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는 요새 농사꾼들이 무신 수로 삼 한 뿌리 사가겄소. 죽는다, 산다, 해쌓아도 어제가 옛날이라. 산 넘으믄 또 산이 있고 갈수록, 그대로 옛날에는 겨울 한 철 뼈 빠지게 길쌈을 하믄 살림 한 모퉁이는 막았는데 그놈의 광목이다 옥양목이다 하고 기계로 짠 것을 풀어묵이니 손바닥만 한 땅만 파가지고, 흥 그놈의 땅이나마 질게(길게) 가지기나 함사? 장리 빚에 안 넘어가믄 천행이지 _ 박경리, <토지 8> , p 17/612


"돈이 있어야 안 살 물건도 사제요. 장꾼들이란 사고 접어도 급히 소용 안 되믄은 안 하고 기고 사고 접은 생각이 없어도 우짤 수 없이 소용이 되는 거는 사는 기고, 가만히 앉아서 살피보소. 장꾼들은 대개가 농사지기들인데 땅 파서 금덩이 나오잖으니께."_ 박경리, <토지 8> , p 26/612


 <토지 8>에서는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 짓기 위해 간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려는 서희와 길상의 갈등이 본격화된다. 아직은 공노인이 전면에서 조준구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안내하지만, 정작 서희 자신에게는 더 힘든 일이 간도에서 떠나는 결정이 아니었을까. 이번 주에 읽은 <토지 8>에서는 깊어가는 두 부부의 갈등과 함께 월선의 병세도 깊어가면서 소설의 전반을 어두운 분위기로 끌고 내려간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를 피하고 싶어서인지, 공연히 페이퍼의 관심을 노인들의 대화로 옮겨본다. 무심히 흘러가는 듯한 객주집 주인과 공노인, 공노인과 등짐장수의 대화 안의 내용안에는 그들 자신은 의도치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당대의 세계경제와 역사의 흐름이 녹아들어있다. 이들 대화의 소재인 산업화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의 주요 교역품인 인삼(人蔘 Ginseng), 면화(綿花, cotton), 금(金 gold)이 그 흐름을 주도하는 상품/화폐들이다.


 인삼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교역품 가운데 '사무역 private trade' 상품으로 분류되었다. 이 시대에 사무역이란 일반적으로 배의 선장과 슈퍼카고 supercargo가 개인적으로 일정량의 상품을 배에 실어 거래할 수 있는 특혜를 일컫는다.(p101)... 사무역이 허용된 물품은 보석, 사향, 용연향 龍涎香 ambergris처럼 매우 귀하고 값비싸며,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인삼이 사무역품으로 분류된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02/354


 설혜심((薛惠心)의 <인삼의 세계사>에는 사치, 귀중품으로서 인삼의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뛰어난 약효로 인해 중국에서 다량 소비되었고,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인삼. 만주, 시베리아 지역과 함께 고려인삼(高麗人蔘)은 최상품이었으며, 적어도 인삼 시장에서는 '북미산'은 3등품에 불과했음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성인삼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홍삼과 백삼이 있다. 원래 삼포(蔘圃)에서 채취한 것을 수삼이라 하며 수삼을 깎아 말리면 백삼이 되며, 홍삼은 수삼을 다시 쪄서 말리는 것이다. 홍삼은 본래부터 가격이 고귀하여 자고이래로 영약이라 하여 중국에서 대량적으로 수출이 되는 동시에 중국인에게는 특별한 약효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삼만은 여지없이 천대를 받아 약국에 건재물로만 취급되어 왔을 뿐이었다. _ 최문진, <개성인삼개척소사>, p67/86


 홍삼은 한국 정부의 독점적인 사업이다. 즉 정부가 삼포에서 인삼만 사서 인삼을 인삼과 홍삼으로 만들어 수출한다. 따라서 관공서에서 생산한 홍삼을 다른 사람에데 되팔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업에 종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삼포주나 인삼을 외국인에게 파는 등의 행위는 국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위반자는 인삼포와 인삼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몰수하고 심할 때는 사형에 처한다.... 종사자의 말대로 인삼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물산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홍삼제조권을 독점하고 있다. 판매과 구매를 엄금하는 것은 아니다. _ 시노부 준베이, <조선인삼의 가치>, p42/58


 홍삼(紅蔘)과 백삼(白蔘)으로 구분되는 전통의 인삼시장에서 홍삼은 중국과 무역에서 매우 중요한 삼품으로 취급받았기에 국가의 보호와 관리 대상이었다. 이러한 홍삼 시장을 일제가 그냥 둘 리는 없었고,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인삼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 일제는 1900년 전호 인삼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최문진의 <개성인삼개척소사>에서는 개성상인에 의한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백삼'의 재발견 역사를 다루지만, 이것은 구한말(舊韓末) 미쓰이 독점 체제인 홍삼 시장에서 밀려난 개성상인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직후부터 외국 신문에서는 한일간의 무역의 불평등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다수 등장한다. 이런 기사에서 인삼은 빠지지 않고 언급되던 주제였다.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통해 인삼 수출을 강제한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기사의 요지였다. 1887년 <타임스>는 주일 영사 해리 스미스 파크스(Harry Smith Parkes, 1828 ~ 1885)의 보고를 빌려 극심한 기근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한국에 일본 배가 들어와 7세 아이를 5센트에 팔아넘기고 있다면서 일본에 비난을 퍼부었다. "인삼 말고는 일본에 수출할 물건이 없는" 한국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기조가 만연했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43/354


