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 공존하려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것들
캐스파 헨더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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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 푸짐하게 깔린 콩나물과 미나리 등 갖은 채소와 함께 어우러진 아귀탕은 얼큰하고 담백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아귀와 콩나물, 여기에 고춧가루가 한데 버무려져 만들어지는 아귀찜도 매콤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아귀의 어원은 아구(鵝口)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굶주린 입’이다. 아귀의 입은 몸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 못생긴 데다 꽃게, 조기, 갈치 등 갖가지 바다 어패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60년까지는 어물전의 골칫거리였으며 때문에 음식재료로 대접받지 못했다. 인천에 사는 어민들은 이 생선이 입만 큰데다 별로 먹을 만한 부위도 없어 그물에 잡혀 올라오면 다시 물에 던져버렸는데 이 때문에 ‘물텀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우리는 아귀를 이용해 처음으로 요리를 만든 무명씨에게 감사해야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귀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귀를 처음 본 사람은 못생긴 아귀의 모습에 겁먹기 쉽다. 조업 경험이 많은 어민들은 그물에 잡힌 아귀를 본 순간 놀랬을 정신적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무명씨의 아귀 요리 도전 덕분에 아귀는 괴물 오명에 벗어나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 좋은 음식재료가 될 수 있었다. 아귀의 반전 매력 하나 더. 아무거나 집어삼킬 수 있는 커다란 입을 가진 모습과 다르게 아귀는 저지방 식품이라 다이어트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생물 중에 아귀처럼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가 이제는 지구에 사라져서는 안 될 귀한 존재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아홀로틀은 도롱뇽의 일종이다. 미소를 지으면서 웃는 듯한 아홀로틀의 매력에 빠져 집에서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도롱뇽이 중세 동물우화집에서 위험한 동물로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도롱뇽은 불에 타지 않는 동물 혹은 독을 지닌 동물로 여겼다. 뱀장어는 하와를 유혹하는 뱀과 닮았다는 이유로 불길한 동물로 오해받았으며 거대한 다리를 가진 문어는 바다 괴물 크라켄으로 둔갑하였다. 옛날 박물학자들은 생물 도감에 있어야 할 동물을 괴물도감에 포함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기준은 단순하다. 미(美)와 정상적 형태에 가깝지 않은 동물은 생물 도감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못한 채 기괴한 생물로 분류된다.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과학의 햇살이 세상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데도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괴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인어, 설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캐스파 핸더슨의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현대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다. 알파벳 A부터 Z로 시작되는 순으로 지구상에 살 것 같지 않은 희귀한 생물들을 소개한다. 돌고래, 일본원숭이, 복어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생물들은 TV나 생물학 교과서에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 바다 아래 깊숙한 곳에 사는 것도 있다. 심해생물의 외형은 딱 봐도 외계에서 온 생명체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는 생태 과정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우리에게는 그저 수수께끼를 지닌 특이한 존재다. 사실 우리에게 친숙한 생물도 처음에는 특이하고 위험한 존재였다. 인간은 어떤 생물에 관한 정보가 부족할수록 더욱 정밀한 검증 절차 대신에 상상력으로 허전한 지식의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생물을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상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왜곡된 지식을 무수히 양산한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무비판적인 자료 집대성으로 인해 황당무계한 내용이 적지 않다. 박물학에 관한 한 최초의 백과사전이지만 환상적으로 묘사한 동물도 나온다. 플리니우스는 뿔과 날개가 달린 말, 사람의 얼굴을 한 짐승 등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적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이 현대판 《박물지》라고 해서 우리가 아는 지식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동물의 세계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상상력이 학문을 지배했던 과거에 유행했던 옛 지식을 추적하면서도 동시에 과학적으로 검증된 현실의 진리를 보여준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자신의 책을 ‘알라테이아고리아(aletheiagoria)’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진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aletheia)’와 환등기(phantasmagoria)를 합한 것이다. 중세 동물우화집과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인류의 상상력이 투영된 세계를 총망라해서 보여주는 환등기다. 저자는 오래된 환등기를 작동시켜 상상력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진리를 복원한다. 그 진리가 진귀한 생물이 인간과 공존하면서 사는 모습이다. 이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간과 관련된 지식을 동원한다. 그래서 글이 옆으로 새는 느낌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단점을 독자에게 미리 밝히고 있다. 앵무조개의 눈을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에 사진기의 역사까지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글쓰기에 처음은 적응하기 힘들 수 있겠지만, 과학, 문화, 역사 등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서술된 한 권의 백과사전으로 봐도 좋겠다.   

