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
주대환 지음 / 이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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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씨 책을 찾아 도서관 서가를 돌아다니다 눈에 띄어 발췌독했습니다. 인민노련과 한국노동당에서 활동했던 그의 이력을 염두하며 한국의 정당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꼽아둔 책이었는데, 구하기가 불편해 그만두었던 책이었죠.

-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보정당의 역사와는 내용적으로 큰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내용은 철저하게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방법' 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책은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1년 전인, 02년 대통령 선거를 즈음해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재야를 벗어난 이래로 92년 한국노동당, 96년 개혁신당, 97년 국민승리21을 거쳐 99년 민주노동당까지 10년 가까이 국회 밖의 정당에서 활동하면서 쌓였을 피로가 묻어나는 글이었습니다. 

- 그 원인을 분석하는데 있어, 87년 대통령 선거 이래 매번 반복되어왔던 '전략적 선거연합(비판적 지지)' 라는 쟁점이 빠질 수 없을 것이고, (글을 쓴 기준으로 봤을 때) 02년 현재, 민주당과의 전략적 선거연합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후반부에는 지역감정 문제, 그리고 선거 전략 - (1) 사회당, 녹색평화당과의 합당 (2) 자유주의 세력들과의 연대 - 과 제도 개선 방안 - (1)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 (2) 대통령 결선투표제의 도입 - 을 약간 덧붙이고 있습니다.

-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 라는 책 제목에서, '진보정당' 보다는 '비판적 지지' 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닌 이상 민주노동당의 정체성까지 이래라저래라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어떤 당과 합당 혹은 전략적 선거연합을 하든, 그것은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제가 의견을 낼 수 있는 여지는, '민주노동당' 보다는 민주노동당이 표방하고 있는 '진보정당'에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당명도 아닌 '진보정당'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사용하고 있는데요, 하나의 공식적인 정치세력인 이상, 자신들이 표방하는 정치에 걸맞는 활동을 할 책임은 있는 것이니까요.

- 여기서 잠깐, 책 초반부에 씌여진 주대환 씨의 이력을 살펴보게 됩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사상 편력을 밝히고 있는데, 그가 이것을 언급한 이유도 그리고 제가 이것을 관심 있게 살피는 이유도 바로 "민주노동당은 왜 진보정당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의 사상 편력은 크게,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사회가 제대로 되어야 개인이 행복할 수 있다.'는 좌파적 성향" 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그리고 소비에트 연합의 해체 이후에는 "사회민주주의"로 변화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사회민주주의란, "공산주의를 포기한 좌파, 실험과 관찰, 경험과 실용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좌파" 라고 합니다. "공산주의에 비하면 그렇게 '진한' 주의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 저는 주대환 씨의 설명에서 그가 지향하는 정치경제체제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확실하게 언급된 것은 그가 공산주의를 버렸다는 것 뿐,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도 굉장히 불분명합니다. '실험과 관찰, 경험과 실용을 중시한다' 던가 '현실주의적' 이라는 수식어는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지만, 그것이 무엇을 수식하는지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혼란을 불러 일으킵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저 자본주의가 완벽한 체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유시민 씨 처럼 공개적으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들도, "자본주의는 내적 파괴성을 가지고 있다." 고 발언하고 있으니까요.

- 주대환 씨가 책에서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의 해체와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의 성립 과정을 언급한 것을 보면, 그도 1900년대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던 정당들이 두번의 세계적 전쟁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합의 해체에 대해서는 너무나 간단하게 "공산주의는 안돼. 인간의 본성은 악해." 라고 결론 내리는 그가, 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전쟁 참여에 대해서는 "사회민주주의는 안돼. 결국엔 자본주의 정당들의 들러리가 되고 말거야." 라고 말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그와 민주노동당이 좀 더 확실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주체사상과 공산주의 아닌 어떤 사상도(?) 포용하는 민주공화국이 아닙니까. 당원이 아닌 어떤 누구도 그들에게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보정당' 이라는 정체성을 당명 처럼 사용하고 있는 정당이라면, 이런 질문에 좀 더 자신 있게 대답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보탬]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저는 "함부로 진보 행세 하지마!" 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진보정당이 뭡니까?" 라고 질문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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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박종원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네오센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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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스크랩 해두었는데, 최근에 영화의 원작을 쓴 '이인화' 라는 이름을 다시 대하면서 뒤늦게 보게됩니다. 조선후기 정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주된 갈등 구조는 왕과 신하의 권력 다툼입니다. 교과서에서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림의 붕당 정치가, 숙종 이후 수차례의 사화를 동반하는 일당 독재로 나아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서인이 독재. 남인은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서인은 영조를 둘러싸고 소론과 노론으로 나뉘어져 또 한 차례의 사화를 치루며 노론 독재를 시작한 반면, 몰락한 남인은 예의 사림의 기반이었던 서원을 바탕으로 지방에 암약, 양명학을 연구하면서 그 중 일부가 '서학'이라 불리우던 천주교도가 됩니다.

