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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2disc)
장훈 감독, 고수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휴전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계속 주인이 바뀌던 동부전선의 애록고지를 사수하던
악어중대의 중대장이 전사했는데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되고 인민군의 편지가
아군을 통해 전달되는 정황이 포착되자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가 조사차 긴급파견된다.
애록고지에 도착한 은표는 군기 빠진 악어중대원들의 모습 사이로
실종되었던 친구 수혁(고수)이 중위로 활약하고 있는 걸 발견하는데...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을 많이 봤는데 이 영화는
그동안 봤던 영화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전에 봤던 '포화속으로'처럼 북한에 맞서 장렬하게 전사한 학도병이나 군인들의 얘기를 다룬 영화나
'웰컴 투 동막골'처럼 순수한 산골마을 사람들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영화는 좀 더 사실적으로 전쟁의 허무함을 그려낸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쟁은 어느 순간 교착상태에 빠지고 휴전협상이 진행되지만
계속 난항을 거듭한다. 그 가운데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는 계속되지만
누구 하나 진정 원해서 싸우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거창한 이념이니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명분은 유효기간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장기전에 접어든 상태에서 곧 전쟁이 끝날 지도 모르는데 목숨을 걸고 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애록고지를 사이에 둔 한국군과 북한군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들간에 모종의 동질감이 자리잡게 되어 그들만의 소통이 시작된다.
이 부분은 왠지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상시켰는데(알고 보니 'JSA'의 원작자가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았다) 서로를 모른 채 마음을 나누는 사이지만 금방 총부리를 겨눠야했고
여기서 전쟁의 잔인함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사진을 통해 호감을 느끼고
'전선야곡'의 가사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눈 사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를 죽이도록 내몰리는 비정한 현실을 잘 보여주었다.
사실 영화 곳곳에서 치열한 전쟁 중에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나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등장해
사실감을 떨어뜨리는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의 반전 이미지는 강렬했다.
적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닌 내가, 아니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안타깝게
그려지는데 마지막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었음에도 발효시간이 12시간 후라는 이유로
최후의 결전으로 내몰리는 군인들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전쟁의 목적을 잊어버린, 아니 첨부터 제대로 된 목적이 없었던 전쟁에
목숨을 내놓으라는 강요를 받는다면 누구라도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칠 것 같다.
보통은 전쟁에서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쉬운데 막상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끔찍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영화 내내 울려퍼지던 '전선야곡'의 구슬픈 선율이 무의미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던 사람들의 비극을 더욱 가슴저리게 만들었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