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말하다 -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안토니오 시모네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술 모임에 대한 단상

며칠 전, P 출판사에서 주최한 강연회 참석을 통해서 온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출판사 카페 회원분들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강연회가 끝난 뒤에는 카페 회원분들끼리 술과 안주를 함께 뒷풀이도 하게 되었다.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한 채 카페에서 만나다가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된 터라 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책을 좋아해서 출판사 카페에 가입한 분들이라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대화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어 갔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면 낯을 가리게 되는 나 역시 책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회원분들과의 대화에 동참하고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대화의 주제는 폭 넓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인생 이야기나 지금까지 본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회원분들의 대화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영화 관련 대화와는 수준이 달랐다. 그 때 대화에서 언급되었던 영화들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한 분이 얼마 전에 개봉되었던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기억이 난다. 홍상수 감독 , ,,,  그의 이름과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낸 영화제목들은 많이 들어봤는데 , , ,  살면서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분들의 대화를 열심히 경청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야만 했다.  머릿속으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거기에다가, 서로 영화 한 편의 내용에 대한 감상을 대화 주제로 나누는 모습도 무척 놀라웠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 느꼈던 감상이 술 모임의 대화 주제가 될 수 있다니 , , ,   지금까지 수많은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들과 비교하면 차원이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가 뭐였더라 , , , ?      음 , , ,   기억이 안 난다. -_-;;   

아니, 술 마실 때에는 대화란게 없었던 거 같다.  만나자마자, 여러 명 둘러 앉아 소란스럽게 게임을 하면서 주문한 술들 다 억지로 비워내고,  2차로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 부르고, 3차는 당구장으로 향하는,  이 획일화된 술자리 루트(?)에서는 폭음의 충격을 진정시켜줄 진지한 대화의 시간은 없었다.   그나마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는 선, 후배나 동기 뒷담화하거나 그동안 살면서 쌓여왔던 불만들을 토로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술자리에는 항상 마무리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 개 ' 가 되는 것처럼,  내 주위에 술만 들이켰다면 '개' 로 변하는 친구들 덕분에 술자리가 '개판' 이 되기 쉬웠다. 

 

   

  나에게는 가까우면서도 먼, 영화  

사실, 나는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성격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랑할 사실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직접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본 게 횟수로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극장에서 영화를 안 본 지 2년 된 거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극장에서 본 영화들 대부분은 헐리우드 출신의 영화들이라서 남들 앞에서 영화 이야기할 때는 나 스스로 회피하고 침묵하는 편이다.   

간혹, TV에서 24시간 영화만 방영되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영화를 본다고는 하지만, 그 때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단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이다. 재미있는 액션 혹은 스실러 영화 한 편 보게 되면 시간이 금방 흘러가게 되니까.  나에게 영화란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오락거리 혹은 잠시나마 우울과 불안함 따위를 해소시킬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발현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다보니, 영화 한 편 보고 난 뒤에 내 머리 속에 남는 건 줄거리일뿐이었다.  내가 왜 이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 ,  

  

 

  

  세대를 초월한 모자지간의 영화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듯이 영화 역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영화 한 편 가지고도 1시간은 거뜬히 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의 청자가 영화 매니아가 아닌 이상,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 영화 ' 란 주제는 구태의연한 대화 분위기 띄우기용에 불과하다.  요즘 흥행을 이루고 있는 영화 한 편 이름 살짝 던져주고, 이 영화의 관람 유무를 따진 다음에 자신만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분법적으로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 재미 있다, ' 혹은 ' 재미 없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그리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긴, 꼭 영화를 영화 비평가처럼 분석하면서까지 볼 필요는 없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한 편 보는 거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나처럼 영화 보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영화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다거나 주제에 대해 막연하게 꺼리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영화에 관한 대화는 영화 매니아들만 사이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대화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나면서 하는 대화가 영화 이야기라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집에 있으면 가족 간에 서로 대화를 잘 안 하는 대한민국 가족의 분위기를 비추어보면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와 그의 아들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에 대한 대화는 놀라울 따름이다.      

거기에다가, 이들이 언급하고 대화 주제로 삼는 영화들 역시 보는 이들에게는 감탄을 하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가 태어날 때 나온 1940, 50년대 영화의 고전부터 시작해서 영화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유명한 명작들까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이루어진 옛날 영화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00년대쯤에 나온 최신 영화 (이들이 대화를 나눈 시기와 대담을 책으로 나온 연도가 2009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최신 영화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들도 소개되고 있다.  

故 스탠리 큐브릭,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시드니 폴락 등 내노라하는 영화의 거장들과 최근에 감독으로 또 한 번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훌륭한 족적을 남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에 대해서 논하며, 영화 관련 산업에 발을 담그고 있는 시모네의 관객들이 몰랐던 영화 작업의 뒷이야기등 주제가 다양하면서도 폭이 넓다.    

서로 다른 환경에 살아온 모자지간끼리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서로 통하는게 있을런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단순히 영화 한 편에 대해서 비평가처럼 평가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자신만의 관점에 대해서 서로 알아가는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세대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이다.  

