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에 대한 위당 이해의 특징은 <발본색원론>을 해설한 데서 잘 드러난다. 위당은 <발본색원론>에서 쟁탈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발견한다. 바로 '간격(間隔)'과 '감통(感通)'이다. 천고 사태의 변화를 간단히 개괄해서 말하면 '감통'에서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간격'에서 혼란이 생긴다는 것이다. 양명은 <발본색원론>에서 쟁탈의 원인을 '자사(自私)'와 '물욕(物慾)'에서 찾는다. '자사'는 스스로를 사적 존재로 인식하는 사적 자아의식이며, '물욕'은 외부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구다. 양명은 '자사;로 말미암아 너와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물욕'으로 인해 너와 나 사이가 가로막힌다고 본다. '자사'와 '물욕'으로 인해 너와 나 사이에 '간격'이 생기면, 이로부터 대립과 갈등 및 투쟁이 발생한다... 쟁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사'와 '물욕'을 근원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본심 양지가 본래 지니고 있는 감통 기능이 발휘된다. 양명은 본심 양지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괴로움을 자신의 아픔과 괴로움으로 여기는 감통 능력을 지닌 것으로 본다. 이 양지의 감통 기능을 발휘하면 만인이 자기 재능을 실현하고 서로 화락(和樂)하게 지내는 대동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 '감통'과 '간격'은 위당이 인간 사회의 쟁탈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법으로 제시한 두 개의 핵심어다. _ 정인보, <양명학연론>, p29 해제 中


 2021년도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갑니다. 독서의 여정에 마침이 있을 수 없겠지만, 도중에 이정표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작업이라 여겨지네요. 2021년 한 해를 돌아보며 서재 이웃분들의 좋은 글들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항상 저에게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보여주셔서 여러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새로운 책들을 접할 수 있었기에 참 많은 것을 배웠던 한 해 였습니다. 


 

올 한 해를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1893~1950)의 <양명학연론 陽明學演論>으로 마무리를 지어 봅니다. 쟁탈을 해결하기 위한 '자사'와 '물욕'의 근원적 제거와 양지의 회복. 시대상황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위당의 글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감통'과 '간격'을 통한 대동사회로의 지향은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의 두 저작 <도덕감정론>, <국부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분업(分業)을 강조한 스미스의 생각은 자본(資本) 중심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본(人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내년에는 여러 면에서 큰 변화가 있겠지만, 외부에서 '감통'과 '감응'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이들을 꺼낼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인간 문화는, 이를 하나의 전체로 볼 때 인간의 점차적 자기 해방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언어, 예술, 종교, 과학은 이 과정의 다양한 국면이다. 이것들 모두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힘을 발견하고 증명한다. 그것은 인간이 그 자신의 세계, 하나의 '이상적' 세계를 건설하는 힘이다. _ 카시러, <인간이란 무엇인가> , p390


 그러기 위해서는 제 자신에게 더 많은 독서와 성찰이 필요하겠지요. 새해에도 이웃분들과 함께 하는 여정이 되길 희망하며, 이웃분들 모두 원하시는 바 많이 거두시는 2022년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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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2-30 23: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글 덕분에 많이 배운 한해였습니다. 좀 어렵긴 하지만요. 뭐 제 공부가 미천하여서요. ㅎㅎ
겨울호랑이님도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1-12-31 00:04   좋아요 3 | URL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깊이 있는 생각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것이 실력자인데, 얉은 생각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니 참 제 갈 길이 먼 듯합니다. ㅜㅜ 내년에는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바람돌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책읽는나무 2021-12-30 23: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연의도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시길요^^

겨울호랑이 2021-12-31 00:05   좋아요 5 | URL
감사합니다. 연의도 벌써 4학년이 된 것을 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감을 느낍니다. 책읽는나무님께서도 건강한 한 해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cott 2021-12-31 00: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2021년 마지막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딱 👆루만 지나면
드디어 🐯
겨울호랑이 님의 😄해

겨울호랑이 2021-12-31 00:08   좋아요 4 | URL
제가 듣기로는 자신의 띠 해가 기운이 충돌하는 때라 별로 좋지 않다고 하네요... 내년 한 해 호랑이 두 마리가 충돌하지 않고 무탈하게 보내는 한 해가 되길 개인적으로 바라 봅니다. 항상 좋은 소식과 축하해주시는 알라딘의 전령사 scott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햇살과함께 2021-12-31 0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희 둘째가 백호라서 더 반갑네요^^

