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나토가 벌인 합동 작전 그리고 국경을 넘는 파키스탄의 군사적 조치들로 아랍, 체첸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모인 해외 전사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알카에다 수뇌부 또한 도주하거나 살해당했다. 하지만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온 탈레반은 발붙일 곳이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술로 무장한 미국과 유럽의 침략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시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시간을 갖고 있다." _ 팀 마샬, <지리의 힘> , p585/660


 지난 8월 31일. 미군과 NATO군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수가 이루어지면서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가니스탄에 매장된 제국(帝國)이 또 하나 추가됐다.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2001년 개전 후 빠르게 승기를 잡았던 서구 연합군이었지만, 결국 전쟁의 최종 승리는 탈레반 차지가 되었다. 19세기 영국, 20세기 소련, 21세기의 미국을 차례로 물리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지만,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멸망에 이른 제국이 있으니, 바로 아케메네스(Archaemenes) 왕조의 페르시아(Persia)다. 


 다레이오스(다리우스 3세, BC 380~ BC330)를 구금한 이는 기병대장인 나바르자네스, 박트리아의 태수 베소스, 아라코티아와 드랑기아(Drangia)의 태수인 바르사엔테스(Barsaentes)였다.... 다레이오스를 구금한 자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따라잡힌다면 다레이오스를 넘겨주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하려 했다. 그리고 만약 추격을 받지 않으면 가능한 대로 대군을 모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동안 베소스가 지휘권을 행사했다. _ 아리아노스, <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 Anabasis Alexandrou>, p168 


 박트리아((Bactria)) 태수 베소스가 다리우스 3세를 인질로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356~ BC323)에게 협상을 제의하지만, 거절당하고 다리우스 3세의 칼로 찌르고 도주하면서 다리우스 3세가 숨진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은 알렉산드로스였지만, 황제의 숨통을 끊은 것은 현 아프가니스탄 지역 태수 베소스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제국의 무덤 첫 안장 국가가 페르시아라는 것이 큰 무리는 되지 않을 것이다.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지도] 아프가니스탄과 주변국들(출처 : 구글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1.9월호에서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다. 정확하게 20년 전인 2001년 9.11 테러의 배후로 알 카에다(al-Qaida)를 지목하고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개시하며 시작된 전쟁은 개전 며칠 만에 탈레반을 무력화시키고, 해를 넘기기 전에 아프가니스탄의 새 정부를 수립하면서 전쟁은 조기 종식되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지원받기 쉬운 남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숨어들어갈 수 있었다.


 

 국제법이 박살났다. 미국은 아무런 승인도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먼저 폭격을 쏟아부었다. 국제연합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국제연합은 2001년 9월 12일부터 12월 20일까지 만장일치(러시아와 중국 포함)로 관련 결의안들을 가결시켰다. 이제 이 전쟁은 정당방위나 침략국에 대한 무력사용의 범주를 벗이났다. 이것이야말로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실패와 혼돈>, p29


 마치 마오쩌둥의 홍군(紅軍)이 국공내전(國共內戰) 당시 농촌을 근거로 세력을 확장한 것과 같이 탈레반 역시 농촌에 자리잡을 수 있었고, 같은 이슬람국인 파키스탄의 지원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현정부에 대한 반감이 더해져 결국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재점령이 가능했다는 것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탈레반은 카불에서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다른 진영들과 달리 종족적 잠론을 모두 거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민족주의의 옹호자를 자처했다... 탈레반의 전략은 중앙정부의 결함을 해결해서 공공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었다. 탈레반은 시골 지역에 자리잡고, 주지사, 판사, 학교 교육 담당자와 보건 담당자, 비정부기관 관련 담당자들과 함께 그림자 정부를 건설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중앙정부의 '결함'을 파고든 탈레반의 '해결사' 전략>, p33


 공세가 시작되기 전부터 전국 75개 지구가 탈레반 통제하에 있었고, 탈레반은 주로 농촌 지역을 관할했지만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도 활동했다. 탈레반은 모습을 감추지도 않았으며, 여성 인권의식이 없는 일부 국민의 시각에서 그들은 부패한 정부 권력보다 더 올바르고 때로는 더 나은 방식으로 지역을 통치했다...  탈레반은 여러 도시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국가 전체를 고립시켰다. 도시 간의 주요 통신선을 단절시키고, 30개의 국경검문소 대다수를 점령했으며, 정권의 수입원을 끊고 공급망 중에서도 특히 식량 공급을 통제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탈레반의 속전속결 아프간 장악, 그 비책은?>, p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무리한 군사공격, 부패 무능한 정부, 농촌에 근거하여 지방정권화한 탈레반의 세력보존 등이 미군의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수중으로 넘어간 여러 이유들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단순한 절차적 실패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없는 것일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배에는, 서구권의 각종 실패가 집약돼 있다. 우선, 미국이 베트남전 이후 그 어떤 무력 충돌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사적 실패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 더 해롭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실패했다. 새로운 정권들의 심각한 부패, 참정권에 대한 불신 확산 측면에서 도덕적 실패이며, 침공을 한 사람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패다. 현지 정부들이 무너지고 축출해야했던 세력들이 단기간에 최고 권력을 차지할 상황이므로 정치적으로도 실패한 것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실패와 혼돈>, p29


