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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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앎’에 대해서 고민하다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때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한창 사춘기가 나의 마음을 물들 무렵이었지만, 나의 정신은 사랑의 감정에 목이 말라  

갈구하는 베르테르보다는 그 나이에는 실용성이 없어 보일 거 같은 세상의 진리와  

지식에 몰두하면서도 만족감을 못 느껴하는 파우스트였다. 한창 입시 공부해야할  

시기에 나는 인문학이라는 울창한 숲에 드나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간혹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공부하다가 지치면 가방 속에 책을 꺼내 읽곤 하였다. 한창 수능 점수를  

올려야 할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는 소설이나 인문학, 역사 관련  

도서에만 눈이 갔다. 특히 유독 인문학에 푹 빠져버렸다. 당시 윤리 시간에 배우고  

있었던 서양 철학을 배우게 되면 지겹게만 느껴지곤 했었는데, 직접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보면 그들이 말하고 자 한 내용들이 쉽게 이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혼자서 숲을 드나들게 되면 길을 헤매게 되는 법. 숲에 여러 가지 길 때문에  

우리가 헤매는 것처럼 인문학에도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 인간 심리 등
여러 가지 분야가 갈라져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문학에 도취된  

나머지, 무작정 달려들어 읽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길은  

목적지에 금방 도착하는 것도 있는 반면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도 있다.  

그러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이렇듯이 인문학의 길을 걷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다보면 체력은 바닥이  

나고 지치게 마련이다. 입시 공부라는 보이지 않는 짐을 짊어지고 있던 나에게는  

그 나이에 가이드 없이 인문학의 길을 가다가 자괴감 때문에 쉽게 지쳐버리곤 했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정신적인 방황 속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한시(漢詩)들을  

유려하게 풀어나가는 정 민 교수의 신간으로 알려질 무렵이었다. 튀는 제목에다가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라는 부제에 끌려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었다. 한창 정 민  

교수의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이런 베스트셀러가 도서관에 나오게 되면 도서관 대출 인기도서가 된다.
먼저 선수 치는 사람이 임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 한 권 읽으려고 대출중인  

상태에서도 예약으로 찜한다. 대출중이면 그 사람이 다 읽을 때까지 길어야 1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동네 도서관에 책장에 숨어 있는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다.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미쳐야 미친다

워낙 튀는 제목에 쉬는 시간에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주위 친구들은 무슨 책 제목이  

그러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나는 제목 따위에 독서를 하는데 조바심을 내는 편이  

아니었다. 1장인 ‘벽(廦)에 들린 사람들’ 을 읽고 난 후부터 이 책에 빠져들었다.   

야간 자율 학습 첫 시간부터 읽기 시작해서 집에 돌아와서도 숙제를 잠시 미루고 계속  

읽다보니 어느 새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제목 그대로 나도 모르는 사이
하루 동안 이 책에 미쳐버렸던 것이다.

‘벽’ 은 일상용어로 쉽게 풀이하면 ‘버릇’ 이다. 하지만 1장에 소개된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버릇’ 이라기보다는 광(狂)이었다. 자신의 생계에 별 도움도 안 되는데도  

만날 벼루를 깎는 정철조, 둔한 두뇌 능력 때문에 <사기(史記)>의 ‘백이전’ 이라는 내용을  

1억 1만 3천 번(!)을 읽은 김득신, 너무 가난하면서도 책 읽는 것만큼은 좋아했던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 이들은 주위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열정을 쏟았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여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그들의 삶과 비교하면  

아무런 목적과 목표도 없이 단지 인문학과 독서를 치중하고 있는 나 자신이 민망해짐을  

느꼈다. 내가 인문학과  독서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현실은 제풀에 지쳐버리고 싫증이  

나게 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함을 떨기 위해서  

독서라는 행위를 겉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조건 인문학과 독서가 좋다는
허울을 내세우다보니 정작 내가 추구하려는 목적의식이 사라지게 되고 나중에는  

회의감에 빠져버린 것이다.

