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클레어 지퍼트.조디 리 그림,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2월
절판


흐음, 그렇다면 나중에 꼭 알아봐야겠군요. 나중에 알아봐야 할 온갖 일들을 생각하는 것도 멋진 일 아녜요? 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쁘게 느껴지거든요.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잖아요. 만일 우리가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안다면 재미가 반도 안 될거예요.-28쪽

"사과꽃을 가지고 가도 될까요?"
"안 돼. 꽃을 가져가서 방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 넌 애당초 나무에서 꽃을 꺾지 말았어야 했어."
"저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괜히 꺾어서 아름다운 삶을 단축시키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사과꽃이었다면 꺾지 않길 바랐을 거예요. 하지만 유혹을 억누를 수가 없었어요. 아주머니는 억누를 수 없는 유혹을 받을 때 어떻게 하세요?"
-87쪽

우린 서로 손을 잡아야 해. 그리고 흐르는 물 위에 있어야 해. 이 길이 흐르는 물이라고 상상하자. 내가 먼저 맹세할게. 난 해와 달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나의 가슴 속 친구 다이애나 배리에게 진실할 것을 맹세한다. 이제 내 이름을 넣고 네가 말해 봐."
다이애나는 웃으며 그 '맹세'를 했고, 맹세를 하고 나서도 웃었다.
"넌 이상한 아이야, 앤. 네가 이상하다는 얘기는 전에 들었어. 하지만 틀림없이 널 무척 좋아하게 될 거야."
-123쪽

"아, 마릴라 아주머니, 앞일을 생각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루어질 수 없을지는 몰라도, 미리 생각해 보는 건 자유거든요.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 보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131쪽

길버트는 순전히 선의의 경쟁이었지만, 고집스레 화를 풀지 않는 앤은 그렇지 않았다. 앤은 사랑만큼 미움도 격렬했다.-187쪽

약속하신 대로 배리 할머니는 우릴 손님방에 재워 주셨어요. 무척 아름다운 방이었어요. 하지만 손님방에서 자는 게 제가 늘 상상하던 것 같지는 않았어요. 큰다는 건 그래서 나빠요. 전 차츰 그걸 깨닫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그렇게 하고 싶던 일도 막상 하게 되면 생각했던 것만큼 신나지 않거든요.-315쪽

그 꼬마 앤은 볼 때마다 더 좋아지는 걸. 난 다른 여자 아이들한테는 싫증을 느끼곤 했지. 모두들 짜증스러울 정도로 언제나 똑같으니까. 그런데 앤은 무지개같이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니고 있고, 보여 주는 색깔마다 다 예쁘단 말야. 아직도 어렸을 때처럼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아인 남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이 좋아. 그럼 사랑하기가 훨씬 더 쉽거든."-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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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품절


그래도 의자, 햇살, 꽃들. 이런 것들을 쉽사리 무시해 선 안 된다. 나는 목숨이 붙어 있고, 살아가고 있고, 숨 쉬고 있다. 꼭 모아쥐고 있던 두 손을 펴고 햇살을 받아본다. 내가 있는 이곳은 감옥이 아니라 특혜의 장소다. 흑백 논리를 사랑하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말대로.-17쪽

나라면 죽기 전에 좀 시간이 있는 편을 택하겠어. 그래야 삶을 정리하지.-40쪽

제일 끔찍한 것은 머리에 씌워놓은 주머니들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얼굴보다 주머니가 더 끔찍하다. 그걸 쓰면 사람들이 마치 얼굴을 미처 그려 넣지 못한 인형처럼 보인다. 허수아비들 같다. 하긴 어떻게 보면 허수아비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을 겁주려는 게 목적이니까. 또 어떻게 보면 그들의 머리는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 밀가루나 반죽 같은 것으로 채워진 주머니처럼 보이기도 한다. 명백히 드러나는 머리들의 무게, 텅 빈 공허감, 중력이 머리들을 밑으로 끌어당기고 있으며 고개를 쳐들 목숨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는 느낌은 끔찍스러웠다. 머리들은 무다.-60-61쪽

내 곁의 여자에게서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그녀는 울고 있는 걸까? 여기서 운다고 해서 어떤 식으로 내게 잘 보일 수 있는 거지? 그런 걸 알아줄 만한 여유가 내게는 없다. 내 두 손이 바구니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불끈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무엇이든 절대로 그리 순순히 내주지 않을 테다.-63쪽

