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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29
손기화 글, 김강섭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죠세프 알로이스 슘페터, 한서출판, 이영재 번역, 1979년

# 슘페터에 대해서

1883년,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영국 상류 사회에서 성장.
1906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법률과 경제를 전공.
1908년, 『이론 경제학의 본질과 주요 내용』발표 (순수 경제학의 방법론)
1909년, 체르노비쯔, 그라쯔 대학에서 경제학 강의.
1912년, 『경제 발전의 이론』발표 (정적 발전이론)
1914년, 『학설 및 방법론사의 제 시대』발표 (이론체계 완성)
1918년,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 경제정책 담당
1927년,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
1939년~43년, 『경제순환론』,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발표, 『경제 분석의 역사』집필
1950년, 사망

# 학문적 성취

- 초학파적 신념
- 이론과 정책과의 엄격한 구별 : 매커니즘과 정책, 이론경제학과 사회경제학
-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혁신

# 경제사적 위치

- 고전파: 영국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발흥 / 마르크스: 영국식 자본주의의 자기 붕괴와 사회주의로의 전화 / 케인즈: 영국식 자본주의의 실패와 관리 자본주의의 특징 / 슘페터: 영국식 자본주의의 쇠퇴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발전
- 1940년대 케인즈와의 경합, 1970년대 이후 조명: 포브스 “케인즈가 아닌 슘페터가 세계화 시대의 길잡이”

# 마르크스 학설

- 마르크스의 이론(노동가치설, 잉여가치론, 축적 이론, 자본 집중론, 대중 궁핍화론, 산업 예비군 이론, 공황 이론, 제국주의론)을 비판.
- 경제체제의 유기적 발전론은 인정
- 경제적 실패(공황)와 경제적 성공(독점)

# 자본주의는 잔존할 수 있는가

- 지난 시기의 발전율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때문인가 :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혁신), 독점은 생산량 극대에 가장 유리한 경제 발전의 촉진제
-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이 발전율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 : 케인즈 이론 비판, 경제발전이 기업가의 기능을 무용화 (혁신이 독점을 낳고, 독점이 혁신을 죽인다), 독점화에 따른 중산층의 몰락으로 체제 옹호 계급을 추방, 주주자본주의와 기업가 정신의 상실, 자본주의적 심성(합리화가 비판세력을 형성)
“자본주의는 그 성공에 의해 멸망하고 있다는 자기 역설적인 결론” “합리주의의 반역”

# 사회주의는 작용할 수 있는가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와 생산 과정의 사적 관리, 신용 창조
- 사회주의 체제가 논리적으로 모순 없이 기능할 수 있는가 : 가능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제 능률의 비교 : 완전경쟁체제보다 독점경제체제가 우월, 사회주의의 장점(과잉 생산의 억제와 낭비 절감, 실업 배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충돌 해소에 의한 경제 능률의 향상, 조세의 폐지)
- 사회주의 사회에서 동기, 책임 및 관리의 문제 : 경제적 동기로서의 사회적 명성과 도덕적 압박
- 과도기의 문제: 성숙 상태에서의 이행, 미성숙 상태에서의 이행

#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 사회주의 사회에 참된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가 : 소련형과 영국형. 민주주의는 자기완결성이 없는 제도적 장치로서 사회주의와 필연적 관계가 없다.

# 사회주의 정당의 역사적 개관

- 종단 : 토머스 모어에서 마르크스까지
- 횡단 : 소련에서 영국까지
- 관리 자본주의 경향 :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한 점차적인 사회주의화

# 평가

- 마르크스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혁명과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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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인문사회과학총서 1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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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은 벼르다가 이제야 읽었는데, 제가 이 책을 크게 오해하고 있었군요. 베버가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자본주의는 크게 다릅니다. 베버에게는 금전욕 내지는 천민 자본주의, 유태인 자본주의 정도가 될 것입니다.

-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 정신이란, 규범성(윤리성)과 직업정신을 두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서구에서만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곧 독점 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어준 그것이죠. 이러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종교개혁기의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찾는 실증적 연구논문입니다. 사회학 대가의 학문적 치밀함과 겸손함이 돋보이는 분석과 문체였습니다.

