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보충할 목적으로 조선인 약 70만명과 중국인 약 4만명을 일본 본토와 사할린 등지로 강제연행하여 광산 등지에서 혹사시켰기 때문에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또 일본은 다수의 조선인 여성과 점령지 여성에게 군 관리하의 위안부생활을 강요했는데 그중에는 강제연행되거나 속임수로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다.(p528) <새로 쓴 일본사> 中


 중국인 포로들은 더욱 형편없는 보상을 받았고, 동남아시아로 끌려간 노무자들의 숫자는 추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위험지역에는 '근로보국대'로 징발된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 끔찍한 이야기에다 '위안부'라는 기묘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최근에 추가되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강제로 일했다. 제국군대는 풍기문란을 막고 성병을 줄이기 위해 공개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관리했다. 위안부의 모집은 보통 인신매매 중개인을 통해 이루어졌고, 규슈의 궁핍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여성이 차출되었다. 규정상 강제모집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군인의 수가 늘어나고 전선이 확대되자 정상적인 공급원에만 의존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직업적 매춘부보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지원했거나 강제로 끌려온 여성의 수가 많아졌다.(p972) <현대일본을 찾아서 2> 中 


 일본의 극우주의 역사책들은 과거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침략'을 '진출'로 정당화하고,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러한 역사왜곡 안에는 이들이 저지른 참상은 은폐되고, 이러한 사관(史觀)으로 일본 중고등학교 역사가 집필되는 점은 우려할만한 지점이다. 그렇지만, 강제동원과 정신대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은 일본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참상을 역사의 수면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역사 안에 포함하는 일본 역사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일본 내에서 이를 부정하고 담지 않는 역사서가 아직은 훨씬 더 많지만. 

 

 백지에 쓴 문장을 소리 내 읽던 그녀는,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말을 하고, 그리고 죽고 싶다."... "엄마가, 엄마가 가장 갖고 싶어.(p153)' <한 명> 中


 그녀는 울고 싶은데 울음이 안 나온다. 아귀처럼 입을 한껏 벌리고 목을 늘어뜨려도 눈물 한 방울 안 난다. 자매들이 죽었을 때도, 오빠가 죽었을 때도 그녀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니까, 친인척들은 흉을 보았다. 독해서 시집도 안 가고 평생 혼자 살더니만 울지도 않는다고. 그녀는 너무 지독하게 살아서 눈꺼풀을 쥐어뜯어도 눈물이 안 나는가 보다 했다. 평생에 걸쳐서 두고두고 울 걸 소싯적에 다 울어버려서 그런가 보다고.(p36) <한 명> 中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기가 막힌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했던 피해자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2차 가해였으리라.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한 이들이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희(정의기억연대 전신)이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이들의 공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많은 위안부가 사망했고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에 이 문제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국, 중국, 심지어 네덜란드 여성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위안부문제는 국제문제로 비화되었다. 일본정부가 (외양상으로는 비정부기구를 통해) 손해배상과 보상을 위한 기금마련에 나선 것을 보면 희생자들의 불만이 정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p973) <현대일본을 찾아서 2> 中


 최근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윤미향 이사장과 정의기억연대와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의혹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30년 동안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 한 이들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기다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끌려간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 아픈 역사가 반복되었다면, 정의기억연대가 있어 공론화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功)을 생각한다면, 정의기억연대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을 이제는 우리가 할 차례라 여겨진다.

 

 남자들은 걸핏하면 국가입네 민족입네 거창하게 얘기하지. 강제로 끌려가서 당한 우리만 죄인이고. 불문곡직하고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게 남자들의 생각이야. 우리가 정신대로 끌려갈 때 조선 남자들은 뭘 했는고?(p99)... 왜정 때 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 여자들이 십 수만 명이래. 위안부로 등록한 할머니 이백 몇 십 명을 뺀 수많은 할머니들은 한을 안고 소리 소문 없이 죽거나 외롭게 살아가것제. 그넘들이 끌어다가 쓰고 싶으면 쓰고 아프고 병들면 처분해 버리고... 정말 골병들었다.(p100) <나비의 노래> 中


PS. 이들이 저지른 회계부정이 있다면 엄중하게 판결해야 할 것이다. 다만, 회계부정이 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가족간 취업특혜가 있었다면 KT 채용비리와 비교하고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과 정도를 따져 형평성있는 판결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런 판결이 나올 때까지 뒤늦게나마 정의기억연대 정기 후원을 시작한다...



