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비록 이런 위기 속에 있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사회적 합의와 갈등의 조정, 그리고 국민적 컨센서스를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도약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외국의 사례를 봐라, 둘째는 통계를 봐라, 셋째는 빅 데이터를 봐라, 이렇게 보면 미래가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는 게 제 지론이지요. 큰 그림을 얻는 거에요.(p30) <박원순과 도올, 국가를 말하다> 中


 2016년 촛불 혁명과 이어진 탄핵과 대통령 선거.  <박원순과 도올, 국가를 말하다>는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자 중 한 명이었던 박원순 시장과 도올 김용옥 교수의 대담을 담고 있다. 경제, 문화, 교육, 국방 등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노철학자는 원론과 방향에 대해 말을 한다면, 행정가는 현실을 바탕으로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책으로 기억된다.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서울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아직은  자세한 내용을 모두 알 수 없지만, 바로 직전 직원 성추행 피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 사건과 박원순 시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정황상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민권운동가로서 3선의 서울 시장으로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고인. '성추행 피소'건은 그에게 큰 수치심을 안겨 준 것은 아닐까. 평소 인권(人權)을 강조하던 그였기에 만약 이로 인해 유죄판결을 난다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한다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이 아프지만, 정말 조심스럽게 넘겨짚어본다. 그렇지만, 이 역시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고프먼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수치심을 겪는 사람은 개별성과 존엄성을 지닌 고유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 이하의 존재다. 보다 일반적인 면에서 보면 일탈자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면서, 자신을 수치심을 느끼는 이들보다 위에 있는 '정상인'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처럼 수치심은 사회 구성원을 서열화하는 작용을 한다.(p422) <혐오와 수치심> 中


 박시장의 이러한 선택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박시장이 성추행을 저질렀다면 엄중하게 조사가 이루어져야 했고, 판결 결과에 따라 처벌 또는 무혐의 등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했다. 만일 피소가 사실이라면 개인에게는 소명의 기회를, 사회 전체로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계기로 삼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박 시장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의 선택에는 사실 조사 이전에 언론에 의한 무차별 보도, 검찰에 의한 마녀사냥식 수사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보안법 전문가로서, 인권운동가로서, 서울시장으로서 그가 세운 수많은 업적이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잊혀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상황을 잘 알지 못하기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고인의 불명예스러운 마지막 길만 사람들에게 남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죄책감은 [죄를 저지른] 사람과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한 구분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존엄을 존중하는 것과 완전히 양립할 수 있다.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처벌하면서도, 그 사람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궁극적으로 사회에 재통합될 수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p425) <혐오와 수치심> 中


 이와 함께, 고인이 느꼈을 '다가올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은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여 안타깝다. 자신의 주변인물들이 겪을 심적인 고통과 함께 (만일 성추행 의혹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피고소인이 안게 될 마음의 짐 도 고려하여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만 뒤늦게 해본다. 


 유능하면서도 인간적인 정치인이었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동시에, 인간이 가지는 한계와 최근 불거지는 여러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음 과제 중 하나는 성인지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성(性)과 관련한 사건이 일회성 관심을 받고 흐지부지 되는 결론으로 끝나지 않도록,  제도적인 방지책 마련과 사회의 인식 확산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모든 생각의 근거는 박시장의 죽음이 성추행 피소와 연관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좀더 명확하게 드러날 때까지 미뤄두도록 하자... 현재 분명한 것은 박시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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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0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0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풍오장원 2020-07-10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문가는것까지 비아냥대는 사람들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군요..

겨울호랑이 2020-07-10 11:17   좋아요 2 | URL
죽은 이에 대한 애도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기까지 하겠습니까... 물론 비상식적인 소수는 어디에나 있겠지만요....

2020-07-10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0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20-07-10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번 비극을 보면서 저는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말했던 ‘이중사고‘를 새삼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전직 지방자치단체장, 전직 국회의원, 전직 장관 등등 유별나게 잘난 척, 깨끗한 척 했던 사람들이 왜 이토록 ‘이중적‘인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에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아이러니 왜이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게 없잖니...중독은 달콤해 멈출 수가 없어...

