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가장 고민할 때는 딸아이 책을 고를 때입니다. 제가 볼 책을 고르는 것은 쉽게 판단이 되지만, 아이가 볼 책은 쉽게 판단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교훈적인 것은 아닌지, 너무 아저씨 취향은 아닌지, 글밥은 적당한지, 여러차례 볼 만한 책인지 등등 여러 모로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딸나이의 사전이 눈에 띄었습니다. 적당한 크기, 글밥, 그림과 구성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9살인 지금이 아니면 유통기한이 지날 것 같아 일단 세 권의 책을 사서 집에 가져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딸아이의 반응은 제 기대와는 달리 ‘그저그런 편‘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 홈런 과제를 풀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아홉 살 사전의 좋은 점은 책의 구성입니다. 책은 느낌과 마음, 소통과 관련한 단어들을 설명하되, 단어들이 사용되는 상황과 예시들을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다가올 단어의 뜻을 아이들이 자주 경험하는 상황과 함께 설명하기에 그 의미를 실감나게 잘 설명한 책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만, 어른들이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는 어렵듯, 딸 아이 역시 당장 눈이 가는 몇몇 단어를 찾아보는 것 외에 사전에 큰 흥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해 두다가 학습 과제 중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과정이 나왔을 때 꺼내보는 것을 보니, 적절한 때 잘 구입했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봅니다. 아무래도 사전을 「엉덩이 탐정」처럼 읽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어쩌면 「아홉 살 사전」시리즈는 아이들보다는 부모들에게 더 유용한 책이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책을 읽으며 요즘 아이들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의 지나간 9살의 과거를 돌아보는. 그런 면에서 부모와 함께 읽어도 좋은 책이라 여겨집니다.

느낌, 마음, 함께.

아홉 살의 아이가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과 이로 인해 드는 마음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과정이 담긴 책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고 사이좋게 자라나길 바라면서 페이퍼를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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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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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화랑세기 花郞世記> 필사본이 1989년 세상에 모습을 보인 이래 책의 진위(眞僞) 논란은 진행형이다. <화랑세기 : 신라인의 신라이야기>는 필사본을 진본으로 보는 이종욱 교수가 편역한 책으로 저자는 <화랑세기> 필사본의 의의를 신라사의 생생한 복원이라는 점에서 찾는다.

 

 신라 시대에도 근친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골품제가 엄격하게 지켜진 신라의 최고 귀족들 사이에 근친혼은 신분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하나의 장치가 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정치적/사회적 이유에 의한 근친혼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화랑세기>는 오히려 신라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  틀림없다.(p347) <화랑세기><부록1. 화랑세기의 신빙성에 대하여> 中


  <화랑세기> 안의 복잡한 혈연 관계는 소위 오늘날 막장 드라마의 관계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예를 들면 김춘추(金春秋, 604 ~ 661)와 김유신(金庾信, 595 ~ 673)의 동생 문희(文姬)가 결혼해서 낳은 딸인 지소부인(智炤夫人)은 다시 김유신의 둘째 부인이 된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여기 더해 미실(美室, 540 ~ 612 ?)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가계도는 독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에 대해 저자는 <화랑세기> 안에 나타난 근친혼(近親婚)을 도덕적 관점이 아닌 정치적 행위로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내용 중 마복자(磨腹子, 하위 계급의 임신한 여성이 상위계급의 남성과 성관계를 하여 태어난 아이)나 진골 정통(眞骨正統)/ 대원 신통(大元神統)과 같이 이해가 안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들이 있다고 해 이 책을 위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은 여성들로 이어져 있으며, 남자도 한 대에 한해서는 그의 어머니의 계통을 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계통을 인통(姻統)이라고 하고 있다. 원래 두 계통은 왕을 비롯해 왕실의 남자들에게 왕비를 비롯한 여자를 공급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두 계통에 따른 정치 세력도 형성되고 나아가 화랑들의 파맥(派脈)도 형성됐다.(p346) <화랑세기><부록1. 화랑세기의 신빙성에 대하여> 中