- 노론의 일당 독재는 사도세자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시파와 벽파로 나뉘어지게 되고,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사도세자를 옹호했던 시파와 남인 그리고 벽파가 서로 대립합니다. 알려졌다시피, 정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부렸지요. 규장각을 단순히 학문 연구기관 이상으로 확대하고, 과거에 합격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왕이 주관하는 교육을 실시하던 초계문신제를 실시하며, 친위부대 장용영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노론의 반발을 삽니다. 

- 흥미로운 것은, 안경을 쓰고 어전회의를 주관하는 정조가 서양의 시민혁명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그가 꾀했던 '영원한 제국' 이란, 붕괴하기 이전의 황제정이었지요. 그는 신분질서와 정치의 혼란 속에서, 서얼과 노비에 대한 차별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것은 봉건질서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기 보다는, 강력한 왕권을 세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보여집니다. 정조는 이러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노론을 관직에서 내몰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영화는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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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박물관 별난이야기 산하어린이 88
허완 외 / 산하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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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전국의 박물관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고 구입했더니,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더군요. 글자가 시원스럽게 크다는 점과 곳곳에 자리한 귀여운 삽화를 빼면, 꼭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어른들도 잘 모를 법한, 충분히 좋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전국의 박물관을 주제 - 생활 양식, 역사, 기타 - 별로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사 박물관의 경우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설화들도 간단히 소개하고 있구요. 박물관의 위치와 관람 정보도 짧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지역 별로 가고싶은 박물관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 - 한민족 생활사실, 농경, 일상
농업박물관(서울 중구) -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농가월령가, 농기구, 협동유적, 현대농업
명가김치박물관(서울 삼성동) - 김치 종류, 김치독
태평양박물관(서울 신대방동) - 화장문화
전쟁기념관(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종로) - 고구려, 백제, 신라, 불교조각실, 금속공예실, 고려자기실, 서화실, 중앙아시아실
삼성어린이박물관(서울 신천동) - 신체 표현과 도전, 과학 탐구실, 어린이 방송국, 인체 탐험실, 멀티미디어, 창의적 미술
한국잡지박물관(서울 청진동)
경찰박물관(서울 종로)
국악박물관(서울 서초)
롯데월드민속박물관(서울 잠실동)
삼성출판박물관(서울 영등포)
서울디자인박물관(서울 방배동)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서울 용산)
숭실대학교부설한국기독교박물관(서울 동작구)
LG사이언스홀(서울 영등포구)
외교박물관(서울 서초구)
우정박물관(서울 중구)
절두산순교기념관(서울 마포구)
한국현대의상박물관(서울 중구)

- 경기권

강화역사관(인천 강화) - 선사시대 유물, 강화의 역사와 문화, 몽고 침입, 한말 서양 침입
광릉수목원산림박물관(경기 포천시) - 원시림, 산림의 역사, 세계의 입업, 한국 임업의 역사, 산 야생초
철도박물관(경기 의왕시) - 철도의 역사, 모형실, 신호 통신실, 철도망 표시판
신세계한국상업사박물관(경기 용인시)
중남미문화실(경기 고양시)
청구세계민속관(경기 성남시) - 세계의 주거문화

- 충청권

독립기념관(충남 천안)
보령석탄박물관(충남 보령)
한독의약사료실(충북 음성)
한밭교육박물관(대전 동구)

- 강원권

선교장민속자료박물관(강원 강릉) - 조선 양반 주거문화

- 전라권

국립공주박물관 - 백제 문화, 동학운동
국립부여박물관 - 백제 문화
동진수리민속박물관(전북 김제) - 수리 시설, 김제 평야
보석박물관(전북 익산)

- 경상권

국립경주박물관 - 신라 문화
국립진주박물관 - 가야 문화
거제박물관(경남 거제) - 선사시대 유물,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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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예방과 모발 클리닉
장정훈 외 지음 / 가림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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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탈모이시니 만큼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지만, 스물일곱에 탈모는 조금 빠른 편이지요. 미용실 직원들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간헐적으로 정보를 얻긴 했는데,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 더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서점에 들러 발췌독 해봅니다.