 

 민주주의의 세 번째 차원은 민주적 담론이다. 진정한 집단적 행위는 상호작용을 요구한다... 만약 시민들이 그들이 말하는 좋은 생각들이 주의를 끌 수 있도록 하는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에게 말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진정한 형태의 자기-정부를 제공할 수 없다. 만일 공공의 담론이 검열 때문에 장애를 받는다면, 또는 각각의 편이 다른 편이 말하는 것을 단지 왜곡하거나 묵살하기 위해서 고함을 치거나 비방하는 시합으로 타락한다면 어떤 집단적 자기-정부도 없고, 어떤 종류의 집단적 사업이라는 것도 없으며 오직 수단만 다른 전쟁으로 간주되는 투표만 있게 된다.(p555) <자유주의적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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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0-05-20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의연에 대한 겨울호랑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5-20 20: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 작은 실수 하나로 정의연의 성과와 노력 전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동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치활동 정지, 언론/출판/보도/방송의 사전검열, 대학에 대한 휴교조치, '북괴'와 동일한 주장이나 용어사용 및 선동행위 금지 등을주요 내용으로 하는 계엄포고 10호를 발포한 신군부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해 대통령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던 김대중, 김종필 등을 체포하고 김영삼을 가택연금했다. 많은 재야인사들을 체포했으며, 신현확(申鉉碻) 내각을 사퇴시키고 새 내각을 구성했다. 한편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났고, 진압을 위해 파견된 계엄군이 이를 과잉진압하여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가담하고, 무기를 탈취한 '시민군'이 형성되어 약 10일간 광주시 전체가 무정부상태로 되었다가 계엄군이 다시 투입되어 무력으로 시민군을 섬멸한(5.27)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났다.(p310) <고쳐 쓴 한국 현대사> 中


 내일이면 신군부 쿠데타 및 계엄령 확대에 항의하며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그렇지만,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문제들처럼 아직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사건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간략하게 나마 5.18 민주화운동 중 가장 희생이 컸던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내용을 <고쳐 쓴 한국 현대사>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장군은 자신의 쿠데타를 완수하고자 했다. 계엄령 확대를 선포하고 대학을 폐교하고 입법부를 해산하고 모든 종류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5월 17 ~ 18일 야밤에 수천 명의 정치지도자와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신이 상임위원장이 되었다. 이런 비상조치와 함께 전두환은 광주항쟁을 터뜨렸다.(p540)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12.12 군사반란 이후 계엄령 확대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자 신군부는 대응 수위를 높이면서 계엄령을 확대해간다. 이와 함께 신군부는 시위의 강경진압을 위해 공수부대의 훈련(충정훈련)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5월 18일 16:00를 기해 광주에 진입하면서 유혈참극은 시작되었다.


 5월 18일 광주 거리에 약 500명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계엄령 철폐를 요구했다. 약물을 복용했다고 여겨지는 정예 공수부대가 이 도시에 도착하여 학생, 여성, 어린이 가릴 것 없이 길을 막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차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한 여학생은 시청광장 근처에서 공수대원의 총검에 가슴이 찔린 채 군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몇몇 학생들은 화염방사기로 얼굴이 지워져 버렸다. 5월 21일에 이르러서는 광주지역의 수십만의 시민들이 군인들을 도시에서 몰아냈고 그후 5일간 시민들의 수습대책위원회가 이 도시를 통제했다.(p540)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5월 21일 전남도청 집단 발포 이후 시민군들은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 무장을 시작했고, 일부는 아시아자동차에서 장갑차량을 탈취하고 광주시를 장악했다. 이들 광주 시민에 의한 자치는 5월 27일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이전까지 유지되었지만,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하면서, 광주민주항쟁은 처참하게 끝나게 되었다. 


