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을까?’ 1971년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쓴 글의 제목이다. 그녀는 예술이란 오로지 천재적 재능을 지닌 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탄생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환경과 교육제도 때문이다.

 

 

 

 

 

 

 

 

 

 

 

 

 

 

 

*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게릴라걸스, 마음산책 (2010년)

 

 

미국에서 고릴라 가면을 쓴 채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그룹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누드화의 85%가 여성’이라고 지적했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중 여성 미술가들이 제작한 작품은 불과 5%에 불과했다.

 

 

 

 

 

게릴라 걸스는 이를 비꼬기 위해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벌거벗어야 하는가?(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라는 문구가 있는 포스터를 내걸었다.

 

예술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미술가들은 눈부신 재능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하고, 연인이거나 라이벌격인 남성 예술가들의 그늘에 가려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여성이 직업 화가가 되는 게 사회적 분위기상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에 여성은 남성 화가들을 위한 ‘재현’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여성은 예술로 대상을 재현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세기까지 여성은 누드를 그리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 《인상주의자 연인들》 제프리 마이어스, 마음산책 (2007년)

*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제임스 H. 루빈, 마로니에북스 (2017년)

 

 

메리 커샛(Mary Cassatt)은 인상주의 화가들도 인정한 화가이다. 미국 출신인 커샛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했다. 그녀는 오랜 전통이 있는 미술교육기관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입학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수적인 아카데미 회화와 거리를 둔 커샛은 자연스럽게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렸다. 이때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으로 지내게 되는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를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자라났고, 비혼(非婚)주의자였다. 드가는 커샛의 그림 실력을 인정했고, 그녀를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에 초대했다. 드가가 커샛에게 화가들의 모임 참석을 제안했을 때 그녀는 그 순간에 “황홀경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드가는 예술에 목말라하고 있었던 커샛에게 시원한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시대는 커샛의 적극적인 성격을 곱게 바라보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그녀를 ‘남자 같은 미국인’으로 부르면서 조롱했다. 심지어 그녀의 그림을 향해 말도 안 되는 혹평을 내리기까지 했다.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커샛의 지인들이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어떤 평론가는 그림에 있는 찻잔 세트에 시비를 걸었다. 그는 찻잔 세트가 ‘형편없이 그려진 흉한 물건’이며 그림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비난했다. 아마도 이 평론가는 전시회에 ‘벌거벗은 비너스’가 그려진 그림을 볼 수 없어서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옷 입는 여성’이 차를 마시고 있는 평범한 일상을 묘사한 그림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 《여자, 그림으로 읽기》 시모나 바르톨레나 외, 예경 (2012년)

 

 

커샛과 드가는 연인이라고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친분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은 비밀스러운 연애편지 같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라고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커셋은 드가의 괴팍한 성격을 이해해주는 절친한 친구였지만, 드가의 지독한 남성우월주의는 싫어했다. 커셋은 남성 화가들이 가득한 보수적인 화단의 분위기에 여러 차례 염증을 느낀 적이 있었고, 드가의 여성 혐오를 절대로 모를 리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드가는 커셋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화폭에 담지 않았다. 그림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카셋은 직접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 거장들의 그림들을 꾸준히 모사했다. 그런데 드가는 카셋의 진짜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카셋을 전시장 내부를 유유히 구경하는 한가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렸다.

 

 

 

 

 

카드를 쥐고 있는 카셋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는 커셋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커셋이 드가가 그린 초상화에 불만을 드러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드가의 여성관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카셋이 쥐고 있는 카드는 점을 볼 때 쓰는 것이다. 그림 속 그녀는 카드 점을 보는 집시(Gypsy) 여인의 자세와 같다. 오래전부터 ‘점쟁이’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쟁이를 거짓과 사기를 일삼는 사기꾼으로 생각했고, 조르주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와 그 밖의 남성 화가들이 ‘상대방을 유혹하고 기만하는 여성’의 악덕을 묘사하기 위해 선택한 도상학적 이미지가 바로 점쟁이였다. 정말로 카셋이 드가가 그린 초상화에서 여성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도상학적 이미지를 발견했다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드가는 여성 모델을 일부러 못생기게 그리기로 악명이 높았다. 드가는 커셋을 ‘턱주가리’로 그렸다. 드가는 골상학에 심취했고, 골상학적 관점을 토대로 인물의 얼굴을 묘사했다. 골상학자들은 큰 턱을 가진 얼굴이 진화가 덜 된 범죄형 얼굴이라고 주장했다. 드가는 자신의 친구를 ‘남을 속이는 범죄자’, ‘사악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렸다. 이 그림에서 드가의 고집스러운 여성 혐오를 읽을 수 있다.