 이에 대해서는 <지리의 힘 Prisoners of Geography: Ten Maps That Explain Everything about the World>의 저자 팀 마샬 (Tim Marshall)이 중국 지인과 나눈 대화가 답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이른바 서구의 가치들을 깃발에 걸고 자신에 이익에 맞게 행동하면서 '근대화'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무리하게 강제하려 한 모든 행동들이 지난 세기 많은 비극들의 진정한 원인은 아니었을까. 강대국이 심판자의 입장에서처럼 이들을 단죄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힘의 논리'가 국제질서에 존재하는 한, 언제든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재현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인권이라 부르는 것들이 중국에 전면적으로 도입되었을 경우 어떻게 폭력과 사망이 만연하게 된다는 것인지를 묻는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에게서 엄중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당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화에서 당신들의 가치가 먹힐 거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_ 팀 마샬, <지리의 힘> , p69/660 


 미군 철수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아프가니스탄 소식은 이제 거의 들리지 않느다. 대신,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치열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새롭게 국제 뉴스에 올라온다. 


관련기사 : https://www.ytn.co.kr/_ln/0104_202109250521499096


 

인도가 참여한 쿼드(Quad) 정상 회담이 오늘 아침 뉴스에 등장했다. 쿼드의 성격이 대(對)중국 포위망임을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럽게 인도의 라이벌이자, 중국의 우방인 파키스탄을 떠올리게 된다. 이 두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의 동쪽과 남쪽의 인접국임을 생각해본다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둘러싼 미-중 양 강대국의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과거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이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벌어진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의 여파로 '한반도 정전선언' 제안에 대한 답으로 '한국의 쿼드 참여 희망'을 답으로 받은 우리의 상황은 아프가니스탄의 일이 결코 우리와 무관한 사건이 아님을 일깨운다...

 

카슈미르는 인도-파키스탄의 비대칭성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분할 당시부터 인도의 국력이 압도적이었다. 영토와 인구 등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그 비대칭적 분할체제는 파키스탄의 경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동맹 노선을 표방하며 '대국 大國 외교'를 추구했던 인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세력 균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동맹 정책을 추진했다. 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2> ,p350/970


 '중국'과 '파키스탄'의 '철의 형제'는 역사적 산물이다. 파키스탄은 비고산권 중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가장 먼저 승인한 국가 중 하나였다. 양국이 국교를 수립한 해는 1951년이다. 보답으로 중국은 핵무기 등 민감한 기술을 전파해 주었다.... 이제는 21세기 실크로드의 첫 삽을 뜨는 모델하우스가 되었다. 중국개발은행(CDB)과 중국공상은행 등은 금융을 지원하고,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들은 인프라 사업을 펼치는 첫 번째 훈련장이 된 것이다. '철의 형제'는 '전천후 동반자'가 되었다. 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1> ,p206/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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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25 13:3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한국전쟁 종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물밑협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하였어요. 다음날 뉴스에서 미국의 반응 역시 긍정적이더군요. 종전의 당사국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할런지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때마침 겨울호랑이 님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9-25 15:28   좋아요 4 | URL
저 역시 어제 북측과 미국에서 나온 긍정적 반응에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다만, 오늘 아침에 쿼드 정상회담에서 한국도 함께 하길 바란다는 미국의 반응은 마음에 걸리네요... 단순한 희망인 것인지, 아니면 부드러운 압력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거서님, 평안한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무엇을 거절당했으며 무엇을 희망했었는가. 혼인을 거절하고 혼인을 희망했었다. 단순히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지순한 것을 거절당한 것은 이 편이며 거절한 것은 그 편이 아니었던가? 길상의 두려움은 서희에 대한 자기의식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는 데 있었다. _ 박경리, <토지 6>, P112/482


  박경리(朴景利, 1926 ~ 2008)의 <토지 6>는 길상과 서희의 어색한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서희가 상현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배우자로 길상을 생각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김훈장 등 주변인은 물론 결혼 당사자인 길상마저 이를 거부할 정도로 서희의 결혼 결정은 적지 않은 파장을 용정에 가져왔다. 무엇이 문제일까.