이들이 소개하는 영화 역시 세대를 초월하는 것처럼, 이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 역시 수십 년 차이의 세월의 벽을 허물고 있다. 영화 그리고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서로 존중해주고 있다. 그래서, 모자지간의 영화 이야기는 거실에 따뜻한 커피 한 잔 함께 하는 일상적인 대화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책과 영화는 동격  

책 한 권 다 읽고 그냥 책장에 꽂아버리는 사람과 반대로 한 권을 다 읽고난 뒤에 읽으면서 느껴던 책 내용에 대한 감상을 적어두는 사람 그리고 책을 읽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의 독서와 그냥 유행 따라 베스트셀러만 읽는 사람의 독서에 차이점이 있듯이 영화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자신에게는 유익한 정신적 영양분이 될 수도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지론을 밝히고 있는데, 책과 영화는 동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부모로부터 ' 책과 영화는 동격 ' 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그 가르침은 그녀의 아들인 안토니오 시모네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 자식에게 영화를 접하는 환경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만 골라 보지는 않았으며 아들에게도 자신의 영화 취향을 따르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  아들이 영화라는 장르에게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아들의 취향을 인정해주었다. 아들이 만화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시오노 나나미 역시 아들과 함께 만화영화를 같이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성장하면 할수록 영화 장르에 대한 관심사에도 변화가 찾아오면, 그녀도 따라 변화된 아들의 영화 취향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런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교육(?) 방식은 자녀의 정신적 성장까지 자라게 해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줄뿐만 아니라 영화 보는 방법 그리고 재미까지도 터득하게 된다.  장점은 이것뿐만 아니다.  가족 간의 대화를 하는 시간까지 저절로 생기게 된다.  

단, 유의해야할 점이라면 본인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녀에게도 영화 보는 것을 강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 시모네가 만화영화를 많이 즐겨보는 것처럼 어린이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녀가 만화만 본다고 해서 타박을 주는 것보다는 자녀가 보는 만화를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이런 교육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바탕은 부모와 자녀가 보는 영화의 취향은 무조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훈은 한 집안의 전통적 도덕관이기 때문에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켜야하지만, 영화는 꼭 가족들이 모여 보란 법은 없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아버지 손을 잡고 목욕탕이나 야구장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근처에는 가보지 못했다.  지금도 아버지는 케이블 영화 채널을 즐겨 볼 정도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신데 아마도 폐쇄되고 어두운 실내의 극장 분위기에 낯설어하는 탓일 수 있겠다. 아니면, 어린 내가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유해하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극장에 안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본다. 

분명,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녀가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 한 편 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면 나중에 학습에 방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유독 TV 속 만화를 즐겨 보는 이유가 브라운관에서 비쳐오는 화려한 색상과 음향이 어린이의 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하루종일 집에서 만화영화만 보게 되면 한창 뛰어놀아야 할 때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지 않게 되며 신체적 성장도 늦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자녀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좌지우지하는 것은 부모의 교육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녀의 나이에 걸맞는 만화영화를 시청하되, 단순히 보여주기보다는 부모 역시 자녀와 함께 시청을 함녀서 만화영화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 <로마에서 말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p 26 -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던 것처럼 가족 간의 대화에 물꼬를 트일 수 있는 기회, 아니 세대 간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타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바로 영화이다.  가족과 함께 영화 한 편을 같이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며 봤던 영화를 주제로 아버지와 함께 술 안주 삼아 대화를 할 수도 있다.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해줄 수 있는 동시에 영화 보는 안목까지도 생기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긴다.  

주말에 시간이 되면, 아버지나 어머니 중에서 한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극장으로 같이 가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든다.  그런데, 아버지는 주말에 등산 모임에 참석하고, 어머니는 영화 따위에 도통 관심이 없다.  부모님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보는 날이 올 수 있을지 기약은 없다지만,  먼 훗날, 내가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게 되면, 어린 자식의 손을 꼭 잡고 영화 보러 극장에 가야겠다.  

  

P.S> 이 책의 분야는 내용만 봐서도 예술, 에세이 중간쯤에 속하는데 글은 엉뚱하게도 가정 교육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다. -_-;;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12-2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이러스님의 글을 보면서 말이죠,
진짜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좋았을건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나이차는 좀 나지만
그래도 같이 술 한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면 재미있겠다 싶어서요.

저는 영화 좋아합니다만, 감정에 질질 끌리는 영화나
너무 사랑 타령하는 영화 안 좋아합니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은 좋아하는 감독이 아니랍니다. 오늘은 해리포터, 25일은 황해 예약해놨어요. 아하, 신나라~

cyrus 2010-12-23 13:56   좋아요 0 | URL
저는 술 마시며 아무 주제나 수다 떨고 듣는 건 좋아하는데,,
좀 재미없고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걱정입니다.^^;;

마고님은 멜로영화를 좋아하실거 같은데,,^^;;
사실 저도 주로 즐겨보는 영화는 액션, 스릴러 위주랍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판타지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영화 해리포터는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황해,,, 요즘 급 끌리는 영화인데,, 크리스마스날에
보시는군요. 부럽습니다. 크리스마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다이조부 2010-12-23 17:3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마고님은 시리스님 만 편애하시는 구나~

느끼해서 이런 말 하기 주저하게 되는데 인형의 꿈 노래 생각나네요 ㅋㅋ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미술사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수없이 등록되는 미술 관련 신간도서를 확인한다거나, 도서관에서 미술 관련 책이 꽂혀 있는 서가를 둘러보게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많았다.  

  ' 우리나라에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서양미술사 책이 많은데,  

    유독 우리나라 미술사 책이 많이 나오지 않은걸까? "  

