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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김용욱 옮김 / 책갈피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이성" 누구나 한번즈음 들어봤을 법한 경구입니다.
대인관계에서의 잘못이든 사회의 부조리이든 그것을 접하는 첫 감정은 '분노'이기 마련인데, 그 분노가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분노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뜻일겁니다.

"화가 나면 열을 세라" 는 격언처럼, 분노는 곧 사그러드는 법이니까요.
더군다나 그것이 일회적 일시적이거나 돌발적인 잘못이라면 모르되, 끊임없이 반복되는 잘못이라면 더욱 그렇구요.

무엇이 그로 하여금 혹은 이 사회로 하여금 한번즈음, 아니 두세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겁니다.

이런 태도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해서도 그대로 드러나느데요,
단순히 전쟁에 대한 반대, 혹은 절차상의 문제 - UN 안보리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거나,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거나, 등 - 을 지적했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 막연한 평화주의자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관심을 접어두기로 한다 하더라도,
미국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명분조차 없는 전쟁을 감행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 이란 너무나 뿌리깊고 대단한 것이어서, 설사 그것을 올바르게 지적했다고 해도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테니까요.

전쟁을 막아내는데 실패했던 평화주의자들이 이점을 배웠을까요?

캘리니코스의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의 뒷배경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전쟁을 분석하는 틀을 점점 확대 심화시켜나가는 방법인데,

총 5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본문은, 전쟁을 합리화하려는 억지 논리에 대한 (그리 어렵지 않은) 반박을 시작으로 해서, 이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한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자)이라 불리어진 미국 공화당 우파의 행보에 대한 추적, 그리고 1945년 전후에 제출되었던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 그 전략의 일환인 중동에 대한 정책을 다루고 있고, 마지막으로 미국을 포함한 제국주의의 역사 속에서 미국의 정책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억지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닐겁니다. 그건 기성 언론들에서도 조심스레 던지는 의혹이기도 하죠.
캘리니코스는, 왜 그들이 이런 서푼짜리 억지논리를 내세워가며 전쟁을 감행해야 했었는지 밝힙니다. 억지 논리 뒤에는 그걸 감행했던 공화당 우파들이, 공화당 우파들의 뒤에는 뿌리깊은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이, 한 국가의 국가정책 뒤에 이들을 움직이는 내적인 동학(動學)이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이론과 행동은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캘리니코스가 19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것은 행동의 축적이 곧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론은 행동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끔찍한 침략전쟁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의 이해는, 분석은 어디까지 나아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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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 / 책갈피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인 존 몰리뉴가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의 기관지에 10년 가까이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은 것입니다. 대략 어마어마한 분량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일부만을 주제에 따라 선별하여 재분류한 것이죠.

우선, 많지 않은 분량과 매끄러운 번역이 마음에 드실겁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마르크스주의의 훌륭한 입문서라는 점입니다.

몰리뉴씨는 서문에서 이 책이 목표로 하는 독자층이, 현실의 억압에 저항하고자 하는 전투적 노동자들, 그리고 이들에게 사회주의적 전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각 칼럼의 제목들은,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오해와 편견들이고, 칼럼의 내용은 그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과 대안입니다.
더구나, 칼럼의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고 읽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연구소의 두터운 책 속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학자와 지식인들이 여는 심포지움에서 논의되는 사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뺑이치는 작업장에서의 10분 휴식시간에, 붉은 머리띠를 동여매고 앉은 아스팔트 위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상입니다.

