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란토 성 환상문학전집 2
호레이스 월폴 지음, 하태환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고딕(Gothic)은 중세에 세워진 뾰족한 첨탑에서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이다. 지금도 이 건축물들은 세월의 때가 켜켜이 앉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고딕이라는 단어는 인상파’, ‘빅뱅(big bang)’처럼 처음부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 · 로마 미술 문화에 심취한 학자들은 고딕을 야만스러운 건축 양식이라고 비난했다. 고전주의와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가 굳건하게 유지되는 시대 속에서 고딕은 ‘B급 문화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중세 기사도 문학의 가치를 재발견한 낭만주의자들은 고딕 양식에 열광했다. 젊은 시절의 괴테(Goethe),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 등이 고딕 건축물의 위엄에 감탄한 인물들이다.

 

 

 

 

 

월폴은 영국의 고딕 덕후였다. 그는 스트로베리 힐(Strawberry Hill)’이라는 이름의 고딕풍 별장을 세웠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별장 안에는 월폴이 직접 수집한 골동품으로 가득했고, 자신과 미적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골동품을 감상하기도 했다. 월폴이 살았던 18세기 영국에 고딕 양식뿐만 아니라 고딕 소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딕 소설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딕 소설의 정의를 아주 쉽게 말하면 중세풍 공포소설 또는 환상소설이다. 고딕 소설의 특징은 딱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중세 시대의 고성이나 수도원은 고딕 소설에서 꼭 나오는 장소 배경이다. 두 번째, 고성과 수도원 안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한다. 세 번째, 그 기이한 현상을 경험한 인물들은 이성을 상실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신 줄을 놔서 미쳐 버린다…‥.

 

고딕 덕후월폴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소설 한 편을 발표했는데, 그 소설이 바로 오트란토 성(Castle of Otranto, a Gothic Story)이다. 이 작품 하나로 월폴은 고딕 소설의 창시자’, ‘영국 공포문학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오트란토 성은 이 소설의 무대인 중세의 고성이다. 이 성의 주인은 만프레드 대공이다. 가족관계로는 아내인 히폴리타와 슬하 11녀의 자녀(장녀 마틸다, 차남 콘라드)를 두고 있다. 열다섯 살의 콘라드는 만프레드 대공의 상속인으로 비첸자 후작의 딸 이사벨라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콘라드가 거대한 투구에 깔려 사망한다. 마침 사고 장소에 있던 농부는 콘라드의 죽음이 오트란토 성의 전 영주인 알퐁소 르 봉의 저주와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그러자 대공은 농부의 말에 노발대발하고, 정신 줄을 놓게 된다. 알퐁소 르 봉과 관련된 어둠의 힘에 두려워하던 대공은 개차반이 돼가고 있다. 아들의 죽음을 아내 탓으로 돌리고, 마틸다를 자신의 새 아내로 삼으려고 한다. 대공의 광기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대공의 심기를 건드린 농부다. 사실, 그는 테오도르라는 인물로 알퐁스 르 봉 가문의 피가 섞인 영주의 후예이다. 소설 중반은 만프레드 대공과 테오도르의 대결 구도 양상으로 흘러간다.

 

한때 전국을 웃긴 개그도 시간이 지나면 유치하게 보이듯이 큰 인기를 얻은 공포소설도 지금까지 쭉 읽히는 건 아니다. 즉 공포소설의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즘 같이 영상의 시대에 만들어진 공포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고딕소설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오트란토 성번역본의 뒤표지에 있는 출판사 책 소개 내용을 보라. 과장 홍보’를 경계해야 한다.

 

 

박진감 넘치는 짧은 소설

오늘날에도 역사를 초월한 재미로 읽는 이를 사로잡을 것이다.

 

 

짧은 소설은 맞는데, 서양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내가 봐도 박진감 넘치는건 아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지나치게 질질 끄는 묘사 몇 군데 보인다. 작가가 고딕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고딕 분위기 연출을 위한 묘사에 너무 힘을 들었다. 역사를 초월한 재미…‥? 에이, 그건 좀 아니다. 오트란토 성이 주는 공포감이 현대의 독자들(특히 공포’, ‘호러마니아들)에겐 만족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소설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힘에 점점 제압당하는 인물(만프레드 대공)의 심리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독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말고…‥.)

