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16, 나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리뷰에서 이렇게 썼다.

 

정확하고 절제된 언어로 말하는 여성주의를 보고 싶다면 정희진을 봐라.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지 않는 우아한 문체를 보고 싶다면 정희진을 봐라. 이민경이 있고 정희진이 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가 있고 페미니즘의 도전이 있다.

 

그리고, 20161022일 한겨레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의 첫 문장은 이렇다.

 

나는 우아한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편견에 시달려온 여성, 여성주의자로서 자기 검열이다.

 

내가 이해하는 정희진님 문장은 힘이 있되 정제되어 있으며,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문장은 쉽고 아름답다. 나는 그녀 문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우아함을 생각했고, 그것이 가지는 힘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은 우아한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의 소산이다. 편견에 시달려온 여성, 여성주의자로서 그녀는 우아한글을 써야한다는 강박 속에서 글을 쓴다. 그녀의 자기 검열을 통과한 우아한문장만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과도한 도덕적’, ‘사회적책무를 부여한다.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비난한다. 페미니스트는 이러면 안 되고, 저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라는 규정 속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페미니스트 중에는 정희진님처럼 한겨울에도 얼굴에 아무 것도 바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엠마 왓슨처럼 화사하고 어여쁜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자연보호와 환경보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외출하면 테이크 아웃 커피를 꼭 한 잔 마시려는 사람도 있다. 남자와 구별되지 않는 옷차림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짧은 치마를 입고 나서 스스로의 모습에 흐뭇해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야만 하는 글쓰기에서 정희진님은 우아함을 선택했다. 그녀는 자신의 논지를 우아한방식으로 드러내려 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인지된다. 이민경씨는 좀 더 강력한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녀는 발랄하고 전투적이다. 정희진님의 우아함과 이민경씨의 전투성은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갈 때, 여성들이 유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의 한 가지일 뿐이다. 우아할 수도 있고, 전투적일 수도 있다.

 

지난 115일이었다. 촛불집회로서는 두 번째 집회이고, 나로서는 첫 번째로 광화문 광장에 나간 날이었는데, 730분부터 행진이 시작됐다.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종로-퇴계로를 걷다가 을지로-시청-청계광장을 거쳐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왔다. 광장에서 다시 만난 각 노조원들과 대학생들은 깃발 아래 바닥에 착착 앉기 시작했고, 절친 동생과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방송이 나왔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모두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시간을 확인해보니 97분이었다. 단체로 참여해 깃발 아래에 앉은 사람들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족 단위로 나왔던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가는 거야? 끝난 거야?”

물론 밤늦게까지 집회를 계속한 분들도 많았겠지만, 진행 본부에서 이제 오늘은 끝났으니, 안녕히 돌아가시라,하니 많은 인원들이, 나중에 보도를 들어보니 30분만에 몇 십만의 사람들이 물밀듯이 광화문 광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가족에게로, 각자의 가정으로 그렇게 평화롭게 돌아갔다.

집 근처 맥도날드에서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를 나눠 먹으며 절친 동생에게 말했다.

, 이런 국민들이 있냐? 집에 가래니까 진짜 다 집에 가네. 나도 집에 왔지만.... 진짜 대단하다.”

평화 집회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100만이 주말마다 나와 촛불을 들어도 꿈쩍도 안 하는 이런 정부를, 국민과 검찰, 야당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런 부당한 정권을 언제까지 참아줄 것인가.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어떤 것이 더 나은 방법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비록 그것이 정당한 요구일지라도, 정당한 요구의 모습이 폭력적으로 비춰졌을 때, 폭발적으로 집중된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변하지는 않을까,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고, 서해 바다 바로 앞까지 일본의 군대를 끌어들이는 한일 군사정보 협정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이 정권은 어찌 되었건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어떤 방법이 더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싶다.

국민들은 정희진님 방법을 쓰는 거다. 국민들은 우아하게 가는 거다.