벽에 들린 선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미쳤다고들 하지만,
미쳤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고유의 ‘버릇’, 즉, ‘습관’ 이며 하나의 ‘생활’ 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지 나의 이미지를 포장시키기 급급해서 좋아하는 일에 빠져버린
‘습관’ 인 척 가장(假裝)한 ‘광(狂)’ 이었던 것이었다. 
 

 

 감동적인 스승과 제자 간의 통(通)

이 책에는 ‘벽’ 에 들린 선조들 말고도 정신적 교감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산 인물들도 있다.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의 이야기는 언제나 읽어도 가슴 뭉클하면서도
이 책에 소개된 허 균과 기생 홍랑의 플라토닉 러브보다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유배 생활을 하게 된 다산이 강진으로 오게 되자,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황상은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그의 나이 15세. <논어>에서 공자가  

열다섯 살의 나이에 학문의 뜻을 두었다고 말했듯이,
황상은 우연스럽게도 그 나이에 다산을 만나 학문의 뜻을 두게 된다.
세월은 흘러, 제자는 60세의 노인이 되어서도 45년 전의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스승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스승의 자취가 남겨진 다산초당을 머물곤 했다. 이들의 정신적 교감은 떨어져 있음에도  

통(通)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황상은 수십 년 만에 드디어 스승을 찾아간다.

황상은 단순히 스승을 하루만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간 제자는 스승 곁에 지내며  

예전처럼 학문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스승은 직접 찾아 온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런 다산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스승과 제자 간의 아름다운 만남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황상이 떠난 뒤
며칠 뒤 다산은 세상을 떠났다. 
   

 

 첫째도 부지런함, 둘째도 부지런함, 셋째도 부지런함

소년 황상이 다산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저는 머리도 나쁘고, 앞뒤가 꼭 막혔고, 분별력도 모자랍니다.
   저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다산은 소년의 고민에 긍정적인 답을 한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첫째도 부지런함이요, 둘째도 부지런함이며,
   셋째도 부지런함이 있을 뿐이다. 너는 평생 ‘부지런함’ 이란 글자를
   결코 잊지 않도록 해라. 어떻게 하면 부지런할 수 있을까?
   네 마음을 다잡아서 딴 데로 달아가지 않도록 꼭 붙들어 매야지.”

                          - <미쳐야 미친다>『삶을 바꾼 만남』 p 183, 185 -

이 일화를 읽고 난 뒤 내 심장을 크게 요동쳤던 그 때의 전율이 생각난다. 

간결하면서도 정말 훌륭한 현자(賢子)다운 대답이다. 황상의 고민이 곧 나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청춘의 시기에서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황상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병통’ 이라고 비유했다. 그만큼 병에 걸려 아파했던 것처럼, 황상은 자신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되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무엇보다는 이 책을 읽을
당시에 나도 황상처럼 병통에 시달렸기에 이들의 문답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학교 공부를 해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도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과 독서를 하게  

되면 시간만 잃을 뿐 얻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내 자신의 지적 능력을 원망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다산은 나의 병통을 깨끗이 낫게 해주었다. 결론은 ‘부지런함(勤)’.  

학문을 꾸준히 노력하라는 뜻이다. 다산은 황상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단순히 학문  

익힘에 대한 부지런함을 넘어서 자신의 이익보다는 정신적 풍족함을 위해서 일생동안  

학문에 노력하라는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학문에 노력하게 되면 깨달음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자연스럽게 부지런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지런함’ 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이라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이 책을 처음 만난 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책을 보면  

나의 벗이면서도 스승 같이 느껴진다. 처음 출간나왔을 때는 베스트셀러였으며 당시  

처음 봤을 때는 새 책 같았었는데.....역사 속에서 잊혀져간 마이너 선비들의 삶을 그린 

이 책도 그들과 따라 잊혀져가는 거 같다. 정말 잊혀진다는 것이 서럽기만 하다.
지금의 책은 많이 접혀지고 약간 훼손되었다. 세상에 나왔던 당시 제목을 더 튀게  

만들었던 회색빛 광채는 지금은 빛이 바래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늙으면 늙을수록  

더욱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 책의 겉은 볼품이 없을지라도 한결같이 내 삶을  