 

만프레드 대공은 가부장의 힘을 내세워 전처와 친딸을 내팽개치고, 죽은 아들의 약혼녀를 아내로 삼기 위해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변명을 한다. 대공 입장에서는 어둠의 힘은 아들의 목숨을 빼앗아 만프레드 가문의 대를 끊어버린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그리하여 대공은 가부장의 힘으로 어둠의 힘앞에 저항해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전처를 외면하고, 아들의 약혼녀와의 결혼을 강제로 실행하기 위해 고집을 부릴수록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추잡한 욕망을 드러내는 독재자로 변한다. 대공은 사악한 충동을 절제하지 못해 비이성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이성의 시대를 거스르는 인물형이다. 월폴은 만프레드 대공을 통해 이성을 강조하는 문명인 속에 숨겨진 삶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려고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대공의 똥고집(?)은 인간이야말로 똑똑하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자신감 넘치는 계몽주의자들에게 향하는 반발심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번역 문장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 문장 몇 개 보인다. 새로 번역한다면 매끄럽지 않은 문장을 다듬었으면 좋겠다.

 

 

“should pass from the present family, whenever the real owner should be grown too large to inhabit it.”

 

오트란토 성과 영주권은, 합법적 소유주가 너무 커져서 더 이상 거기서 살 수 없게 되는 날, 현재의 혈통으로부터 박탈될 것이다.” (26)

    

 

“Do I dream?” cried Manfred, returning; “or are the devils themselves in

league against me? Speak, internal spectre! Or,if thou art my grandsire, why

dost thou too conspire against thy wretched descendant, who too dearly pays for- ”

 

당신이 나의 조상이라면 왜 당신은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당신의 불쌍한 후손에게 대적하려고...” (39)

 

 

번역본의 역자는 프랑스 저작물을 번역한 불문학 전공자. 어째서 불문학 전문 역자가 영문학의 고전 번역을 맡게 되었을까?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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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cyrus 2017-12-23 11:5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

2017-12-22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3 11:56   좋아요 1 | URL
‘취업’이 중요하니까 취업 준비에 유리한 학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전공’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졌어요. 학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학과를 선택하는 예비 대학생들이 많지 않을 거예요. ^^;;

2017-12-23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7-12-23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오트란트 성같은 작품은 아무래도 후대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닥 재미없는 작품이라고 할수 있지요.왜냐하면 후대로 갈수록 그런 장르가 더 발전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불문학 전공자가 영문학을 번역하는 것은 그분이 영어도 잘하기 때문이겠지만 아무래도 불어번역보다는 영어번역의 일이 더 많아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네요.

cyrus 2017-12-23 11:5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오트란토 성> 번역자가 번역한 책 중에 민음사에서 나온 <시뮬라시옹>과 들뢰즈의 책 한 권 있었어요. 이 분이 번역한 책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 중에 유일한 영문 번역서가 <오트란토 성>입니다. ^^;;

깐도리 2017-12-2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친구 추가합니다...

cyrus 2017-12-27 13: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깐도리님도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신거 축하드립니다. ^^

saint236 2017-12-2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요즘 알라딘 서재에 뜸했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여전히 계시기에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납깁니다.

cyrus 2017-12-27 13:2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세인트님. 잘 지내시죠? 먼저 반가운 인사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분들을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게 되니까 그 전에 만났던 분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뜸해집니다. 아무 말없이 서재 활동을 멈춘 분들이 많아요. 이럴 때 기분이 묘해요.

