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회는 빈민을 '위험한 계급'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고 그 대응으로서 빈민들을 추방하거나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빈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빈민 정책이 나타나게 되었다.(p368)... 새로운 해결 방식은 대단히 강압적이라는 특징을 띠었다. 빈민들을 파악하고 분류하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대개 중앙 집중적인 조치들을 시행했다... 또 근대 사회정책의 기본 방향은 노동의 강조였다. 노동을 통해 그것이 기본적인 매개가 되어 사회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근대사회의 기본원칙이 된 이상 그것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노동을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권력 당국이 노동을 통해 빈민들을 단속하고 순치시켜 이들을 위험하지 않은 계급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근대사회의 중요한 특징인 것이다.(p369) <빈곤의 역사> 中


 브로니슬라프 게레멕 (Bronislaw Geremek, 1932 ~ 2008)은 <빈곤의 역사>에서 근대 사회의 특징을 중앙 권력 기구에 의한 빈민 감시와 노동을 통한 빈민 교화를 지적한다. 이러한 근대의 유산을 이어 받아 오늘날 우리는 가난한 이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할 수 밖에 없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Poor Economics: A Radical Rethinking of the Way to Fight Global Poverty >의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 (Abhijit Banerjee,1961 ~ )와 에스테르 뒤플로 (Esther Duflo,1972 ~ ) 는 가난의 이유를 게으름이 아닌 '빈곤의 덫'에서 찾는다. 그리고, 현대 빈곤의 문제는 부족이 아닌 배분 문제임을 지적한다.


 소득이 늘어나면 더 많은 식량을 살 수 있다. 기본적인 신진대사에 필요한 열량보다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은 체력이 좋아져 생존에 필요한 양 이상의 식량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현재 소득과 미래 소득 사이에 S자형 관계를 형성한다. 소득이 적은 가난한 사람은 음식 섭취량이 충분치 않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반면, 음식을 충분히 섭취한 사람은 체력이 좋아 힘든 일도 잘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빈곤의 덫이 생긴다. 그리고 이들의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p44)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이 지적했듯 최근에 일어난 기근의 원인은 대부분 절대적인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식량의 부적절한 분배, 즉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리는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식량을 산더미처럼 쌓아논는 관행을 허용하는 제도적 실패 때문에 일어난다.(p53)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이 '빈곤의 덫'을 벗어나도록 자원을 배분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들은 <넛지 Nudge>에서 제시한 디폴트 옵션 default option에 주목한다.


 동태적 비일관성을 고려해 올바른 행동을 회피할 자유를 허용하는 동시에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열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시카고대학교의 경제학교수 리처드 탈러 Richard Thaler와 법학 교수 캐스 선스타인 Cass Sunstein은 공저 <넛지 Nudge>에서 이러한 행동을 촉발하는 여러 가지 개입 방식을 권고한다. 핵심은 '디폴트 옵션 default option'이라는 개념이다. 디폴트 옵션이란 개인이 특정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대다수 국민에게 가장 유익한 대안이 자동으로 선택되고, 개인이 특정 행동을 할 경우에는 그 대안을 기피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p103)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넛지>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향을 고려하여 특정한 행동을 행하지 않을 경우 대상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안을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선의 정책이 사전에 고려되어 실시될 필요가 있음이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는 강조된다.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p21) <넛지> 中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토대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노력을 요하는 옵션, 즉 최소 저항 경로(path of least resistance)를 취할 거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모든 요소들은, 주어진 선택에 디폴트 옵션이 있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것을 택한다고 예상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해당 디폴트 옵션이 암묵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표준을, 심지어는 권고되는 행동 요령을 표상할 경우에는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 경향, 즉 디폴트 옵션을 택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p139) <넛지> 中


