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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당대총서 14
하워드 진 지음, 이아정 옮김 / 당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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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하워드 진

- 미국의 역사학자, 정치학자, 사회비평가, 작가.
- 21세에 2차 세계대전에 공군 폭격수로 참전.
- 34세에 스펠만 대학에 교수로 부임. 대학생들의 학습권, 흑인들의 투표권을 위해 활동하다 해임.
- 42세에 보스턴 대학에 교수로 부임. 베트남전 반대운동, 이라크전 반대운동에서 활동.
- 현재 보스턴 대학 명예교수
- 저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스펠만 대학 교수시절 참여했던 흑인 시민권 운동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마르크스가 뉴욕 한 복판에 나타나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는 내용. 희곡.
<미국 민중사> : 주류 역사를 뒤집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진 미국 민중의 역사를 다룸.
<오만한 제국, 미국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
그 외 <불복종의 이유>, <살아 있는 미국 역사>, <전쟁에 반대한다>,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1. 들어가며

- 일부 친미 인사들을 제외한다면, 노골적으로 미국이라는 일개 국가를 ‘절대선‘으로 찬양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옳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궁극적 동의. 하워드 진이 다루는 것은 이 지점이다. 그는 이것을 ‘현실주의’라고 지칭한다.
 
- 그는 이러한 현실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은폐된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일환으로, 외교, 전쟁, 법 정의, 경제 정의, 언론 자유, 반공주의, 등 미국이 선점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의 실상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를 들어 비판한다.
 
- 그는 역사학자로서 자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신의 행적(어린 시절, 전쟁 참전)을 들어가며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역사는 사료를 취사선택하는 순간부터 본질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으며, 모든 역사적 왜곡은 사료를 위조하는 것이 아닌, 사료를 수집, 편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역사학자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편견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는 공산주의를 지지하며, 더 많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책의 모든 내용은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독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마지막 11장 [궁극적인 힘]에서 이것을 위한 수단으로 ‘비폭력직접행동’을 주장한다.

2. 내용

2-1. 경제

(1) “열심히 일하면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 가난하다면 스스로를 원망하라.”

- 오늘날의 생산 방식은 과거와 달리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시장의 결정(임금)만으로 생산에 대한 기여도를 측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시장논리가 아닌 이성과 도덕에 기초해서 판단해야 한다.
[사례] 무기생산자와 교사의 임금 차이, 예술가들의 생활임금, 가사노동

- 이윤을 동기로 한 생산은 때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윤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맞게 생산을 결정해야 한다. 또한, 오직 이윤만이 생산의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례] 코카인 금지와 담배 허용(미국 내 2천 명과 39만 명), 아편전쟁과 군수산업, 환경오염과 과잉생산(2억 5천만 인구에 1억 대 자동차)

(2) “정부의 개입 보다는, 시장에 자유방임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

- 빈곤층에게만 자유방임을 주장할 뿐, 실제 부유층에게는 끊임없이 정부가 개입되어 왔다.
[사례] 영국 식민지하 토지불하, 기업에 대한 채권보증과 보조금, 대륙횡단철도?해운?고속도로 등 국가기반산업 개발시의 정경유착, 해외 다국적 기업의 재산보호를 위한 군대 동원(콰테말라와 유나이티드 프루트, 칠레와 IT&T), 항공사에 대한 정부수주계약(록히드, 노스아메리카, 에어로젯), 흑인노예/소작인/노동자에 대한 통제법안(반지대운동, 8시간노동제 요구파업)

(3) “빈곤층에 대한 복지는, 생산의욕을 감소시킨다.”

- 부유층에 대한 감세정책과 달리, 빈곤층에 대해서만 인센티브가 생산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일관되지 못하다.

“이 땅에서 나가.”
“왜?”
“내 것이니까.”
“너는 그걸 어디서 얻었지?”
“우리 아버지한테서”
“그는 그걸 어디서 얻었지?”
“싸워서 얻으셨지.”
“그래, 그렇다면 나도 그것을 위해 너와 싸울 테다.”
(p289, Carl Sandburg의 <the people, yes>)


2-2. 법

(1) “헌법은 우리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최고의 보증이다.”

- 법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믿음과 달리,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진 입법가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한, 법은 사람(사법가)들에 의해 해석되고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의 조항만으로 언론의 자유를 말할 수는 없으며,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가 진정으로 중요하다.

- 실제 사법가들은 단순한 법 위반 유무로 판단할 수 없는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까지 판단하면서 사건을 왜곡해왔다. 정치적인 사안은 선출직 공무원들에 의해 판단되어져야 한다.
[사례] 사전검열의 금지와 사후처벌의 용인

(2) “법 위반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일단 법을 어기면 기꺼이 처벌받아야 한다.”