2017-12-25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7 13: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성탄절에 집에서 푹 쉬었습니다. ^^
 
보르헤스의 미국문학 강의 - 초기의 작가들에서 20세기 SF까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홍근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엄청 많은 고전 중에 도대체 어떤 재미있는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면 평생 책 속에 파묻혀 살아온 권위자의 조언을 따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만약 그 권위자가 천국의 도서관장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라면 신뢰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는 아예 도서관을 삶의 터전으로 삼을 정도로 도서관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부계의 유전병을 물려받으면서 태어난 보르헤스는 너무 많은 책을 읽은 탓에 실명하게 된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간결하고 압축적이며 짧고 재미있다. 보르헤스의 미국문학 강의역시 짧고 재미있다. 보르헤스의 미국문학 강의는 미국문학사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개론서가 아니다. 이 책은 애서가의 지적 편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일뿐만 아니라, 후대의 많은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보르헤스가 엄선한 미국문학 고전들을 접할 수 있다. 지극히 저자의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하나같이 매혹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작품들이다.

 

보르헤스의 말에 따르면 문학 작품 자체가 우리(독자들)를 끌어당기는 매력[1]이 있다고 한다. 보르헤스가 말하는 문학 작품의 매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서문만 봐도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보르헤스 문학의 매력을 아는 독자라면 충분히 감을 잡을 수 있다. 보르헤스의 글은 환상과 사실을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글쓰기는 완벽하고 독특한 상상의 산물이나 현상을 마치 실재했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든다. 독자는 보르헤스의 문학이 가진 환상성을 이해해야 한다. ‘환상성은 보르헤스가 강조한 독자를 끌어당기는 문학 작품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에서 보르헤스가 추구한 환상성에 영향을 준 미국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환상문학의 뿌리이다. 그 뿌리 속에 흐르는 문학적 영양분을 듬뿍 받고 자라 훌륭히 성장한 나무가 바로 보르헤스다. 그는 자신을 달의 작가로 분류했다. ‘달의 작가는 홀로 사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사상을 재료로 삼아 글을 쓴다. 반면 태양의 작가는 정치적 상황에 참여하기를 좋아하는 현실주의자이며 능숙하게 글을 써내려간다. 보르헤스는 미국의 초월주의자들을 주목했는데, 그들은 달의 작가에 속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사회보다는 개인, 이성보다는 직관을 앞세웠고,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서 초월적 자아를 완성하는 삶을 살았다.

 

그밖에 보르헤스는 추리소설, 서부문학, 인디언 문학 등에 주목하여 러브크래프트(Lovecraft),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등을 소개한다. 이들 역시 포의 문학적 영양분을 먹고 성장한 훌륭한 작가들이다. 그런데 보르헤스가 인디언 문학을 소개한 점은 아이러니하다. 보르헤스는 원주민 학살을 문명화를 위한 과정이라고 옹호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발언에 남아메리카 작가들도 한 목소리로 비난한다. 보르헤스가 19세기 미국 서부 시대에 활동했던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의외다. 아울크리트 다리에서 생긴 일(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막힌 창(The Boarded Window), 요물(The Damned Thing) 등은 환상문학, 공포문학 단편 선집에 수록되는 비어스의 대표작들이다.

 

   

 

[1] 서문, 10 

 

 

 

 

* Trivia

 

베니토 세레노 선장이라는 인물은 조셉 콘래드의 나르시소스 호(Narcissus)’의 흑인을 떠올리게 하고,‥… (68)

 

베니토 세레노(Benito Cereno)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이 쓴 단편소설이다.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가 쓴 소설의 정확한 제목은 나르시소스 호의 흑인(The Nigger of the Narcissu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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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2-2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의 책 몇권을 헌책방에서 사놓은지 꽤 되었는데 얼른 손이 안가네요

cyrus 2017-12-20 16:07   좋아요 0 | URL
보르헤스 전집 1권을 읽어봤는데 재미없어서 포기했어요. 단편이라고 만만히 보다가 큰 코 다쳤습니다. ^^;;

레삭매냐 2017-12-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르헤스 책들을 몇 권 가지고는 있는데
도통 읽게 되질 않네요 허허

cyrus 2017-12-20 16:10   좋아요 0 | URL
배경지식 없이 읽으면 보르헤스의 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보르헤스 관련 서적을 먼저 보고, 소설 읽기에 재도전해야겠어요. ^^

