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지식인마을 35
정동욱 지음 / 김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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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떨어진 물체들 사이의 모든 작용은 공간에 펼쳐진 '장 場 field'에 의해 매개된다는 것이 현대의 해석이다. 예컨대 자석이 놓이면 그 주위 공간에는 자기력선들로 채워진 자기장이 형성되어, 만약 이 자기장에 이동하게 된다. 즉 자석이 철을 직접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자석에 의해 형성된 자기장이 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p17)... 운동량과 에너지를 품고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장'이다.(p199)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는 '장'과 여기에 작용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 ~ 1867)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ames Clerk Maxwell, 1831 ~ 1879)의 이론을 중심으로 풀어간 책이다.


 패러데이는 전자기 현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거리 직접 작용'을 버리고 전기와 자기 작용이 '힘의 선 lines of force'을 따라 점진적으로 전달된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했으며, '장 field'이라는 용어도 처음으로 사용했다. 맥스웰은 이를 발전시켜 모든 전자기 현상을 역학적 매질의 작용으로 설명하는 수학적인 '전자기장' 이론을 완성했으며, 힘이 전달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패러데이의 추측도 이론적인 계산을 통해 그 정확한 속도를 예측해냈다.(p18) 


 패러데이의 전자기 장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힘의 선들을 통해 연결된 물질과 자기력선으로 채워진 진공(眞空)이다. 이러한 개념을 이어받은 맥스웰은 유체튜브 모형을 통해 패러데이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규명하였는데, 패러데이와는 달리 '에테르'라는 전달자를 생각했다는 점에서 맥스웰 모형은 패러데이 모형과 차이를 갖는다.


 1844년 패러데이는 <전기 전도와 물질의 본성에 대한 사변>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 물질과 힘의 관계를 근본부터 뒤엎는 착상을 발표했다...이 책에서 물질은 힘의 선들의 수렴점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힘의 선과 물질은 각각 그물의 끈과 매듭에 비유됐다. 이에 따르면 서로 떨어진 물질들 사이의 상호 작용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물의 모든 매듭들이 끈을 통해 연결되어 있듯이, 모든 물질은 힘의 선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p119)


 1850년 그는 자기 전도 이론 theory of magnetic coduction을 도입함으로써 진공의 자기 융도능력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이론에서, 자기 유도를 매개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자기력선 자체가 되었다... 이로써 아무것도 없는 무능력한 공간으로 간주되던 진공은 이제 자기력선으로 채워진 활동적인 공간이 되었다.(p125)


 맥스웰이 전자기 유도를 설명하는 데 쓰였던 '소용돌이 분자 - 유동 바퀴' 모형 내에서 전자기 작용은 분명히 연속된 매질을 통해 전달되나 결과적으로는 순식간에 전달되는 원거리 작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맥스웰이 매질에 부여한 탄성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었다... 맥스웰은 자신이 고안한 탄성 매질에서의 작용 전달이 에테르라는 탄성 매질에서의 횡파로 알려져 있던 빛에 대응될 수 있겠다는 추측을 했다.(p176)


 맥스웰이 유체 튜브는 패러데이의 힘의 선을 셀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즉 힘의 선의 개수는 단위 튜브의 개수로, 힘의 선의 밀도는 단위 튜브의 밀도로 세어졌다. 맥스웰의 유체 시스템은 패러데이가 얘기했던 힘의 선의 긴장 강도라는 개념도 구현해냈다... 유체 시스템의 이러한 특성은 패러데이가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힘의 선과 전하 사이의 수학적 특징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었다.(p141)


 정리하면, 빈 공간에 작용하는 힘의 전달자로서 '힘의 선'을 주장한 패러데이에 대해 맥스웰은 빈 공간을 에테르로 채웠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이러한 맥스웰의 주장은 후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에 의해 폐기되지만, 에테르 Aether라는 전달자 개념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패러데이는 공간을 매질로 가득 채우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맥스웰은 힘의 선을 묘사하기 위해 공간을 매질로 가득 채워야 했다. 패러데이는 분명 매질의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서로 다른 매질은 힘의 선을 통과시키는 정도에 차이를 주는 것으로서, 결국 작용을 전달하는 것은 힘의 선 자체라고 보았다... 반면 맥스웰은 물질과 독립된 힘의 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현상은 물질의 운동을 통해 매개되는 연결된 메커니즘으로 기술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공간은 뉴턴의 역학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탄성 매질로 가득 채워졌고, 결국 힘의 선은 이 탄성 매질의 역학적 상태가 되었다.(p191)