 1901년이 되면 일본의 한국 침탈이 한층 거세져 "열차, 철도, 한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작물인 인삼 수확량 전체"가 모조리 일본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인삼밭 전체가 미쓰이(三井)의 소유가 되었다"는 기사가 <타임스>를 통해 전 영국에 퍼져나갔다. _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44/354


 인삼이 세계적인 사치품으로 중개무역 상품으로 거래되었다면, 면화는 다른 성격의 상품이다. 일상생활용품으로 널리 사용되는 면제품은 영국의 산업혁명의 성과와 직접 연관되어있으며, 교역상품이 아닌 노예제 플랜테이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경제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가관리회계에서 원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크게 직접재료비(DM), 직접노무비(DL), 제조간접비(OH)로 구분한다면, 새로운 식민지 인도의 면화를 원재료(DM)로 영국와 아일랜드의 농촌 인력을 활용(DL)하여 만들어낸 면직물은 말 그대로 산업혁명 그 자체였고. 영국은 면직물 산업에서 최강자였다. 


 변혁은 직물 제조 공장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났다.(p120)... 1820년 이후에는 방적업자들이 자신의 공장에 직포 작업장을 부설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제철업에서처럼, 면공업에서도 산업의 변화는 대기업의 발흥이나 여러 공정의 통합과 결부되었다. 면방적과 직포에서 일어난 혁신들 대부분은 다른 직물들의 제조에 적용될 수 있었다. _ T.S. 애슈턴, <산업혁명> , p126


 이러한 영국의 강력한 면직물 공업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은 일본과 식민지 - 조선, 만주(1930년대 이후), 타이완 등 - 을 둘러싼 bloc경제를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토지 8>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조선에 세워진 면직물 공장들에서 옥약목과 광목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나라 전통의 무명산업은 붕괴되고 만다.


 1909년에 이르러 일본이 수입하는 면화 가운데 인도산 면화가 62%에 달하자, 일본인들은 대영제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염려하며 그로부터 헤어나고자 했다. 한국과 일본의 또 다른 식민지인 만주, 타이완에서 들여오는 면화가 잠재적 해결책 중 하나였다. (p388)... 인본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한국이 일본에 수출한 면화는 1904~1908년 연평균 1,678만 2,917kg에서 1916~1920년 7,484만 2.741kg으로 증가했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88/689


  이상에서 처럼 실물경제에 있어 일제의 침탈은 사치품목으로는 인삼, 일상생활용품으로는 면화 등이 잘 보여준다면, 금융시장에서의 침탈은 '금'이 잘 보여준다. 당시 세계적으로 금본위제(金本位制, Gold standard)가 운용되었기에 각국은 화폐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해당하는 금을 보유해야 했다.(금태환 金兌換) 여기에 대해 헤르만 라우텐자흐(Hermann Lautensach, 1886 ~ 1971)의 <코레아 Korea>는 1940년대까지 일본의 금융제도를 지탱하는 역할에서 한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일본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선의 인삼, 면화 그리고 금이 절대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 기록을 통해 잘 알게 된다. 그리고, 철도, 항만 등 이른바 사회간접자본(SOC)는 이러한 과실을 따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음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광물자원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나라이다. 주요 광산물 가운데 석유와 주석만 없다. 그러나 옛 한국에서는 이렇게 풍부한 광물자원이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계에 대한 자연과학적-기술적 사고 방식이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1916년에 미래의 광업권은 일본인이나 일본법하에서 생긴 법인(法人)에게만 허락한다는 규정을 공표하였다. 이 규정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_ 헤르만 라우텐자흐, <코레아>, p607


 금광이 가장 중요하다. 종종 금과 직접적으로 결합되는 은과 함께 금은 1936년에 광업 총생산액의 64.7%를 차지앴다. 지난 10년간 조선총독부는 금 채광을 독려하기 위해 금광 탐사와 저품위 광석을 인근 철도나 항로로 운송하는 데 재정지원을 하였다. 1911년 금 생산액은 4,500,000엔에 달하였다... 1940년에는 아마 1억엔을 초과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금 생산은 일본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금 생산은 1937년에 세계 금 생산의 1.7%에 달하였다. _ 헤르만 라우텐자흐, <코레아>, p6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여전히 주장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다시 들여다본다면, 이들의 연구가 실증사학(實證史學)을 표방하지만, 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를 편집한 편협한 주장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에 근거한 극우(極右) 주장의 허구성도 여기에 뿌리를 둔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 폐해가 만만치 않음도 다시금 느낀다.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해 왔듯이 한국에 있어서 근대적 경제성장은 20세기의 식민지기 植民地期부터이다. 근대적 소유제도가 정비되고, 철도, 도로, 항만, 통신의 발달에 의해 전국적으로 잘 통합된 상품시장이 성립하고, 나아가 노동시장 및 금융시장이 20세기 후반까지 차례로 성숙하였다. 그러한 새로운 토대 위에서 한국의 시장경제와 산업사회가 발달해 왔지만, 그 발달의 구체적 양상, 그 한국적 유형의 특질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19세기 말까지의 전통 경제체제가 전제로 또는 제약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_ 이영훈 외 ,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 , p389


