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우는 인문학 - 문득 내 삶에서 나를 찾고 싶어질 때 백 권의 책이 담긴 한 권의 책 인문편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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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책을 보는 편이지만 여전히 볼 책도 많고 보고 싶은 책도 많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볼 수도, 볼 필요도 없기에 결국 내 입맛에 맛는 책들 위주로 읽게 되는데 직접 읽지 못하는 책들은

종종 책을 소개하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만남을 가지곤 한다. 이 책은 직장, 마음, 미술, 사랑,

여행, 사회, 음식, 교육, 역사, 인물이라는 10개의 주제에 걸쳐 10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인문학이란

커다란 관점에서 저자의 개인적인 책에 대한 감상을 담고 있다. 이런 책을 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내가 본 책이 몇 권이나 소개되어 있는가 하는 것인데,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필두로 해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곽금주의 '도대체 사랑',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총 8권이었다. 음식이나 교육 등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분야의

책들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선방한 결과로 보이는데 과연 내가 읽었던 책들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했는지, 안 읽은 책들은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기에 이 책에 수록된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 이 책은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보단 저자 개인의 감상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어쩌면

책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단 책에 대한 에세이집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상처와 위안,

희망에 관한 저자 자신을 위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고 나완 좀 생각이 다르다고 느낀

부분들도 있었다. 100권을 똑같은 비중으로 소개한 건 아니고 좀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책들과

(흰색 종이) 서평 형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한 책들(회색 종이)로 구분되었는데 흰색 종이의 책들에는

마지막 부분에 독서법과 팁을 적어 놓아 책을 직접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솔직히 저자인 최진기 강사를 이 책을 보기 전에 잘 몰랐는데 유명한 인문학 강사이면서도

나름 파란만장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인 것 같았다. 책을 읽는 것이 결국 책과 독자

간의 대화라고 본다면 독자의 삶과 인생관, 경험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통해 저자 자신의 감상을 잘 드러낸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인문학 서적들을 나름 소화하여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 게 아닌가 싶다. 몇 권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공통 분모였던 8권이 시간이 지나면 최소 두 자리 숫자로 늘어나 있을 것 같다.

209 가만히 생각하면 미숙한 운전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 못지않게 미숙한 사랑으로 발생되는 사고도 위험한 것 같습니다. 운전과 사랑의 공통점은 행위 당사자인 자신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준다는 것이죠.

258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내가 왜 어디를 가게 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는 여행이 되어야 진짜 좋은 여행이 됩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여행 자체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가고 난 이후에 여행 전과 내가 달라지고 싶어서 아닌가요?
저는 여행을 ‘마음의 성형 수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형을 하는 이유가 성형 자체 때문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형을 하는 이유는 성형 이후의 삶이 성형 이전의 삶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행 이후의 삶이 여행 이전의 삶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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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로스타임 - Novel Engine POP
니시나 유키 지음, 제로키치 그림, 조민경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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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후 1시 35분. 나만 빼고 온 세상이 정지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매일 오후 1시 35분이 되면

한 시간 정도 발생하자 남자 고등학교를 다니며 모태솔로의 삶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어 보이던

아이바 코지는 시간 정지 현상이 발생하는 동안 여자와의 스킨십을 꿈꾸며 이웃에 있는 남녀공학인

키비노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우연히 자신과 똑같이 움직일 수 있는 미소녀 여학생

시노미야를 만나게 되는데...

 

나의 심금을 울렸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후 최근에 라이트노벨 계열인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너를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를 읽으면서 하이틴 로맨스물의

풋풋한 매력을 다시 맛보았는데 이번 작품도 그 연장선상에서 과연 어떤 얘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제목에 축구에서 나오는 로스타임이 들어가 있어 시간을 가지고 장난하는 게 아닌가 싶었더니 역시나

시간이 정지되는 황당한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타임리프는 SF소설의

단골 소재지만 이 책에선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처럼 특정 사람들을 제외한 세상 전부의

시간이 정지되는 설정을 하고 있다. 혈기왕성한 남고생답게 시간 정지된 상황에 응큼한(?) 수작을

시도하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미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아이바의 꿈은 좌절되고