 맥스웰은 그의 방정식이 물질적인 매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그 점을 지적함으로써 전자기장을 매질에서 해방시켜주었고, 덕분에 전자기장은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로 승격되었다.(p200)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의 제5원소이기도 한 에테르는 완전한 원소이며 물질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실상 에테르는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반영한 가상의 물질에 불과했지만,. 천상의 영원한 원운동을 가능케 하는 매체로서 에테르는 뉴턴(ir Isaac Newton, 1643 ~ 1727)과 맥스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에테르'라는 개념이 '없다'라는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의 명사형인 '없음'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대화편에 나타나듯, 모든 상태를 명사화하고 개념으로 만들고 정의(定義)를 내리려는 고대 철학의 유산의 잔재가 바로 에테르가 아닐까. 진공 상태를 '없다'라는 상태가 아닌 '진공'이라는 다른 물질을 만들어냈고, 여기에 자연법칙을 부여한 결과가 에테르라면 맥스웰 역시 플라톤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서는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 ~ 1970)의 '기술이론 theory of description'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에테르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옮기며 이 리뷰를 마무리하도록 하자.


 오늘날 전자기장이라는 개념 속에서 우리는 적어도 세 사람을 함께 만나게 된다. 전기와 자기 작용이 공간에 펼쳐진 힘의 선을 따라 전달된다는 생각을 고안한 패러데이, 패러데이의 힘의 선에 수학적인 방정식을 입혀 정교한 전자기장 개념을 정립한 맥스웰, 그리고 에테르를 제거하여 전자기장을 공간에 존재하는 실체로 다시금 승격시켜준 아인슈타인이 그들이다.(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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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20-03-24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패러데이와 맥스웰 모두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패러데이는 뭐랄까 정통 코스를 밟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뛰어나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3-24 19:53   좋아요 0 | URL
우향님 말씀처럼 패러데이는 흙수저에서 출발해서 왕립연구소 회원이 된 자수성가형 학자라는 점에서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패러데이의 왕성한 실험은 정통 엘리트 과정을 밟지 않은 인물의 우직함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3-24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어 있다는 공간에 장이 존재한다는 의미는 무척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전기장에서 중력장을 생각할 수 있듯이요. 공즉시색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에테르 가정은 정의 문제보다 공리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공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말이죠. ^^

겨울호랑이 2020-03-24 21:14   좋아요 1 | URL
보이지 않은 것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대단한 통칠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미지의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에테르의 문제는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공리 문제로도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여러모로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로꼬꼬(Rococo)는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의 한 극단적인 형태를 발전시킨다. 로꼬꼬의 '예술을 위한 예술'은 어떤 점에서 19세기의 그것보다 오히려 더 순수하고 본원적인데, 그것은 예술의 품속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경박하고 피곤하고 수동적인 사회에서 저절로 우러난 자연스러운 태도이기 때문이다. 로꼬꼬는 미의 원리가 무제한의 지배권을 가지는 사교문화의 마지막 국면을, 또 아름답다는 것과 예술적이라는 것이 동의어로 통하는 최후의 양식을 대변한다.(p68)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3> 中 


 아르놀트 하우저 (Arnold Hauser, 1892 ~ 1978)가 내린 로코코에 대한 표현 - 예술을 위한 예술과 사교문화 - 에 따르자면,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 ~ 1793)를 로코코의 여왕으로 표현한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1881 ~ 1942)의 평가는 적절하다 생각된다.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Marie Antoinette>에서 로코코 문화를 정점으로 이끈 그녀의 삶을  일반적으로 알려진 악녀(惡女)의 이미지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보여준다.


 로코코, 이 지나치게 세련되고 섬세를 극대화한 고대적 문화의 개화(開化), 이 한가로운 손과 도락을 즐기는 유약한 정신의 세기는 몰락하기 직전에 하나의인물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세기는 왕비의 모습 속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 세기였고, 이 로코코의 여왕으로서 이상적인 여자가 바로 마리 앙투 아네트였다. 근심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근심 없고, 낭비가들 중에서도 가장 낭비가 심하고, 멋지고 애교있는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멋쟁이이며 애교 덩어리였다.(p122) <마리 앙투아네트 : 베르사유의 장미> 中