* * *

˝‘이중사고‘란 낱말은 이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우선 이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당의 지식층은 자신들의 기억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할지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현실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이중사고‘의 훈련에 의해서 현실은 침해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확하게 수행될 수 없다. 그런데 또한 이런 과정은 무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날조를 한다는 느낌이 들게 되고, 그로 인해 죄의식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당의 본질적인 행위는 완전히 정직하게 수행된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의식적인 기만을 감수하며 행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사고‘는 ‘영사‘의 핵심이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그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불필요해진 사실은 잊어버렸다가 그것이 다시 필요해졌을 때 망각 속에서 다시 끄집어내며, 객관적인 현실을 부정하는 한편으로 언제나 부정해 버린 현실을 고려하는 등의 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중사고‘란 말을 사용할 때도 ‘이중사고‘를 해야 한다. 이 말을 사용하면 현실을 왜곡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다시 ‘이중사고‘를 하면 바로 인정한 것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무한한 거짓말이 진실보다 언제나 한걸음 앞서가기 때문이다.”
—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겨울호랑이 2020-07-10 21:03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상식을 가지고 말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지를 받았던 이들의 행동이 그들의 말에 미치지 못해 실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그나마 이들이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방향성에 대해 동감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주어진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나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성에 비해 현실은 못 미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듭니다. 어쩌면 방향성에 대한 합의 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방향서에 대한 고민을 해야할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민주주의의 장점이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와 같다는데 있다 생각합니다. 앞에 쓰러지는 이가 있어도 바로 뒷열의 사람이 채우듯, 민주주의 제도 역시 어려운 현안에 대해 다른 이가 대신하면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 여겨집니다. 같은 의미로, 소수의 정치인이 일탈이나 잘못된 일이 있어도 그것으로 시스템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팔랑크스가 나아가는 방향성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에 대한 고민은 필요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고민으로 방향성만 잘 합의된다면, 시스템에 따라 이에 맞는 인물들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있겠지요...

oren님께서 조지 오웰의 <1984> ‘이중사고‘로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만, 저 역시 박시장의 피소 혐의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 옵니다. 다만, 요즘 나오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재판결과에서 볼 수 있듯 혐의만으로 죄를 특정할 수는 없기에,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아쉽게 여겨집니다... 참 답답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북다이제스터 2020-07-10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흔히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그래서 살인자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지 못합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을 진심으로 할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맞을까요?
어려운 얘기인 것 같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0-07-10 20:54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야할 길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장벽에 막혀 이상에 미치지 못한 현실을 살고 있기에, 말과 행동이 다른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비판을 한다면, 말과 행동의 다름이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는가의 여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을 가리기도 쉽지는 않습니다만...

나와같다면 2020-07-11 0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먹먹하고 안타까운 하루가 지나갔네요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이 머리 속에 가득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7-11 07:50   좋아요 3 | URL
저 역시 충격이 가시질 않네요...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일단은 그저 바라보고 일어나는 생각과 마음을 느껴 봅니다...
 

 

 요즘 연의의 책장에서 지금은 읽기 쉬워진 책들을 골라 따로 챙겨 놓고 있습니다. 사촌동생들에게 책을 주기 위해 비워진 공간들은 곧 새로운 책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 1946 ~ )의 <우리 엄마> <우리 아빠가 최고야>책에 잠시 시선이 머물게 됩니다. 엄마와 아빠의 자식 사랑을 다룬 두 책이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우리 아빠 최고야>의 아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에게 '보여지는' 존재인데 반해, <우리 엄마> 속에서는  '함께 하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겠지요. 두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하는 아빠와 자신을 버리고 함께 하는 엄마의 차이는 작지 않은 것임을 새삼 느낍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엄마와 자녀의 모습이 표현됩니다. 그저 엄마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요.


 우리 엄마는 무용가가 되거나 우주 비행사가 될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영화배우나 사장이 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우리 엄마가 되었죠. <우리 엄마> 中


 '엄마, 어디 있어요? 엄마!' 나는 '으앙!' 하고 울었어요. 무릎에서 빨간 피가 흘렀어요. 엄마를 소리쳐 불렀어요. "엄마!" "희진아, 엄마 여기 있어~".... 엄마를 찾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 中


  도올 김용옥 교수의 <효경 한글역주>에서는 이러한 엄마와 자녀의 관계를 <부모은중경 父母恩重經>을 통해 설명합니다. 출산의 고통을 통해 맺어진 이들의 관계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원초적 관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맺어진 아버지와의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효(孝)의 가장 원초적 출발은 모성애이다. 동물의 세계에 있어서도 수컷은 수태과정에 주로 기능하며,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출산과 양육은 암컷의 모성애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효의 교감의 가장 원초적 대상은 엄마일 수밖에 없다(p166)... 아버지에 대한 효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문명의 가치관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효라는 것도 문명화되고 윤리화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자연적이고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그 원초성이 퇴색되지 않는다.(p167) <효경 孝經 한글역주> 中