국민들은 같이 나와 같이 앉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구호를 외친다.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한다. 의경에게 욕하지 않고, 박사모와 싸우지 않고, 청와대 바로 앞 차벽 앞까지 가서 의경과 경찰들을 감화시킨다. 국민들은 우아한 방법을 쓴다. 우아한 방법이기는 한데 그 우아함을 유지하는 게 조금 힘들 수도 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주말에는 춥지 않고 비도 오지 않기를...

정치인들은 이민경씨의 방법을 쓴다. 전투적으로 간다.

정치인들은 서둘러 탄핵 절차를 합의하고, 합의대로 국회 탄핵 절차를 진행한다. 새누리당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를 지르고, 대통령 면전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피켓을 들고, 대통령을 앞에 두고 하야하라!’고 외친다. 근래에 가장 모범적인 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무위원 한 명이라도 대통령에게 제대로 직언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겠나. 이 시국에 책임지는 국무위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19604·19 당시 경무대에서 허정 외무장관과 김정열 국방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하야를 건의했고 그 다음 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국민에 대한 그런 책무감,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한 그런 용기도 없느냐며 국무위원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는 법무부 장관은 어찌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나. 앞으로 어떻게 국민에게 법치를 말하고 국민에게 법을 준수하라고 말할 수 있나고 지적했다. <원문보기: 한겨레 신문 20161122,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71403.html#csidxa159cee05eb90e28047ac65f6c4f8fa>

 

박원순 서울시장은 쭉 이대로 하시면 되겠다. 이민경씨의 방법 그대로 말이다.

국민들은 우아하게, 정치인들은 전투적으로, 투 트랙으로 가는 거다. 국민들은 평화적으로 시위하면서, 우리가 위대한 3.1. 운동의 계승자임을, 비록 우리가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는 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비아그라, 팔팔정 따위를 구매하고 거짓말하는 이런 비루한 대통령을 부끄러워하고 규탄하고 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린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촛불에 기대어, 촛불을 핑계로, 촛불을 이유로, 촛불에 근거해 청와대와 새누리당, 아직도 대통령 눈치를 보는 정신 못 차린 공무원 사회를 압박한다. 전투적으로, 집중적으로, 강력한 톤과 어조로 압박한다.

우아하게, 또는 전투적으로 그렇게 가자.

더 이상은 쓸 말도 없다. 태반주사 넘으니 비아그라. 에헤라, 팔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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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1-2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국민들고 굳이 우아하게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단발머리님의 이 글은 진짜 너무나 좋습니다. 단발머리님 진짜 요즘에 글빨 장난아니신 것 같아요. 아, 뭔가 칭찬이 천박하네.... ㅠㅠ

저는 제가 단발머리님과 이렇게 교류하는 친구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페미니스트 입니다. 그리고 단발머리님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이며, 이런 글을 읽고 쓰는 일들이 무척 소중하다고 여겨집니다. 단발머리님, 아무쪼록 우리 서로 지치지 않게 다독여가면서 함께 나아갑시다.

단발머리 2016-11-24 18:58   좋아요 0 | URL
우아하게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는 해요. 국민들은 우아한데, 상대가 너무 막 나가니까요.
칭찬 감사해요.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기분좋은 칭찬이예요. ㅎㅎ

저는 제가 다락방님과 이렇게 교류하는 친구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릴리로즈 립스틱을 바르는 페미니스트예요. 그리고 다락방님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이고, 이렇게 같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게 무척이나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님, 우리 우아하게 야무지게 손 잡고 함께 나가요.^^

아무개 2016-11-2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미니스트가 세상을 바꿉니다!
저는 전투적으로 해볼랍니다^^

단발머리 2016-11-25 15:12   좋아요 0 | URL
네에~~ 좋아요~
아무렴 비율은 1:1이 진리죠!!
우아하게! 전투적으로! 전진! 행진!
 