 

저자는 현대의 박물지 항목에 ‘인간’을 추가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인간은 생물과 공존하기보다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나온다. 고대의 박물지에 아홀로틀, 뱀장어, 문어가 괴물이었다면 현대판 박물지인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에 나오는 유일한 괴물이 바로 인간이다. 한때 동물을 무서워했던 인간은 과학의 힘을 믿고 상상력의 안개를 걷어치움으로써 자연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 상상력의 안개 덕분에 태초의 생태를 오랫동안 간직하던 동물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졌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선한 존재가 인간이다. 이 책의 ‘인간’ 항목은 독자들이 새로 추가할 수 있다. 상상력을 동원해도 좋다. 과연 인간의 행동은 지구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지구의 보존 아니면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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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1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종말!ㅠㅜ 인간보다 더 무서운건 없다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르네요 ^~^

cyrus 2015-03-17 21: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요즘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너무 많습니다. ^^;;

AgalmA 2015-03-17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물지> 번역작품으로 한번 봤으면 했는데, 해외원서로도 잘 없는 듯 하데요? <산해경>처럼 온갖 도해들이 가득할테니 볼만할텐데 말이죠.

cyrus 2015-03-17 21:23   좋아요 0 | URL
펭귄북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표지를 본 적이 있어요. 이런 책도 펭귄북스 시리즈에 포함될 정도면 유럽에서는 고전으로 읽는다는 거죠. 저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이 책도 번역될 날이 찾아올까요? ^^;;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 비정상의 시각으로 본 정상의 다른 얼굴
조던 스몰러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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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과 의사들이 정상인과 정신병 환자를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정상인 여덟 명을 정신병자로 위장시켰다. 그들은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환청이 들린다고 거짓 증상을 말했다. 놀랍게도 한 명은 조울증, 나머지 일곱 명은 조현증 진단을 받았다. 완벽한 연기로 정신병자로 인정(?)받았다. 충격적인 실험 결과는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논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진을 받고, 약물을 투여받으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있는가. 로젠한의 논문으로 인해 정신의학은 미국인의 절반을 ‘잠재적 정신병자’로 모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멀쩡한 자신을 향해 “정상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당연히 불쾌하다. 그런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조차 이에 동조한다면? 그때는 ‘내가 정말 정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까?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병적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누구라도 그 기준을 명백히 말할 수 없다.

 

요즘 부모들은 과거와 달리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발달이 빠른지 비정상인지에 대해 관심이 높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말을 늦게 하기 시작하면 발달이 느리다고 걱정한다. 사실 아무리 아동의 발달에 대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라 할지라도 빠른 성장 중인 아동이 앞으로 어떻게 발달할 것인지 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다. 단지 아동이 발달상의 장애가 있는지, 특별한 도움 없이는 정상 발달을 하기 어려운지 진단하고 평가한 뒤 전문적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정상적인 아동의 경우도 개인에 따라 발달 속도가 판이하고 개성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특정 발달검사의 수치만으로 아이의 발달 정도를 단언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자폐 장애는 사회적 상호교류가 떨어지는 것이 주된 특징으로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기술이 부족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특징을 보인다. 뇌 발달이 느릴 뿐만 아니라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자폐증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는 않다. 출생 전이나 출생 중, 그리고 출생 후에 일어나는 뇌 손상이나 정상적인 뇌 손상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요인이 원인이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많은 학자가 정서상의 문제를 자폐증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주장에는 많은 허점이 있어 부정되고 있다.