 야망은 불순물이다. 불순물은 혼합될 수 있는 것이다. 상현과 사이에 질러놓았던 지름목은 길상과 서희 사이에는 제거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드러내려는 서희의 모험을 길상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서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다던 그러나 길상은 그것만은 용납할 수가 없다. 서희와의 거리는 절체절명의 것이다. 왜냐? 자존심 따위, 사내로서의 오기 따위 그런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랑의 순결 때문이다. 순결을 지키고 싶은 때문이다.(p20).... 시초부터 야망의 수단이 아닌 길상과의 결합은 가능할 수 없었다. 적어도 길상과의 결합에 그것 이외 어떤 구실로 서희는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었겠는가. _ 박경리, <토지 6>, P21/620


 결혼(結婚)을 하려는 또는 피하려는 길상과 서희의 생각은 다르다. 서희를 사랑하기에 되려 거리를 두는 길상과 자신의 야망을 위해 결혼을 결심한 서희.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그래서 부부의 날이 5월 21일이라고 한다)는 결혼이기에 생각이 다른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이들의 결혼은 두 사람의 생각 차이 외에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앨런 맥팔레인 (Alan Macfarlane, 1941 ~ )의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 Marriage and Love in England 1300~1840>의 도움을 빌려 결혼과 사랑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인류학자 로버트 로우이(Lowie)에 의하면 대부분의 인류사회에 있어서 결혼을 성사시키고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관습적 견해이다. 원시부족뿐 아니라 서구의 몇몇 사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낭만적 사랑은 무색해진다. 낭만적 사랑이 없을 수는 없으나,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사안에서 로맨스는 중요치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_ 앨런 맥팔레인,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 , p179


 저자 앨런 맥팔레인은 대부분 인류 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결혼에 '사랑'이라는 감정 요인이 거의 관여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로부터 오늘날에는 보편화된 '낭만적 사랑'에 기초한 '연애결혼'은 오직 잉글랜드, 미국 등 영미(英美)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특성을 저자는 '맬서스주의적 결혼체제'라고 부르며,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에서 잉글랜드의 근대성과 연관짓는다. 이런 면에서 '개인의 감정'에 기반한 결혼은 근대적 양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자녀들이 가족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구실을 제공해 준다. 자녀들은 '사랑'을 위해 결혼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부부관계를 부모형제에 대한 유대보다도 최우선에 둔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는 '연애결혼(love marriage)'은 가족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이동시키는 이데올로기적 발판을 제공함으로써 자녀들이 부모세대를 떠나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사회적으로 상승이동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변동은 위로 향하는 부의 흐름에서 아래로 향하는 부의 흐름으로 전환하는 과정의 일부분이다. 이것은 또한 부모-자식 관계가 아니라 남편-아내의 관계를 가장 중요한 심리사회적 유대관계로 분리시키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_ 앨런 맥팔레인,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 , p182

 사실, 맥팔레인이 본문에서 지적한 '부모'는 단순하게 혈연적 부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속한 집단, 관습의 총체이며, 결혼 당사자가 이러한 관습을 거부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사자 의사'를 존중하는 제도가 우선 정착될 필요가 있었다.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결혼 당사자의 의견에 우선권을 준 이 같은 제도가 과연 산업화의 노동자 공급에 어떤 역할을 했을지는 별도의 페이퍼로 미루도록 하고, 여기서는 1910년대 간도 지역 서희-길상의 결혼 속에서 매우 서구적인 생각이 담겼다는 정도를 담자. 


 부르주아들이 즐겨 쓰는 결혼 전략은 소개에 의한 결혼이었다. '중매장이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 역할을 했는데, 대개 좋은 집안의 친지인 노처녀들로서 나무랄 데 없는 평판을 지니고 있어 모두에게 신뢰를 주는 인물이어야 했다. 이들은 서로 조건이 어울려 보이는 젊은이들의 만남을 주선하였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부모, 자크 샤스트네의 부모, 에드메 르노댕의 아저씨 부부는 이처럼 소개를 받아 결혼했다. _ 필립 아리에스 외, <사생활의 역사 4> , p350


  미래의 배우자를 고르는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 가지 조건이 탁월하면 다른 불리한 점은 무시될 수 있었다. 결혼 체제에서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아마도 재산과 혈통 사이의 용이한 교환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그러한 교환이 극도로 어려웠다. 예컨대, 낮은 카스트의 재산 많은 청년이 브라만의 가난한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부유한 유산계급(bourgeois) 청년은 귀족 신분과의 결혼에 장벽을 느꼈다. _ 앨런 맥팔레인,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 , p241


 우리보다 앞서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하는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도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은 매우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던 시대였다. 이 시대에 이제 막 신분제가 철폐된 조선 사회에서 서희의 결정이 가져온 충격이 컸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순결한 사랑'을 지키고자 결혼을 거부한 길상의 결정까지 함께 놓고 생각한다면 어느 시대 못지 않게 개인의 감정을 중시하고, 평등하게 바라보는 근대화된 시대상을 그리게 된다. 서희의 결혼 목적만 빼놓고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사회에서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은 재생산, 즉 자손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중요성이 있다(p219)... 결혼은 남녀 간에 견해차이가 있었고, 그와 동시에 가문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p223)... 반려자를 얻는 이상적 결혼, 우정으로서의 결혼은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이상인데, 기독교적 이상이 제시하는 결혼의 세 번째 존재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상호교제, 도움 그리고 위로였다.' _ 앨런 맥팔레인,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 , p229


