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잿빛 음모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법정 스릴러의 대가로 명성이 자자한 존 그리샴의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 '펠리컨 브리프',
'의뢰인', '타임 투 킬', '레인메이커' 등을 본 적이 있지만 모두 영화로만 봐서
솔직히 책으로는 읽어 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작가로서의 존 그리샴의 진면목은 제대로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 나온 신작을 통해 그와의 첫 만남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대형 로펌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자 업계 4위의 대형 로펌인 스컬리&퍼싱의
변호사로 일하던 서맨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1년간의 일시해고와 무급 인턴을 받아들인다.
그것도 겨우 버지니아 주의 시골마을 브래디에 있는 마운틴 구조 클리닉에 자리를 얻은 서맨사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이 이상한 가짜 경찰관에 의해 유치장 신세를 지는 곤욕을 치르는데
탄광마을인 그곳에서 여러운 사람들의 무료 변론을 해주는 임무를 맡게 된다.
석탄 회사들의 자연 파괴와 석탄 분진으로 인해 흑폐증에 걸린 직원들을 나몰라라 하며
주민들은 석탄 회사들과의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석탄 회사가 배상비용보다
설치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위험한 환경에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직원들이 병에 걸린 원인까지 조작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런 쓰레기 같은 석탄회사와 법률 대리인 로펌을 상대로 도너번이 소송을 제기하고
회사의 비밀 자료를 불법으로 빼내는 데 성공하지만 갑작스런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서맨사와 동료들은 허탈한 상황에 처하는데...
거대 기업이 저지르는 만행은 여러 대중예술의 단골 소재다.
실제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돈과 권력으로 약자들을 짓밟아 그 위에 그들만의 제국을 세워
자기들 멋대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며 군림하는 건 정말 꼴보기 싫은 현실이다.
이 책에서도 석탄 기업과 그들을 비호하는 대형 로펌, 그리고 FBI가 삼위일체가 되어
자신들의 비리를 덮기 위해 저지르는 음모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물론 도너번과 그의 동생 제프가 석탄 회사의 기밀자료를 불법으로 빼낸 잘못은 있지만
저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에 피라 할 수 있는데
답답한 건 결정적인 증거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못하고 도망다니기 급급하단 사실이다.
그것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된 것 같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제프와 서맨사 사이에 로맨스가 싹튼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도 같은 힘겨운 법정투쟁이 과연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 작품에선 그 부분이 그리 부각되지 않고 끝나 버려 좀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대형 로펌에서 계약서나 검토하던 서맨사가 그야말로 야전에서 변호사 선임할 형편도 안 되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법을 몰라서, 돈이 없어서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도움을 주며 변호사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서맨사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보기라 할 수 있었다.
존 그리샴의 작품을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왜 그가 법정 스릴러의 대가로 불리는 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생각보다 법정 장면이 많지 않아 의외였지만 소위 법조계라는 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투쟁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
법정 스릴러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