었다.






* 152

 

 피카소는 고야가 1810년에서 1812[8] 사이에 만든 82점의 에칭에 감탄했다.

 


[8]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의 판화집 <전쟁의 참화> 관련 도판 설명문 중 일부다. <전쟁의 참화>1810년에서 182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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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는 곳자연은 황폐하다.

 

윌리엄 블레이크천국과 지옥의 결혼』 지옥의 잠언’ 중에서, 서강목 옮김 -





The Haunter of the Dark러브크래프트(H.P. Lovecraft)가 죽기 한 달 전에 완성된 마지막 작품이다. 소설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이 쓴 일기 내용을 토대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프로비던스(Providence)에 거주하는 공포소설 작가 로버트 해리슨 블레이크(Robert Harrison Blake). 그는 아무도 살지 않은 음산한 교회에 호기심을 느낀다. 교회 건물에 들어간 블레이크는 지하실을 조사하다가 상자를 발견한다. 그가 열어본 상자 속에 빛나는 트라페조헤드론(Shining Trapezohedron)’[주1]이라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있다. 블레이크의 일기에 그 물체와 관련된 구절이 있다. 상자 속 물건을 응시함으로써 어둠 속의 손님(The Haunter of the Dark)을 깨워 버렸다.”[주2] 블레이크는 상자를 열어본 일이 분명 잘못됐음을 인지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구 장르문학 전문 책방 <환상문학> 여름 호러 독서 모임 선정 도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김지현(아밀) 옮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크툴루의 부름 외 12》 (현대문학, 2014)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정진영(정탄)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 (황금가지, 2009)




로버트 H. 블레이크는 러브크래프트와 편지 교류를 할 정도로 친분 있는 작가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로버트 블로흐)을 모티프로 한 인물이다. 로버트 블록은 별에서 찾아온 자(The Shambler from the Stars, 1935)라는 단편소설에서 선배 작가 러브크래프트를 모티프로 한 인물을 등장시켰다주인공은 무명 작가로, 뉴잉글랜드 출신의 신비주의적 몽상가(mystic dreamer)’로 묘사된다. 러브크래프트는 뉴잉글랜드 출신이며 생전에 무명 작가였다. 러브크래프트는 블록을 위한 후속작 The Haunter of the Dark를 썼다. 러브크래프트는 로버트 블레이크를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소설에서) 자신을 죽인 후배 작가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전집 1에 수록된 The Haunter of the Dark제목은 러브크래프트의 의도가 반영된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문단으로부터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계승자로 인정받은 블록은 1950년에 또 다른 후속작 The Shadow from the Steeple(첨탑의 그림자)를 발표했다.


로버트 블레이크가 로버트 블록과 연관된 가공인물이라는 사실은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블레이크가 화가라는 사실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혹은 아예 모르는 듯하다. 소설에 분명히 로버트 블레이크는 신화, , 공포, 미신에 전념했던 작가이자 화가(For after all, the victim was a writer and painter wholly devoted to the field of myth, dream, terror, and superstition)로 언급된다꿈과 신화에 매료되어 상상하기를 좋아한다는 점. ‘비현실적인 세계를 소설과 그림으로 묘사하기를 열정적으로 추구했지만, 결국 환영에 시달리다가 미쳐버린 점. 이러한 로버트 블레이크의 기이한 삶과 별난 성격은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를 떠올리게 한다.
