 

그렇지만, 가문과 자신의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우는 몽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 에드몽 당테스와 같은 서희의 모습을 본다면,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결정이 아니라 관습에 누구보다도 철저한 결정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신분, 재산 등을 고려하지 않는 서희의 모습에서 냉혹한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anism)에 충실한 인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같은 서희의 면모가 길상으로 하여금 서희를 사랑하면서도 거리를 둘 수밖에 만들었던 것은 아닐런지.  결국, 이렇게 끝나는 듯하던 이들의 관계지만 용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닥친 불의의 사고로 극적으로 맺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고를 통해 이들이 '거리'를 분명 느끼면서도 결혼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비록, 그 운명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하겠지만.


 푼수 없이 지껄인 길상이나 체모 잃고 울어버린 서희, 푼수 없었다고 느끼는 이상, 체모 잃었다고 느끼는 이상, 이들 사이에는 엄연한 거리가 있는 거고 거리를 의식하면 할수록 멍울은 굳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더 깊은 고뇌를 안고 돌아가는 것이다.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때론 절망이, 때론 희망이 교차하는 마음은 끝없이 방황하면서. 그러나 이들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왔다. 그것은 용정을 향해 달리던 마차가 어떻게 되어 그랬던지 뒤집힌 사건이다. _ 박경리, <토지 6>, P159/482


 이번 주에 읽은 <토지 6>에서의 결혼을 둘러싼 서희와 길상의 미묘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한 근대적 사고를 길상에게서 발견하는 한편,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신분의 차이는 신경쓰지 않는 보수(保守)주의적인 서희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이 결혼으로 온전히 봉합되지 않았음을 길상의 귀마동(歸馬洞)에서의 환상에서 확인하게 된다. '꿈'이라는 환상을 통해 길상은 자신의 미래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부르다흐는 꿈-생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은 명제로 요약한다. <꿈의 본질적 특징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1) 지각 능력이 공상의 산물을 감각 인상처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정신의 주관적 활동이 객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2) 수면은 자아의 권능이 중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잠이 들면서 일종의 수동적 상태가 된다.... 자면서 보는 형상들은 자아의 권능이 중지된 결과 생겨난 것들이다. _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 p48/505



 말 한 필은 서쪽에서 돌아오고 다른 한 필은 동쪽에서 돌아오는 게요, 실은 그들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말이 돌아오는 거지만, 한데 사내와 여인은 옛날의 그들은 아니오. 아니거든. 머리칼은 햇볕에 타서 삼올 모양으로 누렇게 뜨고 얼굴에는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굵은 주름, 거미줄 같은 잔주름, 이빨은 빠져서 양 볼이 꺼지고 파파할멈 할아범의 모습들이오. 허나 그보다 슬픈 것은 사내와 여인이 서로를 알지 못하며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일이었소. 그네들은 타인이며 먹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요. 제가끔 자기 갈 길을 탄식하는 게지."_ 박경리, <토지 6>, P173/482


PS. <토지>를 읽다보면 길상이 환상에 빠지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만약,  무당이 이런 길상을 보면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도 길상은 스님이 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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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규모의 멸종은 2억 5,100만 년 전에 있었던 페름기 말기, 달리 표현하면 페름기 - 트라이아스(PTr)의 멸종으로, 5대 멸종 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학자들은 페름기 말의 대대적인 동물상과 식물상의 전환을 오래전부터 인식했으며, 고생대와 중생대의 경계 표시로 삼았다. 페름기 말기에 멸종이 일어나는 동안, 고생대 바다를 우점했던 대부분의 동물군들, 곧 산호, 유관절 완족동물, 이끼벌레, 자루가 있는 극피동물, 삼엽충, 암모나이트가 사라졌거나 크게 위축되었다. 식물, 곤충, 양서류, 파충류에서 광범위한 멸종이 있었고, 그들을 대체하는 우점군들이 나타나기까지 끔찍하게도 오랜 변화의 세월이 필요했다. _ 마이클 J. 벤턴, <대멸종>, p187