 <마리 앙투아네트 :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죄과를 두 가지로 나누어 평가한다. 용서 받을 수 있는 죄과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과. 츠바이크는 역사 속 인물의 삶에 대한 평가가 한 개인과 역사 속 지위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림] 마리 앙투아네트(출처 : 위키백과)


 너무나도 경솔하게 역사의 엄청나게 거대한 사명 앞에 나선 것, 유약한 마음으로 가장 격렬한 세기의 논쟁 속에 휘말려들어간 것은 그녀의 죄과, 부인할 수 없는 죄과이다. 그러나 용서 받을 수 있는 죄과이다. 보다 강한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거의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시험이었기 때문이다.(p120)... 이러한 부박한 인생관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의심할 여지없이 그녀의 죄과이지만 동시에 그녀가 산 시대 전체의 죄과이기도 하다. 바로 그 시대정신에 완전히 휩쓸려들어감으로써 마리 앙투아네트는 전형적인 18세기의 대표자가 된 것이다.(p122)  <마리 앙투아네트 : 베르사유의 장미> 中


 용서 받을 수 있는 죄가가 준비없이 나약하게 역사의 흐름에 선 것이라면, <마리 앙투아네트 : 왕비의 비밀 일기 Marie-Antoinette: Carnet secret d'une reine >에 담긴 다음의 대목은 용서 받을 수 있는 죄가의 한 표현이 될까.


  1775년 6월 25일, 베르사유. 무엇보다도  루이와  프랑스에 후계자를 안겨주어야만 나의 지위가 확고해진다는 것을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편은 계속해서 침실에 들어오지 않고 나는 그이가 남편으로서 의무를 다해주기를 절망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부담을 안겨주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다정하고 매력적으로 남편을 대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세월이 흐르니 심리적인 압박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 : 왕비의 비밀일기> 中


 아내로서, 다른 한 편으로서 왕비로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는 한 인간의 나약함을 츠바이크는 용서할 수 있는 죄가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는 무엇일까. 그것은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잘못이 아닐까. 결국, 츠바이크의 평가에 따르자면 인간적인 부족함은 용서받을 수 있는 죄(罪)이지만, 역사에 선 공인(公人)의 부족함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되는 듯하다. 


 1789년 6월 7일, 베르사유. 루이와 나는  날이 갈수록  힘드는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상황이 쉴새 없이 나빠지고 있으니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다. 왕에게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왕비인 나의 지지가  필요하다. 전국에 기근이 창궐하고, 삼부회 의원들의 영향을 받은 백성은 점점 더 과격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다. 당장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이 위태로운 분위기를 견딜 수 없다. 남편은 프랑스의 국왕이고, 그것은 신의 의지다. 그의 백성 중  누구도 왕을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 : 왕비의 비밀일기> 中


 1789년의 사람들은 프랑스인뿐 아니라 인간 전체를 해방시키고자 했다. 그들의 시도에는 데카르트가 자신에 앞서 사고된 모든 것을 기피했던 것과 유사한 것, 즉 불합리함과 특수성이라는 낙인이 찍힌, 그들 이전의 프랑스사에 대한 부정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사회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문자 그대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프랑스 합리주의 철학과 결부되어 있으므로 프랑스혁명에 선행하는 것이었다.(p146)... 프랑스에서 구체제에 대한 관념에 특별한 힘이 부여하게 될 시간적 연속성의 단절에 대한 그토록 강렬한 느낌은 1789년의 사람들의 합리주의적이고 의지주의적인 급진주의와 불가분의 것이었다. 그들이 하고자 한 것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이성 위에 사회를 재창설하는 것이었다.(p147) <기억의 장소 3 : 프랑스들 1> 中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한 인물의 위치를 인간적인 측면과 공적인 측면으로 완전히 분리해서 평가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한 개인의 사상이 그가 가진 사회적 위치에서 행동으로 표현되고, 역사에 발자취로 남긴다고 본다면, 이들을 분리해서 바라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다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기를 살펴보자. 이 일기에는 고대하던 어머니가 된 마리의 기쁨이 표현되며, 우리는.이 일기를 읽으면서 마리가 (왕비로서) 큰 일을 완수했고, 수고한 자신을 위해 작은 선물을 마련한 느낌을 받는다.


