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親日)을 더 해야겠다, 친일을. 그 말은 확실히 혜관을 감동시킨 것이다. 용정촌에 군자금을 보낸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위장을 한다는 뜻인 것은 물론이지만 그 말은 서희의 괴로움, 서희의 갈등, 서희의 냉정, 서희의 총명을 웅변해주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9> , p296/580


 <토지 9>에서는 진주로 돌아온 서희의 복수가 성공을 거두고, 조준구는 오천 원의 돈을 받아들고 평사리의 집을 넘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로써 어린 시절 평사리에서 쫓겨나 간도로 내몰렸던 서희는 오랜 기간 기다렸던 가문의 복수를 해치웠다. 그러나, 조준구는 너무 무력하게 무너졌기에 서희는 시원함보다 오히려 허무함을 안고 만다. 간도에서 살 적부터 오랜 기간 공양과 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던 서희. 복수의 끝에 조준구에게 오천 원을 주고 평사리 집과 허무함을 받은 서희는 이제 그 칼 끝을 조준구가 아닌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길상에게돌린다. 


 '구경(究竟)열반한들 그것이 무엇이랴. 석가여래께서 입멸(入滅)하셨을 적에 많은 성문(聲聞)들은 어찌하여 울었더란 말이냐. 죽음이기 때문일 것이며, 다시 만나볼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일 것이며....형체가 있고서야 마음을 보지 아니하겠는가. 마음 없는 형체는 물건이요, 형체 없는 마음은 실재가 아니지 아니한가. 목숨이 오고 가고, 오고 갔을 뿐인데 육도윤회라 하는가. 윤회는 무엇이냐. 내가 모르는 윤회는 없는 것이며 내 목숨 간 곳을 모른다면 그것은 내 목숨이 아니지 아니한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아아-어느 곳에도 실성(實性)은 없느니. 사멸전변(死滅轉變), 내가 없도다!' 불교적 비애, 근원적인 허무의 강을 서희의 생각은 떠내려간다. 가다가, 가다가 자맥질을 한다. '어째서 오천 원을 던져주었을까?' (p336)...  용정촌을 떠나올 때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던 길상의 얼굴이 눈앞을 지나간다. 조준구와의 어이없는 끝장의 원인이 거기 있는 것을 서희는 깨닫는다. _ 박경리, <토지 9> , p338/580


 다만, 조준구에게 대한 복수가 차가운 냉정함으로 이루어진 복수라면, 길상에 대한 복수는 자신과 아이들을 저버린 것에 대한 뜨거운 감정으로 행해질 복수다.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을 버린 남편 길상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군자금 원조라면, 이를 감추기 위한 친일은 복수다. 이러한 서희의 선택이 길상이 아닌 제3자인 혜관 스님에게는 냉정함과 총명함으로 보였겠지만, 분명 그 날카로움은 길상의 가슴 깊이 꽂혔으리라.


 '나는 독립운동가의 아내는 아니야. 친일파 최서희, 내게는 아직 친일파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 자식의 아비요, 내 남편이다.' 서희 얼굴에 핏기가 돈다. 이성으로는 달래볼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십 년 전에 이동진이 군자금을 요청했을 때 거절한 일이 생각난다. 기본적으로 그때 생각과 오늘의 생각엔 별 변화가 없다. 다만 다르다면 그땐 냉정했었고 지금은 감정이 앞서는 차이점이다. 그리고 또 그때 이성은 편협했지만 지금의 감정은 포용의 폭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서희의 생각은 중단되었다. _ 박경리, <토지 9> , p282/580


 이러한 서희의 선택을 보면서, 그가 떠내려 간 비애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조준구에 대한 복수의 끝에 얻어진 허무의 강으로 들어갔을 때,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인과율(因果律)을 깨닫아 열반(涅槃 nirvana)의 길로 가라는 부처의 말씀을 따르는 대신 길상에 대한 복수를 택한 서희. 그의 선택에 종교적 옳음, 그름을 말하기 전에 그 선택이 양날의 검이 되어 서희에게 가져올 괴로움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나 친척들 사이에는 마땅히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가지지 말라. 얼굴이나 말소리는 화평하고 부드럽게 서로 가져라. 만일 마음속에 남을 미워하는 생각을 두면, 금생에서는 비록 작은 다툼을 할 뿐이라 하더라도, 오는 세상에서는 그것이 큰 원수가 되는 것이다.(p711)...  믿을 수 없는 세상만사를 다 버리고, 몸이 젋었을 때에 부지런히 불법을 듣고 행하여, 죽고 나는 일이 없는 열반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_ 대한불교청년회, <우리말 팔만대장경> <방등경 법문>, p712


 이 세상은 모두 혼란하고 아득하여, 올바른 도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고, 어느 한 사람 믿을 이가 없으므로, 가난한 이와 넉넉한 이와, 귀한 이와 천한 이 할 것 없이, 쓸데없는 일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가슴속에는 무서운 생각만 가득하여, 천지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만 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것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죄의 항아리가 가득차게 되면, 인과의 법칙은 어길 수 없으므로, 이 세상에서 목숨을 마치자 곧 지옥이나 아귀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_ 대한불교청년회, <우리말 팔만대장경> <방등경 법문>, p713


