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둔 프랑스에서는, 이번에도 좌파가 패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막상 선거가 닥치면 좌파의 다양한 분파가 단합할 것이라고 가정해보더라도, 좌파 구성원 간에 남아있는 공통분모가 없다. 따라서, 좌파의 패배를 점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세금제도, 퇴직 연령, 유럽연합(EU), 원자력 존속 여부, 국방정책, 미국,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 등 핵심 사안들에서 서로 대립하는 이 다양한 좌파 분파들이 어떻게 연합해 국가를 이끌 수 있겠는가? 극우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직도 좌파를 결집시키는 유일한 공통분모다. 지난 40년간 프랑스에서 '좌파'가 집권한 세월은 20년에 달한다(1981~1986, 1988~1993, 1997~2002, 2012~2017). 그런데 그 동안 극우는 꾸준히 입지를 다졌다. 다시 말해 극우의 부상이라는 위험을 저지하기 위해 좌파가 취한 전략은 처참히 실패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2022년도 4월에 프랑스 대선이 있어서인지 최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사의 상당량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덕분에 거의 같은 시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2022년 1월호 기사 중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는 사회주의 세력이 쇠퇴하는 여러 원인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과거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았던 대안으로 사회주의의 위상과 업적을 생각한다면 '언제나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좌파'라는 제목은 관심을 끈다.   

 

서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지난 100년간 얻은 주요 성과는 자본주의를 문명화한 것이다.(p610)... 사회주의자들은 복지 제도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계몽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들이고,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었다. 그들은 투표권이 제한된 시절 투표권을 확대하기 위해 싸웠다. 다른 어떤 정당보다 일관되게, 일찍부터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구체제의 견고한 권리와 특권을 폐지하기 위해 싸웠다. 그들은 인종 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든 투쟁을 지지했다. 사형 제도 폐지와 동성애 합법화, 낙태의 비非범죄화에 중요한, 때로는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_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 p611 


 지난 30년 동안, 좌파와 대중 유권자들이 멀어진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서 비롯됐다. 정치적으로는 공약 불이행에 대한 배신감, 경제적으로는 3차 산업의 확대, 자본화, 세계화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사회학적으로는 교육받은 계급들의 능력주의 찬양, 인류학적으로는 계산적이고 상업적인 합리주의로 인한 삶의 다양성 와해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으로는 대도시의 주변 지역 잠식, 문화적으로는 사회 투쟁에 대한 상류층의 투쟁 때문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의 기사는 그 원인을 좌파가 이전까지 여러 차례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한 것에서 찾는다. 정책수행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우파와 타협할 수 밖에 한계점. 그것은 좌파가 갖는 한계점이기도 하다. 헌법에 보장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지속적인 정당활동과 차기집권을 위해서 이들의 개혁안은 한계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점은 그들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꾸면서 좌파와 대중들의 분리가 시작된다고 기사는 분석한다. 


 이런 성공에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못했고, 경제계획을 통해 자본주의를 이끌지도 못했다. 이 실패의 원인은 정치와 현대자본주의, 그 둘의 관계에 내재된 속성에 있다... 자본주의자들의 활동에 전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무리 커도, 그것이 자본주의에 악영향을 미쳐서 실업과 저성장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권한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p612)...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은 두 가지 뚜렷한 제약 내에서 자본주의를 규제하려고 했다. 첫째 제약은 자본주의 자체를 존속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둘째 제약은 민족국가로, 모든 규제의 틀에 법적 테두리를 제공했다. _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 p613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히 해둬야 한다. 첫째, 좌파는 단순히 좌파의 강령 실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파의 강령을 실천했다. 둘째, 좌파가 타협을 최대한 연기하려 할 때마다(프랑수아 올랑드는 취임 첫날부터 그랬다) 좌파를 굴복시킨 것은 쿠데타도 외국 군대도 아닌 재정 질식이었다. 2015년, 당시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아테네의 봄과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것은 탱크가 아니라 은행"이라고 요약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여기에 더해, 좌파의 세력구성은 수많은 '결'들로 구성된다. 좌파를 구성하는 여러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느슨한 연합구조를 갖는다.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동맹. 동맹을 위한 수많은 협상과 양보를 거치면서 최초의 개혁안에서 상당부분의 후퇴는 불가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은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반복되며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에서 1860년대 이후 한 세기 동안 두 가지 상호 보완적인 원칙이 유효했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좌파의 고갱이었고 좌파는 언제나 사회주의보다 그 범위가 넓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수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동맹자들을 필요로 했다 - 선거에서 겨룰 때나 정부를 구성할 때, 파업을 조직할 때나 공동체의 지원을 구축할 때, 선동을 수행할 때나 제도 안에서 활동할 때나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공언할 때나 언제나 그러했다. 1960년대 이후 사회주의자들이 좌파 안에서 헤게모니를 잃고 다른 급진주의자들이 좌파의 정치 공간에 진입함에 따라 이러한 협상의 조건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_ 제프 일리, <더 레프트 1848 ~ 2000 :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 p617


 이에 대항하는 우파 - 특히 극우파 - 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근간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침해,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인종과 국가를 우선하는 정책을 주장하며 감정에 호소한다. 간결한 메세지와 애국심 등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 여기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언론장의 보수화'까지 더해지면, 우파는 선거에서 질래야 질 수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좌파의 느슨한 연합은 '측정할 수 없는 이념들의 질(質)적인 연합'인 반면, 우파의 연합은 '측정가능한 이익의 양(量)적인 결합'이라는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것은 선거철이면 재등장하는, 극우가 내세우는 모든 공약의 핵심이다. 또한, 프랑스에 과거의 명성을 되돌려줄 현자의 돌이다. 실업부터 공공적자, 주거에서 이민까지, 범죄에서 연금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다. 이것은 바로 '국적 우선제'다. 국적 우선제 장점은 많다. 우선, 개념이 쉽고 단순하다. 또한, 자원이 부족한 위기상황에서 확산되는 국수주의적 반응을 자극함으로써 논쟁이 될 '예산' 없이도 부차적인 모든 관심사에 응용할 수 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12> <극우파의 만병통치약, '국적 우선제'> 中