겨울호랑이 2021-12-31 08:00   좋아요 3 | URL
독서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시는 햇살과함께님으로부터 깊이 배운 한 해였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2-31 00: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알찬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1-12-31 07:57   좋아요 2 | URL
프레이야님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라파엘 2021-12-31 00: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겨울호랑이 2021-12-31 08:02   좋아요 3 | URL
라파엘님 감사합니다. 라파엘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한 해 되세요! ^^:)

오거서 2021-12-31 00: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새해에도 여전히 건강하셔야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2-31 08:01   좋아요 3 | URL
올 해 서재에서 가장 반가운 일 중 하나는 오거서님의 귀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올해처럼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거서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mini74 2021-12-31 00: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올 한해 겨울호랑이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도 가족분들 귀여운 연의 예쁜 냥이와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겨울호랑이 2021-12-31 08:03   좋아요 3 | URL
서재활동 뿐 아니라 북튜버로서 2021년이 미니님께는 의미있는 한 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넬로페 2021-12-31 00: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언제나 깊고 풍성한 겨울호랑이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1-12-31 08:07   좋아요 4 | URL
많은 글을 올리시지는 않지만, 페넬로페님께서 올리시는 글을 읽으면 잘 정리정돈 된 한 상 차림을 받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bookholic 2021-12-31 07: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올해도 범접할 수 없는 깊이있는 글들 고마웠습니다.^^ 남은 2021년 마지막 하루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1-12-31 08:09   좋아요 3 | URL
boolholic님의 자녀분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제가 서재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한결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새해에도 bookholic님과 함께 서재활동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그레이스 2021-12-31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항상 감동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1-12-31 12:02   좋아요 2 | URL
부족한 글에 항상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레이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1-12-31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
정말 한 해 마지막 날입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1-12-31 14:56   좋아요 2 | URL
항상 꾸준하게 서재를 지켜주고 계신 북다이제스터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자극을 받아 더 많이 알아갑니다. 덕분에 2021년에도 서재활동을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리며, 저 역시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s. 데이비드 흄과 노동가치론은 정리한다고 해놓고 내년으로 과제이월하게 되었네요ㅜㅜ

북다이제스터 2021-12-31 14:59   좋아요 2 | URL
내년 제 BTS인 데이비드 흄에 대한 좋은 평가와 글 부탁드립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21-12-31 15:05   좋아요 2 | URL
제가 감히 흄의 사상을 평가할 수준은 못되고, 다만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내년에도 읽을 책이 참 많네요^^:)
 

 충격적인 공포다. 앞으로 십 년이라니, 죽음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방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공포, 새까만 죽음의 심연, 죽음이라는 것, 악취 때문에 염도 제대로 못했다는 말이 비로소 자신의 죽음과 결부되어 되살아난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홍씨의 악령 때문에 무서웠지만 지금은 자신의 죽음 자체와 밀착되어 몸이 떨려오는 것이다. 조준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다. 가슴이 뛰고 끈적끈적한 땀이 전신에 흐른다. _ 박경리, <토지 12> , p338/590


 지난 7월1일부터 시작했던 토지독서챌린지. 연말이면 전체 일정의 60% 정도 지나게 된다. 토지 3부 4권(12권)을 마무리지으며 가장 인상 깊은 장면/대목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삶에의 의지', '생명(生命)의 약동'이라 여겨진다. 12권 이전에는 '삶'에 대비되는 '죽음' 이 인물의 퇴장 - 월선, 최치수 등 - 과 한 인물의 의지를 보여주는 도구 - 구천, 금녀 등 - 로 비장하게 묘사되었던 반면, 삶에 대한 내용은 그렇게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설사 그려졌다 해도 임이네의 억척스러운 면으로 나타났기에 '죽음'에 비해 '삶'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렇지만, 3부 4권에서는 산 자들의 고뇌와 처절한 몸부림이 잘 묘사되면서 '죽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삶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조준구, 홍이, 명희가 각자 직면한 현실과 이를 넘기 위한 이들의 노력. 이러한 묘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의 엘랑 비탈(elan vital 생명의 약동)을 떠올리게 된다.


