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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
오세철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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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자리에 예의 빠지지 않는 정치 얘기.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논쟁이 무르익는 것과 함께 막차 시간이 다가오면, 소소한 일상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옮깁니다. 그리고는, 시간에 맞춰 터덜터덜 집으로 향합니다.

- 이것이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는 국민 일반의 정치 참여는 아닐까요. 정치인의 그것과 국민들의 소소한 일상이 서로 떨어져있지 않을진데, 우리는 늘 이것을 분리합니다. 전자에는 격렬한 논쟁으로, 후자에는 한숨섞인 자조로 대합니다.

- 정치가 청와대나 여의도에만 갇혀있을 때, 우리는 4년 내지 5년에 한번 정치에 참여할 뿐입니다. 물론, 좀 더 적극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의회정치 내에서는 정당을 만들 수 있고, 바깥에서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정부와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의회민주주의 아래에서, 정치가 국민들의 뜻을 올바르게 대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정당이 국민에게 다가오던지, 국민이 정당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술자리 정치 얘기는, 이 두가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공허합니다.

- 과거를 돌아보건데, 두 가지 방법 바깥에 술자리 정치 얘기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중적인 시위가 있었습니다. 가장 대중적이라 꼽히는 60년 419, 87년 610 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419는 대통령을 하야시켰고, 610은 대통령 직선제를 따냈습니다. 결코 무기력하지 않았습니다.

- 술자리 정치 참여와 대중적인 시위를 통한 정치 참여. 전자에 비해 후자는 무기력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인데요, 그것을 비제도적 정치 참여의 한계라고 일반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제도적 정치 참여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비제도적 정치 참여는 일상적이지 못한 것이죠.

- 사회주의 정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합니다. 정당이라는 책임있는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장점과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참여라는 장점을 한번에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죠. 직업적 정치인이 아닌 국민들로 구성되는 정당이 바로 그것입니다.

- 물론, 사회주의 정당이 기본시하는 위와 같은 명제는, 자본주의 정당도 얼마든지 추구하고 있는 목표들입니다. '진성당원제'가 대표적인 경우가 되겠죠. 소수 몇몇이 내는 거액의 후원금이 아니라, 다수 당원이 모은 소액의 당비를 통해 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취지입니다.

- 따라서, 이러한 형식만 가지고 사회주의 정당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내용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포함한 어떤 정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우리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 내용입니다. 이러한 정당의 정치적 목표가 활동 형태를 규정합니다. 이 정당에게 집권은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 사실, 우리에게 '사회주의 정당' 보다 더 익숙한 것은 (그나마 최근의 일이지만) '진보 정당'입니다. 우리는 기존 정당과의 차별성을 '표방'하는 정당들을 뭉뜽그려 진보 정당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기준에 따르자면, 아직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정당은 아직 한국에 없는 셈입니다.

- 물론, 그동안 사회주의 정당을 조직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수한 시도가 있어왔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결실이 없었던 것 뿐이지요. 사회주의 정당의 내용과 형식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그간의 얘기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의 저자인 오세철 교수가 말하려는 바가 그것입니다.

- 오세철 교수는 정년을 5년 남겨두고 그가 오래도록 몸담았던 연세대학교 교정을 떠나왔습니다. '좀 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는 1975년, 32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연세대 교수가 되었지만,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의 유신반대 투쟁을 보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자 故이한열의 죽음을 보면서 직접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 그는 먹고사는 문제의 궁극적 표현이었던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정치 활동의 궁극적 표현인 정당 조직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정치연합, 민중당, 민중회의, 민중정치연합, 정치연대, 노동자의 힘, 사회주의정치연합(준)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가까이 그는 사회주의 정당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은 무게와 더불어 무기력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며, 동시에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단체와 조직의 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처음에 말씀드렸던 사회주의 정당으로서의 형식과 내용은, 그가 강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내용과 형식에 입각해서만 정당을 조직하려는 그의 노력은 오늘도 '사회주의정치연합(준)'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각각의 길을 걸어온 사회주의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조성해, 정당을 조직하기 위한 내용과 형식의 문제를 토론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동시에 한국 사회주의 정치 운동사를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고,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보급하기 위한 (가칭)사회과학대학원을 설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는 지난 20년의 한국 사회주의 운동을 회고하는 그의 문제의식이 담긴 칼럼 모읍입니다. 다소 일관성 없이 난삽한 면이 있지만, 그가 좀 더 체계적이고 일관된 작업으로 미래의 사회주의자들에게 디딤돌을 놓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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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조건
안재성 지음 / 한길사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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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의 외도를 마감하고, 다시 계획을 세워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외도의 이유는 지금의 진창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외도를 마감하는 이유 역시도 같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상을 그렸던 <경성트로이카>의 작가이자, 서문에서 자신의 과거 활동을 회의하는 것으로 인상에 남았던 안재성씨의 소설 <사랑의 조건>을 끝으로 외도를 마치려고 합니다.