 마복자 풍습의 경우에는 지금의 도덕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화랑세기> 필사본 부정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화랑의 간부층인 낭도들은 풍월주의 마복자들로 구성되고, 이들이 화랑을 따르는 무리(출처: 위키백과)였다는 사실이 문헌 부정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생각된다. 일례로, 고대 그리스에는 성인 어른과 소년 애인 150쌍 300명으로  구성된  테바이 신성대(Hieros Lokhos)를 살펴보자. 동성애인 앞에서 용맹하게 싸우리라는 믿음으로 구성된 이러한 군대 편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들은 실재했던 부대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마복자로 구성된 부대가 있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화랑세기>안에 담긴 화랑의 정치적인 모습 또한 우리에게 알려진 화랑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점도 문헌 부정의 근거가 된다. 여기에서 잠시 <삼국사기 三國史記>의 화랑 관련 부분을 살펴보자.


  진흥왕(進興王) 37년 봄에 비로소 원화(源花)를 받들었다. 처음에 임금과 신하들이 인재를 알아볼 방법이 없는 것을 병통으로 여겨, 사람들로 하여금 무리지어 노닐도록 해서 그 행동거지를 살핀 다음에 천거해 쓰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어여쁜 여자 두 사람을 뽑으니 한 사람은 남모(南毛)요, 또 한 사람은 준정(俊貞)이었다. 무리 3백여 명을 모았는데 두 여자가 미모를 다투어 서로 질투하더니,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그녀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한 다음, 끌어다가 강물에 던져서 죽였다. 이에 준정은 죽음을 당하였고, 그 무리들도 화목을 잃어 흩어지고 말았다. 그 뒤 다시 미모의 남자를 골라 단장하고 꾸며서 화랑(花郞)이라 이름하고 받들게 되었다.(p128)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 제4> 中


 <삼국사기>는 화랑이 원화에서 유래했고, 원화를 대신한 화랑이 국가 인재의 등용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대로 화랑의 무리가 심신 수련 단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화랑세기> 안의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 사이의 다툼을 통해 남모 - 준정의 다툼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인간이 정치적인 동물임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다툼이 화랑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화랑세기>안에 담긴 화랑들과 미실을 비롯한 왕궁사람들은 너무도 인간적이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때문에, <화랑세기> 앞에서 관념적으로 생각했던 고대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풍습은 낯설지만, 권력과 사랑에 대한 인간의 감정은 낯설지 않다. 


 또한, <화랑세기>는 우리에게 신라사회의 장점과 한계를 함께 알려준다. 혈연(血緣)으로 맺어진 지배계층이었기에 이들은 7세기 고구려와 백제의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단결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테베의 신성대가 스파르타를 꺾고 그리스 패권을 차지했듯. 그렇지만, 고구려, 백제 영토 통합이후에는 이들의 폐쇄성이 독(毒)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넓어진 영토를 가슴으로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2세기가 흐른 후 다시 후삼국이 분할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고대사회의 폐쇄성이 신라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폐쇄성이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폐쇄성과 관련해서 잠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포용정책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 로마인의 '포용'정책이 로마가 제국으로 이어진 계기가 되었음을 밝히고, 이는 <로마인 이야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에 따르면 로마사회는 그렇게 포용적이지도 개방적인 사회도 아니었다.

 

  공화정 시대의 인상적인 평등과 관련해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이 평등이 상당 부분 형식적이었다는 점과 여기에서 매우 특이한 귀족 계층이 생겨났다는, 아니 오히려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p92)... 정부는 여전히 귀족 통치를 유지했는바, 가난한 소농들도 부유한 완전 토지 소유자들과 외형적 차별 없이 대등하게 민회에 참여했지만, 귀족 통치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함으로써 가난한 사람은 도시의 시장은 커녕 촌의 면장도 되기 어려웠다.(p93) <몸젠의 로마사2> 中


