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공감 - 우리가 나누지 못한 빨간 날 이야기
김보람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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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게 생리는 아주 낯설다. 남성들은 생리를 그 날’, ‘마술 등으로 부르며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한다. 어느 남성 종교인은 기저귀 찬 여자는 교회 강단에 설 수가 없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의 삶에서 생리는 천덕꾸러기다.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는 여성에게 너 오늘 그 날이지?’라며 놀리듯 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생리 중인 여성이 앉았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성하지 못하거나, 불결하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심지어 여성 자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우가 있다. 건강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생리를 한다. 그런데 생리는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것, 추한 것으로 치부된다. 소녀들은 생리대를 사러 간 가게에서 남들이 볼세라 조심스레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나오기도 한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생리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해봤을 것이다.

 

 

 

 

 

 

여성의 몸과 생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2018)를 연출한 김보람 감독생리는 불결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신체 현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생리할 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생리하는 내 몸을 자랑스러워하자는 게 <피의 연대기> 제작의 취지이다. 김보람 감독은 자신의 책 생리 공감에 자신을 여성으로 받아들이게 된 생리 경험아무렇지도 않게얘기를 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몸에 집중하게 되며 스스로 몸과의 관계 맺기를 배워 가는 소중한 기회를 얻는다. 생리 공감은 고대부터 숨겨져 온 비밀스러운 빨간 날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저자는 피 흘리는 존재로 살아간 피 자매를 음지에서 해방해주려고 한다.

 

생리 공감을 읽지 않았더라면 1년에 여성이 흘리는 피의 양이 500밀리리터 콜라 한 병정도이며, 평생 흘리는 피의 양이 우리 몸 전체 혈액의 3배 정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피임약은 여성 해방을 촉진한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여성해방을 이룩한 것은 피임약이 아니라 생리대와 탐폰이다. 일회용 생리대와 탐폰의 등장은 피임약만큼이나 여성에게는 해방그 자체였다. 생리대는 여성의 활동성을 높여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남성들은 생리대를 여자들만 차는 기저귀정도로 생각한다. 그깟 생리대나 탐폰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성의 생리를 생각해보면 생리대의 위력을 깨닫게 된다.

 

여성들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지만, 그것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의외로 적다. 정확한 원료와 제조법 등은 대기업들의 제조 비밀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모두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했다. 그러나 일회용 생리대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시중에 판매된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과 피부 자극을 유발하는 성분들이 검출되었다. 생리대 기업의 광고는 표백된 하얀색을 여성의 순결, 즉 깨끗함과 연결하면서 위험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대량생산되는 생리대를 통해 큰 이윤을 얻는 남성 중심의 경제 체제가 여성의 몸을 관리하고 있고, 여성의 건강을 위협한다.

 

이제 피 자매들은 일회용 생리대의 편리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생리대를 착용하고 싶어 한다. 몸이 원하는 생리대를 착용하는 것은 여성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생리 공감은 가르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여성 독자 스스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난 지금까지 어떻게 생리를 하면서 살아왔지?’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남성 독자는 생리 공감을 읽으면서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생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면 생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무지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생리의 소중함과 생리대의 위험성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것은 월경은 더럽고 창피하며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압력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이다.

 

생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즐길 수 있는 첫걸음이다. 여전히 생리를 폄하하는 몇몇 남성들이 있다. 그들은 무상 생리대 보급과 생리 휴가를 여성을 위한 특혜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논리대로 생리가 여성의 특혜라면 왜 생리를 불결한 것으로 취급하고 생리하는 여성을 무시하는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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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3-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페미니스트 되는 소리가 서울까지 들립니다. 멋쟁이.

cyrus 2018-03-13 17:24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을 회사라고 하면, 전 신입 사원이에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멤버들이 저보고 ‘인턴’이라고 하더군요. 아직 모르는 게 많고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대구에 오시면 저한테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매주 월요일에 독서모임이 있어요. 그 날에 맞춰 syo님을 특별손님 자격으로 모임에 초대하겠습니다. ^^

syo 2018-03-13 17:31   좋아요 0 | URL
ㅎㄷㄷ.... 무섭다...