 

 

 

 

 

 

 

  

전 세계적으로 7천만 부 이상 판매된 잭 리처 시리즈의 열여덟 번째 이야기이자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평론가 재닛 매슬린, 세계적인 작가 마이클 코넬리 등이 잭 리처 시리즈 중 최고로 꼽은 책. 아마존 역대 잭 리처 시리즈 중 가장 많은 5,000여 건의 리뷰가 등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알라딘 책소개), 알라딘 인기서재 님의 사랑을 받았던 바로 그 책. 잭 리처 시리즈, 네버 고 백.

친절한 네이버에서 잭 리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잭 리처 : 네버 고 백이 완성된다. 클릭해 보면, 1130일에 개봉예정인 영화 <네버 고 백>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톰 아저씨가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책 속의 잭 리처는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지만, ‘잭 리처, 네버 고 백예고편을 보고 온 뒤라 리처라는 단어를 보고는 톰 크루즈를 연상하게 된다.  

 

 

 

 

짧은 통화로 호감을 느꼈던 수잔 터너 소령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버지니아로 찾아온 잭 리처는, 모건 중령을 만나자마자 두 가지 죄목의 피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또 다른 누명을 쓰고, 영창에 갇히게 된 리처. 아직 이 여행의 목적이었던 터너를 만나지도 못한 상태다.

네 번의 예스 또는 노. 각각의 경우는 철저하게 독립적으로서 전후 경우의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그 자체로는 모두 5050이지만 네 번 모두 예스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은 약 6퍼센트였다.

하지만 희망은 최선을 기대하며 품는 것이다. (104)

 

네 번의 예스, 6퍼센트의 가능성이 있어야 리처는 터너를 만날 수 있고, 그리고 그녀와 함께 탈출하려는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리처는 그 6%에 희망을 건다. 6%의 최선을 기대한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터너 소령을 만난다. 목소리만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람을 드디어 만난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그게 그의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기다린 시간을 보상 받고도 남는다. 그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두 번째 생각이었다.

... 볼수록 멋있는 여자였다.

기다린 보람이 차고도 남는다. 리처는 다시 생각했다. (116)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 머리속으로만 그렸던 사람, 보고 싶었던 사람을 실제로 만났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 기다린 보람이 있다라면, 그건 정말 근사한 일이다. 기다린 보람이 차고도 남는다,라고 기다려준 사람이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고, 계속 기다려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도 있겠지만, 어느 시간에, 어느 순간에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기다렸던 사람이, 기다린 보람이 차고도 남는다고 말해준다면, 인생은 너무 근사해진다.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났다. 꿈은 이루어지고, 그리고 사랑도 그렇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정치 이야기, 뉴스 이야기다. 쇼킹한 뉴스는 다 나왔지 않겠나 싶어 뒤돌아보면 더 어처구니없는 뉴스들이 떼로, 줄을 지어 쏟아진다. ‘---최순실혹은 ---하야의 국면이다. 전인권의 ‘상록수의 감동을, 너무나 고운 목소리로 박근혜 무기징역!’을 외치던 뒷줄의 어여쁜 여성분을 뒤로 하고, 뒤로 하고 싶어, 잭 리처를 읽었다. 그의 손을 잡고(나혼자 잡고) 구치소를 탈출해 황량한 시골, 넓디 넓은 미국땅을 같이 헤매고, 리처의 딸이 진짜 리처의 딸인지 확인하고, 비행기를 타고, 그리고는 그렇게 돌아왔다. ‘---리처의 결말을 이뤄보려 했다. 이뤄보려 했으나, 이런 구절이 또 발목을 잡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많은 건강한 시민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인 양 호도하는 세력이야말로 여론을 왜곡하는 악의에 찬세력이다. ... 이미 1978년에 프러시아의 철학자 칸트는 이처럼 자신이 속한 국가 혹은 조직에 대한 비판 자체가 곧 배신이며 배반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국민들의 불만은 자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족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의 증거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방하기 좋아하는 선동자들은 자기 자신을 뽐내기 위해서 이러한 순수한 동기의 정담을 혁명욕이나 급진주의 내지는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동으로 간주한다.” (임마누엘 칸트, 칸트의 역사철학, 이한국 편역, 서광사, 1992, 122) (39-40)          

 

 

 