 그렇다면, 어떤 분야에서 '넛지'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는 예방보다 치료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의료비 지출 구조를 예를 든다. 이러한 경우 '치료'보다는 '예방'에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디폴트 옵션은 가난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이전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에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쓰느냐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비용이 적게 드는 '예방'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치료'에 돈을 쓴다. (p82)...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무상 의료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다. 우다이푸르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더 많은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예방보다 치료를,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간호사와 의사의 진료보다 사설 개업의를 선호한다.(p83)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또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는 넛지와 함께 국가 등 중앙권력기구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통해 기회불평등을 해소할 것을 제안한다. 소득의 양극화가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가져오고,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부와 빈곤의 세습을 낳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소득이 교육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면 부모가 부유한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교육을 더 받고, 부모가 가난한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교육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모든 아이가 가정형편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교육받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소득 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면 공적 주체가 공급에 개입해 교육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모든 아이가 동등한 기회를 누리게 하는 것이 사회적 효율성에 근접하는 길이다.(p121)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는 가난을 개인의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빈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넛지, 시장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모든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들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듯, 이것은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소액금융은 가난한 사람이 장기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자녀에게 보다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직업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p278)...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단지 초기에 지급한 자산과 금융 지원이 서서히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런 기회 덕분에 극빈자들이 자신의 힘겨운 삶을 책임지는 동시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려운 첫걸음을 뗐다는 것이 중요하다.(p289)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그렇지만, 이 작은 발걸음이 엘로라 드르농쿠르(ellora derenoncourt)가 <애프터 피게티 After Piketty: The Agenda for Economics and Inequality>에서 말한 제도적 차별주의까지 폐지로까지 이어진다면, 신석기 혁명 이후 인류의 오랜 고민이었던 부의 불평등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작은 희망의 불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전 세계의 재분배정책은 그저 세계 부유세를 통해 초기 자원을 재분배하기보다는 피지배자 집단이 경제 성장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모종의 역사적 세력이 있음을 시민들이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엘리트 권력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자 집단이 많은 지역의 제도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것은 여러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p600)... 제도의 격차와 피지배자를 지배하는 제도적 특권이 확장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초기 자원에 근거한 배상금은 불충분하고 일시적일 것이다. 꾸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재분배 정책은 시민과 피지배자에게 보장돼야 할 경제적/정치적 권리가 확장된 개념으로, 제도적인 인종차별주의를 폐지하는 것이다.(p601) <애프터 피게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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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1-12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만 보자면,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 합리적일 것 같아요. 부유한 사람은 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덜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돈이 적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쓰면서 효과가 더 클까, 를 고심하게 될 것 같아요. 예방과 치료 면에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새해 인사 하러 왔습니다.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건필을 기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1-12 20:04   좋아요 2 | URL
페크님 말씀처럼 가난한 이들이 합리적인 것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극한 상황에서 생활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가르침보다 정확한 사실 제공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결정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페크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도 잘 부탁 드립니다.^^:)

2020-01-12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2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봇 동생


 택배로 배달되겠지

 포장지를 벗기자마자

 바로 일어서서 걸을 거야


 물 떠 줘 말하면

 알았어, 하고 물을 떠다 주겠지...


 넌

 이제부터 착한 내 동생 <로봇 동생> 中

 

 방학을 맞아 딸아이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터 김바다 시인과 함께하는 자리를 위해, 작가의 책 중<우리 집에 논밭이 있어요!> <내가 키운 채소는 맛있어!> <로봇 동생>을 함께 읽었습니다. 아이는 다소 글밥이 많은 두 권의 책보다는 동시 <로봇 동생>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는 <로봇 동생>을 가져갈 예정입니다. 


 동시집 <로봇 동생>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스마트폰,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등 지금 아이들이 관심있어하는 소재로 쓴 동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로봇 동생> 이라는 제목의 시(詩)는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과의 공존을 노래하고 있어 여기에 잠시 생각이 머물게 됩니다. 과연 끝없이 발전할 것 같은 인공지능과 우리는 공존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적어 봅니다.