  비시민에게는 로마 시민권 가입이 거의 완전히 막혀 버렸다. 복속된 공동체들이 로마 공동체에 편입되는 옛 절차는, 로마 시민권의 과도한 확대로 인하여 로마 시민권이 너무나 분산되지 않도록, 기원전 350년경에 소멸했고, 때문에 불완전 시민공동체가 설치되었다.(p177)... 귀족들이 평민을 상대로 귀족제의 폐쇄성으로 들어가듯, 시민은 비시민을 상대로 그렇게 했다. 제도의 관대함으로 크게 성장한 평민이 이제 귀족의 경직된 규율로 스스로를 구속하게 된 것이다.(p179) <몸젠의 로마사4> 中


 끊임없이 수혈되는 새로운 피가 제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시오노 나나미는 높이 평가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로마제국의 융성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고대 사회에서(사실은 오늘날까지도) 폐쇄성은 일반적인 현상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시 <화랑세기>로 돌아오자. 여기에는 생생한 당대인의 모습과 함께 고대 사회의 폐쇄성이 담겨있다. 책에 묘사된 당대인의 모습은 책의 진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만, 폐쇄 사회의 한계는 진위여부를 떠나 분명하게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사회에 남아있는 골품(骨品)제의 변형틀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필사본 <화랑세기>는 단순한 고문헌 이상의 의미를 갖는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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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보수 패거리가 지금까지 팔아먹고 산 것은 박정희 이미지밖에 없었다. 박근혜까지 나왔을 때는 거의 떨이 수준이다. 떨이가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민 갈 필요 없다.(p22)... 박정희는 1979년에 죽었다. 요즘 정황을 보면 공포영화의 상투적 패턴을 보는 것 같다. 악마는 막판에 다시 한번 되살아난다는 것.(p84)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유신 시대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유신은 간선제 선거를 통해 박정희를 사실상 종신제 대통령으로 뽑게 한 유신 헌법과 이 헌법에 대해 이의를 말하면 잡아 가둘 수 있게 한 9개의 긴급 조치로 이루어졌다. 아무튼 정치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시대... 유신 시대의 두 가지 좋은 점.  하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치적 판단의 노력이 면제된다. 또하나는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라고 무조건 믿어야 할 사람 한 사람 있다. 유신 시대가 끝나자 그 두 가지 좋은 점이 갑자기 없어졌다. 어버이연합이 난리치는 이유.(p536)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유신 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내용을 국정 교과서에 넣으려 했다 한다. 그쪽 사람들은 걸러진 내용을 가지고 왜 시비 삼느냐고 말했다는데, 삭제된 내용이라곤 해도 집필의 기본 정신이 거기 다 들어 있지 않은가.(p530)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황현산(黃鉉産, 1945 ~ 2018)의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는 문학 이야기와 함께 2014년부터 2018년의 정치 상황도 함께 녹아있다. 우리는 글을 읽으며 짧은 트윗들을 통해 박근혜 정부를 유신체제의 연장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을 알아간다. 우리는 이와 함께 트윗에 기록된 시간을 통해 저자의 글이 어떤 맥락에서 올라온 것인지도 함께 파악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의 글은 구체적 시간과 함께 묶여 있다.