 이처럼 <토지 8>과는 크게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듯 나누는 노인들의 대화 안에는 이른바 '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이라는 근대 아시아의 식민제국이 실은 식민지 조선(朝鮮)에 기생하여 열강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있다. 이러한 수탈의 결과로 인해 민중들의 삶이 고단해질 수 밖에 없었음은 당연할 것이고, 이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 각국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한 과거였음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오늘날에도 일부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계속 힘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토지>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어두움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1865년 이후 농촌 면화 재배지역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새로운 노동 체제를 마련하는 데 국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국가는 면화를 재배할 수 있는 드넓은 새 영토를 확보하여, 그 지역을 정치, 군사적 그리고 관료주의적으로 지배했다. 그들 모두가 노동력을 통제하는 것이 영토 지배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동시대 관찰자들은, 이처럼 세계 시장을 위한 면화 재배로의 전환을 좌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이 패권을 쥔 제국들의 영토 지배라는 점을 상식으로 여겼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89/689 


PS. 센코카이(鮮交會)라는 일본의 조선철도 근무 경험자들의 모임에서 편찬한 <조선교통사>에서는 조선에 부설된 철도가 단순한 여객철도가 아닌 자원, 물자 반출을 위한 화물/산업철도였음을 잘 보여준다. 산업과 경기에 따라 화물 물동량이 크게 움직이고, 이러한 영향으로 운임이 변동되는 철도 통계 자료는 일제의 SOC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료라 여겨진다...


 한일병합 후 침체된 경제계도 차츰 회복의 징후를 보였으며, 각종 기업도 부흥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석탄과 건축 재료 등 화물의 움직임이 증가하였으며, 또한 풍년으로 인해 곡물 수송은 유례가 없는 호황을 보이고 평남선 개통, 이어서 경원/호남 양 선의 일부 개통과 함께 기존선의 영업 상태도 양호해졌다.(p135)... 1925년 4월 직영 환원 후 매년 경제계가 회복하여 쌀 반출과 조의 수입, 기타 각종 자재의 수송이 활발해졌으며, 1927년 4월경 일본 전국에 실시된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실시로 인한 충격 속에서도 호황을 유지하였다. 1928년 9월 이후에는 함경선 전선이 개통된 결과 함북 방면에서 목재와 석탄 등이 남하하였으며, 1929년에는 이원철산선과 차호선의 영업이 개시되면서 이 연선 광석의 반출 및 함경남도 흥남 유안공장의 조업과 이의 출하 개시 등에 의한 새로운 생산 분야 개척으로 수송량 증산을 가져왔다.(p138)... 1937년에는 중일전쟁 발발에 의한 특수 수송과 함께 병참기지로서 군수공업이 발달하였으며, 반도 경제도 점차로 장기화되면서 물자와 교통 동원 계획을 바탕으로 전시체제로 재편성되고 생산력 확충을 위해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_ 센코가이,<조선교통사 3> , p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비행이 평등과 '인류 및 각 개인의 완벽함'을 가져다준다는 키발치크의 화학이나 치올콥스키의 꿈, 그 어디에 표현되어 있었든, 자연의 구속을 뛰어넘으려는 권력의 의지(will to power)와 혁명의 의지(will to revolution)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의 로켓공학이 별난 전향자들이 목격햇던 우주비행의 부속물로 시작되었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군사적 필수품이 되더니 후에는 경쟁하는 기술관료 체계의 시대에서 역동성의 상징이 되었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30


 월터 맥두걸(Walter A. McDougall, 1946 ~ )의 <하늘과 땅 The Heavens And the Earth: A Political History of the Space Age>은 나치의 V2 개발로 촉발된 미 - 소의 로켓 개발 경쟁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특히,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Sputnik 1)의 성공이 가져온 충격과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최초이자 유일한 원자폭탄 보유국이라는 타이틀도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위협받게 되었고, 급기야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소련에서 발사되면서 미국은 일대 충격을 받게 된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crisis)로 인해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이후 '기술관료'에 의한 테크노 크라시(technocracy) 중심으로 바뀌면서 미-소 우주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퇴임연설에서 기술관료제를 향한 흐름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그것은 현재 예언으로 읽히고, 그 구절들은 미래의 기억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메더리스처럼, 아이크는 '군산복합체'와 '과학기술 엘리트'의 성장에 따라 부과되는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 정신적 위험을 경고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회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젠하워가 불만족스러운 추세를 기술의 행진의 탓으로 돌렸지만, 스스로도 그런 추세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441