 

드가는 카셋을 ‘그림 그리는 일에 관심 많은 여성’으로 대했을 뿐이다. 그는 카셋이 ‘위대한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의 그림이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누릴 거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다. 드가가 카셋의 그림을 인정했어도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미술에 여성은 없다.’ 라는 궤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궤변은 1970년대까지 여성 미술가들의 존재를 은폐한 ‘유리 천장’이 되었다. 이 유리 천장이 완전히 부서져야 ‘여성 화가’는 ‘화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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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4-0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넌 참 글 주제를 잘 잡는 것 같아.
어디가 물어 오는 것도 잘 물어오고.ㅋ
난 이렇게 못 쓴다.ㅠ

cyrus 2017-04-04 20:52   좋아요 0 | URL
솔직히 이렇게 글을 쓰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잘 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안 봐도 되는 책을 더 보게 되니까 글 한 편 쓰는 데 적어도 1주 정도 걸려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글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질리는 스타일이에요. 나쁘게 말하면 보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글이죠. 후애님처럼 알라딘 책소개만 인용해서 글 쓰고 싶은 생각도 한 적 있었어요.

yureka01 2017-04-05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계의 종횡무진....이런글에 당선작으로 촉구합니다.

cyrus 2017-04-05 10:05   좋아요 0 | URL
당선작 선정은 독자위원회의 선택입니다. 선정작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도 그분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언급을 안해서 그렇지 선정작을 고르는 일이 쉬운 게 아닙니다. 선정되든 안 되든 구애받지 않으면서 글을 쓸 겁니다. ^^

세실 2017-04-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선작으로 한표 던집니다^^
글 한 편 쓰는데 1주일이나.....역시 내공이 느껴집니다.
전 우리나라 여성화가중 나혜석이 찡합니다.

cyrus 2017-04-06 09:47   좋아요 0 | URL
글을 열심히 썼다고 해서 당선작이 되는 건 아닙니다. ^^;;

우리나라에 나혜석 이외에 여성 화가들이 더 있을 겁니다. 갑자기 알아보고 싶어집니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 한 권으로 보는 인상주의 그림
제임스 H. 루빈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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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미술을 주제로 한 책이 새로 나왔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땐, 그저 흔한 미술책인 줄 알았다. 이 책의 절반이 내가 아는 내용으로 채워졌으면 속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확실히 이 책에는 기존에 나온 인상주의 미술 관련 서적과 차별화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책의 저자 제임스 H. 루빈(James H. Rubin)은 19세기 유럽 미술, 특히 인상주의 미술을 연구한 미술사학자이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루빈의 책이 《인상주의》(한길아트, 2001)였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2013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원제가 ‘How to read Impressionism : ways of looking’이다. 부제로 사용된 구절 ‘ways of looking’은 올해 1월에 타계한 존 버저(John Peter Berger, 국내에서는 ‘존 버거’로 알려진 유명한 작가)의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열화당, 2012)를 패러디한 것이다. 루빈은 그림을 바라보는 버저의 방식, 즉 ‘주의를 기울여 보는 방법(look)’을 빌려 인상주의 그림을 독창적으로 해석한다.

 

 

 

 

 