 헌재의 논리 부족은 저들의 불행이 아니라 민주 시민들의 불행이다. 이 논리 빈약한 말이 앞으로 모든 민주적, 진보적 의견에 종북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막무가내, 무논리와의 싸움, 그게 다시 시작되었다.(p65)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돈 퍼주느라고 담뱃값을 올렸다, 어느 택시기사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게 작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몽매하게 만들어서 나라를 망치는 길로 지금 이 정부가 뛰어가고 있다.(p89)... 책 - <금요일엔 돌아오렴>- 을 손에 들기는 했지만 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그 용기를 숙제로 내주고 갔을 것이다.(p99)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실시간 소통을 특징으로 하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특성이 잘 나타난 글들에서 우리는 저자의 정제되지 않는 생각과 즉각적인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교정을 본 책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을 오타도 너그럽게 허용되는 트위터의 글에서 우리는 구술(口述)문화의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백낙청 회화록>은 상대적으로 정제된 저자 생각을 전한다. 이러한 면에서 회화록(會話錄)은 상대적으로 문자(文字)문화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1주기다. 1년 중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를 달지 않고,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하루쯤 있어야 한다. 오늘을 그날로 정하는 것이 옳겠다.(p140)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세월호 이후에 흔히 정부가 있기는 있나, 국가가 있나 하는 질문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좋은 정부가 없고 좋은 국가가 없는 거지 있기는 확실히 있어요, 정부가... 세월호만큼 많은 사실을 생생한 육성과 기록과 화면으로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건 이걸 바탕으로 더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는 얘긴데, 이게 저절로 안되고 있는 게 아니라 이걸 확실하게 막고 있는 정부가, 뼛속까지 나쁜 정부가 있기 때문에 안되는 겁니다.(p298) <백낙청 회화록7> 中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 남겨진 관련 트윗과 함께 이제는 <백낙청 회화록>으로 넘어가보자. <백낙청 회화록>에도 백낙청(白樂晴, 1938 ~ )의 문학비평과 함께 당대의 시대상이 담겨있다. 이 역시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구술문화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140자의 짧은 문자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하는 트위터와는 달리 보다 체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자문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백낙청 선생이 창비를 붙들고 있는 것은 비단 문학 때문에만은 아니리라. 선생의 분단 체제론이 끝을 보지 못했고, 그와 관련해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선생이 창비를 붙들고 있는 한 그에 대해 선생보다 더 잘 생각할 사람이 나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p57)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선생님 쏘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시나요? (백낙청) 페이스 북도 하는데 열심히는 못해요... 말이 너무 흔하면 아무래도 금이 떨어지죠. 그래서 우리가 가만히 있지는 말아야 하고, 그만할 짓은 그만해야 좋을 것 같아요. 엄살도 그만 떨고 쓸데없는 수다도 덜 떨고 그런 것도 필요하지 않나...(p300) <백낙청 회화록7> 中


 <백낙청 회화록>은 1968년부터 2017년까지의 한국현대사의 사건과 문화 등을 담고 있기에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는 박근혜 탄핵을 배경으로 하는 두 글의 내용을 통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서는 당시 상황의 긴박성을, <백낙청 회화록7>에서는 시대과제를 확인할 수 있다. 


 나경원 의원이 "좌파에게 정권을 내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해가 간다. 상대는 좌파고 좌파는 나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만 새누리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이 겨우 돋아나는 것 같으니.(p537)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촛불혁명이 탄핵이라는 1차적 목표를 달성하면서 이제부터는 국회에 맡겨주고 정치인에게 맡겨주십시오,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헌 얘기도 그렇고요. 저는 이것을 어떻게 제어하느냐 하는 게 촛불혁명의 과제라고 봐요... 탄핵을 가결하느냐 안하느냐는 분명한데 다른 문제들은 복잡해서 판가름하기가 어렵지요. 그렇더라도 광장의 민심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p525) <백낙청 회화록7> 中


 우리는 두 책에 담긴 매체의 특성을 통해 월터.J.옹(Walter J. Ong, 1912 ~ 2003)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Orality and Literacy>의 내용을 연상하게 된다. 트위터의 구술성과 책의 문자성. 이제는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instagram),이 SNS의 대표주자이고, 많은 정보가 유튜브(YouTube)를 통해 유통되는 것을 보면 과학기술이 인류의 구술성을 회복시켜주는 면도 보게 된다. 문제는 소통이 주로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실세계와의 단절은 심화되었다는 점이겠지만...