2018-03-13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3 17:27   좋아요 0 | URL
어떤 사람은 생리를 남성의 몽정과 동등하게 보더군요. 남성의 몽정은 성적 쾌감이 느껴야 나오는 신체 현상이죠. 몽정을 생리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건 무식한 소리입니다. 이렇듯 생리를 잘 모르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stella.K 2018-03-1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여기에 더 자세히 썼구나.ㅋ
블로그에라도 여성의 생리와 미투에 대해서 시끄러울 정도로
얘기를 더 많이 해야하는데...
여긴 너무 점잖은 것 같아.ㅠ

cyrus 2018-03-14 12:17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과 여성 문제를 이해하는 것,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페미니즘과 여성 문제를 이해하는 것. 두 가지 상황을 비교하면 차이점이 많아요. 독서모임에 참석하거나 페미니즘 관련 강연을 들어보면 책에 나오는 페미니즘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페미니즘과 여성 운동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진행되려면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봐야 해요. 알라딘 같은 온라인 공간은 논의가 진행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아니에요. 한 번 토의가 시작되면 ‘진흙탕’으로 변하지요.. ㅎㅎㅎ

2018-03-14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4 12:19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인용하셔도 됩니다. ^^
 

 

 

 

 

 

 

 

우리나라 성 소수자들은 성폭력에 무방비 상태입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 정체성이 공개되기(아우팅, Outing)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아우팅으로 인해 성폭력을 당해도 사건을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가해자는 이 점을 악용해 똑같은 범행을 반복해서 저지릅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형법 제297를 살펴볼까요? 형법 제297조에 강간죄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297(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본래 강간죄는 부녀(婦女)’를 강간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였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법 개정을 통해 사람으로 바뀜으로써 남성, 여성 그리고 성 전환자에 대해서도 강간죄가 성립됩니다. 성 전환자도 사람이며 성희롱 및 성폭행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 성폭행당한 트랜스 여성(Trans Woman)을 피해자로 보지 않는 사회적 편견이 남아 있습니다.

 

 

 

 

 

 

 

 

 

 

 

 

 

 

 

 

 

* 쉴라 제프리스 래디컬 페미니즘(열다북스, 2018)

    

 

 

트랜스 여성이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에 동참하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스트(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TERF)들이 반발하고 나섭니다. TERF는 여성성을 수행하려는 트랜스 여성이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이를 근거로 페미니즘 운동에 트랜스 여성이 포함되어서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폭행당한 트랜스 여성은 미투 운동에 나설 수 없는 것일까요?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혼자 고통받아왔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요.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여성 장애인이 성폭행 피해자라면 그녀들이 미투 운동에 나설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 비장애인은 그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장애여성이라는 두 겹의 차별구조 속에 놓여있는 여성 장애인은 인권을 위한 법 · 제도화 과정에서 소외돼 있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인지능력이 낮거나 저항하기 어려운 정신지체나 중증장애를 가진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성범죄는 비장애인 성폭력 가해자에 의해 은폐되기 쉽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자원봉사자에 의해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조차 못 하는 여성 장애인들의 피해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 [읽을 예정인 책]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 애너매리 야고스 퀴어 이론 : 입문(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2)

* 김미덕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현실문화, 2016)

 

 

 

최근에 저는 퀴어 이론(Queer theory)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에 관심이 많습니다. 퀴어 이론과 교차성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성별 이분법이 작동되는 이성애 중심의 사회,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에 향해 좀 더 많은 의문을 던지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싶어서 어제 대구 녹색당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한 토크 콘서트에 참석했습니다. 토크 콘서트 제목은 차별에 맞서는 퀴어의 정치입니다.

 

 

 

 

 

 

 

 

 

 

 

 

 

 

 

 

 

* [품절] 녹색당 선언(이매진, 2012)

 

 

 

저는 어느 정당에 가입되지 않은 비당원입니다. 하지만 녹색당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현재 녹색당원으로 활동하는 감은빛님2011년에 알게 된 계기로 이듬해에 창당된 녹색당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창당 시기에 맞춰 서른 명 이상의 녹색당원들의 글들을 모은 녹색당 선언(이매진, 2012)에 출간되었고요, 저는 그 책을 읽고 나서 녹색당을 지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재 녹색당은 원외정당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환경 정치 중심의 정당이 있어야 합니다. 녹색당은 환경 운동뿐만 아니라 여성 운동, 성 소수자 운동도 이끌고 있습니다. 녹색당 평등문화 약속문은 녹색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의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강령입니다.

 

 

 

 

 

 

녹색당 평등문화 약속문

 

1. 우리 모두는 녹색당의 주체이며,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장애여부,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혼인여부, 가족관계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다.

 

2. 녹색당 당원은 서로를 존중하며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

 

3. 당내 평등문화를 훼손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공동으로 대처한다.