2017-12-20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0 16:12   좋아요 1 | URL
렌즈를 잘못 착용해서 실명할 뻔 했어요. 안경을 썼는데도 시야가 흐렸어요. 그 때 얼마나 식겁했는지.. ㅎㅎㅎ 눈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페크pek0501 2017-12-2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의 말>을 완독했는데 좋았습니다.
이 책은 어떨지 관심이 갑니다.

cyrus 2017-12-20 16:13   좋아요 1 | URL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량이 얇아서 전공 책 느낌이 1도 나지 않습니다. ^^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 이 말은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언급했다. 영국인에게 셰익스피어가 어떤 존재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러면 이런 상상을 해보자.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괴테(Goethe)와 바꿀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쉽게 결정하기 힘든 고민이다. ‘셰익스피어와 괴테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셰익스피어는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어떤 연구가는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했다. 반면 괴테는 굵직굵직하게 살아왔다. 여든이 될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 경력을 쌓았다. 또 많은 여성과 연애를 즐기기도 했다. 작가로, 과학자로, 화가로, 정치인으로 괴테가 이룩한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 한국괴테학회 괴테 사전(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2016)

* 카를 비에토르 젊은 괴테(숭실대학교출판부, 2009)

* 클라우스 제하퍼 괴테(생각의나무, 2009) 

 

 

괴테가 남긴 작품들의 분량이 엄청나다. 그의 대표작을 골라 읽는 것도 만만치 않다. 괴테의 작품을 읽어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괴테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테에게 영향을 준 시대적 배경, 동시대 문학, 주변 인물과의 관계, 종교, 철학 등을 파악해야 한다. ‘괴테 읽기에 셰익스피어를 간과할 수 없다. 괴테가 평생의 과제로 추구했던 문학과 예술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삶이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괴테를 지배한 운명이었다. 파우스트는 셰익스피어를 사랑한 괴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1]

 

 

    

                    

 

 

작년에 괴테 사전이 너무도 조용하게 나왔다. 한국괴테학회에 소속된 독어독문학 전공 교수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했다. 집필진 명단에 익숙한 이름 몇 개 보인다. 안삼환, 이인웅, 장희창, 전영애 등은 괴테의 작품을 번역한 이력이 있고, 안진태는 괴테 연구서 세 권을 펴낸 적이 있다. 한국괴테학회는 1983년에 설립되었다. 매년 12월 27일에 <괴테 연구>라는 학회지를 발간한다. 올해 나오는 <괴테 연구>는 30집이다.

 

 

 

          

          

 

 

    

사전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괴테 사전괴테와 괴테 문학에 관심 있는 일반인 독자를 위한 책이다.[2] 학술적인 내용이 포함됐지만, 전문적인 분석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미 독일에서는 1998, 2004년 두 차례에 괴테 사전이 출간되었다. 발간사에 따르면 독일판 괴테 사전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참고만 했다고 한다. 따라서 괴테 사전은 국내 괴테 연구자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괴테 사전의 주요 항목으로는 괴테와 관련된 주변 인물, 괴테가 활동했던 도시, 괴테의 작품(소설/산문, 드라마, ), 괴테의 문학과 예술에 관한 주요 개념, 미학 및 자연과학 논문, <잠언과 성찰> 등이 있다.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년에 나온 괴테 사전‘1차 발간 작업의 결과물이다.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두 번째 괴테 사전이 발간될 가능성이 있다.

