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스미레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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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문학작품에서 가장 이상적인 컨셉은 문화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여타의 분야보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신기하고 신비하고 관심의 대상이 되는 분야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연애의 대상도 흥미롭고 상당히 멋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로맨스 장르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거의 대부분 지독히 편견이 섞인 내 관점에서는 그러했다.


편견이라 해도 어쩔수없는 것이 이번에 읽은 <스마일, 스미레!>도 그렇다. 지금까지 읽었던 로맨스 장르가 국내 저자라고 한다면 이번에 읽은 로맨스 장르는 일본이다. 워낙 우리보다 일본이 로맨스와 추리류는 훨씬 더 발달했고 다양한 종류가 있어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만화만 보더라도 그걸 알 수있다. <스마일, 스미레!>는 주인공이 음반 제작사 사장이다. 거대 기획사의 잘나가는 사장이 아니라 1인 기업의 여사장이다. 


나이도 이제 겨우 30살 정도로 어린 - 상대적으로 - 사장으로 인디씬에서 발견한 밴드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귀진 얼마 되지 않은 애인과는 너무 바뻐 몇 번 만나지도 못하고 만나도 일 생각으로 대화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어렵게 발견한 밴드의 30분 공연을 위해 공연 시디도 만들고 한정판 앨범 시디도 만들어 날밤을 새는 나날이 이어졌다. 기껏 만난 애인과도 밴드의 멤버가 갑자기 급하게 불러 찾아갔을 정도로 열정을 쏟을 정도였다.


콘서트 날 2시간 전에 만나 연습하고 무대에 서려고 했는데 공연 시작 30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겨우 다른 팀과 순서를 변경해서 무대에 서지만 주인공인 스미레가 알던 그 밴드가 아니었다. 빛이 나서 계약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그 밴드가 아니었다. 반짝 반짝 빛이 나지 않았다. 무대는 절망이었고 맨붕상태에 빠져 무대를 빠져 나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만들었던 한정판 시디도 제대로 팔지 못한다. 


화를 꾹 누르고 술집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려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보컬은 운다. 팀의 리더가 말한다.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이제 프로가 되고 싶다." 무슨 이야기인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다시 말한다. "우리의 계약은 이미 끝이 났다. 계약이 끝난지 한 달이 넘었다. 좀 더 큰 제작사와 오늘 계약을 하고 왔다. 그래서 늦었다."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더구나 그 제작사는 스미레가 다녔던 제작사였다.

상실해 있는 상태에서 남자친구와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자신도 연락이 온 걸 한 번 받지 못했는데 아무런 연락도 반응도 없다. 문자 한 통이 왔는데 마지막 단어가 '바이바이'다. 완전하게 절망이다.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이다. 예약두었던 모든 스케쥴도 전부 취소한다.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그 곳에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내며 정신과 마음을 추스리는데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다.


<스마일, 스미레!>는 정확하게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주인공인 스미레가 연애를 하는 이야기는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스미레가 음반 제작사로서 악전고투하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혼자서 사장이고 총무이고 사원이라 모든 것을 북치고 장구치고 다해야 한다. 이 와중에 애인은 떠나고 새로운 가수가 찾아온다. 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한 스미레가 다시 출발하는 이야기다.


나름 중간까지 읽으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밝은 이야기만 나올 것이라 예측했다. 소설이 밝고 긍정적으로 흘러 당연히 그렇게 흐를 것이라 믿었는데 예상을 깨 버렸다. 특히나 초반에 지금까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낸 밴드의 생각지도 못한 뒤통수치기는 완전히 짜증이 났다. 그런 식으로 일방적인 통고라니. 소설은 유쾌하지는 않아도 잔잔하게 소품과도 같은 미소를 머금고 만드는 형식이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스미레에 서서히 동화되어가며 응원하게 된다. 가진 것도 없고 현재의 처지도 보잘 것 없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스미레를 보며 무엇인가 풀릴 듯이 풀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노력한다. 엄청난 성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그저 할 뿐이지만 그래도 아주 작은 빛이 문틈에서 나온다. 그 빛을 바라보고 달려간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우습지 않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었던 책이 부담없이 읽으면서 나 자신이 현재라고 하는 금일보다는 내일이라는 명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생각했다. 여기서 명은 밝을 명이다. 책은 마지막에 가서 긍정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냉정하게 보여주는 소설도 있지만 내가 지금 택한 소설은 그러면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요구는 긍정적으로 해피엔드로 끝나야 한다. 덕분에 웃으면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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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2 - 군성(軍星)편 매일경제신문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2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이동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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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ljb1202/220261810727