 사회는 하느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신비로운 '자연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사회는 인류에 의해서 창출되었다. 사회가 계속해서 진화할지 혹은 쇠락할 것인지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사회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는 개인적 판단의 문제일 수 있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고통보다는 행복을, 비참함보다는 후생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를 수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회가 존재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도 제한이나 유보 없이 수용해야만 한다. _ 루트비히 폰 미제스, <사회주의 2> , p251/390 


 주로 시청률에 발목이 잡혀 정치적 경제적 제약에 점차 구속됨으로써 보다 더 타율적이 돼가는 언론장은 (사회과학장, 철학장 등의) 문화생산장이나 정치장을 비롯해 다른 모든 장을 구속하려는 속성을 보인다. 그런데 장이란 내부에 다수의 힘이 존재하고 상호 간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투쟁을 벌이는 공간으로서, 이 투쟁의 주된 목표는 힘의 장에 변형을 가하는 데 있다. 즉, 하나의 장에서는 장내 투쟁의 쟁점이 되는 것을 정당하게 점유하기 위한 경쟁이 존재한다. 언론장에서의 쟁점은 다름 아닌 대중의 관심이다. 대중을 얻기 위해,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들(속보, 특종, 독점 정보, 유명 인사 등)을 점유하기 위해 내부에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재미난 점은 ‘자유의 전제조건’이라는 이 경쟁으로 인해, 상업적 통제 하의 문화생산장에서는 오히려 장의 획일화와 검열, 나아가 보수화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피에르 브루디외, <특정 세계관은 어떻게 자리잡는가>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는 프랑스 정치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문제점 등에 대해 지적하고 있기에, 오늘 우리 한국의 정치 상황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기사 내용이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긴 페이퍼의 마지막은 '여론장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글을 옮기는 것으로 갈무리한다...


 기자와 여론조사 기관은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올라가자 자신의 영향력과 킹 메이커로서의 역할에 도취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자기중심적 본능에 무릎을 꿇었다. 시민들의투표 의사를 가시화하기 힘든 (어쩌면 실체조차 없는) 시기인,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선거 6개월 전에 투표 의사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다는 것은 더 기이한 역설이다. 이처럼 후보 선정이  인위적인 구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민주선거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다. 과연 언제까지 이 환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표본의 대표성이 신뢰할 만하지 않고, 계산이 정확하지 않고,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 때, 여론조사의 민주적인 이점에 대한 믿음은 사라질 것이고, 정당의 여론조사 담당자는 지쳐버릴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과 품질 하락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 방향에서 어떤 강력한 흐름이 이것을 막고 있음을 의미한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누가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가?> 中


 언론이 대중의 대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대화 저널리즘의 임무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 즉 대화다. 사람들을 단순히 뉴스 소비자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언론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언론이 시민과의 만남과 모임을 갖고 그 과정과 내용을 기사로 다루어 공동체 구성원들과 나누어야 한다. 언론이 공동체의 대화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소외집단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 주어야 한다. 언론은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만들어 낸 정보를 유통시키는 통로의 역할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시민적 담론을 위한 장(場)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_ 월터 리프먼, <여론> , p1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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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조용하)도 조선사람으로서 결코 일본의 임금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소이다. 역사란 항상 기복, 운동이라 해도 좋겠습니다만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 나는 생각하는데요(p352)... 역사의 역학적 방향과 인간의 그것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일까요? _ 박경리, <토지 14>, p353/708


 침략하는 일본이나 짓밟히는 우리들 모두는 의지 밖에서 역사에 희롱당하거나 혜택을 받는다 그런 얘긴가요? 저(유인실)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이 말살당하느냐 안 당하느냐 그것은 우리 자신들에게 달려 있는 거구, 친일파의 존재가 아니었던들 우리의 사정은 좀 달라져 있었을 거예요. 길은 형편에 따라 우회할 수도 있고 질러갈 수도 있겠지만 생각은 화살 가듯 곧아야 한다고 믿어요. _ 박경리, <토지 14>, p354/708


 토지문화재단 독서챌린지 27주차. 이번 주에 읽은 <토지 14>에서 아내 명희가 떠난 조용하는 유인실을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코 둘 다에게 즐거웠다 할 수 없는 대화는 우리에게 1920년대 당시 사회운동의 주소를 알려주기에 시선을 붙들기에 이번 주 페이퍼는 이를 다루려 한다. 일본 유학파 지식인으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조용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본질과 다르게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인실에게 간파당하고 그의 논지는 여지없이 논파당한다.


 사실, 허세가 강한 조용하에게 1910년대부터 점차 거세지고 있던 노동자 주도의 사회주의 사상은 매력적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사회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행처럼 번졌던 민족자결주의의 열풍을 대신할 새로운 사상흐름이었고, 많은 이들이 다수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지배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까지 이어지고 '인터내셔널'에 의한 세계통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던 시점임을 생각해본다면, 조용하의 이러한 생각들은 시대를 앞선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전형적인 편에 가까웠다.