- <사랑의 조건>은 80년대 한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합니다. 흔하지 않은 소재이며, 그래서 ‘노동소설’이라 따로 묶여있는 운동권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가장 흔한 소재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80년대 운동가 개인의 역사가 시작되는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을 비롯해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82년 미 문화원 방화사건,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83~84년 학생 출신 운동가들의 대규모 공장 이전, 85년 구로 동맹파업,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87년 대통령 선거와 89년 천안문 사태와 소련(소비에트연합)의 해체, 91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까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고자 투쟁하고자 했던 운동가들의 고민과 갈등을 옅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라는, 더구나 하나의 사랑 풍경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랑의 조건이라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어두운 시대와 무거운 정치적 사건들 사이에 기묘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죠.
주인공인 ‘나’와 김진숙이라는 여성의 인연은, 주인공이 80년 5월 광주의 소식에 분개하여 서울 복판에서의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소설의 시작에서 함께 시작합니다. 다만, 독서후기의 편리를 위해, 분리해서 적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가발제조업체였던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에 대항해 야당이었던 신민당 당사를 점거하고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야당 당사에 경찰병력을 투입하면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김경숙 노조 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의원직에서 제명되게 되죠.
이 사건은 단지 특정 노조의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 한 노동자의 죽음과 정치적 싸움으로까지 번져나갔습니다. 동시에 박정희 정부 말기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구요.

- 이런 사회상은 그 해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10.26 이라는 정치 테러가 발생하고, 전두환을 필두로 한 새로운 군부집단이 10.26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치권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군정의 연장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권력의 일시적 공백기를 겨냥해 숨죽였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 권력의 실세로 떠오른 군부집단은 비상계엄령의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대학 휴교령, 등으로 다시금 야당 정치인을 비롯해 대학생들과 국민들의 열망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배경이 되는 것이죠.

- 70년대 말부터 권력의 공백기 동안 민주화를 주장하며 거리를 누볐던 이들은, 5.17 조치로 인해 높아진 현실의 폭력 앞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게 됩니다. 동시에, 끔찍한 폭력을 자행하며 정부를 장악한 군부정치의 연장은 기존 운동과 새로운 운동 사이의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을 편의적으로 분류하자면, 70년대 학번과 80년대 학번이라는 세대의 갈등으로, ‘민주화’와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정치 슬로건의 갈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인 ‘나’와 1980년에 포고령 위반으로 대학에서 제적당한 작가의 이력 또한 후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새로운 운동은 83~84년경 학생 출신 운동가들의 대규모 노동현장 이전으로 표현됩니다. 어떤 이가 “트럭으로 사람들을 실어오는 것 같았다.” 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존 운동 방식의 전환은 거대했습니다. 세계 역사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니까요. (19세기 러시아의 나로드니즘 운동에서도 많은 학생 출신 운동가들이 농촌으로 이전했지만) 주인공인 ‘나’가 강제징집과 전역 이후에 노동현장을 막연히 동경하며 노동일을 시작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 하지만, 학생 출신 운동가들의 대규모 노동현장 이전이, 단순히 70년대 운동방식에 대한 회의나 이유없는 열풍일 수는 없습니다. 당시 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주의의 기초>와 같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이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노동일 속에서 그가 재회하고 학습을 받게되는 후배 박인주의 존재가 그것을 의미합니다. 운동가들의 노동현장 이전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불만과 맞물리면서 85년 구로 동맹파업을 비롯한 파업투쟁과 서노련, 인노련, 인민노련, 등을 비롯한 노동자 조직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일제시대와 해방을 전후로 해서 많은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 중국의 공산당과 교류를 했고, 소위 ‘본토’에서 직접 교육을 받은 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80년대 초중반의 이런 사회상은,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이 6.25 전쟁과 이후 몇차례의 정부를 거치며 거의 완전하게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노동현장으로 이전해 노동조합을 비롯해 학습소모임과 노동자 조직을 구성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이들이 있었던 반면, 대학 내에서는 여전히 이제 막 유입되기 시작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연구와 논쟁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용과 활동방식이 비슷했던 70년대 학생운동의 유형을 변화시킵니다. 소위 ‘사회구성체 논쟁’을 통해서, 학생운동은 뚜렷한 내용의 차이와 그에 따른 활동방식의 차이를 가지는 각각의 세력으로 분화하게 됩니다. 분화는 여러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을 겁니다. 기존의 인적 전통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했을 것이고, 인적 전통을 무시하면서 사상을 좇아 이루어지기도 했을 것이며, NL-CA 라는 큰 조직 구도 속에서 선택을 내리지 못하거나, 않고 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구요.