  <토지 9>에는 서희 말고도 허무의 강에서 좌절하고 있는 또 다른 중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이상현(李相鉉)이다. <토지 인물 사전>에는 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상현... 주권을 잃은 나라의 젊은 지식인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한 무력한 지식인에 불과함을 깨닫는 한편, 덕망 있는 혁명가인 아버지 이동진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유학을 떠난다. 서울로 돌아와 3.1운동을 맞지만 지식인으로서의 무력함에 방황하며 서의돈, 임명빈, 유읜성, 선우 일, 선우 신 등 '용렬하고 옹졸한 도령'인 지식인들과 교류한다.. _ 이상진, <토지 인물 사전> , p150/214


 서희가 너무도 갑작스럽게 다가온 복수의 성공에 허무감을 느꼈다면, 이상현은 3.1운동의 환희에서 빠르게 흥분하고 더 빠르게 식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면서 허무함에 빠져든다.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잦아드는 불씨처럼 되어가고 대신 해외로 번져서 한때 저조했던 항일투쟁에 기름을 부었다는 자위도 있었으나 상현은 해외에서 움직이는 뭇 단체나, 기라성같이 많은 독립투사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렇다 해서 상현이 실의의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은 3.1 운동이 성과 없이 끝난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다소 심리적인 영향이야 끼쳤을 테지만 상현은 자기 자신, 이상현이란 한 인간에 절망했다는 것이 옳을 성싶다. _ 박경리, <토지 9>, p35/694


 상현은 자신의 인간됨이 선이 가는 것을 안다. 동시에 맹목적 무조건일 수 없는 자신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꽃같이 떨어져라! 꽃같이 떨어질 충격이 있어야 한다. 서의돈과 함께 군중 속에서 울었다. 밟혀 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체처럼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조선도 고아임을 확인할밖에 없고 상현은 자신도 끈 떨어진 연일 수밖에 없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 비애가 단순할 수 없는 것이다. 비겁한 놈! 유약한 놈! 비애는 다시 멍이 든다. _ 박경리, <토지 9> , p45/694


 3.1 운동 이후 절망하는 이상현의 모습은 당대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 ~ 1924)과 레닌(Vladimir Ilyich Ulyanov, 1870 ~ 1924)입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진 '민족자결주의'란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는 다른 어느 계층보다 지식인들을 흥분시켰지만, 이들이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이라는 현실 속에서 약소국 '대한제국'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더 빨랐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지식인들은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 <3.1운동 100년 2>속 청년 혁명가 양주흡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이상현의 고뇌를 발견한다. 이러한 고뇌는 어디로 향하는가.


 시기는 도래하였으나 어느 곳도 착수할 곳이 없다. 이를 어찌하여야 하는가. 중화민국으로 가려고 여비를 수차례 청구하였으나 회답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좋겠다...


 '혁명'을 스스로 성취하겠다는 이상은 있었지만, 내부 운동에 접속하지 못한 한계와 임시정부 수립이나 파리강화회의 같은 외부에서 전해지는 높은 성취들 앞에서 양주흡은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조급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 조급함을 해소할 현실적 요건을 갖추기는 어려웠다. 양주흡은 독립에 대한 열망과는 별개로 자신이 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양주흡을 비롯해 모두가 그런 처지에 놓여 있었다. 거대한 운동 속에서 어느 개인이 뚜렷한 전망과 정확한 대안을 지녔겠는가. _ 최우석, <3.1운동 100년 2> <청년 양주흡, 혁명을 꿈꾸다>p188/322


 서희의 허무함이 같은 '복수'로 채워지듯, 지식인들의 허무는 자신들의 무력함과 함께 자신이 원래 가졌던 생각을 강화하는 쪽으로 채워진다. <2.8독립선언의 전략성과 영향> 속에서는 유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2.8 독립선언이 독립에 대해 부정적인 '이 달'과 같은 인물을 잠시나마 독립운동의 길로 이끌었다는 내용이 다루어진다. 그렇지만, 이 달과 같은 인물들의 독립투사의 면모는 곧 사라지게 되었고, 이는 1919년 민족대표 33인 다수가 친일의 길을 걸었던 것과도 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그들은 일본제국 내에서 자치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쪽으로 의식 전환을 해 나간다.


 재일 조선인 유학생의 민족운동은 도쿄에 체재하는 일본인을 비록한 동아시아 지식인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 또한 <저팬 애드버타이저>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내에 비해 국제 정세에 관한 지식도 입수하기 쉬웠다.. <2.8 독립선언서>가 윌슨의 사상을 분석해 작성되었다는 것은, 국제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던 조선인 유학생의 민족운동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_ 오노 야스테루, <3.1운동 100년 2> <2.8독립선언의 전략성과 영향>, p70/322


 1917년 동양청년동지회 결성 당시 이달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조선인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했고, 스스로 "일선동화(日鮮同化)"를 제창했다. 그 때문에 조선인 유학생으로부터 "반감을 사"왔다.(p67/322)... 이달이 생각하는 '동양의 평화'는 동양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반(半) 식민지 지배에서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달은 동양청년동지회의 기관지 <혁신시보>에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언론의 자유를 비록한 조선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없애기 위한 "일선동화의 방법"을 고려해달라는 주장을 했다. 즉, 이달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조선인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삼을 뿐, 신아동맹당 같이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상정하지는 않았다._ 오노 야스테루, <3.1운동 100년 2> <2.8독립선언의 전략성과 영향>, p51/322


 그 결과 1930년대 중일전쟁(中日戰爭)과 1940년대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을 통해 일제가 우리에게 강요한 '내선일체(內鮮一體)'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당대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후대에 '친일청산'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게 된다. 다만, 같은 '친일' 이지만, 그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토지>에서도  서희에게 '친일'이 길상에 대한 사랑의 포장이자 복수라는 일시적인 감정의 결과였다면, 이상현으로 표현되는 지식인들의 친일 행적(이상현이 친일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은 절망으로부터 온 신념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전자의 친일이 '감정의 친일', 후자의 친일을 '이성의 친일'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허무함'이 자리한다.