- 시민불복종 운동은 사회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고의적인 법률 위반이다. 그것은 무정부적인 불복종이 아니라, 맹목적인 복종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행위이다. 이것은 법보다 정의가 우선하며, 법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에 기반한다. 실제 대규모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인한 혼란은 일시적일 뿐, 더 합리적인 법 제도를 구현하는 데에 기여한 바 있다. 실로 끔찍한 사회혼란은, 불복종이 아닌 복종에서 기인하였다.

- 우리는 국가와 정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를 내세우지만, 정부 역시 특정한 이해관계 집단에 불과하다.
[사례] 베트남전쟁과 오브라이언 사건, 콘트라 사건과 위누스키의 44인

인류 역사에서 반역이란 단지 이따금 일어나는 고통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었고, 권력에 맞서 반항하기보다는 복종해 온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그 자연스런 추세상 격렬한 폭동으로 치달은 몇몇 경우가 아니라, 사람들이 불가항력적인 부당한 상황에 직면하여 갖게 되는 복종적 성향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한 일들, 예컨대 전쟁, 대량학살, 노예제 따위는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p230)

2-3. 언론

(1) “사전검열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나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 사전검열은 없지만, 사후처벌 조항이 있어 스스로 사전검열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계약으로 이루어진 거의 대부분의 사회집단(직장, 학교, 군대, 심지어 법정)에서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 언론의 자유는 오로지 의회에만 존재한다.

(2) “언론의 자유는 바람직하지만, 국가의 안전을 위협할 때는 그렇지 않다.”

- 국가안보, 전쟁과 같이 중대한 사안이야말로, 언론의 자유가 필요한 곳이다. 특히, 기술적인 부분이 아닌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근거는 없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언론의 자유는 무의미하다.

(3) “가르치거나 뉴스를 쓰고 보도하는 사람들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견해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 사실의 왜곡이 아닌 이상, 객관적이라는 것은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과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것은 양립할 수 있는 태도이다. 감추는 것이야 말로 객관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사례] 록펠러와 러들로학살, 탐험자 콜럼버스와 침략자 콜럼버스, 혁신의 시대와 노동자계급의 시대

우리는 국가의 상태를 주식시장의 숫자로 가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가 영양장애로 죽어가는지보다 말이다. 우리가 커다란 사건에 붙이는 바로 그 이름표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건은 흘려버리고 또 어떤 사건은 집중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러들로 학살은 미국의 많은 역사책들이 ‘혁신의 시대’라 이름붙인 그 시기에 일어났다. (p109)

2-4. 외교&전쟁

(1) “인간의 파괴적 본성 때문에 전쟁은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군사력이 필수적이다.”

- 인류학, 심리학, 생물학, 동물행동학 등 어떤 학문에서도 전쟁이 전적으로 인간의 파괴적 본능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였다. 인간의 파괴적인 본능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문화적 가치관에 따른 감정적인 충성과 복종이다. 우리는 반복되어 온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용기 있게 전쟁을 반대해온 역사에도 주목해야 한다.
[사례] 밀그램 실험, 원시부족에 대한 연구, 동물행동에 대한 연구

(2) “부당한 전쟁도 있지만, 정당한 전쟁도 있다. 미국은 공산주의를 막고 민주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 때때로 전세계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해야 한다.”

- 민족 자결에서도, 파시즘과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에서도, 민간인에 대한 태도에서도 미국은 일관적인 태도를 보였던 적이 없다.
[사례]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내쫓고, 멕시코(1846)?니카라과?베트남?이라크의 영토를 직접적으로 침략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지들을 인정했다. 파시스트 무솔리니에게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파시스트 프랑코의 쿠데타에 맞서 싸운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적국 도시(드레스덴, 도쿄, 로이앙), 자국 점령지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퍼부었고, 승전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재미 일본인들을 영장 없이 구금하고 격리했다. 전시의 빈부격차는 늘어났다. (군사개입: 1798년 이해 127건)

(3) “전쟁을 막기 위해 핵무기가 필요하다.”

- 군비경쟁을 통한 전쟁억지력은 증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핵물질 유출, 컴퓨터 오작동에 의한 오폭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으며, 전쟁 발발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피해를 낳을 뿐이다.
[사례] 비전투원에 대한 학살(독가스, 도시폭격, 원자폭탄, 네이팜, 화학전)

나는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쳤다.”고 떠드는 것을 증오합니다. 그 뭔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애들의 생명을 훔치는 겁니다. 우리가요. (p184, 해군 제독 Gene Larocque 인터뷰)