 

괴테 사전읽기가 부담되면, 카를 비에토르의 젊은 괴테(숭실대학교출판부, 2009), 클라우스 제하퍼의 괴테(생각의나무, 2009)를 참고할 수 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 문학 연구는 문학 작품에 반영된 독일 정신의 발전을 확인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카를 비에토르(Karl Vietor, 1892~1951)는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졌다. 젊은 괴테1930년에 발표된 괴테 연구서이다. 비록 책의 주제가 젊은 시절의 괴테로 한정되어 있으나 괴테의 문학이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괴테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하면 체험 문학이다. , 괴테의 작품에 괴테 자신의 내면적 체험(세상과 주변 인물을 바라보는 정서적 태도)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괴테의 생애를 모르고 괴테의 작품을 읽는 것은 까막눈으로 책을 읽는 상태나 다름없다. 클라우스 제하퍼의 괴테는 괴테의 작품 해설에 중점을 둔 책이다. 이 책에 가장 먼저 소개되는 괴테의 작품이 파우스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괴테 읽기를 위한 가벼운 레시피로 보기 어렵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미 괴테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들을 전제로 썼다.

 

 

     

 

[1] 괴테사전(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2016) ‘셰익스피어, 김영옥, 68.

[2] 괴테사전발간사,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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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괴테와 셰익스피어
    from Value Investing 2017-12-12 23:21 
    cyrus 님의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어서 먼댓글로 달아 봅니다. "내 생각에 영국인들에게는 괴테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cyrus 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를 제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견해는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견해가 아닐까 싶어서요. 저로서는 '괴테를 셰익스피어보다 우위에 두는 듯한 표현 자체'가 너무나 놀랍고 또 생경스럽기만 합니다
 
 
2017-12-12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2 18:07   좋아요 0 | URL
괴테와 셰익스피어는 동급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셰익스피어가 괴테보다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

AgalmA 2017-12-16 0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안의 책>에서 소아르스는 셰익스피어가 허점투성이라고. <리어왕>도 자기가 손봐주고 싶다고^ㅁ^); 누구 편도 들 수 없는 나자신의 깜냥을 생각했지요..허허;;

cyrus 2017-12-18 10:33   좋아요 1 | URL
로쟈님의 말씀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 속 남성 인물들의 성격, 감정 상태 변화 등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대요. 그런데 여성 인물의 성격은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셰익스피어 작품 속 여성 인물을 심도 있게 분석한 의견이 많지 않아요.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초조감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초조감은 불안한 상태를 의미한다. 인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잘 먹고 잘살게 됐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의 정도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부귀, 성취 등을 놓고 한숨은 쌓여간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 : 카프카 전집 1(솔출판사, 2017)

* 프란츠 카프카 변신(열린책들, 2009)

* 프란츠 카프카,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변신(문학동네, 2005)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시골의사(민음사, 1998)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은 늘 일과 시간에 쫓겨야 하는 비정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일상이 버거운 외판원인 그레고리 잠자(Georg Samsa)는 자신이 어느 날 아침 벌레 한 마리로 변해 버린 것을 알아차리고도 우선은 그냥 한숨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니까 사람이 멍청해지는군.

사람이란 잘 만큼 자야 해.” [1]

 

 

숙면 시간을 조금 더 원하는 잠자의 생각은 이 시대 모든 직장인의 마음을 대변한다. 잠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소시민이다. 일밖에 모르는 획일화된 삶은 잠자의 몸과 마음을 속박한다. 그는 오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아파본 적 없으며 결근을 한 적도 없다. 이때 잠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일벌레. 따라서 잠자의 변신은 갑작스러운 해프닝(happening)이 아니다. 이미 그의 정신은 변하고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일상을 사는 동안 잠자는 점점 벌레로 변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벌레로 변한 잠자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가족들은 잠자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그를 벌레처럼 대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기를 바라고, 어머니는 벌레가 된 아들을 보면 기겁한다. 벌레로 변한 자신을 살갑게 대하던 누이동생마저 등을 돌린다. 잠자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껍질에 박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숨어있고 불안해할 뿐이다.

