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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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만 읽고싶어서 백수가 된 여자' 의 근황이 궁금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호기심에 책을 구입하는 것은 제 오래된 습관이지만, 이번 만큼은 거기에 더해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반가움이 있었죠. "너도 백수니? 나도 백순데."

사실, '반가움' 에는 약간의 기대가 숨어있었습니다.
반쯤은 만족하지만 반쯤은 불만족스러운, 오늘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기대감이죠. "그래도, 명색이 백서인데."

소설을 펼쳐놓고 분석이라는 것을 시작합니다.
'음.. 그녀는 하루에 1권 이상의 책을 비타민처럼 복용하고, 책을 모으는 것 만이 유일한 관심사이며, 정말 먹고사는데 필요한 만큼의 일만 하는군.'
물론, 주변환경에 대한 조사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녀의 주변에는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는 아버지와, 한편의 소설을 써낸 적이 있는 외할머니, 수차례 직장과 연애상대를 갈아치우는 친구 유희와 더 나은 로맨스를 꿈꾸는 친구 채린이 있구나.'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하루 대략 1권 정도의 책을 읽고, 옷이며 최신 전자제품 보다는 책을 선호하며, 먹고사는데 필요한 만큼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는 공무원 시험을 종용하는 아버지와, 저를 무던히 답답해하는 공무원 누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녀석들이 대거 포진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주변환경의 차이인가?"

이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갑니다.

그녀는 '신세한탄'을 하지 않습니다. 가끔 '평범한 삶'을 잠시 상상하는 듯 하지만, 그녀에게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책 속에서 몇 문장 차지하지 못하죠.)
대신, 그녀는 '백수로서의'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또 규정합니다. "내 꿈은 무엇이다" 부터 "올해의 계획은 무엇이다" 까지, 자기 삶에 대한 크고작은 의미 부여와 방향의 설정, 계획의 수립이야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녀는 좀 다릅니다. 이런 얘기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반복하는데에는, 뭔가 구린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백수의 표본으로서 그녀를 분석하고자 했던 저는, 결국 수사의 단서를 찾지 못하고 책장을 덮고 말았습니다. 근거 없는 추측만 남아있죠.
설마, '오늘의 작가상'까지 수상한 작가께서 글줄이 궁했을리는 없는데.. 대체 무엇일까요? 단서가 없는 것인지, 찾지 못하는 것인지.

백수로서의 삶은 단 한번만 긍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해 반복되는 긍정은, 일종의 자기암시이고, 자기암시란 곧 불안함을 뜻하니까요. 백수에게 불안함이란, 감점요인입니다.

백수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입니다.
삶에 대한 많은 기준에다, '자기만족'이라는 중요한 기준 하나를 덧붙여주고 증명해보이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백수는 진정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순간, 감점입니다.

물론, 야박하지만은 않습니다. 조금 불안하다고 상담해오는 백수님들에게, 생계유지형 아르바이트를 소개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백수님들에게는, 더 이상 백수로서의 자격을 유지시켜드릴 수가 없는 것이죠.

자격유지를 못하게 된 백수님들에게는 두가지 진로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직업세계로 진출하는 것이요, 또 한가지도 직업세계로 진출하는 것인데요, 전자와 후자는 분명히 다른 세계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세계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백수에 입문하신 분들께만 말씀드려야 할 것이라, 부득이하게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불안해하는 백수님들이여, 최선을 다하시라. 그대 어느 길이든, 직업세계에는 당도할지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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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경제학
정해승 지음 / 휴먼비즈니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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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소속 회사에서 ‘새로운 놀이공간’을 만드는 태스크포스에 참여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분류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에서도, 크게 연예산업과 스포츠산업을, 마지막 장에는 사회 전반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각 분야의 성공사례들을 소개하거나 트렌드를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고, 말미에 제조업 사례를 덧붙여 일반화하려는 노력이 그다지 깊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기존의 ‘스타 이미지‘ 와는 다른 털털한 매력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이효리의 사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끌어낸다거나, ’문희준 안티 현상’ 을 의도와 결과가 다른 메피스토 패러독스로 일반화하거나,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연예기획사로 성공한 양현석의 사례를 삼성그룹 분화 이후의 CJ그룹의 사례와 묶어내는 방식은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그룹 신화의 ’따로 또 같이‘ 활동방식에서, 확고한 브랜드를 바탕으로 사업의 위험요소를 줄이려는 프랜차이즈 성공 키워드를 끌어내는 정도는 꽤 좋은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려는 취지에는 다소 못미친다는 것이죠.