 

4. 당 활동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경어를 사용하고, 상호 동의 없이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5.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등에 관한 고정관념이 담긴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6. 상대방이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은 하지 않는다.

 

7. 외모와 관련된 발언을 주의한다.

 

8.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은 하지 않으며, 혐오 발언에 대해서 항의한다.

 

9. 연애와 결혼은 필수가 아님을 유의한다.

 

10. 평등문화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거부의사가 있었을 시에 즉각 중단한다.

 

11. 녹색당의 당내 행사의 주관자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경고하고 제지한다.

 

12. 녹색당의 당내 행사의 주관자는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도록 노력한다.

    

 

 

 

토크 콘서트 1부는 차별금지법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이었습니다. 1부 강연자는 대구 퀴어문화 축제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이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배진교 님이었습니다. 배진교 님은 차별금지법이 왜 제정돼야 하는지를 역설하면서, 성 소수자를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법과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배진교 님은 차이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존중되어야 할 사람에게 있는 고유한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배경에는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성 소수자 혐오와 잘못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은 성 소수자가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한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성 소수자를 위한 특혜가 절대로 아닙니다.

 

 

 

 

 

 

2부 토크 쇼는 대구 물레책방을 운영하는 장우석 님이 진행했습니다. 토크 쇼에 초청된 김기홍 님은 제주 퀴어문화 축제 조직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제 토크 쇼를 위해 당일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대구로 오셨습니다.

 

 

 

 

 

 

김기홍님은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에 참가했는데요, 경선 결과 고은영 님이 선출됐습니다. 경선 결과에 따라 김기홍 님은 녹색당 제주도의원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 2으로 배정되었습니다.

 

 

 

 

 

 

 

 

 

 

 

 

 

 

 

 

 

 

 

*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바다출판사, 2015)

 

 

 

김기홍 님은 넌 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입니다. 넌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젠더를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법적 성별을 거부하는 거죠. MTF트랜스젠더 여성운동가인 케이트 본스타인(Kate Bornstein)남성, 여성 어디에 속하지 않는 유동적인 성 정체성을 지향합니다. 그녀의 성 정체성은 넌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와 비슷합니다. 김기홍 님은 퀴어, 즉 성 소수자가 정치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열 가지 넘게 설명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존중권입니다. 앞서서 배진교 님도 언급했듯이 김기홍 님은 성 소수자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성 소수자가 존중받지 못하면 그들은 영원히 사회로부터 차별받게 되고,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합니다. 성 소수자는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보건의료권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트랜스 여성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찾아가 호르몬 주사를 투여받습니다. 그러나 트랜스 여성은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르몬 주사를 투여받게 되면 18,000원에서 20,000원 정도의 비용을 내야 합니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

*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지승호 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시대의창, 2017)

 

 

 

토크 콘서트가 끝나고 난 뒤에 녹색당원들과 함께 식당에서 반주를 마셨습니다. 저는 배진교 님, 김기홍 님, 그리고 성 소수자 소모임을 운영하는 청년 녹색당원과 합석하게 됐습니다. 평소 퀴어와 성 소수자 운동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이 세 분에게 질문할 수 있었고, 책에서 볼 수 없는 퀴어와 성 소수자 실태를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기홍 님은 여성의 출산과 양육을 강요하는 보수 기독교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인공 생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파이어스톤은 임신을 여성의 신체를 변형하게 만드는 야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성애, 혈연 중심의 기독교는 가족 제도가 무의미해지는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그 변화로 인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질까 봐 염려하게 되고, 동성애자를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적대 세력으로 규정합니다. 보수적인 기독교는 여성 운동도 반대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는 기독교계 종합대학입니다. 그런데 한동대학교는 페미니즘 강연을 준비한 학생에게 무기정학이라는 가혹한 징계를 내렸습니다. 그 학교는 동성애,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공개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급진적 페미니즘과 퀴어 페미니즘은 ()’하는 게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TERF의 거센 반발이 만만치 않지만, 저는 급진적 페미니즘과 퀴어 페미니즘의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은 급진적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평가받지만, 그 책 속에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성적 계급 철폐), 교차성 페미니즘(흑인 여성 차별 문제), 퀴어 페미니즘(젠더 이분법 철폐, 성적 자유 지향)이 추구하는 내용이 다 나와 있습니다. TERF와 성 소수자 간의 극단적인 대립 구도는 여성 운동, 성 소수자 운동 발전에 하등 도움 되지 않습니다. 한동대학교처럼 시대를 역행하는 거대 단체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들이 끝내 버리지 못한 편협한 논리에 맞서려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공부해야 합니다.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같이 공부하는 것, 그것은 '모두를 위한 공부'입니다. 여성과 성 소수자들이 모여 손을 맞잡도록 하는 기초적인 연대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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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3-07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페니미즘을 꼭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8-03-07 21:32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인습, 편견,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생긴 언어와 사소한 행동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sprenown 2018-03-07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가봐요.언어습관이나 인습적사고..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을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내면화된 성차별의식‘을 자각하는게 공부의 시작인가 봅니다. 반성할 일이 많네요!

