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원년, 우리가 갈등하는 감정의 모든 것>이 부제인 이 책은 불확실성의 시대, 감정은 어떻게 배치되는가?”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1. 페미보비아femiphobia

페미포비아femiphobia는 페미니즘 포비아feminisim phobia가 너무 길어서 저자가 축약한 단어이다.(23) 저자는 글로벌 페미포비아가 글로벌 신자유주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시대의 고용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는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헌신, 희생, 신뢰, 정직, 양육, 보살핌과 같은 가치들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된다.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가사노동 역시 미흡한 집안일이라 여겨진다.(24)

소비가 노동과 분리되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양극화됨으로 인해 노동자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반면 소비자는 능력자로 비쳐지게 된다.

 

고용이 불확실한 시대, 한가롭게 소비하는 자아처럼 보이는 여자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남성들의 불안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남성이라고 하여 하나의 남성인 것은 아니므로, 일자리를 위협받는(다고 가정하는) 남성들은 자신들과 경쟁하는 여성들이 얄밉다. 그러다보니 경제적 걱정 없이 한가롭게 소비하는 자아의 이미지로 포장된 된장녀는 선망과 미움의 대상이 된다.(25)

 

한가롭게 소비만 하는 여자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실제 여성들이 된장녀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25) 소비하는 여성을 된장녀로 취급할 뿐이다. 그 여성이 어떻게 일하는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미움의 대상이 된다. 돈을 버는 남자와 돈을 쓰는 여자로 양분한다. 분노는 돈을 쓰는 여자, 돈을 쓰기만 하는 여자에게로 집중된다.

 

2. 추락

  

  

 

 

 

 

 

 

 

과거에는 현대 문학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배울 의욕 없는 학생들을 열정 없이 가르치고 있는 데이비드 루리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여학생 멜라니 아이삭스와 관계한다.(196) 멜라니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였다는 게 루리의 주장이다. “어느 날 저녁, 대학 정원을 걷다가 문제의 여학생과 만났고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로스가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루리는 동료 집단과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성 있는 고백과 사죄를 거부하며 자기 행위가 성추문이 아니라 에로스라고 위로하면서 대학을 떠난다.(205)

루리는 케이프타운 고지대의 흑인거주지에 살고 있는 딸 루시를 찾아온다. 그는 동물복지연합의 일을 돕게 되면서 동물 복지까지 주장하는 베브 쇼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선의가 지나쳐, 얼마 후에는 몸이 근질거려 밖으로 나가 강간을 하고 약탈을 하고 싶겠어. 아니면 고양이를 발로 차버리든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저주가 실제로 이루어진다. 세 명의 흑인 강도가 집에 침입해, 그의 딸 루시를 강간한 것이다.

루시는 백인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강간을 암묵적으로 사주한) 흑인 농장주인 페트루스의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 살겠다고 말한다(207). 자신의 땅을 지참금으로 가지고 페트루스의 셋째 부인이 되는 것, 그곳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그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것이 자신이 이 곳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한 사회의 정상적 규범이 주는 특권들 즉, 결혼, 가족, 이성애 일부일처, 직장, 젠더적 특징으로서 여성다움, , 지위가 있으면 가능하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당연히 불행해야 한다. 지배담론은 그런 것들을 소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혹은 장차 미래의 행복을 약속해 줄 것이라고 설득해왔다.... 불행유발인자들을 루시는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녀는 레즈비언이다. 여성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뚱뚱하다. 몸놀림이 둔하고 여성스럽지도 않다. 레즈비언인 파트너와 살고 있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흑인거주지의 외계인이자 주변인으로서 텃밭에서 채소와 꽃을 가꾼다.... 루시는 기존의 정상성 규범에서 보자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서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존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는 기존의 정상성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그런 의미에서 루시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바닥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214)

 

아무 것도 아닌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루시가 놀랍다. 모든 것을 상실했기에 개처럼 수치스럽다고 여겨지는 그 지점에서 자신의 의지로 자율적인삶을 택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치욕과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했다는 바로 그 점에서 말이다.