‘경제학’ 이라기 보다는 ‘경영학’ 에 가깝습니다. <엔터테인먼트 경제학> 보다는, (가칭) <엔터테인먼트 트렌드 읽기> 정도가 더 정확한 제목이 되지 않았을까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아이템과 트렌드를 정리하고자 하는 분들께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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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7색 - 일곱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곱 개의 세상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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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3년쯤 되었을겁니다. 중국에 대한 책을 모아서 읽었는데, 무척 눈에 띄는 책이 있었습니다.
<저 낮은 중국> (퍼슨웹) 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당시 숱하게 쏟아지던 중국 관련 서적들과 이 책과의 차별성은 바로 '현장감'이었죠. 이전에 수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쉬이 느끼지 못했던 갈증이었기 때문에, 반가움이 컸습니다.
현장감의 비결은 인터뷰라는 형식에 있었는데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집필하는 방식이 아니라, 17명의 각 계층의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묶어놓은 것이었죠.

저는 이때부터 인터뷰에 관심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퍼슨웹' 출판사가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커뮤니티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알게되었고, 인터뷰만을 전문으로 하는 코너를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7인 7색>은 인터뷰라는 형식만으로 충분히 흥미를 끌었던거죠. 저자인 지승호씨는 익히 알려진 인터뷰 전문 기자라고 합니다. 웹진 데일리 서프라이즈에서 '지승호의 인터뷰정치'라는 코너를 운영하셨었고, 몇권의 책을 쓰셨더군요.

<7인 7색>의 최소공약수는 소위 '진보적'이라고 불리우는 정치인 지식인들 - 박노자, 유시민, 김규항, 진중권, 이우일, 하종강, 노회찬 - 입니다.
제목에서는 마치 7가지의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지승호씨가 바라보는 그들 사이에는 최소한의 공통점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인터뷰 내용에서 인터뷰이(interviewee) 서로에 대한 생각을 묻는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지승호씨가 이들을 '화해시키려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저도 대략 동감합니다.

아쉬운 점은, 인터뷰 특유의 현장감이나 기획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것인데요,
인터뷰이 개개인이 내면의 삶을 넘어 (익히 알려진) 외면화된 활동을 가지고 있는, 소위 '유명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지승호씨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터뷰 내용은 인터뷰어의 기획보다는, 인터뷰이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질문 중에는 인터뷰이가 이전에 썼던 글이나 활동에 대한 자료를 근거로 한 것들도 있으니까요.

인터뷰이에게 편향적인 인터뷰는, 이미 인터뷰이들의 활동을 잘 알고있는 독자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을겁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 훨씬 많이 있지만요.

# 박노자

국제정세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룹니다. 오세철 교수가 말했듯이, 한국 사회주의 운동에서는 무정부주의나 아나키즘을 찾기 어려운데요, 사실 이 둘은 사회주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국가관을 거부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다르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기 때문이죠. 아나키스트임을 표방하는 박노자 선생은 7인의 인터뷰이 중에서 가장 (현 체제로부터) 열린 자세로 국제정세를 얘기합니다.
그는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패권 싸움을 가열화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극단의 무력대립은, 단기적으로는 사회억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쟁의 자기파괴적인 특성으로 인해 혁명적인 전망을 열어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전 이후의 소련, 베트남 패전 이후의 미국처럼 말이죠.