  최서희와 이상현. 상현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이들 의남매는 같은 시기 다른 이유로 허무에 빠지게 된다. 서희는 허무한 복수의 결말로, 상현은 너무도 빨리 식은 3.1운동의 열망과 결론으로. 그 결과 서희와 상현으로 표현되는 지식인들 다수는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친일이라는 불행함으로 가는 여러 길에 공통적으로 '허무함'이 있었음을 이번 주 <토지 9>독서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내선일체(內鮮一體)란 중일전쟁기에서 태평양전쟁기에 걸쳐 조선총독부가 황민화정책과 함께 추진한 전시동원정책의 일환이며, 조선 민족 및 조선 민족 문화를 말살하고 일본 민족으로 <황민화=동화>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중일전쟁기 내선일체론은 조선 자치론이라는 적극적 입장에서 조선 문화 보존이라는 소극적 입장까지 다양한 차이를 내포하면서도 공통적으로 조선적인 것의 고수를 내세우는 '협화적 내선일체론'과, 조선 민족의 완전한 해체, 즉 전면적인 일본과의 동화를 통해 '신일본민족'을 형성하고자 하는 '철저일체'론, 이 두 가지 내선일체론 사이의 논쟁을 기초로 논의되었다. _ 식민지/근대 초극 연구회, <식민지 지식인의 근대 초극론>, p157


 ps. 최서희의 친일과 일제 하 지식인들의 친일을 구별하면서,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말을 떠올린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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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학은 사물이 '시간 변수'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말해주는 공식들을 가지고 이 세상을 설명합니다. 한편 우리는 사물이 '위치 변수'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혹은 '버터 양의 변수'에 따라 리소토의 맛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말해주는 공식을 쓸 수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한편, 버터의 양이나 공간의 위치는 '흐르지 않습니다.' _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 p124/160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1956 ~ )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 Sette brevi lezioni di fisica>는 물리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독자들에게 물리학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시간(time)과 공간(space)을 둘러싼 이론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제기하는 '루프양자중력이론oop Quantum Gravity, LQG)'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글의 내용은 매우 매끄러워서 거의 마찰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그는 매끄럽게 글을 써서 독자들이 거의 열받지 않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면서 자신의 이론을 입증한다. 

 

 마찰은 열을 생산합니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열이 있을 때만 발생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현상은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합니다. _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 p116/160


 블랙홀의 열은 세 가지 언어(양자, 중력, 열역학)으로 쓰인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입니다. 이 비석은 현재 누군가가 자신의 암호를 풀어 정말 시간의 흐름이 무엇인지 말해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_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 p130/160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루프양자중력이론가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해 통합이론을 제시하는 물리학자로서 자신의 이론을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한다. 그의 통합의 범위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인간과 자연'으로 나아간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의 개념은 간단합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공간이 생기 없는 딱딱한 상자가 아니라 무언가 역동적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이 유동성 있는 거대한 연체동물과 같아서 압출이 될 수도, 비틀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양자역학은 모든 종류의 장이 '양자로 이루어지고' 미세한 과립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물리적 공간 역시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_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 p99/160


 루프양자중력이론의 핵심은 공간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무한하게 나누어지지도 않지만 알갱이로, 즉 '공간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원자들의 크기는 원자핵 중에서 가장 작은 원자핵보다 수십, 수천억 배나 작은 아주 미세한 크기입니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은 수학적 형식으로 이러한 '공간 원자'와 원자들의 진화를 정의하는 방정식을 설명합니다. _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 p100/160

 루프양자중력이론에서 공간이 연속적이지 않고 무한하게 나누어지지 않은 알갱이 이듯, 우리 인간들 한 명 한 명이 미세한 '공간'이라고 했을 때, 흐르듯 흐르지 않는 시간은 '자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시간-공간'이 하나이듯, '인간-자연'도 하나라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말하는 저자는 후속작에서 '흐르지 않는 시간'에 대해 말한다.