경계선을 따라 피어 있는 튤립꽃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갛고, 꽃봉오리가 벌어져 이제는 와인 잔이 아니라 넓은 술잔 모양이 되어 있다. 저렇게 온몸을 내던지는 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꽃들은 완전히 뒤집혀지고, 천천히 흩어져 꽃잎들이 비늘처럼 나부낄 텐데.-78쪽

즉시 변화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천천히 데워지는 목욕물처럼 자기도 모르게 끓는 물에 익어 죽어버리는 거다.-99쪽

비둘기들은 세 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번째 그룹은 한 번 쫄 때마다 옥수수가 한 알씩 나왔고, 두번째 그룹은 두 번에 한 알씩 옥수수가 나왔으며 세번째 그룹은 정해진 원칙이 없었다. 담당자가 옥수수 배급을 끊으면 첫번째 그룹은 상당히 일찍 포기했고, 두번째 그룹은 그보다 약간 늦게 포기했다. 하지만 세번째 그룹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포기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을 때까지 버튼을 쪼는 쪽을 택했다. 어떻게 해야 옥수수가 나오는지 처음부터 몰랐으니까.
-120쪽

일단은 거기서 멈추자. 나는 이곳에서 나갈 작정이다. 영영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이전에, 흉흉한 시대를 만나면 탈출할 궁리를 했고 그 사람들이 언제나 옳았다. 어떻게든 그들은 탈출했고 폭압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다. 비록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 동안 계속되긴 했겠지만.-229쪽

제발 명심해 달라. 당신은 여자로서, 남자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유혹이나 기분에 절대 시달리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마라. 정말이지 그런 충동은 참으로 거역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용서 역시 일종의 권력이다. 용서를 구하는 일 역시 권력이며, 용서를 유보하거나 베푸는 일 또한 일종의 권력이다. 아마 그만큼 커다란 권력은 없을 것이다.
-230쪽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다.-233쪽

그럼, 밤이 내렸다고 해야겠지. 돌덩이처럼 나를 짓누르는 밤의 무게가 느껴진다.-325쪽

사령관이 한 말은 사실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는 넷이 아니다. 각각의 하나들이 독특하기 때문에 무조건 한데 묶을 수 없다. 그들은 일대일로 교환할 수 없다. 그들은 서로를 대체할 수 없다.
-326쪽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소, 그가 말한다.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 더 좋은 세상이라고요? 나는 조그맣게 되뇐다. 어떻게 이걸 더 좋은 세상이라 생각할 수 있는 거지?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그는 말한다.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게 마련이지.

-360쪽

나는 작은 식탁에 앉아 포크로 크림콘을 먹고 있다. 포크와 스푼은 나오지만, 나이프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고기가 나올때면 미리 썰어져 나온다. 마치 내가 손도 못 쓰고 이빨도 없는 사람처럼. 사실 나는 둘 다 가지고 있다. 그게 내게 나이프를 주지 않는 이유다.-390쪽

나는 모이라가 무서워진다.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 무심함, 의지 결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말로 모이라에게 그런 짓을 해버렸단 말인가? 그녀 존재의 핵심에 있던 무언가를 앗아가 버렸단 말인가? 하지만 나 자신도 그렇게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그녀가 버텨나가길 기대한단 말인가? 내 마음대로 꾸며낸 그녀의 용기로 끝까지 살아나가기를, 온 몸으로 실천하기를, 어떻게 그녀에게 바란단 말인가?-4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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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le 2005-03-1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페이지 인덱스인가요? 서재에서 처음봐요. 굉장하군요....님의 서재는 자료가 엄청나게 많아서 천천히 오래 머물면서 읽어봐야겠네요. 반갑습니다.

보슬비 2005-03-1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표시해두고 올린거랍니다.
알라딘에서 그렇게 올리도록 하는 기능이 있어요. 물론 글은 직접 타이프해야하지만^^ - 서재가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0
김영진 지음 / 책세상 / 2001년 2월
구판절판


"포르노의 특징은 지저분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겹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남녀가 만나 눈길을 나누고 화면이 바뀌면 두 사람은 이미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 그리고는 은밀한 부위를 클로즈업한 화면이 바로 이어지고 지루한 행위 장면이 나열된다는 것이다. "성은 아무리 시각적인 효과가 뛰어나다 해도 일상적인 것과 대조를 이룰 때만 흥미진진하다. 따라서 음란한 장면들이 제값을 하게 하려면 따분한 일상이 배경이 돼야 한다."-30쪽

포르노는 섹스를 다루는게 아니라 여성을 향한 폭력을 다루기 때문에 위험하다.-30쪽

포르노가 선전하는 ‘풍부함과 성적 충만함의 세계’는 남성의 우월성과 여성의 성적 소외를 찬미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반동적이다. 그러나 성적 억압과 위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급진적인 자극이다.-40쪽