 

 

 

 

 

 

 

 

 

 

 

 

 

 

 

 

 

 

* 양정호 하청사회(생각비행, 2017)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인간은 회사를 위한 수단적 존재로 전락한다.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란 용어가 있다. 회사에 출근했지만 누적된 피로와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근로자의 무기력한 상태를 말한다. 이들은 몸이 아파도 무조건 일터로 향한다. 아파서 결근하면 수당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승진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방 안에서 전전긍긍하는 잠자는 프리젠티즘에 직면한 근로자의 모습이다. 잠자는 한 번의 결근 때문에 자신이 게으른 사람으로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 때문에 부모를 욕보일까 봐 결근을 스스로 거부한다. 잠자는 출근하는 데 실패하지만, 어차피 평소대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잠자는 가족뿐만 아니라 집에 방문한 직장 상사의 눈치도 살핀다. 이때 가족과 직장 상사는 ()’이고, 잠자는 ()’이다. 갑의 위치에 있는 가족과 직장 상사는 근로자인 잠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준다. 결국, 궁지에 몰린 근로자는 주체성을 박탈당한 채 고독한 상태에 빠져 버린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한길사, 2017)

* 한병철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

* 박이문 문학 속의 철학(일조각, 2011)

* 박이문 나의 문학, 나의 철학(미다스북스, 2017)

 

 

 

카프카가 이미 우려했던 대로 지금 우리 사회에 자의든 타의든 일만 하는 일벌레가 많아졌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자신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심각하게 일만 하는 사람을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로 비유했다. 그녀는 맹목적인 노동을 경계한다. 그렇다면 잠자는 노동하는 벌레이다. 하지만 한병철은 아렌트의 분석이 근대사회의 인간을 설명하는 것에 적합할 뿐, 자기 착취에 빠져 피로해질 때까지 일하는 후기 근대사회의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자기 착취는 말 그대로 지배자(근로 관리자)가 없는 착취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이 노동을 강요하는 지배자가 되는 동시에 노동에 시달리는 일의 노예가 된다. 혼자서 12, 즉 갑을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는 기묘한 상황에 직면한다. ‘나는 (결근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라는 자기 긍정은 근로자를 지치게 하는 해로운 주문(呪文)이다. 잠자는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어떻게든 침대에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침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해.”[2] 그는 자기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그가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없다. 그렇지만 잠자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누이동생이 음악 공부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잠자가 반드시 이뤄야 할 삶의 성과이다. 그러나 잠자는 자신의 삶의 성과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잠자의 삶의 성과는 잠자 개인의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벌레로 변하는 바람에 움직임이 둔해진 잠자의 모습은 피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누적된 후기 근대의 인간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피로사회속에 사는 현대인은 소진 증후군에 시달린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과잉은 스스로 가하는 채찍질이다. 전염병의 공포에 사로잡힌 중세 시대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자신을 마구 채찍질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려고 했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 나태한 자라고 꾸짖으며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계속 채찍질한다. 이제 우리는 채찍질을 멈추고 다시금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가?’ [3]

 

 

 

 

 

 

[1] 이주동 역, 변신 : 카프카 전집 1(2개정판, 솔출판사, 2003) 110

[2] 같은 책, 114

[3] 박이문 나의 문학, 나의 철학204쪽에 나오는 (굵게 표시를 한) 문장을 변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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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2 12:03   좋아요 2 | URL
젊은 노동력이 부족하니까 정년퇴임 연령이 와도 일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정말로 재수 없으면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어요. 중장년층 노동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해요. 게다가 인공지능의 노동 투입 이야기까지 나오니 일할 의지가 사라질 만도 해요.
 
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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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쁨보다는 슬픔을, 즐거움보다는 아픔을 기억에서 더 쉽게 떠올린다. 굴곡진 삶의 여정에서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이 유독 더 선명한 상처로 남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세상은 불완전하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상처는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으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매우 많은 것들이 생략된 소설이다. 독자들은 에츠코가 영국인 남편과 재혼하기 전에 낳은 게이코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게이코가 왜 자살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게이코는 죽은 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거부한다. 그 대신 일본 나가사키에 살았을 때 만났던 사치코와 그녀의 딸 마리코를 기억한다. 작가가 인물 심리의 흐름에 충실하게 서술하는 만큼, 창백한 언덕 풍경에서는 외부와 내면,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는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츠코의 기억을 재생시키고, 지우고 싶은 상처에 대면하게 한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서평가 이현우창백한 언덕 풍경전후 소설이면서도 여성 소설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1]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시종일관 에츠코, 사치코, 마리코, 이 세 여성의 삶을 교묘히 병치시킨다. 따라서 하나의 단선적 사건이 인과관계를 따라 풀려 가는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에게 소설은 다소 지루하며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창백한 언덕 풍경여성 소설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소재가 여성 문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는 전후 세대 여성의 삶과 심리상태를 조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 신경을 놓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여성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에츠코 :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난 지금 아주 행복해요. 남편의 일도 잘 풀리고 있고, 원할 때 아기를 갖게 되었지요…‥.”