 우리를 만들고 이글어온 이 자연 속에 있는 동안, 우리가 자연과 문명, 이 두 세상에 양다리를 걸쳐놓고도 또 다른 무엇인가를 얻으려 자연에서 멀어진대도 자연은 웅리를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줄 겁니다.  _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 p152/160


 시공간이 하나라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 BC535 ~ BC475)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잘 들어맞아 보이는 '시간'과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BC 99 ~ BC55)의 '클리나멘 Clinamen'의 '공간'이 같다는 것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것보다 어쩌면 더 실감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가,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모두 '세상'이라는 '전체'에 대한 '부분'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다른 사물들과 똑같이 별 가루로 만들어졌고, 고통 속에 있을 때나 웃을 때나 환희에 차 있을 때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지요.   _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 p152/160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물리학을 따뜻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 ~ 1996)은 물리학 시간에 진도를 멈추고 학생들의 관심거리를 들어주는 선생님이라면, 최무영 교수는 진도를 빼면서도 학생들과 교감하는 스타일이라 느껴진다. 이 둘의 사이 어딘가에 카를로 로벨리가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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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11-04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는 이 책 몇 번을 시도했는지 모를 정도로 지루하더라고요. 대충 아는 이론이라 금방 넘어갈 줄 알았는데 …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이상하게 저는 최근의 유럽 과학이론가들하고는 안 맞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시간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고 싶어서 로벨리책도 도전한 거 였는데 생각만큼 풀리지 않네요!!!!

겨울호랑이 2021-11-04 23:28   좋아요 1 | URL
로벨리의 책이 갖는 장점이 물리학 책임에도 수식 하나 없이 물리학의 핵심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점이라 생각됩니다. 반면, 그 점으로 인해 대중에게 폭넓은 이해를 전해주지만, 기억의집님과 같이 깊이있는 분들의 갈증을 채우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 않나 여겨 집니다. 로벨리 책을 비롯한 여러 저자의 책을 접하시다보면 어느새 원하시는 바를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레이스 2021-11-04 2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벨리 좋아해요!

겨울호랑이 2021-11-05 07:30   좋아요 3 | URL
로벨리는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과학자임을 그레이스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바람돌이 2021-11-05 0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칼 세이건과 최무영, 카를로 로벨리에 대한 정의가 인상적이네요. 물론 저는 저 책들 중 한권도 읽지 않았다는게 부끄러움이고 슬픔이지만 말입니다. ㅠ.ㅠ 겨울호랑이님 날이 추워져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시는건가요? 그래도 감기조심하시고 좋은 글도 계속 써주세요. ^^

겨울호랑이 2021-11-05 07:29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께서 마음내키실 때 읽는 책이 최고의 책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정신없이 바빴는데, 요즘 일들이 마무리되면서 정리할 시간도 함께 생기네요. 바람돌이님께서도 건강에 유의하시고, 항상 감사합니다! ^^:)
 

 최근 대만과 중국 사이에 고조된 갈등은 모두 두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는 대만해협 양안 관계의 지정학적 역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두 번째는 미중 대결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이 깊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 '중국몽'의 모자란 퍼즐조각>


 시간이 조금 지나갔지만, <르몽드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1년 10월호에는 최근 읽은 책과 함께 정리하고 싶은 내용의 기사가 있어 늦게나마 페이퍼로 정리한다. <도해 타이완사>를 읽던 중 마침 10월호에는 '중국-대만' 관련 기사가 떠올라 한번에 정리한다.  10월호 기사에서는 중국-대만의 갈등 요인을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과 '중국이 아닌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현 여당인 민진당(民進黨)의 갈등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정학, 역사적 문제등이 얽혀있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네덜란드와 스페인, 정씨 정권을 거치면서 발전해온 타이완은 17세기 중반 동아시아로 진출한 유럽이 무역과 선교를 펼치는 거점이었습니다. 타이완은 지리적으로 명나라/청나라와 가까웠으며, 네덜란드/스페인 등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필리핀 그리고 일본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즉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항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동아시아 해역의 '사거리'라 할 수 있었습니다. _ 궈팅위 외, <도해 타이완사> , p129/434


 <도해 타이완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섬이라고 생각되어 온 대만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본토, 인도네시아에 근거한 네덜란드, 필리핀에 자리잡은 에스파냐(스페인), 왜구(倭寇)로 알려진 일본 해적들의 각축장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지배를 받던 대만인들의 입장에서는 중국 역시 외세(外勢)에 불과했다. 오랜 기간 중국 가장자리에 있던 낯선 섬 대만이 중심지가 된 것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1887~1975) 정부가 쫓겨오면서부터다. 국민당 정부로부터 대만인들은 중국인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받으면서, '중국인 vs 대만인'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 문제는 '국민당-민진당'의 이념 대립의 문제이기도 했다. 


 중국공산당과의 이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장제스와 국민당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신성한 사명으로 삼는 본질주의적 민족주의에 널리 공감하며, 대만인들에게도 같은 사상을 주입했다. 중국 본토 출신자가 백만 명 이상, 다시 말해 섬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이후 대만이 민주화의 길을 걷는 동안, 어느새 중화민족주의는 새로운 사조와 거센 경쟁에 부딪힌다. 대만은 중국에 일부 문화적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실상 고유의 역사적, 정치적 도정을 지닌 별개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정체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조는 결국 대만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2000년 독립주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결과를 낳았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 '중국몽'의 모자란 퍼즐조각>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현재 야당인 국민당과 그 반대편에 있는 집권 여당인 민진당의 대립은 대만의 국내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었던 미국은 '카리브 해의 쿠바', '지중해의 크레타/키프로스'와 같은 대만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고, 1970년대 중국과 수교를 통해 대만과 단교(斷交)를 하면서도 미국-대만-일본을 잇는 트라이앵글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비밀리에 소수의 미군을 파병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한 방편이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점(点)으로 연결되는 '해양 기지 제국'인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에서 '대륙을 향한 항공모함'인 대만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미국이 타이완을 원조한 배경에는 타이완을 반공(反共) 동맹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타이완이 문화, 교육, 일상생활에서 미국식 삶의 가치를 받아들여 모든 영역에서 미국을 추종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자원에 의존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_ 궈팅위 외, <도해 타이완사> , p385/434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지속되던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이 종료됐다. 마셜 제도 공화국, 미크로네시아연방, 팔라오공화국은 미국과 '자유 연합 협정'을 맺어 주권 국가로 독립하면서도 미군기지용 부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북마리아나 제도는 푸에르토리코와 유사하게 연방에 편입됐다. _ 대니얼 임머바르, <미국, 제국의 연대기> , p403/519