1편은 위를 클릭하세요 ^^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2편>은 군성편이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로 조조군의 군사가 다수 등장하지만 유비군에서 가장 중요한 조자룡이 드디어 살짝 맛을 보여준다. 관우와 장비가 의형제로 유명하지만 유비군에서 가장 뛰어난 무인은 조자룡일지도 모른다. 그 외에 조조군은 차곡 차곡 향후 삼국지에서 계속적으로 출현하며 영웅담을 보여줄 많은 인물이 출연한다.


이번 편에서 무용담은 거의 나오지 않고 소개에 그친다. 하후돈, 하후연, 악래, 허저등. 하지만 이번 편에서 실제 주인공은 동탁과 여포이다. 삼국지에서 초반에 가장 강력하고 무용이 뛰어난 인물로 나온다. 비록 엄청나게 살만 찌고 탐욕의 상징처럼 동탁이 나오지만 그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 온 인물이 아니라 시대를 잘 만나고 우연이 겹쳐 왕을 인질(??)삼아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다.


여포는 워낙 뛰어난 무장을 갖고 있어 어지간한 인물 몇 명이 덤벼도 절대로 무너뜨리지 못한다. 관우, 장비, 유비가 덤벼도 무사했고, 허저, 악래, 하후돈, 하후연과 싸워도 밀리기는 했어도 살아남았다.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무인이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좋은 주군을 만나 함께 했다면 삼국지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조조는 실로 변화무쌍한 인물이다. 좀 더 세월에 흐른 다음에는 모르겠지만 이번 편에서는 냉정보다는 혈기왕성이 앞선다.


참아야 할 때 참지 못하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지 못한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되면 앞뒤 재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이로 인해 몇 번이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럴 때 마다 기지를 발휘하고 좋은 부하들이 도와줘서 살아남는다. 그렇게 조조는 냉정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를 기다리고 때를 만들고 나서야 할 때를 알게되는 능력이 영웅의 가장 큰 자질이 아닐까도 싶다.


일개 현령이었던 유비는 드디어 성을 획득한다. 획득하는 과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서주의 태수 도겸이 그토록 권해도 끝끝내 거절한다. 그가 사망한 후에 백성들이 모두들 유비에게 요청하자 그제서야 맡는다. 이 얼마나 극적인가. 자신이 욕심이 있어도 참고 참으며 때를 기다린다. 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추대하여 만든 자리이니 떳떳하다. 유비의 본심은 정말로 맡지 않는 것이었을까, 그럴싸한 상황을 만들어 확실하게 맡는 것이었을까.


지속적으로 유비는 자신의 본심을 감춘다. 철저하게 낮은 곳에서 낮게 행동한다. 욕심이 없을리 없다. 그랬다면 의형제를 맺고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군웅이 될 욕심을 갖고 세상에 나왔음에도 철저하게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조조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숨기려 하지 않고 드러낸다. 이에 감화된 인물들이 조조에게 모여든다. 두 명의 인물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누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선택의 문제일뿐.