 (1910년대 당시) 노동자당과 사회주의당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극도의 주의와 주목을 끌었다. 과거의 성장세에 근거하여, 그들의 지도자들은 승리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프롤레타리아는 인민의 다수가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p247)... 1880년대 이래로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들의 급격한 부상이 정달들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그것의 지지자나 구성원들에게도 흥분과 희망, 즉 자신들의 승리가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_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p248


 다만, 외면적으로는 거대한 하나의 조직으로 보이는 '사회주의'였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결들과 흐름이 있었고, 이들은 각각 저마다의 전선(戰線)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이들이 서로 단결되어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의 힘으로 작동하기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희망과는 달리 노동자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분화(分化)되었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점차 어두워져갔다. 형이상학적인 사회변혁의 이념은 눈 앞의 경제적, 정체적 조건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이즈음의 사회주의 운동은 보여주고 있었다. <토지>에서 이는 오가타와 인실의 다가갈 수 없는 간극으로 표현되는데, '민족'을 넘어선 '인류'를 강조하는 오가타와 '민족'을 우선시 하는 인실의 대화는 결국 이들의 사랑이 사상의 차이로 인해 결실을 맺지 못함을 보여준다.


 실질적으로 노동계급을 관찰했던 사람들은 모두 '프롤레타리아'가 동질적인 대중이 아니었다는 점, 심지어 한 나라 안에서도 동질적이기가 힘들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사회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 주도하에 구분했던 대중들 내의 분열은 너무나 커서, 이들이 어떠한 실질적인 통일된 단일 계급의식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배타적으로 남성들만이 근무했던 보일러 생산직과 영국에서 주로 여성들이 종사했던 면방직 간에, 그리고 똑같이 항구도시에 존재했지만 조선소의 노동자와 도크의 노동자 간에, 의류노동자와 건설노동자 간에 어떠한 공통점이 존재할 수 있을까? _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p249


 노동자들의 차이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민족, 종교, 언어의 차이는 분명하게 분열을 초래했다(p251)... 계급적 경험의 힘은 대단해서 복수의 노동계급 가운데 다른 어떤 집단에 대해 느끼는 노동자들의 대안적인 정체감은 계급적 정체감을 없앤다기보다는 그것의 입지를 좁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느끼긴 했지만 특히 체코인 노동자, 폴란드인 노동자, 혹은 카톨릭 노동자로 느꼈던 것이다. _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p252


  이처럼 개인적으로 인실과 오가타, 인실과 조용하의 대화 안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분화를 발견한다. 역사법칙에 따른 필연적인 자본주의의 붕괴와 이를 대신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계정부의 출현. 이러한 낙관적인 개혁의 전망 대신 현실적으로 구체화된 혁명의 모습은 민족주의를 통한 볼세비키 혁명이었다. 계급과 민족, 인종 등 모든 제약요소를 철폐하는 대신 민족주의를 통해 세력을 규합해간 공산주의 혁명. <토지>의 인실에서 공산주의 혁명가의 모습,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1885~1918)의 일면을 발견한다면 무리가 있을까. 한 걸음 나아가 이를 통해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 ~ 1919)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 1850 ~ 1932) 사이의 논쟁도 함께 소환할 수 있다.


 볼셰비즘은 사회주의 전통의 틀을 깨면서 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숙명론을 뒤흔들었다. 이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의 불가피한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필연적인 출구가 아니었다. 그 대신 혁명을 만들어야만 했다. 단순히 역사법칙의 객관적인 결과가 아닌 까닭에 혁명을 위해서는 창의적인 정치행동이 필요했다(p292)... 1917~1923년에 민족과 계급에 관한 서로 경쟁하는 주장들이 차르의 옛 영토에서 이러한 혁명의 동학을 형성했다. 이것은 어느 하나의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을 배제하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었다. 민족의 유대에 대한 호소는 계급적대를 억누르거나 중요성을 깎아내리면서 노동계급의 정치학을 보수주의자나 자유주의자가 주도하는 광범위한 연합에 결합시킴으로써 사회주의자의 이탈을 사실상 가로막았다. 그러나 좌파 역시 발전하는 민족주의의 틀 내에서 차별적인 강령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민족연합의 지도부를 자임할 수 있었다. 아무튼 좌파는 좀더 온건하고 수세적인 방식으로 노동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었다. _ 제프 일리, <The left 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 , p303


 룩셈부르크에 따르면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성장'이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관계는 결코 위기 요소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기 때문이다. 룩셈부르크는 베른슈타인이 자본주의의 '적응 수단'이라 규정한 현상들 - 카르텔, 신용 체계,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 노동자 계급의 지위 상승-이 결코 자본주의의 위기를 완화시킬 수 없다고 파악한다... 노동조합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발전의 결과 격화된 자본 간의 경쟁은 노동자에게 더 큰 어려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법적 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 사이에 더 높은 벽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혁명, 즉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_ 로자 룩셈부르크,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p133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다음의 인실의 대화가 더 잘 이해된다. '당신은 사회주의자인가'라는 조용하의 물음에 대해, 당신같은 무늬만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대신, 민족의 대한 의견을 밝히는 인실의 대화 속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분화와 함께 공산주의자로서 인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민족'을 중심으로한 사회혁명의 성격을 공산주의가 갖고 있었기에, 1930년대 무장독립투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 하겠다.