 <부모은중경>의 뛰어난 사실은 "부모"를 말하면서도 오로지 "엄마의 무한한 은혜"를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p170)... <부모은중경> 은 극적인 대화로써 사람을 끌어들이며 곧바로 엄마가 아기를 가진 후 열 달 동안 고생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한 달, 두 달, 세 달... 열 달까지 그 태아의 생성모습을 그리는 언어가 오늘날의 발생학적 사유와 대차가 없으며 그 묘사기법이 매우 절실하다. 그리고 천 개의 칼로 배를 휘젓고 만 개의 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하 엄마의 산고를 묘사하고 곧이어 앞서 말한 어머님 은혜 십게찬송(十偈讚頌)이 설파된다.(p171) <효경 孝經 한글역주> 中


 아빠의 사랑은 사회적 관계이고 엄마의 사랑은 원초적 관계이기에, 전자는 위압적이고 권위적이며 수직적이고 당위적이며 이성적인 반면, 후자는 인종적이고 포용적이며 수평적이고 자연적이며 감성적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매우 냉정하게 들리지만,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했다 생각됩니다. 조금은 다르지만, 세라 블래퍼 허디 (Sarah Blaffer Hrdy, 1946 ~ )의 <어머니의 탄생 Mother Nature>은 아기와 엄마의 결합을 진화적 논리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젖빨기의 에로스와 연인의 에로틱한 감정의 대립 구도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까지 거슬러올라 갈 수 있겠지만, 가족 내의 사랑을 이렇게 대립적으로만 바라볼 것은 아니기에 여기서는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모성(母性)과 성성(性性)은 부성(父性)과 남성(男性)의 성적 경험에는 적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뗄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 남성과 다른 영장류 수컷의 성적 욕망은 암컷과의 교미가 자신의 정자가 난자를 수정시킬 가능성을 높여 주었기 때문에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난자의 수정은 교미가 여성의 번식 목표에 봉사하는 여러 가지 길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p834)... 젖 빨기의 에로스, 아니면 이성애적 어른 커플의 에로틱한 감각 중 어떤 것이 먼저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나는 전자가 먼저라고 추측한다. 모성은 성적 감각과 단단하게 엮여 있으며, 투덜거림과 속상임, 촉감과 냄새를 통해 어머니가 이 아기를 최우선 수위에 두도록 만드는 어머니 대자연의 보상 체계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은 아기의 일이다. 진화적 논리는 그 자신을 위해 어머니 역할의 감각적인 측면을 향휴하는 어머니들의 편에 굳게 서 있다.(p835) <어머니의 탄생> 中


 <어머니의 탄생>에서 보여지는 대립 구도와는 달리 매트 리들리(Matt Ridley, 1958 ~ )는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Nature Via Nurture: Genes, Experience, and What Makes Us Human>에서 태어나는 인간과 만들어지는 인간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누구와의 관계가 더 밀접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모두 필요한 존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부모에 대한 아이의 시선과 기대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는 엄마와 아빠의 숙제인 듯 합니다. 


 아이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오래 전 읽었던 책들 안에서 서로 다른 부모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PS. 최근에 개정되어 나온 <우리 아빠>는 이전 제목인 <우리 아빠 최고야>때보다 권위를 내려놓은 아빠의 느낌을 받게 되어 좋게 느껴집니다. 내용까지 읽어보진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아빠와 자녀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다른 표현이 아닐까 짚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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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7-02 07: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효경 생각에 반대합니다. ^^
아빠와 엄마 역할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는 산물이라고 봅니다.
효경 당시 문화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

겨울호랑이 2020-07-02 07:51   좋아요 2 | URL
제가 인용한 <효경 한글역주> 중의 내용은 도올 김용옥 교수의 해석으로 <효경>의 본문과는 조금 다릅니다. 해당 부분은 <부모은중경>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이 되어 있습니다만, 본문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대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엄마와 아빠의 역할도 달라지고,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감정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엄마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연의를 보면서 제 한계가 아닌 아빠의 한계라 스스로 위안을 했는데,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변명의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더 노력해야겠네요 ^^:)