이런 저런 이유로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통찰을 담은 영화가 예술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55쪽

영화 속에서 실체는 빛을 발하고 외부의 소리는 침묵 가운데 온다. 사람은 누구나 만물에 나타나는 생생한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 그것이 삶의 근원이며 과거와 미래를 창조한다. 우리는 항상 현재 속에 머물며 세상과 함께 변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62쪽

나는 꽃을 싫어해요. 이틀은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곧 시들어버리니까요.-70쪽

"할 수만 있다면 떠나고 싶어요." 남자가 묻는다. "어디로?"
"내 육체를 떠나 멀리." "왜요?" "육체의 단점 중 하나는 절대 만족할 줄 모른단 거예요. 사소한 재미를 포기하면 평화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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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절판


기막힌 속임수지. 가장 위험한 적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곳에 있는 법이니까.-30쪽

갈릴레이는 일루미나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실한 카톨릭 신자영ㅆ지요. 그는 과학이 신의 존재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해서, 과학에 대한 교회의 자세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더 강경하게 나왔지요.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운행하는 행성들을 보노라면, 행성들의 음악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적이 아니라 동지라고 여긴 거죠. 두개의 다른 용어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대칭과 조화에 관한 얘기를… 천국과 지옥, 낮과 밤, 뜨거움과 차가움, 신과 악마. 과학과 종교는 둘다 신의 조화를 누리는 것이다. 비과 어둠의 끝없는 경쟁처럼 말입니다.

-58쪽

"나의 신은 너의 신보다 우수하다."
사람들의 믿음이 깊을수록 그에 따른 희생자도 많아지는, 그런 상관관계가 항상 존재하는 것 처럼 보였다.
-66쪽

신세계 질서. 이것은 과학적인 계몽을 밑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일루미나티는 이를 ‘루시퍼의 교리’라고라고 불렀습니다. 교회는 루시퍼를 악마와 다름없다고 주장했지만, 일루미나티는 루시퍼가 라틴어 의미 그대로 ‘빛을 가져오는 자’라고 보았죠. 다른 말로는 ‘빛을 밝히는 자’, 즉 일루미네이터였던 거죠.-67쪽

진실한 과학은 모든 문 뒤에서 기다리는 신을 찾아낸다. – 교황 피우스 12세-74쪽

가끔은 진리를 찾기 위해 누군가는 산을 옮겨야 하는 법입니다.-92쪽

질량이 전혀 없어요. 아마 자연에서 가장 작은 기본 단위일 겁니다. 물질은 에너지를 잡아두는 것일 뿐이거든요.-102쪽

과학과 종교는 반대편이 아니다.
과학은 신을 이해하기에 단지 너무 어릴 뿐이다.
-112쪽

두려움은 전재의 어떤 수단보다 상대를 빨리 무능하게 만든다.-116쪽

과학은 제게 신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죠. 그러나 지성은 내가 겨로 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고요. 그리고 제 가슴은 신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요.-172쪽

테러리즘의 목적은 공포와 두려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기존에 성립된 믿음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대중 속에 불안을 불러일으켜서… 적을 내부부터 약하게 만든다. 이것을 받아적어라. 테러리즘은 분노의 표현이 아니다. 테러리즘은 정치적 무기다. 끄떡없을 것 같은 정부의 외형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믿음을 빼앗는 것이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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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10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절판


무덤의 둥근 모양은 자궁을 상징하는 것이고, 죽음은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라는데… 지리산의 여신령은 자궁을 많이 지니고 의로운 사람들에게 죽음자리를 마련해준 것인가… 글쎄, 빨치산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이다. 어쨌든 지리산은 역사 위에서 투쟁하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산이었고, 죽음을 맡긴 산이었다. 결국 지리산은 역사의 무덤이었다. -82쪽

우리는 역사를 믿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 죽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내일로 확정된 역사의 승리를 위해서다. 우리는 비록 죽더라도 우리의 투쟁은 역사 위에서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런 확고한 역사의 신뢰 없이 진정한 투쟁은 나올 수 없고, 현실적 성공만을 바라면서 투쟁에 나섰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파렴치한 기회주의다.-99쪽

그는 머리를 박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은 흐른다, 끊임없이 흐른다, 흘러서 끝끝내 바다에 이른다. 인민해방의 역사도 그와 같다. 이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리하여 마침내 인민해방의 날을 창조한다. 물을 양껏 마신 그는 고개를 들었다.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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