- 저는 이 독서후기를 [종교] 카테고리로 분류하고자 합니다. 자본주의 자체 보다는 프로테스탄티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금욕주의와 직업정신(소명의식)이 어떻게 나오는지, 교리적 동인과 심리적 동인을 찾는 과정, 감탄할 만 합니다.

- 아래는 필요에 따라 발췌 정리한 글입니다. 어려운 책 읽느라, 소제목과 코멘트를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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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문 ]

- 세상 어디에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의 합리적인 체계는 오로지 서구에만 존재한다.
(예) 바빌로니아의 천문학 - (그리스식) 수학적 기초를 결여
인도의 기하학 - (그리스식) 역학과 물리학의 기초를 결여
인도의 자연과학 - (르네상스식) 실험방법을 결여
인도의 약학 - 생화학적 토대를 결여
중국의 역사연구 - (투키디데스식) 방법의 결여
인도의 정치사상 - (아리스토텔레스식) 방법론 결여
근동의 성문화 - (로마법과 같은) 체계적 형식 결여
예술 - 화성음악, 대위법과 화음, 반음계와 미세음계, 기보체계, 등이 결여
건축 - 건물의 구성원칙, 지붕공간의 합리적 사용, 등이 결여
인쇄 - 신문과 정기간행물의 결여
고등교육 - 대학, 아카데미의 결여
정당 - 합리적 규칙이나 법에 따른 운영의 결여

- 마찬가지 관점에서, 세상 어디에나 자본주의(이윤 추구, 소유욕)가 있어왔지만,
합리적 이윤추구(자본주의 정신),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시민), 정기적 시장에 맞추어진 합리적 산업조직은 서구에만 존재했다. (* 여기서 합리성이란 투기성, 모험성의 반대)

- 이러한 서구만의 합리성은 기술, 법, 행정의 계산가능성(예측가능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 모험적이고 투기적인 무역 자본주의와 달리, 고정자본을 갖추고 계산의 확실성을 지닌 합리적 기업
합리적 행위를 채택하는 인간들의 능력과 성향 때문이다. 그것은 종교적 관념(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기인한다.

* 아시아에 대한 자료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능한 비교점을 제시하는 정도에서 만족한다.

[ II. 문제 ]

[ 1. 종파와 계층 ]
- 종교개혁기, 자본 소유자와 경영자층, 상급의 숙련 노동자층이 대부분 프로테스탄트이다. 원인이 뭘까?

(전통적 설명)
- 부유한 지역과 도시가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다.
- 가톨릭의 비세속성때문이다. 가톨릭은 수공업에 잔존하려는 경향이 보다 크며, 반면에 프로테스탄트는 공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 프랑스의 칼뱅주의자들도 비세속적이다.
- 프로테스탄트는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영리활동에 몰두한다. (예) 러시아의 폴란드인, 프랑스의 위그노교도들, 영국의 비국교도들, 영국의 퀘이커교도들, 유태인들. / 반대 사례도 존재한다. (예) 독일의 가톨릭, 영국과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

- 결국, 프로테스탄트는 경제적 합리주의를 향한 특수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

[ 2. 자본주의 정신 ]
- 그런데, 프로테스탄트적인 종교적 생활규제가 영리감각의 발전과 관련이 있을까?

(금전욕이 아닌 에토스로서의 자본주의 정신)
- 벤자민 프랭클린의 주장 "시간이 돈이다. 신용이 돈이다. 돈은 돈을 낳는다. 근면과 검소, 시간 엄수가 출세의 지름길이다." 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일종의 에토스였다. 그는 영리활동을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겼다.
- 이러한 에토스는 자본주의가 존재했던 중국, 인도, 바빌론, 등에는 없었던, 서구에만 독특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었다.
-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연도태' 과정을 통해 이러한 에토스를 만들어내지만, 초기에는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 발달'에 앞서 이미 존재했다. 벤자민 프랭클린 역시 수공업 자본주의 하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것은, 유물론적 관점과는 정반대이다.)