 

사치코 : “저 애는 사업가가 될 수도 있고, 영화배우가 될 수 있어요. 미국은 그런 곳이에요, 에츠코. 많은 일들이 가능해요. 프랭크 말이 나 역시 사업가가 될 수 있대요. 그곳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요.”

 

에츠코 : “그렇겠지요. 다만 난 개인적으로 현재 삶에 무척 만족해요.” [2]

 

 

나가사키에 살았던 시절, 에츠코는 일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첫째 딸인 게이코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에츠코는 가부장 사회에서 착한 여자로 인정받는 순종형 여성상이다. 그녀는 전업주부로서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츠코가 어엿한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영위하며 행복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에 커다란 상처가 남아 있다. 상처의 원인은 자살한 딸에 대한 기억이다. 에츠코는 죽은 딸의 방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치코는 엄마가 가정을 위해서 해야 할 임무라는 환상에 휩싸여 과도한 몫을 떠안으려고 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개인 사업과 딸 양육을 병행하는 슈퍼 우먼을 꿈꾼다. 장밋빛 미래가 보장될 거로 믿는 사치코는 직업적 성취와 모성의 의무가 대립하면서 느끼게 될 갈등을 예상하지 못한다. 사치코와 마리코는 엄연히 말하면 난민이다. 난민이란 본래 전쟁이나 재난을 당해 곤궁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사치코와 마리코 모녀는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나가사키에 정착한다. 그러나 나가사키 주민들은 모녀를 외지인으로 인식하여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회가 불안해지고 규범이 와해하면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지목해 분노를 키우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는 관계 단절로 이어진다. 모녀는 사회의 중심에서 배제된 약자에 속한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이다. 모녀가 사는 허름한 오두막 내부는 외부와 소통이 잘 안 되는 고립되고 자폐적인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내 관심은 사치코의 찻주전자에 가 있었다. 연한 빛깔의 도기로,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좋은 물건이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찻잔 또한 같은 재질의 섬세한 다기였다. 그렇게 사치코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오두막, 진흙이 노출된 툇마루 바닥과 다기 세트의 대조적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난 좋은 그릇을 쓰는 데 익숙해요, 에츠코. 알다시피 언제나 이렇게 살았던 건 아니거든요.” [3]

 

 

사치코가 소유한 찻잔 세트는 고립된 삶을 살던 사치코의 억압된 욕망을 자극한다. 빈곤한 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원천봉쇄한다. 가난한 사치코가 화려한 다기 세트를 사용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잠재의식을 읽을 수 있다.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은 동경이 숨어 있다. 사치코는 영어를 유창하게 쓸 줄 안다. 그러나 그녀의 전남편(사치코가 만나는 미국인 프랭크와 다른 인물이다)은 그녀의 외국어 공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쪽의 언어(일본어)가 다른 쪽 언어(외국어)의 발화를 제한하는 방식은 여성의 입을 말할 수 없는 입으로 만든다. 미국의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의 말을 빌리자면 남편의 강압에 밀린 사치코가 사용하는 일본어는 압제자의 언어이다. 가부장제 안에서 압제자 역할에 있는 남성은 젠더권력뿐 아니라 언어 권력조차 오랫동안 쥐어 왔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압제자의 언어는 여성의 욕망을 억압한다.

