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ype - Soulfire - Maxi Single
P-type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 처음 힙합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2003년이었습니다. 음악을 넓게 듣지 않았기 때문에 "가요는 식상해." 라는 선입견이 무척 강했고, 의도적으로 다른 음악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이미 충분히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다이나믹 듀오' 앨범을 들으면서, 소재의 다양함, 가사의 유쾌함, 라임(rhyme, 운율)의 매력을 잔뜩 느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내어 앨범을 찾아듣기 시작했죠. (오늘날 한국 힙합음악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 하이텔 힙합음악 동호회에서 정리한 힙합의 역사와 문화를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저 멀리 미국땅의 힙합 1세대 앨범까지 모조리 구해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저 귀에 익은 한국 힙합 앨범을 손에 잡히는대로 듣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 P-type 앨범을 듣게 된 것이 그 와중이었습니다. 그저 검색결과대로 앨범을 구해 들었을 뿐이죠. 제가 P-type 1집 앨범 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돈키호테」 가 아니라 「힙합다운 힙합」 이었습니다. 이 곡은 아카펠라로 시작해 한 두 소절을 부르다가 비트가 끼어들어가는 형식을 띄고 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1집에서 그가 직간접적으로 강조하는 얘기가 바로, "랩은 또 다른 드럼이다." 라는 것인데, 문장 자체를 이해하는 것과 경험을 통해 새기는 것은 충분히 다른 행위이니까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런 그의 얘기들이 가장 쉽게 표현된 곡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힙합플라야의 어떤 회원은 그를 '마스터(master, 장인)' 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죠.

- 그의 앨범을 기다려온 분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만큼, 싱글 앨범인 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많으실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훌륭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크게 「돈키호테 리믹스(Remix, 변환곡)」 과 「Soulfire」, 「부메랑」 이라는 새 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7곡 중 인트로(Intro)를 제외하면 6곡인데요, 그 6곡은 각 곡의 연주 부분과 노래 부분을 분리시켜 담았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소위 '재탕' 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또 실제로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노래 부분은 충분히 듣고 또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일종의, 아름다운 건물의 건축도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거든요.

02. Soulfire

"모두 2004년의 혁명을 기억해? 돈키호테. 그 향기 여태까지 남아있지 꽃이 피었겠지."
"판에 들어온지 불과 몇년 몇년 사이에 남은건 오직 형제 몇명 몇명들이 몇년 뒤에 몇명으로 바뀔지.."
"당시엔 방식 따윈 관심 밖이었지. 매일 잠깐씩 혹은 한 시간씩 자신과 씨름하듯 가사를 남겼지."


2004년 돈키호테를 발표한 후일담이자, 1집 에서 간략하게 다루어졌던 개인의 역사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가 훌륭한 라임을 적어내는 만큼 그의 작업방식이 궁금하기 마련인데요, 「Soulfire」에서는 사건과 느낌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1집 「So U Wanna be Hardcore」에 좀 더 구체적인 그의 음악관이 담겨있습니다.

03. 부메랑 (feat. Red Roc)

"나와 같은 세대들은 다 기억해. 격해진 편견은 힙합을 지겹게 공격했지 겪게 됐던 그 많은 아픔을 가볍게 봐선 안돼 그땐 모두 힘겹게"
"명심해 유행은 언젠가 다시 변해. 들어봐 꽃은 펴.."
"Jordan과 Barkley는 코트를 떠났어. 2Pac과 Big Poopa도 힙합판을 떠났어."


2장의 앨범을 냈을 뿐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많은 활동을 해왔던 힙합음악가로서 오늘날 힙합음악계의 앞과 뒤를 넓게 조망하고 있습니다. 편견과 비방 속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어제와 힙합이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 낸 오늘을 얘기하며, 유행에 치우치기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질 기회를 준비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꾸준히 해나가자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 가사인 "무거운 달력을 넘기고" 에서는 노장 음악가의 씁슬함이 녹아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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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을 위하여 착한 사람 문성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목마른 계절 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47
공선옥.김소진 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 공선옥 「씨앗불」, 「목마른 계절」