(자본주의 정신의 필요조건)
- 영리활동의 규범성: 자본주의 정신은 금전욕과는 다른 것이다. (금전욕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다.)
- 직업정신: 자본주의의 물질적 조건(성과급 혹은 저임금)을 변화시켜도, 노동자들은 되도록 편안하고 적게 일해서 정해진 보수를 받고자 한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노동자를 구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특수한 경향을 내재하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예) 러다이트 운동 (* 저곡가정책)
 
[ 3. 루터의 직업개념, 탐구의 과제 ]
- 자본주의 정신의 필요조건(규범성, 직업정신)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프로테스탄트와 직업정신의 탄생)
- 독일어의 직업, Beruf의 어원: 신으로부터 받은 임무
- 프로테스탄트가 세속적인 일상의 노동, 현세적 의무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 직업은 인간이 신의 섭리롤 받은 것이며 그 섭리에 순응하여야 한다. (비) 수도승적 금욕주의
- (이러한 직업정신은 그저 자본주의 정신의 모태가 되었을 뿐이다. 실제적으로는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 III.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 ]
- 종교적 영향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어떻게' 작용하였을까?

[ 1. 현세적 금욕주의의 종교적 토대 ]

-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주체: 칼뱅주의, 경건주의, 메서디즘, 침례교

(금욕주의의 심리적 동인과 신앙적 기반 - 칼뱅주의의 예정설)
- 중세의 평신도들은 신의 은총이 자기 자신의 노력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고 생각하였고, 성례의 은총은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주며, 사제가 죄를 사해 주고 면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그러나 칼뱅은, 구원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인간의 노력과는 별개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중세적) 참회, 고해성사, 성례(세례), 예배, 교회의 필요성을 부정하였고, 이런 것들은 감정적, 마술적인 요소로서 구원에 무익하다고 주장했다.
- 구원에 대한 확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신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에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인간의 삶은 오로지 신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예정설의 진화, 금욕주의)
- 교리로서의 예정설은, 단지 구원에의 확신(종교적 감성)을 바라는 평신도들과 결합하면서 타협하게 된다.
- 예정설의 교리는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평신도들에게 요구한다. 자신을 선택된 자로 확신하고 모든 의심을 버릴 것, 자기확신에 도달하기 위한 부단한 직업노동. (중세 가톨릭에서) 신도 개인적 차원에서 요구되던 일상의 선행은, 생활방식의 일부로 격상된다. 과거 수도승이 행하던 금욕이 평신도에게 확장된다.
- 생활방식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 금욕주의가 탄생한다.

(또 다른 축, 경건주의)
- 칼뱅의 예정설과 더불어, 구원의 확신을 동시에 추구했던 분파. 칼뱅주의(신 중심의 사고)와 루터주의(체계적인 생활방식)의 영향을 고루 받았다.
- 예정설은 숙명론으로 변화했고, 교회는 부정했지만 가정집회를 통해서 일종의 신앙공동체를 형성했다.
- 구원에 대한 확신을 추구하면서, 일상생활에서의 금욕주의는 더욱 강화되었고, 직업노동도 강조되었다.

(경건주의의 발전, 메서디즘)
- 대륙 경건주의의 영미분파.
- 확신이라는 주관적 측면에 더욱 매몰되면서, 개인적인 참회나 성별, 등을 강조하며 칼뱅의 예정설은 거의 무시되었다.

(침례교와 침례파, 메노파, 퀘이커교)
- 가시적 교회를 거부하고 종파, 종교공동체를 중요시했다. 퀘이커교의 경우는 성례도 부정한다.
- 그러나 신에 대한 봉사를 생활체계로 공식화하기 보다는, 내면적인 계시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신의 말씀에 귀기울이기 위해 침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내면에 대한 강조는 품행의 관리, 금욕으로 이어졌다.