에른스트 곰브리치와 호스트 잰슨의 <서양미술사>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꾸준히 팔리면서도 읽고 있는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 개론서이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나 서양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이 꼭 읽게 되는 책이 단언 곰브리치가 쓴 책이다. 900페이지 정도의 양을 자랑하는 이 두꺼운 미술사 책이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에는 수준 높은 미술의 역사와 이론들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저자의 문장력이 한 몫을 하고 있지만, 이런 저자의 의도는 서양미술에 대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지대한 관심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도 있었다. 그래서 곰브리치 이외에도 외국의 대중 미술 전문가들이 쓴 책들이 많이 출판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주헌, 한젬마, 이명옥 씨와 같은 ' 대중들을 위한 미술 ' 이라는 포맷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출판된 미술 관련 도서들 중에서는 서양미술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정작 대중들을 위한 우리나라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출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 많이 출판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홍준 씨는 이전에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조명함으로써 문화재 탐사 붐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밖에도 추사 김정희, 한국의 도자기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을 펴내면서 대중적인 우리나라 미술 저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강우방 씨는 솔 출판사에 기획된 ' 한국 미의 재발견 ' 시리즈에 참여하여 우리나라 불교 조각과 탑의 미적 가치를 소개하였다. 전호태 씨는 고구려 벽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故 오주석 씨는 단원 김홍도 등과 같은 조선 시대의 풍속화가들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게 하였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이사로 역임하고 있는 진홍섭 씨가 쓴 <한국미술사> 등 우리나라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학술적 시도가 있었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인 단점이다.  우리나라 미술 전공자들에게는 이런 책의 등장은 크게 환영받을 일이었지만 반면 대중들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만 하다. (진홍섭 씨가 쓴 이 미술사 역시 900페이지 정도가 된다)  이런 활발한 저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 문화는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받은 문화라는 인식을 가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문화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개된 우리나라 미술은 미시적인 내용들이었다. 고구려 미술, 조선 시대의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로 두드러지게 갈라져 있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미술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 보기 드물었다.

 

 

  한국미술의 시작, 빗살무늬토기   

서양미술의 인지도에 밀려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현상이 우리나라 미술의 현주소이다. 메마른 토양이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이번에 유홍준 씨가 출간한 <한국미술사 강의 1>은 '가물에 단비' 와 같은 존재이다.  특히, 그전부터 한국미술사에 관한 책을 고대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이 책의 출간이 무척 반갑기만 하였다. 

이번에 출간된 1권은 선사시대, 삼국시대 그리고 학계로부터 심도 있게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발해의 미술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삼국시대부터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을 통해서 한국미술사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재정립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교과서의 첫 단원이 선사시대(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이 미술의 역사 역시 출발점을 선사시대로 잡고 있었다. 특히, 신석기 시대에 등장한 빗살무늬토기에 대한 내용은 선사시대의 유물에서도 고대의 조상들의 미적 가치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빗살무늬토기  

 


 

번개무늬토기, 신석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전에 교과서에서 본 빗살무늬토기의 사진을 보면서 토기에 새겨진 저 빗살무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냥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고고학적 유물인 토기로만 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토기에 새겨진 단순한 무늬를 유홍준 씨는 '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새벽 ' (p 30) 이라고 말하고 있다.  토기에 새겨진 빗살무늬가 토기를 쉽게 잡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능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이들이 무늬를 새기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는 고대의 인류에게도 주위의 사물을 파악하고 표시하려는 '의식' 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류가 사물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직립보행 못지 않게 중요한 인류 발전의 획기적인 일이다.  아기들이 흰 종이이든 벽이든간에 손에 쥐고 있는 크레파스나 펜으로 우리의 눈으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없는 기이한 낙서들을 남기는 이유가 자신의 주위에 펼쳐져 있는 사물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낸 행위이다.  현재 인류의 지능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져 보일 것 같은 원시적인 인류에게도 사물을 보려는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의식의 결과물이 토기에 새겨진 단순한 무늬라는 점에서 보면 미술이라는 행위는 이미 고대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나은 한국미술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대로 선사시대부터 신라, 고구려, 백제를 아우르는 삼국시대 그리고 백제까지 고대의 미술을 소파에 앉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최근에 밝혀진 연구 결과들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연구 논쟁의 연장성에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정리를 하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이번 <미술사 강의> 저술은 저자의 학술 활동 경력 중 최대 프로젝트이며 이전에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게 해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면서도 충실한 내용을 담으려는 그의 노고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 역시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는 법. 이 책의 2장의 고인돌에 관한 내용에서는 지금까지도 학계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문제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지금까지도 고인돌이 세워진 의도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엇갈린 주장과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 있는 잘못된 내용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은 고인돌이 지배자를 위한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인돌의 용도가 집단 생활을 하고 있는 공동체사회의 제단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혹은 민간신앙의 상징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유홍준 씨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고인돌의 용도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으며 고인돌이 단순히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일방적인 내용이라고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고인돌의 분류법에 대해서는 저자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기념 조형물로서 장중한 멋을 풍긴다. (중략)  

  남방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대개 너럭바위나 큰 바윗덩어리지만 창녕 유리의 고인돌처럼 거대한 메줏덩어리 모양으로 육중함을 과시하는 것도 있다.  

  -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제2장 고조선 또는 청동기시대, p 60~61 -

학창시절 때 국사 시간에서도 배웠듯이 고인돌은 북방식, 남방식으로 분류한다고 알고 있다. 탁자 모양으로 생긴 고인돌을 북방식으로,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은 남방식이라고 학생들은 통상적으로 그렇게 배워왔다.  


 

탁자식 고인돌, 경북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 


 

 
 

바둑판 고인돌, 강원 양구군 양구읍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시리즈로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를 소개하는 저술가로 유명한 박은봉 씨는 2007년에 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 북방식, 남방식으로 분류하는 고인돌 표기법은 식민사학이 만들어낸 역사학 용어라고 밝히고 있다. 한반도를 북부와 남부 지방으로 임의로 나눈 이유에는 북부 지역의 사람은 위의 중국에 내려온 민족이며, 남부 지역의 사람은 예로부터 스스로 발전하지 못할 정도의 문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항상 외부로부터 지배, 발전했다는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배되어 온 북방식, 남방식 고인돌의 분류는 북방식 고인돌은 탁자식이며, 남방식은 바둑판 모양이라는 이분법적인 정설을 낳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탁자식 고인돌은 남부 지역에서 발견되며 반대로 바둑판 고인돌도 북부 지방에서도 발견되어 이분법적인 분류법이 주는 효력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2006년판 국사 교과서에서는 고인돌의 분류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고쳤다고 한다.   