cyrus 2018-03-07 22:06   좋아요 1 | URL
내면에 남아있는 성차별, 편견을 완전히 떨쳐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페미니즘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

sprenown 2018-03-07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이 단순한게 아니네요. 가부장제,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

cyrus 2018-03-07 22:15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이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진 학문이었다면 절대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sprenown 2018-03-07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관련책뿐만아니라 관련강의도 들으면서 공부해봐야겠어요.
 
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 - 두려움에서 걸어나온 동성애자 이야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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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지 않고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과는 조금 달라서, 혹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어서 같은 사회 구성원이면서도 수많은 편견과 혐오에 부딪힌다. 성 소수자들은 ‘최소한의 도덕’인 법적 장치를 통해 기본적인 인권이라도 보장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서 많이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신이상으로 생각하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해로운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본인이 동성애자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아우팅(outing, 아웃팅)’이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어렵사리 마련한 직장에서 쫓겨나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한다. 개인적인 능력이 무시당하고 그 순간부터 동성애자는 ‘역겨운 호모 새끼’로 취급받는다. 삶의 기반을 빼앗기고 모든 인간관계가 무너진다.

 

《후천성 인권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시대의창, 2017)는 동성애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통해 아우팅의 실상을 조명하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는 우리 사회의 호모포비아(homophobia, 동성애 혐오)를 고발한다. 이 책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약칭 ‘행성인’, 구 동성애자인권연대)’ 소속 성 소수자 운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작년 12월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11년 구판과 2017년 개정판의 차이점이 있다. 구판과 개정판 각각에 다양한 성 소수자 인권 문제를 다룬 칼럼 7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글쓴이와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성 소수자 인권 운동에 앞장선 사회단체 이름이 달라졌다. 2014년까지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2015년에 ‘행성인’으로 변경되었다.

 

이 인터뷰집은 다름을 부정하고,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는 이들에게 작지만 큰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 소수자의 목소리를 당사자들이 직접 표출하려는 욕망은 진작부터 강했다. 성 소수자들이 타인의 시선을 피해 벽장 속에 숨어서 지낸 것도 있지만, 성 정체성을 드러낸 성 소수자들은 기피 대상 또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취급받아왔다. 동성애자 4명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과 용산 참사를 다룬 <공동정범> 등을 연출한 이혁상 감독은 미디어를 이용해 ‘성 소수자들이 성 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과 같은 기독교 극우단체는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광고를 내고 호모포비아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성애 가족을 강조하고, 정상 · 비정상을 구분할수록 호모포비아는 심해진다. 특히 극우 기독교계는 에이즈(HIV/AIDS)가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타락에 대한 신의 형벌이라는 인식을 퍼뜨리는데 재난이나 괴질이 발생했을 때 희생양을 찾음으로써 책임을 전가한다. 곽이경 씨는 교회에 다니는 레즈비언이다. 그녀는 동성애자를 이성애 중심 가족 제도를 붕괴하는 적으로 몰아세우는 극우 기독교의 낡은 혐오 공학을 비판한다.

 

 

이 사회의 가족 제도는 이성애 중심이잖아요. 동성애자들은 가족 제도에 편입되고 싶어하는 것이지, 가족 제도를 붕괴시키고 싶어하지 않거든요. 붕괴시키려고 마음먹었다면 ‘혁명 세력’일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개신교나 가톨릭계는 동성애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 같아요. 동성애자들이 우리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죠. (곽이경, 79쪽)

 

 

인터뷰에 참여한 민수 씨(가명)‘군형법 92조 6항’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본 동성애자다. 군형법 92조 6항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동성 간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강제성과 공연성이 없는 합의된 성적 접촉까지 형법으로 처벌한다는 이유로 비판 받아왔다. 성 소수자들은 동성애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군형법 제92조 6항 폐지를 주장하지만, 국방부와 극우 기독교계는 병영 내 동성애가 지휘체계의 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조항 폐지를 반대한다. 그러나 미국, 유럽에서는 병영 내 동성애가 군의 기강과 사기를 저해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민수 씨는 군형법이 ‘동성애자를 잠정적인 성범죄 가해자 또는 감염자로 낙인찍는 규정’이라고 지적한다.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들은 일단 ‘치료’라는 명목으로 병원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에이즈 검사, 독방생활 등을 경험하게 된다. 군대에선 여전히 동성애가 정신 장애이고 범죄 행위로 여겨진다. 이런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군인의 사생활 보호가 아무리 철저해도 동성애자 차별은 해소될 수 없다.