 양립하는 냉전과 기술혁명에 의해 부과되는 위험은 도덕적이고 천하무적이었다. '좋은 시민들'은 고별연설이 경고했던 것처럼 군산(軍産)의 영향력이 언제 '부당하게' 또는 '잘못 준' 권력, '포획된' 공공정책이 되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전에는 자율적이었던 과학적, 군사적, 산업적, 학술적 제도들은 그 자체가 국가 기술관료제로 점차 빠져들었다 - 아이크도 인정했듯, 기술관료제는 '절박한 필요'였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443


  1960년대 이후 미-소 양국의 우주시대는 이념의 대결장으로 전개된다. 1호 인공위성과 최초의 우주비행사의 타이틀도 소련에게 빼앗긴 미국은 이후 아폴로 계획(Project Apollo)을 통해 유인달탐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지만, 보다 시급한 현안에 들어갈 비용이 다수의 삶과 관련없는 사업에 투입되며 냉전(冷戰) 이후 우주전쟁 또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결국, 우주전쟁의 결말은 흐지부지되고 마는데, 월터 맥두걸은 <하늘과 땅>에서 '인류의 꿈'이 점차 기술관료라는 특정집단의 밥그릇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아폴로의 첫 번째 아이러니는 시간이 흐르면서 수단이 목적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수단 - 기술관료제 - 은 새로운 국가 의제 대부분의 항목에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달에 가는 것은 기술적 문제였다. 그러나 차별이나 빈곤, 심지어 도시의 황폐화를 해결하는 문제는 그 성격 자체가 달랐다... 아폴로의 두 번째 아이러니는 이 가장 위대한 우주임무가 우주정치에서 우주기술의 역할을 형성하는데 중심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엔외기권우주조약(UN Outer Space Treaty)은 스푸트니크 1호 후 거의 정확히 10년 후에 발표되었는데, 미래 우주 비행의 환경을 국가 기술관료제들 사이의 경쟁으로 고착시켰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2>, p339


 오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되었고, 목표 고도인 700km에 이르렀다는 점에서는 성공을, 3단 엔진의 조기 연소 종료로 인해 더미위성의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다는 점에서는 실패로 평가받는다. 비록, 절반의 성공이지만 평가받는 누리호 발사는 여러 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과학기술이 국력의 중요한 척도인 요즘 발사체 제조 기술의 보유는 정치적으로는 국제적 강력한 협상 카드를 갖는다는 것이며, 군사적으로는 강력한 전술/전략 무기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로 'Peace Maker' 작전을 선보이고, 바로 어제 20일에 대통령이 서울 ADEX 개막식에서 FA-50 전투기를 타고 참석한 이후, 고도의 미사일 기술이 필요로 하는 발사체의 발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어느 한 방향을 지향하는 메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도록 하자.


 국가 전략의 토대가 되는 기초자료는 국익의 핵심적 요소이다. 이때 국익은 지도력과 국익에 대한 잠재적 위협에 의해 규정된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174


 

 20세기는 오늘날까지 네 번에 걸쳐 전쟁 기술의 중요한 혁신을 목격하고 있다. 적이 사용하기 이전에, 혹은 그것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개발하기 이전에 그런 기술 혁신을 이룩한 국가는 잠정적이나마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p326)... 마지막으로, 핵무기와 발사 수단을 갖춘 국가들은 경쟁국들에 대해 어마어마한 기술적 우위를 지닌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1> , p327


 제공권을 보유한다는 것은, 자신은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반면에 적군이 비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공권을 장악한 국가는 적군의 항공 공격으로부터 자국 영토를 보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적군의 지상 및 해상 작전에 항공 지원을 방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항공작전은 적의 지상군과 해상군을 그들의 작전 기지로부터 차단시킬 뿐만 아니라, 적국의 내부를 폭격하여 황폐화시킴으로써 적국 군민의 육체적/정신적 저항선을 붕괴시킬 것이다. _ 쥴리오 듀헤, <제공권> , p39


 앞서 말한 여러 의미가 국가 차원에서의 의미라면, 어느 집단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나로호의 과제를 풀기 위해 보다 많은 전문가와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기술관료제 중심으로 운영된 과거 미-소의 전철을 밟기 않기 위해서는 기술관료제에 대한 통제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미제스(Ludwig von Mises(1881 ~ 1973)의 말처럼 관료제 자체는 가치 중립적일지 모른다. 또는,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의 말처럼 근대 국가에서 관료제는 필수적일지도 모르겠다. 관료제 자체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이를 통해 특정 집단에 권력이 집중화되는 것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폐해를 잊었을 때  '원전 마피아'의 악몽을 다시 꾸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누리호 발사를 통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누리호 과제가 주어진 것은 아닌지를 과거 미-소 우주경쟁사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근대의 거대 국가가 오랫동안 존속하면 존속할수록 그만큼 더 기술적으로 관료제적 기초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는 것, 게다가 근대적인 거대 국가가 크면 클수록 또 특히 더욱더 강대국이면 강대국일수록 또는 강대국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무조건 관료제적 기초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p52)... 무엇보다도 관료제화는 전문가 훈련을 받았으며, 또 끊임없는 실습을 통해 더욱더 자신을 훈련시키는 직원들에게 개별적인 일을 할당해, 순전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행정 작업 분할의 원리를 실행할 수 있는 최적조건을 제공한다. _ 막스 베버, <관료제> , p60/23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10-22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인공위성 🚀 로켓발사 실패해서 안타깝네요. 고생한 과학, 기술자들 수고했는데...ㅠ