- 수필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에서는 쉬이 드러나지 않았던 작가 공선옥을「씨앗불」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63년 생인 그녀는, 여고시절 '80년 광주'를 경험했고, 폐허의 광주에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작가 공선옥의 화두가 오랫동안 80년 광주에 머물러있는 연유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저에게 있어서「씨앗불」은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과 함께 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 동안 세미나 문건, 책, 다큐멘터리, 심지어 드라마를 통해 적지 않이 듣고 접해왔던 80년 광주였지만, 그것은 늘 분석되고 해석된 채이거나 사실의 나열에 그치곤 했기 때문입니다. 「씨앗불」에서 저는, '교훈'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 또 한가지는 관점의 차이인데요, 「씨앗불」은 지식인 또는 운동가의 관점이 아닌, 광주 시민의 관점, 80년 광주를 살아냈던 막노동꾼, 중국집요리사, 택시운전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닌 날 데리러 온다 해놓고 간지 십년째에요. 고아원에서 나와서 총 잡기 전까지 뺑끼통 들고 간판일 따라다녔죠." 군사정권과 언론이 '폭도'로 몰았던, 그래서 KBS를 불태워버렸던, 바다 건너 분쟁지역에서나 보았던 바로 그 차림으로 공수부대에 맞섰던, 죽음의 목전에서 차가운 도청 바닥에 친구, 가족,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새기며 그곳을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들이었습니다.

- 이야기는 주인공 위준의 몇일간을 걸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두환과 함께 12ㆍ12를 일으켰던 노태우가 정권을 잡던 87년, 80년 광주의 기동타격대원들이었던 이들이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며 음식점으로 모이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는 정치인으로 시민운동가로 막노동꾼으로 택시운전사로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의 모임은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이들은 각자에게 맺힌 원혼의 매듭을 풀지 못한 채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맙니다.

-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가 들어선 오늘날 이들의 매듭을 풀렸을까요? 작가 공선옥의 대답은 연이어 실려 있는 「목마른 계절」,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에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는 세 작품이 나란히 놓여있다는 느낌입니다. 「목마른 계절」에서 '아줌마'는 광주를 화두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산 입에 풀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합니다. 노동쟁의 중인 방직공장에서 발길을 돌린 아줌마는, 얼굴에 기름기가 없다는 이유로 용역회사에서도 퇴짜를 맞게됩니다. 그리고, 아줌마를 만난 '시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이젠 아줌마도 광주에서 벗어나야 해요. 2, 30년대의 신파가 그 보다 낫거든." 글'이라도' 써서 풀어야 하는, 하지만 글'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80년 광주인 것이죠.

- 시대 순으로 봤을 때 가장 나중에 놓일법한,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의 '엄마'는 어떠한가요. "얼마 전부터 내게는 장기적인 생각보다는 단기적인 생각, 단기적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대한 생각만을 하게되는 버릇이 생겼다. 미래? 웃기는 거였다. 미래에 대한 설계? 개나 물어가라, 였다."라고 말하면서도, 엄마는 몹시 아픈 둘째 아이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아동일시보호소를 찾아갑니다. 어쩌면 조금 지쳐있을지도 모를 작가 공선옥의 의지 혹은 다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녀는 옆자리에 앉은 이가 건네는 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마시면서도, 보호소의 아픈 아이를 찾아 꼭 광주역에 내리는 것이죠. "같이 살자."며 추근대는 그에게 국밥까지 얻어먹은 후, 그녀는 화장실 좀 다녀온다며 유유히 자신의 목적지로 발길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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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7-06-1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멋진 리뷰네요~
공선옥의 소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를 읽고 살펴보다 리뷰를 보게 되었는데, 이런 멋진 서재가 있다니요~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sb 2007-06-1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쓰다 만 후기에 과한 칭찬이세요. 후 반갑습니다.
 
아리랑 세트 - 전12권 (양장)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태백산맥>을 읽었던 것은 대학시절이었습니다. 이내 <한강>을 읽었고, 최근에 마지막 작품인 <인간연습>을 읽었습니다. 그동안 <아리랑>을 읽지 않고 아껴두었던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진 선생의 글솜씨에 선악의 대립구도가 확실할 일제치하를 배경으로 한다면 무에 볼 것이 있겠는가 하는 심보였습니다. 결국 읽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동안 숱하게 당시 사회상을 배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은 적지 않이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방언을 따로 정리했고, 극중 인물들의 물음표를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12권을 모두 읽어갈 때 즈음에는, 메모한 종이의 양도 제법이었습니다. 이것을 정리해내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죠.