 일단 세상에 등장한 강력한 AI는 죽죽 나아가며 힘을 늘릴 것이다. 그것이 기계적 능력의 근본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력한 AI는 곧 수많은 강력한 AI들을 낳을 테고, 그들을 스스로의 설계를 터득하고 개량함으로써 자신보다 뛰어나고 지능적인 AI로 빠르게 진화할 것이다. 진화 주기는 무한히 반복될 것이고, 각 주기마다 더욱 지능적인 AI가 탄생함은 물론, 주기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질 것이다. 그것이 기술 진화의 속성이다.(p359)... 일단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가 등장하면(2029년경) 다음은 비생물학적 지능이 급속히 발전해가는 능력 강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특이점이 가능해지려면 인간 지능의 수십억 배이상 발전 해야 하는데, 그런 놀라운 팽창은 2040년 중반에야 달성될 것이다.(p360) <특이점이 온다> 中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1948 ~ )은 AI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어 머지 않은 미래에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 지능이 등장할 것임을 이미 2005년에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구단을 바둑으로 이기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이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이 우리를 앞선다는 것은 우울한 전망이 아닌 예정된 현실이 된 듯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존해야 할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질문 :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마음(heart)"이 있을까, 아니면 그저 "무감각한 반복고리들(loops)과 무감각한 사소한 연산들"(마빈 민스키의 표현)로 구성될까?


 추측 : 인공지능에 대한 두 종류의 극단적인 시각이 있네. 한편에서는 사람의 마음(mind)은 근본적이고도 불가사의한 이유 때문에 프로그래밍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 다른 한편에서는 적절한 "발견술적 수단들"을 복합하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지능을 가지게 될 거라고 주장하지.... 우리가 튜링 테스트에 합격하는 프로그램을 창조하면, 비록 그 프로그램에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마음"을 보게 될 거야.


 질문 :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언젠가는 "슈퍼지능"이 될까?


 추측 : 모르겠어. 우리가 "슈퍼지능"을 이해하거나 그것과 소통할 수 있을지 또는 그 개념이 과연 유의미한지도 명확하지 않아...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생물체라면 우리와 접점이 전혀 없을 거야... 비트겐슈타인이 한번은 "사자(獅子)가 말을 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사자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재미있는 논평을 했지.(p938) <괴델, 에셔, 바흐> 中


 <괴델, 에셔, 바흐 Go"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에서는 이에 대해 인공 지능은 어느 정도의 마음을 가진 존재이지만, 우리와 교감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같은 종(種), 한국어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현실 속에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R. Hofstadter, 1945 ~ )의 이야기는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한 큰 위안이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래 디스토피아(dystopia)에 대한 불안. 동시 <게임 영화를 보고>는 이러한 엄마아빠 세대의 불안이 담긴 시 입니다.


 게임 영화를 보고


 가상현실 속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서

 나는 신나기만 한데


 어쩌니?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너무 힘들 것 같아!

 엄마는 한 아름 걱정이 생겼어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며 

 살면 될 것 같은데


 게임 그만하라고

 공부하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엄마는 휴우휴우

 한숨만 쉬고 있어(p76) <로봇 동생> 中


 그렇지만, 작품 안의 아이는 미래에 대해 엄마만큼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미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세대에게 IT 기기는 친숙한 이웃이기 때문일까요. 그들에게 인공지능, 로봇은 타자(他者) 아닌 자아(自我)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기동전사 건담>에 나오는 신인류(新人類, New Type)의 원형이 우리 다음 세대는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스 모라벡(Hans Moravec, 1948 ~ )은 <마음의 아이들 Mind Children: The Future of Robot and Human Intelligence >에서 보다 적극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인간의 마음을 로봇에 이식시켜 영원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림] 뉴타입 : 샤아와 아무로 (출처 : https://aminoapps.com/c/anime/page/blog/char-amuro-an-eternal-rivalry/D7tP_umee5MWD6dx8PRMZPq055Zrrn)


 

 극단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직접 시뮬레이션 안의 어떤 몸에 '다운로드'하고, 우리의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 '업로드'하여 나의 현실 세계로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과정을 역전시켜 그 사람을 시뮬레이션 밖으로 데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외부의 로봇 몸에 연결하거나 그 안에 업로드 하는 모든 경우에 우리는 과거를 다시 창조하고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p214) <마음의 아이들> 中


 마음 비빕밥 


 내가 네 마음을 모르고 

 네가 내 마음을 모르니까

 내 머리에서 내 마음을 꺼내고

 네 모리에서 네 마음을 꺼내...