 

마리코는 세 여성 중 가장 불행한 인물이다. 전쟁의 폭력성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흔적을 남긴 채 또 다른 폭력의 온상이 된다. 마리코는 전쟁 중에 아기를 살해하는 여자를 목격한 이후로 오랜 세월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숨결이 예민한 마리코의 마음에 배어들었다. 미래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 사치코는 과거에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딸의 심리 상태를 예사롭게 본다. 과거를 잊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자(사치코)와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미래를 거부하는 자(마리코)에서 생기는 괴리감은 불편함을 낳는다.

 

 

 

 

에츠코가 보는 앞에서 거미를 먹는 시늉을 한 마리코의 돌발행동은 자신의 절망적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사치코의 모성애를 거부하는 저항 행위이다. 거미는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 모성을 상징한다. 설치미술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초대형 거미 형태의 작품에 마망(maman: 엄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르주아는 알을 품는 거미를 통해 어머니의 모성애를 형상화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상처받기 쉬운 여성의 내면을 표현했다. 거미를 위협하는 마리코의 돌발행동에서 에츠코가 인지하지 못한 정신적 외상(trauma)’을 포착할 수 있다. 에츠코는 마리코의 행동을 바보 같은 짓으로 생각한다.[4] 그녀의 태도는 우리가 타인의 비정상적 행동에 거부감을 느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마리코의 돌발행동은 혐오스러운 미친 행동이 아니다. 사치코에 대한 분노감을 표출하는 동시에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은 구조 요청 신호이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하는 생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주제의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작가는 전쟁의 비극성과 더불어 개인의 정신적 외상과 기억을 집요하게 다룸으로써,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작가는 에츠코와 사치코가 원했던 가정이 결코 상처받은 여성들의 안식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춰낸다. 다만 창백한 언덕 풍경여성소설이라고 해서 페미니즘 소설로 단정할 수 없다. 영국의 언론인 로잘린드 카워드(Rosalind Coward)[5]는 막연하게 여성 중심의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로 보는 비평 방식을 경계한다.[6] 작가는 저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사연이 있는 여성들을 위한 섣부른 치유책을 내놓지 않는다. 거짓 희망에 매달리지 않고 고통을 직시하는 것은 과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에츠코는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 살아있음의 강력한 증거라는 숙명을 받아들인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볼 때 정치적 관심사를 부각하여 여성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페미니즘 소설과 거리가 멀다. 창백한 언덕 풍경이 전달하고자 한 여성의 감정과 정서가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페미니즘 소설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시구로의 문체와 언어는 규정짓기 어려운 불안과 혼돈의 심리도, 스쳐 지날 법한 찰나의 상황조차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숨이 막힐 정도로 섬세한 언어로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헤집는 이야기의 전개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도 치유의 방법이다. 외면하고 싶어도 담담하게 대면하는 것. 그것이 이시구로의 첫 소설을 접한 독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1] 출처: [희미한 언덕 풍경](로쟈의 저공비행, http://blog.aladin.co.kr/mramor/9682147)

 

[2] 58~59

 

[3] 25

 

[4] 108쪽

 

[5] 그녀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푸드 포르노(Food Porno)’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푸드 포르노1984년 로잘린드 카워드가 자신의 저서 <여성의 욕망>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6] 로잘린드 카워드 여성 소설은 페미니스트 소설인가?, 페미니스트 비평과 여성 문학(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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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1-20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서평인가에서 보니 가즈오 이시구로 선생
의 데뷔작을 나비 부인에 비교하는 글도 있더
군요.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 않나 싶더군요.

아무래도 작가의 데뷔작이라 그런지 개연성이나
핍진성에서 상대적으로 대표작에 비해 부족하
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cyrus 2017-11-20 14:24   좋아요 0 | URL
제 나름대로 그럴듯한 해석을 제시했지만, 이 소설을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야기 곳곳에 독특하면서도 모호한 묘사들이 있어서 속독하기 힘든 소설입니다.

2017-11-20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0 19:43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렇습니다. 이시구로가 쓴 작품들의 제목이 독특해서 제목만 보고 줄거리를 추측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소설을 다 읽고난 뒤에 제목의 의미가 뭔지 생각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