 일본이 우리 땅을 강점하여 내 민족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데 대하여 반대하는 것을 사회주의라 한다면 저는 사회주의자겠지요. 조선은 지금 정권 운운할 처지도 아니며 국토는 잃고 민족이 말살되어가는 형편인데 반일이면 되는 거지, 기치를 선명히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생존의 권리를 박탈하는 경우가 비단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에만 있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기업과 노동자의 경우에도 생존을 외치고 권리를 주장하면 이런 경우 사회주의자라는 못을 박기도 하더군요. _ 박경리, <토지 14>, p344/708


 그건 남성 여성의 구별에서 제기되는 것이기보다 인간성의 문제가 아닐까요? 약자니까 나보다 약한 자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심리, 일종의 잔인성이라 할까요? 부당한 독재자나 암우한 군주가 살생을 일삼는 것도 바로 그 심리 때문일 거예요. 비단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이에도, 일본을 보세요. 그 나라 유산이라곤 칼 쓰는 것밖에 없지 않아요? 참으로 열등감이 치열한 민족이네요. 그네들이 일등국민 일등국민 하기 위해, 일등국민이 되기 위해 그들은 끝없이 살육을 계속할 거예요.  나는 그들이 사람을 어떻게 살해했는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_ 박경리, <토지 14>, p359/708


 다만, 이러한 지식인들의 시대 인식이 공산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는 그들 사이에는 치열한 논쟁이었겠지만, 그것이 민중들의 인식과 직결되는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부분이라는 것도 <토지>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의 법칙을 말하는 지식인들의 논리에 대해 소지감의 독백은 역사의 법칙 역시 또하나의 작위이며 기만임을 비판하는 민중의식을 대표한다.


 혁명이란 무엇이냐. 애국하는 겐가, 애족하는 겐가. 하긴 요즘엔 애국을 생략하는 축도 있고 민족을 인간으로 대치하는 축도 있긴 있더라만 결국 공평하자는 거다. 고루 나누어 먹자는 거다. 그게 바로 정의 아닌가.(p27)... 실패한 자는 정의를 환상한 자였느니, 희생된 자는 정의의 사슬로 발목을 묶였던 수많은 백성이었고, 성공한 자는 정의를 칼끝에 꽂고 그것을 무기로 삼는 자였느니라. 하항, 그러면 역사는 무엇이냐. 역사란 정의를 날조한 문서다._ 박경리, <토지 14>, p28/712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오가타와 조용하, 그리고 이들 모두를 비판하는 민족주의 공산주의자 인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비판하는 소지감. 이들의 대화와 생각은 당시 시대상을 잘 녹여내면서 우리에게 생동감있게 전달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사회주의 운동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와 전혀 상관없을 듯 하지만, 최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기사는 100년 전과는 다른 이유로 쇠퇴해가는 좌파 운동의 이유를 짚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다름 의미있는 작업이 될 듯하다. 이에 대한 내용과 사회주의에 대한 더 깊은 내용은 다른 페이퍼에서 다루도록 하고 독서 챌린지 페이퍼는 여기서 갈무리하자...


 어떤 것이 물러나면, 다른 것이 그 자리를 독차지한다. 전쟁 직후 5% 미만이었던 고학력자 비율이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고학력자들은 선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미 기득권층인 그들은, 정치적 승리를 위한 연대가 절실하지 않다... 1950~1960년대에는 부유층과 고학력자들이 우파에, 빈곤층과 저학력자들이 좌파를 지지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전문직업인이나 기업 간부들이 좌파에 투표한다. 이들은 부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을, 종종 반대방향으로 이끈다. _ 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월호>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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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3 16: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토지 뒷부분에 가면 이런 당대 사회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았던게 기억나네요. 아마도 당시의 격변하는 시대가 이런 논의를 도저히 뒷편으로 밀어둘 수 없었기 때문이겠죠. 다만 책이 지식인 세대로 축을 옮겨가면서 토지의 앞부분이 가지고 있던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묘사는 약해진듯했습니다. 어쩌면 당대 지식이들의 세계 인식이 그만큼 얄팍했다는 반영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토지를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다시 읽는듯한 느낌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2-01-23 19:50   좋아요 4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서희가 진주를 배경으로 한 시점부터 이전과는 사뭇 다른 작품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는 4부가 쓰여진 시점이 80년대 군사정권 하의 상황이었다는 점과도 연관있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시대정신을 박경리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일요일 저녁 잘 마무리지으세요! ^^:)
 


 밀폐해버린 것, 그것들은 모순이며 회의이며 욕망, 또한 절망이기도 했었다. 그것은 혈기였으며 자기 추구였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지순한 것, 방종 뒤켠에 숨겨진 맑은 것, 진실이었을 것이다. 끝도 시작도 없었으며 풀지도 맺지도 못하는 몸부림과 쓰라렸던 것. 그러나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적당한 곳에서 매듭짓고 적당한 곳에서 풀어버리고...... 그것들이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듯이 사람도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겠으나, 그게 바로 방편일 수는 없다. 방편은 오히려 인위요 섭리에 반(反)한 것일 수도 있다. _ 박경리, <토지 13> , p416/596


 <토지> 독서챌린지 26주차. 이번 주 읽은 <토지 13>에서는 이혼을 둘러싼 조용하와 임명희의 대립이 그려진다. 동생 찬하와 아내를 부정한 관계로 엮어 내며, 이들을 괴롭히던 즐거움을 바라던 용하는 오히려 이혼(離婚)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고 만다. 용하에게 명희는 일시적 장난감이 아닌 지속적인 장난감이라는 면에서 놓쳐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명희는 용하의 음모를 통해 '박제되어 버린 학'이 아닌 창공으로 날아오를 백조로 새롭게 자신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에서 헨릭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1906)의 <인형의 집 Et Dukkehjem>을 떠올리게 된다.  