단발머리 2020-07-02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는 책 나와서 반갑습니다.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제가 맨 위의 두 권은 백번도 더 읽었다죠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0-07-02 18:02   좋아요 0 | URL
정말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네요. 다른 문화권에서도 꾸준히 아이들에게 사랑 받는 것을 보면, 어른이 된 후에도 아이들의 감정을 잘 잡아내는 작가의 뛰어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2020-07-05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05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비용•편익 분석을 지지하는 논거에 따르면 정보가 부족하면 과도한 규제를 요구할 수 있고, 일종의 ‘피해망상과 무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한편 비용•편익분석은 새로운 규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경우도 많다(p99)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중

캐스 선스타인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에서 동물의 권리, 기후변화, 차별 문제와 같은 사회 현안을 비용•편익 관점에서 분석한다. 각각의 문제들의 찬/반 시 예상되는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면서 이들을 비교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어떤 문제에서도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극단이 아닌 ‘중간‘을 선택하는 방안이 가장 전략적인 선택이다.

자신감있는 사람들은 전략적인 이유로 중간주의를 선택한다. 중간주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다수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방법이다. 여기에서 (전략적) 타협안으로서의 중간주의를 지지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전략적 중간주의자는 여러 법관으로 구성된 법정에서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해,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고 노력한다.(p297)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중

캐스 선스타인의 다른 저작 「넛지」와 연결시킨다면, 우리는 극단에 서지 않고 중간에서 다른 이들을 부드럽게 우리 편으로 이끄는 전략을 통해 우리의 뜻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정리될 것이다. 캐스 선스타인의 주장대로 산다면 우리는 전략적으로 승자의 편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전략이우리를 둘러싼 사회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정보는 넘쳐나지만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잘못된 신호만이 감지된다면. 또는 다수가 소수에 의해 끌려가는 상황이라면 과연 이를 승자의 전략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때문에 저자의 전략이 우리가 생각없이 기계적 중립자의 편을 무작정 따라가면서 ‘넛지‘를 당하며 살아갈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지는 못하기에 이 점은 한계라 여겨진다. 중간주의와 넛지는 사회체계 자체의 모순에는 무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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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05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The Origins of Korean War」를 읽었다. 커밍스는 2권의 책에서 미•소 강대국에 의한 신탁통치가 전쟁 이전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남과 북을 만들었는가를 설명한다. 1권에서는 갑작스러운 일제 패망으로 혼란스러운 정국과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무지가 드러난다. 이들은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에 일제가 남긴 유산 - 근대화한 철도, 중앙집권형 관료제 -를 적극 활용한 통치를 펼치지만, 이러한 강압적인 미군정은 남한 내 공산세력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준다. 반면, 소련은 인민위원회를 적극 지원하고, 이로 인해 북한은 빠르게 중앙 집권화를 이루게 된다.


뒤를 이어 제2권에서는 대외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의 태평양 전략과 애치슨 라인 선언(Acheson Line declaration) 배경과 1949년 중국 국민당 정부의 패퇴와 공산당 정부 수립 등이 1950년 한국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서술된다.

 커밍스가 바라본 한국전쟁의 기원은 이와 같이 복합적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는 일제 식민시대의 경험과 영향, 세계적으로는 새로운 패권국가 미국과 소련의 대립, 중국 공산당의 승리 등 모든 요인이 한국전쟁을 만들었다고 보기에,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즉답을 피한다.

 Imagine : that the Korean War should have started in remote and isolated Ongjin, within the realms of far-off, remote Korea; that the conflict was between the Kim Il Sung and the Kim Sok-wons ; that the United States and then China should have been drawn into this black hole ; and that global war was at the doorstep six months later : it is still amazing, daunting, terrifying. It became an unmitigated tragedy for all concerned, this war that began with an incident at Ongjin.(p620)... Who caused the Korean War? No one and everyone, all who were party to the intricate tapestry of events since 1945... Who started the Korean War? This question should not be asked. Especially, Koreans should stop asking this question.(p621)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2 > 中

 이번 독서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을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독서였지만, 솔직하게 여러모로 부족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 해방 전후사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고, 해방 전후사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한국근대사 이해가 필수적인데 이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 더구나 한국근대사 부분은 ‘자본주의 맹아론‘ 등 역사전쟁의 쟁점이 담겨있음을 생각하면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러한 역사적 이해 부족에 더해 최근 볼턴의 회고록 사건을 통해 보듯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인 한국전쟁은 진행형이기에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어려움도 더해진다...