* 윌리엄 블레이크, 서강목 옮김 블레이크 시선(지만지, 2012)

* [절판] 윌리엄 블레이크, 김종철 옮김 천국과 지옥의 결혼(민음사, 1990)

 




윌리엄 블레이크와 러브크래프트를 이어주는 공통점이 많다. 시를 썼다. ‘미치광이소리를 들을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두 사람의 작품들은 동시대인들에게 비웃음을 샀거나 무시당했지만, 죽은 이후에 재평가받았다



































* 아당 비로, 카린 두플리츠키 미술관에 가지 전에: 리 보는 미술사, 르네상스에서 아르누보까지(미술문화, 2022)

 

* 노승림 예술의 사생활: 비참과 우아(마티, 2017)


* 나카노 교코, 이연식 옮김 무서운 그림 2: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세미콜론, 2009)

 

* 데이비드 블레이니, 강주헌 옮김 낭만주의(한길아트, 2004)




윌리엄 블레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천사를 실제로 봤다고 말했을 정도로 영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쓴 글과 제작한 판화의 공통 주제는 꿈과 신화다. 자신의 영적 체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비현실적인 현상과 세계를 묘사했다. 블레이크의 그림에 원근법은 없으며 인물 형태도 단순하다. 그림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둡고, 기괴하고, 우울한 편이다.


















* [절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




내성적인 성격의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만 지냈다. 집과 그곳에 있는 책들은 러브크래프트에게는 지상 낙원이었다. 러브크래프트는 왕성한 독서를 통해 집 밖 세상을 이해했고,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시선이 반영된 소설을 썼다. 러브크래프트는 특이하고 난해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글과 그림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가 쓴 공포 문학의 매혹은 러브크래프트 본인의 독서 편력으로 구축된 공포 문학 개론서. 이 책에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 문학의 정의와 공포 문학 작가들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혼돈에 빠진 환영이 영국식 기괴한 이야기의 전형 중 하나라고 언급한다. 환영은 러브크래프트가 소설 속 인물을 설정할 때 자주 쓰는 개념이다. The Haunter of the Dark의 로버트 블레이크처럼 다른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처음에 불가사의한 현상과 물체에 호기심을 느낀다. 하지만 위험한 호기심은 그들을 혼돈에 빠뜨려 파멸로 이르게 한다. 계속되는 환영에 혼란스러워하다가 끝내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다.






윌리엄 블레이크

벼룩 유령

1819~1820년경




생전에 혹독한 평가를 받은 윌리엄 블레이크는 낭만주의 문학과 낭만주의 미술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인 겸 화가로 평가받는다. 블레이크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현실로 향해 있지 않았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은 일상 너머 상상, 즉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세계다






























* 단테 알리기에리,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신곡(민음사, 2007)

* 존 밀턴, 윌리엄 블레이크 · 귀스타브 도레 그림 실낙원(CH북스, 2019)




몽상가 블레이크는 단테(Dante Alighieri)신곡과 존 밀턴(John Milton)실낙원에 매료되었다. 블레이크는 신곡실낙원삽화 제작 작업을 착수하지만, 신곡삽화만은 완성하지 못했다. 블레이크의 삽화는 글자로 된 텍스트와 과장된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블레이크는 삽화를 통해 자신만의 지옥, 연옥, 천국, 에덴동산을 새로 만들었다.

 

러브크래프트의 묘비명은 I’m Providence(나는 프로비던스)”. 외로운 몽상가가 죽을 때까지 품에 안은 프로비던스는 원래 을 뜻한다.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의 모태를 만든 신이라면 윌리엄 블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을 다시 만든 상상력의 신이다.






[1] 빛나는 트레피저헤드론(정진영 옮김, 황금가지). 우리말로 번역된 명칭은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2] 김지현 옮김, 어둠 속의 손님중에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틀루의 부름 외 12(현대문학, 2014),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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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8-15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영화는 봤나?

cyrus 2023-08-21 20:43   좋아요 1 | URL
안 봤어요. 제목만 알아요.. ㅋㅋㅋㅋ

stella.K 2023-08-21 20:47   좋아요 0 | URL
내 그럴 줄 알았지.ㅎㅎ
꼭 봐라. 명작이다.

cyrus 2023-08-21 20:48   좋아요 1 | URL
드디어 저도 넷플 계정이 생겼어요. 그 영화 있으면 볼께요.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ㅎㅎㅎ
 
예술의 이유 - 예술 입문, 라스코에서 쿤스까지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 옮김 / 서광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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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난 이렇게 널 바라보는데

넌 날 보며 웃지도 않아.

