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 낭만의 달, 광기의 달 Nature & Culture 1
에드거 윌리엄스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영화에서 드라큘라가 사는 고성의 밤하늘에는 항상 보름달이 걸려 있다. 약간 파란 빛을 내는 보름달은 음습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블루문은 서양에서 양력 한 달 사이에 보름달이 두 번 뜰 때 두 번째 보름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31일에, 그것도 3년 만에 처음으로 블루문이 떴다. 그런데 보름달의 색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블루문’이라고 해서 파랗게 변한 달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blue moon’의 어원을 ‘belewe moon’이라고 보는 설이 있다. ‘belewe’는 ‘배신하다’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지금은 사어가 되었다. 달의 정체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배신하는 달’이 뜨면 낯설게 받아들였다.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사람 안에 사악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당연히 서양인들은 보름달을 좋지 않게 여겼고 한 달에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이 자연의 섭리를 배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점성술은 달이 사람의 정신과 행동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다. 의사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도 보름달이 뜨는 날에 정신 착란 증세가 잘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어에는 ‘lunatic’이라는 단어가 있다. 정신이상자, 미치광이, 괴짜를 의미한다. 하지만 달이 사람 심리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속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까지도 달의 주기와 인간행동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지금도 인간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달의 주기와 관련된 다양한 속설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터무니없는 속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으면 진실처럼 느껴져 깨기가 힘들다.

 

인간에게 달은, 그냥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달에 대한 음모론도 많지만 일단 제쳐놓고, 달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에게 필수적인 존재였다. 지금 우리는 근대의 합리적 세계관에 의한 교육의 영향으로 고대인의 사고체계를 미신 또는 신비주의로 치부해 무시해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달이 없었다면 음양의 조화는 물론 방아 찧는 토끼와 보름달이 뜨면 변신하는 늑대인간 등 수많은 신화와 전설도 없었다. 숱한 신화와 전설이 달을 이야기하고, 시와 예술이 찬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달이야말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천체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동화와 노래와 전설 속의 주인공으로서 달은 우리 삶 깊숙한 곳에서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있다.

 

달은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지구의 단 하나뿐인 위성이다. 그렇지만 달의 상식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달은 태양과 함께 천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달의 인력은 지구의 바다를, 달과 그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며, 이렇게 부풀어 오른 지역은 지구 자전에 따라 서쪽으로 조금씩 움직여간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밀물과 썰물의 원리다. 달이 기울고 차는 모양 자체가 달력의 역할을 하여 역법의 기준이 됐다. 만약에 달이 지구 곁에 없었다면,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달이 지구의 자전축을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은 지구에 없어서는 안 될 ‘산소’ 위성이다. 우리가 산소의 소중함을 잊으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달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달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옛사람들은 달을 두려움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과학은 전설과 속설 들을 한 꺼풀 벗겨냈다. 우리는 망원경으로 달의 맨살을 볼 수 있다. 달 표면에 남은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달 탐사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위대한 도약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달은 우주 속의 신비로운 존재다. 이태백이 놀던 달은 우주 비행선에 의해 그 후 여러 번 밟혔지만 예나 지금이나 달의 신비로움은 여전히 퇴색되지 않고 남아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좀 더 자주 달을 보도록 권하고 싶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합리적 세계관에 덜 물들어서 순수하다. 달 표면에 새겨진 전설을 음미하고 난 뒤에 달이 지구의 산소라는 중요한 사실을 이해해도 늦지 않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5-08-12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하루에 서평 두개 올리시는 건 반칙 아닌가요?ㅎㅎ 책 많이 읽으시는 비결 괜히 궁금해서 타박입니다. 부러워서요. ^^ 제 기억 맞다면 이 책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추천한 거 같은데... 서평 보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5-08-13 21:16   좋아요 0 | URL
하루에 세 편 이상 글을 쓰시는 몇몇 분들에 비하면 제가 하루에 두 번 글을 쓰는 날은 정말 많지 않아요. 쉽게 읽을 수 있고, 비교적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이면 하루 만에 다 읽고, 그 날 바로 글로 정리하는 편입니다. 읽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책은 최소 삼일 이상 읽습니다. 제가 책을 여러 권 동시에 읽어서 읽는 속도가 더 느려져요. 일단 다 읽은 책이 나오는 대로 바로 글을 써요. 예전에는 글을 길게 쓰는 악습관이 있어서 글 쓰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글도 짧게 쓸려고 노력 중입니다. 반니 출판사의 `내추럴 앤 컬처` 시리즈가 정말 좋은 책입니다. 과학, 문학, 역사 지식을 책 한 권에 다 볼 수 있습니다. ^^