 이런 부족함을 반성하며,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한 독서는 보다 깊이있는 독서가 되어야 하기에 이에 맞춰 계획을 잡아본다. 먼저 해방 전후사를 다룬 두 관점에 대한 책들로 그 시대를 조명하고, 여기에 더해 「독도 1947」로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외교의 움직임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으로 일제 잔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보는 것으로 큰 대강을 잡아본다.. 상세한 독서 계획은 차차 세우도록 하고 일단 책들을 갖추었으니 서둘지 말고 꾸준히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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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6-25 0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가 겨울호랑이님의 서재에 놓인 소녀상을 기억합니다

친일인명사전까지 가지고 계시다니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겨울호랑이님 멋지십니다

겨울호랑이 2020-06-25 05:27   좋아요 1 | URL
에고 쑥스럽습니다. 소녀상이 담긴 페이퍼는 꽤 오래 전에 작성했는데 기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한, 친일인명사전을 가지고 있지만 사전이어서 많이 읽지 못해 부끄러운 마음도 함께 듭니다. 이번 계기로 의미있는 독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기대감과 함께 나와같다면님 격려도 받으니 더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2020-06-25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25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25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25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회고컨대 2018년은 참으로 평화와 희망의 한 해였다. 불행히도 2019년 2월 27일 ~ 28일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는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이 제시한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이라는 빅딜(big deal)과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의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폐기와 유엔안보리 제재의 부분적 완화의 동시 교환"이라는 섬딜(some deal)간에 절충이 실패하면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되었고 그 여파로 한반도의 불확실성은 과거 어느 때 보다 크게 증폭되고 있다.(p3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6.> 中


  2020년 6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에는 한국전쟁 70주년이자, 6.15 20주년을 맞아 문정인 특보의 기고문이 실렸다. 며칠 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면서 급냉한 현 시점에서 이 글을 읽으니 마음이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에는 몇몇 생각할 지점이 있기에 이번 페이퍼에서는 기고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려한다. 


 문정인 특보는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하게 된 시기를 2차 북미회담 결렬 이후로 파악하고, 이 시기를 전후해 우리 정부도 상황의 주도권을 잃고 상황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또한, 문특보는 이러한 상황 이전 평화로운 2018년을 주도한 정부의 정책은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의 평화론에 기반하였음도 함께 밝힌다.


 평화 유지가 소극적 평화전략이라 한다면 평화 만들기는 적극적 평화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평화 구축(peace - building) 전략이다. 평화 구축은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맥을 같이 한다. 영구평화론의 제1명제는 '무역하는 국가들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소위 자본주의 평화론이다. 제2명제는 '민주주의 국가들끼리 싸우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이다. 그리고 제3명제는 평화연방(The pacific federation)이다. 세계 정부의 한 형태인 평화연방을 만들면 사실상 국가간의 전쟁은 있을 수 없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영구평화가 가능하다는 게 칸트의 기본명제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구축 전략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남북한이 경제교류협력을 하고 철도, 에너지를 연결하여 경제공동체가 형성되면 남북이 싸울 일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이 구상의 핵심이다.(p3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6.> 中


 위의 내용에 대해,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서 해당 내용을 찾아보자. 문 특보가 말한 영구평화론의 제1명제는 '제1추가조항 영구 평화의 보증에 대하여'에 나온다. 칸트는 해당 명제의 설명에서 재물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을 통해 자연이 영원한 평화를 보장함을 밝히는데, 이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국부론> <도덕감정론>을 통해 개인의 이기심이 타인의 동감을 불러와 최선의 결과를 도출시킨다는 논증과 통한다. 우리가 물질적이라고 여길만한 감정이 보다 높은 이상을 달성시킨다는 아이러니는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데, 이는 뒤에서 칸트의 '자연'에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자연은 여러 민족을 현명하게 분리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으로 자연은 또 세계 시민법의 개념에 의해서는 폭력과 무력에 대항해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었던 여러 민족들을 상호 이익에 의해 서로 통합시킨다. 그것은 전쟁과 양립할 수 없는 상업적 정신인데, 조만간 각 민족을 지배하게 된다. 금력(金力)이야말로 국가 권력 안에 포함되는 모든 권력(수단) 가운데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기 때문에, 각 국가는 부득불 영예로운 평화를 추구해 가지 않을 수 없게 되며,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는 곳이 어디가 되었든 간에 중재를 통해 전쟁을 막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은 인간의 경향성의 기제에 의해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게 된다.(p56) <영구평화론> 中