바로잡아 주는 힘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군대 생활을 제외하면 나는 해마다 이 책  

한 권은 꼭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부지런함’ 을 강조했던 다산의  

말을 노트에 메모하기도 했다. 1년마다 가끔 공부하다가 권태감이 찾아오면 고등학생  

시절에 따로 노트에 적은 다산의 가르침을 보거나 도서관에 찾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을 가다듬곤 한다. 그리고 그 때 내 마음을 울렸던 그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그 여운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다 
 

고등학생 때에는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입시 공부의 짐을 짊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서 홀가분하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취업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 짐은 고등학생 때보다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그 이유는 짐 속에는 ‘나의 미래’ 라는 중요한  

귀중품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나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여기서  

지쳐서 포기하게 되면 앞날은 불투명해진다. 짐이 무거워서 내려놓는다. 지쳐서 방심한  

사이에 ‘미래’ 라는 귀중품이 든 짐을 분실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힘들어도  

끝까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미래가 들어있는 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다산이 말한 것처럼 마음이 다른 데로 달아가지 않게 꼭 붙들어 매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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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책 -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 지식여행자 2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언숙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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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밥상머리 독서  
 

요즘 우리 어머니는 건강 관련 도서 탐독에 푹 빠져 있다.  

거실에서 책상으로 사용해도 무방할 큰 밥상에 책을 올려놓고 읽으신다.  

일명 ‘밥상머리 독서’이다. 어머니는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았었다. 그런데  

최근에 고혈압 증세가 있다는 병원 진단 결과를 들은 이후부터 부쩍 건강에 좋은 밥상을  

차린 식사와 함께 혈압을 낮추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혈압에 좋은  

건강식품에 대한 책 한 권을 사서 보시더니 그 이후로 각종 불치병을 예방부터 건강에  

좋은 자연식품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독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머니의 독서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감회가 새로웠다.  독서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가 

바로 이 때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책을 최대한 많이 구입하는데 쓰는
비용이 5만원이나 한다. 어머니는 스스로 책 읽는 나의 모습이 대견스럽다고 말씀 

하시면서도 무슨 책을  사는데 5만원이나 쓰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특히 몇 달 전에 내가 힘들게 벌어서 모은 돈으로 세계문학전집 100권을 구입했을 때도  

처음에는 반대가 있었다. 고작 힘들게 돈 모아서 산 게 책 100권이냐고.

예전에 그랬던 어머니가 몇 주 전에 나에게 무언가 빽빽하게 쓴 공책을 주면서  

부탁하였다.  어머니는 신문 광고나 TV에서 눈여겨봤던 건강 관련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를 적어놓은 것이었다. 그러고는 혹시 이 책들을 알라딘에서 살 수 있느냐고  

멋쩍게 물어봤다. 내가 집에서 책을 주문하는 것을 지켜봤던 어머니는 책을 구입하게  

되면 하루 만에 집으로 배송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23년을 살면서 어머니의  

입에서 책을 구입하고 싶다고 나에게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사고 싶어 했던 책은 총 3권, 가격은 3만 원 이상 정도였다. 내가 책을 사는데
3만 원 이상이라도 썼다고 핀잔주었던 생각에 무안했던 모양이었을까? 어머니는  

나에게 이왕  책 구입한 김에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구입해도 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책 한 권 더 살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어머니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위해서 독서와 공부하려는 열정적인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책 한 권 못 샀던 것에 대래서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알라딘  

계정에 모아 둔 쿠폰까지 사용하면서 어머니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었다.  
 

  

 

 청춘의 독서 vs 불혹의 독서

우리 어머니의 고혈압 증세는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혹시나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병에 대비하기 위해 건강 관련 도서를 읽었다.  

