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들의 애환과 일그러진 단면을 잘 그려낸 작품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의 후루카와 부지점장과 구조 지점장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실적을 높여 승진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로

오직 실적이 좋은 직원만을 우대하고 그렇지 못한 직원들은 대놓고 무안을 주기 일쑤다.

특히 후루카와 부지점장은 인격모독도 마다 하지 않는 인물인데

자신에게 반항하는 고야마에게 화를 참지 못하고 폭행하고 마는데...

대기업의 횡포에 맞선 중소기업체 사장의 눈물겨운 투쟁을 그렸던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통해

만났던 이케이도 준이 자신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금융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준 이 책은

은행을 무대로 힘겨운 직장생활을 해나가는 은행원들의 삶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아무래도 직접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도쿄제일은행 나가하라 지점에서 근무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각각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적인 얘기들을 하나로 엮어내면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충격적인 비리를 폭로한다.

고졸 채용 출신으로 대졸자들에게 컴플렉스를 느끼며 오직 출세에만 목메고 있는

후루카와 부지점장은 전형적인 출세 지향의 관리자라 할 수 있었고,

승진에서 계속 누락되면서 가족들에게도 면목이 없던 도모노는 거래업체 사장이 대출조건을

수락하지 않으면서 정말 죽을 맛인 상황을 겪게 되는데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아버지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은행에도 청춘 남녀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사내 연애가 활발히 진행되는데

킹카인 데쓰오가 아이리와 사귀자 이를 시기한 여직원들이 생긴다.

마침 100만 엔 분실이 발생하고 띠지가 아이리의 백에서 나오자 아이리는 용의자로 지목받아

힘든 상황에 처하지만 자신이 한 게 아니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믿어주는 선배 니시키의 도움으로

버텨나간다. 니시키는 띠지의 지문을 자체 감식하면서 범인을 찾아나서던 중

갑자기 연락도 없이 실종되는데...

100만 엔 도난사건의 범인을 찾던 니시키가 실종되고 여러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지점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다키노의 실체가 드러나는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은행이란 곳이 남의 돈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곳이고 직원들이 큰돈을 떡주르듯 해서

돈에 대한 관념이 일반인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적만을 강조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이 책의 반전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니 현대 사회의 비정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나 싶었다.

은행을 어쩌다 갈 때가 있는데 이 책을 통해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직장인의 애환을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군데군데 울컥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케이도 준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둘 다 엄청난 가독성과 흡입력을 보여줬다.

보통의 소설 속에선 잘 접할 수 없는 분야를 다루면서도 강렬하고 피부에 와닿는 얘기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일그러진 단면을

시원하게 고발하는 그의 작품과 다시 만나고 싶다.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중소기업 사장의 눈물겨운 투쟁

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9월

아카마쓰 운송회사의 트레일러에서 타이어가 빠지면서  

길 가던 주부를 덮쳐 사망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고 원인에 대해 차량 제작사인 호프 자동차가 정비불량이라 결론을 내리자

아카마쓰 운송의 사장인 아카마쓰는 살인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회사는 주요 거래처와 거래가 끊기는 등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정비불량이 사고원인임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카마쓰는 호프자동차에 재조사를 요구하지만

호프자동차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아카마쓰의 대기업을 상대로 한 눈물겨운 투쟁이 시작되는데...

 

제목만 봤을 때는 무슨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악덕 대기업에 맞서 싸우는

중소기업 사장의 처절한 분투를 그린 작품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를 갖고 보진 않은 책이었는데 기대 이상의 재미와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한 통쾌한 고발을 하는 책이었다.

사실 굴지의 대기업 호프의 자동차계열사인 호프자동차에서  

사고원인이 정비불량이란 결론을 내렸다면 대부분 그런가 보다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대기업이 주는 기본적인 신뢰도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내린 결론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데 아카마쓰는 도저히 그런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들의 정비상태를 확인한 결과 정비엔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마쓰는 분명 사고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하고 호프자동차에 문제제기를 하지만

호프자동차는 그를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한다.  