이런 조조가 현대에 들어와서 재 평가를 받고 높게 쳐주는 이유다.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현대인들에게는 더 맞는 인물로 빛쳐진다.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인물의 평가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무척이나 유명한 초선의 경우에도 그의 행동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당위성이 부여되자 더러운 짓이 아닌 숭고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같은 행동이라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삼국지>에는 여러 인물이 나오는데 인물들중에 어떤 인물은 영웅이 되어 왕이 되고 어떤 인물은 조용히 사라진다. 그 이유가 무엇을까.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위대한 인물로 남고 어떤 인물은 장수가 되고 책사가 되고 군졸이 된다. 신분고하가 있던 시대라 그럴 수도 있다. 신분이 있는 인물중에서도 누구는 삼국지에서 살아남아 조조나 유비와 같은 인물이 되고 누구는 동탁과 여포와 같은 인물이 된다. 다음 3권으로 들어가 더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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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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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회사 동료가 기욤 뮈소의 책을 읽어 빌려 본 후에 그의 책을 전부 다 읽었다. 장점은 가볍다. 부담없다. 술술 쉽게 읽힌다. 언제나 로맨스가 중심이다.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눈 앞에 내용이 펼쳐진다. 최신 기술을 꽤 잘 접목해서 알려준다. 단점은 패턴이 반복된다. 결국 로맨스다. 그 외 기타등등. 처음에 기욤 뮈소의 책을 읽었을 때는 처음 접한 작가이고 색다른 형식이라 다소 신기했고 신선했다. 재미도 있었다.


그런 재미에 계속 읽었다. 한국에서 히트를 하자 과거에 저술했던 모든 책이 갑자기 쏟아져 덩달아 나도 몰아서 보다보니 - 대략 1~2년 내로 - 좀 지겨웠다. 반복되는 패턴은 눈에 보이고 로맨스 이야기도 어느정도는 와 닿지 않았다. 당분간 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타이밍이 바로 기욤 뮈소의 책이 서서히 한국과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는 때였다. 자연스럽게 기욤 뮈소의 책은 이제 1년에 한 권 정도를 읽게 되었다.


덕분에 다시 읽게 된다. 이런 작가들이 꽤 있는데 파울료도 그렇다. 거의 전부 다 읽어 이제는 별로 땡기지 않는다. 현재 유일한 작가는 더글라스 케네디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대중 소설 작가중에 더글라스 케네디가 현재는 가장 맘에 들고 그와 같은 소설을 쓰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의 소설을 구입해서 짜집기로 한 번 소설을 써 볼까라는 생각도 한다. 패턴은 똑같으니 팬픽처럼 하면 재미 있을 것도 같고.


<센트럴 파크>는 예의 기욤뮈소의 전략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재미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무엇인지 독자들로 하여금 추리하게 만들고 궁금하게 만든다. 단순히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추리소설적인 형식을 늘 차용해서 더욱 재미있다. 또한, 기욤뮈소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상처를 간직한 인물이다. 만날 수 없는 인물들에게 헤어나지 못해 좌절감과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인물이다.

환상적이고 현실에서 어딘지 벗어난 상황이 주인공에게 펼쳐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주인공이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것들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 감정을 느낀다. 말미에 가서 모든 의문과 상황이 풀리고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주인공이 갖고 있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 함께 했던 인물과 새로운 사랑에 빠지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어느 책을 읽든지 이 패턴은 동일하다. 얼마나 새롭게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것이냐에 따라 소설은 그만큼 인기를 끈다. 이번 <센트럴 파크>는 그런 면에서 성공했다. 초반부터 휘몰아 치는데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내용이 계속 전개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독자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 연쇄 살인마를 쫓는 내용이라 더욱 흥미를 끈다. 장르 소설의 디테일에는 미치지 못해도 기욤 뮈소 특유의 필력으로 독자들과 즐거운 게임을 즐긴다.


두 남녀가 수갑을 채워져 있는 상태에서 센트럴 파크에서 깨어난다. 둘 다 이유를 모른다. 여자는 자신의 기억이 끊겨있다. 남자도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소설은 점차 기억의 실마리를 쫓아 하나씩 하나씩 진실에 다가선다. 자신이 믿고 있던 진실이 이상하다고 느끼며 현재와 과거를 넘다들며 자신을 찾는다. 마지막에 가서 조금은 아쉽게 끝이 난다.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부분이 애매하게 끝이 난다.