루빈이 주의를 기울여 본 대상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선호한 주제와 기법 들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눈에 비친 도시 풍경, 유흥 장소, 철도 교(橋), 공장 등 19세기 근대 파리의 생활상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소재들을 그렸다. 인상주의하면 보통 자연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풍경뿐 아니라 파리 근대생활의 단면을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프랑스 인상주의와 미국 인상주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메리 커샛(Mary Cassatt)은 미국에 인상주의를 전하고 특유의 사조로 잘 발전시켰던 여성 화가이다. 그녀는 주로 중상류층의 침실과 거실 같은 사적인 공간에 있는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비록 그림 1점만 소개됐지만,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 차일드 해섬(Childe Hassam)도 주목해볼 만하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인상주의 미술의 전형적인 양식뿐 아니라 화가 개개인이 가진 특징적인 화풍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루빈은 친절하게 비교 도판까지 수록하면서 독자들이 한층 깊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그림이 특이하게도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이다. 폴록은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현대적인 화가의 작품이 왜 근대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과 한자리에 배치되었는지 궁금하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인상주의 미술이 정점을 찍었던 19세기는 그야말로 ‘이미지의 시대’였다. 이때부터 이미지를 포착하는 사진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술에 매료된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진기처럼 언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많은 이미지를 묘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업실에서 나와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모습을 다양한 색채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는 『파리 거리, 비 오는 날』에서 한가롭게 산책하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전했다. 아르망 기요맹(Armand Guillaumin)은 산업화의 중심에 선 노동자들의 모습에 매료됐다. 이렇듯 우리는 인상주의 그림에서 그 시대가 낳은 눈과 마음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문명의 변화는 세상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을 또한 변화시킨다. 그 변화를 예전의 방식으로 담기 힘들다면, 미술은 새로운 방식을 탐색해 나가야 한다. 인상주의 그림에는 근대가 낳은 변화를 주의 깊게 바라본 화가들의 탐색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속에는 화가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깊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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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2 1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고 여기서 잭슨 폴락의 그림을 만나게 될줄이야..ㅎㅎㅎㅎ
이 화가의 그림이 모티브가 되어 제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아놔~
1950년대에 현대추상주의 그림이 나온다는게 참 대단한 ~~~

그럼요..예술에서 안목을 기르는 방법 역시 책에서 부터 시작이죠..
어떤 작품이든지 간에 그 작품에 대한 심안이 필요하고 왜 그림이 나오게 된
뒷배경이 항상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그 배경과 시대상과 작가의 개인의 삶이 믹스된 것이 곧 작품의 해석으로
연결되거든요..좋은 책 만났네요.안목을 길러야 할 이유..충분합니다~

cyrus 2017-03-23 17:23   좋아요 2 | URL
그림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독서가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어요. 미술과 사진 같은 분야를 이해하려면 평생 공부해야 합니다. ^^

stella.K 2017-03-2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삼. 얼마 전 모처에서 이벤트 때 응모했다 미끄덩~ㅠ
책 표지가 맘에 들더군.ㅎ

cyrus 2017-03-23 17:24   좋아요 0 | URL
혹시 서평단 이벤트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 이벤트가 있는 줄 몰랐어요. 도서관에 이 책이 있기에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봤습니다. 소장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

AgalmA 2017-03-22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리 커샛 그림 색감 정말 좋네요^^
왜 인상주의 책에 잭슨 폴록일까....
문득 외관을 지워버리고 색의 향연만 남았던 모네의 루앙 성당 연작 그림이 스쳐 갑니다. 빛의 달라짐을 홀린 듯이 따라갔던 그 멋진 작업이.
잭슨 폴록의 그림은 전체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의 색을 따라가며 그 움직임을 살필 때 이해가 더 넓어진다고 하죠. 그가 색채에 홀린듯이 따라갔던 길을 우리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느껴야 소통의 길이 넓어지겠죠.
제 인상평은 여기서 이만ㅎ

cyrus 2017-03-23 23:46   좋아요 1 | URL
Agalma님의 생각이 책 내용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인상주의를 추상표현주의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화파로 해석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님의 표현대로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는 ‘밝지 않는 새끼’이다. 그의 인생 자체에서 풍기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뭉크는 자신의 일기나 편지 등을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냈다. 그는 내심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주길 바랐다. 자신이 그리는 그림들은 자신 영혼의 일기라고 말했으니 우리는 뭉크의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숨겨진 화가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하게 하려면 뭉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야 하며, 그에게 영향을 미친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 롤프 스테너센 《에드바르드 뭉크》 (눈빛, 2003년)

 

 

 

롤프 스테너센(Rolf Stenersen)은 뭉크와 가장 가까이 지냈으며 그의 집안일로부터 전시회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거들어 준 뭉크의 친구였다. 그는 그림을 수집하는 증권 중개인이었다. 그가 수집한 뭉크의 작품들은 현재 그의 이름을 딴 스테너센 박물관(Stenersen Museum)에 전시되었다.