저자의 이런 내용은 저자의 실수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학계의 분류법을 고수하려는 일종의 학문적 매너리즘의 경향일 수 있다. 사실, 새로운 고인돌 분류법 개정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에 대부분 사학자들 중에서는 북방식, 남방식 분류법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의 내용이 검증과 비판 없이 그대로 대중들에게 알려진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특히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당당한 지분율을 가진 문화적 주주 국가라고 밝히고 있다. 비록 중국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만에서 볼 수 있는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미술문화 속에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체성이 들어가 있다. 비록 작은 단어이지만 우리나라 민족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잘못된 역사는 우리나라 한국사뿐만 아니라 미술사의 옥의 티가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미술사의 시작은 일제 시대 때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일본인의 학자들에 이루어졌다. 미술의 역사에서도 일본인 학자들은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여 우리나라의 문화마저 말살하려고 하였다.  

즉, 이번에 나온 <한국미술사 강의>에서도 이런 사소한 오류의 내용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거나 지금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다면 과거의 식민사관의 미술사의 내용과 별 반 다를게 없다. 이런 문제점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미술문화를 대중들에게 정확히 소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 노력에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미술사를 미술 전공자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고정된 학문 인식을 넘어서 고고학자, 사학자들과의 학문적 연계를 통해서 지금보다 나은 한국미술사를 정립하려는 통합의 자세 역시 필요하다.

 

 

* 사진출처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3901&docid=228382&dir_id=10020101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291374&docid=727347&dir_id=10020202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1013&docid=14363&dir_id=10020202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5155&docid=14363&dir_id=10020202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0-11-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들 공부시키다가 고인돌 분류법 오류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나의문화유산답사기>만으로도 거대한 족적이죠.
얼마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오셔서 말씀을 되게 재밌게 하셨어요.
구라계의 계보를 잇는다셨는데 말이죠~

cyrus 2010-11-30 21: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몇 년전에 저자가 문화재청에 근무했을때도
말 많았던게 기억이 나네요, 자신이 지금까지 쓴 책들을
문화재청 건물에 비치하고, 건물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념품도 아닌,, 책을 사라고 간접적으로 홍보까지 했다고하네요.
또 한 번은 문화 유적지 근처에 근무하는 사람들끼리
고기를 구워 먹은 일 때문에 논란이 있었고요.
책 내용과 학문 활동은 높이 살만하지만,, 저자의 인성이
약간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반딧불이 2010-11-3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을 꾸준히 소개해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에 언급하신 내용은 좀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것 같아요.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홍보했다는 내용이요. 그분이 '우리 것'을 사랑하시는 분이 맞다면 인세를 챙기려는 의도보다는 그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다이조부 2010-11-30 21:48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의 태도는 어떤 사람의 언행을 봤을때 가장 선의로 해석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 저도 그런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말이죠~

제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만,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을
대할때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ㅎ

cyrus 2010-12-01 13:25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말씀을 보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언론에는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으니 언론에 비치는 이미지만으로 그 사람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게 사실이고요. 꾸랑님 말씀대로 선의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는것이 중요한거 같습니다.^^

반딧불이 2010-12-01 13:31   좋아요 0 | URL
무조건 선의로만 보는 건 더 모자란 사람이겠죠.

유홍준에 대해서 저는 아는바가 없어요. 다만 위에 조건을 달았던 것처럼 우리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다면 한번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미천하지만 소문과는 다른 경우들을 참 많이 봐와서요.

다이조부 2010-11-3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홍준의 책을 읽은것은 별로 없지만, 이 사람에 관하여 안 좋은 소문을
들은게 있어서 편견을 갖게 되더라구요. 재수 없다고 말이죠 ㅋ
지난달에 이 책을 가지고 알사탕 이벤트를 해서 리뷰만 쓰면 알사탕 받을 정도로
응모자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감상문을 편집해서 제출해 볼까 하다가 아무리 양심이
털이 났지만, 그건 아닌것 같더라구요.

cyrus 2010-12-01 13:28   좋아요 0 | URL
그렇게 안 쓰셔서 다행입니다. 표절은 해서 안된 것도 행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표절이라고 걸리게 되면 뒷감당이 두렵기도
합니다.^^
 
민화에 홀리다 - 조선 민화, 현대의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민화의 세계에 처음 마주치다  

 

 

  

민화(民畵)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조선 시대의 민중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민화라는 뜻 자체에서도 '백성 민' 자가 들어가니깐 민화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도 어느 정도 민화의 정의를 알고 있다.  그러나, 민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 뒤에는 잘못된 선입견도 가지고 있다.     

   민화는 이름 없는 서민들이 그린 그림이다,  

   유명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비교하면 민화의 그림 수준은 낮고 작품성은 떨어진다.  

   민화는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기만 하다.  

   미술품 경매에 나온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가격을 매기지 못할 것이다.  

대중들의 잘못된 인식 탓인지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한국미술 관련 도서들에도 대중들을 위해서 민화를 소개한 책들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미술에 어느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민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 있는 이도 보기 드물다. 간송미술관 같은 대형 박물관 및 미술관에 전시되는 풍속화나 서예 작품들에 사람들은 많이 몰리지만, 한국 민화 전시회에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것이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두 번째 선입견처럼 민화는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대중들은 민화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민화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대중들의 취향처럼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나 겸재 정선의 산수화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예전에 EBS에서 방영된 다큐 프라임 <풍속화, 조선을 깨우다> 김준근 편을 보면서 민화라는 분야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위의 사진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김준근의 풍속화을 보게 되면 민화와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이 방송을 통해서 처음으로 김준근이라는 원산의 화가를 알게 된 나는 그의 풍속화에서 우러나오는 색채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전에 나온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속 사람들과 비교하면 

  김준근이 그린 사람들은 생기가 살아있다." 