 

청소년 성 소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중으로 고통을 겪는다. ‘동성애자’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아니, (정신적으로 미숙한) 학생이?”라는 편견과 맞물리면서 더욱 냉혹하게 증폭된다. 성인 동성애는 인권 논의 대상이 되지만, 청소년 동성애는 한때의 ‘치기’나 단순한 ‘성적 호기심’으로 치부된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이란 것과 성소수자라는 이중적 약자잖아요. 사회는 사회대로 그렇고, 집에서는 집대로 통금 같은 거 두고, 그러면 이중으로 뭔가에 가로막히는 기분이죠. 당장 부모님이 무언가 강요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고 나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까요.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없고요. (김우주, 202쪽)

 

 

우리 사회는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에 질타와 비판만 가하고 있다. 청소년 동성애를 ‘비행’, ‘일탈’로 치부되는 것은 기성 사회의 일방적 시각이다. 학교 안에서 아우팅 당한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왕따를 당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자퇴를 결심한다. 아우팅 당한 동성애자는 자살을 선택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적어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고, 불이익을 겪거나 심지어 자살로 몰고 가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이 사라져야 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은 생각보다 교묘하고 그 뿌리가 깊을 뿐 아니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성애만이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랑이고,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배운다. 이렇게 뿌리 깊은 가치관은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해 버린다. 소외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에 향한 억압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 억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자신의 삶과 인간적 권리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만다. ‘행성인’ 소속 성 소수자 운동가들은 일반(동성애자를 뜻하는 ‘이반’의 반대말, 이성애자)들의 동성애 편견을 바꾸기 위해서는 성 소수자들의 자발적인 사회적 연대가 감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려면 성 소수자들이 벽장에 나와 일반 세계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왜곡된 형태의 동성애가 아닌 진짜 동성애가 뭔지, 현실의 동성애자는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알려야 한다. 일반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 소수자를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이성애 중심주의와 남성 중심주의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사회에 실금이 갔다고 해서 와르르 무너지진 않는다. 작은 틈 위에 여섯 색깔 무지개(동성애자를 상징하는 깃발 디자인)가 생긴다면 그 사회는 성 소수자들이 원하는 세상, 무지개처럼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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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2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02 19:09   좋아요 0 | URL
동성애를 바라보는 기독교의 시선을 알 수 있는 책을 참고하고 싶은데 뭐부터 읽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잘 되지 않겠지만, 기독교의 주장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싶어요.

sprenown 2018-03-02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련 군형법조항은 위헌소지가 많은것 같아요
최근 북부지법에서도 무죄판결이 나왔네요
헌재에 위헌제청신청이나 헌법소원을 통해 위헌판결이 나야할것 같은데 보수종교계에서 극렬반대하고있어 귀추가 주목됩니다.

cyrus 2018-03-02 19:12   좋아요 0 | URL
극우 종교계,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의 반응이 너무 셉니다. 그런데 이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주장들이 어이없을 정도로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면 빨갱이라고 욕하기도 하던데 저는 ‘김정일, 김정은 개새끼‘라고 여러 번 외칠 수 있습니다. ㅎㅎㅎ

sprenown 2018-03-02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그러니 이들을 ‘수구꼴통‘이라고 하죠.자신들의 가치에 조금만 벗어나도 빨갱이. 그동안 반공이데올로기로 기득권 유지하며 잘살아왔잖아요^^.

cyrus 2018-03-02 19: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책이 2011년에 나온거라서 MB 졸라 까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ㅎㅎㅎ