 또한, 칸트는 이러한 인류의 영원한 평화는 자연의 숨겨진 의도에 따라 '세계공화국'으로 이끌린다고 보고, 자연의 의도에 따라 영원한 평화라는 국제 질서가 확립될 수 있음도 밝힌다. 개인적으로는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와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를 투쟁상태로 파악하는 칸트가 영원한 평화를 주는 존재로 자연을 말하는 것은 또한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힌두교의 친절하면서도 난폭한 신 루드라(Rudra) - 시바(Siva)을 떠올리게 하는 칸트의 '자연'. 이러한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판단력 비판>과도 연결지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일단 넘기자.


 (제8명제) 인류의 역사는 국내적으로도 완전하며, 그리고 이 목적에 맞으면서 국제적으로도 완전한 국가 체제를 성취하고자 하는 자연의 숨겨진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p38)... (제9명제) 인류의 완전한 시민적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연의 계획에 따라서 보편적 세계사를 편찬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가능한 것으로서, 또 이런 자연의 의도에 공헌하는 것으로서 간주되어야만 한다.(p40) <칸트의 역사철학,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中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은 <세계공화국으로>에서 칸트의 평화론이 단순히 국가간의 관계를 고려한 국제정치에서 통용되는 것이 아니나, 세계공화국의 틀 안에서 행해질 수 있음을 밝힌다. 그는 구체적으로 세계공화국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국가가 가지고 있는 군사 주권을 국제연합에 양도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현실적으로 이루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한계 안에서 우리는 칸트의 평화론이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서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칸트의 평화론에 근거한 평화구축 전략 역시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도 전에 예비 조항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칸트의 생각은 단순히 단독행동주의에 대한 다국 간 협조주의 같은 것이 아닙니다.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이 칸트의 '국가연맹' 구상에 기초한 것이 확실하지만, 그는 딱히 그런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것을 제기한 것은 현실적인 타협안에 지나지 않습니다.(p222)... 그의 이념은 궁극적으로 각국이 주권을 방기함으로 형성되는 세계공화국에 있습니다.  그 이외에 국가 간의 자연상태(적대상태)가 해소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이외에 국가가 지양될 방법은 없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만 국가를 지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p223) <세계공화국으로> 中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위한 예비 조항 (1)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은 어떠한 평화 조약도 결코 평화 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영구평화론> 中


 문 특보는 기고문의 마지막에서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현재의 접근법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다. 최종 목적은 분명히 하되 유연성있는 태도 변화가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임을 밝히는 그의 글 속에서 효과적인 군비 축소를 위해서는 정치 문제 해결이 먼저라는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 ~ 1980)의 논지를 떠올리게 된다. 비록, 핵 군비 통제와 재래식 무기 통제라는 차이는 있지만, 정치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이 필요함은 석학들의 주장을 통해 분명해 보인다.


 밴 잭슨 교수도 주장한 바 있지만 '선 비핵화'에 기초한 비핵화 패러다임으로는 북한 핵문제를 풀지 못한다. 목표는 비핵화에 두지만, 실질적으로는 핵군축 협항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북한이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제재 완화를 의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이고도 맹목적 제재 완화는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폐기다. 북미간 국교 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제도적으로 구축이 된다면 북한의 핵보유는 정당화되기 어렵다.(p3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6.> 中

 

 (다양한 국가들이 군축 시) 적용하는 기준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결정될 뿐 객관적인 기준 같은 것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기준은 관련 국가들이 자신들을 갈라놓는 정치적 문제의 해결에 일차적으로 합의한 뒤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군비 할당 기준의 문제는 비율 문제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분쟁 해결이 군비 축소에 선해오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해결 없이는 군축은 성공 가능성이 없다.(p173) <국가간의 정치 2> 中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화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고도 분명하게 평화로 나가기 위한 걸음을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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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6-19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축사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김정은 위원장이 8천만 겨레앞에서 했던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평화는 누가 대신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이 땅에 민주. 평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기대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6-19 07:00   좋아요 1 | URL
여러 모로 뜻깊은 한 해인데, 상황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시간 중 어렵지 않았던 시기가 많지 않았음을 생각해 봤을 때, 중단없이 왔던 길을 다시 나가야한다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