 지체만 얕았다 뿐이지 기품 있는 용모에 지적 분위기, 멍청하다 싶을 만큼 집착하는 것이 없었으며 약간 살풍경하고 무관심한 듯, 그런 감성은 이기적이며 싫증내기를 잘하는 용하 같은 성격에는 새로운 매력으로써 지속되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물질적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욕망이 강한 여자를 용하는 싫어했다. 밀착해오는 여자는 일시적 장난감으로서 끝내버린다. 홍성숙이 그런 예에 속한다. _ 박경리, <토지 13> , p597/724


 '나는 생각을 잃어버린, 다리도 목도 다 부러져버린 인형일까? 현실 같지가 않아. 누가 내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려버린다 해도 아플 것 같지가 않아. 피도 흐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일까? 저기 저 계속하여 끝없이 주절대는 사내도 사람일까? 점심을 가져가는 농부의 아낙, 가래질을 하는 농부, 그들보다 천배만배 불행한 나와 저 사나이. 왜 화가 나지 않지? 나는 지금 모욕감도 없다! 구경꾼을 넘어서서 난 이제 송장이 되었나?' _ 박경리, <토지 13> , p603/724


 <인형의 집>의 노라가 빌린 돈에 대한 채무로 인해 '인형'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면, <토지>의 명희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용하를 통해 '인형'임을 알게 된다. 비록, 두 인물 모두 자신이 '인형'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도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자가 외부에서 주어진 충격을 계기로 자신의 삶 전반을 돌아본다면, 후자는 가정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곪아온 상처가 가정 내부의 폭발로 터졌다 것을 다른 지점이다.


헬메르 : 당신은 아내의 도리 그대로 나를 사랑했어. 통찰력이 부족해서 수단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지.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다고 내가 당신을 덜 사랑할 것 같아?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나에게 기대면 내가 당신에게 충고를 해 주고 인도하겠어. 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88/112


노라 : 그래요.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91/112


 이러한 이별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인식 문제는 노라의 남편 헬메르와 명의의 남편 용하가 이별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헬메르는 이별 직전의 대화가 채무와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되었기에 노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반면, 용하는 이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싶지는 않지만 알기에 명희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닐런지. 결국, 용하는 명희를 능욕하며 마지막 잔도(棧道)를 스스로 불태우고 만다. 이런 면에서 헬메르-노라의 관계보다 용하-명의의 관계가 더 파멸적이다.


 결코 저자세도 아니었다. 손이 떨렸던 것은 분노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 사실이 그랬다. 조용하는 명희를 철저하게 부숴버리고 망가뜨리고 싶은 분노와 증오의 불을 태우고 있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는 이를 갈았다. 집 앞에서 잡는 팔을 뿌리치며 명희가 대문을 밀고 모습을 감추었을 때는 살기마저 느꼈던 것이다. 그는 결코 단념하지 않으리라 맹세를 했다. 그러나 한밤중이면 문득 명희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얼음장 같은 여자 옆에서 조용하는 지금 한밤중에 생각하곤 했던 그 절망을 되씹는 것이다. 단념을 하고 싶기도 했다.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포기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속수무책으로 끝낼 수는 없다. 낯가죽이라도 벗겨놔야지.(p585)... 능욕! 능욕, 스스로 목숨을 끊을 그런 힘조차 빼앗긴 능욕이었다. 철저하게 무자비하고 백정의 손에 달린 한 마리 가엾은 짐승같이 도살, 분명 그것은 육체를 통한 영혼의 도살이었다.(p607) _ 박경리, <토지 13> , p607/724


노라 : 우리가 함께 사는 생활이 진정한 결혼이 될 수 있다면 되겠죠. 잘 있어요.(현관문으로 나간다.)

헬메르 : (문 옆의 의자에 주저않아 머리를 손으로 감싼다.) 노라! 노라! (주위를 둘러보고 일어난다.) 아무도 없군. 그녀는 이제 없어. 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100/112


 작품 안에서 노라와 명희는 모두 가출(家出)을 통해 가정과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지만, 가출이 기존 관계의 청산이 아닌, 기존 관계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이 가출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열강의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일본의 욕망은 아시아라는 기존 체제를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나아감이고 탈출이다. 노라와 명의의 나아감과 일본의 탈출은 무엇이 달랐을까. 문제는 그들의 나아감이 그들이 형서했던 기존 세계를 자신의 나아감을 위한 연료탱크로 활용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만일, <인형의 집> 노라가 집을 나가기 전에 집 명의와 통장의 잔고를 자신 명의의 계좌로 이체시켜 놓았다면, 이 작품의 장르는 아마도 범죄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며 유럽체제로 편승하면서 벌인 모습은 이와 다르지 않게 보인다. 다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선택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근대화된 경제 시스템과 천황제에 기반한 봉건전인 정치시스템. 전근대와 근대에 걸쳐진 이들의 갈등은 유럽제국과는 또다른 양상으로, 그리고 더 긴급하게 다가왔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았을까.  


 일본의 사회구조는 최상층에서는 가장 고도로 합리화된 독점자본이 우뚝 솟아 있지만, 그 저변에는 봉건시대와 거의 다름이 없는 생산양식을 지닌 영세농과 또한 거의 대부분 가족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가내공업이 서로 비집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최고도의 기술과 가장 원시적인 기술이 중첩적으로 산업구조 속에 병존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봉건적 절대주의의 지배,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의 독점화의 진전이 결코 서로 모순하지 않고서 상호 보완해주는 관계에 있다는 것, 그것이 일본 파시즘 운동에서의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운명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_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 p124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봉건제 - 천황제로 대표되는 - 와의 모순속에서 이 모순이 드러나지 않도록 '밀폐'하려는 일종의 '방편'이 제국주의 침략이었다는 점을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결국 '탈아입구'로 표현되는 일본의 가출은 끊임없는 '과거 부정'과 '과거 지우기' 그러면서도 '과거 수탈'에 근거한 것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용되었던 것이 바로 일본의 '내선일체(內鮮一體)'에 근거한 민족이론이라 여겨진다.