  대만문제가 국민당과 민진당의 정치 대립에서 '미중 갈등'으로 양상이 바뀐 것은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표면화되면서 부터였다. '중국몽(中國夢)'이 추상적인 방향이라면, '일대일로'와 '중국제조 2025'는 구체적 움직임이었다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트럼프 정부와 이에 반격하는 미중간의 대립은 이 지역의 갈등을 가속화시켜 최근에 이르고 있다.


 수십 년간 미국은 중국을 에워싸며 중국이 가는 곳마다 존재했다. 미국은 중국이 원하는 곳마다 와서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않아있는 양상이었다. 중국은 눈길을 주는 모든 곳에서 미국의 존재를 제거해야만 했다. 중국의 핵심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제는 중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중국의 정치체제를 강조하고, 남해의 섬들과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지극히 합법적임을 강력히 선언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_  케리 브라운, <시진핀의 중국몽> , p95/158 


 호르무즈(Hurmuz) 해협과 아라비아 해로부터 말라카(Malaka) 해협을 통과해 중국 남부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Silk Road)의 부활이 '일대일로'의 두 목표 중 하나라 했을 때, 대만은 출발점 취안저우(泉州) 건너편에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지역이라 하겠다.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과 같은 대만에서 강대국들의 경제 이권과 민족주의가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긴장. 그것이 오늘의 대만 문제가 아닐까.


 2019년 7월 9일, 미 의회는 대만에 대해 다목적 전투기 F-16V 66대, M1A2T 에이브람스 전차 108대, 스팅어 대공 미사일 250대, 그 밖에 각종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심지어 대만의 군수 수요에 조금 더 긴급히 대응할 수 있도록 '수요 평가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2020년 11월, 4주간 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대만 남부 쭤잉 해군기지에 미국의 (퇴역 군인이 아닌) 현역 해군이 파견됐다고 대만 해군 참모부는 확인'해줬다. 하지만 미 정부는 중국 전투기에 맞대응할 능력을 지닌 F-35 판매만은 끝내 거부했다. 역내 유일무이한 지정학 균형의 수호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을 관할하는 미국의 은밀한 '대사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에서는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다루어졌다면, 아직 배송받지 못한 11월호에서는 금융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다뤄질 모양이다. 여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는 다 읽고 나서 정리해야겠지만, 마무리 전에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 1910~2003)의 이론으로 미국과 중국의 현재 상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날 미중 대결이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의 표현이라면, 야심차게 출발했던 일대일로의 정체는 새롭게 강국으로 등장한 중국이 공공재(public goods)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들의 자금으로 자국의 자본재를 구입하도록 강제하면서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로 달러 공급을 한 미국만큼의 역할도 수행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의 유목제국들과 공존을 위해 조공무역의 형식으로 평화를 샀던 대국(大國)이 지난날의 중국이었다면, 군사력,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을 압도하려는 오늘날 중국의 야욕이 유라시아의 교류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저물어가지 않으려는 제국과 아직 떠오르지 못한 제국. 이들이 빚는 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핀테크(Fin Tech)를 둘러싼 금융패권 싸움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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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1-11-02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 11월호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니. 확인해봐야겠네요. 안 그래도 이번달에 도해 타이완사를 읽을 계획이라. 연계해서 읽을 포인트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1-02 16:28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 10월호, 11월호의 제목들을 보면서 연재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리의화가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요정 '쉬'와 유령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저승의 지도가 있다는 것이다... 요정과 유령의 중요한 차이는 망자는 땅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이전의 존재인 유령이 되는 반면에 쉬는 근원적이어서 인간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령들은 인간에 근원이 있고, 산 사람의 영혼이나 영으로 죽음을 통해 정화되어 이승 근처를 떠돈다. 한편 요정들은 초자연적 근원을 지니고 있다. 요정과 유령은 구별되지만 망자는 요정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을 가장 주목해야 한다. 망자들이 거처하는 곳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고, 요정의 나라 역시 영혼들의 일시적 거처이다. 영혼들이 죽은 뒤에 가는 장소로서 요정의 나라는 사후의 나라로 조금씩 변해 간다. _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켈트의 여명> , p346/356


 해신 마난난은 인간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난족은 인간 세상과 자기네 영역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다난족의 일원인 모리간은 전사들 - 특히 쿠쿨린 - 의 운명을 내려다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신의 '시'를 떠났다. 삼하인 축제(10월 31일 ~ 11월 1일) 때는 저승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고, 저승 주민들은 자신의 '시'를 떠나 인간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마법으로 혼란을 일으킬 때가 많았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삼하인 축제 때는 집 안에 틀어박혀 문과 창을 꽁꽁 닫아 걸었지만, 그래도 항상 말썽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저승의 남신과 여신들은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요정이 되었고, 켈트족의 삼하인 축제는 할로윈으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_ <여명기의 영웅들 : 켙트신화> , p29