나는 밥상에 앉아 책에 줄을 그어 가면서 읽는 어머니의 모습이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였다. 예전보다 어머니의 몸 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우리 어머니도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젊음의 혈기왕성함은 사라지고 노화가 찾아오면 몸도 변화가  

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적 이치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가끔 저녁에 거실에 TV를 끄고 어머니와 내가  

독서를 한 적이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어머니는 건강 책을 읽었다. 하지만 내가  

읽고 있었던 책은 소설이었다. 그런 독서 풍경이 대조적이었다.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중년은 지금이라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밥상머리 열독을 하는데,  

이제 막 꽃다운 인생을 누리고 있는 청년은 단지 일시적인 감흥을 느끼기 위해서  

소파에 누워서 소설책을 보고 있다니. 왠지 어머니의 독서 모습을 보게 되면 곧  

중년이 된 나의 독서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만약에 내가 나이가 들면 정신적 영양분이 되어주는 문학 책이나 인문학 책을  

읽었던 ‘청춘의 독서’가 유지될 수 있을까? 중년이 된 내가 어머니처럼  

몸의 적신호가 온 것을 알게 되었거나 아니면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된다면 평소에 읽어왔던 책들이 쉽사리 눈에 들어올 것인가? 
  

 

 

 치열했던 그녀의 마지막 3개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요네하라 마리의 심정이 이해할 거 같다. 노화의 자연적인 현상인
시력 저하 때문에 예전과 같이 책을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글 속에 표출하였다.
무엇보다도 암이 그녀의 몸에 퍼져갈수록 평소에 읽었던 문학도서보다는 암 치료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는 경험담은 남의 일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독서에  

관한 체험과 서평들을 모은 <대단한 책>에서 암 투병 중에 자신이 직접 암 치료 관련  

책들을 읽고, 책 속에 소개된 각종 치료법을 경험했던 글이 세 편이나 있다. 더구나  

세 편 중에서 맨 처음 쓴 글의 시작에는 암 투병을 겪어야 했던 그녀의 심정이  

드러나 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항암제 치료를 받은 직후 1주일은 참기 어려운 구토와  

  구역질에 시달리며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중략)  이 체력으로는  

  암이 파괴되기 전에 나 자신이 괴멸해 버릴 것만 같다. 무엇보다도 그 고통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것이 싫다. 그건 공포다.                 

                                                    - 요네하라 마리 <대단한 책> p 315 -  

 

요네하라 마리뿐만 아니라 지금도 암 투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도
자신의 몸이 낫는다면야 기꺼이 다양한 치료 방법을 받아본다. 하지만 항암제 투여만큼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종종 항암제 치료 대신에 자연식 밥상으로 암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건강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곤 한다. 그들은 자연식으로 식사 방식을 개선한  

이후부터 예전보다 몸이 좋아진 거 같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으로 오기까지에는  

그들도 병이 준 신체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고, 자신에게 맞는 치료 방법을 찾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세 편의 암 투병 체험기에서도 그녀의 치열했던 시행착오의 경험들이 나온다.
그녀는 책에서 발견한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그 치료법을 시술하는
관련 병원에 찾아가기도 한다. 그만큼, 자신의 병을 낫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였다.
그리고 그 치료법이 허위였다거나 자신이 원했던 치료법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면
실망하기도 한다. 그만큼 자신의 몸 안에서 퍼져 가고 있는 암의 고통에서 벗어나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그녀는 죽기 전 3개월 전부터 집중적으로
암 치료와 관련된 책을 읽었던 것이다.  

 

 

 

 나는 책과 결혼했다  

암으로 언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앞날을 알 수 없는 공포,
몸속에서 암 세포가 점점 커져감에 따라 늘어나는 육체적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독서와 글쓰기만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독서를 하면서 느꼈던  

삶의 감상들과 다양한 분야의 책의 서평들을 남겼다.
여자는 이성의 사랑을 먹게 되면 여자다운 여자가 완성되는 것이다.
조각가 갈라테이아의 사랑에 대한 염원이 있었기에 일개 아름다운 조각품이었던
피그말리온이 아름다운 여성으로 재탄생하듯이.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라고 말을 남기면서 평생 영국의 발전을 위해 여자로서의  

삶을 버린 엘리자베스 1세처럼 요네하라 마리도 평생 독서를 하다가 독신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라에 대한 마음이 엘리자베스라는 국모(國母)를 완성하였듯이