겨울호랑이 2021-10-22 07:43   좋아요 2 | URL
네.. 계획대로 다 이뤘으면 좋았을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시도에 많은 것을 이뤘다는 점에서는 분명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라 러시아에서는 로켓 연구진만 각각 2만 명 정도라는데, 이번 우리 연구진은 2백 명 남짓이었다고 하네요. 말 그대로 일당 백으로 이룬 성과이기에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1-10-22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박수를 보내고싶어요. 다른 예산하고 비교해서 얼마안된다고 자꾸 과학자들이 나와서 강조하는 모습이 짠했어요. 이런 일에도 예산 타령, 실패하면 난리 ㅠㅠ 저희 아이 선배들이 외국 연구소로 가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초과학 관련 연구비 타는 게 너무 어렵다고 ㅠㅠ

겨울호랑이 2021-10-22 09:5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미니님 말씀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응용분야에 대한 투자에 비해 기초 분야에 대한 투자는 매우 인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 성장기에는 외화획득을 위해 응용분야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순수 학문 - 과학, 예술 등등 - 에 대한 폭넓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투자가 뒷받침되었을 때, 다수에게 기회가 열리고 소수에게 권위가 집중되는 폐단이 막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
 

 

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긴 기대이다. 즉 그것은 먼저 우리 목적의 실현에 대한 기대이고, 특히 우리 자신에 대한 기대이다... 우리의 인생은, 단순이 여러 가지 기대만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여러 가지 기대를 기대하는, 기대의 기대로도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성(自己性)의 구조 그 자체이다. 모든 계열은 원리상 결코 '주어지지' 않는 이 궁극적인 항에 달려있다. 이 궁극적인 항은 우리 인생의 가치이며, 다시 말해서 명백하게 하나의 '즉자-대자'라는 형식의 하나의 충실이다. 이 궁극적인 항에 의하면 우리의 과거에 대한 회복은 앞으로도 뒤로도 단 한 번만 이루어질 것이다. _ 사르트르, <존재와 무>, p871


 "Life is Choice(C) between Birth(B) and Death(D)"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1905 ~ 1980)의 <존재와 무 L'Etre et le Neant >를 읽으며 그가 한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 명제에 담겨있는 인생이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내용은 <존재와 무>의 큰 얼개인 과거-인생-죽음의 관계를 보다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과거의 불변적인 요소 중 하나인 '탄생(birth)'과 '죽음(death)' 모두 현재와 관계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과거의 자유와 죽음의 불확실성 모두 우리의 현재의 '기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과거-현재-미래'의 시간(time) 구조를 연결해주는 것은 '선택'이며, '기도'이고 '기대'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인생은 선택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보다 잘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행복'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자유는 과거와 관련하여 하나의 목적의 선택이 되지만, 거꾸로 말하면, 과거는 선택된 목적과의 관계에 있어서만, 자신이 그것으로 있는 것으로 있다... 과거의 의미는 나의 현재적인 기도에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결코 앞서는 내 행위의 의미를 내 마음 내키는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오직 나만 이 순간순간에 과거의 '유효범위'를 결정지을 수 있다. _ 사르트르, <존재와 무>, p813


 다시 말하면 인생이란, 우리가 유한성을 선택하고, 그 유한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목적을 선택할 때의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 죽음의 특징은, 그것을 언제 어느 때의 일로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기한 이전에 언제라도 덮칠 수 있다는 것이다. _ 사르트르, <존재와 무>, p869


 여기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 ~ BC322)에게 의견을 청해본다. '행복'에 관한 윤리학인 <에우데모스 윤리학 Ethica Eudaimonia>3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덕(arete)은 선택과 관련되어 있음을 말한다. 덕을 갖추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면,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기대를 갖는가'의 문제로부터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를 지나 '인생에서 최상의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관점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1220b 모든 경우에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 중간인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것이 앎과 이성이 명령하는 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서나 그것이 가장 좋은 성향을 산출하기도 한다. 이것도 귀납과 추론을 통해 분명하다. 반대자들은 서로 파괴하니까. 양극단은 서로에게도, 중간에게도 반대이다... 따라서 성격의 덕을 필연적으로 어떤 종류의 중간과 어떤 중용(mesotes)에 관련된다. _ 아리스토텔레스, <에우데모스  윤리학>, p71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저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 Ethica Nicomacheia>에서도 강조되는 중용(mesotes)이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중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인생에서의 중용은 무엇일까.  우리의 선택은 다른 기회비용을 낳는다. 보다 큰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도록(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의 마지막을 사르트르의 문장에 대응하며 정리하는 것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Life is Choice(C) between Birth(B) and Death(D)"


"Eudaimonis(Happiness) is Balance(B) between Alternative(A) and Choice(C)"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6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10-20 00: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짧은 소설이지만 <구토> 읽고 전율했습니다.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얼굴들과 모퉁이를 돌아가는 노파의 뒷모습.... 실존체험에 대한 묘사가 넘 강렬해서..!