- 위와 같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은 수도원에 갇혀 있던 금욕주의를 생활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 2. 금욕과 자본주의 정신 ]
- 일반화된 금욕주의가 자본주의 정신 - 영리활동의 규범성, 직업정신 - 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금욕주의와 자본주의 정신)
- 금욕주의는 시간 낭비, 사교, 무익한 잡담, 사치, 8시간 이상의 수면시간을 금지했다. 교회의 예술행사,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했고, 복장도 규제했다. 대신, 노동은 오래 전부터 인정된 금욕적 수단이었다. 신의 뜻에 따라 인간에게 신분과 직업이 주어졌으며, 이에 대한 노동은 하나의 의무였다. 즉,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 직업노동이 바로 신이 원하는 바이다.
- 금욕주의는 부자가 되기 위한 노동을 장려했다. 신 나름대로의 의도를 가지고 이윤의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에, 직업의무의 행사로서 부의 추구는 허용이 아니라 명령된 것이었다. 다만, 재산을 가지고 휴식하는 것, 향락하는 것을 금지했다.
- (프로테스탄티즘과 유태교의 경제윤리는 질적으로 다른다. 그것은 모험가 자본주의요, 천민 자본주의다.)

(금욕주의와 자본의 형성)
- 금욕주의는 소비, 특히 사치재 소비를 봉쇄했으며, 이로 인해 쉽게 자본형성에 이를 수 있었다.

(딜레마)
- 금욕주의가 낳은 근면과 절약이 부를 창조하고, 이러한 부가 오히려 세속적 애착을 증가시켰다.
- 금욕으로 인한 대규모 자본형성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그리고 금욕주의는 사라졌다.

* 헬레니즘: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의 결합. 알렉산더제국 이후.
* 투키디데스: 그리스의 역사가. 역사서의 고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했다.
* 에토스: 민족적, 사회적 관습. (반) 파토스
* 편람: 보기에 편리하도록 간추린 책
* 정초하다: 기초를 놓다.
* 성례(세례), 성령(신과 인간의 매개체), 성도(신적 성격을 가진 신도), 성별(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물건,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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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역설
샹탈 무페 지음, 이행 옮김 / 인간사랑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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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우리는 이 둘을 합해, 흔히 ‘자유민주주의’ 라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역사도, 추구하는 가치도 다릅니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이죠. 그것이 오래 전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도 자유주의란, 적어도 봉건주의의 몰락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가 멸망한 이후 봉건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민주주의도, 자유주의와 함께 등장하게 됩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그렇게 만나, 자유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전통은 ‘평등’ 입니다. 물론, 노예와 여자는 평등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을 부여받은 귀족 남자들은 평등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대의 민주주의가 아닌 직접 민주주의였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가 구별되지 않는 평등이었죠.
민주주의에 반하는 자유주의의 전통은 ‘자유’ 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그리고 법치(法治)를 중요시하죠.
결국, 자유민주주의에는, 때로는 양립할 수 없을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어떻게든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라고 불리우는 국가들의 정치체제를 보면, 자유주의적 전통과 민주주의적 전통의 요소들이 각기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법치나 재산권의 인정, 등 자유주의적 전통에 비해, 민주주의적 전통은 다소 왜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냉전의 종식과 함께 대다수의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선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복지를 통해 민주주의적 전통을 유지하려고 했던 많은 국가들의 실패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구요.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와 같이,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적 전통을 잃어가며 자유주의로 기울어가는 경향에서 비롯됩니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사상가들을 등장시킨 후, 그(녀)들을 각기 왼편과 오른편에 위치시킵니다. 오른편에는 자유민주주의의 불균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롤스와 하버마스를, 왼편에는 자유민주주의에 파산선고를 내린 슈미트가 자리하게 됩니다.

롤스와 하버마스는 위기에 처한 자유민주주의를 구출하려고 합니다. 롤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개인 간의 합의를 통해서, 하버마스는 평등한 논의절차(심의절차)를 통해서, 자유와 평등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슈미트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상반된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균형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균형을 잃고 파산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죠.