알 수 없는 널 사랑하기는

어려 어려워 정말 어려 어려워.

 

닥터레게(Dr. Reggae), 어려워 정말(Who Are You?)노랫말

1993






“Ninety percent of science fiction is crud, 

but then, ninety percent of everything is crud.”

 

공상과학소설의 90%가 쓰레기라면,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다.”



미국의 SF 소설가 시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이 남긴 말이다.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SF90%를 쓰레기라고 혹평했다. 그러자 스터전은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라고 응수했다


대다수 사람에게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보자.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지 싶다. 요즘 예술의 90%는 쓰레기라고. 과격한 표현이지,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올해 초 제프 쿤스(Jeff Koons)풍선 개가 관람객의 실수로 훼손되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풍선 개의 감정가는 훼손되기 전까지만 해도 42,000달러(5,500만 원)였다. 풍선 개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을 때 당시 현장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관람객 중에 예술가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처음에 풍선 개가 부서지는 상황이 행위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미술품 수집가는 풍선 개의 파편을 구매했다. 비싼 작품 일부를 가질 수 있어서 흡족했다고 한다.


반면 ‘예술90%는 쓰레기’ 설을 믿는 사람들은 어이없어한다. “요즘 예술가들도 쓰레기군.” 그 사람들의 눈에는 요즘 예술 작품들은 아름답지 않고, 무슨 생각으로 만들어졌는지 도통 알 수 없고,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들이다.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다전혀 아름답지 않은 예술 작품들이 너무 많다.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있는 미술이 죽은 단어(死語)라고 주장해도 이상하지 않다그래서인지 미술가를 포함한 몇몇 사람은 현대 예술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것 같다그래도 미술이든 예술이든 어려워서 머리가 아픈 건 매한가지다.


‘예술의 90%는 쓰레기설을 반박할 수 있는 스터전과 같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미술가가 아닌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가 현대미술 옹호를 자처한다그의 책 예술의 이유: 예술 입문, 라스코에서 쿤스까지현대미술을 위한 변명(apologia)’이다옹프레는 자신을 현대 예술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라고 겸손하게 소개하지만, 이 책을 쓰게 된 의도는 자못 진지하다. 예술의 이유는 옹프레가 예술이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불행한 사람들’과 투쟁하기 위해 쓴 책이다.


현대미술 앞에만 서면 기가 죽어서 작아지는 사람들은 미술(, 아름다울 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 예술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보면 볼수록 예쁘고, 우아하고, 고상함이 느껴지는 예술 작품은 걸작으로 칭송받는다. 그들이 미술 작품 또는 예술 작품의 기준은 단순하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져야 한다.


옹프레는 미술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가 주장하길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의미. 라스코 동굴 벽화는 항상 미술사의 시작점으로 거론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이다. 벽화를 그린 익명의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름답게 동물들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사냥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동물들을 그렸을 뿐이다아름답지 않은 예술 작품이 쓰레기라면 동굴 벽화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쓰레기.


옹프레는 동굴 벽화에서 제프 쿤스에 이르는 미술사를 개괄하면서 보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발전해온 예술을 주목한다. 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예술가는 그림이든 조각이든 다양한 형태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예술가의 생각 또한 작품 제작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재료다


옹프레는 예술 작품 속 의미와 메시지를 언어로 비유한다예술가는 무뚝뚝하지 않다. 그들은 예술이라는 특수 언어로 관객들에게 말 건다혼자서 작업실에 틀어박혀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거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그런 예술가 이미지는 대중의 상상과 편견이 만든 것이다. 예술가는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술가는 철학, 음악, 문학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이 많다. 예술가는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한다. 동료 예술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다가도 때로는 생각의 차이(예술의 정의, 표현 방식, 정치적 이념 등)로 인해 서로 죽일 듯이 다투기도 한다