 모든 인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는 구술성과 또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고 있지 않는 쓰기라는 기술과의 사이의 상호작용은 마음의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개체발생적으로도 계통발생적으로도 분절된 언어로써 우선적으로 의식을 비추는 것은 구술언어다.(p265)... 쓰기는 분절과 소외를 끌어넣는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한층 고차원적인 통일도 끌어넣는다. 쓰기는 자기 자신이 아는 감각을 강화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한층 의식적인 상호작용을 북돋는 것이다. 쓰기는 의식을 끌어올린다.(p266)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中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백낙청 회화록 7>은 공통적으로 2014년부터 2017년 가까운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시대 지식인의 생각을 걸러지지 않은 언어로 또는 정리된 언어로 만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통해 당시의 구체적 사건을 확인하고 자신의 감정도 다시 느낄 수 있고, <백낙청 회화록 7>을 통해 시대를 보다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두 글들을 통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해서 우리 의식을 통합하는 수단임을 확인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우선 2013년에는 설혹 우리가 이겼더라도, 정권교체가 됐더라도 새로운 체제를 만들 준비는 안되었었다, 이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문재인씨가 아무리 무능하고 미숙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낫게 했을 거 같아요. 다만 한가지, 그들보다 낫게 한다는 걸 아무도 몰랐을 거에요... 박근혜 대통령을 안 겪었다면 저 진보라는 자들 맡겨놓았더니 또 죽 쑤는구나, 박근혜가 되었어야지, 이런 여론이 퍼져서 오히려 2017년 선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대승을 하고 더 장기적인 한나라당 내지는 새누리당 정권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p317) <백낙청 회화록7> 中


PS. <백낙청 회화록>에 대해서는 한국현대사와 함께 틈틈히 정리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경험하지 않은 과거보다 사회를 인식할 수 있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4권 이후 부터가 상대적으로 읽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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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우주 - 비틀린 5차원 시공간과 여분 차원의 비밀을 찾아서 사이언스 클래식 11
리사 랜들 지음, 김연중.이민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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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칭 세계에서 우리가 아는 입자들은 모두 초대칭 변환에 의해 상호 교환될 수 있는 '초대칭짝(superpartner)'을 갖는다. 초대칭 변환을 통해 페르미온은 보손 짝으로, 보손은 페르미온 짝으로 변환될 수 있다... 초대칭성 이론에서 페르미온은 모두 보손 짝으로 변환될 수 있고, 보손은 페르미온 짝으로 변환될 수 있다. 입자들의 이러한 성질을 이론적으로 기술한 것이 초대칭성이다.(p386) <숨겨진 우주> 中


 양자 역학적 효과로 인해 질량이 작은 힉스 입자는 존재하기 힘들지만 힉스 입자가 무거우면 표준 모형이 붕괴된다. 여분 차원 이론이 존재하기까지 초대칭성은 이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다.(p408) <숨겨진 우주> 中


 리사 랜들(Lisa Randall, 1962 ~ )의 <숨겨진 우주 Warped Passages: Unraveling the Mysteries of the Universe's Hidden Dimensions>는 초대칭성을 포함한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 가진 한계를 말한다. 현실에서는 (여러 이유로) 깨진 상태로 존재하는 초대칭성은 현실적으로 입증되기 어렵기에, 저자는 <숨겨진 우주>에서 대신 '여분 차원'을 도입한다.


 끈 이론 모형 중 하나에서 약력 막과 중력 막이라는 2개의 막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유한한 크기를 갖는 다섯 번째 차원의 경계를 이룬다. 벌크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막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시공간을 비튼다... 이 모형에서 다섯 번째 차원은 크지는 않지만 심하게 비틀려 있다. 중력의 세기는 물체가 다섯 번째 차원 어디에 있는가에 강하게 의존한다.(p601) <숨겨진 우주> 中


 우리 모형에서는 다섯 번째 차원의 한쪽 끝에 1개의 막이 있다. 이는 20장에서 내가 기술했던 2개의 막과 마찬가지로 반사성이 뛰어나다. 막에 충돌한 물체는 다시 튕겨지기 때문에 이 막에 충돌해도 에너지 손실은 없다.(p617)... 중력이 국소화되어 있는 경우 질량이 없는 KK 입자가 국소화된 중력자다. 이 KK 입자는 중력 막 가까이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p631) <숨겨진 우주> 中


[그림] 숨겨진 우주(출처 : https://sciencebooks.tistory.com/588)


 <숨겨진 우주>의 모델에는 1개의 막(brane)이 등장한다. 차원을 구별하는 이 막 근처에는 중력자가 확률밀도함수(Probability Density Function)에 따라 밀집된 형태로 존재한다. 확률밀도함수의 모형은 결코 꼬리의 끝이 x축과 만나지 않기 때문에 중력자 역시 거리가 멀어질수록 밀도가 낮아지지만 결코 0이 되지는 않는다.