 

 

 

 

《에드바르드 뭉크》는 뭉크의 사적인 일화와 그의 다양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롤프 스테너센은 뭉크가 어떻게 우울한 감정을 형성하게 됐는지, 왜 그가 죽음을 주제로 한 그림 제작에 파고들게 됐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그의 증언과 뭉크의 성격 및 그림을 분석한 의견은 후대의 뭉크 연구자나 뭉크 평전을 쓰는 작가들이 참고하고 있다.

 

 

 

 

 

 

 

 

 

 

 

 

 

 

 

 

 

* 수 프리도 《에드바르드 뭉크》 (을유문화사, 2008년)

* 스테판 크베넬란 《뭉크》 (미메시스, 2014년)

 

 

 

수 프리도의 《에드바르드 뭉크》는 뭉크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아주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뭉크 관련 도서 중에 자료가 풍부한 편이다. 스테판 크베넬란의 그래픽 노블 《뭉크》는 ‘만화로 만든 평전’인데, ‘만화’라고 가볍게 보면 오산이다. 일단 크베넬란의 책이 불친절하다. 이 만화를 만든 저자는 뭉크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주관적으로 썼다고 밝혔다. 그만큼 크베넬란의 책은 일반적인 뭉크 평전에서 볼 수 있는 연대기적 서술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뭉크 관련 서적 몇 권 참고한 뒤에 그래픽 노블을 본다면 조금 복잡한 뭉크와 주변 인물 간의 관계를 빨리 파악할 수 있다.

 

뭉크의 생애 중에 주목해 볼 내용이 두 가지가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뭉크와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의 우정, 그리고 뭉크와 다그니 유엘(Dagny Juell)과의 관계이다.

 

 

 

 

 

뭉크는 노르웨이, 스트린드베리는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이 두 사람은 북유럽 특유의 차가우면서도 음습한 기운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했던가. 뭉크와 스트린드베리는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이 예민했으며 시시때때로 우울 증세에 시달렸다. 특히 스트린드베리는 우울 증세가 너무 심각한 나머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조현병을 앓았다. 뭉크와 스트린드베리는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보헤미안(Bohemian)이었다.

 

뭉크는 독일 유학 시절에 보헤미안들과 어울렸다. 보헤미안 그룹 일원들은 다그니 유엘을 ‘아스파시아(Aspasia)’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아스파시아는 원래 아테네의 매춘부였으나 소크라테스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똑똑한 지성을 가졌다. 그녀는 장군 페리클레스(Pericles)의 애인이 되어 사교계의 여왕으로 이름을 알렸다. 보헤미안 남성들은 다그니 유엘을 ‘아스파시아의 재림’으로 본 것이다. 그녀는 자유연애를 추구했고, 뭉크와 스트린드베리를 포함한 여러 남자와 어울려 다녔다.

 

 

 

 

 

현재까지 뭉크와 다그니 유엘이 실제로 연인 관계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뭉크가 다그니 유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다그니 유엘은 뭉크를 위해 그림 모델이 되어주었다. 수 프라도는 뭉크와 다그니 유엘의 연인 설을 추정하는 근거로 뭉크와 자화상과 뭉크가 그린 다그니 유엘의 초상화를 제시한다. 그녀는 이 두 그림이 결혼하는 남녀의 모습이 연상되는 ‘결혼 초상화’라고 주장한다.

 

 

 

 

 

 

 

다그니 유엘은 폴란드 출신의 시인 스타니스라프 프시비셰브스키(애칭 ‘스타추’)[1]와 결혼했다. 다그니 유엘을 자신의 연인처럼 대했던 뭉크와 스트린드베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특히나 스트린드베리는 다그니 유엘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에 휩싸여 그녀를 악의적으로 비난했다. 스트린드베리가 경멸에 찬 어조로 다그니 유엘을 비난하는 대목이 스테판 크베넬란의 그래픽 노블 《뭉크》에 나와 있다. 수 프라도는 다그니 유엘을 평가한 스트린드베리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는다. 스트린드베리의 증언은 여성혐오로 가득했고, 지나치게 과장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스트린드베리는 사소한 것에 화를 잘 냈다. 뭉크가 판화 형식으로 친구의 초상화를 제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스트린드베리는 뭉크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뭉크는 스트린드베리의 이름을 잘못 썼고, 그림 액자에 벌거벗은 여인이 그려 넣었다. 스트린드베리는 뭉크의 그림을 보자마자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

 

 

 

 

 

 