 켈트족 신화에 따르면 저승의 문이 열린다는 10월 31일. 이로 인해 저승의 망자(亡者)들이 세상으로 쏟아져나온다는 이 때, 망자들에게 육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유령 복장을 하며 밤을 지샜다는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할로윈(Halloween).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명절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새 할로윈 복장으로 돌아다니며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서양에서는 켈트 문화권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11월을 위령성월로 보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10월 31일은 사순시기 직전의 사육제(謝肉祭)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서구 문화권과 다른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할로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 낯선 할로윈보다 액운을 쫓기 위해 팥죽을 먹거나 부럼을 깨는 행위, 처용(處容)과 관련된 여러 풍속들이 있음에도 이들은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할로윈'이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잡는 모습은 유령의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유령이 마케팅(marketing)의 이라는 이름으로 행해는 장난.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장난과 이어지는 'trick or treat'이라는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것은 아닐런지.


 근대 소비사회에서는 인간의 행위나 존립이 물질처럼 취급되는 '물화 物化, Rification'를 겪게 되며, 인간은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로 전화 轉化하게 된다.(p637)...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 1903~1969와 막스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1895~1973는 소비자 비평에 관한 한 가장 염세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그 자체를 재생산하기 위한 소비 문화를 만들어내며, 그 결과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그것을 주입받는 수동적인 시민이 양산된다고 주장했다. 장 보드리야르 또한 "소비자란 결국 19세기 초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이고 비조직적인 개인들로, 칭찬받으며 아첨에 속아 넘어가는 얼갈이 같은 존재"라고 조소했다. _ 설혜심, <소비의 역사> , p639/798


 소비는 하나의 신화이다. 현대사회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parole),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말하는 방식, 그것이 소비이다. 말하자면 소비에 관한 유일한 객관적 현실은 소비라고 하는 관념 뿐이다. 이 반성적, 언설적 배치구조가 일상적 언설과 지적 언설에 의해 무한히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상식으로서의 힘을 갖게 되었다. 우리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소비사회로 간주하며, 또 그러한 것으로서 말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들의 사회가 소비를 행하는 경우에는 소비사회로서의 자기규정에 기초를 두고 자신을 그만큼 관념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광고는 이 소비의 관념에 바쳐진 승리의 노래인 것이다. _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p301


 이미 우리가 대량소비의 시대에 살기에 별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시기적으로 한정해 본다면, 최근 몇 년 전부터 자본주의 유령이 10월말부터 출몰하기 시작해서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를 지나 11월 26일 블랙 프라이데이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 직전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활개치고 다닌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함께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 뭐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죽음을 생각하는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의미를 찾거나, 할로윈과 함께 우리 풍속도 생각하고 지키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홍석모는 섣달그믐에 밤을 새는 수세의 풍속이 수경신(守庚申)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았다. 수경신은 경신일에 밤을 새는 풍속으로, 도교에서 유래하였다. 사람의 몸에 있는 삼시충(三尸蟲)이 경신일에 하늘에 올라가 그 사람의 잘잘못을 일러바치므로, 이날 잠을 자지 않으면 하늘로 올라깆 못해 액운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경신은 <고려사>에 보이며, 조선 초기에도 유행하였다. _ 홍석모, <동국세시기> , p236  해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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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0-31 06: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으 정말 할로윈을 왜 챙겨야 하나 싶은데, 애들이 초콜릿사탕 먹는 날이라고 좋아라 하니 점점 일반화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에서도 할로윈파티를 하더라구요;;

겨울호랑이 2021-10-31 08:44   좋아요 4 | URL
그렇습니다... 어린이집, 학원, 놀이공원, 제과점 등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마케팅 열풍에 어린이들이 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아이들의 요구를 부모들이 거절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구요...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의미를 알고, 한계를 정할 수 있다면 생각없는 소비가 아닌 삶의 풍성함을 더하는 소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거서 2021-10-31 1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최근 유행처럼 즐긴다는 할로윈을 죽음과 관련해서 생각하는 것 같지 않고 10대 20대가 기괴한 복장과 함께 흥청망청 무분별한 행동이 용납되는 날처럼 여기는 같아요.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 향락과 소비만 부추기는 것 같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요.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지식이 (plus)1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0-31 11:14   좋아요 3 | URL
네 저 역시 오거서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외국의 문화라고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우리 것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뜻을 새길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가진 뜻을 생각하고 가치가 있을 때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오거서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페크pek0501 2021-10-31 1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비의 사회는 필독서라고 생각해요.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책에서 많이 소개된 걸 봤어요. 그래서 읽은 책 같죠. ㅋ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제가 완독한 책이에요. 완독한 책을 보면 기뻐요.

겨울호랑이 2021-10-31 12:58   좋아요 3 | URL
<소비와 사회>는 보드리야르의 다소 냉소적인 비판이 날카롭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예리한 분석이 빛나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죽음을 소재로 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노교수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책으로 오래 기억에 남네요. 페크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얄라알라 2021-11-17 00:24   좋아요 1 | URL
페크님말씀처럼, 마치 ˝읽은 책 같은˝ <소비의 사회>!