부담없이 아무 생각없이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기욤 뮈소의 소설은 큰 장점이다. 머리를 쓰며 쫓아갈 필요도 없다. 로맨스 이야기도 함께 곁들여져 있어 말랑하기도 해서 무겁지 않다. 신기한 것은 소재와 줄거리를 엮는데 있어 어떻게 조사하고 묶는지 참 궁금하다. 어느정도는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분명히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역시나 기욤 뮈소는 늘 일정 이상의 재미는 보장한다. 계속해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작품을 선보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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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삼바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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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으로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며 살지는 않아도 알게 모르게 상당히 많은 외국의 이야기를 우리는 접한다. 가장 근접해서는 일본과 중국의 뉴스. 멀리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같은 나라들의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 외에는 가끔 아랍이나 남미,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이야기를 본다. 한국이라는 나라 특수성 필터링이 된 뉴스를 보게 된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한류와 같은 현상이나 한국기업의 세계수출에 따른 외국의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와 가까운 나라가 아니라면 어김없이 선진국이다. 이 선진국의 특성은 제국주의를 해 봤다는 특징이 있다. 싫건 좋건간에 우리도 모르게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나라들이 여전히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저절로 세계뉴스로 각종 소식이 쏟아져 알게 된다. 이들 나라에게 공통점은 외국인의 유입이 많다는 점이다. 관광도 있지만 생존을 위해 입국하는 외국인이 많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그 나라로 가면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간다.


프랑스는 영어를 쓰는 나라가 아니고 한국과는 크게 엮인 것은 없고 제국주의때도 별 영향이 없는것처럼 보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보였던 나라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는 패권국가였고 여전히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프랑스에 많은 흑인이 살고 있는 이유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는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끼지만 프랑스에서는 무엇이라도 하며 자신들의 나라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수 있는 나라로 여겨진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다. 최근 한국의 현실이다. 어느덧 한국도 상당히 많은 외국인이 돈을 벌기 위해 입국했다. 정식루트로 온 사람도 있고 밀입국식으로 온 사람도 있다. 그나마 한국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왔다. 우리와 비슷한 조선족도 있고 약간 다른 동남아인들도 있다. 서양계통인도 있는데 이들에게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차별은 우리가 만들었는지 학습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얗면 좋다는 식으로.


프랑스는 똘레랑스로 뭉친 나라이고 평등이 중요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어느 나라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어느 나라에 살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똑같다. 이렇게 이야기하기에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부족함이 있지만. 프랑스에는 많은 이민자들이 있다. 문제는 불법이민자다. <웰컴, 삼바>는 이들의 이야기다. 삼바라는 불법체류자의 이야기다. 프랑스의 입장에서 보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는 존재다. 가장 밑바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존재지만 언제 무법자로 돌변할지 모르는 골치덩어리기에 정부입장에서는 굳이 잡으려고도 내 쫓으려고도 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생길 때 가차없이 쫓아낸다. 그래도 문제될 것이 없기에. 삼바는 어렵게 프랑스로 들어왔다. 목숨을 걸고 왔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전혀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생활비를 위해 프랑스로 넘어왔다. 오랜 시간동안 살아왔고 돈을 벌었지만 우연히 우리로 말하자면 출입국관리국에 갔다가 추방명령을 당한다. 지금까지 정당하게 프랑스에서 살아왔고 프랑스에 애정을 갖고 열심히 일했는데 갑자기 프랑스는 자신을 추방한다. 


제대로 프랑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한다.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니 - 법률 이야기는 내국인도 힘들다 - 운 좋게도 자원봉사자들에게 인도되어 인정을 받아 추방 명령은 내려지지 않는다. 정착할 수 있는 권리증도 주지 않는다. 네가 알아서 프랑스를 떠나라는 이야기다. 다시 잡히면 추방한다는 의미인데 상황이 우습기는 하다. 그래도 이렇게 프랑스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지만 지금까지 살았던 프랑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교도소에서 알게 된 친구의 애인을 만나 케어를 해 주다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함께 살던 삼촌이 준 거류증은 갖고 다니다 문제가 생겨 삼촌은 직장을 잃는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프랑스가 더이상 돈을 벌 수 있는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다시 모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여기는 돈을 벌 수 있다. 밑바닥 인생이라도 먹고 살 수 있고 가족에게 생활비까지 보낼 수 있는 프랑스가 유일한 희망이다.