그러면 아카마쓰가 사고난 차량의 부품이라도 돌려달라고 하자

판매부 고객전략과 과장인 사와다가 담당부서인 품질보증부에 부품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만

품질보증부는 아카마쓰 운송의 요구를 대충 처리하라고만 하고,  

사와다는 품질보증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음을 직감하는데...

 

아카마쓰가 호프자동차에 사고차량의 부품반환 요구를 한 이후로 사건은 점점 커지게 된다.

물론 호프자동차는 계속 아카마쓰의 요구에 무대응 내지 거부로 회피하려 하지만

호프자동차 내부에서도 진실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회사의 실세들이 거치는 코스로 다른 부서를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품질보증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사와다가 비밀 회의까지 열면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품질보증부의 비밀을 캐기 시작했고,

계속된 차량 사고에 의문을 갖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 주간지 기자 에노모토가 특종기사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며, 호프자동차로부터 엄청난 자금지원 요청을 받은 계열 회사인 도쿄호프은행의  

심사역인 이자키는 호프자동차의 부진한 실적과  친구인 에노모토에게 들은  

타이어 사고에 대한 의심으로 쉽사리 대출허가 결정을 하지 않는다.

사고로 인해 부도 위기에까지 처한 아카마쓰는 사고원인이 호프자동차에 있음을 확신하고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사고원인을 밝히려 동분서주하지만

대기업 호프는 계열사인 호프은행을 통해 융자금 회수까지 하면서 아카마쓰를 압박하고

믿었던 주간지 기사마저 호프의 압력으로 취소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역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 사장인 아카마쓰와 대기업 호프자동차의 처절한 대결이 아닐까 싶다.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할 정도로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살인자로 매도하는 상황 속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아카마쓰의 분투는 정말 눈물겹다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그냥 포기하고 말 일, 특히 호프자동차로부터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받았을 때는

좋은 게 좋다고 거기서 멈췄을 것 같은데 아카마쓰는 차량의 결함을 숨기고 횡포를 일삼는

대기업과의 투쟁을 그만두지 않는다.

호프자동차가 벌이는 추악하고 무자비한 일들에 분노하면서 거기에

용감히 맞선 아카마쓰의 모습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호프자동차의 사와다 과장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도 정말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

회사 내 다른 부서 사람들과의 알력이나 조직원으로서 회사의 잘못을 밝혀야 할지를 고민하는 모습,

좋은 자리로 옮겨주는 조건에 넘어가는 모습 등 직장인들의 리얼한 모습을 잘 보여줬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광고를 핑계로 주간지에 압력을 가하고

계열 은행에 자금 회수를 요구하는 등 대기업이 저지르는 비열한 횡포도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었다.

 

경제성장기에 대기업이 일정한 역할을 한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기업이 규모와 명성만 믿고 저지르는 횡포와 폐해는 하나 둘이 아닌 것 같다.

특히 이 책에서 그려지는 것과 같이 심각한 하자가 있음에도 엄청난 리콜 비용이 아까워 진실을 숨기고 

소비자의 목숨을 담보로 약자인 중소기업을 희생양으로 삼는 모습은 정말 분노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책의 내용 자체가 미쓰비시자동차의 대형 트럭 타이어 분리 사고와 리콜 은폐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는데 얼마 전에 벌어진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까지 예견한 것 같은 느낌을 준 것은

아무래도 이 책의 사실감과 완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재만 봤을 때는 재미 없는 기업 얘기나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완전히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작품임에도 페이지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과연 아키마쓰가 뻔뻔한 대기업 호프자동차를 어떻게 무너뜨릴지 맘을 졸이며 봤던 수작이었다.

이 책에선 그래도 결국엔 정의가 승리를 했지만 분명 아직도 강자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 점을 생각하면 씁쓸한 맘을 금할 수 없다.

이 책에 나오는 호프자동차와 같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그런 기업들이

하루 빨리 퇴출되고 정직하고 최선을 다하는 기업들이 번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