인디언밥 2015-08-1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라.. ㅎㅎ

cyrus 2015-08-13 21:18   좋아요 1 | URL
몇 주 전에 인디언밥님이 읽은 책이었죠. ^^

인디언밥 2015-08-13 23:43   좋아요 0 | URL
넹 헤헿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잡지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눈꺼풀을 빼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왼쪽 눈꺼풀을 수만 번 깜빡거리는 노동으로 글을 썼다. 도우미가 알파벳을 순서대로 제시하면 눈 깜빡임으로 철자를 골라 문장을 만들었다. 책 제목은 잠수복과 나비(동문선, 1997). 잠수복을 입고 심해에 갇혀 있지만, 나비를 희구하는 저자를 상징한다.

 

뇌는 여러 구조물을 부품으로 한 조립품이 아니라 수백억의 신경세포가 연결된 통신망에 가깝다. 뇌 속의 뉴런은 1천억 개에 달한다. 한 개의 뉴런이 뇌 속에서 수천 개의 뉴런과 연결된다.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과정은 사실 이 뉴런들이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다. 마비는 뇌의 명령을 근육에 전달하는 신경 경로가 차단돼 일어나는 현상이다. 근육을 지배하는 신경세포는 남아 있어서 여기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근육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컴퓨터가 뇌 활동을 읽어내 전기 자극으로 자동 변환시킨다.

 

국내에서도 이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뇌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분야를 뇌공학이라고 한다. 과학 분야에 생소한 독자라면 뇌과학과 뇌공학의 차이점이 궁금할 수 있다. 뇌과학은 뇌의 작용 원리를 밝혀내는 학문이라면 뇌공학은 뇌를 포함한 신경계의 기능과 행동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제반 공학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학문 용어를 둘러싼 독자의 혼동을 피하고자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뇌공학을 뇌과학과 공학기술이 만난 학문으로 보면 된다. 그만큼 뇌공학에서 다루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분야를 융합하고 창조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은 뇌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에 대한 연구개발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다. 시냅스와 뉴런이 뇌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은 컴퓨터의 연산처리 기능과 유사하다. 2005년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자들이 모여 인간의 뇌 신경 연결지도를 만드는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Human connectome project)를 출범시켰다. 휴먼 커넥톰은 뇌 회로에 신호를 보내고 자극할 때 회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 연구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목표는 뇌 동작 원리 전체를 밝히는 데 있다. 뇌가 어떻게 기억을 형성하고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지, 또 팔다리나 시청각 등과 관련된 인체 기관을 어떻게 제어하는지 밝혀낸다. 이게 가능하다면 영화 <아바타>와 같이 뇌의 기억을 읽어 내거나 조작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

 

매튜 네이글이 참여한 브레인게이트(BrainGate)’ 프로젝트는 BCI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게 하고 있다. 칼에 찔려 척수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매튜 네이글은 유타 대학교에서 개발한 미세 전극 배열 칩을 두뇌의 운동 피질 표면에 이식됐다. 기기 오작동으로 인해 한 차례 실패가 있었으나 두 번째 재이식은 성공했다. 전극은 주위의 뉴런으로부터 전기신호를 포착해 환자의 두뇌에 있는 칩으로 전송한다. 전송된 신호는 복잡한 케이블을 타고 컴퓨터에 연결돼 원하는 동작을 이끌어낸다. 매튜 네이글은 원하는 움직임을 상상만 하면 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늘 염려와 경계가 따른다. 인공심장 박동기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땐 인간성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에는 두뇌와 기계와의 만남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과학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고, 공학은 불편함에서 시작되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 뇌공학은 우리의 뇌가 질병으로 야기된 문제 또는 태생의 한계에 따른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뇌공학이 발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부분적인 기술들이 융합되지 못하면서 장애인들의 바람을 희망 사항에 머물게 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거나 군사적 활용도가 높은 곳에 치우친다면 윤리적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인간의 뇌는 자아, 능력, 성격 등 인간 본연의 실체이므로 이에 대한 윤리적 측면의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jung 2015-07-27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뇌과학에 관심이 많아요...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cyrus 2015-07-27 18:00   좋아요 0 | URL
내용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과학 용어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새의 감각 -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 에이도스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물고기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소. 이게 물고기의 즐거움이오.” 혜자가 말했다.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장자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혜자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물론 당신을 알지 못하오. 당신은 물고기가 아니니까 물고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오.” 장자는 당신은 이미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서 물었기에, 나도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았소라고 응수했다.