2-5. 비폭력직접행동

“세상에는 부당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지만, 부와 권력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는다. 폭력 없이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례]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군사무기 개발을 거부한 과학자들, 미국 정부의 내부 고발자들(보좌진, 군인), 징병 거부 운동, 등 / 뉴딜과 전국 노동관계 법, 사회보장법, 국방부 문서와 비망록 / Gene Sharp <The politics of non-violent action> : 비폭력 행동의 사례와 실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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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박물관 별난이야기 산하어린이 88
허완 외 / 산하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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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전국의 박물관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고 구입했더니,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더군요. 글자가 시원스럽게 크다는 점과 곳곳에 자리한 귀여운 삽화를 빼면, 꼭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어른들도 잘 모를 법한, 충분히 좋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전국의 박물관을 주제 - 생활 양식, 역사, 기타 - 별로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사 박물관의 경우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설화들도 간단히 소개하고 있구요. 박물관의 위치와 관람 정보도 짧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지역 별로 가고싶은 박물관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 - 한민족 생활사실, 농경, 일상
농업박물관(서울 중구) -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농가월령가, 농기구, 협동유적, 현대농업
명가김치박물관(서울 삼성동) - 김치 종류, 김치독
태평양박물관(서울 신대방동) - 화장문화
전쟁기념관(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종로) - 고구려, 백제, 신라, 불교조각실, 금속공예실, 고려자기실, 서화실, 중앙아시아실
삼성어린이박물관(서울 신천동) - 신체 표현과 도전, 과학 탐구실, 어린이 방송국, 인체 탐험실, 멀티미디어, 창의적 미술
한국잡지박물관(서울 청진동)
경찰박물관(서울 종로)
국악박물관(서울 서초)
롯데월드민속박물관(서울 잠실동)
삼성출판박물관(서울 영등포)
서울디자인박물관(서울 방배동)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서울 용산)
숭실대학교부설한국기독교박물관(서울 동작구)
LG사이언스홀(서울 영등포구)
외교박물관(서울 서초구)
우정박물관(서울 중구)
절두산순교기념관(서울 마포구)
한국현대의상박물관(서울 중구)

- 경기권

강화역사관(인천 강화) - 선사시대 유물, 강화의 역사와 문화, 몽고 침입, 한말 서양 침입
광릉수목원산림박물관(경기 포천시) - 원시림, 산림의 역사, 세계의 입업, 한국 임업의 역사, 산 야생초
철도박물관(경기 의왕시) - 철도의 역사, 모형실, 신호 통신실, 철도망 표시판
신세계한국상업사박물관(경기 용인시)
중남미문화실(경기 고양시)
청구세계민속관(경기 성남시) - 세계의 주거문화

- 충청권

독립기념관(충남 천안)
보령석탄박물관(충남 보령)
한독의약사료실(충북 음성)
한밭교육박물관(대전 동구)

- 강원권

선교장민속자료박물관(강원 강릉) - 조선 양반 주거문화

- 전라권

국립공주박물관 - 백제 문화, 동학운동
국립부여박물관 - 백제 문화
동진수리민속박물관(전북 김제) - 수리 시설, 김제 평야
보석박물관(전북 익산)

- 경상권

국립경주박물관 - 신라 문화
국립진주박물관 - 가야 문화
거제박물관(경남 거제) - 선사시대 유물,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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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 대한민국사를 바꾼 핵심 논쟁 50
권오문 지음 / 삼진기획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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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수립 직후 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의 논쟁들을 두루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논쟁들을 신문기사 위주로 갈무리해 놓은 강준만 교수의 <한국 논쟁 100>과 비교해 볼 때, 시간의 범위는 더 넓고 분야는 더 압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크게는 정치, 문학, 종교를 다루고 있고, 분야와 상관 없이 근래의 논쟁을 따로 묶어놓았습니다. 책의 특성상 발췌독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만을 짧게 기록합니다.

3. 좌익 간의 대립 - 통일국가의 혁명방식은 무엇인가

- 대부분의 책들은 해방 이후 통일정부 수립과 관련한 논쟁과 쟁투를 다루면서, 너무나 간단히 '공산주의 세력' 또는 '좌익세력' 이라는 분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굉장히 정치적인 행위일진데, 이들의 이런 방식은, 모두어 '공산주의 세력'이라 불리우는 다양한 정치조직 내의 다양한 견해를 전혀 표현해주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 왜곡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 해방 직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어떤 정치조직도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치조직들은 해방 직후 조선사회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결론 내리면서, 그 이상 정치활동을 밀고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다루고 있듯이,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 조선신민당과 같은 공산주의 표방 조직들의 논점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 였습니다. 러시아에서 1917년 (부르주아 민주주의) 2월 혁명 이후, 레닌의 귀국과 함께 볼셰비키당이 연속혁명(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곧이은 사회주의 혁명)을 선택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들은 미군정을 모종의 진보세력으로 인정하거나, 최소한 협조를 약속합니다. 많은 책들이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다루지 않고 있지요.