- 대학과 노동현장 모두에서 새로운 운동이 이루어지는 사이, 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터져나오게 됩니다.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어용 집행부가 교체되거나, 신규 노조가 결성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500여만명이 참여했던 6월 항쟁의 의미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7월부터 9월까지 계속되었던 노동자 대투쟁 역시 노동운동의 대중화를 의미했습니다. 그동안 학생 출신 운동가들과 소규모 학습 소모임에서 비롯된 운동이 비로소 그 주인에게로 자리매김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 하지만, 노동자 대투쟁은 80년대 초반 노동현장으로 이전한 운동가들에게 다시 한번 갈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자 대투쟁은 하나의 큰 물줄기였다기 보다는 수많은 작은 물줄기였고, 이제 겨우 5년 정도 되었을 뿐인 노동현장의 운동가들은 물줄기들을 하나로 모아내지 못했던 것이죠. 대중적인 투쟁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시키지 못한데 대한 고민이 다시 한번 사상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거대한 투쟁의 물결은 그 해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가라앉게 됩니다.

- 노동자 대투쟁을 거친 후, 88년에도 노동자 투쟁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됩니다. ‘수많은 작은 물줄기를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로 모아낼 것인가’ 하는 질문은 운동가들 내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내에서도 이루어졌고, 그 성과가 90년 출범하는 전노협이라는 노동조합 전국조직으로 모아지게 됩니다.

- 노동자 대투쟁을 겪은 운동가들의 갈등이 채 아물기도 전에, 또 한번의 갈등이 찾아오게 됩니다. 중국에서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고, 소비에트 연합이 해체한 것이죠.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했으나 대중투쟁 속에서 자리매김하지 못했던 사회주의 운동세력들은, 계속되는 갈등과 혼란 속에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막연했던 정치적 전망이 사라지면서 활동을 중단하는 이들도 많았고, 70년대 학번을 비롯한 일부는 제도권 정치로, 일부는 기존의 정치적 전망을 한없이 낮춘 채 대중운동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인 ‘나’와 같이 “달라진 것은 없다” 며 기존의 활동 – 전국적인 전위정당의 조직 - 에 매진하는 이들도 있었구요.

- 이렇게 각자의 길을 선택하며 89년의 소용돌이가 어느정도 가라앉을 무렵인 91년, 현대중공업노조의 파업투쟁이 있었습니다. 전투경찰, 해군함정, 헬기를 비롯해 육해공 도합 5만명의 군사병력이 동원되고, 노동자들이 화염병과 쇠파이프, 새총과 민주박격포로 무장해, 마치 전쟁터를 불사했던 현대중공업노조의 거대한 투쟁은, 80년대를 관통했던 노동운동의 상승을 마감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알려져있습니다.