비록 TV 속 브라운관에 흘러나오는 영상이었지만, 그린 지 수백 년이 지난 김준근의 풍속화에는 여전히 색이 살아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김준근은 김홍도나 신윤복과 같은 왕실에서 활동하는 궁정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18세기 때 외국 문물의 유입이 되기 시작하면서 김준근은 원산, 부산과 같은 항구 도시를 넘나드면서 조선에 건너온 외국인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려 팔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외국인에게 건낸 그림에는 조선 시대의 일상 생활을 담고 있었다.   

조선 시대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림으로 그려 외국인에게 판 것이라면 어쩌면 김준근은 민화를 최초로 외국에 소개하였고, 거래를 한 최초의 화가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 박물관에는 김준근의 풍속화집이 소장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나는 조선 시대에는 민화도 어느 정도 미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때마침 올해에 출간된 이기영 씨의 <민화에 홀리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준근의 그림 덕분에 민화의 세계에 처음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10% 모자란 민화에 대한 소개

조선 민화에 대한 책이라서 읽기 전에는 무척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미술 비 전공자인데다가, 개인적으로 민화를 연구하고 있는 아마추어라서 그런 것일까?  내용 구성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민화라는 민중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조선 근대의 사회상을 알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두 번째 챕터인 [시대정신을 담은 민화]라는 부분에서는 35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조선 근대사를 서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근대사에서 굵직한 역사적 사실들만 소개하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이렇다 보니, 이 챕터에는 민화 그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민화의 발전 과정에는 조선 근대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하필 이 내용이 책 중간에 배치되어 있어서 읽고 있는 내내 맥이 풀린 감이 있었다. 차라리 역사적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맨 앞에 배치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뭐 어느 정도 조선 근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독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개의치 않겠지만, 이제 막 민화라는 미술에 대해 입문을 하는 독자들에게 도리어 독이 되는 독서가 될 우려가 있다. 민화 이야기보다는 역사 이야기 쪽으로 너무 치우치게 된다면 민화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더욱 더 민화라는 그림에 대해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민화를 더욱 재미있게 감상하고 이해하는 방법  

사실, 무턱대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민화를 알아야겠다' 라고 하는 독자들에게 상당히 지루한 책일 수도 있겠다. 정말 민화의 아름다움을 눈여겨 본 독자들은 이 책을 수월하게 읽혀질 것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내용 구성의 단점 때문에 민화 매니아들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런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서양미술의 특징과 민화에 대해 서로 비교하면서 이 책을 읽고나니, 민화의 특징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에두아르트 콜리어 <바니타스> 1650년경  

 


스텐비크 <정물-바니타스> 1640년


17~18세기 조선과 서양에는 독특한 양식의 미술이 유행하였다. 조선은 민화라고 하면, 서양에는 '바니타스(Vanitas)' 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Vanitas라는 용어에는 '인생무상'이라는 뜻이 반영되어 있는데, '바니타스'라고 붙여진 모든 작품들에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과 해골이 그려져 있다. 이는 곧 인간의 삶은 일시적이며 허무하다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책에 대해 깊게 어려워하거나 생각할 필요 없다. 책도 결국에는 허무한 인생을 상징하고 있으니깐. 아무리 파우스트 박사처럼 평생 학문에 몰두하더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라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즉, 학문의 덧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책가도 冊架圖>  

 

이 그림은 조선 시대에 유행한 <책가도>라는 민화이다. 순우리말로는 책거리라고 한다. 책가도는 책 이외에도 부채, 도자기 등을 문방(文房)에 볼 수 있는 도구들이 그려진 우리나라만의 정물화이다. 대부분 <책가도>는 선비들이 애용하는 문방 내부를 장식하는데 그려졌는데 학문을 좋아하는 사대부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뿐만 아니라 왕족들도 <책가도>를 선호하였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자신의 방 안에 <책가도>를 걸었으며 신하들에게 <책가도>를 늘 곁에 두어서 학문과 독서에 충실히하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책이 학문의 덧없음을 상징했더라면, 조선 사람들은 학문 추구에 없어서는 안 될 품목으로 여겨졌다.  



얀 판 하위쉼 <벽감에 놓인 화병> 1720~1740년경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수록
  

바니타스 정물화 중에는 을 주제로 그림도 많이 있는데, 잠깐 활찍 피우다가 지고 마는 꽃의 인생처럼 인간의 부귀영화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시든 꽃은 인간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서공임, 현대민화 <재화만발> 2010년 

나름 이쁜 그림인데 크기가 크지 않다 보니 사진상으로 좋은 화질로 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 민화에서 꽃은 서양과는 반대로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위의 사진 속 민화에 그려진 위의 꽃은 모란인데, 부귀를 의미하는 꽃이다. 그 아래의 꽃은 목련이다. 목련은 옥란화(玉蘭花)라고 부를 정도로, 공명을 의미하고 있다. 그만큼 선비들은 이 민화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민화를 통해서 자신이 높은 벼슬에 올라 부귀와 공명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기를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민화에는 서양의 바니타스와는 반대로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잉어가 그려진 그림은 벼슬 시험의 합격 성취를 바라는 의미, 석류 그림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원앙새와 연꽃이 그려진 그림은 부부 간의 화목을 나타내고 있다.      