- 개인적으로는 백남운 교수의 행적이 인상깊었습니다. 백남운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 역사관과 관련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데, 실증사관, 민족사관과 더불어 사회경제사관을 주도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조선사회경제사>는 변증법적 유물론 사관에 입각해 조선사회를 기술한 것이라고 하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여튼, 해방 전 그는 연희전문과 경성제대 교수였는데, 해방이 다가올 무렵 중국 화북지방의 공산주의 세력들이 만든 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게 되고, 이 조직은 이 후 조선신민당으로 조직 전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조선신민당 남측지부의 책임자였죠.

- 그는 해방 직후 정부 수립과 관련된 논쟁에서 '연합성 신민주주의' 를 주창하며 논쟁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연합성 신민주주의란,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좌우합작, 김구 김규식 선생이 주도한 남북연합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당장의 최우선적 과제를 민주주의 통일정부 수립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조선공산당 역시 같은 의견이었으나, 조선공산당의 경우 우익세력과의 연합에 있어서 더욱 원칙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를테면, 친일파나 한국민주당의 참여 같은 부분에서 이견이 있었겠지요.

- 백남운 교수는 조선공산당과 대립했고, 이 후 (조선공산당과 한국민주당, 한국독립당은 참여하지 않았던) 근로인민당의 좌우합작운동과 남북연석회의를 주도하다 월북하게 됩니다. 초대 북한정부의 교육상을 거쳐 이후에는 노동당에서 꽤 높은 서열까지 올라갔던 것으로 되어 있군요.

4. 찬탁이냐 반탁이냐 -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문제

- 찬반탁 논쟁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책들이 너무 도식적으로 소개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들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신탁통치로 결정내리고, 이후 치열하게 벌어진 논쟁 역시도 신탁 찬성/반대로 도식화하고 있지요. 당시 찬탁운동을 주도했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주된 구호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지지' 이지 '신탁통치 찬성' 이 아니었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사항에는 신탁 혹은 후견 문제와 더불어 조선의 통일정부 수립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회의의 결정사항이 신탁이냐 후견이냐를 두고 미군정의 공식채널 조차도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군정의 고의적인 정치술수이냐 아니냐를 논외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 김구 선생이 주도했던 국민회의(?)가 경찰지휘권을 접수하려 했던 사실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군요. 당시, 경무부장이 조병옥이었다고 합니다.

6. 가짜인가 진짜인가 - 김일성의 항일투쟁 진위를 둘러싼 논란

-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역시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를 거쳐 1980년대까지 오래도록 지속된 논쟁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 시절 '김일성 가짜론' 을 주창했던 이들이 한국민주당 간부, 만주 봉천 고등계 형사, 국가재건최고위원회 공보실 기획관 출신이라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군요.

8. 남침인가 북침인가 - 한국전쟁 발발 원인을 둘러싼 견해 차이

- 한국전쟁의 원인과 관련한 논쟁구도를 적절하게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립적인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로 큰 축을 나누고(소련의 세계 제패야욕 - 미국의 팽창주의 정책 내지 전쟁유도설), 수정주의에서 파생되긴 했지만 두 가지 입장을 절충하고 있는(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기 수정주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검색에서는 최근 발간 순서대로 책이 정렬되니 브루스 커밍스, 존 할러데이와 같은 후기 수정주의 학자들이 주로 눈에 띄지요.

한국 문화계를 달군 격렬 논쟁들

- 문학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보니, 괜시리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아 흥미를 잃었습니다. 주된 논쟁의 축은 '현실 참여'를 둘러싼 것이라 보여집니다. 작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현실에서 밥벌어먹는 작가라면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사회와 연관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차이는 '정도' 에서 발생한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작품을 두고 이루어진 문학 논쟁이라기 보다는, 정치 논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올바를 듯 합니다. 문학 논쟁이라면, 다소 소모적으로 느껴지는군요.

논쟁을 통해 본 한국종교

- 기독교, 불교, 유교를 폭넓게 다루고 있고 각 종교 내적인 논쟁 뿐만 아니라 종교들간의 논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입니다. ^^

21. 신에 대한 헌신인가, 성추행의 원인인가 - 가톨릭의 독신제도 시비

- 독신제도가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참으로 웃지못할 분석이군요.

22. 타종교 비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종교정신'을 놓고 촉발된 종교계 갈등
31. 타종교에도 구원은 있는가 - '종교다원주의'와 감리교의 종교재판

-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입니다. 몇일 전에 읽었던 아놀드 토인비 교수의 <젊은이들과의 대화>가 문득 생각나는 대목이었습니다. 묶어서 읽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논쟁의 시작은 종교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실학을 주장하다가 감리교 교단 내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출교 처분을 받는 사건입니다. 출교 처분을 받은 당시 감신대 변선환 학장은 훗날, 출교 처분 덕분에 특정 교단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씀하셨다는 군요.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 종교 다원주의는 전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다른 종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정도에 따라, 절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65년 가톨릭의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포괄주의를 결정내렸다고 하는군요. 다원주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서,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신 중심의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삼위일체와의 마찰은 당연한 것이었겠죠.