 국소화된 중력(localized gravity)은 전체 5차원 우주를 마치 4차원 중력의 작용을 받는 것처럼 행동하게 한다... 여러분은 이제 여분 차원이 작게 말려 있거나 시공간이 휘어 있거나 중력이 작은 역에 몰려 있어서 차원이 무한히 커도 보이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차원들이 압축되어 있든 아니면 국소화되어 있든 시공간은 어느 곳에서나 4차원으로 보인다.(p641)... 다섯 번째 차원 어디에 있든 4차원 중력의 영향은 피할 수 없다는 RS2 모형의 결론이 답이다. 중력은 모든 곳서 4차원처럼 보이는데, 이는 중력자의 확률 함수가 실제로 0이 되지 않고 무한히 계속되기 때문이다.(p642) <숨겨진 우주> 中


 <숨겨진 우주>에서는 5차원이 말려있는 것으로 가정한다. 여기에 11차원의 M이론고 10차원의 초끈이론을 통합시키는 가정임을 고려해본다면, 이를 통해 <숨겨진 우주>가 의도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M이론과 초끈이론이 주장하는 10차원, 11차원의 세계를 지향하되, 이를 우리가 체험하는 4차원(3개 공간차원 + 1개 시간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11차원 중 하나의 차원이 아주 작은 원처럼 말려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원형으로 말려 있는 차원을 감싸고 있는 2 막은 끈처럼 보일 것이다. 원래는 11차원 이론이 끈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한 차원이 말려 있다면 11차원 초중력 이론이 끈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된다. 말려 있는 차원은 멀리서 그리고 낮은 에너지에서 보면 항상 원래 차원보다 낮아 보이고 그런 차원을 포함하고 있는 이론은 그 차원의 수가 하나 낮아 보인다.(p471)... 낮은 에너지에서 10차원 끈 이론은 11차원 초중력이론과 쌍대성을 이룬다. 10차원 이론의 막은 11차원 이론의 입자에 대응된다.(p474) <숨겨진 우주> 中


 <숨겨진 우주>에서는 이와 같이 말려져 있는 5차원의 공간에서 중력자들이 중력막 근처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5차원의 힘이 어떻게 우리의 4차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중력은 한 막에 갇혀 있지 않다. 막이 존재하더라도 중력은 막에서나 막을 벗어난 곳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 점이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로지 중력이라는 수단뿐이지만, 어쨌든 막 세계가 벌크와 상호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력은 벌크로 뻗어 나가고 또 모든 것은 중력으로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막 세계는 여분 차원과 연결된다. 막 세계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막 세계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더 큰 전체의 한 부분이다. 벌크에는 중력 이외의 다른 입자나 힘이 존재할 수 있다... 요약하면 막은 힘과 입자를 가두고 있는 차원이 낮은 표면이며, 그보다 높은 차원을 가진 공간의 경계이다.(p102) <숨겨진 우주> 中 


 <숨겨진 우주>에서  중력(gravity)은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힘이다. 차원과 차원은 중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우리 역시 중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로부터 차원을 연결할 정도로 큰 힘인 중력이 왜 우리에게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가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중력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이 4차원으로 보인다는 것뿐이다. 우주의 다른 영역도 모두 4차원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도가 지나친 일일 것이다.(p643)... 내가 국소적으로 국소화된 중력이 마음에 든 것은 그것이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는 대상에만 집중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한에서만 우주가 4차원이라고 말하며 우주 전체가 4차원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p650) <숨겨진 우주> 中


 저자는 <숨겨진 우주>에서 5차원의 힘 중력에 대한 가정을 바탕으로 우주의 차원을 한 단계 늘려간다. 랜들은 우주가 5차원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경험하는 4차원보다 높은 차원인 5차원이 존재할 수 있다면, 5차원과 한 단계 높은 6차원 역시 존재할 수 있으며,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차원을 10차원이나 11차원에 이를때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 <숨겨진 우주>는 M이론의 귀납적 증명(induction)인 셈이다.