 


작자 미상, 1880년대 추정, <왕세자두후평복진하계병> 일부 

 현대 민속화가 서공임 씨가 복원함.
                                                            

그리고, 민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선조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은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어서 오히려 부정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위의 그림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진료를 담당하던 식약청의 관원들이 그린 것이다. 여섯 살 때, 순종이 천연두에 걸려 몹시 고생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병은 나아지게 되었고, 이에 기쁜 마음에 고종 황제는 어린 순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특별히 이 그림을 그리도록 지사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왕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아닌 의료를 담당하는 식약청 소속 신하들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리고 (비록 그림의 일부만 찍었지만) 이 민화에는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들이 그려져 있는데 단순히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부의 백년해로를 염원하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져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 민화

방대한 서양 화풍 중에서 바니타스 정물과 우리나라 민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협소한 범위의 비교이겠지만,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동, 서양의 대표적 화풍을 비교하여 우리나라 민화의 특징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용 한계상 왕실 내에서 유행하던 민화들을 소개하였지만, 이 책에는 그 유명한 익살스러운 호랑이 얼굴을 그린 민화도 있고, 여러 마리 새들을 그려 넣은 민화 등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화는 단순히 서민적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부유한 양반들과 왕족들도 민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화는 궁정의 화원들도 그리곤 하였으며 왕들은 과거 시험에 참가한 선비들에게 특정 주제를 내세워 문장을 짓게 한 것처럼 화원들에게도 어떤 특정 주제로 민화를 그리게 하는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렇듯, 민화는 이름 없는 환쟁이만 그렸던 그림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환쟁이에서부터 궁정의 화원까지 민화를 즐겨 그렸으며, 서민에서부터 양반, 왕족까지,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조선의 백성들은 민화를 감상하면서 즐겼다. 조선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민화를 즐겼으니, 민화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인 셈이다. 그리고 외국인들도 민화의 작품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18세기 때 김준근이 우리나라 민화를 서방에 알리게 한 것으로 필두로 하여 외국의 미술 연구가들에게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치와 먹걸리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인 김치와 막걸리를 즐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외국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와 막걸리는 한국적인 음식이라고 일컫는다. 이제 우리나라 민화도 외국에서도 조금씩 인정을 받고 추세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와 색을 입힌 '한국적인' 그림인만큼 민화가 국내에 대중적으로 활발히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0-10-2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TV쇼 진품명품'인가 그 프로그램 하나 모르겠어요.
저 그거 보면서 감상하고 가격 매기고 하는 거 재밌게 봤었는데...^^

cyrus 2010-10-26 14:02   좋아요 0 | URL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 11시에 합니다.
저와 어머니가 골동품에 관심이 있어서 가끔 보곤 하거든요^^
 
무서운 그림 3 - 위험한 진실의 명화들 무서운 그림 3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형만큼 못한 아우    


재미있게 읽은 나가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이 3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라딘에서 접하였다. 생각도 못 했다. 저자의 2권 후기에는 후작을 기대하라는 일말의 힌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작가의 힌트를 못 알아차릴 수 있다)  뭐 어떠랴? 재미있게 읽은 책의 후작이 나오면 그냥 읽으면 되니깐. 이런 예상을 하지 못한 후작이 나오게 되면 속으로는 너무 기쁘다. 책에 대한 기대감을 간직한 채 며칠 전, 도서관 신간도서 서가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다. 뜻밖의 만남이라서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새벽 일하는데 시간 때울 책이 없어서 곤란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어서 내심 기뻤다. 제목도 '무서운 그림'이니 만큼 조용한 새벽에 혼자 읽으면 뭔가 재미있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다.  

슬슬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새벽 2시 쯤부터『무서운 그림 3』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3권에 소개될 무서운 그림의 목록을 쭉 훑어봤는데, 10% 정도 실망감이 들었다. 몇 몇 그림은 유명한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1, 2권을 읽으면서 헨리 퓨젤리의 <몽마>가 왜 안 나오나 싶었는데 3권에 나오니 약간은 기대감의 맥이 빠진 것은 사실이다. 초반의 실망감은 마지막 그림인 퓨젤리의 <몽마>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그림들이 그렇게 무시무시하다거나 인상 깊지 않았다. 지루한 새벽의 시간 때우기는 좋았으나 읽기 전에 가졌던 기대감만큼 미치지 못했다.   

흥행영화 한 편과 관련된 후작들이 나오게 되면 항상 전작보다 낫지 못하다는 평을 받게 되는데 책에도 그런 악평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보다.

      

 

 보면 볼수록 애매모호한 그림   

아..... 이번 3권이 생각보다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치다 보니 그렇게 인상 깊은 내용도 없고, 책 내용상 흥미있는 그림 이야기를 살짝 언급하면 안 될거 같고..... 읽고 난 뒤에는 항상 작문의 딜레마가 오는 것이 나카노 교코의 저작이다. 그래서 그림 이야기들 중에서 그렇게 인상 깊지도 않으면서도,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구태의연한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족일지도 모르지만 브뢰겔의 <이카로스의 추락>이라는 그림을 사이트에 검색하면 이 그림과 관련된 글이 게재되어 있는 블로그가 몇 개 있다. 이 그림을 찾을 때 알게 된 것인데 리뷰 표절 의혹에 대해 문제 삼을 수 있을까봐 미리 언급하려고 한다. 내용은 블로그의 내용들과 비슷한 것은 사살이지만 그렇다고 블로그 내용 전제를 복사하여 갖다 붙이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피터르 브뢰겔의 그림이라고 추정하고 있음 <이카로스의 추락>  

그림 속 범선 밑에 잘 보면 물 위에 발이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에 빠져 다리만 보이는 인물이 하늘을 날다 바다에 빠져 죽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이카로스이다.  그림 이름이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장면을 뜻하는 것 같은데 실제 그림에는 이카로스가 추락하고 있지 않다. 그림 속 주인공은 이미 바닷물에 빠져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다. 나가노 교코는 이 그림을 그냥 <이카로스의 추락>이라고 말하지만 대부분 <추락한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이라고 부르는 미술 도서도 있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후자의 제목이 그림과 더 어울리는 거 같다. 그림 속 육지에 있는 두 사람은 각자 밭을 가고, 양 치기하느라 이카로스가 강에 빠져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나마 이카로스가 추락한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흰 옷의 남자는 낚시를 하고 있는 중인데, 그 역시도 자기 코 앞에 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고 있는데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는거 같다. 그래서 그림 속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적막한 분위기도 난다. 그림 속 세 사람은 묵묵히 자기 일에 빠져 있다. 이카로스가 물에 빠지는 소리라도 들었으면 반응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됩니까?  