- 하지만, 변선환 학장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가 유일신 사상 때문에 종교 다원론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시각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합니다. 유대교 처럼 특정 민족만을 위한 신이 아닌 이상, 한분 밖에 없는 신은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매우 인상적입니다.

34. 현실참여 vs 교리적 정당성 - 불교도 민중에 눈을 돌려라

- 불교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고자 하는 흐름이 있었다고 합니다. 1985년에는 민중운동불교연합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기관지 <민중법령>까지 발행했습니다.

- 논점은 '민중불교' 라는 명칭, 정토사회의 성격, 구제의 문제, 폭력성에 관한 문제까지 폭넓게 형성되었는데, 정토사회의 성격과 관련한 논쟁이 웃지못할 정도입니다. 민중운동불교연합 측에서는 무소유에 초점을 맞추어 계급적 불평등과 착취가 없는 사회를 강조한 반면, 교단 측에서는 재가자의 사적인 소유를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불교에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더 많다고 했다니.. 허허 웃을 일입니다.

38. 다름과 차이 - 여성해방론을 둘러싼 갈등

- 해방 이후 좌파 비평가들과 노천명, 조연현 문학가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 부터 1990년대 조직된 여성주의 모임과 단체들까지 여성운동 전반을 폭넓게 훑고 있습니다. 1930년대 여성주의 문화활동가로 알려진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저만 모르고 있었을 뿐, 꽤 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 여성의 특성이 배제된 남녀평등과 특수성이 인정되는 평등 간의 갈등도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 논쟁 100>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에 '여성 할당제'가 있지요. 저는 이런 제도들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는 않지만, 다소 기형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서의 차별만 없다면 분명 여성들도 남성들과 다를 바 없는 능력을 발휘할진데, 이런 제도들을 시행하더라도 후자에 확실하게 방점을 두고 보완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특수성을 인정하는 남녀평등은, 출산과 육아와 같은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하겠죠. 아 여성문제만 나오면 너무 부끄럽군요.

43. 과학 vs 생명윤리 - 인간복제를 둘러싼 논란

-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는 걱정 보다는, 인간 복제 역시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활용 영역의 설정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비관이 앞섭니다. 유이한 인간일지언정, 인간 복제 사회 이전의 인간일지언정, 존엄성이란 끊임 없이 위협받고 있는 것 아닐까요. 유일무이한 인간도 노동시장에서는 대부분 이윤의 도구로 계산되고 활용되고 있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인간 복제가 시작되는 순간 의학의 영역에서만 그것을 활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위한 병사를 만들고 판매하던 스타워즈가 생각나는군요. 제도적인 금지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적인 금지는 한시적인 효과만 발휘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죠.

44. 한글 vs 한자 - 전용이나 혼용이냐

- 한글 전용과 한자와의 혼용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과거 정부의 행적을 보며 웃음을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일관성 없다는 비판 보다는, 그저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거니 생각됩니다.

- 언어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언어와 관련해서는 제도를 통한 규제에 대해 다소 회의적입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사회의 큰 흐름에 종속적인 것이 아닐런지요. 끊임 없이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 것이겠죠. 기존 문화의 장점을 보존하려는 이들과, 새로운 문화의 장점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함께 권장하면서, 선택의 문제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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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세트 - 전12권 (양장)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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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을 읽었던 것은 대학시절이었습니다. 이내 <한강>을 읽었고, 최근에 마지막 작품인 <인간연습>을 읽었습니다. 그동안 <아리랑>을 읽지 않고 아껴두었던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진 선생의 글솜씨에 선악의 대립구도가 확실할 일제치하를 배경으로 한다면 무에 볼 것이 있겠는가 하는 심보였습니다. 결국 읽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동안 숱하게 당시 사회상을 배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은 적지 않이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방언을 따로 정리했고, 극중 인물들의 물음표를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12권을 모두 읽어갈 때 즈음에는, 메모한 종이의 양도 제법이었습니다. 이것을 정리해내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죠.

- <아리랑>은 1904년 1차 한일협약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40여년의 시간적 깊이와 대한제국, 만주, 간도, 하와이, 중국, 일본, 미국을 넘나드는 공간적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동학농민운동부터 의병항쟁, 3/1 운동, 독립군투쟁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사회 문화조직을 통해 이루어졌던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의 피땀어린 투쟁들이 담겨있고, 그 반대편에는 1차 한일협약으로부터 시작해 의병대토벌작전, 토지조사사업, 간척사업, 농촌진흥운동,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상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소설 <아리랑>은 이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당시를 살아냈던 실존 및 가공 인물들의 이해관계와 미풍양속에의 세밀한 묘사 속에 위치시키고 있구요.