이성을 잃은 스트린드베리는 뭉크를 죽일 심정으로 자신의 품속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림 한 점 때문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온 것이다. 만약 스트린드베리가 그 자리에 뭉크를 총으로 쐈으면 이 두 사람의 우정은 반 고흐(V. van gogh)와 폴 고갱(Paul Gauguin)이 크게 다툰 일화 다음으로 자주 회자하였을 것이다. 고갱 때문에 한쪽 귀를 잘라버린 반 고흐의 과격한 행동이 강렬해서 뭉크와 스트린드베리의 위험천만한 우정이 묻힌 감이 있다. 스트린드베리는 뭉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자기파괴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스트린드베리의 과대망상증은 심각했다. 뭉크가 자신의 방에 몰래 설치해둔 독가스 배관으로 자신을 죽일 거라고 믿었다.

 

뭉크는 스트린드베리 그리고 다그니 유엘보다 오래 살았다. 스트린드베리는 정신이 피폐해지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다그니 유엘은 자신에게 질투심을 느낀 남자의 손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스트린드베리와 다그니 유엘은 뭉크의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다. 뭉크는 다그니 유엘을 향해 악담을 퍼붓는 스트린드베리를 지켜보면서 질투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감정을 묘사했다. 불타오르는 감정에 지배당해 몸과 정신이 말라 비틀어져 가는 친구의 모습에서 여성에 대한 공포심의 위험성을 느꼈다. 뭉크는 그 공포심이 인간이 죽음을 맞이할 때 느끼는 감정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여성을 묘사한 뭉크의 그림에는 여성 공포증이 녹아들어 있다. 여성을 바라보는 뭉크의 감정이 스트린드베리의 여성혐오와 관련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여성을 끊임없이 질투하고, 남성이 경계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뭉크의 반응은 스트린드베리의 감정 형태와 유사하다. 뭉크에게 스트린드베리는 단순한 예술인 친구가 아닌, 자신의 성격과 감정이 내포된 영혼을 솔직하게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뭉크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연약한 스웨덴산 거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을 해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조심스럽게 다룰 줄 알았다.

 

 

 

 

[1] 스테판 크베넬란의 《뭉크》(미메시스, 2014)에서는 프시비셰비스키의 애칭을 ‘스타쿠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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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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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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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6: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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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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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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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1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들 중에는 정신이 평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죠..
예술은 정상의 파괴에서 창조하나 봐요...
그 대상이 자신이건 타자이건 투사되었나 싶어요.....
ㅎㅎ 여자 조심..해야죠..(여자는 남자도 조심)

cyrus 2017-03-14 17:48   좋아요 1 | URL
매우 볼썽사나운 예술가들은 공통으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생각을 예술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합니다. 정말 최악의 인간들입니다.

레삭매냐 2017-03-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픽노블 <뭉크> 읽기는 했는데 거 리뷰를
쓰지 못했네요. 아무리 허접해도 리뷰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말이죠.

아마 당대 문화나 캐릭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cyrus 2017-03-15 17:21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그래픽 노블로 시작했다가 큰 코 다쳤습니다. 만화라고 가볍게 봤었어요. 결국은 분량이 많은 뭉크 평전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나니까 그래픽 노블 읽기가 수월했어요. ^^;;
 

 

 

 

 

 

밀레(Jean-Francois Millet)의 『만종』 같은 그림을 보면 경건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밀레는 밭에서 하루 일을 끝낸 부부가 종소리를 들으며 하느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멀리 보이는 교회에서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실제의 종소리야 바로 그쳤겠지만 ‘그림’에 담은 종소리는 1세기가 넘도록 울려 퍼지고 있다.

 

 

 

 

 

 

 

 

 

 

 

 

 

 

 

* 드림프로젝트 《세계 명화의 수수께끼》 (비채, 2006)

 

 

그런데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형언할 수 없는(Unnamable)’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만종』이 노동의 경건함과 일상의 평화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슬픔을 간직한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원래 밀레는 『만종』을 부부가 아사한 어린 자식을 땅에 묻는 장면을 그리려고 했다. 달리의 주장이 사실로 판명되면 기도하는 부부는 실은 죽은 아기의 명복을 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밀레는 이 장면이 너무 암울하다고 판단하여 죽은 아기가 있는 관을 감자 바구니로 덧칠하여 그렸다.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달리는 『만종』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을 제작했다.