 <숨겨진 우주>는 독자들을 위해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M이론, 초끈이론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렇지만, 많은 대중교양 과학서에 중복되는 위의 내용은 이번 리뷰에서는 옮기지 않았지만,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어야 함은 물론일 것이다. 2005년에 출간되어 이제는 고전이 된 <숨겨진 우주>는 차원 확장에 대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알려준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광자 하나와 같은 충분히 단순한 양자 역학적 계가 있다면 그 에너지는 플랑크 상수 h와 진동수의 곱이 될 것이다. 그 경우 우리가 에너지를 측정하는 시간 간격과 에너지 오차의 곱은 항상 h보다 크다. 원하는 만큼 에너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그와 맞물려서 훨씬 더 오랫동안 측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도한 불확정성 원리다.(p219) <숨겨진 우주> 中


 힉스(Higgs) 메커니즘이 없다면 기본 입자는 모두 질량이 없어야 한다. 질량을 가진 입자를 설명해야 하는 표준 모형에 힉스 메커니즘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이 표준 모형은 아마도 고에너지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예측을 내놓게 될 것이다. 입자들은 질량을 가지고 있지만, 입자의 에너지가 커져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마치 질량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p311) <숨겨진 우주> 中


 PS. 처음에는 goddamn particle 였다가 후에 The God Particle로 초대칭 신분상승을 한 힉스(Higgs)입자에 대해서는 조만간 정리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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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들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역설적이지만 유행병을 일으키는 이 세균들은 대부분 오늘날 거의 인간들에게만 감염되고 있다.(p287)...  대중성 질병들은 반드시 대규모의 조밀한 인구 집단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구 집단은 약 10000년 전에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에 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가속화되었다.(p299) <총, 균, 쇠> 中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1937 ~ )의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가축 사육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신석기 혁명으로 형성된 도시 발달은 이들 질병을 전염성 질병을 가져왔음을 밝힌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자면, 문명(文明 cultivation)은 질병(疾病 disease)을 발전시킨 것으로, 이들을 동반자 관계로 해석된다. 현대인의 많은 질병이 스트레스성 질환이라는 사실은 이와 같은 관계를 뒷받침하지만, 동시에 문명과 질병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관계이기도 하다. 한스 지거리스트(Henry Sigerist, 1891 ~ 1957)는 <문명과 질병 Civilization and Disease>은 경쟁관계에서 이들을 조명한다.


 의학은 농업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더 안전하게 만들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계속 살펴보았듯이, 의학의 역사는 문명 전체의 발전과정을 반영한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질병에 맞서 싸우는 힘이 점점 더 커지고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투쟁에서 의학은 가장 주된 무기였다.(p373) <문명과 질병> 中


  <문명과 질병>에서 인류는 문명의 고도화를 통해 개체의 생명을 연장하고 사회를 안정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왔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질병은 퇴치해야할 적이다. 지거리스트는 본문에서 특히 사회과학으로서 의학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에 대해 강조한다. 지거리스트가 바라보는 의학의 목적은 개체 치료가 아닌 사회 치료다.


 의학의 목표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사회의 의미 있는 일꾼으로 되돌려주는 것, 또는 질병이 환자를 덮쳤을 때 재정비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의학의 임무는 환자의 신체적인 회복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병이 나기 전에 누리던 사회적인 위치에 복귀하거나 필요하다면 새로운 자리를 찾을 때까지 계속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의학이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인 이유다.(p134) <문명과 질병> 中