 인간의 총체는 인류가 아닌가. 민족은 부분이다. 인간의 비극은 인류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도 인류의 비극이다. 개인이건 민족이건 생존을 저해하고 압박하는 것은 죄악이며, 근본적으로 부조리다.(p661)... 흔히들 국가와 국가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엔 휴머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하지. 그 말은 국가나 민족을 업고서 저지르는 도둑질이나 살인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과도 통한다. 하여 사람들은 얼굴없는 하수인, 동물적인 광란에도 수치심 죄의식이 없게 된다. 군중은 강력하지만 군중 속의 개인들은 무책임하고 방종하다. 권력이 그것을 조종할 때 권력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 포악한 속성을 식지(食指)가 움직이는 곳으로 풀어주고 사냥해온 물소의 고기 한 점 던져주면서 국수주의의, 애국 애족의 이리를 만드는 거지. _ 박경리, <토지 13> , p663/724


 다른 한 편으로 '내선일체'의 민족주의 속에서 어네스트 겔너(Ernest Gellner, 1925~1995)의 민족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내지(內地)의 근대화를 위한 사상기반으로 중심부-주변부를 아우룰 수 있는 사상 기반으로 '내선일체'가 이후 조선어 사용 금지 정책 등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생각하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겔너의 민족주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한 스미스(Anthony D. Smith, 1939~ )의 민족주의는 과거 전통과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일종을 민족주의라는 점에서 결을 조금 달리한다. 겔너와 스미스의 민족주의 차이는 거칠게 일본 제국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독립투쟁의 민족주의의 차이로 여겨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넘기자.


 겔너에게 민족주의는 근대 산업사회의 문화이다. 즉 서구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성공한 근대화가 마치 해일과도 같이 전 지구를 불균등하게 휩쓰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민족주의이고, 그 민족주의의 핵심 내용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언어문화(linguistic culture)로 설명된다....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이전에는 저급한 문화들(low cultures)이 주민의 다수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주민 전체의 삶을 차지하고 있던 사회에 고급문화(a high culture)를 전반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주선하고 국가교육기관이 감독하는 이디엄(idiom, 언어)의 확산, 즉 상당히 정확한 관료제적,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조건에 맞게 기호 체계화된 이디엄의 전반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_ 김인중, <민족주의와 역사> , p749/927


 이번 주 <토지> 독서 챌린지를 통해 가정의 속박을 거부한 근대화 시대의 두 여성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정을 욕망을 밀폐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방편이라고 본다면 비근대적인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과거 전통을 떨쳐버리고 근대화를 향한 일본의 제국주의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부정과 새로운 곳으로의 나아감. 이것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명희와 노라, 그리고 탈아입구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ps. 내부의 모순을 밖으로 표출하려는 일본의 다음 시선이 만주(滿州)로 향할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일전쟁(中日戰爭) 때 함께 다루는 것으로 계획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일본은 지급 급해 있거든, 중국이 통일되어 물론 아직은 국공 간의 도저히 용해될 수 없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일단은 내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은 일본에 비하여 두말할 것도 없이 대국 아닌가. 공포지. 특히 공산당의 집권을 무서워한 것은 바로 시장을 잃는다, 그것과 직결이 되는데 그럴 경우 일본은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어 순식간에 쭈그러들어. 해서 그들은 만주를 두고 염치 좋게 일본의 생명선(生命線)이라 외쳐대는데 그들의 현실이 그런 것만은 사실이거든, 초조해하고 서둘러대는 건 조금도 무리가 아니야. _ 박경리, <토지 13> , p574/724


  1904~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러시아를 대체하여 이 지역의 지배적 외세가 되어 특히 1910년 조선의 합병 뒤, 그리고 1차대전 중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파워의 공백에서 이권과 영향을 증대시켰다.(p104)... 농업은 1898년과 1908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한 인구의 요구로, 그리고 대두 수출의 지속적인 수요로 촉진되었다. 20세기 초 만주 수출의 80%나 차지한 대두(大豆)와 그 추출물들은 세계 대두생산의 59%를 점하며, 1920년대 말까지 계속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대체로 수출지역이 일본이었지만, 후일 유럽의 축산 사료시장도 확보했다... 만주 경제의 성장으로 이 지역에 대한 중국 본토와 일본의 이권들도 증대되었다. 1903년에서 1928년까지 만주의 대 중국 무역은 3.5%에서 32.5%로 늘었지만, 상당량의 것은 일본 무역이었다. 1931년에 여전히 만주는 주로 농업경제였지만, 소비재 생산을 위한 공업생산의 성장도 있었다. _ 프래신짓트 두아라, <주권과 순수성>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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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1-16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세요.
토지가 총 22권이라고 하던데
절반 넘으셨습니다.
정말 대단하고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01-16 20: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 혼자 읽으면 도중에 그만둘 듯하여 독서챌린지에 참여하여 하드캐리 당하다보니 밀려밀려 여까지 왔네요 ^^:)
 

 의병장의 목을 쳤을 때 흐르는 그 끈끈적한 피를 당신들 벚꽃이나 하라키리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한일합병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결하였소. 특히 늙은 유생들은 목매어 죽고 절식해 죽고 우물에 빠져 죽고 당신들이 볼 적에 결코 아름다운 죽음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그것에는, 네, 죽음의 참뜻이 있다고 나는 보는 거요. 죽움이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것, 끔찍하고 추악한 것, 당신은 영혼 속의 신성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리얼리스트라는 말을 했었소. 그러나 재차 말하거니와 죽음은 꽃이 아니며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바로 현실, 주어진 현실을 넘어가는 일이오. _ 박경리, <토지 13> , p264/714