저는 설혜심 교수님 책들은 많이 읽진 않았지만 한국 학계에서 소비사 위상 높이시는 데 큰 기여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K68A1)

 [데모크리토스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것들은 필연(ananke)에 따라 생겨난다. 회오리가 모든것들의 생성의 원인(aitia)이기 때문인데, 그는 그것을 필연(必然)이라고 부른다.(p555)...  심플리키오스(DK68B167) 데모크리토스가 온갖 형태(원자)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왔다(apokrithenai)고 말할 때, 그는 저절로(t'automaton)와 우연(偶然)(tyche)으로부터 그것을 산출해 내는 것 같다. _ 김인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 p559


 우연과 필연은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460 ? ~ 380 ? ) 원자론의 두 주제다. 그리고, <토지>에서도 우연과 필연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토지 2>와 <토지 3>에서는 최치수와 윤씨 부인의 잇달은 죽음이 서희를 낯선 간도로 몰았다면, <토지 8>에서는 '간도댁' 월선의 죽음 이후 서희는 진주로 이주한다. 다만, 앞선 사건이 서희의 간도 이주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면, 후자는 우연적 사건일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에게 모든 물리적 변화는 '필연'이다. 그렇다면, '우연'은 무엇일까.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에 의하면 '우연'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虛狀)에 불과하다. 인간에 의해 우연으로 간주되는 모든 일 안에는 법칙성이 있다는 마르크스의 해석을 따라간다면, 월선의 죽음 역시 단순히 우연적 사태로만은 볼 수 없지 않을까.


 데모크리토스는 현실에 대한 반성 형식으로 필연성을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가 모든 것을 필연성에 돌렸다고 말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는 원자의 소용돌이(Wirbel)를 데모크리토스적 필연성이라고 적고 있다.(p42)... 인간은 스스로 우연이라는 허상(Scheinbild)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 이것은 그들 자신의 혼돈(Ratlosigkeit)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연(Zufall)은 건강한 사유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_ 칼 마르크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 p43 


 월선의 죽음은 이 용과 이 홍, 두 부자(父子)와 홍이 어머니 임이네를 갈라놓는 직접인 계기가 된다. 그리고, 월선 아지매의 죽음으로 상실감에 빠져 있던 길상은 구천(김환)과의 만남을 통해 서희와 이별하고 간도에 남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길상의 결정이 결국 <토지> 완결에 이르기까지 차갑게 식어버린 부부 사이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월선의 죽음은 단순한 한 인물의 퇴장이 아니라, <토지>에서 '간도 시대'의 종결이라 생각된다. (연장성산에서 '평산리 시대'의 종결은 최치수의 죽음이 아닌 윤씨 부인의 죽음이라 여겨진다. 서희는 '최치수의 딸'이기보다는 '윤씨 부인의 손녀'이기에.). 그런 점에서 '월선의 죽음'은 <토지>에 있어 하나의 필연이 아닐까.


 길상은 김환의 외침으로 오히려 자신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는 그 자신을. 그것은 생명의 유한(有限)이다. 죄(罪)에 얽매인 것 아닌 삼라만상, 모든 것은 생명이 있고 또 생명이 없는 유한, 역설이라면 기막힌 역설이겠으나. 어느 시기까지 유지될 안정(安定)일지는 모르지만 길상은 서희와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담백한 상태로 자리잡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죽 끓듯 하는 환의 그 반역의 피조차 돌연 잠들어버린 느낌이다. 왜 이리 고요한가. 고요하게 고요하게 네 개의 발은 내디뎌지고 있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8> , p454/510


 "전 여기 있을 테예요! 아버지 오시면 함께 간단 말입니다."

 "아버진 볼일 보시고 뒤따라 오신다 하지 않았느냐?"

 "거짓말인 것 저는 알아요, 아버지만 내버려두고 가는 거 아닙니까!"

 서희의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된다.

  '오냐! 나 당신 용서하지 않을 테요! 저 어린 것 가슴을 멍들인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테요! 결코, 결코!' _ 박경리, <토지 8> , p492/510


 간도 시대의 종결은 한 인물의 죽음과 함께 한 가족의 헤어짐으로 성징된다. 서희와 길상의 이별이 그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다시 둘로 돌려놓았는가. 그 전에 먼저 <토지인물사전>을 통해 길상과 서희의 삶을 다시 바라본다. 


 

김길상(金吉祥)... 서희의 절대적인 조력자가 된 후, 하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 윤씨부인이 준 정에 대한 보답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 철저하게 물들어가는 서희에 대한 안타까움과 회의를 가지게 된다... 젋은이로서의 욕정에 시달리면서는 서희에 대한 연민과 애정, 주종관계에 의한 갈등, 봉순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에 괴로워한다... 마차사고를 계기로 결국 서희의 결혼 제의를 수락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둔다. 그러나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을 가졌던 서희가 길상에게는 쓸쓸한 아내로만 느껴질 정도로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결국 서희의 귀향에 동행하지 않고 간도에 남아 그곳의 독립운동 조직에 합류하여 신분적 이질감을 극복하려 애쓴다.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명분보다는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선택하려는 그의 의지는 계속적인 갈등으로 남는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p40/214