- <아리랑>은 1904년 1차 한일협약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40여년의 시간적 깊이와 대한제국, 만주, 간도, 하와이, 중국, 일본, 미국을 넘나드는 공간적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동학농민운동부터 의병항쟁, 3/1 운동, 독립군투쟁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사회 문화조직을 통해 이루어졌던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의 피땀어린 투쟁들이 담겨있고, 그 반대편에는 1차 한일협약으로부터 시작해 의병대토벌작전, 토지조사사업, 간척사업, 농촌진흥운동,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상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소설 <아리랑>은 이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당시를 살아냈던 실존 및 가공 인물들의 이해관계와 미풍양속에의 세밀한 묘사 속에 위치시키고 있구요.

- 더구나, <아리랑>은 그저 '식민지 역사의 소설적 각색'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리랑>이 기획되고 출판될 당시인 90년대 초중반의 사회와 문학계의 흐름을 통해, 아니 그 이전에 조정래라는 작가가 어찌하여 자신을 '글감옥'에 몰아넣으면서까지 이 작품을 기획하고 집필했는가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를 두고 한 문학평론가는 <아리랑>은 "문학이 세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아리랑 연구>에 따르면, 우리 문학에서 분단에 대한 비판은 70년대 이후에나 가능했다고 합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줄곧 20년 넘게 문학은 자의든 타의든 순수문학(?) 으로서 인간성을 강조하거나 개인의 실존문제만을 다루어왔던 것이죠. 그리고, 20년의 터울 뒤 90년대 문학은, 과거로부터 단절하거나 변화하려는 움직임들이 강하게 나타나구요. <아리랑>은, 95년,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 자리합니다. 조정래 선생께서는 <태백산맥>에서 해방 이후 친일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것을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사회를 소위, 천민자본주의로 병들게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하시죠. 그리고, 이때부터 이미, 선악의 확연한 대립구도 속에 자리잡을 <아리랑>의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친일 한국인들은, 그들의 잔인한 행동상이 폭로될 운명을 가진채 재탄생하고 있었던겁니다.

-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아리랑>의 선악구도는 지나칠 정도로 확연합니다. 동시에, 개화당과 을사의병 의병장을 거쳐 만주 독립군으로 활약하게 되는 송수익이라는 인물이 시종일관 굵은 굴곡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논쟁들에 대한 작가의 가치판단이 송수익의 행보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논란의 여지가 없을지라도, 유생들의 위정척사운동과 보황주의에 대한 비판, 자생적 민족신앙으로서의 대종교의 포교,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등 속에서 선택하게되는 무정부주의,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가치판단의 굵은 굴곡은 송수익 뿐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와 같은 역사적 인물, 신간회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적극적인 부각을 통해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이런 굴곡이 <아리랑>의 소설적 매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신채호, 나철, 홍범도, 이회영, 양세봉, 이상룡, 김원봉, 이승만, 이광수, 김일성과 같은 실존인물과 송수익, 공허, 지삼출, 방영근, 방대근, 방수국, 장칠문, 백남일과 같은 허구적 인물들의 다채로운 조화, 그리고 세시풍속, 소도구, 상품, 생산양식, 교통수단, 비속어, 등에 대한 풍부한 묘사가 언제나처럼 소설읽는 재미를 톡톡히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적 매력이 크게 드러나는 부분은, 농사를 비롯해 하와이 농장이나 군산항, 일본의 강제노역장에서의 노동에 대한 묘사와 세시풍속과 놀이문화의 묘사입니다. 이러한 묘사들이 소설의 굵은 굴곡을 가로 세로로 넘나들며 다채롭고 아름다운 선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또한, 소리꾼 차옥녀를 비롯해, 철도공사장 인부들의 노래, 차득보의 장타령, 독립군가, 무엇보다 제목이기까지 한 '아리랑'은, 소설에 작은 운율을 심고 있습니다.

- 큰 흐름과 함께 작은 흐름들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선악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세분화되는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소설적 묘사, 무정부주의로 매듭지어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평가는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두번째 주제는 문학평론가들의 평론 모음집인 <아리랑 연구>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 내용이군요. (<아리랑 연구>는 소설사적 맥락, 여성 등장인물, 친일파, '아리랑', 등 다양한 초점으로 <아리랑>을 평론하고 있습니다.)