- '털'의 범위가 머리카락에 국한되지 않더군요. 전반부에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외에 다양한 탈모 사례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구요, 중반부에는 인체의 구조에서 본 털의 성장과 퇴화 과정을, 후반부에는 탈모 치료와 예방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 [탈모의 원인] "거세된 남성에게는 탈모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말이라고 하는데요,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탈모가 남성 호르몬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남성 호르몬은 근육이나 성기와 같은 남성으로서의 신체 변화는 촉진하지만, 머리카락의 성장은 억제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 물론, 남성 호르몬 일반이 탈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고, 특별히 강한 성질의 남성 호르몬 일부를 지칭합니다. 전자를 "프로테스테론", 후자를 "'다이하이드로'프로테스테론"이라고 부릅니다. 전자는 특별한 경우에만 후자로 변환된다고 하는데요, 백인들의 경우 흑인이나 황인에 비해 이런 변환이 활발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중년의 백인 60% 이상이 탈모를 겪는다고 합니다.

- 하지만, 다이하이드로프로테스테론 만으로 탈모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남성들 대부분이 탈모를 면하지 못할테니까요.) 이 남성 호르몬이 탈모를 유발하는 유전적 인자와 만났을 때에 비로소 탈모가 시작됩니다. 즉, 탈모는 특별한 남성 호르몬과 유전적 인자,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야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 [탈모의 과정] 탈모에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지만, 가장 많은 경우를 '남성형 탈모' 라고 합니다. 정수리와 앞이마에서 부터 탈모가 시작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특이한 것은, 뒷머리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아 아무리 탈모가 심한 사람이라고 해도 탈모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 [탈모의 치료] 임상 실험을 통해 공인되어 있는 탈모 치료제는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합니다. 모두 미국 제약회사의 것인데, '미녹시딜'은 바르는 치료제이고 '프로페시아'는 먹는 치료제입니다. 전자는 초기에 탈모의 진행 과정을 멈추는 데에만 일시적인 효과가 있지만, 후자는 상대적으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두 치료제 모두 치료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검사가 필요하고, 장기간(적어도 1년 이상) 꾸준히 사용 또는 복용해야 합니다. 이 경우 부작용은 거의 없습니다.

- 재밌는 것은, 두 치료제 모두 본래 탈모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호르몬 분비에 관련된 약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약의 복용 과정에서 털이 자라는 부작용이 발생해, 이를 연구하다가 탈모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고 하는군요.

- 두 치료제는 탈모를 예방하거나 진행 과정을 멈출 수 있지만, 탈모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들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더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두피를 이식하는 방법이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다른 부위의 머리카락을 이식해 심는 수술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모낭' 이라는 부분은, 이식을 하더라도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네요. 따라서, 이 수술을 받으면, 처음 2~3달 동안 이식한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그 이후에 새 머리카락이 난다고 합니다. 물론, 뒷머리와 같이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서 이식한 모낭이기 때문에 이후 탈모 걱정도 없구요.

- 그동안 입소문으로 전해 들었던 두피 마사지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되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와는 다르게 입증된 효과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 [탈모의 예방] 머리를 자주 감아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두피에 발생한 먼지나 기름에 의해서 모공이 막혀 탈모를 더 심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예방과 관련해서 흥미로웠던 것은, 염색이나 퍼머와 관련한 설명이었는데, 퍼머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에는 복원력이 있다고 합니다. 퍼머는 일단 알칼리 수를 통해서 이 복원력을 없애고,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 후 산성 수를 통해 중화시키면서 변화된 모양으로의 복원력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퍼머가 퍼머넌트(permanent, 영구적인)의 약자라는 사실은 좀 우습기 까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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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 대한민국사를 바꾼 핵심 논쟁 50
권오문 지음 / 삼진기획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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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수립 직후 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의 논쟁들을 두루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논쟁들을 신문기사 위주로 갈무리해 놓은 강준만 교수의 <한국 논쟁 100>과 비교해 볼 때, 시간의 범위는 더 넓고 분야는 더 압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크게는 정치, 문학, 종교를 다루고 있고, 분야와 상관 없이 근래의 논쟁을 따로 묶어놓았습니다. 책의 특성상 발췌독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만을 짧게 기록합니다.