 

장자추수(秋水)편에 나오는 장자와 혜자의 논쟁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 더구나 인간과는 종이 다른 생명체를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던져준다.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질문을 던졌다. 박쥐는 고주파의 빠르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어 주변의 사물들에서 반사되어 오는 것을 포착해서 주위 사물들의 배치를 알아낸다. 박쥐의 두뇌는, 쏘아 보낸 고주파와 반향 되어 온 미미한 파동들을 받아들인다. 만약에 인간이 박쥐처럼 음파 탐지 장치로 세상을 지각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때 박쥐가 된 인간은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네이글은 박쥐에 대해 아무리 많은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우리가 박쥐의 경험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하였다. 박쥐의 두뇌가 입수된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모든 것이 알려진다고 해도 그것이 박쥐에게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만이 생각하고, 감각을 가진 월등한 존재라는 착각 속에 산다. 하지만 동물=본능, 인간=사고란 고정관념은 동물행동학이 발달하면서부터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동물의 신비스러운 습성이 많지만, 동물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지각하는 것을 학계가 인정하고 있다. 새의 감각의 저자이자 동물학자인 팀 버케드는 네이글의 논문 제목을 패러디한 부제를 강조하면서 새가 된다면 어떤 느낌인지 들려준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새가 되고 싶었다. 독일 민요 이 몸이 새라면의 노랫말처럼 하늘 높이 뜬 흰 구름까지 날아갈 수 있다. 이처럼 새의 날개는 인간의 지극한 동경심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새가 인간처럼 다섯 가지 오감과 정서를 느끼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새를 인간의 입장으로 생각했을 뿐, 정작 새의 입장이 어떤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새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게 되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새는 종족을 번식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으려고 무리 지어서 이동을 한다. 공중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일은 먹잇감을 노리는 천적에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여정이다. 새의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천적의 위협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비행한다. 오리, , 갈매기는 한쪽 눈만 뜬 채 잠을 잔다. 유럽칼새나 수리갈매기는 잠을 자면서 비행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새들의 행동도 인간처럼 두뇌의 편측화(특정한 기능이 두뇌의 한쪽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 현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새의 감각 능력은 인간의 감각을 훨씬 능가한다. 우리는 매우 뛰어난 시력을 매의 눈이라고 한다. 흔히 김제동의 눈처럼 작으면, 시야도 좁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안구의 크기는 시력과 시야 확보에 비례하지 않는다. 매는 사람보다 4~8배 멀리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매는 상이 맺히는 부위인 눈오목을 두 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오리는 청력이 뛰어나다. 온갖 잡음 속에서도 자신의 새끼가 내는 울음소리를 구분하여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에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가가 아니라 동물학자가 되었다면, 자신이 어린 시절에 달걀을 직접 품었던 일이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알을 무조건 따뜻한 곳에 보관한다고 해서 부화하는 것은 아니다. 알은 어미 새에게만 있는 육반이라는 피부 부위의 자극으로 부화한다. 산란기에 접어든 어미 새의 몸에 깃털이 빠지는 부위가 생긴다. 그 곳을 중심으로 혈액 공급이 증가하는데, 이 부위가 바로 알의 온도를 조절하는 육반이다. 이때 육반이 생성되면, 뇌하수체에서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어미 새의 뇌에서 분비하는 프로락틴은 임신한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프로락틴과 상당히 유사한 기능을 한다. 임신 여성의 프로락틴은 뱃속 태아를 보호하는 양수에 들어 있다. 양수 내의 프로락틴은 태아의 탈수를 방지한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어미 새와 엄마의 몸속에 있는 호르몬이 새끼와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새의 감각은 인간이 새의 지각 능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현재까지도 새의 지각 능력에 관해서 풀지 못한 수수께끼는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장자처럼 새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모습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오해하지 않아도 된다. 혹독한 자연의 시험을 견디기 위해서 특별한 지각 능력을 갖췄을 뿐이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것 같은 새들은 인간이 모르는 삶의 방식으로 24시간 치열하게 살아간다. 책 속에 소개된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알면 그들의 강한 생존력에 연민이 느껴진다.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소박한 신념을 다시 강조해본다. 알면 사랑한다.’ 팀 버케드는 새를 알면 새가 세상을 보고, 듣고, 맛보고, 이해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새의 감각을 읽을 때는 오감을 활짝 열어놓으시길.