- <아리랑 연구>에 따르면, 극중 친일파를 크게 세 부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중인 내지 상인 출신으로서 식민지 시대의 근대적 변화 속에서 지배계급적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장덕풍 백종두 등입니다. 두번째는,  중산층이나 지식인들로서 계급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를 갈등하며 때로는 방관자를 때로는 적극적 참여자이기를 선택하는 이들입니다. 민동환 홍명준 박정애 등이죠. 마지막은 하층계급 출신으로서 식민지 시대의 혼란과 좌절을 통해 일탈욕구를 드러내는 이들입니다. 서무룡 양치성 박동화 박용화 등입니다. 선악의 대립이라는 기본 구도 속에서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친일파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잡아내고 있는 <아리랑>의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공산주의 운동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내용적 비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생들과 만주 독립군 부대 사이에서 번져나가던 공산주의 열풍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자유시참변, 고려공산당과 한인사회당 사이의 갈등, 중국공산당 내의 민생단 투쟁,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와 같은 논쟁적 성격의 사건들, 조선공산당 창당과 재건운동, 1930년 프로핀테른 9월 테제, 1935년 코민테른 인민전선 테제와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중심인물인 송수익의 행보나 정도규, 공허, 등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시각은, "제 아무리 약소민족의 해방을 부르짖는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정치적 기본단위로서의 민족은 여전히 유효하다."라는 비판과 더불어 건강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가치판단이라기 보다는, 식민지 해방의 도구로서 공산주의를 바라본 것이라 전면적이고 직접적이지는 않습니다. 무정부주의로 귀결되는 송수익의 행보 역시 이 대목에서는 유난히 확연하지 않아서, 이것을 가치판단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조정래 선생은 서문에서, "식민지 시대를 살아냈던 이들의 노력은 이념에 관계 없이 그대로 민족통일이라는 재단 위에 바쳐져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문 뿐만 아니라 극의 전면에 흐르고 있는 민족에 대한 강조 때문에 '국수적이다' 라는 비판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소설 <아리랑>의 배경과 현재적 의미를 간과한 비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적어도 <아리랑>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과거의 고통들과 방치되고 있는 친일에 대한 청산 앞에 겸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기본단위로서 '민족'이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엄연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지향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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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장석주의 소설창작 특강
장석주 지음 / 들녘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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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그리고 왜 소설이 쓰고싶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는, 그저 동호회 회원 노릇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양적으로만 부풀어가는 책읽기가 미덥지 않아서 보험들 듯 쓰기 시작한 것 뿐이었습니다. 꽤 열심히 글을 써댔던 저였지만, 기본적인 개요 조차도 없이 시작하기 일쑤입니다. 이 엉터리 글쓰기는 종종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정처없이 떠돌던 글머리가 우연히도 방향을 잡게되는 경우였습니다. 그럼 글쓰기에 속도가 붙기 마련이죠. 그런데, 정신없이 풀려나가는 실타래 속에서,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글쓰기에 대해 흥분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한편의 독서후기도 말끔하게 써내리지 못하면서 소설이라니요. 어디까지나 욕심에 불과하지만, 욕심이기에 마음껏 부릴 수 있었습니다. 독서후기도 결국은 누군가의 독서후기일 수 밖에 없지만, 소설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소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무척 매혹적이었습니다. "쓰다 보면, 계속 쓰다 보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 그저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막연하게 들떠, 소설쓰기 특강을 찾아 도서관 서가를 서성였습니다.