 

3. 페미니즘

 

에 마주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과 읽어야할 것이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푸코도, 라캉도, 프로이트도, 그냥 쉽게 길을 비켜주지 않을 것이다. 울적하다. 임옥희,라는 이름이 뇌리에 꽂혔다. 일부러 찾았던 건 아닌데, 다음 책으로 준비운동 중인 주디스 버틀러 읽기역시 그녀의 책이다.

한 가지 배웠다는 뿌듯함보다는 갈 길이 멀어 아득한 이 느낌을.

여기에 남긴다.

이제 주디스 버틀러에게 간다. 더 깊은 아득함을 향해.

한 걸음.

딱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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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9-02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몇 년전에 [추락]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지금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궁금해지네요. 어쩐지 그때랑은 다르게 볼 것 같아요.
아무개님도 단발머리님도 계속 이렇게 공부하고 생각하고 그걸 또 적어내주셔서 너무 좋아요. 요즘에 너무 기운 빠졌었거든요. 되게 외롭다고 생각했었어요 ㅜㅜ

단발머리 2016-09-02 15:19   좋아요 0 | URL
저는 몇 년 전에 다락방님이 [추락]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ㅎㅎ
근데 그 감상을 읽고 저는 조금 두렵더라구요. 내가 읽을 수 있을까?,,.
저는 아직 [추락]을 읽지 못했어요.
[젠더 감정 정치]에서 임옥희씨가 비평한 것만 읽었는대도 어마어마하더라구요.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락방님이 좋다하니 나두 좋구요.
쪼금만 아주 쪼금만 기운 빠져있다가......
다시 기운내세요.
당신은 우리의 다락방님이예요.
잊지 마세요~~~~

아무개 2016-09-0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디.스. 버.틀.러!
저는 도전해볼 엄두도 못내고 있어요.

페미니즘이란게 프로이트부터 마르크스 그리고 푸코 라캉 까지
그 영역이 너무나 방대해서
소름끼치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만큼.
참. . . 아득~~하게 멀고 멀고 먼 길 같아요.

아무개 2016-09-02 15:21   좋아요 0 | URL
아씨. . 근데 다 남성작가들뿐이네요 쩝

단발머리 2016-09-02 15:36   좋아요 0 | URL
진짜 아씨~~~ 아저씨들이네요.
괜찮아요.
우리한테는 정희진도 있고, 임옥희도 있고, 아무개님도 있고, 다락방님도 있잖아요~~

저는 주디스 버틀러,를 읽는게 아니구요.
임옥희의 <주디스 버틀러 읽기>를 읽는 거예요.
주디스 버틀러에게 가는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ㅎㅎㅎ
사실은.... 읽기 난해하다 해서 각오하고 있어요.@@

수이 2016-09-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디스 언니 조아...... ^_________________^

단발머리 2016-09-03 07:08   좋아요 0 | URL
나두 좋아하게 됐어요.
사진 보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잠자냥 2016-09-0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관련 좋은 책이 요즘 많이 나오네요. 그런데 재미난 것은 제가 느끼기에 그런 책을 더는 안 읽어도 될 분들만 여전히 읽는다는 것이죠. ㅎㅎ 꼭 좀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나몰라라.... 흠흠. ㅎㅎㅎ

단발머리 2016-09-03 10: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느낀 적이 많아요. 꼭 좀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좀 더 읽어야할 듯 해요.
뭐, 대단한 걸 알고 싶다기 보다, 정희진씨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여성으로서 삶`을 자각한 순간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여성으로서의 삶과 여성주의에 대해서요.... ^^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아아아, 아아아

가을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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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7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7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6-08-28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뻐요.^^

단발머리 2016-08-28 22:29   좋아요 0 | URL
네~~ 어제는 정말 하늘만 보고 싶은 하루였어요.
정말 근사한~ 파란 가을 하늘이었죠~~ ㅎㅎㅎ

블랙겟타 2016-08-2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염 때문에 한동안 하늘 볼 일이 없었는데.. 사진 속 하늘은 예쁘네요. ㅎㅎ

단발머리 2016-08-28 22:31   좋아요 1 | URL
네~~ 블랙겟타님~~
특히 올해 날씨 너무 덥다고 많이 불평했었는데,
더 더워서 더 파란 하늘은 아니었겠지만 ㅎㅎ
깨끗하고 파란 하늘 때문에 즐거운 요즘입니다.^^