- 주인공 ‘나’의 역정은 현대중공업노조의 투쟁을 마지막으로 끝이 납니다. 그 해 91년에 쓰여진 <사랑의 조건>은 이렇듯, 70년대 민주화 투쟁 80년 광주민중항쟁을 딛고 일어서 80년대를 풍미했고,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89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맞아 91년 현대중공업노조 투쟁에 쉼표를 찍는, 운동가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15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90년의 전노협은 민주노총으로 전화했고,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는 물론이요 3김의 정치가 막을 내렸으며,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이 탄생하여 버젓이 공개활동을 하는 등,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주인공 ‘나’가 이루고자 했던 ‘전국적 전위정당’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규모의 사회주의 조직들이 열심히 공개 비공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성과가 집약되고 있지는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 완전한 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나’,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자 했던 ‘나’는, 80년대 투쟁의 역사가 저물어가는 울산의 바다 앞에 서서 “사랑과 혁명은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 미완의 시대 전부가 최고의 완결성을 가지는 것” 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변한 것은 완전한 사랑과 혁명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그것에 이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김진숙을 아내로 소유하려 하지 않고, 패배한 투쟁 앞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아내 김진숙과 완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인간 김진숙을 사랑해야 했듯이, 혁명의 주체 노동계급과 완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착취받고 노동하며 살아내는 노동계급을 담담하게 사랑해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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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8-2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중공업 노조도 이제 많이 변했죠. 투쟁않는다고 민노총에서 제명되고 거꾸로 비정규직에게 교묘히 떠넘기면서 과실을 회사와 공유하는 모델로 전환합니다. 오웰이 이야기한 것과 같이 노동자들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인간해방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끌어안고 많은 사람들이 불을 살랐지만 어느새 그 열정이 식어가면서 보이는 현실은 점점 차가와집니다.

sb 2006-08-29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엊그제는 12년 무쟁의라고, 한 전의경의 부모에게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더군요. 정규직 노동자들은 쟁의 없이도 생존과 권리 보호가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만, 이면에는 하청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제명된 것은, 하청노동자 박일수씨가 분신했을 때, 현중노조 대의원들이 장례식장까지 난입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가로막았던데에 있습니다.
저는 열정은 두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열정에 앞서, 바로 이 시대가 노동자들을 싸우지 않을 수 없도록, 이기는 싸움을 위해서 단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테니까요.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
민주노총 화섬연맹 금강화섬노동 엮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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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라고 불리우는 시장의 세계적 통합이 좀 더 촘촘하게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이 누리는 더 많은 자유 만큼, 노동자들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바람둥이 배우자를 둔 그(녀)처럼 말이지요.

한 공장 안의 자본과 노동자. 떠나려는 자본에게 노동자들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

구미에 위치한 원사 제조업체 금강화섬이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폐업하면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560여일간의 투쟁기록. 10년 가까이 일했던 일터가 사라질 때, 노동자들은 어떻게 투쟁하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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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박헌영 일대기
임경석 지음, 이정박헌영기념사업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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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정 박헌영 전집의 일부입니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 김규식, 등과 함께 해방 이후 정국을 주도했던 그에 대해서 객관적인 자료는 부족한 채, 왼쪽이든 오른쪽의 편향적인 평가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쓰여졌습니다.
일대기는 그와 관련한 신문이며, 경찰 및 미군정의 자료들을 연대기 대로 나열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저자의 판단은 최대한 절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한 어리석은 접근 중의 하나는, '왼쪽이 옳으냐 오른쪽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며, 자칫 소모적인 비난으로 치우치기도 합니다.
좀 더 발전적으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들의 행보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해방이라는 권력의 공백기 상태에서 각각의 세력과 인물들이 구상했던 사회상과 실천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박헌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연구가 50년 동안이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가는 대중들의 정치적 열망을 대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에 대한 연구는 곧, 해방 직후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에 대한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에 대한 연구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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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통해서 우리는,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전형을 옅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만, 박헌영 역시도 그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1919년 3ㆍ1 운동을 통해 정치활동을 시작하며, 이어진 일제의 탄압, 그리고 망명. 망명지는 1923년 간도대지진 이전까지는 일본이었고, 이후에는 중국이었습니다. 물론, 정치활동과 상관없이 일제 하 200만에 가까운 조선인들이 일본, 만주, 중국, 미국, 등지로 떠나게 되죠.

