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처음이다. ‘도대체 누구야’라는 제목이 무색해졌다. 이번만큼은 제목을 바꿔야 한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도대체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박훈규(36)씨는 (나름) 유명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팬도 많다. 많은 사람이 그를 알고 있지만 모두 다른 모습의 박훈규다. 그는 마치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굴곡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타지마할’과 같다.
그는 우선 디자이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화가가 되겠다고 가출했다. 그러나
만화가에게 퇴짜를 맞았다. 그리고 신문배달, 평화시장 노동자 등을 거쳐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곧 그만뒀다. 그리고 디자인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미련 없이 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그는 화가였다. 호주, 영국의 런던과 에든버러를 무작정 돌아다니며 거리에서 사람들을 그렸다. 그리고 그는 사진작가다. 홈페이지(www.parpunk.com)를 운영하는 웹마스터다. 두 권의 여행책(<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박훈규 오버그라운드 여행>)을 펴낸 여행작가다. 그리고 그는 가수 비, 노브레인, 김장훈 등의 공연 영상 연출(브이제잉; Vjing)을 했다. 박훈규씨의 삶은 ‘그리고’와 ‘그러나’의 연속이었다. 삶이란 언제나 그리고와 그러나의 연속이지만 유독 그의 삶은 두서없고 정신없다.
새 책 <박훈규 오버그라운드 여행기>를 펴내면서 또 하나의 ‘그리고’가 추가됐다. 음악 앨범을 기획하고 ‘박훈규 오버그라운드 여행기 OST’를 만들었다. 그냥 노래만 골라 모은 것이 아니다.
참여 아티스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콘셉트를 설명했고, 영국 도시의 느낌을 전달하고자 수많은 자료를 건넸다. 참여 아티스트들은 쟁쟁하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프라이머리, 캐스커, 노브레인, 안치환 등 색깔도 다양하다. 그의 이름 앞에 ‘프로듀서’라는 설명이 새롭게 붙게 됐다.
“지금까지 워밍업 했죠. 그런데 워밍업을 좀 격하게 했죠.(웃음)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도 좀 심하게 힘들었어요. 아, 이렇게 일하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참여 아티스트들 만나서 한 세 시간씩 설명하다 보면 진이 쫘악 빠져요. 프로듀서라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대충 하려고 들면 쉬울 수도 있는데, 제대로 하려니까 힘들어요. 덕분에 많이 배웠죠.
이제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 나가야죠.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 프로듀서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걸 제대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프로듀서는 ‘장악’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결’시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쓰는 ‘프로듀서’라는 단어보다 훨씬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그리고’로 이어왔던 모든 일들을 이제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다. 워밍업이라는 표현은 그래서다. 박훈규씨는 디자인, 사진, 브이제잉, 웹, 포드캐스팅, 여행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각 분야에 이정표를 박아 놓고 왔다. “다음에 다시 갈 때 얼마나 편하겠어요”라는 그의 말이 이해된다.
박훈규씨는 뭘 해도 남들이 간 길을 뒤따르지 않는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도 그랬고, 책을 펴낼 때도 그랬고, 시디를 제작할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길을 배우지만 길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다. <박훈규 오버그라운드 여행기>를 펴낸 이후 새로운 형태의 세미나(라고나 할까 프레젠테이션이라고나 할까)를 계속하고 있다. 이름하여 ‘트래블로그’(Travelog)다. 이를테면 ‘여행보고만담쇼’다.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여 주고, 오에스티에 참여했던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치고, 독자들과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에게 여행은 과정이나 목적이 아니다. 여행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의 대화와 관계와 나눔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앨범 제작 하느라 돈이 많이 들었어요. 일반 시디 제작비의 두 배가 들었죠. 제대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참여한 뮤지션들이 ‘아, 이렇게 만들기 위해 박훈규라는 사람이 그렇게 돌아다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시도들을 계속 할 거예요.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아마도 국내 최초일(웃음) 여행 책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최고의 조직’을 만드는 겁니다. 놀던 사람들을 모아서는 계속 놀아요. 그런데 노는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문화가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언젠가는 그런 조직 혹은 집단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진지한 프로듀서가 없다는 겁니다.”
그의 머릿속은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영국의 문화·도시·예술 이야기를 담았던 <박훈규 오버그라운드 여행기>를 촉매제로 홈페이지에서 수많은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영국의 거리를 찍은 동영상도 재미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런던 사운드’였다. 런던 사운드라고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런던 거리의 소음을 녹음해서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음악 같다. 음악처럼 아름답다. 어쩌면 그 소리들이 도시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쩌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건 정면승부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여행이란 무엇일까?’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사진이란, 음악이란, 웹이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꾸준히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박훈규씨는 세련된 형식의 질문을 계속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