한 달간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게이트는 잠깐의 휴식시간도 없이 새로운 뉴스를 양산하고 있는데, 제일 충격적인 소식은 시크릿가든 길라임 가명 이야기도, 정유라 초등학교 친구 아버지 사업을 도우라고 현대차 회장을 불렀다는 이야기도, 차움병원 대리진료 의혹도 아니었다. 제일 충격적인 그리고 부끄러웠던 이야기는, 최순실이 지인에게 했던 이야기를 기사화한 것이었는데,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데도 자꾸 전화를 해 귀찮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를 읽을 때, 나는 집에 혼자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박근혜를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한결같았고, 변함 없었다. 내가 뽑지는 않았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박근혜는 (현재로서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전화를, 대통령이 직접 하는 그 전화를, 귀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이 나라의 대통령을 귀찮아하는 그 사람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이 귀찮아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이 뽑지 않았지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다. 최순실은, 최순실을 가족처럼 의지한 박근혜는 우리 국민을 그렇게 귀찮은 존재,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토요일마다 광화문으로, 각 지역의 집회 현장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현장에 나가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예전 같지는 않다. 유모차를 타고 온 아이들도, 아빠 무등을 탄 아이들도 무척이나 많다. 중고등학생들도 대학생들도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분들도 웃으며, 소리 높여 함께 구호를 외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12일 저녁, 친구와 함께 종로 3가 지하철역으로 들어섰을 때, 1회용 지하철 승차권을 사기 위해 길게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말해 준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부러 서울에, 광화문에 온 것이다. 그냥 나와 본 게 아니다. 약속을 취소하고, 선약을 뒤로 하고, 그리고 일부러 현장에 나온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이들의 노력과 연대가 승리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고민되기도 한다. 뒤로 가는 것 같지만, 후퇴하는 것 같지만 역사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진보한다는 한홍구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국민들의 분노와 함성에 귀를 막고 있는 청와대가 마지막까지 안면몰수 버티기를 감행한다면, 날씨는 추워지고, 사람들의 관심은 적어지고, 그리고 급조된 사건들로 종편과 신문이 도배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는 걸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암담한 상황이다.

우리도 리처처럼 기다린 보람이 있었으면. 우리도 리처처럼 기다린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었으면. 우리도 리처처럼, 기다린 보람이 차고도 남는다, 말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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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1-22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보석 같은 글입니다, 단발머리님.
많은 것들을 생각했어요. 특히나 차고도 남는 부분에 대해서요.
단발머리님 글은 사랑입니다 ♡

단발머리 2016-11-22 10:41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다락방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연 2016-11-2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발머리님 글에... 감동받고 있습니다...
기다린 보람을... 차고도 남게 받을 수 있다면... 제발.

단발머리 2016-11-22 12:13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연님~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이 기다린 보람으로 차고도 남게 돌려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바라는게 아주 큰 거는 아닌데..
그냥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국민들 편에 서주는 건데... 대통령의 권력을 개인이 아니라 국민 다수를 위해 사용하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ㅠㅠ
 
사피엔스의 미래
알랭 드 보통 외 지음,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사피엔스의 미래는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네 명의 세계적인 명성의 지식인들이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s의 토론자로 나서 총 3,000명의 시민들 앞에서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찬반 토론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가 한 팀이고,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주장 반대편에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가 선다.

스티븐 핑커가 인류의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제시한 것은 다음의 10가지다. 인간의 생명(수명이 3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난 것), 건강(인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천연두와 우역의 완전 퇴치), 물질적 번영, 평화, 안전, 자유(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열린 사회에 살고 있음), 지식(세계 인구의 82%가 기초 교육을 받음), 인권, 성 평등, 지능의 지속적 향상(35). 스티븐 핑커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좋고 나쁜 일의 발생 빈도를 그 근거로 제시하며 인류는 더 나은 미래로 전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말콤 글래드웰은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있어왔던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그 질문이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인류의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25년 전에 걱정했던 만큼 기근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문제들은 더욱 강력해졌고, 이러한 위험들은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규모의 타격을 인류에게 줄 것이라고 말한다.(69)