 최서희(崔西姬)... 조준구에게 복수하고 평사리의 땅을 되찾기 위해, 윤씨부인에게 비밀리에 받은 금괴와 은괴를 자본으로 토지 매입과 장사를 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은다. 이 과정에서 매점매석과 친일도 서슴지 않으며, 이상현의 연모를 거절하고 길상과 신분을 넘어선 결혼을 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얻어 대를 잇는다.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진주에 정착하지만 복수의 허무함에 빠진다... 만주에 남은 남편의 길상의 뜻을 받아들여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등 은밀하게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이를 엄폐하기 위해 최씨 일문의 기반을 다지며 진주지역의 유지로서 일본인들과는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막대한 재력과 미모, 천성적인 위엄, 능란한 일본어 실력과 독서로 다져진 지식, 더욱이 근화방직의 사장 황태수와 사돈이 됨으로써 이런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놓는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p188 /214


 마차 전복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어갈 뻔 했던 이들은 이를 계기로 결혼한다. 다만, 길상이 꾼 귀마동(歸馬洞) 꿈은 이들의 결혼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토지 6> 꿈속의 귀마동) 미루어 생각해 보면, 길상은 어려 고아가 된 서희에 대한 연민을 '마차 사고' 를 통해 죽음(死)과 삶(生)'을 겪으면서, 서희와의 결혼을 운명(運命)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는지. 길상은 '우연'적 상황'을 '인생의 정해진 길/법칙'으로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자신 안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부로 걸어들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본다면, '길상-서희' 결혼을 순간적인 감정이 가져온 우연의 비극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적어도 길상에게 서희라는 인물과의 결혼은 안정된 지위와 부를 가져다 주긴 했지만, 그가 감당하기 무거운 짐이었음을 생각해본다면, 크게 무리는 없으리라 여겨진다. 반면, 서희에게 길상과의 결혼도 같은 의미였을까.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신의 하인과 결혼할 정도로 기존 질서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가문(家)을 위해 나라(國)에 대한 마음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 서희임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잘 드러나지 않는 속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결혼은 여성에게 안정된 지위와 남편의 보호를 보장해 줄 것이다. 최상의 경우라면 재정적인 후원자 겸 다정한 동반자를 얻을 것이다. 한 신심 깊은 목사의 표현에 따르면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동료"가 될 것이다.(p189)... 이 시기(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인들의 결혼관이 유럽 다른 나라들의 결혼관과 달랐던 점은 최선의 결혼이란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_ 매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 p190


 1880년대와 1890년대의 영국에서 여성 문제는 정점에 도달했다. 신문과 잡지의 기사들, 소설과 희곡들, 공적인 연설과 사적인 대화들은 신여성(New Woman)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었다. 신여성의 특징은 높은 교육 수준과 독립성, 가족의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남성과 여성이 지켜야 할 관습적인 영역의 경계들을 무너뜨리려는 성향이다. _ 매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 p403


 여지까지 읽으면서 길상과 서희 모두 전형적인 인물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문장에 담긴 신(身), 가(家), 국(國)에 대한 길상과 서희의 생각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자신의 길을 결정한 길상이 '신(身)'을 선택했다면, 서희는 '가(家)'를 더 중시한다. 이런 점에서 길상은 개인주의자, 서희는 공동체주의자의 면을 보인다. 반면, 독립운동을 하는 길상과 가문을 위해 친일도 서슴지 않지만, 독립운동도 후원하는 서희를 통해 애국지사와 무정부주의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그들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달랐기에 그들의 삶은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면에서 그들의 별거는 필연적인 결과로 생각된다.


 길상은 담배를 붙여 서희를 바라본다. 강한 눈길이었다. 서희는 이같이 강한 길상의 눈을 본 일이 없다. 아니 강한 사나이의 그러한 눈길을 본 일이 없다.

 '나는 너를 소유했지만 넌 나를 소유하지 못할 게야.'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눈 같기도 했었다. 그 강한 눈을 서희는 강하게 받는다. 미동하지 않고 받는다. 그러자 길상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비애의 그림자가 밀려왔고, 희미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비로소 서희는 그 눈에서 자신의 시선을 떨어뜨렸다. 서희는 싸움이라 생각했었지만 그쪽은 그것이 아니었다. _ 박경리, <토지 8> , p475/510


 '월선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가져온 크고 작은 여파는 간도에서 자리잡던 이들의 삶에 크고 작은 풍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풍파 속에서 <토지>안의 또다른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생각하며 '우연과 필연'으로 한 주간의 <토지>독서를 갈무리한다...


PS. '우연'과 '필연'에 대한 해석은 에피쿠로스 해석은 데모크리토스와 정확하게 대척점에 있다. 즉, 필연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것은 우연적으로 생겨나고, 자의에 의존한다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을 들여다 보면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길상과 서희는 서로 사랑했기에, 이러한 '애증(愛憎)'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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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30 14: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토지의 문장, 역시 정말 좋으네요.
전집 읽기 내년엔 시도할까 합니다 ^^
아내의 역사, 는 전부터 담아 두곤 미뤘는데 호랑이님 페이퍼로 다시 보네요. 찜!

겨울호랑이 2021-10-30 14:38   좋아요 3 | URL
대가의 작품이라, 때로는 굵은 붓으로 시대를 담아내는 호방함도, 때로는 가는 붓으로 인물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묘사하는 섬세함도 <토지> 안에 함께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프레이야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