겨울호랑이 2021-10-20 05:24   좋아요 2 | URL
아직 <구토>를 읽지 않았는데, 그레이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조만간 읽고 싶네요. 그레이스님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blanca 2021-10-20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부분이 너무 공감이 가네요.

겨울호랑이 2021-10-20 15:52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살지만, 인생을 어느정도 살다보면 커다란 공통분모는 공유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blanca님 감사합니다. ^^:)

morbid3 2021-10-23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에서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가 번역되어 출판된 것만 해도 기적과 같은 일이지만

역자 분이 철학 박사가 아닌 문학 박사여서 그런지, 철학 용어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의 철학계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고유한 한국어가 아닌 전부 다 중국의 한문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 번역은 철학에서 전통하신 분들이 번역을 해도 참으로 오역인 경우가 수두룩 하지요..

뭐 출판된것만 해도 기적입니다만..

저는 몰랐는데, 실존주의를 전공한 한국의 철학 박사가 한 명도 없답니다...참..ㅋㅋㅋ

2021-10-23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11-05 16: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깊어 가는 가을~
가족 모두 화목하게 ^ㅅ^

그레이스 2021-11-05 16:26   좋아요 1 | URL
저두요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1-11-05 17:49   좋아요 2 | URL
scott님,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금요일 저녁시간 되세요!

mini74 2021-11-05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님 ~ 호랑이님 계절이 다가오네요 ㅎㅎ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1-11-05 17:49   좋아요 2 | URL
날이 제법 추워졌네요. mini님 건강하게 하루 마무리 하세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11-05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1-05 22:2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짜라투스트라 2021-11-05 18: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11-05 22:27   좋아요 2 | URL
짜라투스트라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이하라 2021-11-05 19: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11-05 22:28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하루 잘 마무리지으세요!^^:)

초란공 2021-11-05 2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1-11-06 10:08   좋아요 1 | URL
초란공님 감사합니다. 여유있는 주말 되세요! ^^:)

모나리자 2021-11-05 2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1-11-06 10:09   좋아요 0 | URL
모나리자님 감사합니다. 좋은 가을 즐기는 하루 되세요! ^^:)

thkang1001 2021-11-06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1-11-06 16:08   좋아요 0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

초딩 2021-11-07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1-11-07 13:10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일요일 오후 보내세요! ^^:)
 

 하늘 가득히 뿌려진 별은, 별 하나하나에서 뿜어낸 여광(餘光)들은 서로 녹아 흘러서, 그야말로 은하(銀河)인가, 지상에도 천상에도 견사 같은 엷고 맑은 어둠이 부유(浮遊)하고 있는 아름다운 밤이다. 밤바람이 한랭하여 더욱 맑은 느낌인지, 멀리 있는 성당의 첨탑이 뚜렷하게 솟아올라 있다. _  박경리, <토지 7> , p400/514


 이번 주 토지독서챌린지 미션 :  '2부 3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 소개'를 포함한 감상평 작성하기. 


 2부 3권에서 극적인 장면은 길상, 서희와 봉선의 반갑고도 어색한 재회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맞닿은 지평선 끝의 성당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별이 뜨기 얼마 전에 울렸을 성당 종(鐘)소리가 사라지면서 이를 대신해서 떴을 별들의 모습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 ~ 1922 )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편에서 '성당'의 이미지는 마들렌 과자의 환상 이후 조금씩 다르지만 반복적으로 제시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이 '청각'과 '시각'의 이미지를 잘 살리는 듯하다.


 혼자 남은 내가 앞에 있는 녹색 덩어리에서 성당을 발견하려면, '성당'에 대한 관념을 보다 깊이 파헤쳐 보는 노력을 해야했다. 실제로 라틴어에서 모국어로 번역하거나, 모국어에서 라틴어로 옮겨야 할 때, 평소에 익숙한 형태를 벗어던져야만 문장의 의미를 더 잘 깨닫게 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여느 때는 종탑만 보아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어 그다지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던 그 성당이라는 관념에, 여기 담쟁이덩굴의 아치는 고딕식 채색 유리의 아치이며, 저기 나뭇잎들의 돌출부는 기둥의 돋을새김에 해당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환기해야 했다. 그러나 약간의 바람이 불어와 움직이는 성당 정문을 흔들자 빛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것이 일면서 전율하듯 번져 나갔고, 나뭇잎들은 파도처럼 부서졌고, 식물로 뒤덮인 정면은 파르르 떨면서 물결치듯 애무하며 사라지는 기둥을 함께 휩쓸어 갔다. _ 마르셸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p85/419 


 <토지 7>에서 이 아름다운 광경은 임역관과 공노인이 조준구를 만나기 전에 그려진다. 탐욕스러운 조준구에게 금광(金鑛)관련 정보를 흘리면서 접근하는데 성공한 두 사람. 이로써 서희의 조준구에 대한 복수는 은밀하게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성공을 거둔 두 사람은 돌아오는 길에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조준구를 만나기 전 밤하늘은 아름다운 풍경에 불과했다면, 악인(惡人) 조준구를 만나고 다시 올려다 본 하늘은 하나의 깨우침을 주는 천지질서로 두 사람에게 보였을까. 