[사진] Chateau de Versailles (출처 : https://www.systemair.com/hr/o-nama/reference/chateau-de-versailles-france/)


 1785년 6월 25일, 베르사유.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행복해하셨을까! 왕비의 임무를 완수한 이래 나는 드디어 나 자신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는 친구들과 함께 트리아농에  내 거처도  만들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배치되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 되었다... 심지어 거기에 너무도 매력적인 작은 마을도 만들었다. 농부 부부도 고용해서 염소와 양, 수탉과 암닭,  멋진 암소 등 진짜 농장에서 볼 수 있는 가축도 모두 기르게 했다!! 이런 전원의 삶이, 짐승 소리와  꽃피는 자연이  나를 감동하게 한다. 궁정의 예법이나 위선 따위와 멀리 떨어진 이곳의 삶은 무척 평화롭다. <마리 앙투아네트 : 왕비의 비밀일기> 中


 그렇지만, 그녀에게 '작은 선물' 은 결코 작은 선물이 아니었다. 개인의 감수성을 위한 왕가의 과도한 지출은 프랑스 재정을 파탄으로 이끄는데 일정부분 기여를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츠바이크가 말한 용서받을 수 있는 죄과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과의 경계는 모호하다 여겨진다. 전원의 삶을 동경하여 작은 마을을 조성한 왕과 왕비의 취향은 베르사유를 더 화려하게 물들이며 로코코 문화를 정점으로 이끌었고, 그들 자신들의 삶과 함께 사라져갔고, 그 사이 파탄난 프랑스 재정은 수많은 이들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이끌었다. 왕과 왕비의 취향과 감정으로 인해 고통을 원치 않았던 수많은 이들의 삶도 격랑 속으로 내처졌음을 생각한다면 용서의 경계는 과연 존재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리가 얻은 명성과 그로 인해 지불해야 했던 대가를 비교해본다면 과연 개인적으로도 성공적인 삶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계몽주의 말기에 신고전주의와 전(前) 낭만주의 감수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얼굴이다. 1774년에서 1789년까지 베르사유를 지배한 젊은 부부에 의해 도입된 이런 두 사조들은 베르사유를 놀랍게 변화시켰다. 고상하고 세련된 개조는 루이 16세 덕분이다. 서가, 모형선박과 전기나 증기기관 수집품들, 위대한 인물들의 조상들, 동양철학자들과 경제활동에 대한 헌정품들, 수제품 작업장 등. 다른 한편 그리스풍인 동시에 양탄자 일색으로 꾸미기 위해 계속 보수된 내실들은 왕비의 취향이다. 또한 일드프랑스의 작은 마을이 베르사유에 옮겨져 재조성된 것도 그녀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작은 마을은 사람들의 말처럼 리본으로 장식된 가짜 초가집이 아니었다. 그곳은 시골영주의 저택에 딸린 실제 촌락에서 일하면서 명사들과 더불어 소일거리를 즐기는 생활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농가와 젖 짜는 곳, 낚시터, 물레방아, 비둘기장 등과 함께 실제로 농경이 이루어지고 별도의 바이이(bailli)와 순찰대가 다스렸다.(p209) <기억의 장소 2 : 민족> 中


 어느 시대에서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는 대신 그녀는 자기 시대의 특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자신의 내면의 힘을 무의미하게 써버리는 동안에도 사실 하나의 의미를 실현시켰다. 즉 그녀 가운데서 18세기가 완성되고 그녀와 더불어 18세기가 끝났다.(p123)  <마리 앙투아네트 : 베르사유의 장미> 中


 용서할 수 있는 죄과와 용서할 수 없는 죄과의 문제는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잘못은 루이 16세의 잘못이기도,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귀족과 성직자들의 잘못이기도 하다. 체제의 문제 속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작은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정도는 지나친 것은 '로코코의 여왕'이라는 시대의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만일 어느 시골 귀족의 부인으로 살았더라면, 같은 인성(人性)을 가졌더라도 역사에 미친 파급력을 훨씬 작았을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건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역사의 층위들이 교차해야 하기에 개인의 역할은 제한적이겠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기와 평전을 통해 역사적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엄중한 재판정에 서는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사마천(司馬遷, BC 145 ? ~ BC 86 ?)의 <사기열전 史記列傳>의 일부를 옮기며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몽념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한참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내 죄는 실로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요동에 이르기까지 장성을 1만여 리나 쌓았다. 공사 도중에 어찌 지맥 地脈을 끊어놓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나의 죄다." 그러고는 약을 삼키고 자진했다.(p732)... 태사공은 평한다."... 진나라가 처음 제후들을 멸할 때는 천하의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못했다. 전쟁의 상흔도 채 가라앉지 않았을 때였다. 몽념은 명장으로서 이런 때에 백성의 궁핍을 구제하고 노인과 고아를 부양해 모든 백성을 안온하게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하게 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해 공사를 일으켰다. 이들 형제가 죽임을 당한 것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어찌 지맥을 끊은 탓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사기열전 1 : 몽념 蒙恬열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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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화이트 데이를 맞아 딸아이에게 작은 선물을 했습니다. 아이는 사탕꽃다발을 원했기에, 화원에 들렀지만 사탕꽃다발을 찾지 못하고 나오던 중 흥미로운 식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파리지옥.