 불구자로서의 번민이나 부모가 자식에게 가한 수모, 천지간에 맘도 몸도 기댈 수 없었던 처절한 고독, 그것은 병수 자신을 위한 목마름이었지만 그 목마름 같은 것을 누르고도 남을 크나큰 고통은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이었다. 부모의 큰 죄는 바로 자신의 죄요, 부모의 악업으로 얻은 재물로 자신이 연명되고 있다는 그 뼈를 깎는 고통, 더러운 곡식을 아니 먹으려고 수없이 기도했던 자살, 그러나 생명에의 집착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포기하였고 더러운 물 더러운 곡기를 미친 듯 빨아당기지 아니했던가. 병수는 죽지 못하는 치욕 때문에 미쳐 날뛰었다. _ 박경리, <토지 12> , p346/590


 아우성이다. 부서지는 파도다. 격렬한 감정이 출구를 찾듯 아우성이다. 그러나 이상현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다. 조용하에 대한 증오도 아니었다. 자신의 생명, 생명의 불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기나긴 숨결, 부패의 늪에서 몸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2> , p420/590


 삶을 이어가려는 자신의 본능과는 달리 자신을 조여오는 주위 환경. 자신을 위협하며 조여오는 자연/사회의 위협에 대응하여 살기 위해 생명체들은 힘(에너지)를 쌓고 마치 연어가 거센 물살을 거스르며 상류로 올라가듯 흐름에 역행한다. 열역학 법칙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며 살아있음을 존재하는 연어의 움직임은 <토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악인(惡人) 조준구의 행동도 그의 독백을 통해 우리에게 개연성있는 행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생명의 약동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가 말하는 생명의 약동은 요컨대 창조의 요구로 이루어진다. 그 약동은 절대적인 방식으로 창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물질을, 즉 자신과 반대되는 운동을 목전에서 만나기 때문이다.(p375)...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 전체는 그 본질적인 점에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다음에는 그것을 유연하고 변형가능한 관(管) 속에 풀어 놓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 관들의 끝에서 생명은 무한히 다양한 일들을 수행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약동(엘랑 비탈)이 물질을 관통하면서 단번에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p379)... 종 種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로부터 자연이라는 무대에서 무수한 투쟁이 유래한다. 또한 놀랍고도 충격적인 부조화도 거기서 유래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 생명 원리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_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 p380


  주변 환경과 인물들간의 갈등. 그리고 이로부터 드러나는 생명의 모습.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다소 대립되는 입장에 서 있는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와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의 내용을 거칠게나마 조합해보자면 인물들 주위환경은 엔트로피(entropy)법칙과 같은 자연 법칙이 지배하는 반면,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이와 무관하게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토지>안에서는 최참판 댁의 자산을 탐하는 조준구의 욕망도,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기대했던 명희의 속내도 이러한 갈등의 결과가 아니었을런지.  


 

 현재의 모든 사건에서 그러한 것처럼 태초로부터 모든 작용력들이 여러 힘으로 분해되어 영속적으로 더욱 복잡성을 창출한다는 것도 예상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복잡성의 증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진보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인간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유익한 필수과정이다._ 허버트 스펜서, <진보의 법칙과 원인>, p90


 엄청나게 다양한 본성들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 사이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타고난 욕망을 지닌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안녕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고 싶어 한다... 모든 인간은 외부 자연 상태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인 '생명의 욕구', 즉 끝없이 만족을 갈구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인 경향이 사회 내부에서 자유롭게 발휘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는 그 사회를 파괴하는 확실한 동인이 된다. _ 토마스 헉슬리, <진화와 윤리> , P 40/173


 스펜서와 헉슬리의 이러한 일부 가정들은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서 대략적으로 합류(合流)되는 느낌을 받는다. 생명 진화 자체는 법칙으로 작용하지만, 생명체는 우연성이 작용한다는 베르그송의 논리를 통해 일제하 식민시대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저마다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생명의 약동을 <토지>의 인물들을 통해확인하며 2021년 토지 독서 챌리지 마지막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단일성과 다수성은 무기물질의 범주들이며 생명의 약동은 순수한 단일성도 다수성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생명의 약동이 물질에 전달되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되어도 그 선택은 결코 결정적인 것이 아니리라는 것이다. 약동은 전자에서 후자로 무한히 도약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성과 연합이라는 두 방향으로 진행되는 생명의 진화는 전혀 우연적인 요인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생명의 본질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다 (P388)... 사실상 생명체는 행동의 중심이다. 그것은 세계 안에 도입되는 일정량의 우연성 contingence, 즉 일정량의 가능적 행동이다. 그 양은 개체들에 따라 특히 종들에 따라 변화 가능하다. _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 P390