현실에 순응해 살았고,
참다못해 현실에 저항했고,
순진하게도 자신의 정당한 목소리를 사회가 이해해줄거라 생각했지만,
동시에 집중포화를 받으며 나뒹굴었던 사람들,
그동안 세상을 너무 몰랐다며, 이제 진정한 사회의 모습을 알았다던 사람들,
싸우는건 옳지만 두렵고 겁난다, 지는 싸움은 하고싶지 않다며 다시 현실에 기죽였던 사람들,
대안은 뭐냐 사회주의라도 하자는거냐며 하늘에 외치던 사람들,

내가 만나고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목차를 첨부합니다. 목차의 질문들을 한번씩 던져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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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도대체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하지만 인간 본성은 바뀌지 않는 법…"
경영인은 꼭 있어야 하나?
혁명은 폭력을 뜻하는가?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다 똑같이 만들어 버릴 거야…"

2장 어떻게 해야 사회주의에 이를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월요일을 싫어할까?
착취란 무엇인가?
'자본'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어떻게 경제 불황을 낳는가?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무엇이 사회주의 혁명을 재촉하는가?
노동자 권력이란 무엇인가?

3장 올바른 인식에 이르려면…

"하지만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한줌밖에 안 되잖아"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무엇인가?
저들의 진리와 우리의 진리
하지만 중요한 점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4장 지배 전략

사회주의가 되면 민주주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국가는 아무 편도 아닌가?
누구를 위한 법과 질서인가?
지배계급은 어떻게 지배를 유지하는가?
흩어지면 죽는다

5장 사회주의자는 다음에 대해 무어라고 주장하는가?

'인구 과잉'
종교
전쟁
테러
계급
범죄
가정

6장 세계는 이렇게 생겼다

국익을 지켜야 하지 않는가?
이주에 대해서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는 민족해방 운동에 반대하는가?
'무조건적 그러나 비판적' 지지란 무엇인가?
러시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중국은 좀 다른가?
하지만 세계 동시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7장 사회주의 전략

"하지만 이미 대중적 노동자 정당이 있는데…"
노동당은 바뀔 수 있는가?
조직은 필요하긴 한 거야?
노동조합은 어떤 구실을 하긴 하는가?
국유화가 시장보다 낫긴 하잖아?
혁명적 지도란 무엇인가?
운동은 많아도 전쟁은 하나뿐
왜 혁명정당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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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건설을 향하여 - 레닌 1893 ~ 1914
토니 클리프 지음, 최일붕 옮김 / 북막스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본래 토니 클리프가 쓴 레닌 전기 3부작의 일부분(1부)입니다.
하지만, 레닌이라는 혁명가가 생의 대부분을 정당을 건설하는데 보냈기 때문에, 그의 전기가 곧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건설사가 되었습니다. 1880년대 소규모의 마르크스주의 학습모임에서 시작해 1914년 명실상부한 대중정당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가까운 한국을 두고, 굳이 먼 나라의 정당사를 둘러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역사상 유일하게 노동자 혁명을 수행한 정당이니 만큼 일종의 벤치마킹이죠.
"혁명정당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정당에 비해 뭐 좀 특별한거 없나?" 그저 이런겁니다. ^^;

적어도 당의 건설과정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정당의 골간에 직업적인 정치인(혁명가)이 있고, 이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는 이들을 전국적으로 규합한 후 당을 창설합니다. 볼셰비키당 역시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의 획득ㆍ유지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견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한 정치적 단체” 라는 사전적 정의에 한치 어긋남이 없는 것이니까요.

물론, 형식상에서 약간의 공통점은, 더 많은 차이점과 내용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차이를 전제로 합니다.

일단, 이 정당은 의회가 생기기 훨씬 이전에 설립되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한데요,
볼셰비키당의 전신격인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 설립된 것은 1898년, 러시아에 최초로 의회(두마, Duma)가 생긴 것은 1906년입니다. 1905년 '피의 일요일' 로 시작된 대중적인 시위에 대한 양보조치였죠.