예술가의 생각이 담긴 예술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변한다. 그 대신에 관객이 늘 원하던 아름다움은 점점 투명해진다. 이제 관객은 예술가의 생각을 찾아야 하고, 예술가의 요청에 응답해줘야 한다. 예술가가 죽고 없어도 예술 작품은 우리를 향해 계속 말 걸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죽지 않는다. 다만 가 사라질 뿐이다. 영원히 남아 있는 건 예술 작품이라는 형체가 되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


의미가 눈에 보이려면 눈으로만 예술 작품을 감상해선 안 된다. 머리로 감상해야 한다. 그런데 예술 작품을 눈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예술 작품의 의미를 생각하는 행위가 쉬운 일은 아니다. 옹프레는 예술 작품의 의미에 부합하는 열쇠를 찾으라고 제안한다. 그의 말이 맞긴 하는데 열쇠 찾는 일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감상법이 아니다. 열쇠가 필요 없는 예술 작품도 있다. 그런 작품들은 오로지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술 작품 속 의미를 이해하자고 강조하는 옹프레의 견해는 진부하고 한계가 있다. 열쇠를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예술 작품에 잘 들어맞던 열쇠는 시간이 지나면 녹슨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단 하나의 열쇠는 없다.


예술은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예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오래전 헤겔(Hegel)이 주장한 이후로 끈질기게 살아남은 예술 종말론은 인제 그만! 예술 다양한 목소리로 채워지면서 항상 변하는 유기체’ 같은 개념이다. 예술가와 예술에 대해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예술이 뭔지 열심히 떠들고 있다. 예술이 어려운 걸 잘 알면서도. 예술은 어려워, 정말!






※ cyrus의 주석



* 127

 




 <>(1917)은 보통 벽에 수직으로 고정되어 있다. 갤러리, 박물관 또는 수집가의 집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에서 <>은 아랫부분에 ‘R. Mut’[]라는 서명과 함께 받침대 위에 눕혀져 있다.

 

[] 정확한 철자는 ‘R. Mutt’.





* 역자 주, 198





 


귀도 디 피에로(Guido di Piero→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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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미술 -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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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를 위한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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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진정한 배움이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윤기 옮김, 합본 173쪽, 열린책들)

 



조커(Joker)는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이다. 총 다섯 명의 영화배우가 조커를 연기했다. 현시대의 조커는 히스 레저(Heath Ledger)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 물론 대중은 히스 레저의 조커를 높이 평가한다. 그는 조커 그 자체가 되어버렸고, 조커를 새롭게 만든 배우라는 찬사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팀 버튼(Tim Burton)이 연출한 <배트맨>의 조커는 잭 니컬슨(Jack Nicholson)이 연기했다실은 지금부터 내가 언급하려는 조커는 히스 레저가 아니라 잭 니컬슨이다. 이러니까 내가 옛날 사람 같군. 내가 태어나고 이듬해에 영화 <배트맨>이 첫선을 보였다. 바로 다음 해에 국내 개봉되었다(내가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맞혀 보세요).









<배트맨>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잭 니컬슨의 조커가 부하들과 함께 미술관에 침입해서 난동을 부리는 일이다. 조커 일당은 비싼 명작들을 칼로 난도질한다. 부하 한 명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을 찢으려고 하자 조커가 막는다. “이 그림은 마음에 드니까 그대로 놔둬.” 







조커가 마음에 들어 했던 베이컨의 그림을 보자. 제목은 고기와 함께 있는 인물(Figure with Meat, 1954)이다. 인물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허옇게 녹아내린 상태다. 그래서인지 그는 외마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인물 뒤편에 걸린 도축된 고기가 잔혹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베이컨의 그림은 기괴하고 음침하다. 그가 표현한 얼굴과 몸은 일그러져 있다그의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은 무서워하거나 불쾌감을 드러낸다. 조커는 명작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그들을 비웃으면서 약 올린다.