 마이클 J. 벤턴(Micheal J. Benton)의 <대멸종 When Life Nearly Died: The Greatest Mass Extinction of All Time>은 사상 최대의 멸종이 일어났던 페름기(Permian, 약 2억 9000만 년 전 ~ 2억 4500만 년 전)의 마지막을 주제로 한다. 책의 영문 제목과 같이 거의 모든 생명체가 멸절한 이 사태를 불러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2억 5,100만 년 전 페름기 말기, 시베리아에서 엄청난 화산활동이 일어났다. 약 200만~300만 세제곱킬로미터의 현무암질 용암이 쏟아져 나와 러시아 동부 390만 제곱킬로미터를 400~3,000미터 깊이로 뒤덮어 버렸다. 시베리아 트랩으로 알려진 이 직역은 넓이가 유럽공동체와 맞먹는다. 요즘은 이런 대규모 화산활동 - 지속기간은 전체적으로 100만 년 이하로 보고 있다 - 이 페름기 말 위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_ 마이클 J. 벤턴, <대멸종>, p368


 화산이 방출하는 주요 기체는 두 가지이다. 이산화황과 이산화탄소가 그것이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황은 처음에는 온난화를 초래하다가, 곧 대기 중의 물과 반응해서 황산염 에어로졸을 만들어내 후방산란을 통해 태양복사를 흡수하여, 결국에는 온난화를 초래하다가, 곧 대기 중의 물과 반응해서 황산염 에어로졸을 만들어내 후방산란을 통해 태양복사를 흡수하여, 결국에는 냉각화를 유발한다. 또 다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지각 근처에서 태양열을 가둬 대기를 따뜻하게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_ 마이클 J. 벤턴, <대멸종>, p372


 

페름기의 대멸종을 설명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백악기 -팔레오기 멸종(Cretaceous-Paleogene extinction event)과 마찬가지로 소행성/운석 충돌, 해수면의 변동 등 여러 학설이 제기되지만, <대멸종>에서는 '화산활동이 초래한 지구 온난화'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현무암질 용암과 함께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 이산화황, 황산염, 염소는 지구온난화와 무산소화를 만들어 생물생산성을 파괴시켰고, 이와 함께 산성비는 토지를 파괴시켰다. 이러한 대기의 파괴 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페름기의 육지 판게아(Pangaa) 초대륙에 대해 짚고 가야한다. 현재 6대륙이 하나로 연결된 판게아 초대륙은 동식물이 빠르게 번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과 함께 빠르게 절멸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을 함께 제공했다.


[그림] 판게아 초대륙 (출처 : 위키백과)


 판게아 초대륙의 엄청난 크기는 세계 기후와 동물 군과 식물 군의 확산에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저위도 지역에서는 중앙판게아산맥이 동서방향으로 뻗어 있어 대기의 흐름과 이로 인한 기후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석탄기 후기 동안 이 산맥지대는 열대지역을 가로지르며 놓여 있어서 습한 열대기후에서 자라는 푸르게 우거진 열대우림이 석탄퇴적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판게아의 대부분은 적도 남쪽으로 뻗어 있었고 과거 곤드와나 대륙괴를 포함했다. 거대한 대륙괴 덕분에 일부 동물군은 광활한 지역에 널리 퍼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판게아 북쪽의 시베리아에는 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그마 분출이 일어나 현무암으로 광대한 지역을 뒤덮었고 이어서 화산재와 화산가스, 특히 이산화황과 수증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 사건이 페름기 대량멸종시기와 일치하는데 당시 해양은 산소가 고갈되어 대부분의 해양생물 종이 멸종했다. _ 더글라스 파머 외, <선사시대>, p172


 그리고, 시베리아의 마그마 분출로 시작된 거대한 변화에 판게아 생태계는 마치 연환계(連環計)로 불타는 함대처럼 빠르게 절멸하게 되버렸다. 전체 생명체의 95퍼센트 이상이 멸절한 페름기 대멸종. 이로 인해 지구 생명체의 진화(進化 evolution)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주로 열대의 바다나리류, 완족류, 태형동물이 장악하고 있었던 페름기 후반부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과정은 약 1천만 년 넘게 일어났다. 모든 대륙이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 판게아로 합쳐지면서 기후와 해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이로 인해 멸종사건을 일으킨 주요 요인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는 비활동적 중앙해령이 가라낮으면서 해수면의 높이를 280m까지 떨어뜨림으로써 상당수의 해양서식지가 사라졌고 퇴적작용도 거의 일어나지 않아 따뜻하고 얕은 바다는 지구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는 정도로 줄어들었다. _ 더글라스 파머 외, <선사시대>, p178