그 외에도, 한국경제와 부동산, 군대문제, 민족주의, 육아, 교수의 귀족화, 등에 대해서도 발언합니다.
"어느 자본주의 국가든 성장기가 끝나면 계급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부의 대물림' 인데요, 70년대 조성된 중산층의 분화, 사회 양극화가 굳어져서 더 이상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다는 것이죠. 이런 불만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라는 성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있듯이, 70년대의 경제개발과 오늘날의 경제개발이란 분명히 다른 것이죠. 산업은 더 적은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고, 이것은 곧 산업의 개발과 일자리 창출의 연결고리가 미약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노동 배제적인 어떤 경제모델도 지속 불가능하겠죠.

# 이우일

이우일 작가의 만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 다소 낯설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함께 비루해하기 보다는, <순풍산부인과>를 보면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역사물이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제 취향은 '현실성'에 있는데요,
별로 유쾌하지 않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현실성이 전제되어야 그 감정이 '날것'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날것이 아닌 가짜 감정, 인스턴트 감정인 바에야, 기뻐도 그만 슬퍼도 그만이잖아요.

# 유시민

유시민 의원은 스스로를 이렇게 평합니다.
"나는 온건 진보 혹은 중도 좌파적인 성향의 정치인이다. 경제 정책 분야에서는 다소 보수적이고,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다소 진보적인, 그렇게 결합되어 있는 소셜 리버럴"

그를 비롯한 개혁세력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뒤에 등장하는 하종강, 김규항씨의 평과 유시민 의원 스스로의 평이 다르지 않아요.
이들 이 말하는 개혁과 국민들이 기대하는 개혁은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중점이 달라요.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전자를 아무리 제대로 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추상적으로 '경제의 민주화'죠. 나의 의사가 온전히 정치에 반영되는 것이 정치의 민주화이고 정치개혁이라면, 나의 노동이 나의 경제활동이 온전히 나의 무난한 생계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 경제의 민주화입니다.

물론, '경제 정책 분야에서 다소 보수적'이라는 것을 두고 시장만능주의라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현재 한국 시장체제에 그의 문제의식을 옅볼 수 있습니다.
하종강 선생은 "어느 구조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유익과 해를 결정한다." 고 말했습니다. 유시민 특유의 합리성과 유쾌함도 딱 거기까지만이겠죠.

# 진중권

지식인으로서 자기정립이 매력적입니다. 지식인이 지사인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인데요, 이제 지식인도 엔터테이너(entertainer)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의 변명>에서, 진실과 존재조건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로 지식인을 규정했는데요, 진중권에 따르면 그 존재조건이 변했다는겁니다. 존재조건이란 쉽게 얘기해서 먹고사는 문제인데요,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시장에 달려있는데, 과거 권력에 대한 폭로가 청와대를 대상으로 했다면 이제는 시장이라는거죠. 생존을 앞에 두고, 지식인의 갈등은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는겁니다.
교수 노릇을 하고 있는 그이지만, '진중권 교수' 가 아닌 '진중권' 으로 불리우는 것을 개의치 않는, 그만의 냉정한 자기정립입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균형자로서의 진중권의 모습입니다. 강준만 선생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균형자의 역할을 자임합니다. 개혁세력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수구세력들을 돕지 않으려면 전략적으로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저로서는 좀 생소한 모습이에요. 물론, 그는 민주당 구주류에 대해서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 강준만 선생을 비판했지만, 정도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 노회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07년 대선을 두고, 보수 대 진보의 양대 축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경쟁이 막바지에 달할 것이라는거죠.
노회찬 의원의 예측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양대 우파정당간의 극한 경쟁과 더불어 민주노동당의 실력발휘가 필수적이겠죠. 지금까지의 민주노동당은 그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것 처럼, 이미지에 의해서 지지율을 유지해가는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정당의 스펙트럼, 그 중에서도 경제 정책에서의 스펙트럼은 주관적으로만 결정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국가 내 산업의 경제적 지불능력이 객관적 요소로 존재하는 것이죠. 유럽의 좌파정당들 역시, 충분한 산업발전의 토대 속에서 성장하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쇠퇴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성을 당장의 집행가능성으로 풀이한다면, 민주노동당 경제정책의 폭은 굉장히 좁아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현실성을 따지면 정책의 독자성이 떨어지고, 보수 정당들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려면 당장의 선거일정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지지나 호감을 얻기 위해서 나의 정체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는다"는 노회찬 의원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 하종강