 

문제는 정서상의 문제를 원인으로 한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이다. ‘비정상’으로 보려는 편견을 기준 삼아 자폐증 환자들 바라본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만 해도 그 어머니에게는 큰 아픔인데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견디기 힘든 시련일 것이다. 부모의 방치나 학대가 아이의 행동이나 언어발달, 사회성 발달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애정결핍이 생기기 쉬운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서 자폐증이 더 많다는 실증이 없어서 단순한 양육환경의 문제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실적으로도 자폐아를 가진 어머니들이 다른 어머니들에 비해 훨씬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는 점을 볼 때도 이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폐증은 선천적 장애다.

 

정상은 사전적 의미로 ‘제대로인 상태’ 혹은 ‘지극히 평범한 상태’를 이른다. 의학에서는 질병의 유무나 검사결과의 수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를 벗어나는 경우는 비정상이 된다. 대한정신의학회에서 말하는 비정상은 사람의 사고기반이나 체계가 일반적인 사회의 통념에서 많이 벗어나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비정상적인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타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것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정신의학이 규정한 ‘비정상’의 정의는 삶의 모든 영역에 개입하면서, 비정상적으로 질병으로 보는 문화가 확립된다.

 

프랑스인들은 하루 중에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고 부르는 표현을 사용한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땅거미가 내리면서 저만큼 다가오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시간이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 조던 스몰러는 정상과 비정상을 낮과 밤의 경계처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계가 모호한 상태일수록 인간의 판단력은 떨어진다. 비정상으로 분류된 정신 질병은 불시에 우리 마음을 공격하는 늑대로 판단하기 쉽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상의 생물학’이라는 기준을 내세운다. ‘정상의 생물학’은 뇌와 마음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학문적 관점이다. 여기에 진화생물학, 유전학, 심리학 등 다 학문적 접근으로 뇌와 마음의 정상적인 작동 과정을 이해한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로 결정된 자기 나름의 기질이 있다. 어떤 아이는 수줍음이 많고, 어떤 아이는 사람에게 잘 다가온다. 먹고 자는 것이 규칙적인 아이가 있는 반면 매우 불규칙한 아이도 있다. 이처럼 아이가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은 뇌의 원시적인 구조가 갖는 정보처리 양식이다. 뇌의 깊은 곳에 있는 편도체는 그 구조의 하나로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는 기관이다. 하지만 아이의 기질이 곧 성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뇌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환경의 영향은 아예 뇌의 한 조직인 변연계를 뒤흔들어 기질 자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으며, 같은 기질이라도 전혀 다른 적응 방식이나 성격을 나타내게 한다. 결국 기질이나 유전자는 그 자체로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특정한 성격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여 줄 뿐이다. 그러므로 남들과 다른 기질이라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단정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네 살이 되도록 말도 제대로 못 해 저능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학교에 가서도 제대로 적응을 못 하자 선생님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이 말을 늦게 하기 시작한 것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감기가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온 것뿐이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뇌는 민감기가 다 있다. 쓰기, 읽기가 분리되어 있으며 순서가 있다. 민감기에 배운 내용은 뇌가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때가 되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한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멀쩡한 얼굴로 내려왔다.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학생들은 더러운 아이라고 답한다.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학생들은 더러운 아이라고 답한다. 선생은 아니라고 말한다. 얼굴이 멀쩡한 아이는 더러운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에도 그을음이 묻었을 것으로 생각했을 노릇 아닌가. 선생은 다시 묻는다. 누가 얼굴을 닦았을까. 그러나 학생들은 이번에도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선생은 말한다. 두 아이가 똑같이 굴뚝을 청소하고서 한 아이만 얼굴이 깨끗하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서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정상과 비정상의 모호한 경계는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안과 겉의 구별을 할 수 없는 한쪽 면만을 가진 곡면이다. 안이 겉이고 겉이 안이 되는 구조. 우리 사회가 여전히 매달리고 있는 생각 중의 하나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다. 우리는 정상이 비정상화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모든 정신 활동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시대의 상황을 알아야 하며, 그 문화의 차이를 판단해야 하고 사회적인 기준을 잘 파악해야 하며 더더욱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해야 할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가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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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0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쪽은 잘 모르지만 근현대 예술론에서도 정신분석학 쪽에서 몇몇 중요한 이론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요 몇 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저는 정상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가 않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cyrus 2015-03-04 17:0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상을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니까요.