AgalmA 2018-03-04 14: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이즈가 신의 형벌이라면 인간의 모든 질병도 마찬가지겠죠. 실제로 무슨 사건사고만 있으면 그런 식. 세월호 때도 그렇게 말하는 모진 종교인(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인간)이 있었죠. 모두를 신의 노예로 만드는 이상한 인식. 마조히즘적인 게 인간의 무슨 기질인가 싶을 정도라니까요. 자기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지배되고 있는지 자성 좀 하고 다른 이들에게 훈장질 좀 했으면 싶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양날의 칼인지 알텐데....
더불어 신을 무슨 만능 해결 보자기처럼 쓰는 거 참 못마땅한 점입니다. 그걸 다시 사회 구조로 끌어들이고.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차별, 죄악 등 다 인간이 만든 알레고리고 이데올로기죠.

cyrus 2018-03-04 11:11   좋아요 2 | URL
무교인 저는 기독교가 안 좋은 상황을 ‘신의 형벌’, ‘재앙’으로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이성적으로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되잖아요. 모 기독교계 대학교는 페미니즘 강연을 ‘영적 지진’으로 표현하면서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한 학생에게 무기정학 징계를 내렸어요. 앞뒤 꽉 막힌 일부 기독교는 페미니즘을 사회에 혼란을 주는 재앙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

기득권에 위치한 종교는 정치권력과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숭배하는 신은 예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들입니다. 권력자들의 적폐 행위에 눈 감고,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사회악으로 취급합니다.
 
퀴어 이론 - 입문
애너매리 야고스 지음, 박이은실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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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Queer). 생소한 단어라서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퀴어 문화축제’, ‘퀴어 영화’는 들어봤어도 ‘퀴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퀴어는 ‘괴상한’을 뜻하는 영단어로, ‘동성애’를 뜻하는 속어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 사용되는 퀴어는 모든 성 소수자(LGBT: Lesbian 레즈비언, Gay 게이, Bisexual 양성애자, Transgender 트랜스젠더 혹은 Transsexual 트랜스섹슈얼)를 일컫는 용어로 쓰고 있다. 외국에 비해 한정된 성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선 성 소수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혐오하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 문화축제는 성 소수자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사회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들에게 성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퀴어는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퀴어 이론(Queer theory)을 처음으로 제시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퀴어의 규범화는 결국 퀴어의 비극적 종말이 될 것이다[1]라고 우려했다. 퀴어는 시대 및 사회 상황에 따라 앞으로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 있다. 그리고 퀴어 이론은 젠더 이분법을 강요하는 이성애 중심주의(Heterosexism)에 의문을 던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론이다. 이성애는 사회 존립 기반을 형성하는 안정적인 인간관계 모델이다. 이것에 의존하는 규범적인 젠더 이분법을 전복하는 것이 퀴어 이론의 목적이다. 그래도 퀴어와 퀴어 이론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호주에서 활동 중인 퀴어 학자 애너매리 야고스(Annamarie Jagose)의 설명을 참고하면 된다.

 

 

거칠게 말하면 퀴어란 염색체적 성(sex), 젠더(gender) 그리고 성적 욕망 사이의 소위 안정된 관계(이성애-cyrus 주)에 모순들이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태도 혹은 분석 모델을 가리킨다. ‘자연 그대로의’ 섹슈얼리티란 존재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퀴어는 ‘남자’ 혹은 ‘여자’라는 말과 같은 명백히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것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퀴어 이론 : 입문》 10쪽) 

 

 

따라서 퀴어와 퀴어 이론을 ‘규범적인 이론’으로 고정해서 말하는 것은 유동적인 퀴어 정체성에 부합되지 않는다. 퀴어 이론은 ‘가능성들의 구역(a zone of possibilities)’[2]이다. 퀴어 정체성은 누구와 싸우고 연대하는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

 

야고스가 쓴 《퀴어 이론 : 입문》(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2)퀴어 정체성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 어떻게 투쟁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퀴어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가벼운 입문서’로 취급하는 건 오산이다. 앞서 말했듯이 퀴어 이론은 유동적이다. 퀴어를 이해하는 입장들이 제각각 다르고 모순되기 때문에 퀴어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야고스는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전해 온 동성애 및 레즈비언 담론의 지형과 역사적 맥락을 들려주기만 한다. 일반[3]은 퀴어를 ‘성 소수자’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편협하고 피상적인 간단명료한 퀴어의 정의를 거부한다. 그래서 이성애자인 일반에 속한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책을 펼치는 내내 독자는 이제껏 살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젠더 개념과 가치들을 새로 생각해보게 된다. 당신은 이성애와 섹슈얼리티를 하나하나 따져 보는 퀴어 이론의 광범위한 시도에 놀라게 될 것이다.