- 더구나, <아리랑>은 그저 '식민지 역사의 소설적 각색'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리랑>이 기획되고 출판될 당시인 90년대 초중반의 사회와 문학계의 흐름을 통해, 아니 그 이전에 조정래라는 작가가 어찌하여 자신을 '글감옥'에 몰아넣으면서까지 이 작품을 기획하고 집필했는가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를 두고 한 문학평론가는 <아리랑>은 "문학이 세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아리랑 연구>에 따르면, 우리 문학에서 분단에 대한 비판은 70년대 이후에나 가능했다고 합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줄곧 20년 넘게 문학은 자의든 타의든 순수문학(?) 으로서 인간성을 강조하거나 개인의 실존문제만을 다루어왔던 것이죠. 그리고, 20년의 터울 뒤 90년대 문학은, 과거로부터 단절하거나 변화하려는 움직임들이 강하게 나타나구요. <아리랑>은, 95년,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 자리합니다. 조정래 선생께서는 <태백산맥>에서 해방 이후 친일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것을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사회를 소위, 천민자본주의로 병들게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하시죠. 그리고, 이때부터 이미, 선악의 확연한 대립구도 속에 자리잡을 <아리랑>의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친일 한국인들은, 그들의 잔인한 행동상이 폭로될 운명을 가진채 재탄생하고 있었던겁니다.

-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아리랑>의 선악구도는 지나칠 정도로 확연합니다. 동시에, 개화당과 을사의병 의병장을 거쳐 만주 독립군으로 활약하게 되는 송수익이라는 인물이 시종일관 굵은 굴곡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논쟁들에 대한 작가의 가치판단이 송수익의 행보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논란의 여지가 없을지라도, 유생들의 위정척사운동과 보황주의에 대한 비판, 자생적 민족신앙으로서의 대종교의 포교,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등 속에서 선택하게되는 무정부주의,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가치판단의 굵은 굴곡은 송수익 뿐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와 같은 역사적 인물, 신간회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적극적인 부각을 통해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이런 굴곡이 <아리랑>의 소설적 매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신채호, 나철, 홍범도, 이회영, 양세봉, 이상룡, 김원봉, 이승만, 이광수, 김일성과 같은 실존인물과 송수익, 공허, 지삼출, 방영근, 방대근, 방수국, 장칠문, 백남일과 같은 허구적 인물들의 다채로운 조화, 그리고 세시풍속, 소도구, 상품, 생산양식, 교통수단, 비속어, 등에 대한 풍부한 묘사가 언제나처럼 소설읽는 재미를 톡톡히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적 매력이 크게 드러나는 부분은, 농사를 비롯해 하와이 농장이나 군산항, 일본의 강제노역장에서의 노동에 대한 묘사와 세시풍속과 놀이문화의 묘사입니다. 이러한 묘사들이 소설의 굵은 굴곡을 가로 세로로 넘나들며 다채롭고 아름다운 선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또한, 소리꾼 차옥녀를 비롯해, 철도공사장 인부들의 노래, 차득보의 장타령, 독립군가, 무엇보다 제목이기까지 한 '아리랑'은, 소설에 작은 운율을 심고 있습니다.

- 큰 흐름과 함께 작은 흐름들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선악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세분화되는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소설적 묘사, 무정부주의로 매듭지어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평가는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두번째 주제는 문학평론가들의 평론 모음집인 <아리랑 연구>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 내용이군요. (<아리랑 연구>는 소설사적 맥락, 여성 등장인물, 친일파, '아리랑', 등 다양한 초점으로 <아리랑>을 평론하고 있습니다.)

- <아리랑 연구>에 따르면, 극중 친일파를 크게 세 부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중인 내지 상인 출신으로서 식민지 시대의 근대적 변화 속에서 지배계급적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장덕풍 백종두 등입니다. 두번째는,  중산층이나 지식인들로서 계급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를 갈등하며 때로는 방관자를 때로는 적극적 참여자이기를 선택하는 이들입니다. 민동환 홍명준 박정애 등이죠. 마지막은 하층계급 출신으로서 식민지 시대의 혼란과 좌절을 통해 일탈욕구를 드러내는 이들입니다. 서무룡 양치성 박동화 박용화 등입니다. 선악의 대립이라는 기본 구도 속에서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친일파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잡아내고 있는 <아리랑>의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공산주의 운동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내용적 비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생들과 만주 독립군 부대 사이에서 번져나가던 공산주의 열풍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자유시참변, 고려공산당과 한인사회당 사이의 갈등, 중국공산당 내의 민생단 투쟁,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와 같은 논쟁적 성격의 사건들, 조선공산당 창당과 재건운동, 1930년 프로핀테른 9월 테제, 1935년 코민테른 인민전선 테제와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중심인물인 송수익의 행보나 정도규, 공허, 등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시각은, "제 아무리 약소민족의 해방을 부르짖는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정치적 기본단위로서의 민족은 여전히 유효하다."라는 비판과 더불어 건강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가치판단이라기 보다는, 식민지 해방의 도구로서 공산주의를 바라본 것이라 전면적이고 직접적이지는 않습니다. 무정부주의로 귀결되는 송수익의 행보 역시 이 대목에서는 유난히 확연하지 않아서, 이것을 가치판단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조정래 선생은 서문에서, "식민지 시대를 살아냈던 이들의 노력은 이념에 관계 없이 그대로 민족통일이라는 재단 위에 바쳐져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문 뿐만 아니라 극의 전면에 흐르고 있는 민족에 대한 강조 때문에 '국수적이다' 라는 비판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소설 <아리랑>의 배경과 현재적 의미를 간과한 비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적어도 <아리랑>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과거의 고통들과 방치되고 있는 친일에 대한 청산 앞에 겸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기본단위로서 '민족'이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엄연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지향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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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CHRR / 다문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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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역사란 대체 얼마만큼 객관적일 수 있을까'
역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과거의 사건과 인물'.