3. 좌익 간의 대립 - 통일국가의 혁명방식은 무엇인가

- 대부분의 책들은 해방 이후 통일정부 수립과 관련한 논쟁과 쟁투를 다루면서, 너무나 간단히 '공산주의 세력' 또는 '좌익세력' 이라는 분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굉장히 정치적인 행위일진데, 이들의 이런 방식은, 모두어 '공산주의 세력'이라 불리우는 다양한 정치조직 내의 다양한 견해를 전혀 표현해주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 왜곡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 해방 직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어떤 정치조직도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치조직들은 해방 직후 조선사회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결론 내리면서, 그 이상 정치활동을 밀고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다루고 있듯이,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 조선신민당과 같은 공산주의 표방 조직들의 논점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 였습니다. 러시아에서 1917년 (부르주아 민주주의) 2월 혁명 이후, 레닌의 귀국과 함께 볼셰비키당이 연속혁명(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곧이은 사회주의 혁명)을 선택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들은 미군정을 모종의 진보세력으로 인정하거나, 최소한 협조를 약속합니다. 많은 책들이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다루지 않고 있지요.

- 개인적으로는 백남운 교수의 행적이 인상깊었습니다. 백남운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 역사관과 관련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데, 실증사관, 민족사관과 더불어 사회경제사관을 주도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조선사회경제사>는 변증법적 유물론 사관에 입각해 조선사회를 기술한 것이라고 하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여튼, 해방 전 그는 연희전문과 경성제대 교수였는데, 해방이 다가올 무렵 중국 화북지방의 공산주의 세력들이 만든 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게 되고, 이 조직은 이 후 조선신민당으로 조직 전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조선신민당 남측지부의 책임자였죠.

- 그는 해방 직후 정부 수립과 관련된 논쟁에서 '연합성 신민주주의' 를 주창하며 논쟁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연합성 신민주주의란,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좌우합작, 김구 김규식 선생이 주도한 남북연합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당장의 최우선적 과제를 민주주의 통일정부 수립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조선공산당 역시 같은 의견이었으나, 조선공산당의 경우 우익세력과의 연합에 있어서 더욱 원칙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를테면, 친일파나 한국민주당의 참여 같은 부분에서 이견이 있었겠지요.

- 백남운 교수는 조선공산당과 대립했고, 이 후 (조선공산당과 한국민주당, 한국독립당은 참여하지 않았던) 근로인민당의 좌우합작운동과 남북연석회의를 주도하다 월북하게 됩니다. 초대 북한정부의 교육상을 거쳐 이후에는 노동당에서 꽤 높은 서열까지 올라갔던 것으로 되어 있군요.

4. 찬탁이냐 반탁이냐 -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문제

- 찬반탁 논쟁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책들이 너무 도식적으로 소개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들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신탁통치로 결정내리고, 이후 치열하게 벌어진 논쟁 역시도 신탁 찬성/반대로 도식화하고 있지요. 당시 찬탁운동을 주도했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주된 구호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지지' 이지 '신탁통치 찬성' 이 아니었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사항에는 신탁 혹은 후견 문제와 더불어 조선의 통일정부 수립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회의의 결정사항이 신탁이냐 후견이냐를 두고 미군정의 공식채널 조차도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군정의 고의적인 정치술수이냐 아니냐를 논외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 김구 선생이 주도했던 국민회의(?)가 경찰지휘권을 접수하려 했던 사실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군요. 당시, 경무부장이 조병옥이었다고 합니다.

6. 가짜인가 진짜인가 - 김일성의 항일투쟁 진위를 둘러싼 논란

-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역시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를 거쳐 1980년대까지 오래도록 지속된 논쟁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 시절 '김일성 가짜론' 을 주창했던 이들이 한국민주당 간부, 만주 봉천 고등계 형사, 국가재건최고위원회 공보실 기획관 출신이라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군요.

8. 남침인가 북침인가 - 한국전쟁 발발 원인을 둘러싼 견해 차이

- 한국전쟁의 원인과 관련한 논쟁구도를 적절하게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립적인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로 큰 축을 나누고(소련의 세계 제패야욕 - 미국의 팽창주의 정책 내지 전쟁유도설), 수정주의에서 파생되긴 했지만 두 가지 입장을 절충하고 있는(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기 수정주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검색에서는 최근 발간 순서대로 책이 정렬되니 브루스 커밍스, 존 할러데이와 같은 후기 수정주의 학자들이 주로 눈에 띄지요.

한국 문화계를 달군 격렬 논쟁들

- 문학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보니, 괜시리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아 흥미를 잃었습니다. 주된 논쟁의 축은 '현실 참여'를 둘러싼 것이라 보여집니다. 작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현실에서 밥벌어먹는 작가라면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사회와 연관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차이는 '정도' 에서 발생한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작품을 두고 이루어진 문학 논쟁이라기 보다는, 정치 논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올바를 듯 합니다. 문학 논쟁이라면, 다소 소모적으로 느껴지는군요.