물론, 이 당시 의회도 없는 러시아에서 덜컥 정당을 만들게 된 것은,
이미 서유럽 몇몇 국가들에 의회-정당 체계가 성립되어 있던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무엇보다, '정당'이 우리가 익히 생각하듯 '선거조직'이 아닌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는 집단' 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당원의 구성입니다.
본문에 통계자료가 나와있는데, 노동자의 비중이 월등하게 높습니다. 한국에서야 인구 대부분이 노동자이니 별 대수로울게 없지만, 이제 막 자본주의가 개막했을 뿐더러 인구의 절대 다수가 농민이었던 당시 러시아의 정황을 고려한다면 한번쯤 놀랄만한 일일겁니다. 대부분이 노동자이고, 약간의 농민과 학생당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번째는, 조직의 모양새.
우리가 알고있는 정당은 대부분 지역구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요, 볼셰비키당은 공장과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있죠. 당시 러시아의 의회가 간선제로 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에, 지역구 별로 직선제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는 한국과 비교할 상황은 아니겠지만, 당의 편재 자체를 공장 기반으로 하고있다는 사실은, 이 정당이 누구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대목일겁니다.

물론, 이런 형식상의 차이점은 내용이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치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되, 어떤 방식의 정치권력의 장악이냐가 다른 것이죠.

<마르크스주의와 당> 독서후기에서 언급했던 바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더욱 세세하게 다루고 있는데요,
이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느냐 마느냐는 두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것, 두번째는 기존 국가기구를 활용하지 않을 것 입니다.

첫번째가 없는 두번째란 테러나 쿠데타가 될 것이고, 두번째가 없는 첫번째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형태의 권력장악일진데,
이들이 이 두가지 경우 모두를 거부했고, 이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1917년 10월혁명은 이 두가지가 모두 충족된 조건에서 일어나게됩니다.

물론, 이들이 의회를 비롯해 기존 국가기구의 권력기구를 원천적으로 무시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9년에 의회가 설립되었었고, 제정 러시아가 몰락하는 1917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두 기구 모두에 약간의 참여를 했었어요.
'약간의 참여'라는 것은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겁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였으니까요. 이것에 도움이 될 것인가가 참여의 여부와 정도를 결정했습니다.

얘기가 다른 곳으로 많이 흘렀는데요,

한국의 정당정치에 신물이 나신 분들이라면,
정당이란 대체 무엇을 하는 조직이며,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활동하는지, 굳어진 고개를 돌려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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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5-11-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독서후기에서 한가지 빼먹은 것이 있군요.

이 책은 나로드니키 운동을 언급하며 시작됩니다.
나로드니키 운동은 테러주의입니다. 러시아의 봉건적 성격과 짜르의 폭압정치에 분노한 지식인들이 제정 러시아의 각료들에 대한 테러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운동이죠.

1860년대부터 시작되어, 레닌이 태어난 1870년에는 이 운동이 한창 활발했었거든요. 레닌을 비롯한 당시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나로드니키 운동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성립됩니다.
러시아에 마르크스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플레하노프라는 아저씨가 바로 나로드니키 운동에서 분리 독립한 사람이구요. (사실, 이 아저씨는 완전하게 분리독립하지 못했는데, 레닌은 이 아저씨를 비판하며 완전하게 독립하죠.)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이고, 혁명은 곧 테러니까, 마르크스주의가 곧 테러리즘이다.' 라는 일반적인 편견에 대해,
꼭 얘기해주고 싶은 사례였어요. 마르크스주의는 테러리즘에 반대합니다. 후후
 
마르크스주의와 당 - 마르크스에서 그람시까지
존 몰리뉴 지음, 이진한 옮김 / 북막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일반적으로 '정당' 이라 하면, '선거' 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정당의 목적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들을 ‘선거인’이 아닌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것이겠죠.

선거란, 목적이 아닌 수단입니다. 그들이 정치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죠.

선거는 수단이라고 했으니, 분명 다른 수단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즉, 정치를 목적으로 하되, 선거에 연연하지 않는 정당도 논리적,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류의 정당은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노동자의 힘’ 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당이 있구요. (이들은 스스로를 정의하기를 ‘비제도적 투쟁정당’ 이라 부릅니다.)

여튼, 중요한 것은, 정당에게 선거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선거에 출마하고 출마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정의하건데, 정당이란 정치조직이지 선거조직은 아닐테니까요.
정당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의 획득ㆍ유지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견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한 정치적 단체”입니다.