저자는 우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완벽하게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슈미트의 그것이죠. 저자는 롤스와 하버마스와 같이, 자유민주주의의 완전한 균형을 가정하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슈미트와 같이 자유민주주의에 파산선고를 하지 않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태생적인 모순과 적대를, 경쟁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데에 탈출구를 마련합니다. 경쟁적 대립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존재조건이라는, 경쟁적 다원주의가 그것이죠.

그리고, 현실 자유민주주의 정치로 돌아온 저자의 시선은 80년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당에 머무릅니다.
저자에게 70년대 유럽의 복지국가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적 가치가 발전적으로 경쟁하는 모델인 것입니다. 하지만, 70년대 시작된 불황과 이를 타개하고자 했던 자본주의 국가들의 방책이란, 복지의 축소, 노동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공공부문의 사유화, 등 자유주의적 그것이었죠. 이것을 두고 신자유주의(새로운 자유주의) 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대변하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당의 대응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경쟁적 다원주의에 따르자면, 좌파정당들은 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민주주의적 공세를 벌이며 경쟁했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80년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당들은 ‘제3의 길‘, ’중도좌파‘ 를 표방하며 변화를 꾀했습니다. 이름을 그럴싸 하지만, 이것은 실제, 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선 경쟁의 포기, 즉 민주주의적 가치들에 대한 포기였어요.
설사, 이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한들, 그것은 롤스와 하버마스의 그것처럼 불가능한 프로젝트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완전한 균형은 불가능하며, 오로지 경쟁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할 때만이, 일시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지만, 저자가 설정한 대립구도에는 문제는 있습니다.
소개되는 학자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서로 다른 농도의 답변을 하고있지만, 그 전제로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등한 축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이전에 자본주의가 있었습니다. 자유주의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았던 봉건사회에서 시작되었고, 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봉건사회를 전복하고자 할 때, 필요에 의해서, 종속으로 등장했다고 봐야합니다. 실제 민주주의 최소의 절차인 보통선거 마저도, 자유주의 시대 이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까요.
자유주의가 불러온 근대의 민주주의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통해서는 자유주의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자가 주목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당의 행보 역시도 다르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변화는 70년대 자유주의의 강세(신자유주의)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데요, 이것을 단순히 ‘자유주의에 굴복했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포기했다‘ 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분명히 그렇지만, 단순히 선택하고 포기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들이 표방해왔던 ‘분배와 복지‘ 내지 ’노동권‘ 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는, 소극적인 민주주의, 자유주의에 종속된 민주주의에 불과합니다. 이 종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70년대와 같은 자유주의의 위기 앞에서 민주주의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여집니다. ’예정된 포기‘라고 할까요.

따라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발전적으로 경쟁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가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히려, ‘호황과 불황‘으로 표현되는 자유주의의 허용폭 속에서,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확대되거나 축소된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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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맨 2020-02-2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탁월한 정리가 돋보이네요. 특히 이윤의 많고 적음에 따라 한 사회에서 허용되는 민주주의(=평등)가 달라진다는 정리가 좋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에 종속된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네요
 
권력이동 - 앨빈 토플러
앨빈 토플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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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래쇼크>, 80년대 <제3물결>에 이은 엘빈 토플러의 미래학 시리즈 최종판입니다. 그의 저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읽는 이를 질리게 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는 각국의 문헌과 통계, 르포기사를 참고하고,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인터뷰하였습니다. 그의 성실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사회 전반이 변화하는 근본적인 힘이 산업과 경제의 변화로 부터 기인한다는 그의 견해는, 그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관점입니다. 이 관점은 <권력이동>에서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다만, <권력이동>은 <제3물결>에서 묘사한 사회의 변화에서 권력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입니다.

<제3물결>에서, 그가 3차 산업으로의 발달에 대해서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제조업의 발달 못지 않게 정보산업의 발달은 무척이나 많은 변화들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것 역시 제2물결 사회에 속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관점은 <권력이동>에서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는 권력을 구성하는 3대 요소를 폭력, 부, 지식으로 정의한 뒤, 제2물결 사회에서 제3물결 사회로 이동하면서, 권력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지식의 특성, 즉 폭력이나 부와는 달리 분산적인 특성에 의해, 미래사회의 권력은 집중이 아니라 분산될 것이라는 낙관입니다. 어떤 국가이든 정보산업 내지는 지식산업 발달에 집중한다면, 그곳으로 권력의 축이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하지만, 정보산업 중심의 사회가 과연 농업이나 제조업 중심의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가에 대해서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지식은 폭력이나 부에서 분리되어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가치가 아니니까요.