시노미야와 두 사람만의 특별하고 비밀스런 시간을 공유하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이 특별한 시간에 아이바는 신이 빠뜨린 시간이란 의미로 '로스타임'이라고 부르자고

시노미야에게 간신히 허락을 받는데 로스타임 동안 두 사람이 한 일들은 로스타임이 끝나면 자동으로

로스타임이 시작되기 직전 순간으로 리셋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오직 두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로스타임 동안의 일이 남아 있는데 두 사람은 로스타임 동안 동물원에 가서 북극곰 껴안아 보기 등

실제 시간에선 할 수 없는 기발한 일들을 함께 하면서 자신들만의 추억을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요리가 취미인 아이바가 시노미야에게 자신이 정성껏 만든 음식들을 주자 그녀는 엄청난 식탐으로

화답한다. 이렇게 둘만의 알콩달콩한 로스타임도 아이바가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위기를 맞게

되는데...

 

시노미야에게 뭔지 모를 비밀이 있을 거라곤 충분이 예상했고 드러난 비밀도 예상 범위 내라 할 수

있었다. 판타지적 요소들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현실감이 좀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제3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딱 신파조로 흘러가고 말았는데 그렇게 마무리 될 줄 알았던 얘기는

마지막에 다시 반전을 이뤄낸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윌슨병이 정말 무시무시한 병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암튼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의 두 사람 사이의 풋풋한 연애모드는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물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설레임을 안겨주었다.

나에게도 만약 이 책에서의 '로스타임'이 주어져서 오직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면, 아니 이런

로스타임을 함께 공유할 특별한 누군가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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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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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스타 작가라 할 수 있는 과학자 정재승과 미학자 진중권이 함께 쓴 '크로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딱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내용이 담겨 있을 거라 짐작이 되었다.

서가명강이라고 해서 뭔지 했더니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서울대생이 아니어도 교양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 책은 그 두 번째

책으로 아마 여러 분야의 서울대 교수 강의들을 담은 책이 계속 시리즈로 나올 것 같다. 이 책에선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인 홍성욱 교수가 과학과 대중문화의 '크로스'를 볼 수 있는 여러 흥미로운

사례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대중문화와 과학의 크로스', '세상과 과학의 크로스', '인간과 과학의 크로스', '인문학과 과학의

크로스'까지 총 4번의 크로스를 시도하는데, 첫 번째 얘기는 미쳤거나 괴짜인 과학자의 이미지에 관한

것으로 마침 직전에 봤던 영화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를 봐서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다.

흔히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괴물을 만든 

사람이 프랑켄슈타인 박사다. 사실 작가가 여성인 줄은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그녀의 삶과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영화로 봐서 그런지 작품의 의미를 훨씬 공감할 수 있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명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도 과학자는 희화하되곤 하는데,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과학자들에게 이런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 과학기술이 방기하는 책임을

성찰하는 일이 중요함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려는 것이라고 저자는 얘기한다. 한편 여성 과학자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인 노벨상 2회 수상에 빛나는 퀴리부인과 관련해선 마냥 그녀의 업적만

찬양하는 글들만 익숙하지만 전에 읽었던 '세계사를 움직인 위대한 여인들'에서 이미 알게 되었던

퀴리부인의 불륜 스캔들이 이 책에서도 등장한다. 한 마디로 퀴리부인도 남자들이 판치던 과학계에서

고군분투하던 여성 과학자로 다른 사람과 똑같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2부에선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예측하는 작품들을 다루면서 얘기를 전개하는데 

이 주제에 빠질 수 없는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을 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기대하는 장밋빛 세상을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염려가 강하게 담겨

있지만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면서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가치가 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긍정적 역할도 한다. 3부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핵심기술로 떠오르게 있는 인공지능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인간보다 더 인간미를 가진 사이보그를 등장시킨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비롯한 여러 대중문화 속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과연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들인지

아니면 인간을 대체시키고 멸종시킬 것인지에 관한 익숙한 논의를 다루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엔

근거가 없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마지막 4부에선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던 개화기와

일제시대의 소설들에 나타난 신문명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함께 과학과 예술이 창의성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공통 분모를 가졌음을 갈릴레오 등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흔히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동시에 떨어진다는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에선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오직 저항이 없는 진공상태에서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데

결국 갈릴레오가 자유낙하의 법칙을 자연 속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법칙이 만족되는 상황을

창조해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기술은 멀게만 느껴지는데 이 책은 대중문화 속의 여러 콘텐츠들을 활용해 쉽고 재밌게 과학

기술의 여러 측면을 잘 보여주었다. 실제 강의내용을 담은 오디오클립이 인터넷상에 공개되어 있어

언제 시간이 나면 책에서 본 내용을 강의로 복습해야겠다.