진보적 지식인들의 화해를 추구한다던 지승호씨와 부채감을 지고 묵묵히 활동하는 하종강 선생의 각축전(?)이 드러난 인터뷰였습니다.
소위 제도권과 타협했다는 배일도 의원에 대해서 조직운동과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부분과, 조직운동을 할 자신은 없지만 '평생 노무상담이나 하고있다는' 자평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직한 선생의 모습을 응원합니다.

# 김규항

김규항 선생의 블로그를 가끔 들르면서, <고래가 그랬어>의 출간에 대한, 그리고 두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를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화제로 등장하는군요.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실제 삶이 연결되지 않는 세대를 상대로 글을 쓰는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는, 아이들의 인권교육에 대한 선생의 고민이 인상적입니다. 타성에 물드는 것을 다시 한번 경계하게 합니다. '조직'이란 좌우와 규모를 구분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그의 고민에는 약간의 갈증도 담겨있습니다. 그간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 라며 강준만 진중권을 비롯해 네티즌 다수가 개혁 우파에 힘을 싣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키려 노력해왔던거죠.
하지만, 하종강 선생이 말한 것 처럼, 왕도가 없는 것이 대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장의 지지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장을 견지해야겠죠. 길 잃은 배가 등대의 불빛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등대가 날씨와 상관 없이 불을 밝혀왔기 때문인 것 처럼요.

"전통적인 좌파의 논리 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급진성을 유지하면서 미래의 비전을 확보하고 싶다." 는 그의 이후 행보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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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살리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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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는 총 8장으로 되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크게는 조선ㆍ중앙ㆍ동아일보의 잘못된 보도행태를 다루고 있고, 작게는 대통령 노무현과 민주당 내 개혁세력 (오늘날의 열린우리당) 에 대한 쓴소리입니다. 300여쪽에 달하는 본문은 대부분 조중동의 사설과 기사들을 인용하고 반박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조중동에 대한 강준만 선생의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그 스스로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매개로 해서 강준만이 펼쳤던 싸움이, 근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의 수구 기득권 세력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자신은, 특정 정권을 방어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존 기득권 세력과의 온전한 단절을 위한 목적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이 지적하고 있는 조중동의 숱한 보도행태를 가장 잘 요약하는 표현은 '당파성'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가지 사례들은, 조중동의 당파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다양한 표현양태인 것이죠. 정치적인 지향과 논조는 필요하지만, 당파성만 너무 앞세워 언론으로서의 기본규범까지 어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선생의 충고입니다.
물론, 선생의 글은 어렵지도 딱딱하지도 않습니다. 선생의 글이 주는 희열이란, 익히 알려져있는 것 처럼, 성실함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인용과 비판문답지 않은 해학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쾌한 선생의 글에는, 함정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련의 책들이 현실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역사의 기록이라는 의미에만 머물러도 좋은 건지,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이것은 여전히 600만부 이상을 간행하고 있고, 막강한 의제 설정으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아성에 대한 토로이고, 전략과 전술을 강조했던 선생이니만큼 그동안의 '글쓰기를 통한 공격전략'에 대한 회의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의지와 별개로, 독자들은 선생의 글을 읽으며,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한걸음 떨어져 자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숱한 저서를 냈고,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셨던 선생의 고백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당파성이란 모든 형태의 의식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특징입니다. (선생이 말하는 '당파성'이란, 마르크스-레닌주의 본연의 당파성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약하자면, 당파성은 글을 통해 공격한다고 해서 약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거죠. 조중동 뿐만 아니라 어떤 세력이라도, 당파성은 곧 존재의 의미일 것입니다. 선생의 주문대로 당파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해체'이거나 혹은 전혀 다른 세력으로의 '변화'를 의미할 것입니다.
소위 "니네 너무 심하니까 좀 살살해라." 라며 조중동의 당파성 약화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지면의 50%를 부동산 광고로 채우는 신문과 절절하게 구독료 인상을 펼치는 신문의 논조는, 크게 볼 때 딱 그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언론의 논조가 수익창출모델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것을 '펜'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들에 대한 헛된 기대를 거두고 정면 승부를 해야합니다.