매트 리들리는 간단한 예로, 휴대전화가 전쟁을 악화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아프리카의 서민들도 싼 비용으로 모바일 뱅킹을 하고, 자기 번호를 널리 알려 일자리를 구하고, 친구들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각 개인의 삶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고 주장한다.(75)

이에 반해 알랭 드 보통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그들의 물질주의적 관점에 반대한다. , 인류의 삶은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향상되었을지 몰라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핵무기의 위협에 대해 말한다. 스티븐 핑커의 주장대로 핵무기가 80% 감소했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지금 지구에 남아있는 20%의 핵무기만으로도 우리 지구는 순식간에 날아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토론 전 투표 결과는 찬성표가 전체의 71%, 반대가 27%였다. 토론이 끝난 후 최종 투표 결과는 찬성 73%, 반대 27%로 승리는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 팀으로 돌아갔다. 옮긴이는 번역을 시작할 당시에는 진보에 찬성하는 쪽이었는데, 번역을 끝낸 당시에는 거의 중간 지점으로 이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로 말하자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지만,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천문학적인 사회적, 경제적 비용과 각 시설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고려할 때,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의 의견이 좀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조금 더 잘 살게 되었지만, 훨씬 더 위험해졌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우리가 낙관론을 따르기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큰 도움을 줄 다른 종류의 철학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 남을 용서하고 친절히 대하고 서로 공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함이 있는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에서는 우리의 결함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는 자신을 좀 편하게 대하고 최대한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입니다. (53)

 

사피엔스의 미래』 읽기는 이렇게 끝났다. <트럼프 당선 확실>의 뉴스를 보고, “엄마, 미국 개망했다.”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 우리가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니지. 트럼프의 미국과 최순실의 한국 중 누가 더 멘붕인가를 겨루는 이 암담한 상황에서 생각하는 사피엔스의 미래.

 

사피엔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출처 :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5477595&memberNo=11466887&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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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6-11-1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나요..우리 종 사피엔스의 미래는 있는 거겠죠? 우리는 늘 그랬듯이 답을 찾겠지요?

단발머리 2016-11-16 08:57   좋아요 0 | URL
우리 종의 미래보다 미국의 미래보다 우리 국민들의 미래가 더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ㅠㅠ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전 믿어요. 그렇다면 저도 낙관론인가요...
 

 

 

  

 

 

 

 

 

 

 

 

 

열시가 좀 지났을 무렵부터 민주당 본부의 닉에게서 걸려오는 전화가 점점 비관적이 되었고, 열한시가 되기 십오 분 전쯤에 걸려온 전화에 그들은 낙심했다. “출구 조사라는 게.” 전화를 끊고 빌리가 우리에게 말했다. “정확하지 않나봐요. 오하이오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고, 아이오와나 뉴멕시코에선 케리가 이기지 못할 것 같대요. 플로리다에선 졌고.”

... “하룻밤만 지나면 모든 게 더 끔찍해질 거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반면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타협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까진 그동안 품어온 승리에의 환상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겠어. 그전까진 고통으로 몸부림치거나, 상처 입은 짐승처럼 숨어버리겠지. 내 집으로 숨겠지.

... “, 세상이 너무 암울해.” 제이미는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를 질렀다. “지난번 선거는 요행 같았어. 플로리다가 있었잖아. 네이더도 있었고. 하지만 이번 선거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믿을 수 없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115-6)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펼쳐지는 세상, 말 그대로 박진감 넘치는 하루 하루다. 사건 사고는 소설 속이 아니라 신문 속에서 일어난다. 일주일은 정치사회면이었고, 오늘은 국제면.

김영하가 그랬다지. 쏟아지는 뉴스보다 재미없는 소설을 쓰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자니, 내가 이러려고 소설가 되었나 자괴감 들고 괴로운 나날입니다.

옳은 말이다.