책과 결혼한  그녀는 '유쾌한 지식여행자' 요네하라 마리라는 존재를 완성시켰다.   
그래서 ‘유쾌한 지식여행자’라는 별칭답게 자신을 책 속의 세상으로 가둬두지 않았으며 

폐쇄적이거나 그렇게 우울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녀는 통역가로서 다양한 나라의  

문화들을 경험하고 그 경험 속에서 간혹 여자로서 느끼게 되는 사랑의 감정도 느껴본다.
그리고 그녀는 책 속 세상에 갇혀버린 외톨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애완동물들과  

함께 살았다. 그녀의 글들을 읽어보면 독서와 자신이 기르고 있는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나있다. 비록 그녀는 독신이지만 그녀의 독서일기를 읽어보면 

한편으로는 남편과 결혼한 아내의 일기를 보는 거 같다.  
부인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일기장에 기록하듯이 

요네하라 마리는 좋은 책뿐만 아니라 나쁜 책을 읽었던 내용도 기록한다.  


요네하라 마리는 세계 문화부터 발명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한 책들을 남겼다.
이처럼 여성으로서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과거에도 요네하라 마리처럼 지혜롭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역사적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의 학문 활동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남성중심적인 고대 그리스 사회에 의해 희생된
최초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에서부터 <폭풍의 언덕>이라는 단 한 편의 명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여성이며 여성 화가였으나  

사랑의 실패 때문에 말년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쓸쓸히 최후를 맞은 나혜석.   

신들은 이들의 남다른 재능을 시기하였다. 그리고 재능의 꽃봉오리를 피우지  

못한 채 짧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른 죽음도 너무 아쉽게만 느껴진다.

남녀 간의 사랑이 결실을 맺으면 아기라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그녀는 이제 다시 볼 수 없지만 독서에 대한 애정으로 낳은 그녀의 분신인 책들이 있기에
우리는 책 속에서나마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독서를 통해 삶의 의지를 얻다

살아가면서 느끼거나 알게 된 자유로운 생각과 지혜들, 그리고 암으로 마감하게 된  

짧은 인생.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 작년에 돌아가신 故 장영희 교수님이 생각난다.
리뷰 중간 중간에 역사적 여성들이 많이 언급되는 마당에 이번에는 장 교수님까지
나오게 될 줄이야. 하늘에서 보고 있을 요네하리 마리 여사가 내 리뷰에 대해서 괜히  

질투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죄송해요. 요네하리 마리 여사. 오늘만큼은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리뷰는 특성상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자유로운 감상들을 적는 것이니까요. 

 
공교롭게도 요네하리 마리도 56세의 나이로 난소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난 것처럼
장 교수님도 암 투병 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연하게도 두 명 다 향년 56세,
같은 5월에 세상을 떠났으며 장 교수님도 요네하리 마리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다 가셨다.
교수님과 그녀를 비교해서는 안 되지만 이 두 사람 간의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
장 교수님은 소아마비로 인해서 몸이 불편한데다가 척수암, 유방암, 간암이라는
최악의 암 3종 세트의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장 교수님이 요네하리 마리보다 원래부터  

몸이 불편했고 심한 병에 걸렸으니 요네하리 마리의 고통은 새 발의 피라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절망에 빠지지 않고 극복하려는 삶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삶에 대한 의지는 독서가 있었다. 장 교수님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요네하리  

마리처럼 자신의 병들어버린 몸에 대해서 한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수님의  

에세이는 절망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녀의 문장은 샘물처럼 밝고 아름답다.  

교수님은 절망의 진흙투성이에서 기쁨이라는 진주를 독서에서 찾았으며
그런 정신적인 활동들은 에세이로 남겼다. 그래서 지금도 교수님의 글은 많이  

애독되고 있다.

요네하라 마리도 죽기 전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암 치료가 절실하고  

현실적인 문제였지만 평소에 했던 독서 습관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열정은  

자신의 인생이 담겨져 있는 독서 일기과 서평을 모은 <대단한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책 제목대로 그녀의 독서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대단한 책’이었다. 
 