 

 

 

 

 

『만종』을 소장한 루브르 박물관은 달리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외선 투시 작업을 진행했다. 감자 바구니가 있는 자리에 조그만 나무상자가 그려진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소식이 전 세계로 전해지자 사람들은 달리의 투시력(?)을 재평가했다. 달리의 해석을 신뢰한 사람들은 『만종』이 원래 죽은 아기를 위해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고 믿게 됐고, 『만종』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필수적인 정설이 되었다.

 

여전히 논란이 있는 달리의 『만종』 해석이 예술 상식으로 소개되는 상황이 난감하다. 예술에 생소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흥미로워 한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예술 이야기를 접하면 어렵다고 생각한 예술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밀레의 그림을 연구한 학자들은 달리의 해석이 억측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사실 의문의 나무상자가 달리의 말대로 관인지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만종』의 관 이야기는 그림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던 달리의 주관적인 해석에 가깝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심리’는 가짜 지식을 유통하는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준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때문에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만종』에 진짜로 죽은 아기의 관이 그려져 있다고 믿는다.

 

 

 

 

 

 

 

 

 

 

 

 

 

 

 

* 살바도르 달리 《달리, 나는 천재다!》 (다빈치, 2004)

*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 : 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이마고, 2002)

* 살바도르 달리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 (이마고, 2012)

 

 

달리는 일생에 걸쳐 확증편향에 가까운 기행과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과시욕을 보여줬다. 그는 마치 돈키호테(Don Quixote)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둘러싼 세상과 주변 사람들까지 변형해서 봤다. 그런 자신의 시선을 반영한 그림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생뚱맞고 난해하게 느껴진다. 달리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달리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달리가 직접 쓴 글은 달리의 과대망상 세계관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헌이다. 《달리, 나는 천재다!》는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일기 형식에 가깝다. 달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천재가 쓴 유일한 일기’라고 밝혔다.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는 달리가 37살에 집필한 자서전이다. 달리는 스스로 ‘세계의 배꼽’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오만방자한 발언들을 했다. 괴팍한 성격답게 달리의 문장은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내용은 의식의 흐름 기법이 연상되며 이게 과연 어디서부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게다가 앞에 언급했던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위배하기까지 한다.

 

 

일곱 살부터 여덟 살까지 나는 꿈과 신화의 지배 속에서 살았다. 나중에 가서는 현실과 상상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나의 기억은 진짜와 가짜를 뒤섞어서, 너무나 부조리한 몇몇 사건들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한 다음에라야만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나의 어떤 추억거리가 러시아에서 벌어졌다고 할 때, 나는 어렵지 않게 그 추억을 가짜로 분류할 수 있다. 한 번도 그 나라에 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1]

 

 

이 문장은 달리의 머릿속 또는 환각과 몽상으로 이루어진 달리의 그림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기본 열쇠이다. 달리의 그림은 상상과 현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얼핏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달리는 자신의 그림들이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하여 제작한 것처럼 설명했다.

 

 

 

 

 

 

 

 

 

 

 

 

 

 

 

 

 

 

 

 

 

 

 

 

 

 

 

 

* 로버트 래드퍼드 《달리》 (한길아트, 2001)

* 자비에르 질 네레 《살바도르 달리》 (마로니에북스, 2005)

* 장 루이 가유맹 《달리 : 위대한 초현실주의자》 (시공사, 2006)

* 돈 애즈 《살바도르 달리》 (시공아트, 2014)

* 캐서린 잉그램, 앤드류 레이 《This is Dali》 (어젠다, 2014)

 

 

달리는 자신이 지향하는 초현실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편집증적 비평 방법’이라고 명명했다. 편집증적 비평 방법은 현실 세계의 대상(사람, 사물)을 환각 또는 상상력을 동원해 또 다른 대상으로 변형하여 해석한다.

 

 

 

 

 

 

 

 

 

달리는 ‘편집증적 비평 방법’으로 『만종』을 새롭게 봤고, 재해석했다. 그는 그 그림 속에 무의식적 욕망이 반영된 서사가 있길 원했고, 그가 확인한 것이 바로 ‘죽은 아기의 관’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달리는 농부를 어머니에게 정욕을 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지배한 아들로, 농부의 모자를 발기의 상징으로 봤다. 건초 마차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상으로 해석했다. 어린 시절 달리는 죽은 형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못마땅했고, 그런 어머니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무의식 속에 품은 공포와 절망감을 『만종』에 투영해서 바라본 것이다. 그가 천재 특유의 투시력이 있어서 그림에 가려진 나무상자를 알아챈 것이 절대로 아니다.