그것은 의존적으로 작동하죠. 산업의 측면에서 보면 자본에 의존하고, 권력의 측면에서 보면 폭력이나 부에 의존하구요. 주목받는 지식이란, 지식 일반이 아니라 산업지식이니까요. 누가 인문학을 거들떠보기나 하나요.

많은 세계적 기업들이 연구 분야와 마케팅 분야를 제외하고 생산은 외주나 하청의 방식으로 하고있다지만, 연구와 마케팅이 부를 창출하고 권력을 창출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산에 대한 지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지식의 비중이 아무리 높아진다 한들, 생산이나 권력 자체가 분산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칼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을 지적했습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란, 생산자본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데, 마르크스 역시 이것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죠. 100명 1,000명의 노동자에게 지속적으로 지급해야 할 임금으로, 1,000명분의 일을 할 수 있는 기계(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니까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기술과 노동을 분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자본을 구성하는 요소로 보았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비중일 뿐, 근본적으로는 자본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토플러와는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술의 발달, 지식의 발달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낮춰 이윤율을 떨어뜨리고, 체제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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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1
이성숙 지음 / 책세상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에 성매매가 음성화 될 것이라는 예상은 했으나, 포주들을 비롯한 성매매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광경은 무척이나 낯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던 중에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가 결성되고, 또 ‘성노동자운동‘이 등장했습니다. 소위 진보진영 내에도 논란이 일었습니다.
저 역시도 논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성매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민성노련은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반대시위로부터 결성되었습니다.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은 여성단체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그것이 노동이냐 아니냐를 떠나, 성매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성매매 여성들은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아야했고, 동시에 국가라는 권력에 의한 불법이란 낙인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했으니까요.

성매매 여성들 대다수가 사회의 빈곤화와 여성의 빈곤화라는 이중 삼중의 굴레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작 몇십만원의 생계보조금과 형편없는 재활프로그램을 내세운 정부의 정책은, 정부의 문제해결 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매매 여성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몰아넣은 셈이죠.

하지만,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반대가 곧 성매매합법화 지지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매매특별법의 정책적 실효성에 대한 반대일 뿐이지, 여전히 성매매 자체를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죠.
물론, 마찬가지 맥락에서, 성매매를 인정한다고 해서 민성노련에 대한 지지를 뜻하는 것도 아니구요.

저는 성매매에 대한 태도부터 정리해야 했습니다.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역시도, 성매매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성매매는 부도덕하다는 관념, 성매매가 근절될 수 있다는 관념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가 과거에 주장되었고 실현되었던 정책의 실효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점은 아쉬우나,
성매매는 사회 경제적 조건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적 욕구로부터 기인하는 행위라는 점, 성매매가 부도덕하며 사라져야 할 것이라는 관념은 본질적인 것이 아닌 근대 이후의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점은 좀 더 생각해 볼만 합니다.

성행위에 행위자들의 애정이나 감정이 반영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것이나, 그렇지 않은 성행위라고 해서, 즉 성적인 만족만을 위한 성행위라고 해서 그것을 나쁜 것,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 역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억압적인 가족제도는, 소위 정상적인 부부관계 내에서, 혹은 그것을 전제로 하는 성행위 만을 아름다운 것으로 규정하고, 그렇지 않은 모든 성행위를 금기시해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부부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가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 처럼, 성매매 여성들 역시도 우리가 재단했던 것 처럼 몸을 팔고 영혼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인격적 통제 아래 상대방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은 아닐런지.

그저 얄팍한 정리일 뿐, 저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외국의 성노동자운동의 사례, 성매매 여성들의 현황자료, 성매매에 대한 기록과 입장, 등 여러 가지를 참고하며 좀 더 성실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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