 

 

 세상에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책을 읽겠다

그녀가 쓴 <대단한 책>을 만난 것이 참으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을 통해서 내가 이전에 가졌던 불혹의 독서는 한 순간의 기우(杞憂)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요네하라 마리는 독서의 즐거움으로 제대로 만끽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나이가 들어서라도 지금의 독서 습관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나의 청춘의 삶은 이제 막 인생 마라톤 구역 중에서 초반에 있다. 하지만 간혹  

마라톤 중에서도 장애물을 만난다거나 뜻밖의 돌발사고가 발생한다.  

이처럼 우리 삶에도 예기치 못했던 죽음이 찾아오면 삶의 목표점을 찾지 못한 채  

인생 마라톤이 끝나게 된다. 그래서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다.  

세상에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있듯이  

지구가 멸망하든지 아니면 내가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코앞에 두더라도  

나는 한 권의 책을 놓지 않을 것이다.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는 청춘의 독서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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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0-12-1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리뷰당선 축하드려요~~^^
요즘 제가 이벤트에 맛을 들여서 틈나는 대로 기웃거리다가 요네하라 마리 리뷰공지까지 보게되었네요. 이 대단한 책이 저희 집 책장에도 꽂혀 있었는데..전 몰랐어요.ㅜ.ㅜ
저도 아주 오래전에 리뷰 당선이 몇 번 되었는데 정말 기분좋았어요, 사이러스 님도 그럴테죠?...늦었지만 축하드리고요,...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다이조부 2010-12-15 21:16   좋아요 0 | URL


능력자들만 리뷰 당선이 되는군요 ㅋ


cyrus 2010-12-15 21:25   좋아요 0 | URL
특이하게도 리뷰 당첨공지가 12월 31일까지라서요,,^^;;
축하 인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이조부 2010-12-15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장에게 저번에 문자랑 전화 했는데 번호 기억하시나요? ㅋ

한번 문자 주세요~ 토욜날 뵐수 있으면 좋겠네요 ㅎㅎ

금요일날 밤새 술 퍼마시고 갈거 같아서 가게 되면 캐초췌할텐데 그런가보다 이해요망

cyrus 2010-12-15 21:28   좋아요 0 | URL
그러면,, 일단 알라딘 문화초대석에 가서 <시학> 강연 참가 댓글
먼저 다세요, 40명 인원으로 제한하고 있던데,, 현재 서른 몇 분께서
댓글 다셨네요. 꾸랑님도 얼른 신청하세요.
일단 폰에 꾸랑님 번호 찾아봐야겠네요.

2010-12-15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명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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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나는 인간으로서 일하기 위하여 일어난다."고 생각하라-p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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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오스카 - 어느 평범한 고양이의 아주 특별한 능력
데이비드 도사 지음, 이지혜 옮김 / 이레 / 2010년 5월
구판절판


이미 손에 들어온 패는 바꿀 수가 없다.
가지고 있는 패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게임의 법칙인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어떤 불운이나 행운이 있더라도 모두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p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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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오스카 - 어느 평범한 고양이의 아주 특별한 능력
데이비드 도사 지음, 이지혜 옮김 / 이레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희망을 노래하다 
 

군인들이 주말을 살아가는데 유일한 낙이라면 생활관에서 동기나 선임병, 후임병들이  

함께 TV보는 것뿐이다. 가끔 연병장에 나가서 전투 축구를 하기는 하지만,  

너무 덥다거나 추우면 생활관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TV만 보는 것이다.  

주말에 군인들의 눈을 사로잡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드라마 재방송, 음악 프로그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많이 본다. 특히 음악 프로그램이라면 군인들은 사족을 못 쓴다.  

부대 특성상 여자를 보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이다. 그래서 오직 여자를 볼 수 있는 것이  

TV뿐이다. 입대 전에는 아이돌 가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군인이 되고나면 TV 속의  

아름다운 미모의 아이돌 여가수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병장 시절  

때였다. 황금 같은 마지막 주말인 일요일위 4시가 되면 생활관에 분대원들은 TV에  

집중한다. 음악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였다. 무대 위에서 가수들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춤과 노래를 불렀다. 방송 오프닝부터 흥겨운 무대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음악 프로그램 MC가 무려 5년 만에 컴백한 가수가 등장한다고  

소개하였다. 나는 과연 누구 나올지 마음속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컴백 가수가 틴틴파이브였다. 나와 분대원들은 한순간 맥이 빠졌다.  