어렸을 때 벌레를 잡는 식물로 책으로만 접했던 파리지옥을 눈앞에서 직접 보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아이도 좋아할 것 같아 주저하지 않고 바로 가져왔습니다. 예상대로 아이가 파리지옥을 보자마자 격하게 반가워하며, 바로 집에 있는 「벌레잡이 희귀식물 백과」를 꺼내서 좋아했습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선물로 잘 구입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른 한 편으로, 촉수를 건들이면 잎을 다무는 파리지옥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트리피드의 날」이 떠올리게 됩니다. 걷는 식물 트리피드가 인류의 재난을 틈타 새로운 지구의 지배자가 된다는 다소 우울한 내용의 SF 소설을 떠올린 것은 파리지옥의 움직임 때문이겠지요. 먹기 위해 키우던 식물이 유성에 의해 대다수 인간들이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히려 인간을 사냥한다는 설정도 놀라웠지만.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서로 다른 대처가 생생했던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식물이면서도 움직이는 트리피드는 영화 「워킹 데드」 속 좀비처럼 움직이면서도 학습을 통해 발전하는 모습은 영화 「쥬라기 공원」속 벨로시랩터를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이번에 구입한 파리지옥은 트리피드처럼 걸어다니지는 않기에 해를 끼치지는 않겠지요...

화이트데이와 파리지옥의 조합은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받는 아이가 만족하면 좋은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던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이웃분들 모두 건강한 한 주 보내시고, 아내에게 준 화이트데이 꽃다발 사진을 마지막으로 짧은 페이퍼를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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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에서 갑자기 친구가 된 나폴레옹과 프랑스인들에 대해 총사령부와 보리스가 보인 태도의 변화는, 로스토프와 그가 떠나온 군대 내에서는 아직 이루어질 겨를이 없는 것이었다. 일반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보나파르트와 프랑스인들에게 증오와 경멸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p223) <전쟁과 평화 2> 中


 1809년이 되자 세계의 두 통치자라 불리던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의 친교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건강, 질병, 노동, 휴식이라는 본질적 관심, 그리고 사상, 학문, 시, 음악, 사랑, 우정, 증오, 욕망이라는 관심을 지닌 사람들의 실제 생활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의 정치적 접근과 반목, 그 밖의 온갖 개혁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p244) <전쟁과 평화 2> 中


 <전쟁과 평화 2 war and Peace 2>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과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대립에서 화해하며 1812년 러시아 원정 이전 잠시나마 평화로운 시기를 그린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진 화해는 처음에는 낯설게 받아들여지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면서 다시 일상의 주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덮게 된다. 


 <전쟁과 평화 2>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주인공 피예르가 프리메이슨(Freemason)에 가입하고, 프리메이슨의 사상에 빠져드는 대목이다. 인도주의/박애주의를 지향하는 친목단체라지만, 음모가들에게 어둠의 세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프리메이슨. 이와 함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과 연관성으로 알려진 일루미나티(바이에른 광명회 Illuminatenorden Bayern)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일루미나티에 대한 정보는 없었고, 프리메이슨에 대한 정보가 있어 이를 옮겨본다.


[사진] 프리메이슨(출처 : https://www.britannica.com/topic/order-of-Freemasons)

 