순오기 2016-09-0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실감나는, 예쁘고 멋진 가을 하늘이네요~

지난 토욜 더민주전당대회장 앞에서 피켓 들고 서있을 때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피켓 내려놓고 사진 찍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드랬지요.ㅋㅋ
그래~ 앞으로 이런 하늘 볼 날이 많을 거야~ 스스로 토닥이면서!^^

단발머리 2016-09-02 15:53   좋아요 0 | URL
광주에서 왔어요~~ 피켓이 너무 마음에 와닿더라구요.
국민의 뜻을 알고 정치권에서 속도를 내야할텐데, 각자 자기들 셈법하느라... ㅠㅠ
세월호 가족들만 애타서 맘이 아파요.
저도 잠깐이라도 나가봐야겠어요.
광화문에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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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및 교열 20년의 내공이 확인해주듯 책 속 틀린 문장의 예들이 아주 구체적이다. 실제로 내가 자주 쓰는 문장들이 틀린 문장의 예로 등장한다. 아주 자주.

제일 먼저 피해야 할 표현은 ·의를 보이는 것·이다.(18) ‘을 뺀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이다.

‘-한다‘-, 따위를 붙이면 무슨 간접 화법처럼 보이는데(실제로 사랑한다라는 것은이나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은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몹시 어색하다.

사랑이란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라고 써도 문제는 없다. 일부러 것은것이다를 반복해 써서 강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습관처럼 반복해서 쓰면 문장이 어색해진다. (34)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아주 기본적인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주격 조사 ,가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자격을 갖게 되고, 보조사 , 이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제, 곧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가령 모두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모두는 주격 조사 가 붙어 주어의 자격을 갖는 반면, ‘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은 보조사 이 붙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80)

 

산 너머 산. 편리함 때문에 로부터를 고집해서 사용하다 보면 이런 문장을 쓰게 된다.

몇몇 죄수들이 담 한쪽에 난 구멍으로부터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가 도망쳤다

몇몇 죄수들이 담 한쪽에 난 구멍을 통해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난에서 벗어날 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아무데도 없었다).

그들이 정보원으로부터 얻어 낸 것은 허위 정보였음이 밝혀졌다.

그들이 정보원에게 얻어 낸 것이 허위 정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107)

 

첩첩산중. 두 번 당하는 말도 자주 쓰고 있다.

둘로 나뉘어진 조국

둘로 나뉜 조국

그때 그 사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그 사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생존자의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생존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123)

 

설상가상. ‘-는가역시 자주 쓰는 표현이다.

‘-는가현재의 사실에 대한 물음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있다’, ‘없다’, ‘계시다의 어간, 동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 ‘뒤에 붙어 막연한 의문이 있는 채로 그것을 뒤 절의 사실이나 판단과 관련시키는 데 쓰는 연결 어미는가가 아니라 는지이다.

나는 이 도시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이 도시가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그 힘이 무엇인가를 자문해 보았다.

나는 이 도시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이 도시의 힘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았다. (177)

 

점입가경. ‘시작하다역시 즐겨하는 표현이다.

놀람, 슬픔, 어색함, 민망함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은 시작과 끝을 명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작하다를 붙이면 어색하다.

사람들이 놀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놀랐다.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슬퍼졌다.

 

마음에 들거나 후회하거나 알아채거나 하는 심리적인 변화는 시작하다와 어울리지 않는다.

소개받은 여자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소개받은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벌써 그 일을 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벌써 그 일을 한 걸 후회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챘다. (185)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히도록 한쪽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곁들인 형태로 구성되었다.(10) 각 장 앞부분에는 이메일을 통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고 물었던 함인주라는 가상의 인물과 물음에 답하는 저자의 답변이 교차로 등장한다. 문장과 문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신경전 내지는 문장에 대한 정의와 이해, 그리고 오해에 대한 대화가 흥미진진했다. 중간에는 호러적장치도 준비되어 있어 쉽게 놀라는 나 같은 사람은 아주 작게 엄마야!’를 부르기도 했다.