ps. 개인적으로 '엘랑비탈'을 느낄 때는 아침에 휴대폰 알람 소리를 들을 때가 아닐까 싶다. 침대에서 더 늦게까지 자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먹고 살기 위해 눈을 뜨는 행동은 이에 반(反)하는 생명의 약동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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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크리스마스 철은, 그 이름을 준 그분에 대한 당연한 존경심과 상관없이도, 그게 상관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쳐도, 늘 좋은 절기라고 생각했어요. 분명히, 친절, 용서, 나눔, 즐거움의 절기이고, 1년 긴 시간 중에서 남녀 모두 꽉꽉 닫힌 마음들을 자유롭게 열어놓겠다고 합의하는 때이고,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랑 똑같이 무덤을 향해 가고 있는 여행 동반자로 생각하지, 무슨 별개의 여행을 따로 하는 별종들로 생각하지 않는 절기니까요.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 p157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을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크리스마스 캐롤 A Christmas Carol>에서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을 매년 읽을 때마다 갖게 된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책이 되었다면, 이 책은 디킨스에게 '빈민의 대변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도 의미있는 책이었을 것이다. 

 

디킨스의 관심사는 당시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잇었으므로, 사회적 격분을 터뜨려서 디킨스가 금전적으로 손해본 것은 없었다. 디킨스가 영국식 크리스마스를 고안했다는 건 과장이지만, <크리스마스 캐롤>(1843)의 엄청난 성공으로 디킨스는 점잖은 빈민들의 대중적인 대변인이 되었다. _ 도널드 서순, <유럽문화사 2> , p189/505


 세계적인 명절인 동지(冬至)에서 유래한 크리스마스가 오늘날에는 마케팅과 결합되어 오늘날 의미가 다소 변질된 부분이 있지만, 크리스마스를 통해 문학, 음악 등 여러 예술이 꽃피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출판물과 공연물이 예술가들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가 되었을 것이고, 대중들에게는 한 해를 예술과 함께 정리할 기회가 되었을 테니까.


  19세기 초에는 생산이 아직 산업화되지 않았고, 소비모형은 여전히 귀족적이었다. 본격적인 부르주아 소비주의는 아직 자신의 에토스를 찾지 못했다. 19세기가 흘러가면서 몇몇 선진국에는 축하카드, 크리스마스의 상업화, 윈도쇼핑, 광고 같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소비사회의 측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800년에는 부모 가운데 자녀에게 장난감을 사준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00년에는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_ 도널드 서순, <유럽문화사 1> , p41/524


 부유한 계급들에서는 생일, 영명축일, 첫 영성체, 크리스마스, 학교의 상품 수여 같은 어린이를 위한 축하행사가 발달하면서 책처럼 도덕적으로 유익한 선물을 줄 기회가 많아졌다. 더욱이 책은 확실한 사치품이었으므로 두 배로 의미가 있었다. _ 도널드 서순, <유럽문화사 2> , p226/505 


 산타 클로스 역시 코카콜라 마케팅 활동의 결과물임을 알고 나면, 다소 씁쓸함이 생기기도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생각하면 자본주의 마케팅을 비판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알면서 모르는 척 속아 넘어가주기 정도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산타 할아버지가 돌아다닐 시간에 뒤늦게 이웃분들께 크리스마스 인사 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PS. 개인적으로는 전혀 뜻밖의 '박근혜 사면'이라는 크리스마스를 받고 다소 놀라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사면의 배경과 파장 등에 대해서는 이미 전문가들이 충분히 전달하고 있으니 말을 아끼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1449년에 명나라 정통제(正統帝)가 오이라트의 에센에게 사로잡힌 토목의 변(土木之變)과 1457년 풀려난 정통제가 이복동생인 경태제(景泰帝)를 폐위시킨 탈문의 변(奪門之變)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유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