브뢰겔이 활동하던 16세기 네덜란드는 잦은 권력 쟁탈의 무대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 밑에 누가 반란을 일으켜 그 반란자가 새로운 왕이 되고, 왕의 반대 세력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그 반대 세력 중 한 사람이 새로운 왕이 되고..... 나라를 1년 통치하는 왕이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왕좌에 앉아 있기 위해 왕족들은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싸웠다. 그러다 보니 왕족 싸움이라는 고래 싸움 때문에 네덜란드 귀족과 민중의 새우들은 항상 등이 터지게 마련이었다. 왕이 하도 바뀌다 보니 이들도 도대체 누구 앞에서 복종해야하는지 속으로는 속을 앓고 있었다. 현 지배자에게 복종을 맹세했다가 얼마 안 가 지배자가 바뀌면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 지쳤는지 민중들은 이제 남 일 마냥 세상에 관심을 끊게 되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자신이 ‘누구누구의 지배세력을 옹호 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꺼리기도 하였다. 괜히 그 말 했다가는 또 지배가가 바뀌게 되면 모가지 날아갈 수 있으니깐.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이나 무슨 말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스스로 자기 주변에 담을 쌓고 세상사에 대해 회피하였다.
 

  

김선주 씨의 에세이집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 ‘별 일 없이 산다’라는 글이 있다. 그녀는 장기하의 얼굴들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면서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스스로 무관심하고 나름 별 일 없다는 듯이 잘 사고 있는 모습을 보이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중성을 비꼬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이유를 세상에 대한 희망이 아닌 절망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위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네덜란드 민중들도 전쟁 없이 너도 나도 잘 사는 네덜란드를 꿈 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이 너무 미약하였다. 결국,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절망적인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생활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세상의 소리들도 들리지 않는다. 정작 자신들보다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살 만하다. 절망 같은 세상 속에도 희망 한 줌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 소수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허투루 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정말 ‘별 일 없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보다 더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온 세상과 주위 사람들이 엿 같다고 해서 자신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외면하면 과연 이 세상에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김선주 씨 글의 바늘 같은 마지막 구절이 우리 스스로 세상과 담 쌓아 가두는 삶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찔리게 하고 있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됩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서운 그림 2 -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 무서운 그림 2
나카노 교코 지음, 최재혁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시무시한 그림 속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뒷담화 
 

2년 전, 경기도 파주에서 부대 배치를 받은 지 5개월 만에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실 수 있는 사회에 드디어 발을 내딛었다. 군대에서 말하는 우스갯소리로 4분 5초,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아직 신병 티를 벗지 못한 이등병은 5개월 동안 그토록 기다렸던 부대 밖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집이 있는 대구로 향하기 위해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곤 했었는데 가끔 동대구역행 KTX가 역 플랫폼에 들어 올 때까지는 2, 30분 정도 시간이 빌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서울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서점에 들러서 그 때 나온 신간도서들을 확인하였다. 5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신간도서들이 많이 나왔었다. 보이는대로 이리저리 움직인 나의 눈길은 독특한 표지와 제목이 있는 책 한 권에서 멈췄다.  


 

     그 책이 나카노 교코의『무서운 그림』1권이었다.  

 

 

제목 자체에 흥미가 있는 것도 있었지만 표지 속 그림도 미술에 관심 있었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화가의 이름은 기억은 안 났지만(조르주 라 투르의 <사기꾼>이라는 그림의 일부이다) 책 표지에 있는 힐끔히 쳐다보는 여인이 그려져 있는 그림은 본 적이 있었다. 원화는 저 여인 이외에 두 명의 남자와 함께 등장하여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라 투르의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는 직접 읽어봐야 재미있으니까.....『무서운 그림』시리즈에서 소개되는 그림 이야기들은 나름 흥미 있는 것들이 많아서 리뷰에서 언급하면 스포일러성 내용이 되고 재미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라.....  부제만 봐도 유명 그림 속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읽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터라 목차만 잠깐 봤는데 흥미진진한 그림 속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대구에 도착하면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으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때 이 책이 대출중이라서 아쉽게도 읽지 못하고 말았다. 휴가 기간이 9박 10일이었다면 이 책이 반납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을텐데..... 언제 읽게 될지 모르기에 독서를 하지 못한 것과 부대 복귀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정기 휴가 때 꼭 읽기로 하였다.  

 

결국, 1권은 9박 10일 일병 정기 휴가 기간이었던 다음 해 5월달 쯤에 읽게 되었다. 2권 역시 출간한 지 1년이 지난, 그러니까 올해 전역하고 나서 읽었다. 일병 정기 휴가 갔다 오고 나서 2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 리뷰를 읽기 전에.....

작년에 1권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읽은 지 오래 됐다보니 지금 리뷰로 쓰기는 늦은 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최근에 읽은 2권에 대해 리뷰를 쓰게 되었다. 앞에도 미리 언급했지만 사실 이 책을 리뷰로 쓰는 게 껄끄럽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내용을 리뷰에 언급하고 싶지만 자칫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 책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내가 소개한 그림의 내용은 무시무시했다는 느낌을 받기보다는 그림의 내용에 대해 깊이 사색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2권에 소개된 그림 중에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무섭게 다가오지 않은 그림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해볼까 한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해 한껏 기대감이 부풀려 있는 독자는 주저 없이 ‘뒤로 가기’를 클릭하시거나 아니면 다른 리뷰어의 글을 읽는 게 나을 것이다.  
 