 내 마음과 네 마음을

 비벼서 나눠 먹었으니

 서로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거야(p44) <로봇 동생> 中


 사람과 로봇이 맺을 수 있는 세 번째 관계는 서로 돕고 사는 공생이다. 대표적인 시나리오는 <마음의 아이들>에 제시된 마음 이전 mind trasfer이다. 사람의 마음을 로봇으로 옮기는 과정을 '마음 업로딩 mind uploading'이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로봇으로 이식되면 사람이 말 그대로 기계로 바뀌게 된다. 로봇 안에서 사람의 마음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마음이 사멸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라벡은 마음의 아이들이 인류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p15) <마음의 아이들, 해제> 中


 인간과 미래 기술(인공지능, 로봇, 나노 기술, 5G 등)이 공존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예상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때문에,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마도 우리의 생각보다 미래를 잘 그려나갈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우리를 좀 더 믿어주기를 바랬듯이, 우리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우리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근심에 사로 잡힐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가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E.F.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과 <내가 믿는 세상 This is I believe and other essays>는 불교 경제학을 기반으로 이에 대한 답을 줍니다.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의 대상인 폭표를 변경하는 데 있음을 지적해준다. 그리고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에 그들의 적당하고 올바른 위치, 곧 주된 위치가 아닌 부차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생활양식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원 고갈의 속도를 늦추거나 사람과 환경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 기회는, 충분함을 선으로 취급하고 충분함을 넘으면 악으로 취급하는 생활 양식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는 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진정으로 도전해야 할 대상이 있으며, 기술적 재간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도전을 모면할 수는 없다.(p331) <내가 믿는 세상> 中


 동시 <로봇 동생>을 읽으며 IT와 함께 자란 세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우리 세대의 과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주기보다는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남겨주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페이퍼를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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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6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6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6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우리는 이사를 했다. 우리는 적어도 인구의 4분의 1이 독일어를 쓰는 국경 도시에 살러 갔다. 우리, 헝가리 사람들에게 독일어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상기시켰으므로 적의 언어였고, 그것은 또한 당시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외국 군인들의 언어이기도 했다.(p51) <문맹> 中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 1935 ~ 2011)의 <문맹 L'Analphabete>은 헝가리 출신이며 프랑스어 작품을 쓰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여기에는 모국어(母國語)가 아닌 외국어로 작품을 쓰는 이의 어려움과 고민이 담겨있다.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p53) <문맹> 中


 크리스토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헝가리어와 프랑스어의 다툼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 ~ 1913)가 <일반언어학 강의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에서 말한 언어의 지역절 할거 상태와 중첩현상을 연상시킨다. 


 터키어, 불가리아어, 세르비아어, 그리스어, 알바니아어, 루마니아어 등이 지역에 따라 갖가지 방식으로 혼합되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언어가 언제나 전적으로 뒤섞여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지역 내에 공존한다 할 때,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지역적 할거 상태가 배제되지 않는다. 가령 한 언어는 주로 도시에서 쓰이고, 다른 언어는 시골에서 쓰이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할거 상태가 언제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p272)... 이러한 언어의 중첩 현상은 대부분의 경우 힘센 민족의 침입에 의해 야기되었다. <일반언어학 강의> 中


 크리스토프의 경우에는 언어의 중첩이 평화로운 공존으로 이어지지 않은 듯하다. 작가 내부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일어났던 두 언어 사이의 치열한 투쟁. 그것은 언어가 단순하 의사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가 <지식의 고고학 L'Archeologie du Savoir>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의 사고는 에피스테메(episteme)의 영향을 받고, 황현산이 말한 바와 같이 언어는 에피스테메의 전달자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작가의 사고를 지배하고자 하는 두 언어의 헤게모니(Hegemonie) 다툼이라 여겨진다.