 영락제(明成祖 永樂帝, 1360~1424) 이후 세 번째 황제인 주기진 朱祁鎭(정통제)은 영락제의 증손자로 1435년 8세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다... 몽골 세력의 재규합에 성공한 에센(몽골의 오이라트족의 수장)은 세 방면에서 북중국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주기진은 이복형제 성왕 郕王 주기옥 朱祁鈺을 북경에 남겨놓은 채 '명의 가장 치명적인 군사적 실패'라고 불리는 원정을 감행했다. 몇 주일이 지나면서 사태는 악화되었다. 내부 장성과 외부 장성 사이의 역참인 토목 土木 부근에서 황제의 수행원들이 에센에게 사로잡히고 황제가 황급히 수도로 되돌아가야 할 상황이 전개될 때까지 명의 군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에센과 협상을 거부했던 명의 군대는 모두 몰살당했고 모든 장군의 시체가 완전히 소각되기에 이르렀다. 1449년 9월 3일 정통제는 포로로 붙잡혔다... 정통제가 사로잡힌 지 20일 만에 주기옥이 경태제로 황위에 오르는 대신 정통제의 갓난아기를 황태자로 세웠다. 1449년은 정통 14년으로 기록되었지만, 1450년은 경태 원년 景泰 元年이 되었다. _ 티모시 브룩, <하버드 중국사 원, 명 : 곤경에 빠진 제국> , p190


 경태제가 등극하자 인질로 잡힌 주기진의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이듬해 힘이 약해진 명이 국경 무역을 재개하기로 약속하자 에센은 쓸모 없어진 인질을 되돌려주었다. 경태제는 주기진이 제위를 확실히 단념한다고 선언할 때까지 그의 북경 입성을 허락하지 않았다.(p192)... 1456년에서 145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경태제는 심한 병에 결려 조회 朝會마저 불참했다. 고위급 문/무 관원들이 연합하여 이 사태를 직접 해결하기로 하고 가택 연금 상태에 있던 주기원을 풀어내어 다시 황제로 옹립했다. 다시 황위에 오른 주기원은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뜻으로 천순 天順을 새 연호로 선포했다._ 티모시 브룩, <하버드 중국사 원, 명 : 곤경에 빠진 제국>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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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21-12-25 00: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근혜 전대통령의 투병 언급이 뉴스화 되자마자 바로 특별사면 소식이 들려 문대통령과 민주당 그간 논조와는 달라 의아했습니다. 70세의 노년여성이 외로이 투병하며 투옥되어 있는게 선거에 악영향을 주리라는 판단이었겠지만 신속히 진행되어 놀랐습니다. 어찌되었든 성탄의 의의가 반영된듯 싶네요.

겨울호랑이님께서도 건강하시고 즐거움과 평온함이 함께하는 성탄연휴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1-12-25 00:37   좋아요 4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주말 내내 한파라네요... 따뜻한 성탄과 주말 보내세요! ^^:)

라파엘 2021-12-25 0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 되시길 기도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2-25 07: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라파엘님께서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저 또한 기도하겠습니다.^^:)

서니데이 2021-12-25 0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가족과 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1-12-25 07:45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항상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보내세요! ^^:)

희선 2021-12-25 0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성탄절이나 산타 다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모두가 그날만은 평화롭게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듯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곳도 있겠지만...

겨울호랑이 님 성탄절 식구들과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겨울호랑이 2021-12-25 07:49   좋아요 2 | URL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어느 전선에서 독일군과 영국군 사이에 차도 나누고 축구를 했던 일이 있었다지요... 이런 마음들이 모여 세상이 좀 더 밝아지길 기원해 봅니다. 희선님께서도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갱지 2021-12-25 05: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메리크리스마스:-)!

겨울호랑이 2021-12-25 07:49   좋아요 2 | URL
갱지님께서도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

거리의화가 2021-12-25 0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버드 중국사는 저도 찜해놓고 있는 책 리스트 중 하나예요. 즐거운 연휴 되시길! 메리크리스마스^^

겨울호랑이 2021-12-25 08: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님께서도 행복한 성탄절 보내시고, 내년에는 하버드 중국사와 함께 하는 멋진 독서계획 세우시길 바랍니다! ^^:)

mini74 2021-12-25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 캐롤 ~ 어릴 적 크리스마스 아침날이면 하던, 지금은 해리포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1-12-25 11:37   좋아요 2 | URL
저도 예전에 겨울이면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벌써 20년 전이 되었습니다만... 유난히 추운 크리스마스네요. 미니님께서도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
 