 

 
한 부인, 두 초상화     

 

 

 

 


자크 루이 다비드 作
 

 

위의 그림은 프랑수아 제라르가 그린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이다. 그림 속 복장만 봐도 부유한 귀족의 부인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그림 속 모델의 레카미에 부인은 18세기 프랑스 살롱의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미녀였다. 그래서 제라르의 그림 이외에도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그 중에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그림이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자크 다비드와 제라르는 사제 관계이다. 다비드가 제라르보다 먼저 레카미에 부인의 그림을 그렸는데 부인의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미완성이 된 채 남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림 하나 그리는데 1시간 만에 뚝딱 그려지는 것도 아닌데 이보다 더 긴 시간동안 긴 의자에 저런 자세에 있었으면  모델로서는 짜증이 날 만 하다) 그러다가 부인은 다시 다비드의 제자인 제라르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게 된다. 스승인 다비드로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세는 다비드의 레카미에를 명작으로 손꼽힌다. 두 그림 속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패션 유행 
  

하지만 레카미에 부인이 다비드에게 반감을 가졌던 진짜 이유는 복장의 차이에 있었다. 다비드의 레카미에는 당시 일상적으로 입던 긴 치마의 드레스를 입었지만 제라르의 레카미에는 가슴 라인이 돋보이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자신이 사교계 최고 미녀라는 것을 알고 있던 레카미에는 그림 속에서도 자신의 미모가 돋보이길 바랬을 것이다. 이 두 그림을 대놓고 비교해봐도 제라르의 레카미에가 다비드보다 사교계의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성적 매력이 드러난다. 다비드의 레카미에는 사교계의 미녀라기보다는 그냥 수수한 여인의 느낌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레카미에만 자신의 미모를 강조하기 위해서 가슴 라인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은 것이 아니다. 그녀가 사교계를 주름 잡고 있었던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여성들도 레카미에 식의 옷을 입었던 것이다. 요즘 사회를 비유하자면 레카미에는 살롱의 패셔니스타, 패션 아이콘이었다. 귀족의 부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레카미에식 패션을 따라하기에 이르렀다.  제라르의 그림 속 복장처럼 가슴이 드러나는 것은 기본이었고 몸매 라인과 하얀 피부를 강조할 수 있게 얕은 옷감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었다. 당시 속옷이 없었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여성이 옷 한 벌 걸쳐도 속이 보였다. 이렇다보니 사교계 귀족 남정네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이 한 몸에 받음으로써 자신의 미모가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이름이 사교계에서 알려지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름다워야만 했다.  

 

문제는 프랑스 여성들의 복장은 남성의 은근한 성적 욕구 충족 해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난방 시설도 갖추지 않은 시절임에도 프랑스 여성들은 추운 겨울 날씨 속에서도 가슴이 드러나는 얕은 옷을 입고 다녔다. 이렇다 보니 여성들은 감기에 걸려 폐렴으로 악화되어 사망하게 된다. 레카미에는 당시로서는 장수한 70세 정도 살았지만 다른 여성들은 30세도 못 넘기도 추위 앞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죽음을 부르고 만 셈이다.

 

   

 

골칫거리 패션 유행, 시스루 룩 
 

레카미에식 패션이 낳은 프랑스 사회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요즘도 여성들 사이에서 속이 훤히 보이는 시스루 룩(see-through look)이 유행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 여성들처럼 어리석게도 추운 겨울에 입지는 않지만, 이 복장 역시 몸매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옷을 입어도 속이 보인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성년자인 여성 연예인이 시스루 룩 복장을 입어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아무리 연예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상 어른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가 속이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는다는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 미성년자의 여성 가수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니 방송가에서는 노출이 심한 복장을 입고 출연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을 봐서는 패션 유행의 문제점이 그낭 넘어갈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여성의 신체를 노출하는 복장이 오히려 남성 성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은 많지만 지금까지 체포된 성 범죄자들이 노출 복장을 입은 여성을 보고 범죄를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복장과 성 범죄 발생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다.    

 

레카미에의 그림을 보면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 떠올랐다. 분명 하나의 패션 유행으로 인해서 이런 문제점들이 야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무턱대고 시스루 룩을 아예 입지 말라고는 할 수가 없다. 패션 자체가 그 사람만의 외모를 강조시켜 주며 요즘과 같은 자유 국가 사회에서 1970년대 복장 검열이 도입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패션을 통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좋지만 자기중심적 생각을 벗어나 주위 시선들의 태도를 인식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패션을 추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외부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아름다움도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계 이황의 시로 긴 글을 마무리 하겠다. 

  

 

    꽃치고 열흘 가는 꽃이 없고 

   번화한 꽃일수록 열매 적은 법. 

   요즘들 화려함을 숭상하지만 

   근본이 없는데 어디다 쓸꼬. 

 

   - 퇴계 이황「꽃이 화려한들」전문, 『도산에 사는 즐거움』김대중 편역, 돌베개 -  

 

 

 

 

 

* 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haru8365?Redirect=Log&logNo=850113
http://100.naver.com/100.nhn?docid=76321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0-10-07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좋은 걸요.
형식이나 내용 뿐만 아니라,시각적으로 까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장시간 저런 표정,저런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냔 말이죠.
진짜 무서운 그림 맞는걸요~~~ㅋ~.

cyrus 2010-10-07 21:4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댓글을 보고나니깐 모델이 저런 상태에서
오래 있다는 것 자체도 무섭다는 것을 알았네요^^;;

비로그인 2010-10-2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관심있는 부분이 많아서 올리신 글 챙겨보고 있습니다. 근데 이곳에 들르시는 분들 가운데 저위의 양철님 처럼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이 몇 있으신 듯 하네요~

ㅎ.. 오늘은 좀 들렸던 흔적 남기고 가겠습니다 :)



cyrus 2010-10-22 14: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저도 어떻게 하다보니 다른 분들의 서재에 들리다보니
이렇게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취향이 비슷한 분들끼리 만나는것도 같네요ㅎㅎ
저도 바람결님 서재 자주 들릴께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