논쟁을 통해 본 한국종교

- 기독교, 불교, 유교를 폭넓게 다루고 있고 각 종교 내적인 논쟁 뿐만 아니라 종교들간의 논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입니다. ^^

21. 신에 대한 헌신인가, 성추행의 원인인가 - 가톨릭의 독신제도 시비

- 독신제도가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참으로 웃지못할 분석이군요.

22. 타종교 비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종교정신'을 놓고 촉발된 종교계 갈등
31. 타종교에도 구원은 있는가 - '종교다원주의'와 감리교의 종교재판

-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입니다. 몇일 전에 읽었던 아놀드 토인비 교수의 <젊은이들과의 대화>가 문득 생각나는 대목이었습니다. 묶어서 읽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논쟁의 시작은 종교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실학을 주장하다가 감리교 교단 내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출교 처분을 받는 사건입니다. 출교 처분을 받은 당시 감신대 변선환 학장은 훗날, 출교 처분 덕분에 특정 교단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씀하셨다는 군요.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 종교 다원주의는 전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다른 종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정도에 따라, 절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65년 가톨릭의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포괄주의를 결정내렸다고 하는군요. 다원주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서,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신 중심의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삼위일체와의 마찰은 당연한 것이었겠죠.

- 하지만, 변선환 학장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가 유일신 사상 때문에 종교 다원론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시각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합니다. 유대교 처럼 특정 민족만을 위한 신이 아닌 이상, 한분 밖에 없는 신은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매우 인상적입니다.

34. 현실참여 vs 교리적 정당성 - 불교도 민중에 눈을 돌려라

- 불교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고자 하는 흐름이 있었다고 합니다. 1985년에는 민중운동불교연합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기관지 <민중법령>까지 발행했습니다.

- 논점은 '민중불교' 라는 명칭, 정토사회의 성격, 구제의 문제, 폭력성에 관한 문제까지 폭넓게 형성되었는데, 정토사회의 성격과 관련한 논쟁이 웃지못할 정도입니다. 민중운동불교연합 측에서는 무소유에 초점을 맞추어 계급적 불평등과 착취가 없는 사회를 강조한 반면, 교단 측에서는 재가자의 사적인 소유를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불교에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더 많다고 했다니.. 허허 웃을 일입니다.

38. 다름과 차이 - 여성해방론을 둘러싼 갈등

- 해방 이후 좌파 비평가들과 노천명, 조연현 문학가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 부터 1990년대 조직된 여성주의 모임과 단체들까지 여성운동 전반을 폭넓게 훑고 있습니다. 1930년대 여성주의 문화활동가로 알려진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저만 모르고 있었을 뿐, 꽤 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 여성의 특성이 배제된 남녀평등과 특수성이 인정되는 평등 간의 갈등도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 논쟁 100>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에 '여성 할당제'가 있지요. 저는 이런 제도들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는 않지만, 다소 기형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서의 차별만 없다면 분명 여성들도 남성들과 다를 바 없는 능력을 발휘할진데, 이런 제도들을 시행하더라도 후자에 확실하게 방점을 두고 보완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특수성을 인정하는 남녀평등은, 출산과 육아와 같은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하겠죠. 아 여성문제만 나오면 너무 부끄럽군요.

43. 과학 vs 생명윤리 - 인간복제를 둘러싼 논란

-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는 걱정 보다는, 인간 복제 역시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활용 영역의 설정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비관이 앞섭니다. 유이한 인간일지언정, 인간 복제 사회 이전의 인간일지언정, 존엄성이란 끊임 없이 위협받고 있는 것 아닐까요. 유일무이한 인간도 노동시장에서는 대부분 이윤의 도구로 계산되고 활용되고 있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인간 복제가 시작되는 순간 의학의 영역에서만 그것을 활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위한 병사를 만들고 판매하던 스타워즈가 생각나는군요. 제도적인 금지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적인 금지는 한시적인 효과만 발휘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죠.

44. 한글 vs 한자 - 전용이나 혼용이냐

- 한글 전용과 한자와의 혼용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과거 정부의 행적을 보며 웃음을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일관성 없다는 비판 보다는, 그저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거니 생각됩니다.

- 언어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언어와 관련해서는 제도를 통한 규제에 대해 다소 회의적입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사회의 큰 흐름에 종속적인 것이 아닐런지요. 끊임 없이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 것이겠죠. 기존 문화의 장점을 보존하려는 이들과, 새로운 문화의 장점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함께 권장하면서, 선택의 문제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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