정면승부란 조중동을 압도하는 의제설정을 의미할 것입니다. 판매부수로 표현되는 의제설정력이, 단순히 자본의 규모나 잘못된 독점판매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분명 신문의 내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죠. 즉, 비주류 언론 역시 조중동을 대체할 만한 독자적인 의제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불공정한 경쟁구도보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빠진 경쟁이란, 승부가 결정된 경쟁이거나, 결국 그들과 같은 매커니즘으로의 귀결을 의미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선생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옹호가 전략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에게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부이기 이전에, 수구 기득권 세력이 사정없이 흔들고 있는 정부라는 것이죠. 양당 구조인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노무현 정부의 몰락은, 곧 수구세력들의 재집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자칫 "좌우지간 잘못했다." 라며 수구세력들의 비판과 영합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의 전략이 전략적으로도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이 직접 말씀하셨듯이, "자기가 잘해서 점수 딸 생각은 않고 남 안되는 것에 편승해 이익 보려는건 부도덕하며 성공하기 어렵다." 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강준만 선생께서 좀 더 정치적으로 구체적인 발언을 하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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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나의 꿈 - 할 일 많은 경기도 일 잘하는 김문수
김문수 지음 / 미지애드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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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오리새끼‘
이제는 경기도지사가 된 국회의원 김문수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재야에서는 변절자로, 한나라당에서는 빨갱이로 불리우는 자신의 처지를 나타낸 것이죠. 71년 현장에 투신한 이래, 수배와 고문, 구속의 고통 속에서 74년 민청학련 사건, 79년 도루코노조 위원장, 85년 구로동맹파업과 86년 5·3 직선제 개헌 투쟁에 이르기까지, 그는 참 열심히 민주화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94년 집권 민자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재야에서는 변절자로 한나라당에서는 빨갱이로 부르는 것입니다.

87년 6월항쟁이 6·29 선언을 이끌어냈을 때 그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2년 6개월간의 감옥생활에서 사면되고, 유신헌법과 체육관 선거도 사라지고,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어 25년 만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김문수. 그가 어떤 심경으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젊어서는 좌파로 지금은 우파로 여겨지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대한민국 선진화 라는 단어 앞에 나는 변한 것이 없다.”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대한민국 선진화‘ 이것이 정치인 김문수의 변하지 않은 정치철학인 것입니다.
제도권에 들어갔다고 해서, 야당이 아닌 집권여당에 들어갔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87년 6월항쟁은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참여 속에서 이루어졌고, 500여만명이라는 거대 집단의 최소공약수는 정치의 민주화였습니다. 직선제로 대표되는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그가 더 이상 재야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최소한의 절차를 의미할 수도 있고,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사회의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은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그가 가진 정치철학 - 탈규제, 사교육 옹호, 등 - 과 정당하게 경쟁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시장에 대한 정치적 규제는 시장의 실패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수도권정비계획‘은 그것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균형개발‘ 이라는 민주적 목표와 ’서울과 지방의 격차‘ 라는 시장의 실패로부터 기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김문수 지사가 공유하고 있는 정책에는, 애초의 목표와 문제의식은 생략된 채로, ’수도권정비계획의 실패’만 있을 뿐입니다.

규제는 시장에 대한 규제이지, 개발에 대한 규제가 아닙니다. 규제는 정책적 무기력함에도 불구하고, 비민주적인 시장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요, 민주적 개발을 위한 노력입니다. 수도 이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수도권정비계획, 공교육의 옹호, 등의 실패가, 이들의 탈규제·성장만능주의의 정책적 성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파들이 이것에 대답할 수 있어야 진정한 정치적 경쟁이 가능합니다. 지난 5·31 지방선거와 더불어 다가올 대선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이들의 집권이 이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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