유일하게 진실인 하나의 행적이 존재한다 한들,
너무 많은 역사가가 너무 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지어낸 저마다의 역사가 그것과 합치하는지 알게 뭐람.

이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 의의에 대해서, 교훈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니.
어쩌면, 내 입맛에 맞는 역사만을, 내 입장에 유리한 역사만을 취사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닌지.

한번쯤 고민해보셨을겁니다.

# 역사가와 사실

" 시저가 루비콘이라는 작은 강을 건넜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본 것은 역사가들이 자기들의 비유에 따라 관심을 갖고 결정한 것이지 그 전에나 그 후에 수백만의 다른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넌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역사가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사실성을 전제한다면, 사료 자체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역사가가 과거의 특정 사실에 주목하여 취사선택하여 사료로 삼는 그 순간,
이미 과거의 인물과 사건이라는 객관적 실체는, 역사가 개인의 주관을 통해 한번 걸러지게 되는 셈이니까요.

우리가 일컫는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과 '과거의 사실' 과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여기서 저 유명한 한구절이 등장하는군요.

"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

그리고, 역사학자 Carr 는 조언합니다.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 사회와 개인

" 인간을 개인으로서 취급하는 것은 전기이고, 인간을 전체의 일부분으로서 취급하는 것은 역사라고 구분한다는 것은 그럴 듯 하고,
또한 좋은 전기는 나쁜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도 그럴 듯해 보인다. "

그런데, '과거의 사실' 이야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많지 않으니, '역사가의 주관' 을 좀 더 들여다보도록 하죠.
역사라는 것이 역사가의 '주관'에 달린 문제라면, 대체 어디에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Carr 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역사가의 '주관' 이란, 사실 '주관' 이 아니다..
갸우뚱하던 독자에게, 이 온화해보이는 역사학자는 다시 일갈합니다.

" '주관'이라는 것이 대체 있기는한가? "
역사가 역시도 하나의 사회 현상이고 자기가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조언을 덧붙입니다.
역사책을 집어들 때에는 표지에 적혀있는 저자명을 찾아보는 것 만으로서는 충분치 못하다. 간행자나 집행 시일도 아울러 유의해야 한다고.

# 역사와 과학과 도덕

" 관찰자와 그 대상, 사회 과학자와 수집된 자료, 역사가와 사실들, 이들의 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 "

그래, 좋다. 역사가도 연구하고, 간행자와 집행 시일도 아우러 유의하지.
그럼에도 독자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 그래도 역사란 별로 믿을게 못되는 것 같은데. 쩝

그러자, 역사학자 Carr, 드디어 성이 났나 봅니다.
" 이제껏 무엇을 들으셨소? 역사란 '믿는다/안믿는다' 처럼, 정체되어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오. "

엥. 이제껏 몇편 안되는 역사책을 뒤적이며, '아 이런 일이 있었군' 내지는 '아 이래서 저렇게 된거였군' 따위의 감탄사를 연발하기 바빴던 독자.
통념은 깨어졌고, 심기는 불편해졌습니다. 이제서야 진지하게 이 역사학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도 이제 친절하게 재차 설명해줍니다.

" 내가 강조하고 싶은 단 한 가지 요점은, 추상적 초역사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서 그것에 의하여 역사적 행동을 판가름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오늘날 완전한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는 과학이란 거의 있을 리 없고, 사회과학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

#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 역사에 있어서 인과관계라는 논의의 열쇠는 바로 앞에서 본 목적이라는 관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드시 가치 판단을 포함하게 된다. (중략) 역사에 있어서의 해석은 언제나 가치 판단과 결부되고, 인과 관계는 해석과 결부된다. "

말씀드렸다시피, 이제 독자의 통념은 깨어졌습니다.
같은 시대를 다르게 서술해놓은 두권의 역사책을 제 앞에 놓아둔다해도, 흥분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저자와 시대적 배경을 포함해 두권 모두 고루 읽은 다음 해야할 일은, 옳게 쓰여진 한권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각자에 담겨진 역사의 인과관계 - 이러저러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 를 모두 주목해야겠죠.