오쌩 2015-03-04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와 기준이 무엇인지...

오쌩 2015-03-04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제대로 진단을 하는지 저또한 의문입니다
오래전에 우울증을 경험해서 실제로 멏차례 가본적이 있는데...
기억나는 의사분진단이 교감신경인가 부교감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오쌩 2015-03-04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한게 우울증을 경험했을때,
감각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더군요.
일시적으로 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때 운동을 엄청 많이하고 일에 몰입했더니,감각이 돌아오고,삶의 태도도 바뀌고 하더라구요.
신기하고 귀한 경험이었고,인간의 감정과 태도가 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2015-03-04 0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4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3-0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흥미로울 것 같다.
나도 젊었을 때 한때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관심이 많아
제법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영 시큰하다.

그런데 병원 오진은 확실히 많은 것 같애.
오래 전 잠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맞은 적이 있어.
그게 수면제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데
어떻게나 잠을 재우던지 그 치료 방법이 좀 의심스럽더라.
다행히도 그때 병원에서 잘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데
건강 잃으면 손해야. 아파서도 손해고 병원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불안하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만큼만 건강하게 버티는 거. 이게 장땡이더라구.ㅋ

cyrus 2015-03-04 21:02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뇌 과학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요, 약간 후성유전학 느낌도 나고요. 몸 건강도 좋지만 요즘처럼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음도 건강해야 될 것 같아요. 몇 년 후에 안부 인사로 ‘몸 건강하세요’가 아니라 ‘마음 건강하세요’라고 해야 될지 몰라요.. ㅎㅎㅎ
 
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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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나는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다.
너무도 빨리 날아가 버려
눈으로도 그 화살을 따를 수 없었다.

 

(롱펠로우 「화살과 노래」 중에서)

 

 