 헬리콥터의 확성시에서 광주시민들에게 5월 27일 새벽에 20사단이 광주시로 진입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경고 방송이 있었다. 새벽 3시 군인들은 사격을 하며 진격하여, 인근지역의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를 내려놓기를 거부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살해했다. 하지만 이 부대들은 군율을 지켰고 신속하게 도시를 장악했다.(p54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한 5.18 민주항쟁은 40년이 지났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진행형이다. 대표적인 논란이 지만원 등이 주장하는 '북한군 개입설'인데, 이러한 근거 없는 주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시민군들이 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한 행동을 위법행위이며 폭동으로 인식하는 인식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국가 내에서 '합법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인 군대(軍隊)가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법행위이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불법행위에 대한 저항을 우리는 폭동이라고 봐야할 것인가.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어떠한 권리자든 다음과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즉 그들이 권리를 주장해야 할지, 적대자에게 저항해야 할지, 혹은 투쟁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권리를 포기해야 할지의 문제다. 여하튼 누구도 이와 같은 결심을 그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 결심이 어떻게 내려지든 두 가지 경우 모두 희생이 따른다. 한 경우는 권리가 평화에, 다른 경우는 평화가 권리에 희생된다. 이러한 관계에서 볼 때 문제는 사람이 처해 있는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어느 것이 더 참을만한 희생인가 하는 것으로 집중된다.(p28) <권리를 위한 투쟁> 中


 루돌프 폰 예링 (Rudolf von Jhering, 1818 ~ 1892)는 <권리를 위한 투쟁 Der Kampf ums Recht>에서 권리를 침해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제시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한다면, '불법에 대한 저항은 권리자의 의무'이다.  이를 민주화 운동에 적용해 본다면,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저항은 주권자의 의무가 될 것이다. 평화주의자인 예닝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에 의한 투쟁인 소송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바로 눈 앞에서 착검을 하고 조준사격을 하는 상대를 두고 법적인 투쟁을 말하는 것은 한가로운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광주시민들의 자치 기간 동안 큰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은 이들의 투쟁이 단순한 폭동이 아님을 반증하기에 충분하다 여겨진다.


 내면의 소리는 그에게 속삭인다. "너는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치 없는 투쟁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명예, 법감정이며 자기존중이기 때문이다."고.(p31)...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인격 자체에 도전하는 비열한 불법에 대해서, 다시 말해서 실행방법에서의 권리의 경시는 물론, 인격모독의 성격을 띰으로써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에 대한 저항은 의무다. 그와 같은 저항은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다. 그 저항은 도덕적인 자기보존의 명령이며 사회에 대한 의무다. 왜냐하면 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p32) <권리를 위한 투쟁> 中


 그렇지만, 아직도 5.18 민주화운동에는 밝혀져야 할 진실들이 너무도 많다.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부터 헬기 기총소사 문제, 미군과의 관련성 문제, 숨겨진 사망자 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남아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진행형임을 다시금 느낀다...


  시민 수습대책위원들은 미국대사관에 개입을 호소했으나 오히려 위컴장군에게는 5월 22일 한국군 20사단을 DMZ의 임무에서 면제하도록 허용하는 일이 맡겨졌을 뿐이다. 미국이 전두환의 부대를 거부하거나 광주시민의 편을 든다면 그것은 19140년대 이후 유례가 없는 내정간섭이었을 것이므로 광주시민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책임은 면할 수 없었고 전선부대 이탈을 허용함으로써 카터의 인권정책은 난자질당한 꼴이었다.(p54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PS. 1979년 10.26사건과 12.12 군사반란 그리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까지 약 7개월의 역사 속에서 프랑스에서 일어난 1848년 2월 혁명과 루이 보나파르트(Charles Louis Napoleon Bonaparte, 1808 ~ 1873)의 쿠데타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의 파리 코뮌(La Commune de Paris, 1871)을 떠올리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과 <프랑스에서의 내전>을 통해 다른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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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5-17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고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즐건 휴일 저녁시간 되십시요!