 


“Why so serious? See, This is not a monster. 

He’s just ahead of the curve.”

(“왜 그리 심각해? , 이건 괴물이 아니야. 그는 시대를 앞선 거지.”)


 

조커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볼 때마다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리라베이컨의 인물화(베이컨의 그림을 봐서는 인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는 결국 조커를 위한 초상화이자 자화상이다. 조커는 베이컨이 누군지 몰라도 그가 괴물을 그리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베이컨이 그린 건 괴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으로 규정하면서 자꾸만 감추려고 하는 내면의 깊은 어둠 덩어리다.


우리는 내면의 어둠을 애써 부정하려고 한다. 질투, 분노, 불안, 트라우마, 우울, 배타심, 폭력성. 하지만 어두운 감정 또한 우리 삶의 일부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도사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아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고 역설한다우리 안에 짙게 덮은 추한 그림자는 제거해야 할 해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이 어두운 반쪽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실체를 마주 보기가 두려울수록 절대로 봐서는 안 된다고 변명한다. 어두운 반쪽을 회피하거나 감추기 위해 보기 좋은 가면을 항상 쓰고 다닌다. 그런 삶이 지속되면 화려한 가면을 진짜 자기 모습으로 착각한다.







어둠의 미술: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오싹함을 주기 위해 무시무시한 그림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부도덕, 사악함,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기 파괴적 충동 등 우리가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는 어두운 반쪽의 다채로운 면모를 그림들이 대신 보여준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대체로 난해하거나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보면 볼수록 불쾌감이 생기고 꺼림칙하다당연히 이 책에 베이컨의 그림 한 점이 실려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를 연구한 습작(1953)이다.


어둠의 미술은 공포감을 유발하는 이미지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나도 안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은가?(I know. Isn’t it beautiful?). 모든 이들이 아름다움과 화려함에만 좇고 있을 때 철저히 외면해 온 내면의 어둠을 솔직하게 표현한 그림들이거추장스러운 가면을 내려놓고 이 책을 제대로 본다면 꼭꼭 숨겨 놓은 어두운 반쪽을 끄집어낼 수 있다가면을 벗은 얼굴에 어둠을 새겨 보자(Let’s put a dark on that face)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어두운 일부를 억압하면서 산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악당이 된다. 어두운 반쪽과 적절하게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무 가까이는 말고, 멀리하되 억지로 떼어내지 않을 만큼 정도로.






※ cyrus의 주석



* 49




   

 파리에서 활동했던 독일 화가 불스[1]의 대담하고 공격적인 그림은 유럽의 추상화 운동인 앵포르멜의 특징이다. 사르트르는 불스[1]의 작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일의 보편적 두려움과 세속적 현상의 타자성에 대한 이끌림을 시각화하였기에 실존주의적이라 말했다.


 

[1] 독일어 발음에 따라 표기하면 볼스(Wols, 1913~1951)’.






* 65





 분노, 질투, 복수, 병과 질환. 폭력과 갈등. 슬픔과 상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죽음. 인간 조간[2]의 이 어두운 측면을 파헤치는 것은 종종 고통스럽고 골치 아프지만 꼭 필요한 단계이다.



[2] 조건의 오자.