인간은 살면서 무수한 시간의 화살을 허공에 날리는 숙명을 타고난듯하다. 어떤 화살은 목표물에 접근도 못했고, 어떤 화살은 아직도 날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이 재단한 시간의 흐름이 어떤 의미를 지니겠는가. 꽤 오랜 시간을 지난 뒤에서야 태초의 인간이 처음으로 쏜 시간의 화살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가슴 속에 있었다. 대다수 학자들은 “시간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인류 최대의 업적”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발견으로 비로소 과학, 철학, 종교가 생겼고 이를 통해 인류는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누구도 알지 못한다. 초기 기독교도들을 시험에 들게 한 문제는 다름 아닌 시간의 창조였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시간 속에서 창조했을까, 아니면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공간과 시간의 모체를 먼저 창조했을까. 여러 세기 동안 지속한 이 논쟁의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 철학자들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에 인간이 그토록 정체를 알고 싶었던 시간은 얄밉게도 계속 흘러만 갔다. 이처럼 시간은 일상성과 더불어 추상성을 함께 갖고 있어서 흥미로우면서도 까다로운 주제이다. 매일 시간 맞춰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헐레벌떡 뛰어가면서도, 우리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인간은 우주의 광대한 시간 운행 속에서 작은 생명체로 살아간다. 밤과 낮의 교차에 따라 일하고 쉬고, 거대한 우주적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우리가 해마다 먹는 이 나이란 것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말한다. 이렇듯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일치한다.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우리는 시간과 우주와의 연결고리 속에 살아왔다. 구석기인들은 시간을 거대한 우주 안에서 찾았다. 이때부터 태초 우주의 모습을 묘사한 고대 신화를 통해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우주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우주론은 우주의 창조와 진화, 미래의 운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천문학이 대부분의 우주론을 다뤘다. 우주론의 역사는 대부분 천문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천문학의 등장은 시간의 역사와 거의 같다. 바로 밤과 낮의 구분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천문학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미스터리한 기계의 정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으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달과 행성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해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고고학자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혼돈의 우주에 사는 것이 아니다. 간결한 수식으로 우주의 구조와 물질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인 ‘조화의 우주’에 살고 있다. 우주(세상)의 근본물질을 탐구한 수많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 가운데 정교한 모델을 만드는 데 가장 부합되는 주장이 피타고라스학파다. ‘세상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신념은 지금은 엉뚱해 보일지라도 이 단순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원리 덕분에 본격적으로 삶의 질서를 분명하게 정해주는 우주론의 틀이 조금씩 만들어져가기 시작했다. 인류는 수와 기하학에 매료되었고, 플라톤도 진짜 현실은 우주 자체가 수학적인 원리로 설계되었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영향의 결과로 달력과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이 등장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 나온 달력은 세금 징수 시기나 축제의 시기를 알렸고,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은 정밀한 천문시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중세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천문학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16세기가 되어서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왔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고정불변의 우주모델이었다.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가 잠시 끊어지게 되었고, 우주는 종교로 포섭되었다. 암흑시대는 과학자마저 우주모델을 함부로 논하다가 이단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하늘의 주기에 따라 삶을 살았던 패턴은 점점 잊히기 시작하고, 시간의 역할도 미미해져만 갔다. 역설적이게도 우주의 시간을 신의 영역으로 재단했던 종교인들은 우주의 질서에 따른 시간에 맞춰 살았다. 수도승들은 수도원의 성무일과에 따라 하루를 보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숨겨져 있었네. 신이 말하길, ‘뉴턴이 있어라!’ 그러자 모든 것이 광명이었으니.”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만든 뉴턴의 묘비명처럼 신은 어두운 곳에 숨겨진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를 다시 한 번 이어줄 구원자를 이 세상에 보내줬다. 뉴턴은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의 개념에 기반을 둔 고전 물리학을 완성했다. 뉴턴의 등장으로 절대 시간을 지닌 시계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뉴턴은 자신을 신이 특별히 임명해준 ‘자연의 대제사장’이라고 여겼다. 그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인공을 불러들인 이유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완벽한 무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뉴턴이 직접 짠 우주론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은 신이었다.

 

뉴턴의 우주론을 진짜 과학의 무대로 옮겨 새롭게 각색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그가 다시 꾸민 우주론의 무대에 신을 하차시켰고, 대신 다양한 속도와 다양한 체계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성의 권위를 부여한 뉴턴의 발상을 뒤엎고, 절대적 지배구조를 없앴다. 아인슈타인 우주론의 무대에서 시간은 상대적 운행에 따라 좌우된다. 그동안 인류가 세상을 피부로 느끼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생소했던 동시성은 물리학의 핵심이 되었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시간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 시작된다. 시간도 공간과 동일한 물리적 차원의 하나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닌 서로 연결된 차원이라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거대한 우주에서는 절대시간이란 없다. 다만 상대적 시간만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과학적 지식에 의하면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폭발로 우주가 생겼다’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빅뱅(Big Bang) 이론에서 빅뱅은 폭죽의 의미다. 밤하늘 불꽃놀이를 볼 때 한 점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퍼져 나가듯 우주도 그렇게 생겨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빅뱅 전에는 무엇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시간과 공간도 없는 진공’이라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비유해 온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데 불과하다. 빅뱅 이론이 우주에 단 한 가지 공간밖에 존재하지 않음을 가정하고 있을진대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점이 서로에 대해 똑같은 속도로 멀어져 가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빅뱅의 순간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편의상 그렇게 상상해왔을 뿐이다. 시간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한 여러 가지 우주론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후예들은 지금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를 계속 찾는 중이다.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는 아주 가깝고도 먼 우리 안의 원초적 본능이다. 고대인들은 시간의 큰 단위에 관심을 가지고 삶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았던 반면, 우리는 시간의 작은 단위인 분과 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늘 무언가에 쫓기느라 삶을 충분히 느끼지도 못하고, 그것에 적응할 준비만 하다가 어영부영 세월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서두르느라 사랑이나 기다림, 신뢰, 결속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희생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만날 달고 사는 시간이 무엇이며 언제부터 또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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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2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도이야기라는 책에서 크로노미터에 반했었죠. 시간이란게 참 신기해요. 정말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단지 개념같기도 하고 말이죠.