 

 

 

 

※ 215쪽에 '동물은 꽤ㅈ 먼 거리를'이라는 문장 일부가 잘못 인쇄되었다. (내가 읽은 책은 2쇄)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이바 2015-07-1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f I were a bird... 가정법은 맨날 이 문장으로 배우죠. 새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 이 책을 읽으면 좀 나으려나요? 박쥐 시력이 굉장히 낮다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그걸 안다고 하더라도 박쥐가 정보를 조합해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생각을 알 수 없다.. 흥미롭군요 그건 그렇고 표지는 참 감각적이에요.

cyrus 2015-07-17 17:22   좋아요 0 | URL
If 문장을 성문 아니면 맨투맨에서 본 것 같아요. 맞습니다. 박쥐가 시력이 낮아서 초음파로 사물을 인식하죠. 올해 나온 책 중에 표지가 마음에 듭니다. 알라딘 책 베개 표지로도 사용되었어요. ^^

페크pek0501 2015-07-1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을 많이 봤다 싶었는데, 제가 글에 인용한 적이 있어서네요.

˝새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게 되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 늘 잡혀 먹을지 모르는 환경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동물들에 비하면 이것만으로도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요. 요즘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 철이 조금, 아주 조금 들려고 하나 봐요. ㅋ

cyrus 2015-07-17 17:2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오랜만에 동물 관련 책을 읽다가 감명을 받았습니다. ^^

수이 2015-07-1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그래도 새가 여전히 무서워;;; 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만;; 이 두려움은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

cyrus 2015-07-17 17:27   좋아요 0 | URL
어떤 새는 무서워하세요? 비둘기? 요즘 비둘기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더군요. 새 떼가 하늘 위에 날거나 갑자기 다가오면 무섭긴 해요. ㅎㅎㅎ

도가도비상도 2015-07-17 0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심리철학에 나오는 감각질에 대한 사유실험 내용이네요 cyrus님 정말 엄청난 독서가시네요~

cyrus 2015-07-17 17:28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아직 안 읽은 책도 많고, 항상 공부하면서 새로운 걸 배운다는 마음으로 책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

프레이야 2015-07-17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강렬한 표지, 사은품으로 받은 북파우치랑 같아서 깜짝!! 리뷰 늘 참 좋아요^^

cyrus 2015-07-17 17:28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 나온 책 중에서 표지가 제일 좋습니다. ^^
 
독한 것들 - 슬프도록 아름다운 독의 진화
정준호.박성웅 외 지음, EBS 미디어 기획 / Mid(엠아이디)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경쟁이 생겼고, 누군가는 패배의 불명예를 안아야만 했다. 하지만 패배자에게도 부활의 가능성만큼은 열려 있는 게 세상살이다. 험한 경쟁일수록 독해야 살아남는다. ‘어떻게든 끝을 보겠다’는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흔히 담배를 끊는 사람을 보고 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강한 의지가 있어야 금연은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독하다’라는 표현은 다의어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 냄새를 표현할 때 사용하며(“술이 독하다”) 마음이 성격이 모진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그의 성미가 독하다”).

 

똑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牛飮之爲乳 蛇飮之爲毒)’는 말이 있다. 똑같은 재료라 할지라도 가공과정이나 사용 목적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부정적인 면을 표현할 때 짐승에 비유하곤 한다. 표독스러운 사람은 “독사와 같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RHK, 2007년)를 쓴 심리학자 폴 바비악은 사이코패스를 ‘양복 입은 독사(Snakes In Suits)’라고 비유했다. 지금까지 언급된 사례만 봐도 우리가 독성생물을 악독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라는 말을 과학적 관점으로 따져보면, 이 말은 독사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에서 비롯된 억견(Doxa)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강력하고 무서운 살무사의 독을 추출해 관절염이나 당뇨병 치료제로 만들려는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벌침의 독이 통증이나 염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관절염 등의 치료에 쓰인 지는 오래되었다. 동물의 독이건 식물의 독이건 조물주가 만든 독 중에는 독으로만 끝나지 않고 약으로 쓰일 때가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독은 이렇게 독과 약의 양면성을 가진다.