 

 그들은 분명 그들의 역사, 그들의 경제, 그들의 사회적 실천, 그들이 말하는 랑그, 그들의 선조들의 신화, 그들의 부모가 어린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우화들까지도 그들의 의식에 전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닌 규칙들에 복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오는 그리고 그 근원 가까이에 무한히 머무를 파롤의 신선함에 의해 적어도 그들의 <의미 意味>를 바꿀 수 있는 이 부드러운 확실성을 빼앗기기보다는, 언설이 규칙들과 분석가능한 변환들에 복종하는 하나의 복잡한 그리고 분화된 실천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자 할 것이다.(p290) <지식의 고고학> 中


 에밀 시오랑의 글을 읽다보면, 서구인들이 알고 있는 불교는 우리가 아는 불교보다 훨씬 더 염세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서구어로 번역된 불경과 한역불경의 차이이기도 할 것 같다.(p109)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한편, 소쉬르는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기표(記表) - 기의(記意)의 관계를 언어의 다양성을 설명한다. 기표 -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며, 이를 기호로 받아들이는 체계 내에서는 필연화된다는 소쉬르의 주장은 수많은 언어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뒷받침된다.


 언어기호가 결합시키는 것은 한 사물과 한 명칭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과 하나의 청각영상이다. 이 청각영상이란 순전히 물리적 사물인 실체적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의 정신적 흔적, 즉 감각이 우리에게 증언해 주는 소리의 재현이다.(p92)... 우리는 개념과 청각영상의 결합을 기호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상 용법에서는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청각영상 만을 지칭한다.(p93)... 우리는 전체를 지칭하는 데 기호(signe)라는 낱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개념과 청각영상에는 각각 기의(signifie)와 기표(signifiant)를 대체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기표를 기의에 결합시키는 관계는 자의적이다. 또 좀 더 간략히 언어기호는 자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바, 그 이유는 우리가 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연합에서 비롯되는 전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이다.(p94) <일반언어학 강의> 中


 그렇지만, <문맹>에서 어린 시절의 저자는 다양한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헝가리에 정착한 집시들의 언어를 어린시절의 저자는 언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어린시절의 저자는 언어의 단일성에 사로잡혔지만, 이런 저자는 훗날 외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면서, 언어의 지역절 할거상태를 받아들인다. 약간은 다른 이야기지만, <일반언어학 강의>에도 헝가리의 집시 언어 사례가 나오는데, 소쉬르는 이를 통해 집시들의 기원(起原)을 찾아낸다.


 처음에는 하나의 언어밖에 없었다. 사물들, 어떤 것들, 감정들, 색깔들, 꿈들, 편지들, 책들, 신문들이 이 언어였다. 나는 다른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인간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p49) <문맹> 中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집시들이 다른 언어로 말을 하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나는 그것이 진짜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틸라가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도록 야노 오빠와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들끼리만 사용하기 위해 고안한 언어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집시들이 그렇게 언어를 고안해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집시들용으로 표시한 컵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p50)... 집시들이 오지그릇이나 갈대로 짠 바구니를 팔기 위해서 마을에 올 때면, 그들은 '정상적으로' 우리와 같은 언어를 썼다.(p51) <문맹> 中


 그러나 또한 식민 정치라든가 평화로운 유입의 경우도 있으며, 한편 유목민들의 경우 그 언어도 함께 이동되곤 한다. 특히 헝가리에 밀집 촌락을 형성하고 정착한 집시들이 그러했는데, 그 언어를 연구한 결과 이들이 어느 시대엔가 인도로부터 이주해 왔으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p273) <일반언어학 강의> 中


 스위스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헝가리 작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다른 언어 안의 공통 분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언어의 원리 안에는 인류 공통의 보편언어가 있다는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 )의 <통사구조 Syntactic Structures>의 설명을 옮겨본다.