cyrus 2015-03-01 09: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시간 개념이 발견되는 과정의 역사를 보면 대단해요.
 
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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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찍 일어나니까 사람이 멍청해지는군. 사람이란 잘 만큼 자야 해.”
(카프카  「변신」 중에서 / 『카프카 단편전집』, 110쪽, 솔출판사)

 

 

 

어느 날 아침. 그레고리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왜 벌레로 변했는지, 그 변신의 이유도 과정도 모른다. 아무도 그를 원래대로 돌아오도록 만들려 노력하지 않는다. 벌레로 변한 주인공도 그의 가족도 현실을 외면하고 숨기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결국, 잠자는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결국 벌레가 된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이 생각난다. 잠자가 벌레가 되어 벌레로 죽는 과정을 ‘인셉션’의 주요 콘셉트와 연관 지어서 (약간 억지가 있지만, 내 맘대로) 색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소설에서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자신이 벌레로 변한 사실을 안다. 잠자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악몽일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잠자가 겪게 될 진짜 악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첫 번째 꿈이 지나가고, 잠자는 벌레가 되어버린 두 번째 꿈이 이어진다. ‘인셉션’에서 코브와 아서는 타인의 꿈을 침투하여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역할을 시도한다. 「변신」에서 코브와 아서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잠자의 가족들이다. 외판사원인 잠자는 황급히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해야 하지만 기괴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한다. 식구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잠자가 걱정되어 방문 앞에 문을 두드려 확인해보지만, 오히려 잠자의 불안감을 더욱 커지게 한다. 가족과 직장을 위해서 일만 하던 잠자는 처음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잠자를 방 안에 갇혀 고립시키는 것이 잠자 가족의 목표이다. 잠자는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기이한 악몽을 현실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가족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족은 흉측한 벌레가 된 잠자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현실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해왔던 잠자는 꿈에서도 가족을 위해 죽음을 맞기로 선택한다. 죽음만이 악몽에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족의 의도대로 잠자의 악몽은 끝이 난다. 잠자가 죽고 나서야 가족은 예전처럼 평온한 생활을 한다.

 

영화에 나오는 내용처럼 누군가가 내 꿈속으로 들어가 치명적인 방해를 시도한다면 꿈을 꾸는 사람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정신분열에 걸려 고통 속에 죽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주변에 잠을 방해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다. 잠을 자기 전에 늘 확인하는 스마트폰에 도시를 빛나게 하는 환한 인공조명 등이 편안한 수명을 방해하는 주범이다. 미국 인구 100명 중 99명은 광공해 기준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인공조명의 불빛도 엄연히 말하면 생태계와 건강을 파괴하는 공해를 일으킨다.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생태가 이어지면 신체는 우리에게 건강의 적신호를 알린다. 면역이 떨어지고, 환각과 환청을 경험한다. 뇌는 마치 술에 취한 상태가 되어 기억력과 판단력이 떨어진다.