내 동기는 잠깐 다른 채널로 돌리자면서 말하기도 하였다. 결국 틴틴파이브의 컴백  

무대는 보지 못했다. 틴틴파이브에 대해서 좋거나 싫은 감정은 없었지만 원래 한 번  

보는 채널은 다른 데로 돌리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다른 채널로 돌리기는 싫었다.  

하지만 생활관 내 분위기 상 독단적으로 계속 보자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대 등장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모두 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이제 젊음의 잔치를 마무리하고 있는 다섯 명의 멤버들을.....

시간이 흘러 5월 초에 전역을 하였고, 그 달 중순쯤에 ‘휴먼다큐, 사랑’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잘 안 보지는 않았지만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휴먼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치병 환자들이거나 우리보다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게 된 프로그램에는 틴틴파이브의 멤버인  

이동우 씨가 나온 것이었다. 아니, 4개월 전에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나온 것일까?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을 보게 되니  

이동우 씨의 사연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희귀병으로 인해서 두 눈의 시력이 상실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욱 더 안타까웠던 것은 이동우 씨의 증세는 신혼 때부터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력은 잃어가고, 그 사이에 태어난 5살 난 유일한  

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우 씨는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 속에 희망을 찾게 해준 것은 가족과 틴틴파이브 동료들이었다. 부인은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남편을 포기하지 않았다. 부인에게는 장애인 남편이 아닌 그냥 사랑하는  

남편이었다. 그리고 틴틴파이브 동료들은 10여 년 간의 우정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병이 치유될 수 있게 직접 나서서 도와주고, 치료 차 미국까지 그와 동행을  

하였다. 그리고 이동우 씨와 같은 환자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자 틴틴파이브는  

5년 만에 컴백을 하였다.  

 

더 감동적인 장면은 이들의 컴백 무대에 오르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오랜만에 무대를 선 이동우 씨는 떨린 마음에 자신의 선글라스가 유독  튀지 않느냐고  

동료들에게 농담조로 던졌다. 그의 농담 속에는 오랜만에 서는 무대에 대한 긴장감과 

자신이 멋진 무대의 티가 될 것 같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홍록기 씨가  

나머지 멤버들도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에 오르자고  제안하였다.  

다섯 멤버들 모두 선글라스를 끼면 한껏 젊은 모습으로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면서 무대 오르기 전에 컨셉을 급수정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5년 만의 우정 어린 무대는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4개월 전 내가  

봤던  그들의 무대 뒤에는 동료들에게 희망을 주는 끈끈한 우정이 있었던 것이었다.  

 

 

 호스피스 고양이 오스카 
 

<고양이 오스카>를 읽으면서 불현듯이 이동우 씨의 가족과 틴틴파이브 멤버들이  

떠올렸다. 오스카라는 고양이도 혼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삶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노인 환자들의 곁에 지키는 특이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고독과 절망의  

삶에 빠져 있는 치매 노인 환자들에게는 오스카 덕분에 조금이나마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고양이가 사람 곁에 있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오스카는 특별하였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노인 주위에 낯선 사람이나 주치의가  

접근하면 자신의 침범 구역을 넘어오는 적들에게 공격 의사를 보이는 것처럼  

으르렁거린다. 그리고 자신이 지키던 환자가 죽어서 영안실에 옮길 때까지 절대로  

병실을 떠나지 않는다.