 프리메이슨 Freemason : 18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시민주의적(世界市民主義的)/인도주의적 우애(友愛) 단체. '로지(작은 집)'라는 집회를 단위로 구성되어 있던 중세의 석공(石工 : 메이슨) 길드를 모체로 한다. 1717년 런던에서 몇 개의 로지가 대(大)로지를 형성한 것이 그 시초이다. 그 후, 18세기 중엽 전영국에서 유럽 각국과 미국까지 퍼졌는데, 그것은 이미 석공들만의 조직이 아니라, 지식인/중산층을 많이 포함하였으며, 계몽주의 사조에 호응하여 세계시민주의적인 의식과 함께 자유주의/개인주의/합리주의의 입장을 취하였고, 종교적으로는 관용을 중시하였다. 그 때문에 특히 가톨릭교회와 가톨릭을 옹호하는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게 되어 비밀결사적인 단체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나 19세기 여러 정치적 사건과 연루되기도 했지만 역할이 과장되어 전하는 경향이 있다. 20세기에는 정치와 연관성이 거의 없어졌고,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대로지밑에 몇 개의 로지를 두는 식의 조직으로 회원 상호간의 우호와 정신함양 및 타인에 대한 자선/박애사업을 촉진하는 세계동포주의적/인도주의적인 단체가 되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中


 일루미나티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의 정보밖에 찾을 수 없었지만, 작품 속의 내용을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탄압을 받던 프리메이슨 회원들 사이에도 일루미나티는 위험한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루미나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살펴보도록 하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톨스토이 사상과 프리메이슨 사상에 대해 한정하여 비교해보자.


 이 연설에서 일루미나티의 위험한 사상을 발견한 대부분의 형제들은 피예르에게 놀랄 만큼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갖가지 당파가 형성되고, 일루미나티(각주 : Bavarian Illuminati, 바이에른 광명회라고도 부른다. 1776년 독일에서 결성된 급진적 비밀결사로, 절대왕정을 전복시키고 자유와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에 빠져 있다고 비난하며 피예르를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p276) <전쟁과 평화 2> 中


 <전쟁과 평화 2>에서는 피예르 또는 늙은 프리메이슨 회원의 입을 통해 프리메이슨의 사상이 많은 부분에 걸쳐 소개되고 있는데, 톨스토이(Lev Nicolayevich Tolstoy, 1828 ~ 1910)의 사상을 담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2> 안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몇몇 대목이 있어 이를 옮겨본다.


1. 내면에 존재하는 신(神)


 "당신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선생, 그렇기 때문에 몹시 불행합니다. 당신은 하느님을 모르지만, 하느님은 여기, 내 안에, 나의 말 속에, 또 당신 안에, 아니 당신이 지금 한 그 불경한 말 속에 계십니다." 엄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프리메이슨이 말했다.(p119) <전쟁과 평화 2> 中


 성서의 전설에 의하면, 노동을 하지 않는 것 - 무위 - 은 타락하기 전 최초의 인류에게는 행복의 조건이었다고 한다. 무위를 좋아하는 마음은 타락한 인간 속에 그대로 남았지만, 신의 저주가 끊임없이 인간에게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스스로 빵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 때문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편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무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p377) <전쟁과 평화 2> 中


 우리가 나의 시작이라 인식하는 이 정신적인 '어떤 것'이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인들이 신이라 이름했던 것이다. 나의 내부에서만 신을 인식할 수 있다. 내부에서 이것을 발견하기 전에는 어디에서도 신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 자기 내부에서 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p100) <인생이란 무엇인가 2> 中


 프리메이슨의 어느 회원은 신(神)이 자신의 내면과 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데, 이러한 회원의 말과 자신의 내부에서 신을 발견해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말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2. 형제애(兄弟愛)


 "혼자서는 누구도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만인이 협력해 하나하나 돌을 쌓아올리면서 인류의 아버지 아담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만의 세대를 거쳐야 비로소 위대한 하느님이 사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신전이 지어지는 것입니다.(p118) <전쟁과 평화 2> 中

 

 피예르는 어렸을 때 고해하면서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공포와 경건함을 느꼈고, 생활의 조건에서 보면 아무 인연이 없지만, 인류의 형제애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친숙한 사람과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예르는 숨막히는 격렬한 심장의 고동을 트끼면서, 리토르(프리메이슨에 가입하려는 자를 준비시키는 형제를 이렇게 불렀다)쪽으로 다가갔다.(p129) <전쟁과 평화 2> 中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세상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의 가슴에 동일한 영적 본원이 깃들어 있다는 것, 그들이 모두 형제자매임을 가르치고, 그로써 그들을 하나로 결합하고 즐거운 공동체로 이끈다.(p123) <인생이란 무엇인가 2> 中


 <전쟁과 평화 2>에서는 프리메이슨의 형제애가 소개된다. 인류가 모두 형제이며, 진리에 이르기 위해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는 프리메이슨 회원과 피예르의 말과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형제자매임을 강조하는 톨스토이 말에서 초기 기독교 공통체의 분위기를 발견하게 된다.


