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구판절판


당시의 자식 된 도리란 - 확실히 뭔가를 외우는 일에서 시작해 뭔가를 외우는 일로 끝을 맺곤 했다. 예컨대 구구단을 외우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국민체조의 순서를 외우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애국가의 1,2,3,4절 가사를 외우고, 교과서를 외우고, 공책을 외우고, 전과를 외우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압권은 단연 국민교육헌장이었다. 실로 지극한 효성의 자식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그 도리를 다할 수 없을 만큼이나 그것은 길고, 까다로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잇었다.-.쪽


그날 밤 나는, 낡고 먼지 낀 내 방의 창문을 통해 - 저 캄캄한 어둠 속에 융기해 있는 새로운 세 개의 지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부유층과 중산층, 그리고 서민층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지층들이었고, 각자가 묻힌 지층 속에서 오늘도 화석처럼 잠들어 있을 수많은 사람들의 얼둘을 떠올릴수 있었다. 나는 보았다. 꽤 노력도 하고, 평범하게 살면서도 수치와 치욕을 겪으며 서민층에 묻혀 있는 수많은 얼글들을. 무진장, 혹은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하면서도 그저 그런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중산층에 파묻혀 있는 수많은 얼굴들을. 그리고 도무지 그 안부를 알 길이 없는 - 이 프로의 세계에서 방출되거나 철거되어- 저 수십 km 아래의 현무암층이나 석회암층에 파묻혀 있을 수 많은 사람들을 나는 보았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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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상자
호시 신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장락 / 1998년 1월
절판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수수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언제나 승진이 된다. 지위가 오르고, 교제 범위가 넒어지는 것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놈들에게 들킨다면 갑자기 어디에서랄 것도 없이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승진이란 당치도 않다. 그 때문에 이미 세번이나 회사를 바꿔왔다. 사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 소문이 퍼지면 곤란하다.
그렇다. 돌연 S씨는 각오한다. 왜 그걸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마음가짐이 나쁘면 되는 것이다. 이번엔 회사를 바꾸게 되면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하면 되는 것이다. 타인을 밀어젖히고, 공적을 가로채고, 발목을 잡고, 승진을 요구하고, 무턱대고 출세하려고...-.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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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가의 열두 달
까렐 차뻭 지음, 홍유선 옮김, 요제프 차뻭 그림 / 맑은소리 / 2002년 7월
절판


1월의 식물이라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창유리에 피는 얼음꽃이있다. 물론 얼음꽃이 피려면 실내 공기에 사람의 입김이 얼마간이라도 섞여 있어야 한다. 공기가 건조한 상태에서 유리창은 얼음꽃은 커녕 바늘 한개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문에 약간의 빈틈이 있어야한다. 열린 틈새로 샛바람이 들어오면 그 방향으로 얼음꽃이 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음꽃은 부잣집보다 가난한 집에서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부잣집의 창문에는 거의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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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10권 - 오장원에 지는 별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구판절판


지난날 복황후 궁문을 나설 때
맨발로 슬피 울며 천자께 하직하더니
사마씨 이번에는 그걸 본떴네.
하늘이 그 업보를 손자에게 돌렸구나.

조방의 할아비 조조가 복황후를 죽인 일이 그대로 사마사에 의해 되풀이된 걸 말함이다. 하지만 그게 진실로 하늘이 있어 응보를 그 자손에게내린 것인지, 아니면 권력의 속성이 원래 그렇게 비정하고 잔혹해 우연히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게 된 것인지는 누구도 알 길이 없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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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 한 젊은 예술가의 뉴욕 이야기
박상미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품절


산문가이자 시인이었던 E.B.화이트의 '여기는 뉴욕'에 따르면 뉴요커에는 세 부류가 있다. 뉴욕에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 뉴요커', 다른 곳에 살면서 뉴욕으로 출퇴근을 하는 '통근 뉴요커', 그리고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뉴욕으로 온 '정착 뉴요커'. 통근 뉴요커는 뉴욕에 끊임없는 흐름을 가져다주고, 토박이 뉴요커는 견고한 토대와 연속성을, 정착 뉴요커는 도시에 열정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화이트는 이 세번째 뉴요커들이야말로 뉴욕 특유의 긴장감을 부여해 주고, 이들로 인해 뉴욕은 시적인 도시가 될 수 있으며, 다른 도시들이 넘보지 못하는 예술적인 성취를 이루어낸 도시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디서 왔건 그건 상관이 없다고 화이트는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첫사랑과 같은 강렬함으로 뉴욕을 끌어안는 사람들이라고.-.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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