겨울호랑이 2020-05-17 20: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님께서도 일요일 저녁 잘 마무리 하시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세요!^^:)

2020-05-18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튜브에서 음악을 재생하고 책을 읽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버린 요즘이다. 오늘도 유튜브 화면을 열자 여느 때처럼 추천 동영상이 여럿 뜬다. 무슨 근거로 내게 이런 자료들을 추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쳐다 본 동영상 하나에 눈을 좀처럼 떼지 못하게 된다. 'UP - Ppuyo ppuyo, 유피 - 뿌요뿌요, MBC Top Music 19970614'. 20년도 더 지난 이 동영상에 마음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처 의식할 사이도 없이 내 손은 동영상을 재생시켰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를 맛보고 느꼈던 감정을 나 또한 맛보게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p89)...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주머니의 방에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p9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1997년 6월 14일 토요일.


 그날은 소속 대대로 배치된 첫 날이었다. 강원도 화천의 깊은 산중에 위치한 대대에도 내려 중대로 이동했을 때, 부대의 열악한 환경에 매우 실망했었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대대에서도 중대는 뒷편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당시 중대 건물이 신축공사 중이었기에, 중대원들은 부대 내 창고를 막사로 수리해서 임시로 내무반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고문을 떼내어 임시로 만든 출입문, 유리창 대신 비닐로 막은 유리창, 야외에 간이로 설치된 재래식 화장실 등등. 건물 밖에서 중대 행정반으로 들어섰을 때는 마침 개인 정비 시간이었고, 모두들 내무반과 개인 정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건물이 창고 건물이었기에 통풍은 잘 되지 않아 6월 장마철에 그 안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났다. 고참들로 보이는 병장 몇 명은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음악이 바로 MBC <인기가요 50>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UP의 <뿌요뿌요>였다. 그리고, 이어 4시 25분 을 가르키는 벽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의 냄새가 유튜브의 노래에 맞춰 되살아나는 느낌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를 떠올리게 된다.


  유튜브에서 재생되는 오래전 노래와 영상은 나를 23년 전 신임 소위시절의 나로 데려갔고, 이로 인해 당시 내가 느꼈던 모든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감정을 느낀다. 오래 전 시간이라 모든 것을 재생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어느 한 때와 지금의 내가 UP의 노래를 통해 연결되는 이 느낌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도 느꼈을까. 잠시나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행복을 맛보면서, 다른 책을 꺼내든다. 과연 화자가 먹은 마들렌 과자는 <뿌요뿌요> 같은 맛이었을까는 물음과 함께.


 나는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아무런 논리적인 증거도 대지 못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앞에서 사라지는 그런 명백한 행복감과 현실감을 가져다주는 이 상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것을 다시 나타나게 하고 싶다.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똑같은 상태가 보이지만 새로운 빛은 없다.(p8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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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6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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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0-05-16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뿌요뿌요˝를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5-16 2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 모처럼 옛 생각을 해 본 날이었습니다^^:)

하니의 책다방 2020-05-27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마들렌과 뿌요뿌요라니요😍 아련하고도 귀여운 조합이네요💕 저 예전에 알라딘 굿즈로 받은 마들렌 모양이 수놓아져 있는 ˝프루스트 수면양말˝ 갖고 있는데🧦 마들렌 수면양말 신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으면 딱 좋겠네요ㅋㅋ

겨울호랑이 2020-05-27 14: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식주의님. 잘 몰랐는데, ˝프루스트 수면양말˝이 있었군요. 굿즈로 나왔으니 예쁘게 나왔을 것 같네요. 멋진 조합이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면 양말을 신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 영영 잠들 것 같아 맨발로 읽어야겠어요. ^^;)
 

「이유가 있어요」와 「불만이 있어요」는 자녀와 부모사이에 의레 이뤄지는 대화가 담긴 그림책입니다. 코를 후비는 아들의 습관을 지적하는 엄마와 이에 대한 이유를 대는 아들이 「이유가 있어요」의 내용이라면, 「불만이 있어요」는 딸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습니다.