<웰컴 삼바>에서 나오는 인물은 하나같이 사회 밑바닥이나 그 주변인들이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프랑스에서 우아하고 살고 있는 인물이 아니다. 소설을 읽는 이유가 이런거다. 아무리 실용서적을 읽고 보고서를 읽는다고 해도 소설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는 실제 삶을 알아 내기는 힘들다. 국내 저자의 국내 소설은 얼마든지 소설을 읽지 않아도 어느정도 알지만 외국은 다르다. <웰컴 삼바>를 읽지 않았다면 프랑스에서 현재 벌어지는 이런 밑바닥인생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수면 위에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면 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생생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우리는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잘 모르는 나라에 대해 알려주는 소설은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자세한 것을 알려준다. 프랑스에 대해 이민자들의 이런 고민과 현실이 우리와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선진국도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받아들인다. 잠시 그 나라에서 머물면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이방인으로 체험하는 것은 단물만 맛보고 좋아하며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을 탓한다면 어느 나라나 다 비슷 비슷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삼바는 단 한 번만 잡히면 이제 프랑스에서 추방을 당한다. 소설을 열심히 읽어 감정이입이 된 독자입장에서는 그것만은 피했으면 하는 측은지심이 생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삼바는 프랑스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대신 자신의 이름을 잃는다. 이름은 나를 대변하는 모든 것은 아니다. 나라는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름을 잃는 순간 나라는 정체성은 사라진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된다는 의미라 스스로 혼란을 느낀다. 삼바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책 제목이 <웰컴, 삼바>인데 누가 삼바에게 하는 인사인지 모르겠다. 프랑스는 그를 원하지도 내 쫓지도 않는다. 삼바는 프랑스를 좋아하지도 하지만 싫어한다고 할 수도 없다. 아니, 어쩔 수 없이 프랑스나라에세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에도 현재 그런 인물이 많다. 너무 이상적인지 몰라도 꼭 한국이라는 잣대로 구분해야할까. 다 똑같은 인간이고 생존해야 하는 사람아닐까. 우리 자리를 빼앗는다고 하는데 누가? 어떻게? 어디서? 덕분에 더 좋은 게 아니고? 난 모른다. 그저 삼바가 열심히 일한만큼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갔으면 한다. 소설 내용의 마무리는 그래서 일단은 안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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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 - 도원(桃園)편 매일경제신문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1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이동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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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태어난 사람중에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삼국지를 책으로 읽었든 읽지 않았든 상관없이 무조건 삼국지는 안다. 삼국지를 그 어떤 매체를 통해 보거나 읽거나 듣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다. 삼국지를 모르면 동아시아에서는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나이가 아주 많아 까막눈인 어르신들도 삼국지는 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원전이 나관중의 판본으로 알고 있다.


역사속의 삼국지와는 다소 다르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지 실제 삼국지의 내용이 어떤지는 모른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관심도 없을 것이다. 실제 삼국지의 내용이 어떠하든 이미 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원하고 깨닫고 싶은 것을 깨닫는다. 내용이 변한다고 해도 삼국지에 출연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딱히 변할 부분은 없다.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중국에서 출발한 삼국지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늘 주목하는 작품이다. 남자치고 삼국지를 안 읽은 사람은 없다. 전권을 읽었던지 한 권짜리로 다이제스트로 읽었던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익히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초등학생때에 삼국지 책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게 나와 있어 아이들도 어지간하면 전부 다 읽었을 것이다. 삼국지는 날이 갈수록 위력이 줄기는 커녕 늘기만 한다.


한국인이 각색한 삼국지도 무척 많다. 가장 많이 팔린 이문열을 비롯해서, 황석영, 이현세, 정비석, 장정일, 개그맨 전유성까지. 이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삼국지를 편찬했다. 이미 원작가가 있음에도 이토록 많은 작가들이 다시 또 집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삼국지의 위대함을 알려준다. 그 위대함이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는 누나는 삼국지가 싫다고 했다. 매번 나와 싸우고 죽이고 싫다고. 최소한 그 누나는 삼국지 전집이 있어 읽은 것으로 보였다.