이런 시시한 이야기나 쓰겠다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자니, 내가 이러려고 이 시간까지 잠 안 자고 있었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그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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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 2016-11-10 0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러려고 놀러가지 않고 투표하고 야근해서 세금내고 그랬나 , 순실일가 럭셔리 하게 상대하려고 ㅠㅠ

단발머리 2016-11-10 10: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내가 이러려고 이 나라 국민하나, 정유라 좋은 말 타면서 편히 살라고 ㅠㅠ

cyrus 2016-11-10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신년‘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낀 2016년으로 기억될 겁니다. 그런데 내년이 더 암울해질 것 같습니다. ㅠㅠ

단발머리 2016-11-15 10:24   좋아요 0 | URL
암울한 건 올해로 다 끝냈으면 좋겠네요.
나쁜 건 그냥 2016년에게 다 주고 싶어요. ㅠㅠ

2016-11-21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1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자 텐게시로는 42년간 소니에서 근무했으며 CD, 워크스테이션 NEWS, 애완견 로봇 AIBO 등의 개발을 주도했다. 저서로는 운명의 법칙, 우주의 근본과 연결되는 명상법, 경영자의 행동력등이 있는데, 오늘의 우리로서는 무척이나 친근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제목들이라 하겠다.

이 책은 2002년 도입된 일본의 유토리(종합 인성) 교육의 실패에 대한 설명과 고찰, 미래 세대인 아이들의 내면의 힘을 끌어내는 인간주의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필기 시험등의 학력이나 학업 성적이 인생을 결정하는 시대가 가고, 전혀 새로운 환경의 미래 사회에서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저자는 살아갈 힘을 이야기한다.

 

살아갈 힘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다. 자신의 능력을 키움과 동시에 그것을 유감없이 발취하여 생각을 표현하고,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여 자신의 위치를 획득해 가는 힘이다. (39)

 

저자는 행복한 인생을 위한 살아갈 힘의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한다.

네가 말을 잘 들으면 수용해 줄게.’라는 조건부 수용이 아닌 무조건적 수용

대뇌신피질에 의해 읽기· 쓰기· 계산 등을 배우기 전에 오래된 뇌를 발달시키기

무아지경의 상태로 놀이나 취미 생활에 집중하는 몰입의 체험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대자연 속에서 실컷 놀게 하기

 

주는교육보다 끌어내는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문자나 계산을 가르치기보다는 신나게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몰입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등은 모두 이상적인 교육 방법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주도 학습법을 가르치는 학원에 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인식해야 하고, 하고 싶은 어떤 일발견해야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알 수 있고, 그래서 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는 책의 저자와 옮긴이를 혼동케 하는 문장들이다. 저자인 텐게시로가 한국의 예를 구체적으로 드는 것은 이해를 돕는 면이 있겠지만, 65쪽에 최근 뉴스에는 학력 위조, 대리시험, 수능 부정행위 등과 관련된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 중심의 관행을 꼽을 수 있다.’우리는 도대체 누구인지. 문장만 보아서는 한국을 말하는 것 같은데, 텐게시로와 내가 어떻게 우리로 묶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예는 몇 개 더 있다.

현대 의학의 비인간적 출산 환경에 대한 지적은 인정하지만, 탄생 트라우마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전 세계의 어머니들이 의료의 개입을 받지 않고 자연 분만하여 즉시 아기를 품에 안고 초유를 줄 수 있는 환경 조성에는 찬성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29) 자연 분만과 출산 즉시 아기에게 초유를 먹였던 환경에서도 인류는 전쟁을 중단한 적이 없다.

 

요즘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듣느라 조금 바쁘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정오쯤에 업데이트되는데,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소개할 뉴스는 많은데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듣다 보면 모두가 한숨 나오는 소식들 뿐이라서, 내가 이러려고 오매불망 김어준을 기다리고 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나도 나 살길을 찾아야겠다. 독서는 즐거움이고, 독서는 탈출이다. 즐겁게 퐁당 빠져서 가열차게 페이지를 넘기게 할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고 싶다. 소설을 읽으며, 나도 살아갈 힘좀 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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