고쳤으면 하는 습관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아들의 이유를 들어주는 엄마와 딸의 불만에 귀기울이며 변명(?)하는 아빠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마치 「스타워즈」시리즈 중 4편 「새로운 희망」과 5편 「제국의 역습」을 떠올리는 책 구성이 재미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는 딸이 과제물로 「불만이 있어요」의 내용을 바탕으로 책띠를 만들었습니다. 아빠도 가려먹으면서 왜 골고루 먹느냐는 딸의 질문에 책 속의 아빠는 참 재치있게 대답합니다. 평소 딸의 관심사를 잘 아니 가능한 대답이겠지요. 이제 같은 질문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책의 아빠만큼 대처하기에는 순발력이 부족해서 정공법을 택하기로 합니다.

˝그렇구나, 아빠도 가려먹는게 있으니 다음부터 아빠는 김치를 잘 먹을께. 연의도 버섯을 함께 잘 먹자.˝

책의 아빠처럼 재밌는 대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이야기를 통해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을 이해하는 시간을 「이유가 있어요」「불만이 있어요」를 통해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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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17: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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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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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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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 세계사 속의 어린이
피터 N. 스턴스 지음, 김한종 옮김 / 삼천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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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는 아동의 지위에 대한 세 가지 주요 해석을 강조했다. 수렵채집 사회, 농업 사회, 그리고 근대적 아동 지위이다. 이 논의에서 아동의 지위는 무엇보다 경제 시스템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는 학교교육과 소비 지상주의에 휩싸여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 소비자로 훈련받은 어린이들은 이런 특별한 시스템을 지탱하는 데 필수적이다. 문화와 가족 구조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이는 하나의 전통적인 농업적 아동 지위가 없고 경제적 변수를 제외한다면 어떤 단일한 근대적 아동 지위도 없기 때문이다.(P336)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中


  피터 N. 스턴스 (Peter N. Stearns, 1936 ~ )는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Childhood in World History >에서 경제시스템이 아동의 사회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을 수행한다. 분쟁지역에서 소년병으로 죽어가거나, 개발도상국에서 성노예로 팔려가는 소녀들, 선진국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죽도록 공부를 강요당하는 학생들. 저자는 경제시스템의 발전 정도에 따라 아이들이 직면한 위험의 양상도 다르지만, 이들이 느끼는 위협의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현재의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미래 소비자로 길들이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한, 어린이들의 행복은 멀리 있어 보인다. 더 암울한 것은 아동의 지위가 과거보다 향상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아주 최근에 전문가들은 경제적 기준과 정치적 불안정 사이의 거대한 격차가 근대적 아동 지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사망률 감소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아동의 지위는 가치, 풍요나 빈곤, 정치적 혼란이나 상대적 안정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P338)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中


 아동의 지위와 관련하여 식민지 아메리카를 연구하는 한 역사가는 더 근대적인 시대와 비교할 때 그 시절 뉴잉글랜드에서 아동학대가 훨씬 드물었다고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학대는 더 악화되었을 수도 있다. 확실히 학대는 끝나지 않았다.(p346)... 근대적 아동 지위의 단점은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서 독특하게 일어나는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집에서 가까울수록 긴밀한 형제자매 관계가 줄어드는 것은 확실히 어린이를 외롭게 만들기 더 쉽다... 주의력 결핍은 새로 늘어나는 또 하나의 병폐이다.(p347)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中


 5월 5일 어린이 날은 맞이해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느끼는 보호받는다는 안도감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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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5-05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5-05 13:12   좋아요 0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