문장의 시선과 내가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나 자신의 거리에 대해, 그들 사이의 긴장감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문장을 생각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여기 있고 내가 가야 할 곳이 저기 빤히 보이는데

나는 왜 저곳에 가지 못하는가. 내가 갈 수 없다는 걸

나는 아는가? 아니면 모르는가? 안다고 하면 내 의지는

위선이 되고 모른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 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죠.

마음으로는 이미 수도 없이 건너가 버린 그 거리를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는 겁니다. ...

문장의 시선은 결국 거리를 좁히려는 나의 의지와

당겨지지 않으려는 풍경 사이의 긴장감이 만드는 것

아닐까요.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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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8-2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어서 사봐야겠어요 :-) 서평만 봐도 부끄러워지네여

단발머리 2016-08-25 10:08   좋아요 1 | URL
제가 자주 쓰는 문장들이 자주 나와요. ㅎㅎ
저도 부끄러운 시간을 이겨내야했습니다.
더위도 이겨내야 했는데 ㅠㅠ

다락방 2016-08-2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보고 싶은데 제가 이 책을 샀는지 안샀는지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모르겠어요 ㅠㅠㅠ

단발머리 2016-08-26 15:4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방에 가서 책장과 책탑을 헤치고 직접 찾아보고 싶은 이 마음~~~~ ㅎㅎㅎ
 

 

 

 

 

 

 

 

 

또 소설을 읽지 않고 소설가의 에세이를 먼저 읽는다. 위화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 했고, 위화의 책으로는 첫번째다. 제일 흥미로운 부분을 옮겨본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결심하게 했던.

 

매큐언은 다른 작가들이 자기에게 미친 영향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당신이 5, 6주 시간을 들이면 필립 로스를 모방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가 나쁘지 않다면 그다음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흉내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에 나는 문학은 마치 길과 같아서, 양쪽 방향으로 모두 향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의 독서 여행은 이언 매큐언을 거쳐 나보코프와 헨리 밀러, 필립 로스 등의 정거장에 이른다. 반대로 나보코프와 헨리 밀러, 필립 로스 등을 거쳐 이언 매큐언의 정거장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이언 매큐언의 서사가 우리의 독서와 여러 가지로 교차되는 이유다. (121)

 

5, 6주 시간을 들여 필립 로스를 모방하는 게 가능한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필립 로스라는 길을 거쳐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겠다는 매큐언의 말은 한편으로는 결연하고 또 한편으로는 웬지 모를 편안함을 준다. 매큐언이 열어둔 길로 필립 로스에게 갈 수 있고, 필립 로스와 함께 있다 보면 매큐언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다.

위화의 말이 옳다. 문학은 마치 길과 같아, 양쪽 방향으로 모두 향할 수 있다.

매큐언에게서 필립 로스로, 필립 로스에게서 매큐언에게로.

 

<속죄>, <칠드런 액트>, <첫사랑, 마지막 의식>

 

 

 

 

 

 

 

 

<유령 퇴장>, <포트노이의 불평>, <에브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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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08-2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에 관한 책인줄 알고 골랐다가 위화작가의 에피소드가 많아서 잠깐동안 놀랐던 책이에요. 절반정도 읽다가 뒀는데 마저 읽어야겠어요. 책 읽게 만들어주는 책 이었어요~

단발머리 2016-08-25 10:01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절반 정도 읽고 이 페이퍼를 썼어요.
위화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소개를 읽어보니 중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작가인것 같더라구요.
전 아직 작품을 안 읽어봤지만,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네요. 위화^^

기억의집 2016-08-2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상하게 이언 매큐언도 필립 로스도 불편해요. 특히 저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재밌기는 한데, 소설속 장면이 이게 뭐지 하는 게 간혹 있어요. 예로 칠드런 액트 읽는데, 맨 마지막 장면에서 그 청년이 백혈병 재발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 남편이 부인에게 그 아일 사랑했냐고 다그치는 장면에서 이게 뭐지 이랬다니깐요. 저도 나이 사십 후반 좀 있으면 오십 바라보지만, 주인공이 육식 가까이 되는 나이였나 그럴 겁니다.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 나지 않지만, 보통 그 나이에 그 아일 연민으로 바라보지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진 않지 않나요? 그 장면 정말 웃겼어요. 너무 오버해서. 나이가 젊든 늙든 저런 관계조차 사랑으로 보다니, 이언 맥큐언의 남자의 심리가 늙던 젊던 그렇다는 걸 보여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나 싶더라구요. 분명 그 판사가 그 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연민이 맞는데... 이건 뭐지 싶었어요. 제가 읽었던 책중에서 아마 최악의 장면이지 않나 싶습니다.