 <토지 13>에서 조찬하는 일본과 조선의 문화 차이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보여준다. 조찬하가 바라본 양국의 문화 차이는 그 지리적 거리보다 멀었다. 낭만주의적인 일본문화와 현실적인 조선문화. 서로 다른  양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조찬하는 여러 예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일본과 조선의 관점 차이는 정신세계의 차이를 대표한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는 공통적으로 할복(割腹)으로 표현되는 죽음의 모습에서 일본인들의 특징을 발견하는데, 특히 이나조의 <무사도>에서는 할복을 통해 명예를 지키려는 사무라이들의 낭만주의적인 죽음이 그려진다. 죽음의 미학이다.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 시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자살이 이름에 대한 기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 방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p317)... 무사에게 하라키리(服切)가 허락되는 것은, 죄를 추궁당하여 명예가 떨어진 프로이센 장교에게 때때로 비밀리에 권총 자살이 허락되는 것과 같다. 일본의 사무라이도 마찬가지로, 그런 사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단지 수단의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_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 p319/590


 독자 여러분은 이제 할복이 단순히 목숨을 끊는 행위가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할복은 법률과 예법상의 제도였다.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 그것은 무사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잘못을 바로잡고, 수치심을 벗고, 친구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이 법률 상의 처벌로서 명령되었을 때는 장중한 의식 속에서 집행되었다. 할복은 세련된 자살 방식이어서 냉정한 감정과 침착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실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복은 특히 무사에게만 어울리는 법도였다. _ 니토베 이나조, <일본의 무사도> , p141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자신의 더럽혀진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할복을 사용했고,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의 힘이 떨어져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자결(自決)을 선택했다. 때문에, 아름다움보다는 안타까움을 주위에 남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주변을 일깨우려는 마음이 찬하가 말한 리얼리스트의 죽음이 아닐까.


 전자의 죽음이 주변으로부터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죽음이라면, 후자의 죽음은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닌 현실을 넘으려는 마지막 노력일 것이다. 이러한 선비 정신은 <매천야록 梅泉野錄>의 저자 황현(黃玹, 1855~1910)이 남긴 절명시(絶命詩)에 잘 드러난다.


융희 4년 8월 3일에 군청에서 마을로 합방령이 반포되자 진사 황현은 그날 밤 아편을 먹고 이튿날 운명했다. 시 네 수를 남겼다. 


亂離滾到白頭年(난리곤도백두년)

幾合捐生却末然(기합연생각말연)

今日眞成無可奈(금일진성무가내)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흰머리가 되기까지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했지만 여태 그러지 못했구나

오늘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어

가물거리는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妖氣掩翳帝星移(요기엄예제성이)

九闕沈沈晝漏遲(구궐침침주루지)

詔勅從今無復有(조칙종금무부유)

琳琅一紙淚千絲(임랑일지루천사)


요사스런 기운이 가려 임금별 자리를 옮기니

구중궁궐 침침해져 햇살도 더디 드네

조칙도 이제는 다시 있을 수 없어

구슬 같은 눈물이 종이 가닥을 모두 적시네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 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會無支廈半椽功(회무지하반연공)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부시충)

止竟僅能追尹穀(지경근능추윤곡)

當時愧不躡陳東(당시괴불섭진동)


내 일찍이 나라를 버티는 데 서까래 하나 놓은 공도 없으니

겨우 인(仁)을 이루었을 뿐 충(忠)을 이루진 못했구나

겨우 윤곡(尹穀)을 따른 데서 그칠 뿐

진동(陳東을 못 넘어선 게 부끄럽기만 하구나 _ 황 현, <매천야록> , p458


<토지 13>에서 조찬하는 일본문화와 조선문화의 차이를 계속 설명해 나간다. 직선의 일본문화와 곡선의 조선문화. 이러한 정신이 표현된 건물들의 차이 등. 조찬하가 내린 일본에 대한 평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瓷器)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게 남는 것은 찬하의 대화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선의 피조물, 사람 손에 의한 피조물엔 생명감이 넘쳐 있고 생명체를 보다 많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이 완벽하다는 것은 살아 있다, 즉 생명이 있다는 얘깁니다. 청자나 백자 특히 백자 항아리는 빛깔과 선의 융합에서 생동하기도 하고 정밀(靜謐)을 느끼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살아 있다는 것, 생명력 그것을 자로 재어보고 가루를 내어 분석하고 해보았자, 사람을 놓고 해부해보아도 사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결론과 마찬가지, 결국 생명은 무엇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런 창조의 능력은 조물주에 접근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보아야겠습니다. _ 박경리, <토지 13> , p248/596


 정동주의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은 조선 막사발이 일본에서 이도차완(井戶茶碗))으로 다이묘(大名)들의 최고급 사치품으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조선 서민이 사용했던 그릇으로 알려진 막사발이 사실은 절에서 사용되던 식기였으며, 그 안에는 깊은 신앙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은 알려준다. 깊은 신앙심과 경건한 마음을 담은 그릇인 조선 막사발과 이를 자신들의 허영과 권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일본영주들의 이도차완. 막사발과 이도차완이라는 같은 자기의 다른 용도는 조선과 일본의 문화 차이를 현실에서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일본 무사들에게 16세기는 권력과 조직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 번영의 세기였다. 새로운 힘의 원천은 차문화(茶文化)에서 비롯되었다. 시대적 조류로서 일본 사회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차문화를 바라보던 무사들은 차문화가 지닌 새롭고 놀라운 많은 가능성들을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p35)... 이도차완(井戶茶碗)과 농차(濃茶)가 무사계급의 차문화를 이끄는 두 축으로 자리잡은 것은 센노 리큐에 의해 집대성된 와비차의 영향이었다. 와비차는 외면의 겉치레와 탐욕적인 광채, 권위적인 넓고 큰 공간보다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내면화와 고용한 정신세계를 중시했다. 화려한 것을 억제하고 물질적, 향락적으로 변질되려는 일본 차도를 혁신시켰다. 부족함과 진중함, 청순함과 질박함을 존중하는 차도였다. _ 정동주,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 p39