- 장석주 선생은 오랫동안 소설쓰기에 대한 강좌를 해오신 분이라고 하네요. <소설>에서 그간 여러차례의 강좌를 진행하느라 싸두었던 보따리가 여러 편의 소설과 함께 풀립니다. 그런데, <소설>은 여느 실용서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기대한다면, 이 책은 여러분들에게 너무나 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군요. (예문으로 등장하는 소설들과 한국 소설사의 몇몇 화제들에 대한 소개를 제외하면 실제로도 무척 얇습니다.) 소설이 '규칙'과 거리를 두고 있는 만큼, <소설> 역시 '규칙의 해설' 내지 '성공사례'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우스개로, 선생은 고작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군요. "훈련되지 않은 머리는 글쓰기의 장애물이 될 뿐이다." ㅎㅎ

- 소설의 변하지 않는 주제는 다양하기 그지 없는 삶이지요. 수필이나 자서전이 아닌 이상, 소설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최소한 존재할 법한 타인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쫓고있는 것이겠지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보자면 수필을 따라갈 수 없고, 비용으로 따지자면 온갖 가지의 상담을 당할 수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실용서가 무던히 팔려나가는 요즘 같아서는, 그 영역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소설을 읽고싶고 쓰고싶은 욕구도 그저 스스로의 지적 허영을 소비하려는 그것은 아닌지 의심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 하지만, 소설이 삶에 대한 고민의 전부가 아니듯, 소설이 그 나름의 역할을 잃은 것도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주체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혹은 그것을 숨기고 싶어하는 욕망의 산물이다."라는 선생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통하든, 숨기는 것을 통하든, 주체의 변덕스런 욕망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도, "소설의 본질은 인간성의 탐구와 새로운 인간상의 창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 변덕스러움을 고려하고, 소설을 쓰고싶다는 주체의 욕망을 확인했다면, 선생의 몇가지 도움글들을 갈무리 해둘 필요는 있습니다.
- "원고 매수로 10분이 넘어갈 때 까지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독자가 알 수 없다면, (후략)"
- "작품 속의 등장인물의 성격이 불분명하거나, 평면적이거나, 개성적이지 않다면 그 작품은 그 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 "좋은 문장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있지만 문체는 그렇지 않다. 다른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거나 흉내내는 작가는 스스로 작가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앞서 말씀드렸던 것 처럼, 책의 후반부는 신세대 문학,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소설, 대중 소설, 페미니즘 소설과 같은 화제들을 나열하고 있는데요, 제법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화제를 꺼내는 노장 소설가들의 고민이 묻어나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옵니다. 물론, 화제에 오른 소설들의 목록을 메모하는 것도 잊지 않았구요. (마이리스트로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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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블랙 러시안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곰팡이꽃 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50
배수아.김연수 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 그리 많은 책을 읽어온 것도 아닌데, 제법 가리기까지 했었습니다. 몇편의 대하소설을 제외하고는 당췌 소설을 읽지 않았었죠. 마음먹고 소설을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막상 소설을 읽으려고 하니,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걱정이었습니다. 급하게 입문서라 생각되는 몇권의 책을 훑었습니다. 따분하기 그지 없는 한국소설사를 띄엄띄엄 훑으며, 소설에 대한 호기심은 조금씩 사그러들고 있었을 때, 도서관 서가에서 창작과 비평사의 '20세기 한국소설' 전집을 발견했습니다. 알라딘에서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메일링리스트에서 전집 할인행사를 봤던 기억이 교차되면서 낯설지 않은 이름을 찾았습니다. 서가를 훑는 시선은 40권이 넘어서야 비로소 멈추었습니다.

# 김경욱 「블랙러시안」

- "지국에 불시착하는, 수억만 번째의 첫눈이었다." 이 표현만큼, 이 소설의 매력을 보여주는 문장은 없을 것 같군요. 처음과 마지막 장면은, 비행기 결함으로 화성에 추락한 주인공이 줄어드는 산소통의 눈금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양단의 장면이 품고있는 것은 '은서'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 은서를 찾아헤매는 주인공은 급기야 그녀가 활동하던 UFO동호회까지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은서 대신 만난 다른 회원은 "다른 시간과 공간의 존재를 믿느냐?"라는 알 수 없는 얘기를 남긴 채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UFO동호회에서조차 은서를 찾지 못한 주인공은, 결국 어지러움을 느낀 채 쓰러지고 맙니다. 그 위에 화성의 주인공이 겹쳐집니다. 그가 애타게 찾아해메었던 은서는, 화성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에게 나타납니다. 그를 구하러오는 우주선 '블랙 러시안 - 그녀가 즐겨마시던 칵테일'호로 말이지요.

-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의 존재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낸 상큼한 소설이었습니다. 소설가 김경욱은 PC통신, 인터넷을 비롯한 영상매체를 소재로 채택해왔다고 하는데요, 아직 현실에 녹아내리지 않은 상상이나 기술이 바꾸어 낼 우리 삶의 모습들을, 소설가 김경욱은 그려보이고 있습니다.