 

 

 

 

 

 

사실 ‘편집증적 비평 방법’은 달리가 아포페니아(Apophenia)와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를 거창하게 보여주는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아포페니아와 파레이돌리아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현상들에서 연관성을 찾는 착시의 심리 상태이다. 이 두 가지 착시에 빠지면, 보름달을 보다가 떡방아 찧는 토끼 한 쌍을 발견하기도 하고, 화성 표면을 찍은 사진에서 외계 생명체로 추정하는 얼굴 형태를 찾는다. 『만종』의 감자 바구니를 죽은 아기의 관으로 본 달리의 시선 역시 아포페니아와 파레이돌리아 현상과 관련 있다. 회의주의자 입장에서는 객관성과 거리가 먼 달리의 ‘편집증적 비평 방법’이 우습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달리의 예술을 옹호한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아포페니아와 파레이돌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떤 질서, 특히 사람 얼굴과 닮은 형상을 보려고 한다. 달리를 포함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그런 인식의 한계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이용했다. 며칠 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다. 인간은 상상할 자유가 있다.

 

 

 

 

[추신] 글의 제목은 말콤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에 착안해 정해졌다.

 

[1] 살바도르 달리 《달리, 나는 천재다!》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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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08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착각이 심하면 두가지 경향의 극단으로 치닫죠.
미쳤거나, 천재거나..^^..
다행히 예술로 미친거라서 작품의 망상적 해석이
예술로 발현된듯 하네요..

cyrus 2017-03-08 18:50   좋아요 0 | URL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수준 미달 정도가 아니면 예술에서 망상 허용은 인정합니다. ^^

갱지 2017-03-08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듣죠. 소통으로 균형을 잡아가는 이와 단절시키고 스스로만 공고해져가는 이가 있을 뿐. 달리는 후자의 끝 쪽이었던 듯해요, 재밌는 글 잘 읽고갑니다-.

cyrus 2017-03-08 18:5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달리의 삶을 살펴보면 자기 주관이 너무 뚜렷하고, 고집스럽고, 자신의 아내에만 의지하는 성향이 있어요. 그가 아내를 만나지 못하면 자신만만하게 살아가지 못했을 겁니다.
 
그림에 나를 담다 - 한국의 자화상 읽기
이광표 지음 / 현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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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은 회화적 기량과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장르다.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다른 장르와 달리 자의식에 대한 고통스러운 성찰을 화가에게 추가로 요구한다. 얼굴엔 일생동안 찍어낸 한 사람의 발자국, 욕망과 좌절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얼굴을 표현한 자화상엔 화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게 자화상의 매력이다.

 

   

                        

 

그러나 한국 미술에 있어서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회화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결코 많은 화가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았다. 18~19세기에 제작된 일부 화가들의 자화상이 남아있지만, 서양화의 전통이 투영된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910년대다. 고희동(1886~1965)이 동경미술학교에 건너가 서양미술을 공부함으로써 한국의 근대미술은 막을 올린다. 서양화를 배운 동경 유학생들의 졸업 작품에 자화상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이종우(1899~1981), 나혜석(1896~1948) 등이 구미 각국에서 미술수업을 하고 돌아오면서 자화상 제작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림에 나를 담다의 부제는 한국의 자화상 읽기. 이 책의 저자는 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자화상 작품을 한데 모아 분석했다. 시대와 양식, 기법을 넘어서서 자화상이라는 독특한 주제에 대한 화가들의 다양한 이해와 접근방식을 살펴볼 수 있고 나아가 비교까지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강세황(1713~1791),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은 역대 조선 회화사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자화상이 자의식을 강렬히 드러낸 이례적인 작품으로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조선 시대의 인물화는 별다른 배경을 두지 않았고, 실제 인물 이상의 회화적 효과나 과장을 추구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 활동한 화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고, 과장된 모습으로 표현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반적 흐름을 벗어난 윤두서의 자화상이 파격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이 압권인 이 자화상은 목과 상체는 물론 귀도 없이 머리만 그려져 있다. 윤두서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의 저자인 오주석 씨가 상체 윤곽이 보이는 윤두서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원래 자화상에 있던 윤두서의 상체 그림이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견해를 밝혔다. 여기에 미술사학자 이태호 씨가 오주석 씨의 견해에 반박했다.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자화상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관점을 빌려 자화상의 의미를 재고한다. 앞서 말했듯이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고스란히 담은 그림이라고 했다. 관람객과 미술사학자들은 자화상을 바라볼 때 캔버스 속 화가의 얼굴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리쾨르는 자화상을 그린 사람(화가)’자화상에 그려진 사람(화가의 모습)’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 리쾨르의 질문은 일반적인 자화상 감상법을 거부한다. 과연 그 얼굴이 정말 화가의 진짜 얼굴일까, 또 그 속에 화가의 삶이 묻어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그림에 나를 담다의 핵심 주제이다.