이동우 씨의 가족과 틴틴파이브 동료들이 이동우 씨의 곁에 항상 있는 것은
그들을 이어주고 있던 사랑과 우정의 교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오스카는 환자들이 숨을 멎을 때까지 그들의 곁을 지켜주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될까? 어쩌면 오스카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도  

하다. 그리고 오스카가 단지 똑똑한 지능을 가진 고양이라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오스카와 환자들 사이의 특별한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마지막 생의 한 순간을 오스카와 함께 했던 환자들은 생전에 그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했다고 말하곤 하였다. 비록 오스카는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절망에 빠진 환자들의
고통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환자들에게 고통을 잊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일종의 ‘호스피스’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만약에 내가 불치병에 걸린다면

이 책을 덮고 난 뒤, 스스로 가정을 해보았다.
만약 내가 불치병에 걸렸다거나, 혹은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면  

내 곁에 끝까지 머물러 줄 사람이 과연 몇 명일까? 심지어 한 순간의 불행으로  

장애인이 된다면 나와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리고 만약 내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이 불행한 상황에 처해진다면 나는 끝까지 지켜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내가 아프면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부모님이 치매에 걸린다면 끝까지 병 수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만에 말씀. 말이야 쉬울 뿐이다. 우리는 그런 비극적 상황 속에서 끝까지 병든 가족을
지켜주는 드라마 속의 착한 주인공이 아니다. 드라마에도 그런 착한 사람만 나오는 것이  

아니듯이 가끔 병든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무심한 사람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끔 뉴스에서는 불치병에 걸렸거나 불편한 몸으로 홀로 지낸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외로움과 가난 속에 살다가 쓸쓸히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 곁에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당사자가
불치병이나 장애인 판정이 내려진 후에 가족과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간다.

그들의 행동은 불행한 상황 앞에서 쉽게 변하는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록 그들의 행동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들이 떠난 이유도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불치병이나 장애인이 된다면 나머지 가족들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제대로 된 가정생활은 불가능해진다.
<고양이 오스카>의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장모님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고백했다.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운명은 예측 불가능하다.  
남의 불행한 이야기가 곧 우리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이 책이 환자 부양과 관련된 사회적인 실태를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특별한 고양이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예상했던 독자들은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고양이 오스카의 특별한 사건들만  

이야기하여 독자들에게 고양이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려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치매 부양가족들의 삶과 호스피스 제도의  

현 실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도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책 분량은 가볍지만 읽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서 본
병원 안에서의 현실들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저자처럼 언젠가는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치매에 걸리게 되면 부양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인해서 수양 가족들도 무력감과 우울증이 발생하므로 결국에는 치매에  

걸린 가족을 외면하게 된다. 책의 에필로그에는 치매 가족을 위한 대처 방안들이  

소개되고 있다. 힘들지만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치매 가족 곁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단 치매에 걸리게 되면 생활 속에서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므로, 가족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치매 가족이  

조금이라도 기억력이 호전되더라도 칭찬을 하되, 치매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음을  

인지하고 꾸준히 부양을 해야 한다.

책 중간에 호스피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호스피스라고 하면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곁을 지키는 봉사자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치매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는 아직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는 만큼  

치매 환자들도 늘 것이다. 암과 같은 불치병 환자 전문 호스피스를 양성하는 것도  

좋다지만, 치매 환자 전문 호스피스의 양성도 시급하다.  단순히 치매 환자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치매 환자 부양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조언 및 상담가 역할을 하게 된다면 부양가족들의 부담감이 줄어들 수 잇을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네 몫으로 주어진 사물들에 적응하고, 운명이 정해준  

사람들을 사랑하되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말했다. 만약에 나 자신이나 가족 중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가 생길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치매 노인 환자들을 말한다. 삶이 힘들더라도 그것은 단지 일부분 일뿐이며  

항상 삶을 즐기고 주위 가족들을 사랑하라고. 아우렐리우스나 책 속의 치매 노인  

환자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 마음속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면서도 막상 세월이 흐르게 되다보면 짧다.  

특히나 죽음의 신이 갑자기 우리를 찾아올 수가 있다. 그러면 죽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 허무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곁에 있는 가족이나 우정을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달해보자.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유언이 고작 ‘사랑한다’고 말하면  

지금까지 산 것이 아깝지 않은가. 사랑한다는 말은 못해도 사랑의 감정을 담은 조그만  

선물이나 편지글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삶이  

즐거워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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