 

TV에 방영한 EBS <다큐프라임> ‘진화의 신비-독’ 편을 책으로 옮긴 《독한 것들》(Mid출판사, 2015년)은 독성생물을 향한 인간의 억견을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책이다. 인류가 자연의 독을 사용한 역사는 무척 길다.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독이 있는 동ㆍ식물을 알았으며 이 독으로 사람이나 짐승을 죽이기도, 병든 이를 고치기도 했다. 독 하면 개구리독도 뱀독에 못지않다. 남미에는 독화살개구리가 있는데,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화살촉을 이 개구리에 문지르면 살상용 독화살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독화살개구리와 같은 독성생물은 보통 다른 종들과는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동물들은 배경 속으로 녹아들어 포식자나 사냥감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 의태와 보호색을 가지도록 진화했지만, 이들은 자신이 가진 독성을 강렬한 경고색으로 표현한다. 경고색은 두세 가지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색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자신은 강한 독을 가지고 있으며, 건드리면 위험하다고 색으로 말하고 있다. 독화살 개구리의 경우 경고색의 패턴이 매우 다양하며 무척 화려하다.

 

독성생물의 생태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라는 그들의 강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을 공격하는 곤충들에게 화상을 입힐 정도의 독성물질을 분비하는 벌레가 있다. 이 벌레는 폭탄먼지벌레라 불린다. 폭탄먼지벌레는 위험이 닥치면 1,2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몸 안의 체액을 급속히 가열, 뿜어낸다. 이 체액의 정체는 히드로퀴논이라는 화학물질과 과산화수소가 섞인 것이다. 생쥐 같은 것이 폭탄먼지벌레에 다가오다 속수무책으로 화상을 입게 된다. 찰스 다윈은 이 폭탄먼지벌레를 관찰하려고 손으로 잡아 입안에 넣었다가 입천장을 온통 데기도 했다. 이처럼 일부 생물은 진화과정에서 독성물질을 발달시켜왔다.

 

하지만 이에 맞서 독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종들도 살아남는다. 더욱 강한 독을 가진 개체들이 유전자를 후대에 전승하고 있을 때, 그들과의 경쟁에 살아남으려고 더 강한 저항력을 이어받은 개체들이 태어난다. 영겁의 레이스가 계속되는 진화의 과정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의 달리기와 같다. 붉은 여왕은 쉼 없이 뛰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함께 움직이고 있어 늘 제자리이다. 같은 자리를 지키려고 해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다른 곳에 가려면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 모든 생명체가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환경도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진보가 둔화한다는 진화생물학 이론이 ‘붉은 여왕 효과’이다. 이 ‘붉은 여왕 효과’가 독성생물의 진화 과정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독은 개체 간에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독한’ 게임에 살아남기 위한 생물의 방어 전략이다. 러닝머신(자연) 위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듯 독성생물은 진화에 맞서 독성을 키워야 했다.

 

우리에게는 그저 해로운 독성생물들의 삶을 알고 보면 종족을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일 때가 많다. 자연을 무대로 펼쳐지는 ‘독한’ 생존게임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사실 독성생물들은 자기방어나 생존을 위한 먹이를 잡을 때만 독을 쓰지 함부로 아무 때나 쓰진 않는다. 그러므로 독성생물을 지구상에 사라져야 할 해로운 존재로만 보는 시선을 거둘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독은 사람이 만든 독이다. 주방용 세제와 플라스틱 식기류, 식품 포장용 랩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포함된 환경호르몬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환경호르몬이 생물체의 몸 안에 들어오면 아주 적은 양으로도 다음 세대의 발육과 성장 및 생식·면역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도 인간은 점점 더 독해질 것이다. “인간만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레이첼 카슨의 경고가 지금도 귓전에 울린다.

 

 

 

 

※ 오탈자: 코모도왕도마뱀이 이렇게 몸집이 거대해진 이유는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에 살며 접차 몸집을 불리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7쪽) → '점차'로 바로잡아야 함.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5-19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침을 쏘면 내장이 빠져 나가 죽는다는 벌처럼, 독을 공격성에 방점을 두기보다 생존과 보호 수단으로 더 이해해야겠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 의 단순화를 잘 지적해 주셨네요.

