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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 - 삼태극의 춤, 동양 음악
우실하 지음 / 소나무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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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문의 간단한 요약 정리)

1. 풍물굿에 대한 우리의 취향은 진정한 취향일까

- 문화적 권력이나 이데올로기는 일반인에게는 '당연시된 지식'의 형태로 행사된다. 누가 보아도 권력 혹은 이데올로기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더 이상 권력이나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가 없다.
- 개인적 취향이라는 것은 선천적인 부분보다 후천적인 것이 더 많다. 진정으로 '순수한 선택'의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악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 신식학교들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 교회조직은 뚜렷한 구심점이 없던 한국사회에서 민족독립운동의 큰 기반이었으며, 개화론자의 상당수는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제3세계에서 반제국주의는 반서구였지만, 한국의 반제국주의는 반일본이자 친서구였다.

- 전통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통해 오리엔탈리즘의 구조적 재생산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며, 이를 기반으로 기존 문화를 해체하고 탈일상화할 수 있어야 한다.
- 문화적 헤게모니에 길들여진 현실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대안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란 말인가?

2. 풍물굿의 기본 철학에 대하여

- 대학 음악과에서는 서양음악사를 '보편적인 음악사'로 배우고 있다. 심지어 국악과에서조차 동양철학을 배우지 않는다. 음악을 구성하는 철학과 세계관, 구성원리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과거와 똑같이 답습하고 보존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제대로 된 창작을 기대하기 어렵다. 서구 음악만을 배운 이들이, 서구 음악의 주체적 수용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풍물굿의 기본 철학인 삼재론은 우주의 구조를 천계, 인계, 지계로 삼분하는 사상이다. 이는 페르시아 문명과 몽골계 샤머니즘에서 비롯되어, 도가를 중심으로 선도, 풍류도, 화랑도, 무속을 통해 전승되었다. 이는 음악(대삼/소삼), 판소리(본청/상청/하청), 무예(택견, 수벽치기), 춤(삼진/삼퇴), 등에서 3분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유가의 12지지와 결합하면서, 12박 1장단(음악), 기경결해(판소리)로 정착되었다. 삼재론에서는 3을 변화의 계기수, 9를 변화의 완성수, 81을 우주적 완성수로 인식한다.

- 풍물굿의 기본 철학인 음양(상생/상극)오행론(목/화/토/금/수)는 천지자연의 도를 표현하는 사상이다. 이는 유가의 경전인 <주역>에서 비롯되어 전승되었다. 이는 삼재론과 결합하면서, 삼재론 중심의 음양오행론으로 발전한다. 오행론은 음악에 있어서 5음(궁/상/각/치/우)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5음을 통한 소리참선을 '영가무도'라 한다.

- 삼재론과 음양론은 영혼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차이점이 있다. 삼재론은 생명혼/사상혼/전생혼으로 분류하며, 음양론은 혼/백으로 분류한다. 두 철학의 관계에 있어서, 음양의 결합을 삼재로 인식하는 견해와, 제3의 기로 삼재를 인식하는 견해가 있다.

3. 풍물굿의 분류 체계에 대하여

- 산줄기에 입각했던 전통 지리관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지질 구조대를 연결한 산맥 지리관으로 바뀌었다. 백두'대간'을 태백'산맥'이 대체했지만, 이는 길이와 모양이 분명히 다르다. 지하 중심인 산맥 지리는 지상의 강을 가로 질러가기도 한다. 산으로 나뉘고 강으로 연결되었던 문화도 가로 질러갔다. 흔히 '토리'로 알려져 있는 문화권의 분류는 이러한 산맥 지리관에 입각해 이루어졌다. 또한, 이런 분류는 민중 보다는 무당, 광대, 사당패와 같은 전문 예능인을 위주로 한 분류로서, 대표성은 있지만 보편화 할 수는 없다.