여튼, 1923년 이후 중국으로 모인 조선의 정치가들은 자연스럽게 러시아 및 중국의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게 되고, 그 속에서 그(녀)들 각자의 정치적 경향은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박헌영의 경우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조선에서부터 외국어(영어 및 에스페란토어)에 능숙했던 그는 러시아 대학에서 수학합니다. 그가 러시아로부터 정치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예측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이후의 그의 활동은, 조선 내에서 공산당을 설립하는 것으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두차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고, 해방이 될 때 즈음 그는 목수로 위장해 지하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조선공산당을 수면 위로 띄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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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좌익' 내지는 '공산당' 이라는 한마디로 일축하는 해방 이후의 세력이란, 사실 굉장히 다양한 세력들의 집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좌익' 으로 묶인 상당수 세력 중에, 실제 해방 이후에 사회주의 강령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세력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해방 이후의 정치적 이슈는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오랜 일제 치하와 독립에 대한 열망 속에서, 해방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슈는 (1) 친일파 청산 (2) 봉건적 지주제의 청산 (3) 스스로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닦는 것 이 세가지에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해방 직후 대중들의 정치적 지지는 이러한 요구의 대변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었죠. 조선공산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세가 급변하는 것은, 모스크바 삼상회의 직후 불거진 찬탁/반탁이 정치적 이슈로 부각하면서 부터입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는, 조선인들 스스로 국가를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 당시 조선에 진주하고 있던 미국과 소련 양국이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제반 원조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 회의안을 기점으로 조선은 찬탁/반탁의 열풍으로 휩싸이게 되고, 응당 이 회의안에 찬성했던 정치세력들의 입지가 줄어들게 됩니다.

더 이상은 외국에 의한 지배를 원하지 않았던 조선인들의 열망에 비해, 그것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다수 정치세력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이 조선인의 정부 수립을 인정하고 지원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었던 듯 하며,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안에 찬성했던 정치세력들이 찬탁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 반사적 이익을 통해 정치적 입지가 넓어진 것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안을 제출했던 미국과 미군정, 그리고 한국민주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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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탁/반탁 논쟁과 더불어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의 정체성을 옅볼 수 있는 것은, 좌우합작입니다.
좌우합작은 조선인민당의 여운형 선생이 주도합니다. 그런데, 좌우합작의 핵심은 좌와 우를 합작한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의 핵심은 자주적 정부의 구성에 있습니다.

앞에서 해방 이후 정치적 이슈의 핵심은 (1) 친일파 청산 (2) 봉건적 지주제의 청산 (3) 스스로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닦는 것 에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좌우합작이란 (3) 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선공산당은 (1)과 (2)가 전제되지 않은 좌우합작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좌우합작은 여운형의 암살과 함께 실패하고 맙니다.

조선공산당이 좌우합작에 반대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남과 북의 분리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1) (2) (3) 세가지 모두에게서 대중적 지지를 받았던 조선공산당이 스스로의 정치적 목표를 포기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1) (2) 없는 (3) 만을 이룰 수는 없었던 조선공산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1) (2) (3) 모두를 이루고자 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좌우합작 실패를 즈음하여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이, 활동의 축을 북으로 옮기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3당 합당을 통한 남로당의 결성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

북으로 옮겨간 이후의 박헌영의 행적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없었습니다.
곧 이어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정전협상 이후 그는 미국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합니다. (조선노동당 내에 남과 북 모두 여러 경향이 혼재되어 있었다는 것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나, 새로운 자료를 통해 신중히 접근해야 할 부분입니다.)

박헌영. 그 역시 정치 외에 개인적 행적을 거의 남기지 않은 열정적인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조선공산당 당수이기 이전에, 해방 이후 조선인들의 정치적 열망을 대변하고자 했던 정치가였고, 북으로 넘어가기 까지 친일파 청산, 봉건 지주제의 청산, 자주적인 국가의 수립이라는 열망 그대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불필요한 이념 논쟁' 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념 논쟁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불필요한 것은 이념 논쟁의 흉내를 내는 엉터리 편가르기 싸움입니다.
박헌영 그에 대한 연구가, 해방이라는 정치적 열망으로 가득찬 역사의 한 순간을 돌아보는데 있어서, 진정한 이념 논쟁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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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une 2006-08-2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을만 하던가요? 요즘 한국공산주의운동사연구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서점에서 보고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sb 2006-08-27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 박헌영 일대기>는 '박헌영 전집'의 일부입니다. 전집의 나머지 6권은 그의 글이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대기는, 신문이나 재판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시간 순서대로 그의 행적을 복원한, 일종의 자료집에 가깝습니다.
 
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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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로 복원된 조선시대 사회주의운동

요즘엔 꼭 소설책 한권은 곁에 두려고 합니다.
두꺼운 책들을 읽다보면 자칫 지루해지기도 하고, 사실적이고 분석적인 책들과는 사뭇 다른 멋을 지니고있는 것이 소설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대부분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인데,
소설을 읽으며 머리 속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일이 굉장히 재밌습니다.