 이러한 페름기의 대멸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대멸종>을 읽다보면 페름기를 살았던 생명체들이 처한 위기가 오늘날 우리가 처한 환경 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 적지 않게 놀라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생명체들은 화산 폭발과 대기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반면, 오늘날 우리는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아닐까. 페름기 때의 판게아 초대륙은 오늘날 세계화( globalization)로 대체되어 세계를 연결시키고, 산성화로 파괴되는 하부구조 -토양과 식물 - 는 극심화 양극화로 파괴되는 하부계층로 바뀌었으며, 이러한 문제를 악화시키는 구조적 원인이 결과적으로 페름기 대멸종의 환경으로 만드는 상황이 우리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먼 훗날 우리 후대가 아니면 다른 생명체의 역사가가 이 시기를 '인류세 대멸종'이라고 이름짓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맥닐 교수는 지난 세기 동안 인구는 겨우 4배 증가한 데 비해 이산화탄소와 아황산가스 배출량은 각각 17배와 13배가 증가했고 수자원 사용량 역시 9배나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서 단순히 인구 증가로만 20세기의 환경 변화를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인구 증가가 환경오염을 심화시켰던 것에 못지않게 때로는 토양침식을 완화시키기도 했고, 또 20세기 후반에 심화된 열대 지방의 삼림 파괴는 인구 증가와 거의 상관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_ J.R. 맥닐, <20세기 환경의 역사>, p15 해제 中


 페이퍼를 마무리하다 보니 주일학교 교사 시절 '환경'을 주제로 여름캠프를 준비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캠프 주제가가 <내일은 늦으리>였는데... 언젠가 연의가 자라서 하늘을 바라볼 때 그 하늘에 얼만큼의 별들이 빛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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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17 1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 신간 중에도 지구 환경 위기를 경고하고 지구의 역사, 고생물 등을 다룬 책들이 많았어요. 다시 정리해 보아야겠어요.
겨울호랑이 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우리가 더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생존 문제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겨울호랑이 2021-09-17 14:04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오거서님 말씀처럼 이제는 어느 분야든 환경문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되버렸네요. 작은 실천이 중요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오거서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9-17 2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명절과 좋은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1-09-17 23:5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풍요로운 한가위 되세요!^^:)
 

조금은 엉뚱하지만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은 큰 보름달과「베르세르크」다. 2000년 추석 전날. 신입사원으로 정신없이 보내던 일상에서 벗어나 가을방학(?)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기쁨으로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들른 동네 만화가게에서 생각없이 꺼낸 「베르세르크1」. 그날 앉은 자리에서 그때까지 나온 8권을 내리 읽으며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어려서부터 버림받고 용병집단에서 여러 시련을 겪는 주인공 가츠. 태어나면서부터 어둡고 우울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장 크리스토프」의 주인공만큼이나 우울하다. 아니, 더 우울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에게 다가오는 시련이 더 크기 때문이리라. ‘검은 기사‘, ‘어둠의 기사‘ 이미지가 강한 가츠에게 주어지는 압력은 독자들도 압박한다.

 그러다가 잠시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나오는데 그리피스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여러모로 상반되는 이미지의 그리피스는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되지만,(「은하영웅전설」의 라인하르트-키르히아이스 처럼) 그것도 잠시 ‘빛‘은 ‘어둠‘을 버리고 더 큰 악이 되버리고 만다. 20년 전에 읽은 작품이지만 언제나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그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빛이 어둠을 배신하고, 어둠이 오히려 선에 가깝다는 설정은 내게 파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파격적인 설정과 함께 한 장면도 허투루 그리지 않는 작가의 정성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내게 「베르세르크」는 2000년 이후 추석은 성룡의 영화와 함께 떠오르는 작품이 되었더랬다.

이제는 추석 때마다 성룡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타계하면서 작품의 종결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미루고 미뤄 두었던 「베르세르크」의 이후 이야기들. 이번 추석에 돌아보는 것도 나름 풍요로운 명절을 보내는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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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9-16 19: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장 크리스토프> 좋아해요!!! 로맹 롤랑이 베토벤을 모델로 했다는 얘길 들었는데, 읽어보니까 어린 시절은 베토벤 조금, 작곡가로는 완전 쇤베르크더라고요. 중2때 담임 이내수 선생께서 추천하신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읽은 책입니다. ㅋㅋㅋㅋ 그분 아직 살아계실 텐데 연락도 못하고, 이렇게 삽니다. 추석 앞둔 시절에 덕분에 옛 생각 한 번 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9-16 19:11   좋아요 3 | URL
저도 <장 크리스토프>가 인상 깊었습니다. 숨막힐듯한 환경 속에서 결국 자신의 재능을 피워내는 모습에서 ‘미운 오리 새끼‘를 떠올리게 됩니다. Falstaff님께서도 좋아하신다니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mini74 2021-09-16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베르세르크. 그림도 대단 내용도 방대하고 재미있지요. 좀 잔인하지만 *^^* 아이는 어릴 땐 저랑 원피스 참 좋아했는데 지금은 기생수를 좋아하더라고요.ㅎㅎ

겨울호랑이 2021-09-16 19:14   좋아요 2 | URL
좀 잔인하긴 하지요... 일본 만화는 잔인한 묘사가 많은 것 같아요. 예전의 「북두신권」, 「시루구이」 같은 작품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좋아하는 책은 항상 바뀌는 것 같아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누군가의 명언처럼요^^:)

오거서 2021-09-16 1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소에도 궁금해 하지만 오늘따라 19금 가려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

겨울호랑이 2021-09-16 19:54   좋아요 2 | URL
아, 「베르세르크」입니다. 19금 작품이라 안 보이네요.^^:)

오거서 2021-09-16 19:57   좋아요 2 | URL
베르세르크 보이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지만 겨울호랑이 님이 친철하게 알려주시니까 눈 여겨 봐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9-16 20:0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라 오거서님께서도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마음에 드신다면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라 여겨지네요. 편한 밤 되세요!