존 몰리뉴의 <마르크스주의와 당>은, 마르크스-레닌-로자-트로츠키-그람시 에 이르기까지 당과 관련한 각 혁명가(사상가)들의 이론과 실천이 어떻게 성립 발전되어 왔는지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도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정당을 필요로 하였지만, 이들에게 수단은 선거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회문제의 원인을 특정 정치인, 특정 정책이 아닌, 자본주의 경제체제 그 자체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죠. 이들은 선거를 통해 행정부 또는 입법부를 장악하는 것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몰리뉴씨가 기대한 독자층은, 자본주의 의회정치에 대한 기대를 거두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다른 대안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설사 의회 밖 정치라 할지라도 말이죠.
몰리뉴씨의 독자층을 묘사하기 위해 아래의 한 단락을 할애합니다.

「이론적 사상적 대안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한 역사는 있지만, 억압받는 이들의 투쟁이 없었던 역사는 없었습니다. 소련 중국의 변화와 상관없이, 온갖 포스트 사상들이 불러온 논쟁들과 상관없이, 신자유주의의 광풍에도 상관없이, 자본주의가 존재했고 억압받는 이들의 투쟁이 존재했죠.
그리고, 투쟁이 거세질 수록 사람들의 자신감도 커집니다. 급기야 이들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라고 한목소리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다른 세계를 만들까?” 라는 질문에 각각 다른 대답을 합니다.」

몰리뉴는 이 독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대중투쟁과 심지어 대중혁명조차도 자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 지역 네트워크들을 통해 분출할 수는 있지만, 그런 형태로는 자본주의를 정말로 패배시킬 수 없다. 이런 과제를 위해서는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라는 지도부가 필수적이다.”

그의 얘기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유할 수 있는데,
다른 세계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기존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요.
기존 체제와의 싸움, 새로운 세계의 전망을 수립하는 일은, 일치된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 - 그것은 불가피하게 전부를 포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 의 일치된 ‘전망’, 이것을 곧 정당이라 할 수 있겠죠.

몰리뉴가 소개하고 있는 거의 100년간의 정당이론은 이에 대한 것입니다. 1848년에 쓰여진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주의당 선언>으로 부터 1930년의 안토니오 그람시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사회주의 정당이론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물론, 옳다 그르다라는 대답을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얘기는 이렇게 시작해야합니다. “어떻게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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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논쟁
크리스 하먼 지음 / 풀무질 / 1995년 9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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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말 그대로 논쟁을 모아둔 것입니다. 논쟁은, 소련이 해체된 90년대 초반,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발간하던 이론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주제는 "소련의 몰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것이었죠. 책에는 주로 두명의 집필자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데, 크리스 하먼과 에르네스트 만델은 각각 특정 정치그룹의 대표적인 이론가들입니다.

물론, 이 둘의 논쟁과 상관없이,
당시의 지배적인 분위기란 '사회주의의 몰락' 이었고, 잠정적으로라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대부분의 정치세력들이 이에 순응했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소련이 사회주의인가 아닌가 라는 논쟁은 아니며, 이 두 집필자 모두 소련을 사회주의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먼의 경우는,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91년 소련의 해체는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 친 것 뿐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고,
만델의 경우는, 소련은 10월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 속해있었는데, 스탈린과 같은 관료들에 의해 점점 자본주의로 퇴행하다가 결국 완전하게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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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은 유효기간이 지난게 아닐까요?
중국과 소련이 완전하게 자본주의국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지금, 이론적 탐구라는 측면 외에는 꽤나 재미없는 논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북한 쿠바를 모종의 사회주의국가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 시각의 근본에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 '일국 폐쇄경제', '중앙집권적인 국가관료', 등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런 왜곡된 관점이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판 마저도 '대안 없음' 으로 귀결시키는 자석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여집니다.