이번에 단양에 다녀오는 길에도 소설책 한권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안재성씨의 이력은 말 그대로 386. 60년대 생에, 8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으나 광주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제적을 당했고, 이후에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동구권 몰락과 함께 과거를 청산해버린.

요즘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끔 글을 쓴다는 안재성씨의 책 <경성트로이카>는 1930년대 일제치하에서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청산해버린 과거의 사회주의운동을 우연한 계기로 다시 접하게됩니다. 경성트로이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효정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죠.

구도와 내용 면에서는 손석춘씨가 쓴 <아름다운 집>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아름다운 집>이 혁명가 이진선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다면 <경성트로이카>는 이효정 할머니의 회고와 저자가 공부했던 김경일 교수의 <이재유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 내용에 있어서는 조선시대 사회주의자들의 일대기를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김경일 교수가 연구한 '이재유' 라는 사람은 <경성트로이카>의 주인공 격이기도 한데, 당시 경성지방 - 오늘날의 서울 - 노동운동 및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혁명가입니다.)

# "허무한 일이요"

책을 읽으며, 내내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떠올랐습니다. 대부분 일독하셨겠지만, <태백산맥>은 일제 말기의 빨치산 투쟁을 그리고 있죠.

시대적 맥락에 따른다면, <태백산맥>은 <경성트로이카>의 후반부에 붙일 수 있을겁니다. <경성트로이카>에서 경성을 비롯한 조선, 만주, 중국 곳곳을 넘나들며 일본의 지배에 맞서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꿈에 그리던 해방된 조선에서 일본군이 아닌 한국정부와 북한정부에 의해 스러지게됩니다.

"일정 때 우리가 놈들의 힘을 빼앗으려고 싸우는 동안 당신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웠소. 우리가 학업과 생업을 포기하고 공장과 감옥을 떠도는 동안 당신들은 국가를 운영할 기술을 배우고 사람 고용할 돈을 모았소. 일제가 물러나고 보니 우리 같은 사람은 쓸모가 없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구려. 참 허무한 일이요. 허무한 일이요"

마지막으로 체포된 혁명가 김삼룡이 자신을 심문하는 경찰관에게 던진 말입니다.
과거 자신의 운동을 스스로 청산해버리고 홀홀히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안재성씨가 굳이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을 복원한 소설을 써낸 이유가, 김삼룡의 한마디에 담겨있습니다.

일제시대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더불어 일본의 지배에 맞서 싸우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합니다.
이 두 세력은 일본제국주의라는 적을 상대로 하나로 뭉치게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간회'입니다. 그런데, 신간회는 광주학생운동 -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인 학생이 조선 여고생을 희롱하면서 생김 - 을 기점으로 다시 나뉘게됩니다.
항일시위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 두 세력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데, 먼 장래를 위해 당장의 싸움을 자제하고 힘을 기르자는 주장과, 당면한 싸움을 전면화해야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을 가르게됩니다.

물론, <경성트로이카>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상을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파업이라는 무기를 통해서 항일시위를 벌였으며, 일년이 멀다하고 일본군에 의해 체포와 고문을 당해야했던 조선시대 사회주의자들.
책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체포'일 정도로, 이들은 헌신적으로 싸웠고, 그만큼의 견제와 억압을 받은 것이죠.

# 스러진 천덕꾸러기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활동을 계속하던 이들이 해방을 맞은 것은 1945년 8월 15일.
이들은 꿈에 그리던 합법적인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조선인민공화국'과 '조선공산당'을 수립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일제 치하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은 대중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고, 조선공산당은 불과 몇 달 만에 수만명의 당원을 확보할 정도로 세가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좌초되는 것은 그 해 12월의 신탁통치.
미국과 소련은 모스크바 삼상회의를 통해서 신탁통치를 결정하게 되는데, 조선공산당은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반대하고도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 곧 급추락하게 됩니다.
유일한 견제세력이던 사회주의 세력의 추락은, 미군정과 친일파, 우익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었고, 그토록 해방을 기다렸던 사회주의자들은 해방된지 일년 만에 다시 불법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다시 일제시대처럼 지하활동을 시작하거나, 월북하게되죠.

하지만, 박헌영을 비롯해 이천여명에 가까운 남로당 출신 월북 사회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을 비롯해 북한 공산당에 의해 견제를 받았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숙청되는 운명에 처합니다.
남쪽에 남아서 지하활동을 하던 이들, 즉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빨치산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한정부와 남한정부가 벌이는 휴전협상 아래, 그(녀)들은 천덕꾸러기 처럼 소탕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 이질감

이질감입니다. 본문 내내 등장하는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의 처절하고 헌신적인 투쟁과, 그(녀)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해방 이후의 허무한 몰락의 과정은 이질적입니다.