다락방 2016-08-25 14:32   좋아요 1 | URL
크- 기억의집님께서 말씀하신 그 마지막 장면, 저는 참 좋아했어요. 좋아하고요.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었거든요. 저는 기본적으로 연민이 아닌 사랑이 찾아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래서 그 질문이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지거든요. 무엇보다 그 아이에 대한 얘길 남편에게 다 했다는 것, 그 얘길 다 해도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 이야길 다 듣고 잠드는 아내 곁에 있어주는 남편이라는 게, 그전에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바닥까지 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함께한 시간이 오래된 관계라는 건 다시 이런 식으로 회복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저는 이언 매큐언 소설을 네 권정도 읽었는데, 그 중에 [칠드런 액트]가 제일 좋았어요. 병이 재발하고 다시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에서는 `와 이 아저씨 정말 세구나` 생각했고, 자신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르는 감정에 소년이 집착하는 걸 보면서 `인간이란 정말 너무나 불안정한 존재` 이며 `서투른 연민은 정말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구나` 라고도 생각했거든요. 종교와 사회와 개인과 사랑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그 한 권에 썼다고 생각했어요.

단발머리 2016-08-26 16:09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언 매큐언과 필립 로스가 불편해요. 불편해요. 그런데도 좋아요. 자꾸 끌리고.
저는 제가.... 더 정확하게는 필립 로스에게 매혹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를 불편하게 하는 필립 로스를 좋아합니다. ㅎㅎㅎ

제가 어제.... 기억의 집님 댓글을 봤을 때 도서관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 건가 책을 찾아 확인해봤어요.

˝입술을 완전히 맺댄 채로 담백한 키스가 가능하다면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한순간의 접촉이지만 키스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 어머니가 장성한 아들에게 하는 입맞춤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 초 정도, 아니 어쩌면 삼 초 정도의 접촉, 말랑한 입술의 부드러움 안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있던 모든 세월, 모든 삶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

저는 피오나가 그 아이에게 가졌던 감정이 연민이 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연민에 근거한 감정이지만 연민만은 아니었고.... 일부러 피오나가 그 아이를 피하는 과정 전체가 두 사람이 갖게 될지도 모를 관계의 위험성에 대해 미리 감지한게 아니었나...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좀 더 정교하게, 세련되게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랬다면 남편의 버럭도 이해될 수 있었을 테고요.
그런 면에서는 저도 최악의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단발머리 2016-08-26 16:19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안녕하시어요~~^^

저는 피오나가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꼭 하지 않아도 됐었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자기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잖아요... 나쁜.... 그런데도 피오나가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한 건, 피오나가 그 키스의 위험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가벼운 키스가 아니라, 서로의 삶과 시간을 꿰뚫은 키스라는 걸 피오나는 느꼈던 것 같구요. 남편은 피오나랑 함께한 시간이 기니까, 피오나가 짧게 말했을 때 본능적으로 알아챘던 것 같아요.
당신.... 진짜로 그 애를 사랑했던 거구나.... 그래서 버럭!! 했던 거고요.

저는.... 그 아이도 약간은 느끼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 아이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피오나가 연민 이상의 감정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 아이는 더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이니까 어디까지나 피오나의 반응을 살필수 밖에 없는데,
피오나는 말하지요... 넌 가야돼....

그래서, 자살이라고 생각해요. 피오나처럼 저도, 그 아이는 자살한 거라고 생각해요.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무게 때문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매큐언의 작품은 <속죄>예요. ㅎㅎ
 

 

  

 

 

 

 

 

 

 

제일 큰 잘못은 휴가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이 책을 대출한 일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먼저 접한 독자라면 그 둘을 아우르는 흥미로운 프리퀄로 읽는 재미 또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 407)

 

 

 

 

 

 

 

 

내가 그런 독자다. 줄리언 반스의 책 중, 이렇게 두 권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는 일평생 사랑했던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너무나 애달팠다. 이 책은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죽음에 대한 해석이 좀 더 유쾌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런데... 애를 많이 먹었다.