 이도차완은 오랜 연원을 지닌 승려들의 법물(法物)로서 만다라의 법에 따라 제작된 불교미술품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속의 생활잡기가 아니다. 이도차완은 조선시대 어느 수행자의 기도로 빚어진 만다라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스승, 위대한 스승 석가모니의 마음에 닿고자 하는 불멸의 존경심이 빚어낸 작품이다. 가마의 불 속에서 그려진 흙의 마음이자 흙 속에서 걸어나온 부처의 미소다. 연원과 외양, 색깔과 그 분위기.....  이도차완을 둘러싼 모든 정황은 그것이 절간의 발우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_ 정동주,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 p267 


 조찬하의 분석처럼 오랜 정신세계의 풍요로움이 조선의 근대화를 늦췄고, 결핍이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겨 물질세계에서 일본이 조선을 앞섰다면, 이후 전개되는 역사에서 조찬하는 물질문명의 역전된 결핍과 잉여의 관계는 다시 뒤집을 수 있다고 보았을까. 아쉽게도 <토지13>에서는 더 이상의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정신문명의 결핍이 가져온 물질문명의 한계가 얼마나 명확한 것인가를 일본의 사례 속에서 발견하기에, 조찬하의 말이 더 깊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일본 민족의 단순성은 그 단순함 때문에 색채에 있어서나 선에 있어서 선이라기보다 선이 행방불명된 개칠의 상태인데 단순함에서 오는 욕구일까요? 조선 민족의 복잡성 그것 때문에 반대로 색채나 선에 있어서 대담한 생략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생략이란 근원을 찾아서 불필요한 것을 쳐내버린다 그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생명을 찾는다는 것이지요.(p250)... 복잡하면 쳐내고 단순하면 덧붙인다는, ...... 바꾸어서 말하자면 결핍과 잉여상태, 저는 얘기의 결론을 지어야겠습니다. 결핍이 오늘 일본을 강국으로 만들었고 잉여상태로 하여 조선은 망했다. _ 박경리, <토지 13> , p251/596


 당신네 군국주의는 로맨티시즘으로 무장돼 있소. 로맨티시즘은 허윕니다. 당신의 천황이 현인신(現人神)인 것처럼. _ 박경리, <토지 13> , p26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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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 없는 꿈, 아니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막연한 예감 때문에 들뜨고 미치는지 모른다. 사실  희망이나  기대같은 것도 그게 무엇을 향한 것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상태라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독립되리라는  희망, 더더구나 좋은 세월이 와서 볏섬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것이 아니다. 현재가 견디기 어려우니 희망에 매달릴 수 밖에 없고  생존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희망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가난한 자여, 핍박받고 버림받은 자여, 희망은 그대들의 것이며 신도 그대들을 위해 있다니, 희망의 무지개는  저 하늘과 하늘 사이에 걸리는 것, 그것은 미래인 것이다. (p133/853)

《토지13》에는 절망 끝자락에서 희망을 쥐어야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이가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연초를 맞아 가족과 함께 한 여행에서 본 깊은 밤 빛의 아름다움은 ‘절망 속의 희망‘이 아닌 ‘기대 위의 놀라움‘ 이었습니다. 새해가 조금 지났지만, 올 한 해 우리 모두의 희망이 이같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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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2022-01-04 08:21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토지 21권 분량이 많아서 그렇지 한번 시작하면 책을 놓을수 없죠. ˝생존을 포기할수 없으니 희망을 포기할수 없다˝ 오늘의 경구네요. 어느 토지인지 아름답습니다. 다만, 나무도 밤엔 잠을 자야 하는데 ㅎㅎ

겨울호랑이 2022-01-04 13:49   좋아요 8 | URL
대장정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나무의 야근은 미처 생각 못 했네요... 아름다움 뒷면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음을 대장정님의 글로 배워갑니다 ^^:)

오거서 2022-01-04 12: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새해 메시지가 감동적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2-01-04 13:23   좋아요 4 | URL
오거서님 감사합니다. 멋진 2022년 첫 주 되세요!^^:)

거리의화가 2022-01-04 14: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저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합니다.
좋은 메시지 주셔서 감사해요.

겨울호랑이 2022-01-04 14:31   좋아요 4 | URL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감당할 수 없는 크나큰 행운보다 소소한 행복이 주변에 가득한 한 해가 되길 저 또한 소망합니다^^:)

바람돌이 2022-01-04 16: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우 겨울호랑이님은 새해 인사도 멋지게 하시는군요
기대 위의 놀라운이라 이런 멋진 표현은 잘 기억하고 있다가 꼭 써먹어야죠. ㅎㅎ

겨울호랑이 2022-01-04 22: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새해에 멋진 곳을 간 덕을 봤습니다. 바람돌이님 평안한 밤 되세요! ^^:)

mini74 2022-01-04 1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대 위의 놀라움과 나무의 야근. 넘 멋지네요.

겨울호랑이 2022-01-04 22:24   좋아요 1 | URL
미니님께서 멋지게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1-04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문장은 피를 토하는 듯 하다는 생각을 해요.

겨울호랑이 2022-01-04 22:28   좋아요 2 | URL
《토지》에 담겨 있는 시대의 아픔이 너무도 절절하기에 작품에 불멸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생각을 저 역시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