 나는 단어들을 안다. 읽을 때는 그 단어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글자들은 아무것에도 상응하지 않는다. 헝가리어는 소리 나는 그대로 글을 쓰지만, 프랑스어는 그렇지 않다.(p109)... 2년 후,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는다. 나는 읽을 수 있다. 다시 읽을 수 있다.(p111)...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p112) <문맹> 中  


 보편언어가 있다는 촘스키의 주장은 얼핏 생각하면 모순되게 들린다. 이 세상에는 6,000가지 이상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보편언어라는 개념은 현상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의해 주어진 자연언어에 공통된 특성들의 집합을 의미한다(p216)... 촘스키는 특성 언어들, 이를테면 한국어, 영어, 스와힐리어 등의 자연언어들에서 문법규칙을 결정하는 일반원리는 상당한 정도로 모든 인간 언어에 공통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원리들은 매우 특수하고 뚜렷하므로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원리들은 인간 본성의 일부로서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유전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p220) <촘스키의 통사구조, 해제> 中


 보편언어 안의 문법 규칙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면, 문법 규칙 뿐 아니라 인간 본성의 공통된 감정, 의식 등도 함께 언어 안에 녹아 있지 않을까. 때문에, 비록 뒤늦게 배운 외국어라 할지라도 자신의 뜻을 상대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문맹> 안의 언어(言語 language) 이야기는 짧지만, 이처럼 우리에게 언어, 말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언어 안의 기표와 기의, 언어와 사회 그리고 언어의 보편성, 구조주의. 이번 페이퍼는 <문맹>이라는 얇은 한 권의 책을 통해 떠올린 여러 생각을 두서 없이 옮겨본다. 페이퍼에 이름을 올린 책들은 각권의 상세 리뷰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만 줄이자. 따로 또 같이. 페이퍼와 리뷰... 


PS.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선물해 주신 이웃님께 감사 말씀 전합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지나가듯 다루었지만, 리뷰를 쓰기 전 미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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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0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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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0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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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04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아하는데, 겨울호랑이님 글 읽으니 이렇게나 풍성하게 이해될수 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아는 책 나와서 매우 반가운 마음으로요^^

겨울호랑이 2020-01-04 10:0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께서도 「문맹」을 좋아하시는군요! 제가 단발머리님 독서에 작은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초딩 2020-01-04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작가죠? 우아 관심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0-01-04 15:25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초딩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2020-01-04 1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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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2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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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5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이 대륙 간 유도 미사일과 같은 새로운 병기 한 가지가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양차 세계대전 사이 영국과 프랑스가 이런 질문 중의 몇 가지에 그릇된 대답을 했던 것은 그들이 재래식 군사 전략 개념에 젖은 채 국력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는 제2차 세계대전 말엽에 양국을 거의 패전의 위기로까지 몰고 갔다. 그들이 보유한 군사적 기술을 토대로 할 때 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달랐어야 했다. 오늘날 이와 비슷한 질문들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내놓느냐에 따라서 장차 미국의 대외적 힘도 결정될 것이다.(p332) <국가 간의 정치 1> 中


 2020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지만, 정초부터 북미 간의 팽팽한 긴장을 느낀다. 우리나라 대통령 신년사보다 북한 지도자의 신년사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언론이 행태가 마땅치 않지만, 핵(核 Nuclear)과 대륙간탄도미사일(大陸間彈道 missile,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ICBM)을 둘러싼 양국의 대립을 생각해보면 수긍할만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이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북한 지도자의 육성 대신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로 새로운 전략 무기를 목격할 수도 있다는 발언이 나와 주목과 우려를 함께 받고 있다. 