말씀처럼 인간은 독을 광범위하고 무차별하게 퍼트리고 있지요. 오늘도 후쿠시마 원전으로 인한 아동 갑상선 환자 발생 소식을 들었는데, 체르노빌에서도 갑상선암으로 아이들이 제일 피해를 많이 봤던 걸 생각하면 착찹합니다.
우리나라는 고리원전 재가동 하니 마니, 아무 대책도 없이 저러고 있고....

cyrus 2015-05-21 16: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환경 재난사고도 인류가 만들어 낸 독 때문에 발생한 겁니다. <독한 것들>에서도 아갈마님이 지적하신 내용과 유사한 사례가 나옵니다. 미나마타병이 발생했을 때도 오염된 물을 마시고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아이들이 많았었죠.

지금행복하자 2015-05-20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또 쉬운일이 아니더군요. 독하게 구는 사람들도 보호수단으로 그 독을 사용하는 걸까요? 그렇게 이해해야할까요? 어째든 그 독으로 다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이렇게 멋진 리뷰를 쓰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 생각들어요. 논리적인 글쓰기가 가장 어려워요~ ^^

cyrus 2015-05-21 16:51   좋아요 0 | URL
독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독기를 가지게 되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다치게 됩니다. 저는 <독한 것들>을 읽으면서 ‘독하다’라는 표현을 되도록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가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강인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에게 좋은 의미에서 ‘독하다’라고 표현하고 싶어져요.

제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 쓴 글을 다음 날에 읽어보면, 부족한 게 보이게 되더라고요. 특히 어법이 맞지 않은 문장을 많이 발견하곤 합니다.

달걀부인 2015-05-20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탈자 지적해주면 책한권 서비스로 주면 좋겠어요. 맨날 꽁책만 바라는... 곧 대머리아줌마 되겠어요.

cyrus 2015-05-21 16:5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오탈자 지적해주면 책 한 권을 받는 일이 흔했다던데 저는 아직까지 뜻밖의 혜택을 받지 못했어요. ㅎㅎㅎ

2015-05-20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1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5-05-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5-21 16:55   좋아요 0 | URL
답변이 늦었습니다. 고맙습니다. pek님.

2015-05-20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1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5-2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독함 .. 갖고 싶어요.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5 Vol.1 스켑틱 SKEPTIC 1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회의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는 힘에서 찾았다면 버트런드 러셀은 ‘회의’에서 출발한다. 러셀이 생각하는 회의란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온 모든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만들어 나가는 자세를 말한다. 회의주의(skepticism)는 의심이나 의문을 제기하는 철학적 용어로도 쓰이지만, 좀 더 엄밀하게는 과학적 회의주의는 엄격한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스켑틱(skeptic)은 바로 후자를 말한다. 스켑틱의 범위를 더 좁히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대체의학, UFO, 초자연적 현상, 오컬트, 초심리학, 뉴에이지 사상 그리고 사이비과학 등을 부정한다.

 

과학의 세기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상한 것’을 믿는다. 점(占), 기적, 예언, 귀신. 누구나 이것이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전생, UFO, 초능력 같은 것은 어떤가. 쉽게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 미신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귀신 소동이나 상공에 비행하는 UFO를 목격한 사건이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지나치면 자신과 남의 생활을 변형시켜 고통을 안겨주니까 문제가 된다. 오늘날의 과학은 신비주의 뒤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왜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적 추론과 지식은 무시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각종 초현상과 신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사실인 양 믿고 있는 것인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합리적인 검증에 여과되지 않은 그릇된 대중의 믿음은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적 근거 없는 특정집단차별 그리고 사이비 종교단체들, 의학적 근거 없는 각종 사이비 의료시술을 받는 행위 따위이다. 선진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러한 비과학적 행위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진실을 왜곡하게 하는 사비이과학과 미신의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 드디어 국내에도 ‘스켑틱’이 상륙했다. 스켑틱은 미국에서 출발해 영미권에서 수만 명의 독자를 확보한 과학적 회의주의를 표방하는 잡지다. 심리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마이클 셔머가 사이비과학과 미신을 검증하기 위해 1997년에 ‘회의주의 협회(The skeptics society)’를 설립했고, 이 단체에서 발행하는 스켑틱의 발행인 겸 편집장을 맡고 있다. 잡지 필진으로는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제레드 다이아몬드 등 이름 있는 석학들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 첫 창간호는 커버스토리로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논한다. 또 특집 지면으로 무한히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다중우주론 논쟁을 소개했다.