이 논쟁의 유효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목은 논쟁이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동시에 분석적이라는 짧은 평을 덧붙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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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대학시절 한 선배를 만났는데, 안부를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노동운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말씀하시길, "요즘 민주노총에 대한 여론이 별로 안좋던데.." 라며 걱정을 하시더라구요.

이 선배의 걱정은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을 동일시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죠.
노동조합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당하고, 취업비리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대공장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 어렵다는 정부의 선전도 한몫 했을겁니다.

하지만, 노동운동이란, 말 그대로 노동자운동이지 민주노총운동이 아니죠.
민주노총이 분명 잘못된 길을 가고있지만, 사회적으로 양극화되는 노동자들의 처지나 정당한 요구가 잘못된 길을 가고있는 것은 아니죠. 노동계 내부에서도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빈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라는 기구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정부의 선전은, 대공장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만델의 입장이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습니다.
만델은 소련이 스탈린 관료집단에 의해 타락의 길을 가고있지만, 10월혁명으로 이룩한 노동자국가임에는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타락한 노동자국가' 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소련의 억압받는 노동자들이 정치혁명을 일으켜 스탈린과 같은 관료집단을 일소하기만 하면 다시 본연의 노동자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소련의 해체는, 노동자국가로 돌아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잃어버린 '패배' 라는 것이죠.

반면에 하먼은, 소련이 스탈린 집권 이래로 이미 (국가)자본주의화 되었고, 소련의 해체는 비능률적인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질 친 것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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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먼과 만델의 입장이 처음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스탈린의 집권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물론, 만델도 하먼도 소련을 사회주의국가로 바라보지는 않았습니다.
소련은 10월혁명으로 자본주의를 벗어났지만, 벗어난 자본주의의 압력도, 다가가야 할 사회주의의 압력도 동시에 받고있는 불완전한 체제인 것입니다.

양쪽에서 힘을 받고있던 소련에서, 기점은 스탈린의 집권인데,
만델에게 그저 '타락'일 뿐인 스탈린의 집권은, 하먼에게는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反혁명'인 것입니다.
반대로, 만델에게 자본주의로 돌아간 '反혁명'인 소련의 해체는, 하먼에게는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을 딛은 것 뿐이구요.

91년 이후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경제법칙(가치법칙)이 작용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지만,
하먼의 주장대로라면, 소련에는 이전부터 이미 가치법칙이 작용하고 있었던겁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 이전까지는 폐쇄경제를 유지했던 만큼, 제한적이었지만 말이죠.

하먼은 제한적 가치법칙의 작용을 군비경쟁에서 찾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유시장경제의 다음 단계로 지칭되는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와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은 밀접하게 유착하게 되어,
자본 사이의 경쟁인 자본주의 가치법칙이 곧 국가간의 무기 경쟁과 전쟁으로 왜곡된다는 것이고, 소련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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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장의 하먼의 것에 가깝습니다.

대규모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인 소유의 철폐라는 것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형식일 뿐이지 내용 자체는 아닐테니까요.
집중화시킨 생산수단을 민주적인 계획을 통해서 잘 이용하느냐 아니냐가 더 근본적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의 집권 이후에 생산계획 자체가 인민들의 동의 없이 소비재 보다는 중공업 위주로만 폭압적으로 이루어졌고,
스탈린 스스로도 일국에서도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일국사회주의' - 실제로는, 폐쇄적 자본주의 경제에 불과했지만 - 를 주창하면서 사회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했다는 점을 보면,

그것은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제 형식과 상관없이, 아니 그 형식 때문에 더욱 왜곡된 자본주의 국가로 회기한 것이죠.
소련 해체 이전부터 독일, 헝가리, 폴란드, 중국, 등에서 체제 저항적인 투쟁이 있었다는 점도 그것을 뒷받침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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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논쟁적인 성격의 글 보다는 좀 더 분석적이고 실증적으로 쓰여진 <소련 국가자본주의>를 비롯해서, 논쟁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정황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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