 전략무기를 둘러싼 이러한 현실은 고전적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 ~ 1980)가 <국가 간의 정치 Politics Among Nations>를 통해 전망한 내용을 잘 반영한다. 무기체계는 발전했는데, 이를 고려하지 못한 인식의 부족을 지적한 저자의 말은 21세기 미국 지도부에도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북-미 간의 문제를 전략 무기 문제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의 <인간 국가 전쟁 Man, the State and War>가 적절한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만약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은 결코 단일 요인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자칫 전쟁으로 갈 수 있는 북-미간의 문제가 단순히 전략무기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루소의 사상을 국제정치에 반영해보면 '전쟁은 이를 방지할 것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얻게 된다. 루소의 분석은 특정 전쟁의 경우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전쟁의 지속적인 발생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국가 A가 국가 B를 공격하도록 만드는 직접적 원인은 국가를 단위로 한 세계 체제가 아니다. 전쟁의 개시 여부는 지리적 요건, 국토의 넓이, 국력, 이익, 정부의 형태, 역사, 전통 등 여러가지 특수한 환경에 따라 결정되며 이들 각각의 요인은 관련된 양국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만약 두 국가가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그 전쟁은 양측의 국가가 이 전쟁과 관련하여 명확히 정의내린 원인들로 인해 치러지는 것이다.(p318) <인간 국가 전쟁> 中


  전쟁과 평화. 레프 톨스토이(Lev Nicolayevich Tolstoy, 1828 ~ 1910)의 장편 <전쟁과 평화 War and Peace>에는 죽음과 삶을 갈라놓는 사선(死線)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표현된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모순된 태도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선을 넘기보다 보다 호기심을 접고 선 안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것 같은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들과 나무와 태양에 빛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선을 넘어 거기에, 이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결국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p280) <전쟁과 평화 1> 中


 2020년 새해가 한반도 평화의 원년이자 세계 평화의 원년이 되기를 바라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그리고,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에 따르면 아마도 이러한 평화의 출발은 평화 조약이 될 것이다. 


 1.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은 어떠한 평화 조약도 결코 평화 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 제1항- (p15) <영구평화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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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01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럼프가 탄핵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그의 지위가 흔들리게 되니까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만하게 봅니다. 그래서 김정은이 군사 전략을 거론하면서 강경하게 나오는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20-01-01 22:22   좋아요 0 | URL
cyrus님께서 말씀하신 측면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겠구요. 잘은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이들이 북-미간 외교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리라 생각하기에, 잘 해결되기를 바라봅니다...

2020-01-02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2 0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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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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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1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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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4: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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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6: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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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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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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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아 문명과 미케아 문명이라는 에게 해 문명의 토양을 이어받아 그리스는 예전과는 다른 독특한 문명을 구축하게 되었지요. 해안가에 폴리스라 불리는 조그만 도시국가들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를 발명해 냈습니다... 그리스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축을 잡고 개성적인 문명을 이루었습니다.(p335) 「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에서

그리스의 조각은 민주주의적 공동체를 표현하는 신성한 상징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로마 공화정 시기의 조각은 공화제라는 복잡한 정치체제 안에서 개인이 지녀야할 가치, 즉 시민의 덕성을 보여주었죠. 하지만 제정 시대가 되면 조각상을 비롯한 미술 작품이 개인의 사유물이 됩니다.(p503)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에서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행해진 민주주의의 영향으로 그리스 미술에는 이전 시대와는 달리 ‘개성‘이 표현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로마 미술은 그리스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제국 전역으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평가받을만하다. 그렇지만, 가라타니 고진이 지적한 바와 같이 로마의 포용과 융합이 ‘제국‘이라는 구조에 기반한 것임을 고려해본다면, 미노아 문명에 미친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로마 문명에 내재한 오리엔탈 요소는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부정할 수 없는 건 로마가 서양문명의 근간을 형성하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에요. 민주주의를 구축했던 그리스의 유산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유산도 계승하여 유럽 전역에 이식했으니까요.(p531)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에서

로마도 처음에는 그리스와 같은 폴리스였지만, 헬레니즘제국보다는 그보다 선행하는 페르시아제국의 원리를 받아들였을 때 마침내 제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거대한 관료기구와 세금을 확보할 수 있는 한 각지의 관습을 존중한다는 ‘제국의 원리‘였습니다.(p121) 「제국의 구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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