물론, 이질감은 몸뚱이의 죽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월북한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자유조차 보장하지 않는 북의 현실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자는 현실을 왜곡했습니다. 몸뚱이의 죽음보다 더욱 처절한 것은, 정신의 죽음이었죠.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주의의 늪에 깊숙히 빠져들었던 남한사회에서 이 이질감은 논의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과거의 상흔을 잊은 채 깊이 가라앉았어요.

하지만, 한번 깊이 가라앉아버린 이질감은, 반공주의가 어느정도 사라진 후에도 다시 떠오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무릎을 꿇었을 저자 안재성씨 역시, 이 이질감을 극복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는 겁을 내는 어린아이처럼, 보고싶은 과거만을 회상하고 복원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가 복원한 사회주의는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질감의 원인, 코민테른

두개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르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안재성씨와 이효정 할머니가 아무리 애를 써서 과거를 복원한다 한들, 복원된 사회주의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의의는 허공에 흩어질 테니까요.

사회주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극중 일면에서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극중 국제선과 국내선과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주인공 이재유가 결성한 '경성트로이카' 조직과 같이 경성지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사회주의자 권영태 그룹. 이 두 그룹은 경성지역 사회주의운동을 위해 통합하려고 하나 갈등하게 되죠. 권영태 그룹은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 세계 공산당의 연합조직 - 의 별칭)의 지시를 받는 국제선 조직이었고, 이재유 그룹인 '경성트로이카'는 자생적인 국내선 조직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갔다가 돌아온 후 신문사나 잡지사에 취직하는 등의 비슷한 경력을 쌓고 있었다. 현장의 대중 조직 건설 보다는 국제선과 연결되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같았다. 이재유는 이들 지식인 출신 사회주의자들을 신용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공산당이 노동자와 농민 출신 중심으로 재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국제선과 국내선이 얼마나 현장에 기반을 가지고 있느냐를 떠나서,
소련 공산당을 위시로 한 스탈린의 코민테른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지령적이고 일방적인 지도체계를 유지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코민테른의 경직성은 <태백산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 당시 남한 뿐 아니라 북한의 사회주의 운동에서 코민테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죠.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코민테른으로 등치되는 그 순간, 사회주의는 정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조선공산당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입장을 급선회 한 것 역시 코민테른의 지시였는데, 민중의 요구보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지령적으로 수용했던 박헌영 선생은 되려 북한에서 미국의 간첩으로 몰려 숙청을 당하게 됩니다. 이미 코민테른은, 세계의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어 갈 조직이 아니라,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여타 연합국과 한반도 나눠먹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온전한 얼굴, 그리고 살아있는 운동

코민테른의 발자취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운동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죠.
사회주의 국가를 모델화 시켜 소련이나 북한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코민테른 운동과 등치시키는 순간, 그 운동은 죽게되고 정체하게 될 것입니다.

동구권이 몰락하고 많은 운동권들이 운동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그(녀)들중 누구도 동구권의 권력구조, 산업구조, 소련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오류에 대해서 돌아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들의 운동이 죽어있고 굳어있는 무엇이었다는 것은 아닐까요. 동구권이 몰락했다 한들 한국의 상황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그(녀)들을 떠나게 만든 것입니까.
그(녀)들에게, 저자인 안재성씨에게 운동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실제, 유럽에서는 1930년대, 즉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집권을 하던 즈음부터,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였고,
동구권 몰락 이후에도, 적어도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 이념이 권력을 잡기 전인 일제시대에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다 죽어 간 혁명가들의 생애를 복구하는 일은 의미가 있지만, 사회주의자들의 긍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그 이념이 가진 근원적인 문제를 가려 버리는, 내 스스로 원치 않는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저자 서문에서

극구 서문에서 자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가며 조심스러움을 내비치는 안재성씨,
그가 이효정 할머니와 복원해낸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얼굴은 단지 반쪽이 아닙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온전한 얼굴일 뿐입니다.

애써 반쪽을 만들고저 하는 저자의 서문과, 책 말미의 처참한 죽음들이 이질감을 주는건 그 때문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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