# 진보로서의 역사 & 넓어져 가는 지평

" 진보를 믿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가능성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뜻이다. 진보라는 말은 추상적인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적은 역사 진행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의 외부에 있는 원천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

Carr 는 마지막 두장에서 지금껏 펼쳐놓은 얼개를 실제 세계사에 대입하고 있습니다.
그가 초판을 낸 것은 냉전이 한참이던 1961년. 냉전은 산업혁명 이래로 믿어왔던 일련의 진보, 즉 인류의 역사가 직선으로 발전한다는 헛된 믿음이 학문의 세계에서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저만치 물러가던 시기였습니다.

영국의 경험주의자들로부터 근대철학을 구해내고자 했던 칸트처럼,
Carr 역시도 냉전의 한복판의 회의주의와 시니시즘으로부터 '인간 가능성의 계속적인 발전'을 구해내고자 했던 거겠죠.

# 보탬 - 포퍼의 결정론에 대해

이등병 시절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목도 자극적이었을 뿐더러, 저자 또한 조지 소로스라는 걸출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생각없이 집어들었죠.

제 기억이 맞다면, 이 책은 굉장히 친절하게 쓰여있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1부에는 2부에 사용할 개념들을 미리 소개하고 있거든요.
오류성이니 반사성이니 평형에의 접근이니 하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개념을 소개하기 이전에 그의 스승, 칼 포퍼를 소개하고 있구요.

역사학자의 책을 읽다가 뜬금없이 옛생각이 났던 이유가 아마 포퍼 때문이었을겁니다.
Carr 가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 제시하고 있는 논지가 포퍼의 그것과 굉장히 흡사하기 때문이죠.

이른바, 완전히 독립적인 과학이란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를테면, 경제학이나 사회과학 - 역사학도 물론이겠지만 - 의 영역에서, 주체 자체가 사건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역사란 역사가의 의식을 반영하고, 경제는 경제학자의 예측을 반영하고, 사회는 사회과학자의 논술을 반영한다는 것이죠.
한국은행의 경기예측과 삼성경제연구원의 경기예측이 단지 예측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심리와 행동에 일정정도 영향을 끼치는 것 처럼.

그런데, 재밌는 것은, 포퍼의 논지는 일찌감치 나왔건만,
실제 포퍼는 다음 단락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에 등장해 Carr 로부터 '죽은 말에 채찍질을 해서 산 말처럼 보이게 하려는 자' 라는 싫은 소리를 듣고있다는겁니다.

Carr 가 포퍼를 비판하는 이유는, 단락의 제목이 암시하고 있습니다.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장이 달랐던거죠.
포퍼는 그의 저서 - <과학적 연구의 논리>,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에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관에 대해 '역사주의', '결정론적 역사철학'이라고 혹평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부터 좀 따분하긴 합니다만, 오늘날 까지도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보면 충분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을겁니다.
포퍼는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두고, 편협하게 물질의 변화에 의해서만 세계의 변화를 해석하고 있으며, 역사라는 일련의 운동에 '물질'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요소는 있을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에 대한 Carr 의 재치있는 反비판을 인용합니다.

" 당신은 하루 일을 시작할 때 항상 스미스를 만난다. 당신은 날씨나 대학 사정에 대해 친절하지만 무의미하게 인사하며, 스미스도 마찬가지로 날씨나 대학 형편 등에 대해 친절하지만 무의미하게 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스미스가 늘 하던 방식으로 답례하지 않고 당신의 외양이나 성격에 대해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하자.

이에 당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말로 스미스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뚜렷한 증거이고 인간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분명한 증거로 생각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대로 아마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불쌍한 스미스! 그래 저 친구의 부친은 정신 병원에서 돌아가셨지.' 또는 '가엾은 스미스! 마누라와 또 싸운 모양이군.' 즉, 당신은 뭔가 원인이 틀림없이 있다고 생각하고 얼핏 보기에 원인이 없는 듯한 스미스의 행동을 파악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포퍼'(원문에는 포퍼와 같은 논지를 지녔던 '아이자이어 버린경'으로 되어있습니다.) 의 분노를 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포퍼는 스미스의 행동을 인과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당신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결정론적 전제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스미스를 못된 사람으로 비난해야 할 덩신의 의무를 몹시 게을리했다고 탄식할 것이니까. "

책을 내려놓고 키득대며 웃었던 구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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