예전에 이문열의 삼국지는 읽었고 다른 사람의 삼국지는 한 번 읽어야지 생각은 했는데 아마도 삼국지를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수 많은 책들도 읽은 것이 가득한데 굳이 삼국지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을 난 느끼지 못하겠다. 수호지도 읽었는데 확실히 삼국지가 최고이기는 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대단한 작품을 쓴 중국인데 왜 그이후에는 이와 같은 엄청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에 대한 의문도 든다. 과거의 작품으로 두고두고 우려먹는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면 삼국지는 다시 읽을 마음이 들겠지만 책을 열심히 읽다보니 굳이 삼국지를 그토록 높게 쳐주는 것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게한다.

각설하고 이번에도 <삼국지>를 읽게 되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삼국지는 소설도 아니고 만화다. 만화로도 꽤 많은 삼국지 내용이 있다. 일본에서 삼국지를 외우다시피 한 소년이 타임머신으로 우연히 삼국지의 시대로 가서 <용의 아이>로 설정된 만화도 있지만 그 보다는 <창천항로>를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만화라는 창작의 최대치인 작품이라 기존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 점도 마음에 들고 제갈공명도 변태라 할 수 있게 묘사된다.


그런 <삼국지>를 제외하고 다시 정통 <삼국지>를 읽게 되었는데 일본 작가가 쓴 작품이다. '요시카와 에이지'라고 일본에서는 유명저자로 '미야모토 무사시'로 유명하고 사후에는 '요시카와 에이지상'이 제정될 정도이다. 바로 그 작가가 쓴 <삼국지>를 읽게 되었다.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이 쓴 삼국지다. 분명히 원전은 하나인데 누가 각색을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평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최근에 들어와서야 거의 새롭게 재평가되는 듯 한데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는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정통 삼국지에 가깝다.


다만 언제부터 삼국지는 이상하게도 10권으로 분권된다. 그 전에는 꼭 그렇지 않았고 삼국지 내용도 꼭 그럴 필요는 없을텐데 말이다. 삼국지는 그렇게 전설이 되어 버렸다. 전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실처럼 사람들에게 읽힌다. 실제로 당시에 인물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다투고 전략과 전술로 상대방과 대립했는지 이제는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소설 <삼국지>라는 세계관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건들릴 수 없는.


장담하고 자신할 수 없지만 마지막 <삼국지> 읽기가 될 것이라 보는 삼국지 독서는 작년 여름에 시작하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뤄져서 거의 한 해를 넘어 새해가 시작되어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1월이 넘어가기 전에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수의 우연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병사를 모으고 아무것도 없는데 뜻하지 않는 귀인을 만나 말과 식량이 조달된다. 유비는 죽을 수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황건적이 죽이지도 않고 노승이 도와주고 장비를 만난다. 모든 것이 우연의 연속이다. 현대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유치하다고 할 정도이다. 개연성이 부족하니 말이다.


유비와 장비, 관우로 시작하지만 중간 이후부터는 내용에서 아예 빠져버린다. 신기하게도 <삼국지> 전체 관점에서 동탁과 여포는 비중이 무척이나 작은데도 불구하고 초반에 나온 이유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블럭버스터 영화에서 초반 10분 동안 화려한 볼거리를 장식하는 인물에 해당하는데 말이다. 1권만 읽는다면 조조도 원소도 그저 미미한 존재다. 유비도 별거 없는 나약한 존재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 이외에는 소설은 딱히 이렇다할 내용은 없게도 느껴진다. 늘 기억하는 황건적도 막상 1권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황건적이야기가 참 많은데. 그렇게 보자면 대부분 사람들에게 알려진 삼국지의 내용은 초반이다. 중반 이후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몇몇 부분만 사람들이 알고 있고 회자되고 있다. 1권만 볼때는 소설로서 그닥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삼국지>는 지금까지 고전으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교훈을 주고 인생의 작품이라고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다음 2권부터 찾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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