3. 세상의 악(惡)


 당신도 잘 아시는 인류의 적은 인류의 적은 프로이센군을 공격하는 중입니다. 프로이센군은 삼 년 동안 겨우 세 번밖에 우리를 속이지 않았던 성실한 동맹군이죠 우리는 그들을 감싸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인류의 적은 우리의 풀륭한 제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무례하고 야만적인 방법으로 프로이센군에 덤벼들어, 모처럼 시작된 열병식을 끝낼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분쇄하고 포츠담 궁전을 점거해버렸습니다.(p159) <전쟁과 평화 2> 中


 <전쟁과 평화 2>에서는 나폴레옹은 세게를 위협하는 악(evil)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작품 속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묘사가 러시아 외교관에 이루어진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러시아 독자가 아닌 이들은 이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독자들에게도 '나폴레옹=인류의 적(敵)'이라는 공식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2> 에서 폭력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이 보완해 줄 것이다.


 불행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폭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잘못된 공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폭력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한 착각은 그들의 누군가를 기만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p232)... 폭력으로 사람들을 선량한 삶으로 이끌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폭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사악한 삶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p233) <인생이란 무엇인가 2> 中


 4. 톨스토이의 정치철학


 이처럼 <전쟁과 평화 2>에서 묘사된 프리메이스 사상과 <인생이란 무엇인가 2>의 톨스토이 사상 속에서 우리는 내면에 존재하는 신, 형제애, 세상의 악에 대한 공통된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를 근거로 톨스토이가 프리메이슨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무리함이 있지만, 적어도 프리메이슨 회원의 입에서 나온 사상이 톨스토이 사상과 관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리메이슨 회원 피예르의 입을 통해 톨스토이 사상의 지향점이 '형제애에 기반한 보편적인 정부 수립'을 향하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지 않을까.


 피예르는 프리메이슨의 세 가지 사명 중 도덕적 삶의 모범이 되라는 사명을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일곱 가지 미덕 중 온후와 죽음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가 자기 안에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대신 그는 다른 사명, 즉 자신이 인류의 교화를 실행하고 있으며, 또다른 미덕인 인류에 대한 사랑과 특히 관용을 가지고 있다고 자위했다.(p169) <전쟁과 평화 2> 中


 한마디로, 온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정치 형태를 수립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은 시민적 연대를 파괴하는 일 없이 온 세계에 보급되어야 하고, 그때 모든 정치는 종전대로 계속 운영되고 우리 기사단의 위대한 목적, 즉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방해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목적이야말로 기독교의 가르침입니다.(p275) <전쟁과 평화 2> 中


 물론, 톨스토이에게 <전쟁과 평화>가 인생 최후의 작품도 아니고, 이후에도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썼기에 이러한 결론은 완성된 결론이 아니고, 하나의 가정에 불과할 것이겠지만,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들 안에서 이후 작가의 사상이 어떻게 움직여갔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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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3-15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가 프리메이슨에 가입해서 활동한 증거는 없다고 알려졌지만, 그래도 톨스토이가 프리메이슨을 묘사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라고 생각해요. ^^

겨울호랑이 2020-03-15 19: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고전 속에서 이들 조직의 이름을 접하니 친밀감(?)이 들었습니다. <전쟁과 평화>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당대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고전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상류층의 급진주의자들은 택시 운전사들이 모두 파시스트라고 말한다.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택시 운전사들은 이데올로기 문제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노동조합의 가두 행진을 싫어하는 건 정치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시위대가 교통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극우파가 시위를 한다 해도 택시 운전사들의 비난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좌파든 우파든 오로지 강력한 정부가 들어서기만을 바란다. 자가 운전자들을 모두 총살시키고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적절한 통행 금지를 실시할 정부를 말이다.(p36)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1932 ~ 2016)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는 조금은 엉뚱한 상황에 놓였을 때, 기발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에서 교수형 생중계를 보는 방법', '몰타 기사단의 기사가 되는 방법' 등은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특이한 상황이라 하겠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의 특징과 저자다운 기발한 해결방법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그중에서도 '서부 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방법'은 70년대 서부 영화의 클리셰(cliche) 안에서 우리의 동의와 웃음을 함께 끌어내는 글이라 생각된다. 그 중 일부를 살펴보자.