 

 

            

 

저자는 자화상에 그려진 배경과 소품을 주목했다. 자화상의 진짜 의미는 붓으로 재현한 화가의 얼굴뿐만 아니라 화가를 둘러싼 배경과 소품에도 숨어 있다. 그것은 화가만의 자의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상징물(attribute)이다. 1910~1920년대 자화상이 인물 표현 위주로 그려졌다면, 1930년대 이후부터 배경과 소품이 등장하는 자화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배경과 소품을 적절히 배치해 개인적 서사(화가의 자의식)뿐만 아니라 시대적 서사(조선의 근대화, 일제 강점기, 분단 상황)까지 담아냈다. 동경 유학생 출신 화가들은 조선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는가 하면, 이쾌대(1913~1965)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통해 전통과 근대에 혼재된 해방 이후 격변기의 상황과 그 속에 살아가면서 느꼈던 개인적 고뇌까지 표출했다.

 

인간의 의식은 자기의 발견에서부터 출발하면서 자아가 확립되고, 더 나아가 자기로부터의 세상으로 의식이 확대되어 간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친 화가의 자화상과 피상적인 이해만으로 자의식을 인식한 화가의 자화상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화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세상을 통해 자화상을 그리는 법을 배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붓 한 자루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고도 굉장한 일이다. 훌륭한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창이 아니다. 그 자화상에는 ‘세상을 이해한 화가의 눈이 살아있다. 관람객은 자화상에 화가의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 눈 속에 화가가 담으려는 시대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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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2-21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끊임없는 독서와 글쓰기,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
글 넘 좋습니다.

cyrus 2017-02-22 08:30   좋아요 0 | URL
최근에 나온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보면서 정말 부지런히 책 읽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제 글을 보는 사람들이 질릴 정도로 쓸 겁니다.

캐모마일 2017-02-22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인 현암사에서 또 귀중한 책이 나왔네요. 윤두서 자화상은 워낙 유명해서 낯익습니다. 눈이 부리부리한데다 상체가 없어서 마치 삼국지 관운장의 수급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오싹했는데 상체와 관련된 논쟁이 있었군요.

훌륭한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창’이 아니다. 그 자화상에는 ‘세상을 이해한 화가의 눈빛’이 살아있다. 관람객은 자화상에 화가의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 눈 속에 화가가 담으려는 시대상이 보인다.

자화상 속에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어요...좋은 서평 읽고 갑니다.^^

cyrus 2017-02-22 08:32   좋아요 1 | URL
책의 주제가 좋은데도 독자서평 한 편 없어서 의외였습니다. 아쉽게 묻혀버린 책입니다.

yureka01 2017-02-22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사이러스님의 독서넓이는 전방위적이라능..ㅎㅎㅎ

cyrus 2017-02-22 09:04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의 말씀을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면, 깊이가 없습니다. ㅎㅎㅎ

관심가는대로 책을 마구 읽게 되니까 정작 읽어야 할 책들은 못 읽습니다. ^^;;

목나무 2017-02-2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쾌대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는데요 저 자화상을 보니 예전에 갔던 이쾌대 전이 생각나네요.
그때 팜플렛에 사용한 그림이 바로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었거든요.
덕분에 이 책에 관심이 듬뿍 갑니다. ^^

cyrus 2017-02-22 12:58   좋아요 0 | URL
이쾌대를 좋아하는 분을 만나기 어려워요. 그가 대구 출신의 화가인데도 그를 모르는 대구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