서서히 찾아든 아버지의 죽음, 자기중심적이고 당당한 어머니의 죽음, 가족에 대한 어릴 적 기억들과 철학교수인 형과의 대화, 죽음을 키워드로 수집한(?) 예술가들의 일화와 인용문들이 교차 등장한다. 종교예술 애호가로서 신자들에 대한 부러움과 미래의 인류에 대한 과학적 예측들도 이어진다. (옮긴이의 말, 404)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았지만 그런대도 쉽지는 않았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와 달라서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전망이 너무 암울해서이기도 하고, 일면 그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따라가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구절은 이렇다.

 

라디오에서, 인간 의식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인간의 뇌에도, 컴퓨터상의 뇌에도 중심이 없다(자아가 있는 곳도 없다)’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우리가 영혼이나 혼에 대해 생각하는 개념은 분산된 뉴런의 절차개념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299)

    

당연하지! 틀렸다. (틀려도 이만저만 틀린 게 아니라) 늘 틀렸었다. 그런 데다 그렇게 직설적으로, 위협적으로 중대한 것을 지금껏 생각해보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아마추어적인가. 60억 년 후에 멸종될 존재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를 훨씬 뛰어넘는 어떤 존재, 그렇지 않다 해도 아무튼 우리와는 완연히 다른 존재가 멸종될 것이다. ... 최고의 존재니 가장 똑똑한 존재니 하는 건 잊어버려라. 진화가 모종의 웅대한, 비인간적인,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버전의 우생학이라는 말도 잊어버려라. 진화는 우리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우리를 데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진화는 엉성한, 적응하기엔 역부족인 원형인 우리를 저버릴 것이며, 그런 후 우리(와 바흐와 셰익스피어와 아인슈타인)’를 고작 박테리아와 아메바처럼 여기게 될 정도로 까마득하게 다른 새로운 형태들을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348)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죽음-영혼-내세의 문제를 따로 떼어 내어 생각하지 못 하겠다.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고, 분해와 변형의 과정을 거치게 될 육체와 달리 영혼은 불멸의 존재라 믿는다. 물질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혼이 속해 있을 특정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시대 유럽 사회에서 ’, ‘천국그리고/혹은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일은 모험에 가까웠을 것이다. 징벌에 가장 극한 형태가 출교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에 대해 믿었고, ‘내세에 대해 확신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21세기, 지금 이 시대에, ‘천국’, 그리고/혹은 지옥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희극적인 일이라 여겨지지 않겠는가.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을 읽자의 설명은 이렇다.

 

왜 모든 인류 문화가 종교를 지니고 있을까? 도킨스는 이것을 바로 (문화유전자)’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시간과 에너지를 생존과 번식에 투자하는 유전자만을 선호하는 냉혹한 자연 선택 속에서 너무 낭비적이고 사치스럽고 파괴적인 종교가 살아남은 이유는, 다른 상황에서는 유용한, 혹은 과거에는 유용했던 심리적 성향의 불운한 부산물인지 모른다고 말이다. ....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연대감과 우리의 존재를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충족시켜 준다는 이점 때문에 종교는 모든 부족에서 각자 다른 형태로 진화해 왔다. (154, 156)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98)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여러 가지 제도들 중 최고로 정교한 형태라는 뜻일테다.

 

 

 

 

 

 

 

 

책은 도끼다에서 박웅현은 말한다.

그러니까 긴 흐름으로 봤을 때 제가 칠십 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그만큼의 박웅현이라는 객체는 객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수억 년의 흐름에서 칠십 년인 건데요. 끊임없이 이어진 기다란 띠에서 점 하나 찍는 정도도 안 되는 순간을 제가 사는 겁니다. 큰 흐름의 관점에서 보면 제 몸뚱이는 잠깐 동안 뭉쳐졌던 덩어리죠. 어느 순간 생겨나서 칠십, 팔십 년 살다가 죽고, 죽으면 썩을 거예요. 땅속에 묻어두면 벌레들이 먹을 거고 누군가의 자양분이 되겠죠. 그러면 나란 실체, 존재는 없어지죠. 이렇게 흩어져버리는 게 죽음이고 이게 큰 기의 흐름이라는 겁니다.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가 바로 이 얘기인 것이죠. 그렇게 보면 소유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삶에 의미가 있을 겁니다. (336)

 

아직도 서성이는 사람에게는 역시 도킨스가 쐐기를 박는다.