 4. 역마차를 공격할 때는 적이 쏘는 총의 사정거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언제나 가까이에서 마차를 따라가야 한다. 아니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아예 마차와 나란히 달려도 된다... 10. 만일 백인이 코요테 울음소리를 내거든, 맞히기 쉬운 표적이 되도록 즉시 고개를 쳐들어야 한다... 12. 모든 인원이 한꺼번에 공격에 가담하지 말고, 일부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동료들이 생기면 그들을 대신해서 들어가라.(p231)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서부 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방법'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서부 영화가 가진 선(善) - 악(惡)구도와 뻔한 결말에 대한 저자의 비틀기 때문이 아닐까. 블라지미르 야꼬블레비치 쁘로쁘(1895 ~ 1970)은 <희극성과 웃음>에서 웃음이 생겨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희극성과 이 희극성으로 야기되는 웃음이 생겨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웃고 있는 사람이 당연하고 도덕적이며 바른 것에 대한 어떤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웃고 있는 이가 도덕적 요구라는 관점이나 그저 건전한 한 인간의 천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당연하고 옳은 것으로 이해되는 완전히 무의식적인 어떤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이 조건이 있는 것이다... 웃음의 발생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사람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본능적 의무감과 모순되고 이에 일치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관찰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관찰되는 몇몇 단점들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이 두 시초들 사이의 모순은 희극성의 생성과 희극성으로 유발되는 웃음을 위한 본질적 조건이다.(p251) <희극성과 웃음> 中


 '백인 vs 인디언' 구도, 해피 엔딩이라는 정해진 결말, 이들을 둘러싼 상영시간이라는 제한 조건 아래서 의례적으로 일어난 사건의 반복과 서부영화의 부조리가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모순에서 오는 희극성 이외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에는 다른 방식의 웃음도 담겨있다. 예를 들면, 조세회피처( tax haven)로 유명한 카이만 제도(Cayman Islands)에 대한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암울한 현실에서도 웃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쓴웃음이라는 다른 종류의 웃음이긴 하지만.


 카이만 제도는 "오프 쇼어 뱅킹(Offshore banking)"의 천국이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조세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본을 옮겨 오는 나라이다. 뇌물을 공여하고 공공의 부를 가로채는 현대판 해적들, '더러운 손 작전'으로 떼돈을 모은 뒷거래꾼들, 무기 상인들 등 오늘날의 도덕이 근절해야 할 악한으로 지목하고 있는 자들이 이곳으로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재판 관련 기사에서 매일같이 접하고 있다. 그러나 2~3백 년 후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세월은 약이고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게 될 것이다.(p51)... 2백년 후 섬의 관광청에서는 우리 시대의 추잡한 자들을 소재로 한 공연을 기획하게 되리라는 생각도 해보았다.(p52)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아마도, 2020년 3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뒤숭숭한 요즘에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다른 모든 소제목의 글보다 더 눈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통해 우리는 글의 제목과는 달리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뉴욕의 전위적인 극장에 자주 출입하는 것을 삼가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원권 배우들은 음성학적인 이유로 침을 많이 튀긴다. 실험적인 연극을 공연하는 작은 극장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관객들 모두가 배우들이 튀기는 침의 사정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국회 의원들은 마피아와 일체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 마피아와 관계를 맺었다가는 대부의 손에 입맞추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p216)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기업의 구조 조정에 따른 실업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해고당하면 온종일 손톱을 씹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르데냐 섬의 양치기나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 납치범들은 대개 여러 사람을 납치하는 동안 똑같은 복면을 쓰기 때문이다.(p217)... 전염병과 기근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종종 침을 삼키는데, 그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 주위의 불결한 공기와 접촉했던 침이 소화기에 들어가면 병에 감염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p219)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침을 삼키는 것마저도 전염병에 감염될 염려가 있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염병은 피할 수없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안은 웃음이라는 것을 <희극성과 웃음>의 저자는 구비문학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모든 웃음이 멈추고 금지되는 반면 삶의 세계로 들어가면서는 웃음을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세계에서 웃음의 금지를 보았다면 삶의 세계에서는 웃음의 성약(成約), 즉 웃음의 강요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더 확장시킬 수 있다. 웃음이 삶과 함께 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러한 삶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p329) <희극성과 웃음> 中


 <희극성과 웃음>의 내용을 읽으며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지금, 웃음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본다. 다만, 그 웃음은 억지로 만들어낸 억지웃음이 아닌, 오래 계속될 수 있는 부드러운 미소였으면 한다... 


 웃음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미소이다.(p259) <희극성과 웃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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