오거서 2021-09-16 20:06   좋아요 2 | URL
호불호가 극명하다 해도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다면 모험할만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1-09-16 20:0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오거서님 좋은 독서 되세요!^^:)

붕붕툐툐 2021-09-17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19세 이상 상품만 계속 뜨네요! 저 19세 넘었는데 좀 보여주시지! 그래도 댓글에서 힌트 얻고 갑니다!ㅎ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9-17 07:12   좋아요 0 | URL
북플이 19세 이상만 보게하는 설정이 자동으로 되어있나봐요 ㅜㅜ 아니면 제가 못 찾는 것일수도 있겠네요... 추석연휴기간에 ‘19금‘ 풀기 미션을 해야겠어요^^:)
 

 '만약 내가 소설 속에 잠시 등장할 수 있다면 소설 속 인물 누구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토지 5>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주어진 주말 미션은 소설 속의 인물에게 조언을 하는 과제다. 누구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하나. 그보다 내가 소설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 역시 한 명의 인물로 육화(肉化)될 필요가 있었기에,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가 중요했다. '행인3' 역할로는 어떤 조언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소설 시간 밖의 존재가 소설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일. 그것을 먼저 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명한 사례의 한 인물을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마니피캇(Magnificat).



[그림] 마니피캇(출처 : 위키백과)

 

 천사는 마리아에게로 가서 "기뻐하소서, 은총을 받은 이여. 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했다.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습니다.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시오. 그는 크게 되어 지극히 높은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_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 <루카복음> (1:26 ~ 32), p284


 <교부들의 성경주해>에서 수도승 요한은 이 사건에 대해 '시간 밖의 존재가 시간 안으로 들어온 신비'라고 말하는데, 소설 밖의 독자가 소설 안으로 진입하는 사건 역시 이러한 신비에 부합하지 않을까. 기꺼이 천사 가브리엘(Gabrielus)의 캐릭터를 가져온다. 인물과 역할을 선정했으니, 이제는 두 개의 과제가 남는다. 누구한테 나타날 것인가와 무슨 예언을 할 것인가.


 야망은 불순물이다. 불순물은 혼합될 수 있는 것이다. 상현과 사이에 질러놓았던 지름목은 길상과 서희 사이에는 제거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드러내려는 서희의 모험을 길상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서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다던 그러나 길상은 그것만은 용납할 수가 없다. 서희와의 거리는 절체절명의 것이다. 왜냐? 자존심 따위, 사내로서의 오기 따위 그런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랑의 순결 때문이다. 순결을 지키고 싶은 때문이다.(p20).... 시초부터 야망의 수단이 아닌 길상과의 결합은 가능할 수 없었다. 적어도 길상과의 결합에 그것 이외 어떤 구실로 서희는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었겠는가. _ 박경리, <토지 6>, P21/620


 소설 내용 상 길상과 서희가 이제 곧 맺어지는 시점에 이르렀기에 처음에는 길상 또는 서희에게 조언을 생각했었다. 이들의 미래를 보여주면서 결혼을 만류하는 조언.  구체적으로 나중에 너희 둘이 결혼해서 둘이 경영하는 길서상회가 돈을 많이 벌게 되지만, 서희는 간도에서 진주로 내려가고 길상은 독립운동하면서 틈이 생길 예정이다,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또, 길상에게는 너는 나중에 관음탱화(觀音幀畵)를 그려야 하고, 독립운동도 할 사람이 처자식을 어찌 돌볼 것인가라는 조언을, 서희에게는 너는 결혼보다는 조씨 가문에 대한 복수가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느냐, 결혼을 수단으로 생각하면 배우자가 불행해진다. 그럼 서로 겉돌게 되니 잘 생각해라... 이런 조언을 하려다 보니 가브리엘이 아니라, 맥베스의 세 노파/세 유령 이 되버린 듯 한다. 불행한 운명을 예언하는 것이 괜히 서희를 자극해서 더 폭주할 수 도 있을 듯하고, 내가 아니더라도 이번 주 길상과 서희는 다른 챌린저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을 것 같아서 이들에게 조언하는 마음은 거둔다.


맥베스 [마녀들에게] 말해라. 너희는 누구인가?

마녀1 맥베스 만세! 글래미스 성주 만세!