 

야고스는 퀴어 이론의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퀴어 이론을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까지 살핀다. 이 책에는 ‘게이 남성-레즈비언’, ‘MTF트랜스젠더-여성’의 연대를 반대하는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의 입장이 언급된다. 야고스는 게이 남성을 가부장적 가치를 고집하는 남성으로 분류하여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입장이 ‘동성애 혐오’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성 소수자가 살기에는 숨이 턱턱 막히는 곳이다. 동성을 사랑하고 성을 바꾸려 하는 것이 중대한 범죄일까? 퀴어 이론을 공부하면서 성 소수자의 현실을 알아보자. 그리고 ‘다수’, ‘일반’에 속한 당신의 생각이 정말로 옳은지를 스스로 질문해보자. 그것이 《퀴어 이론 : 입문》을 읽기 위한 목적이다.

 

 

 

 

 

[1] 《퀴어 이론 : 입문》 8쪽

[2] 《퀴어 이론 : 입문》 8쪽

[3] 이성애자. ‘성 소수자(특히 동성애자)’를 뜻하는 이반(二般, 異般)과 대비되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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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02-25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수가 소수에게 무심코 행하는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름을 틀림이라 억지부리며. .

cyrus 2018-02-26 06:45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나와 ‘다른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면 그것을 ‘틀린(비정상적인) 대상‘으로 간주하여 기피하고, 혐오합니다.
 

 

 

추위를 느끼면 피부가 닭살처럼 우툴두툴하게 변한다. 몸의 반응에 따른 자연스러운 신체 현상이다. 추위에 느끼면 뇌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신체 각 기관에 명령을 내리고,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털을 세우는 피부의 입모근이 수축한다. 피부가 닭살 돋는 것처럼 변하는 이유다. 그런데 사시사철 닭살 피부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닭살 피부가 심한 사람은 여름이 두렵다. 반소매 티셔츠, 반바지를 입지 못한다. 닭살 피부도 피부 질환이다. 정식 병명은 모공각화증이다. 피부 모공에 각질이 쌓여 발생하는 증상이다. 가려움증이 없기 때문에 외관상 문제 외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도드라진 모공을 억지로 제거하면 피부가 벗겨져 상할 수 있다.

 

내 피부는 각질이 잘 생기는 건성 피부라서 모공각화증이 잘 생긴다. 잘 씻고 다니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항상 닭살 피부를 볼 때마다 신기하게 생각했다. 닭살 피부가 피부 질환인지 몰랐던 어머니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본인의 음식 취향 때문에 닭살 피부가 생겼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닭고기, 특히 퍽퍽한 가슴살을 좋아한다. 내가 어머니 자궁 속에 있을 때도 어머니는 닭고기를 즐겨 드셨다. 순진무구했던 나는 어머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닭살 피부가 생닭에서 볼 수 있는 우툴두툴한 돌기와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생각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 황당한 속설이다. 특정 음식 과다 섭취가 태아의 피부 발달에 영향을 준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임산부가 우유를 자주 마시면 태아의 피부는 백설 공주처럼 하얗게 될까?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

 

 

 

 

 

 

 

 

 

 

 

 

 

 

 

 

 

* [절판] 얀 본데손 《자연의 장난 원숭이 여인》 (일빛, 1999)

 

 

 

임산부의 모든 행동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는 속설은 어머니의 양육 태도, 즉 모성이 태아 또는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육아 문화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활동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은 팔자가 세다고 좋지 않게 봤다. ‘드센 여성’으로 성장하는 아기를 원하지 않는 임산부들은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조신하게 행동했다. 지금으로선 황당한 일이지만, 옛날에는 태아를 위해서 임산부가 당연히 따라야 할 행동 요령이었다.

 

과거 서양에서는 모성 영향론(maternal impression)을 의학적 통설로 여겼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모성 영향론을 신봉한 의학자 중 한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의 귀부인이 검은 피부의 아기를 낳았다. 귀부인과 그녀의 남편 모두 백인이었다. 남편은 부인을 간통죄로 고소했다. 법정 증인을 나선 히포크라테스는 기이한 출산의 원인을 무어(Moors,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인이 그려진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부인의 방에 무어인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히포크라테스는 임신 중인 부인이 그 그림을 자주 보는 바람에 배 속에 있는 태아의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 플라톤, 천병희 역 《국가》 (도서출판 숲, 2013)

* 플라톤, 박종현 역 《국가 · 정체》 (서광사, 2005)

 

 

 

 