46 전쟁억제력이란 적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는 예술이다. 핵전쟁 전략이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것 같지만 결국 그 본질은 치킨게임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82 과학자는 이성과 감정, 그리고 욕망을 가진 인간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래서 과학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결과물이다.

345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은 나를 둘러싼 조건들을 이해하고, 그런 조건들 속에서, 또 그런 조건들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적극적인 삶을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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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영어회화 패턴 - 매일 10분으로 끝장내는
더 콜링 지음 / 베이직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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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해외출장을 가게 되어서 한동안 관두었던 영어회화 공부를 벼락치기로 한 적이 있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여행영어회화 위주로 된 책들을 주로 봤는데 '여행영어 척척척', '영어회화 척척척',

'여행영어 가이드북', '영어회화 10분의 기적 해커스톡 : 패턴으로 말하기' 등 짧은 기간 안에 여러 권을

독파했다. 이런 책들에 나오는 표현들은 사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만 제대로 소화했으면 당연히

말하고 들을 줄 알아야 하는 평이한 것임에도 막상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말하기는

실제 입으로 계속 사용해서 저절로 나와야 하는데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말할 일이 없다 보니 눈으로 익힌 회화는 입을 움직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해외출장을

무사히(?) 다녀오고 나서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지만 다시 영어를 쓸 일이 없게 된

관계로 동기부여가 안 되는 상황에서 매일 10분을 투자하면 영어회화가 가능하다는 설정의 이 책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책에선 총 85가지 영어회화 패턴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람 중심 패턴, 물건 중심 패턴, 조동사 활용

패턴, 명령형 패턴, 의문사 활용 패턴의 5가지 유형으로 크게 구분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표현들도 학창시절 영어시간에 제대로 공부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표현들인데 말로 하는

습관이 안 되어 있다 보니 말하기나 쓰기에선 결코 쉬운 표현들이 아니었다. 각 패턴마다 한 장에 걸쳐

패턴 드릴 1, 2와 간단한 실전 회화를 싣고 있는데 하루에 약 10분 정도만 투자해도 1~2 패턴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책 앞 부분에 학습진도표를 넣어 꾸준히 진도를 체크할 수 있도록 돕고 있고 

다섯 패턴이 끝날 때마다 스피킹 트레이닝과 라이팅 트레이닝을 통해 앞에서 나왔던 문장들을 다시

반복 연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영어 교재답게 당연히 무료 MP3을 웹하드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데 하루에 많은 시간도 아닌 10분 정도만 꾸준히 공부를 해나간다면 정말 왕초보

영어회화는 술술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역시 문제는 꾸준히 반복 학습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인데 이번에는 꼭 이 책에 나오는 표현들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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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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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로 명성을 얻은 프레드릭 베크만의 책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읽어봐서 솔직히 그의 진가를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엔 아직 사이가 서먹서먹한 상태인데 이번에 만난

이 책은 '베어타운'이란 작품의 후속편이라 전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이 책을 읽어도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프레드릭 베크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 놓칠 수가 없었다.

 

얘기는 이웃이지만 앙숙인 베어타운과 헤드 두 마을 사이에 벌어지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두고 마치

전쟁을 치르는 듯한 살벌한 경쟁을 다루고 있다. 스포츠에서 라이벌인 팀들과 해당 도시간의 치열한

경쟁은 현실에서도 종종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제공하며 스포츠의 재미를 배가시키지만 이 책에 나오는

베어타운과 헤드는 서로 붙어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면서도 너무 경쟁심이 지나쳐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다. 사실 전작인 '베어타운'에서 벌어졌던 충격적인 사건들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어 베어타운 아이스하키팀이 해체 위기에 처한 상태였는데 베어타운 지역구 의원인