마녀2 맥베스 만세! 코더의 성주 만세!

마녀3 맥베스 만세! 훗날 왕이 되리라. _ 세익스피어, <맥베스>, 1막 3장, 645


유령1 맥베스, 맥베스, 맥베스, 맥더프를 조심하라. 파이프를 조심하라. 이상이다.

유령2 잔인하고 용감하고 담대하라. 인간의 힘을 우습게 알라. 여자 몸이 낳은 자는 맥베스를 해하지 못하리라.

유령3 사자의 용기를 지키고 오만하며, 누가 안달하는지 누가 속이 상하는지 반역자가 어디 있는지 걱정을 마라. 맥베스는 절대로 패하지 않으리라. 울창한 버넘 숲이 던시네인 산으로 그에게 맞서 오기 전엔. _ 세익스피어, <맥베스>, 4막 1장, 665


 다음으로 마음에 끌리는 인물은 월선이다. <토지> 전체에서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안쓰러운 여인. 그렇지만,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주는 이가 있기에 결코 불행하다고 볼 수만은 없는 여인. <토지> 전체에서 마니피캇과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월선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월선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월선이 이곳으로 옮긴 것은 병이 무거워지면서 국밥장사를 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월선은 자기 병이 그렇게 중병이 아니며 장사 안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우겼다. 그것이 다 홍이 때문이라는 것은 뻔한 일.(p156)... 영국인이 경영하는 병원에도 여러 번 보내었고 월선이 치명적 병을 앓고 있으며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_ 박경리, <토지 8>, p158/654


 의사가 왔어도 병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진통제를 쓰는 것, 보혈주사를 놓아주는 것이외 다른 방법이 있을 순 없었지만 의사가 다녀간 후면 월선은 반드시 홍이를 찾았다. 고통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을 용이에 대해선 일절 말이 없었다. _ 박경리, <토지 8>, p372/654


 방으로 들어간 용이는 월선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을 월선은 눈이 부신 듯 올려다 본다. "오실 줄 알았십니다." "산판 일 끝내고 왔다." "임자,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용이 돌아와서 이틀 밤을 지탱한 월선은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p378)...  시신이 놓인 방에서 물러 나려다 홍이 뒤쫓아왔다. "옴마!" 가슴 위에 모아놓은 뼈뿐인 손을 잡고 다시. "옴마!" 홍이 계속하여 옴마! 옴마! 부르며 방에서 뛰쳐나간다. _ 박경리, <토지 8>, p379/654


 아무래도 머지 않아 월선은 손을 쓸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죽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수태고지(Annunciation)에서는 생명의 탄생을 예언하지만, 여기서는 죽음을 예언한다는 것이 사뭇 마음에 걸리지만 수태고지 이후 시메온/한나 예언자의 고통에 대한 예언이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월선에게는 평안한 죽음을 약속하며 마음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듯하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아기 어머니 마리아를 향하여 말했다. "두고 보시오. 이 아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이 넘어지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하며 또 그는 배척당하는 표징이 됩니다.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심중의 생각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_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 <루카복음> (2:34 ~ 36), p293


 비록 치료하기 힘든 병에 걸려 고생하지만, 주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투병 생활을 하고 곁엔 마음으로 따르는 아들 홍이가 지켜주며, 임종 순간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용이가 돌아와 곁에서 삶을 마무리 한다는 이야기. 결코 죽음의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월선은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월선의 모습은 내게 경외(敬畏)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복음사가는 예수 탄생 예고의 장면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등장시키는데,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천사는 또한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는 뜻모를 말로 정숙한 마리아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암브로시우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이 기적적인 출생에 대해 마리아가 아니라 가브리엘이 마리아 앞에서 두려워해야 마땅하다(테오파네스) _ 아서 A. 저스트2세, <교부들의 성경주해> <루카복음서>, p68


 독서챌린지 과제로 페이퍼를 작성하면서, 새삼스럽게 월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면 참 가슴아프면서도 곁을 지켜주고 싶은 인물. 이제 얼마 뒤면 월선의 죽음이라는 정해진 소설 속의 시간은 다가오겠지. 책을 몇 번을 읽더라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 순간 속에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한편으로는 행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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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12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겨울호랑이님 토지가 재독이세요?? 줄거리 다 아시네용~ㅎㅎ
저도 길상이와 서희 결혼은 반대입니다. 부부로서 행복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리고 제 맘 속 최고 인물도 월선이에요~!!^^

겨울호랑이 2021-09-12 06:58   좋아요 1 | URL
이번에 토지 독서 챌린지 신청하고 급하게 선행학습을 했어요 ㅋ 대강의 줄거리를 파악하고 챌린지 기간 중 세세히 문장을 들여다 보는 중입니다. 붕붕툐툐님 말씀을 들으니 제 조언이 지지를 받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겨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