 지거리트는 <문명과 질병>에서 역사 속에 나타난 치명적인 질병인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등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나타난 질병보다 이러한 질병이 등장하게 되는 사회적 배경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한다. 여러 질병에 취약한 계층을 줄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방의학이며, 궁극적으로 의학이 지향해야할 방향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건강상태는 매우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가운데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다. 빈곤은 인류에 대한 저주다... 처방은 명백하다. 서방의 몇몇 부유한 국가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지역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또 어떤 계층이 다른 계층들을 희생시키며 번영을 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적어도 사회생활의 기본과정과 생산, 분배, 소비 등에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그리고 과학적 방침에 따라 전 세계적 규모로 사회생활을 계획한다면, 지구촌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건강상태는 교육수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무지 역시 질병의 중요한 원인이다.(p384) <문명과 질병> 中


 질병으로 환자는 노동력을 일시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빼앗기며 그에 따라 경제적인 재앙이 생기므로 환자와 그 가족들은 전적으로 사회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질병은 예방할 수 있고 또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방과 치료에는 돈이 든다. 사회는 의사, 공중보건 담당자, 치과의사,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들의 생활을 보장해주어야 한다.(p128) <문명과 질병> 中


 사회적 차원에서 예방의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부의 불평등 문제, 교육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함께 역량이 집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질병에 취약한 계층이 점차 사라진다면 지금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와 같은 대규모 전염성 질환에 대한 걱정도 한층 줄어들 것이고, 질병의 사회적 비용 또한 감소될 것이다.


  2020년 2월 1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국내 확진 환자가 12명으로 늘은 현 시점에서 사회 불안은 한층 커진 듯하다. 실시간 중계방송 하듯 피해상황을 보도하는 언론과 이를 정쟁거리로 만들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언행이 12명의 확진자를 가져온 질병보다 더 크게 사회를 흔드는 현실은 병을 고치는 왕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 <기적을 행하는 왕 Les Rois thaumaturges>을 연상시킨다. . 결핵성 경부 임파선염(scrofule)인 연주창을 치료하는 왕의 기적을 분석한 마르크 블로크(Mark Bloch, 1886 ~ 1944)의 글 안에서 우리는 극한 현실에 담긴 인간의 신념을 확인하게 된다. 연주창이 아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에 담긴 누군가의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있다면 그 신앙은 무엇일까.


 왕의 기적은 무엇보다도 최고의 정치권력을 나타내는 어떤 관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p67)... 연주창은 왕의 병으로 불리는데, 그것은 왕이 손대면 병을 줄 수도 있고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p69)... 무서운 질병이 왕들의 손과 접촉하고 나면 치료된 것처럼 보이거나 때때로 정말로 치료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거기에 신성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기적에 대한 신앙을 만든 것은 거기에 기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대를 거듭해 증언이 축적되었고 점점 증가했으며 사람들은 경험에 근거해서 말했으므로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존엄하신 분의 손가락과 접촉했음에도 병이 지속되는 경우는 꽤 많았을 텐데, 이러한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빨리 잊어버렸다. 이렇듯 왕의 기적에 대한 신앙에는 집단적 오류의 결과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p475) <기적을 행하는 왕> 中


 사실, 이러한 의도와 무관하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큰 희생없이 이번 위기가 넘어가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도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과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과 (아직은 결정되지 않은)피해자를 남기고 마찬가지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도 다른 변종 바이러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 떨며 지내야 할까.


 아니면, 우리는 종편 방송의 수많은 건강관련 프로그램과 몸에 좋은 식품 소개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깨닫고, 질병에 취약한 계층을 줄여 사회 체질을 강화시켜 진정한 사회 공동체 차원의 예방의학 정책을 실시할 수 있을까. 질병을 통해 문명의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는 점에서 질병은 문명의 동반자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질병의 치료에서 인간의 심리가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문명과 질병>의 한 대목을 옮기며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오늘날 우리는 암시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 알고 있고 의식적으로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암시와 자기 암시가 특정 질병의 어떤 증상들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념이나 종교적 열정에 의한 긴장이 치료에 가장 적합한 마음의 상태를 만든다.(p232)... 근대적 경험은 신경증뿐만 아니라 특정한 기질적 질병도 암시나 다른 종류의 심리치료에 의해 완전히 낫지는 않아도 현저히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p234) <문명과 질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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