# 배수아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 가장 알쏭달쏭한 작품이었습니다.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의 푸른 사과며, 자동차를 가로막는 검은고양이, 그리고 친구 소영이 구입하려던 은빛가위까지. 작가의 생각을 쫓아가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결국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 주인공 '나'는, 얼마 전에 읽었던 <백수생활 백서>의 그녀를 무척이나 닮아 있었습니다. 타인을 비롯한 주변 세상 뿐 아니라, 심지어 그녀 자신의 삶에 대해 조차도, '나'의 시각은 무척 건조합니다. 의대생과 결혼한 후 백화점 쇼핑이나 다니며 그녀에게 일상사를 속살거리는 사촌과, 벗어나고 싶어했던 정비공으로 재회하게 되는 김신오의 존재 역시도, 그녀의 무채색을 더욱 바래보이게 할 뿐입니다.

# 김연수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

- 이번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낯익은 이름이었습니다. 김연수, 군에서 책읽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청춘의 문장들>의 그였습니다. 동호회 회원들의 극찬에 떠밀려 집어든 것이죠.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문에 씌여져 있던, "유유히 흘러가는 청춘의 시간들이 아까워 문장에 잡아두고자 했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필집에 가두어진 그의 청춘은 꽤나 잔잔히 흘러가고 있었죠.

- 단편집에 실린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 역시 예의 잔잔한 목소리로 읊어지고 있습니다. 소위, 배 다른 동생인 재식을 바라보는 '나'는, 까닭 없이 재식을 괴롭혔던 어머니와 재식이 집을 나간 후 '제발로 나간 만큼 제 알아서 하라.'던 아버지의 애증(?)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재식을 찾아간 '나'는 그로부터 자신이야 말로 가장 어렵고 불편한 사람이었음을 듣게되죠.

- 재미있는 것은 독일에서 돌아와 재식과의 재회를 준비하는 '나'의 행보와 나란히, 북한 김정일의 사망 소식이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배 다른 동생 재식을 그저 '재식'으로 바라보려하는 '나'와 자극적인 북한의 소식에 귀기울이지 않는 '나'가 묘하게 겹쳐집니다.

# 하성란 「곰팡이꽃」

- 가장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자신의 후배가 마음에 두었던 여직원과 결혼한 후, 주인공 남자는 옆집 여자의 쓰레기를 뒤지는 일에 몰두합니다. 작가 특유의 독특한 초점과 섬세한 묘사 - 해설에서 인용 - 이 쓰레기를 뒤지는 그의 모습을 더욱 집요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남자는 옆집 쓰레기를 헤집고 분석하여, 옆집 여자의 체구며 취향, 생활패턴까지 알아냅니다. 마침, 여자에게 고백하고자 꽃이며 생크림 케잌을 들고나타나는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하며, 그의 행동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구요.

- 남자는 '쓰레기 분석을 이용한 사회학'을 얘기합니다. 또 다른 남자의 어리숙한 모습이 그를 그렇게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쓰레기를 뒤지는 일은 의사소통 행위의 일환이자, 더욱이 탁월하기까지 한 그것이죠.

- 남자를 보며, 대학시절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애써 고백했다가, "오빠, 저 좋아하세요?"라는 대답을 들었던 웃지못할(?)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에게, 말 한마디도 다듬고 또 다듬던 제 모습은, 그저 애써 마련한 만남을 따분해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졌겠죠? 상대를 잘 알아가는 것은,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소통의 절반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순환되지 않는 절반의 많음은 오히려, 순환을 압박할 뿐이겠지요. 참으로 탁월한 작품이었습니다.

# 조경란 「망원경」

- 망원경의 특징이 너무 유별난 까닭에, 주인공인 '나'가 망원경을 구입하는 순간부터 재미가 덜했습니다. 보고싶은 것과 보기싫은 것 모두를 골고루 비추는 눈과 달리, 망원경은 보고싶은 것 만을 집중적으로 비추니까요. 망원경 렌즈에 비추인 '나'의 주변풍경이란 철거를 앞둔 우체국 직원 '나'의 황량함 내지는 섭섭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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