- 섬진강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것은 생활권, 문화권 측면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토리권을 나눈다면 물길로 이어진 하나의 생활권을 기준해야 한다. '경토리'는 서울, 경기보다는 한강수계권으로 보아 백두대간 서쪽까지를 포함해야 하며, '메나리토리'는 강원, 경상이 아닌 백두대간 동쪽만을 가르켜야 한다. 금강수계권인 웃다리농악은 '경토리'와 '육자배기토리'가 혼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호남정맥이 호남우도와 좌도를 나누는 것만이 유일하게 적당한 분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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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배우는 사물놀이
이형영 지음 / 학민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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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가 풍물굿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무대에서의 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진정한 공로는, 사람들이 사물놀이를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배우고 따라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에 있다. 김덕수, 김용배와 같은 사물놀이 1세대들은 사물놀이를 공연하기 위해, 전국의 풍물굿 장단과 가락을 녹취하고 채보했다. 그리고, 그것을 구음, 오선지, 정간보,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했다.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풍물굿 교본은, 전근대적 전수 형식에 머물러 있던 풍물굿 교육을 근대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예술 교육의 근대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어폐가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물놀이를 접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일부 사물노리안들이 자신들의 대중적 영향력에 취해 풍물굿판의 대표인 양 행세하는 경우다. 이 책, <쉽게 배우는 사물놀이>에서 이형영이 집필한 풍물굿 이론을 보면, 80년대 이후 풍물굿의 역사는 사물놀이와 탈춤부흥운동 밖에 쓰여 있지 않다. 2004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사회패의 출연도, 90년대 마을굿 운동과 지역농악보존회 활동에 대해서도 일언반구가 없다. 사물놀이가 출연하면서 가져온 숱한 논쟁들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대놓고 무심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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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악의 역사와 이론 - 호남좌도농악을 중심으로
김정헌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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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전수관 김정헌 선생님의 책.
풍물굿을 분류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 책은 목적(두레, 축원, 걸립, 연예)에 따라 분류하고, 분류에 따라 역사를 살피고 있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의 두레 풍물굿- 일제 강점기의 두레 풍물굿- 해방 이후의 두레 풍물굿'과 같은 식으로.

조선 시대의 두레 풍물굿이 일제 강점기에 들어 공동노동의 성격을 잃고, 소작권에 관한 '행사'로 변모했다는 분석은 명쾌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책에서 들었던 '두레 풍장굿'에 대한 의문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연예 풍물굿 역시, 남사당, 국극단, 포장극단을 '유랑'이라는 코드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풍물굿 역사가 '단절'로 묘사하고 있는 70년대 말에 대해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에 일어났던 풍물굿판의 세 가지 사건. 그러니까, 사물놀이, 마을굿, 농악전수관은, 70년대 말 연예 풍물굿의 쇠퇴와 인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농악전수관의 등장은 한번 고민해볼만 한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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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광대 김덕수, 신명으로 세상을 두드리다
김덕수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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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의 예인인생 50주년을 맞아 출간된 자서전.
다분히 공적인 문체지만, 자신의 장점을 정확하게 어필하는 대목이 두드러졌다.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자기소개서 같은, 패기와 진취성이 느껴졌다. 그 스스로 강조하듯, 어려서부터 몸에 배인 상업적 마인드 혹은 프로 근성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인생을 보면 풍물굿의 역사가 보인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그는 시대에 따라 남사당에서 약장수로, 쇼맨으로, 국산품 선전반으로, 국가 홍보사절로, 사물놀이 창립자로, 음악인으로, 사업가로, 교육자로 적극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그의 직책도 단원, 학생, 단장, 사장, 회장, 교수로 바뀌었다. (그의 명함에는 '사물놀이 예술인 김덕수'로 적혀 있다.) 읽는 사람이 헷갈릴 정도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기예와 연희형식, 조직을 바꿔나갔다.
그의 예인인생 50년에는 풍물굿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아이디어가 전시되어 있다. 국제 무대에서의 문굿과 난장, 풍물굿 대중화를 위한 악기개량이라니, 이런 아이디어를 어느 '예술인'이 낼 수 있단 말인가.

"시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 뿐이다. 아버지 다음에 내가 있는 것 처럼, 나 다음에 내 아들이 있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춥고 배고픈게 두려워서 무대에 남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어느 직종에서든, 편하려고 하면 존재감과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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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 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읽기, 한국인 읽기
김열규 지음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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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는 한국인의 감정과 의식, 무의식, 생활의 총체가 담긴 자서전이자 백과사전이다."
서문에 나와 있듯, 도깨비는 너무 많은 것들을 포괄하고 있어서, 외려 아무 것도 담아내지 못한다. 나무, 장승, 솟대와 같은 다른 상징물에 비해, 이름, 형체, 특징, 어느 것 하나 구분하고 규정 짓기가 어려웠다. 백과사전을 읽고나서 감상을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도깨비는 그 시대의 의식과 욕망을 총체적으로 대변하고, 그것을 놀이와 장난으로 표현했다. 보편성은 그저 거기에 따르는 것. 그러니까, 도깨비는 일종의 대중매체였던 셈이다. 가요가 되고 드라마, 영화가 되어, 사람들의 의식을 대변하고 욕망을 만족 시켜준 것. 내가 아닌 도깨비가 한 거니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가 도깨비의 르네상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에 사람들의 의식이 확연히 확장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은 시대를 불문하고 불변하지만, 의식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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