 밤하늘이 그 수많은 별들 운행같이 삼라만상이 이치에서 벗어나는 거란 없는 게야. 돌아갈 자리에 돌아가고 돌아올 자리에 돌아오고, 우리가 다만 못 믿는 것은 이르고 더디 오는 그 차이 때문이고 마음이 바쁜 때문이지. 뉘우침 말고는 악이란 결코 용서받을 순 없는 게야. _  박경리, <토지 7> , p581/614


 밤하늘을 보며 공감(共感)하는 두 사람. '성당'을 매개로 한 두 사람의 공감을 소재로 한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의 <대성당 Cathedral>을 떠올리게 된다. '대성당'에서도 두 인물이 등장한다. 볼 수 없지만, 느끼려고 했던 맹인과 그에게 '대성당'을 보여주려 했던 장교. 서로 넘어설 수 없는 '시각'과 '청각'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신 '촉각'을 통해 교감했던 그들처럼, 임역관과 공노인이 악(惡)인 조준구에게 선(善)을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려 했다면 조준구의 결말은 달라졌을까. 아마도 모를 일이다. 이번 주 읽은 내용 중에는 실존인물 한 명이 지나가듯 나온다. 이인직(李人稙, 1862 ~ 1916)이다. 최초의 신소설을 쓴 작가이자 이완용(李完用, 1858 ~ 1926)의 비서로 활약한 친일행적으로 생을 마감한 그에 대한 내용 일부를 옮겨본다.


 1906년 2월 일진회(一進會) 기관지 <국민신보>의 주필을, 같은 해 6월 손병희, 오세창 등이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천도교 기관지 <만세보>의 주필을 맡았다. <만세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1906년 7월부터 10월까지 <혈의 누>를, 1906년 10월부터 1907년 5월까지 <귀의 성>을 연재했다. 1907년 7월 <만세보>가 재정적 이유로 폐간되고 친일 이완용 내각의 기관지 <대한신문>으로 바뀐 뒤 대한신문사 사장에 취임했고, 이후 이완용의 후원을 받으면서 그의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1913년 11월 경학원이 전라북도 강사의 순회강연을 시찰할 때, 금산군에서 조선왕조의 통치를 비판하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강연을 했다. 1914년 총독 데라우치의 조선합병을 칭송하고 일제의 무단통치를 덕치(德治)에 비유하면서 모든 분야가 발전하는 은택을 입었다고 식민통치를 미화했다... <친일인명사전> 中


  <토지 7>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되는 <혈의 누>를 쓴 이인직 이름과 함께 문학과 번역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러한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각은 근대문학(近代文學)과 근대화(近代化)로 이어진다. 뒤이어 생각은 네이션(nation)=근대국가(state)의 출현을 국민문학과 연결시킨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에 이른다.


 몇몇 식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 일반대중이 짧은 시일에 눈을 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 얘기라구. 우물 안 속에서도 한 권의 소설을 통해서 그 나라의 풍물이며 새로운 사상, 그네들의 생활방도 종교 윤리관을 싹 훑을 수 있다면은 그런 작품의 소개란 상당히 시급한 일일 게고 몇 사람은 선구자가 있어야잖겠어? 물론 지금까지의 얘기는 번역하는 일인데 그런 다음." _ 박경리, <토지 7> , p435/514


 근대의 네이션이 성립하기까지의 '세계제국'에서는 라틴어나 한자나 아라비아문자라는 공통의 문자언어가 사용되었고, 또 각 민족이나 각 공동체의 종교를 넘어선 '세계종교'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입니다. 그런 '제국'이라는 것은 지배관계에 저촉되지만 않는다면, 각 부족의 습관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운데서 근대적 의미의 네이션(민족)이 출현했습니다. 그러나 네이션이 네이션이 되는 데에는 언어의 변혁, 즉 그런 '보편적'인 개념을 토착적이랄까 신체적/감정적 기반에 의거하는 것이 되도록 하는 언어를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언어란 음성언어 또는 속어입니다. _ 가라타니 고진, <문자와 국가> , p138  


  '언문 言文일치' 운동의 본질은 문자개혁이다... '언문일치' 운동은 무엇보다도 '문자'에 관한 새로운 관념에서 비롯되었다. 막부의 통역 마에지마 히소카를 사로잡은 것은 음성 문자가 갖는 경제성, 직접성, 민주성이었다. 그는 서구의 우월성은 음성 문자에 있다고 생각했고, 음성 문자를 일본어에서 실현시키는 일이 긴급한 과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58