플라톤(Plato)은 자신의 책 《국가》에서 태아가 출생 이전부터 생명을 갖는다고 믿었지만, 사회와 가족의 복지가 태아의 생명권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기형아가 태어나면 곧바로 내다 버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기형아 출산을 막기 위해선 기형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의 외출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성 영향론에 대한 믿음은 고대 로마,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까지 지속하였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모성 영향론을 믿었고, 모성 영향론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모성 영향론을 믿는 사람들은 어머니의 사소한 행동과 생각들이 태아의 발달과정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상상력이 지나친 사람들은 모성 영향론을 바탕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환상적인 가공인물을 만들었다. 흉측한 모습의 물고기를 본 임산부가 ‘물고기 인간’을 낳았다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고양이를 쓰다듬어서 ‘고양이 인간’을 낳은 임산부 이야기도 등장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임산부들은 임신 기간 집에서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 그녀들은 피아노를 열심히 연주하면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속설은 아기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속설이 만들어진 목적은 임산부가 얌전하게 행동하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임산부가 바람을 피울까 봐 걱정하는 남편들은 아내가 딴생각을 하면 태어날 아기가 불행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남편들은 임신한 아내의 바람기를 막기 위해 피아노를 장만했다.

 

 

 

 

 

 

 

 

 

 

 

 

 

 

 

 

 

 

* [절판] 돈 캠벨 《모차르트 이펙트》 (황금가지, 1999)

* [절판] 로버트 토드 캐롤 《회의주의자 사전》 (잎파랑이, 2007)

 

 

 

 

한때 모차르트의 음악을 이용하면 태아 또는 아이의 잠재능력을 발달할 수 있다는 ‘모차르트 효과’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모차르트 효과를 이용한 음악 교육법을 만든 돈 캠벨(Don Campbell)은 태아부터 시작해서 연령별로 아동의 발달과 음악의 관계를 설명하고, 연령별로 들으면 좋은 모차르트의 곡을 소개했다. 사실 모차르트 효과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따로 있다. 그들은 모차르트 효과를 입증한 자신들의 작업이 허점이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캠벨은 허점투성이인 모차르트 효과 연구 결과를 과장, 왜곡하여 그럴싸한 음악 교육법으로 포장했다. 부모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더 똑똑해질 수 있다는 낭만적 생각에 사로잡혔고, 캠벨은 자녀의 지능을 높이려는 부모의 욕망에 편승해 모차르트 효과를 ‘믿을 만한 과학 이론’인 것처럼 홍보했다. 모차르트든 베토벤이든 어느 클래식 음악가의 곡을 들으면 임산부나 태아, 육아의 정서 안정에 도움 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머리가 단번에 좋아질 리가 없다. 모차르트 효과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그런데도 ‘클래식 음악 태교’는 머리 좋은 아이가 태어나길 원하는 임산부를 솔깃하게 한다.

 

 

 

 

 

 

 

 

 

 

 

 

 

 

 

 

 

*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이김, 2017)

* [절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만들어진 모성》 (동녘, 2009)

* 장 자크 루소《에밀》 (한길사, 2003)

 

 

 

 

모든 여성이 모성애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실은 모성은 여성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연적인 본능이 아니라 ‘여성의 종속을 정당하게 하는 남성의 발명품’이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에밀》에서 여성의 모성애를 강조했고,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를 환자로 취급했다. 5명의 자녀를 보육원에 보낸 루소의 ‘흑역사’를 생각하면 모성애를 강조한 루소의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프로이트(Freud)는 엄마가 아기와 어떻게 애착 관계를 맺고 어떤 정서적 교감을 나누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정신 건강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주장을 반박한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는 수많은 여성이 여성의 본능과 모성애를 동일하게 보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강요당했다고 말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들만 못하다고 느끼면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그 탓에 출산과 양육의 짐은 ‘본성’을 핑계로 여성이 짊어졌고 남성들은 양육을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인식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는 양육을 지지하는 프로이트 심리학에 반기를 든다. 그녀는 부모의 양육이 자녀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양육 이론’을 ‘가설’이라고 주장한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만들어진 모성’은 여성에게 무한한 희생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가 모성을 신성하게 여기다 보니,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모성을 강요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은 ‘나는 왜 아이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지 못할까’, ‘나는 왜 모성이 없는 것일까’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맹목적인 모성애는 기혼 여성의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심할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모성은 여성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급진적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에서 여성에게만 출산과 모성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문화를 향해 꽤 묵직한 돌직구를 날렸다. “임신은 야만적이다.” 여성의 자유를 막기 위해 남성들이 만든 모성도 야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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