 

잠을 방해하는 것은 또 있다. 스마트폰 못지않게 항상 당신 옆에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 곁에서 사랑스럽게 자는 배우자이다. 한때 몇몇 수면 연구가들은 부부가 침대를 따로 써야 충분히 수면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달콤한 신혼으로 깨소금이 쏟아지는 새내기 부부나 여전히 닭살 금슬을 자랑하는 잉꼬부부라면 잠잘 때 침대를 따로 써야 하는 상황이 마뜩잖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남편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아내라면 이런 주장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남편과 아내가 한 침대에서 자면, 남편보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높다. 남성은 혼자 자는 것보다 배우자와 함께 자는 것을 선호하며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느낀다. 본인의 코골이나 이갈이가 심해도 배우자는 참는다. 그런데 남편의 잠버릇이 고약하면 아내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 이래서 부부는 백년해로하기가 쉽지 않다. 남편 혹은 아내 둘 중 한 사람의 잠버릇이 심하면 분명 한 쪽은 불면증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경과가 심해지면 건강도 나빠진다.

 

잠의 매커니즘은 신기하다. 수면 박탈로 인해 정신이 완전히 나간 좀비가 되어도 두세 시간만 자면 다시 원 상태로 회복된다. 건강을 위한 충분한 수면 시간을 규정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지만, 놀랍게도 인류는 잠을 두 시기로 나뉘어서 잤다. 유럽 중세 시대 사람들은 해가 완전히 저문 이른 시간에 잠을 자면, 자정에 깨어난다. 충분한 수면으로 몸이 저절로 반응해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잠을 두 번 나누어서 자려고 일부러 일어났다. 자정부터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하거나 책을 읽는 등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 사실 개인적인 시간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성(性)스러운 운동을 많이 했다. 어쨌든, 한 시간만 깨어 있다가 다시 잠을 청한다. 이것이 두 번째 잠이다. 시대가 변해 생활 방식도 달라지자 두 번째 잠은 사라져버렸다. 간혹 일찍 자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비정상적인 수면으로 간주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당신의 몸이 오랫동안 잊힌 과거의 수면 방식을 기억하고 있다는 신체적 증거이다.

 

이처럼 24시간 절반을 자면서도 정작 우리가 왜 잠을 자는지 그리고 꿈을 꾸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몰라도 된다. 사실 수면을 연구한다는 과학자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이것만은 알아두는 것이 좋다. 잠은 꼭 자야 한다는 사실. 우리가 잠에 대해서 너무 모르다보니,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편하고 소중한 시간을 소홀하게 여긴다. 잠잘 수 있을 때 자는 것이 최고다. 밤에 우리를 찾아오는 잠의 신(Hypnos)을 자주 쫓아내면, 신이 분노해서 자신과 똑닮은 죽음의 신(Thanatos)을 데려올 수 있다. 건강엔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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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5-01-1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한 잠 정말 중요한데 요즘 아이들 불쌍해요. 학교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 물어보면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지 뭘하는지 하여튼 집에 가면 11시래요. 그러면 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스마트폰도 하고 해야하거든요. 그러니 점점 자는 시간은 줄어들고....
부모들한테 제발 애들을 좀 재우라고, 당신은 하루 5-6시간 자고 다음날 제대로 일할 수 있냐고 해도 별 소용이 없네요. ㅠ.ㅠ

cyrus 2015-01-13 18:59   좋아요 0 | URL
잠을 적게 자는 습관이 많아지면 몸도 적응됩니다. 그렇지만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원인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낮잠 시간을 부여하는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편인데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이명현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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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말이 필요 없는 동심이다. 별을 보면 멋지다는 환성과 함께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착하고 선한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골집 마당 평상에 누워서 밤하늘을 쳐다보면 무수히 많은 별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 때 별은 우리의 꿈이었으며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며 별을 세어 보았던 사람들은 과연 그 별을 다 셀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유난히 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욱 별이 반짝였던 그 시절에 별을 보며 동심의 세계에서 꿈과 희망을 그리곤 했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은 인간에게 신비의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가다 도랑에 빠졌다.