 가라타니 고진은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국가 출현 이전에 민족의식을 보편화할 수 있는 언어의 출현이 필수적이었다고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시대의 일본 지식인에게도 공통된 것이어서 이들은 기존의 '한자가나혼용' 대신 '가나'혼용을 주장하게 된다. 이론적-도덕적인 내용을 담는 '한자'와 , 감정과 기분 등 느낌을 담는 '가나'. 이들이 '언문일치'를 통해 한자 사용을 금하고자 했던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기존의 추상적 표현을 서구문화를 번역한 새로운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그들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그들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자에서는 형상이 직접 의미로 존재한다. 그것은 형상으로서의 얼굴이 직접 의미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표음주의에서는, 설사 한자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문자가 음성에 종속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얼굴'은 이미 맨 얼굴이라는 일종의 음성문자가 된다. 그것은 거기에 표현되어야 할 '내적인 음성=의미'를 존재하도록 만든다. '언문일치'로서의 표음주의는 '사실'이나 '내면의 발견과 근원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62


 과거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롭게 유럽의 제국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일본의 지식인들과 이들을 따라 근대화를 이루려 했던 구한말의 지식인들. 이인직처럼 이들중 다수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속에서 언어와 문자 그리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글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글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분명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근대문학을 다루는 문학사가들은 '근대적 자아'가 그냥 머릿속에서 성립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자기 self가 자기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추상적 사고 언어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언어 표상의 감각적 잔재가 내적인 것과 연결되며, 그에 따라 내적인 것 그 자체가 점차 지각되게 된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조해두고 싶은 또 다른 논점은 전 세계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이 이미 여러 곳의 조세피난처(tax haven)에 은닉되어 있으며, 이런 사실이 전 세계 자산의 지리적 분포를 분석하는 우리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오직 공식적인 통계자료만을 근거로 파악하건데, 부유한 국가들의 순자산 포지션 수준은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과 비교해 마이너스인 것으로 보인다.(p555)... 가브리엘 주크먼이 계산한 추정치에 따르면 은닉 자산의 총액은 전 세계 GDP의 약 10퍼센트에 달한다.... 현재의 모든 증거 자료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대부분의 금융자산(최소한 4분의 3)은 부유한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_ 토마 피게티, <21세기 자본>, p558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 1971 ~ )는 <21세기 자본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전세계적인 부의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글로벌 자본세 Global tax on wealth'를 제안한다. 이는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을 기반으로 누진적인 세계적인 자본세를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제안이 나온 배경에는 조세 피난처로 빠져나간 은닉 자금이 있다. 피게티는 2014년 <21세기 자본>에서는 전세계 GDP의 10%에 달하는 조세회피처의 은닉 자금 등과 같은 불평등을 낳는 자산 불평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 Capital et ideologie>에서는 이러한 자산 불평등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간다. 

 

 이론상 일국의 국제수지는 금융 흐름을, 특히 자본소득(배당금, 이자, 각종 이윤)의 유출과 유입을 측정할 수 있게 한다. 원칙적으로 유입과 유출의 총량은 매년 세계적 차원에서 균형을 이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계 작업의 복잡함은 물론 소소한 편차들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이는 쌍방향으로 진행되어 시간이 흐르면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1980 ~ 1990년부터는 자본소득의 유출이 유입을 초과하는 체계적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비정상을 통해 추산할 수 있게 되는 다른 나라들에 신고하지 않고 조세피난처에 보유한 금융자산이 2010년대 초에는 세계 금융자산 전체의 거의 10%에 달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모든 것이 그때부터 계속 증가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_ 토마 피게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 p566/1134


 조세 회피처에 숨겨진 자산은 전세계 평균 GDO의 10%로 추산되지만, 지역별로 이 비율은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 금융자산의 약 4%, 유럽의 10%, 러시아의 약 50%가 케이맨 군도(Cayman Islands) 등조세피난처에 은닉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조세 피난처 문제가 선진국 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게는 특히 심각한 문제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뉴스타파에서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주관으로 탐사보도 <판도라 페이퍼스 :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2021>를 내놓았다. 삼성그룹 회장 이재용, SM 엔터테이먼트 이수만, 전두환 씨 동생 전경환, 전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 등이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자금을 운영한 정황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전체 규모를 알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돈 역시 해외로 빼돌려지고 있음을 보도를 통해 실감하게 된다. 거칠게 계산했을 때, 2020년 우리나라 GDP가 1조6천240억 달러임을 생각해본다면, 평균 은닉률 10%로 계산했을 때 1,624억 달러의 돈이 국가 계정에서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보도를 언론에서 찾기 힘들다. 대신 이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한 '대장동 투기 의혹'만 과대포장되어 모든 언론에 보도되는 현실 속에서 '불평등이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피게티의 말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불평등은 경제적인 것도 기술공학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이것이 분명 이 책에 제시된 역사 연구의 뚜렷한 결론이다. 달리 말해 시장과 경쟁, 이윤과 임금, 자본과 부채,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내국인과 외국인, 조세피난처와 경쟁력, 이런 것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배치하고자 선택한 법, 조세, 제정, 교육, 정치 관련 체계와 사람들이 스스로 속하고자 하는 범주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회역사적 구성물이다. _ 토마 피게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 p18/1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