리샤르드 테오는 베어타운 하키단 단장인 페테르에게 외부 투자를 유치해주는 대신 경기장의 스탠딩

좌석을 없애라고 요구한다. 하키팀과 자신을 하나라고 생각하는 페테르는 마지못해 이를 수락하지만 스탠딩 좌석을 애용하는 훌리건(?)들과의 마칠을 빚는다. 해체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 베어타운

하키팀은 성인대표팀에 청소년팀 출신인 벤이와 아맛, 사고를 치고 시설에 수감되었다가 나온

비다르를 충원하고 코치로 여자인 엘리사베트 사켈을 선임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물론 

이들이 하키팀으로 받아들여지기엔 우여곡절을 겪는데 특히 상남자로 여겨졌던 벤이가 게이라는

폭로가 터지면서 본인뿐만 아니라 하키팀 자체가 큰 전력손실을 빚을 위기에 처하고 결국 헤드와의

첫 대결은 벤이와 비다르가 없는 가운데 시작되는데...  

 

이 책에선 아이스하키팀을 중심으로 베어타운과 헤드 두 마을 사람들의 갈등과 베어타운 내부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들을 다루고 있다. 사실 지역감정으로 대표되는 갈등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두 마을의 갈등은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아이스하키뿐만 아니라 스포츠로

인해 격한 갈등을 겪는 건 스포츠가 낳는 부정적인 측면 중 하나라 하겠지만 특정 팀과 도시(마을)에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게 스포츠가 가진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스포츠팀의 경기 결과에 울고 웃는 때가 많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이성을

상실한 행동을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책에선 도를 넘는 행동을 주저없이 하는 인간들이 다수

등장한다. 게다가 동성애 등의 민감한 문제까지 터지면서 갈등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럼에도 순수한 스포츠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로 뭉치는 베어타운 하키팀이나 어리석은 자들의

무모한 짓들로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상대 마을 사람에 대한 추모를 할 줄 아는 모습 등 가슴 뭉클한

장면들도 연출되어 흔히 하는 상투적인 표현인 한 편의 각본 없는(아니 있는) 드라마를 선보였다.

사람들이 얼마나 편 가르기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공격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면서도

이런 갈등과 문제들을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희망도 보여준 작품이었다. 무려 600페이지를 훌쩍

넘는 상당한 분량임에도 프레드릭 베크만의 필력은 여러 사람들의 얘기들을 잘 엮어내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들었다. 전작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 '베어타운'을 읽고 나서 읽었다면

좀 더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프리퀄로 '베어타운'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31 이곳에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날수록 실수는 더 커지고 결과는 더 끔찍해지며 자존심에 더 엄청난 금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96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벌어진 일만큼이나 경기 결과를 좌우하는 것이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골대를 맞힌 슛, 심판의 오심, 연결되지 않은 패스, 스포츠를 둘러싼 논의는 결국 천 개의 ‘그랬더라면‘과 만 개의 ‘그러지 않았더라면‘으로 귀결된다. 어떤 사람들의 인생도, 점점 더 인적이 사라져가는 바 카운터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반복 재생되는 똑같은 이야기를 통해 그런 식으로 박제가 된다. 파경에 이른 관계, 사기를 친 사업 파트너, 부당 해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아이들, 사고 아니면 이혼. 모든 게 나락으로 떨어진 단 한 가지 이유.
기본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지금의 삶이 아니라 누렸어야 하는 다른 삶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도시와 마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들의 엄청난 이야기를 이해하고 싶으면 소소한 이야기부터 귀담아들어야 한다.

127 모든 스포츠는 한심하다. 모든 경기는 황당하다. 두 개의 팀, 한 개의 공, 그 많은 땀과 끙끙거림은 무얼 위한 걸까? 얼마 안 되는 어이없는 순간 동안 세상에 중요한 일이 그것밖에 없는 척하기 위함이다.

130 사랑은 측정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측정할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해낸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공간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현재의 나에게 어느 정도의 공간을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199 정치인들은 갈등이 있어야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지만 동맹도 있어야 한다. 리샤르드 테오가 아는 한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공동의 적을 만들거나 공동의 친구를 만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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