 

옛날에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을 세기도 하고, 그 많은 별 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별 하나쯤은 고를 수 있었다. 누구나 별을 가져도 충분할 정도로 별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하늘의 별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대도시에서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수가 줄었다. 옛날에 그 많던 별이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밤에는 별이 빛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공해로 찌든 도시에서는 별이 안 보인다고 하지만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1백37억 년 전쯤 빅뱅이 있었다고 말한다. 빅뱅으로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고,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졌다. 이후 무수한 별이 등장해 현재의 우주에 이르렀다. 우주에는 1천억 개가 넘는 은하가 있다. 1초에 30만㎞의 광속으로 1백억 년을 달려야 도달하는 은하도 있다. 이처럼 우주는 상상하기 힘든 무한대의 공간이다. 지구는 그야말로 우주의 아주 작고 아름다운 자갈인 셈이다. 우리는 별을 만든 먼지 덕분에 형성된 ‘생각하는 별 먼지’다.

 

이렇게 우주 앞에 서면 생각하는 별 먼지들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그런데 아주 오래된 고향의 흔적이 남아있을 밤하늘을 바라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천문학자 이명현 씨의 표현을 빌리면 밤하늘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인류의 조상까지 늘 별과 함께했다.

 

별의 수명은 인간의 일생과 비슷하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 일생이 있고, 사람과 똑같이 모진 생애를 산다. 별은 우주 먼지와 수소 가스가 밀집해 수축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계속 밀도가 높아지면서 핵융합이 시작되면 본격적인 별의 일생이 시작된다. 이 원시별이 완전한 별이 되기 전 수만 년 동안 스스로 수축하면서 내부 물질을 분출하는 단계를 거친다. 별 내부의 수소와 헬륨을 거의 다 태우고 나면 내부의 엄청난 에너지에 의해 별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별의 크기가 커지면서 표면 온도도 내려가 푸른색의 젊은 별들이 붉은색의 늙은 별(적색거성)로 변해간다. 거대한 성운 속에서 태어난 아기별이 자신을 태우면서 성장해가고 더는 태울 것이 없어지면 여러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생명을 다한 나뭇잎이 떨어져 땅속에 묻히면 새로 돋아나는 씨앗의 좋은 거름이 되는 것처럼 수명을 다한 별이 폭발하면서 내놓은 가스와 먼지 잔해는 새로운 별과 지구와 같은 행성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하늘에 반짝거리는 저 별도 영원히 빛나지만은 않다. 당대 최고의 스타(star)도 전성기 동안 크게 반짝거리다가 한순간에 사라질 때가 있듯이 별도 밤을 비추지 않은 때가 온다. 비록 별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것이 우주 한가운데에 사라지면서 흩뿌려진 별 먼지는 또 새로운 별을 만들어 낸다.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고, 다시 지구의 탄생을 살펴보면 우리의 고향은 먼 옛날 태양계 근처에서 폭발해 생을 마감한 어느 별의 중심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손녀의 손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의 고향은 별의 중심인 것이다. 옛날부터 인간이 별을 보며, 별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진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머나먼 우주 속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스트랄한 향수. 내 묘비명을 이렇게 정했다. 칸트의 묘비명을 살짝 바꿨다. 내 머리 위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엔 별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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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05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별에 관해 새로운 사항을 알게되었어요. 폭발한다는 사실과 가스와 잔해가 새로운 행성을 만든다는 이야기 참 신기하네요^^ 그리고 벌써 묘비명을 생각하시는 모습 참 멋지시네요^^ 그러고보니 별을 올려다본지가 참 오래된거 같아요. 별이 그리워지는 밤이네요^^

cyrus 2015-01-06 13:31   좋아요 0 | URL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별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인간과 별은 깊고도 오묘한 관련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stella.K 2015-01-0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잖아도 칼 세이건 살롱에 이명현 박사가
한 달 동안 진행한다는데 네 생각나더라.
아무래도 사는 곳이 지방이라 좀 어렵겠지?
난 장소가 집에서 가깝긴 한데 러시아워 시간 때라
그게 그거란 생각이 든다. 과학을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이 책은 좀 재밌을 것 같네.^^

cyrus 2015-01-06 19:31   좋아요 0 | URL
별과 우주에 관한 에세이집에 가까워요. 어렵지 않아요. 좋은 시를 인용한 글도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