철 좀 들어라,라는 것이 도킨스의 요지다. 신은 가상의 친구다. 당신은 죽으면 끝인 거다. 어떤 영적 경외감을 느끼고 싶은 거라면 망원경으로 은하수를 찬찬히 관찰하면 된다. 바로 지금 당신은 아이의 만화경을 빛에 비춰 보고 있는 것이며 그 색색의 마름모꼴들이 신이 집어넣은 거라 둘러대고 있는 것이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149)

 

그래서, 요약을 해 보자면. 거친 산문을 쓰듯이 거칠게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뇌는 우리 몸의 다른 부분처럼 고깃 덩어리일 뿐이고, 자아는, 정신은, 영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종교란 인간 세계의 결속을 위해 지어낸 가장 세련된 거짓말이며,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철 좀 들어라. 당신은 죽으면 끝인 거다.

사람의 생각이란 쉽게 변하는 게 아니고. 물론 나도 그렇다.

 

불가지론자인 그가 신을 믿지 않음에도 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것이다. 철학자인 그의 형은 그런 그가 질척하다고 일갈하지만, 그는 자기와 달리 내세를 믿고, 그래서 르 레베일 모르텔’(죽음의 엄존성과 삶의 필멸성에 눈 뜨는 계기)에 시달릴 일 없는 신자들(구체적으로는 기독교도들)을 부러워한다. (옮긴이의 말, 405)

 

질척한 정도가 아니라, 풍덩 빠져 사는 나로서는 크게 반응할 일도 없지만... 다만...

죽으면 모두 끝이라는 이야기,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다면, 현재 삶의 의미 없음, 그 끝없는 무의미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하기는 하다. 나로 말하자면 생명과 죽음에 대해, 그 시작과 끝, 과정과 결과에 항상 감탄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더욱 솔깃해지는 스타일이니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각 정자와 난자의 주인들이 이처럼 무작위하게 서로를 선택하여 한 아이가 탄생하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 아이가 지니게 되는 유전정보의 고유성은 10²²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이 고유함이 곧 여러분들 각 사람이 지닌 정보의 정체성입니다. (정용석, <나는 이미 기적이다>,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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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2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일이 어려워요. 읽고 싶어서 어떤 책을 골랐는데 휴가지에서 읽으면 재미 없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8-22 21:5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는 이번 휴가 때는 책선택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집에서 읽기엔 괜찮았겠지만, 휴가지에서는... 어울리지 않았네요^^

잠자냥 2016-08-2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스를 좋아해서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참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ㅎㅎ 반스는 국내에서 <예감은...>으로 널리알려졌지만 그의 진면목은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플로베르의 앵무새> <내말 좀 들어봐>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기회되시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단발머리 2016-08-22 22:06   좋아요 0 | URL
저도 조금 힘들더라구요. 진도가 안 나가서요~~~
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익숙하네요. 읽어보지는 않았구요. 제목만 익숙해요^^
추천하신 다른 책들도 구경해봐야겠어요. 추천 감사해요. ㅎㅎㅎ

icaru 2016-08-2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키워드로 대여섯권의 책을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 많지 않아요 와!! 짱이어요!!! ㅎ ,, ㅎ
저는 음... 읽은 책 한 권 나와서 반색한 얼굴 하고 있네용

단발머리 2016-08-24 23:36   좋아요 0 | URL
진심으로..... icaru님께 재차 말씀 드리지만 제 방에 자주 좀 오세요~~~~
icaru님 칭찬에 기쁨의 몸이 된 단발머리의 부탁입니다^^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재주는 없구요. 생각나는 구절만 모아봤어요.
읽으신 책 한 권은 무엇이었을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