 

하지만 창간호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면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이 바로 마이클 셔머가 쓴 '회의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이다. 글의 부제는 '회의주의 선언'. 잘못 알려진 회의주의의 정의를 점검하고, 과학적 회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고대의 회의주의 철학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절대적인 지식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않으며, 그러한 지식을 추구하지도 않는 것이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기존의 과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양립할 수 없는 이론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를 신중히 비판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회의주의와는 달리, 과학적 회의주의는 하나의 철학사조라기 보다는 어떤 현상이나 정보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방법은 과학 지식을 형성하거나, 그 진위나 타당성을 검증하는 원리다. 또한, 어떤 목적을 달성하거나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절차와 관련되어 있다. 전통적 과학철학에서는 과학을 합리적인 학문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과학적 방법으로 귀납법, 연역법, 가설-연역법 등을 사용했다. 이런 과학적 방법은 객관적인 자료나 절대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논리적 추리인데, 전통적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이 이런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발달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을 주관적이고 이념적인 학문으로 간주한다. 과학적 이론은 당시 사회적 환경이나 가치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만이 살아남고, 과학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발달한다는 논리를 편다. 또한, 과학은 당시에 제기된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법칙과 이론 등이 계속 나타남으로써 발달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과학은 부단히 변화하고 발달한다. 결국, 과학적 회의주의는 진리의 정확성을 검증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 사용할 수 있는 메스다. 사이비 과학으로 병든 세상을 치료하기 위해 꺼내 들 수 있고, 과학의 오류 가능성을 검증할 때도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제안한 이론과 법칙이 기존의 법칙에 어긋나는지 전개 과정에 오류는 없는지 엄격한 잣대로 비판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교정을 거쳐서 살아남은 지식들만이 학계의 주류 의견으로 인정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과학으로 형성된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 전체가 올바른 진리의 방향을 향해 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믿음직한, 체계적인, 참된' 등을 의미하도록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침대가 아니라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과학이 우리 사회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지식으로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지위는 오래가지 못한다. 토머스 쿤이 생각했던 것처럼 과학은 패러다임이라는 일종의 '틀' 안에서 정밀성이 향상되고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기디 때문이다. 기존 패러다임이 오류로 판명되었으면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 회의주의자라고 해서 상대방이 옹호하는 입장이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에게 향할 비판과 의문 제기에 편견 없이 수렴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지식마저도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오류를 인정하는 철저한 정직성이 요구된다. 과학자도 틀릴 수 있다.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을 의심과 불확실성, 그리고 무지를 품고 살 수 있다고 고백했다. 특정 신념을 거부하는 회의주의자는 교조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폐해가 지속될수록 회의주의를 향한 오해의 인식이 형성된다. 건강한 회의주의자가 되려면 칼 세이건의 충고를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여러분은 여러분만큼 사물을 명료하게 보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모두 비웃는 사고 습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마이클 셔머 「회의주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194쪽)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진실과 거짓이 제멋대로 섞인 거대한 카오스다. 카오스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이성이다. 끊임없이 회의해야 한다. 스켑틱의 어원은 '생각이 깊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건강한 회의주의자는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온 모든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만들어 나간다. 관련 사실을 확인하면서 모든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이 반대인 사람들과도 대화를 통해 편향된 주장을 조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각해야 한다. 마이클 셔머는 이성을 사용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한다. 이성이 사라진 인간은 특정 체제에 순응하는 사회의 부속품밖에 되지 않는다. 적극적인 회의주의는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삶의 방식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3-30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 엄청 궁금했는데, 뭔가 서문 소개만 듣고 끝난 기분입니다; 창간호라서 그런가 기압주는 기분.

cyrus 2015-03-31 22:32   좋아요 1 | URL
원래 창간호 메인 글이 타임머신과 다중우주론을 논하는 내용인데 서평은 회의주의에 관한 내용을 중점으로 썼습니다. 어린이 독자를 위한 글도 따로 있는데 주제가 심령사진에 관한 것인데 읽어볼 만합니다. 벌써 2호도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