* 95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1938-65)[주3]는 볼로냐 화파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며, 당대 가장 조예가 깊고 혁신적이며 성공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주3] ‘1638’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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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되었단 말이더냐?
출생년도 기준이지? 개봉년도 아니고ᆢㅋㅋ

cyrus 2023-07-18 05:52   좋아요 1 | URL
혹시 제가 언제 태어났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신 건 아니죠? 하셨다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ㅎㅎㅎㅎ 저는 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에 태어났어요.. ㅋㅋㅋㅋ

미미 2023-07-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너무 좋네요. 제가 요즘 생각하던 주제를 사이러스님이 이렇게 써주시다니 놀랐습니다. <장미의 이름>의 발췌문도 소설을 재독 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고요. 저도 조만간 써야 할 독후감이 있는데 저 말 인용하고 싶어져요. 사이러스님 88년생이십니까? ^^

cyrus 2023-07-18 05:53   좋아요 1 | URL
미미님이 관심 있는 주제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군요. 네, 마음껏 인용하셔도 좋습니다. 88년생 맞아요 ^^

서니데이 2023-07-12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잭 니콜슨이 조커로 나왔던 영화는 80년대 영화였을거예요. 요즘엔 조커는 그보다는 최근에 나온 히스 레저 사진이 더 많이 나오긴 합니다. 조커 캐릭터도 영화마다 다른 것 같긴 해요.
잘읽었습니다. cyrus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3-07-18 05:57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배트맨>이 처음 나온 연도가 1989년이에요. ㅎㅎㅎ

날씨가 변덕스럽네요. 무덥다가 어느샌가 비가 많이 내리고. 더위와 습함이 공존하는 일상이 지속되니까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지쳐버리네요. 오늘도 비가 온다네요. 여름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오퍼스 7
수잔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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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프랑수아즈 사강 -

 


항상 출근하기 전 오늘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마음속에 새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읽고 싶은 새로운 책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두 손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마음은 책 밭에 가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에 만든 도서 목록은 온데간데없다.

 

정지돈의 소설집 인생 연구를 다시 읽기 전에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를 먼저 읽었다. 나는 책 속 문장이나 묘사를 해석하는 일을 즐기는 편이다. 그게 내 독서 방식이며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책 읽는 일상을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할 때마다 해석에 반대한다에 실린 동명의 글을 찾아서 읽는다.

 

일요일에 내가 쓴 <안젤라를 이해하기 위하여>인생 연구에 수록된 소설 <우리의 스크린은 서로를 바라본다> 속 주인공 안젤라를 해석한 글이다. 손택은 해석의 근본적인 임무를 번역 작업으로 비유한다. 독자는 작품, 즉 책을 읽는 순간 번역자인 동시에 해석자가 된다. 안젤라는 사실 이런 사람이다, 정 작가는 안젤라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관찰하듯이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인간적이지 않은 비인간적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독자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분석해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우리는 작품을 해석하는 일 또한 독자가 할 수 있는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해석이란 작품을 적극적으로 읽기 시작하면 작가가 작품 속에 숨겨놓은 메시지를 열심히 찾아서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택은 이처럼 작품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해석에 반대한다. 그녀가 비판하는 해석의 문제점이란 작품 속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하거나 내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에 길든 해석자는 자신의 임무가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독자를 위한 일이라고 인식한다.

 

책을 읽고 난 후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독자에서 해석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내가 해석하면서 도출한 결론이 항상 옳다고 여기지 않는다. 독법(讀法)이 독법(毒法)이 돼선 안 된다. 손택은 의미 찾는 일에만 골몰하는 해석 행위를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해석을 무용한 행위로 보지 않는다.

 


 해석 자체도 분명히 평가받아야 한다.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해석은 해방 행위다. 거기서 해석은 수정하고 재평가하는, 죽은 과거에서 탈출하는 수단이다. (25)


 

<안젤라를 이해하기 위하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은 수많은 책을 읽고 해석한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내 글은 죽은 과거에 쓴 것이며 평가받아야 할 대상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편견의 색안경을 제대로 벗지 못해 책을 잘못 읽을 수 있다. 내 글에 사실이 아닌 가짜 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책 읽는 해석자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해석자는 단순히 책을 읽고 해석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책을 해석해서 정리한 내 글을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사람이다. 나는 내 해석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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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13 0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삽하나 2023-07-09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로그 제목 + 리뷰 제목/메시지에 로큰롤 스피릿이 충만하네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