 이제는 섬진강 푸른 물에 넋을 버린 여자, 그 여자를 중생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혜관. 괴물 같은 혜관의 마음속에 엷은 한 같은 것이 솟는다. 최서희의 일행이 간도로 떠난 후 홀로 남아서 절로 은신해 왔었던 꽃다운 처녀 봉순, 절 마당을 왔다갔다 하던 그 자태에 젋은 사미승들은 오뇌의 밤을 보내야 했었고 중년이던 혜관마저 남모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봉순이는 기화가 되었고 노류장화, 그러나 출가한 중에게는 여전히 꺾지 못할 벼랑의 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2> , p159/692


 <토지 독서챌린지> 23주차. 다음 주면 2021년 독서챌린지 마지막 차수가 될 듯하다.(마지막 주는 방학이다!). 전체 여정의 60%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번 주 읽은 내용을 정리해 본다. <토지 12>의 첫 부분에서는 봉선(기화)의 죽음을 떠올리는 혜관, 언쟁을 벌이는 상현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온 아들 환국과 어머니 서희의 이야기 등이 보여진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개인적으로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 


 먼저 혜관 스님. 혜관은 봉선의 죽음을 듣고, 지난날 봉선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출가인(出家人)으로서 가져서는 안되는 여인에 대한 흔들리는 마음. 정진하는 수도자에게 그런 마음은 마구니의 유혹이었겠지만, 봉선(기화)은 중년의 스님에게 마구니의 유혹이 아닌 꺾을 수 없는 벼랑의 끝꽃으로 자리하고 기억된다. 혜관에게 봉선은 유혹이 아닌 사랑이었을까. 여기서 '벼랑의 끝꽃'과 관련하여 <헌화가>의 노인을 떠올리게 된다. 


 성덕왕 때 순전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다가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곁에는 석벽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렀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다.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좌우에게 말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 바치겠느냐?" 종자가 말했다. "사람의 발자취가 이를 수 없는 곳입니다." 모두들 할 수 없다고 사양했다. 마침 곁에 한 늙은이가 암소를 몰고 지나가다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었다. 그러고는 가사도 지어 (함께) 바쳤다... 노인의 <헌화가 獻花歌>는 이러했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_ 일 연, <삼국유사> , p152


 <토지>에서 중년의 혜관 스님이 벼랑의 꽃을 꺾을 수 없었다면, <헌화가>의 노인은 아름다운 수로 부인을 위해 암소를 잠시 내려 놓고 벼랑 끝의 꽃을 꺾어 바친다. 혜관 스님이 수행자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기에 꽃을 꺾을 수 없었다면, 노인은 자신의 소중한 암소를 잠시 놓았기에 꽃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혜관 스님이 내려 놓지 못한 것과 노인의 암소는 번민이었을까, 미련이었을까. 혜관에게 봉선은, 노인에게 수로 부인은 사랑이었을까,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였을까. 혜관 스님과 노인의 경우를 여러 면에서 비교하게 된다.

 

 혜관 스님과는 달리 아직 봉선의 죽음 소식을 채 듣기 전 상현은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주변인들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송장환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광수(李光洙, 1892 ~ 1950)의 <민족개조론> 이야기는 잠시 언급되지만, 1919년 3.1항쟁 실패 이후 방황하는 지식인과 이들의 사상전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선을 두게 된다.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이다 뭐다 하고 시시한 것을 발표하는 이유는, 그가 어째서 한때 영웅이 되었는가 그것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지. 그의 문학과 그의 반일 사상 그 두 가지가 합친 때문이라는 걸. 그 야심가, 명성에의 노예는 양자 중에 보다 유리한 것을 택하였고 그러고도 연연하여 자기 문학에다 애매모호한 것을 풀칠해서 붙이고 있는 거야. 두 가지를 다 갖고 싶겠지만 두 가지를 다 잃는 결과는 아니될지. 그는 약한 사람 같다. 두 가지를 다 해낼 뜨거운 피, 강인한 의지가 없었을 게야. 글은 칼이 될 수 있는 거고 꽃도 될 수 있는 건데 칼은 무디어졌고 꽃은 종이꽃이 되고, 그래서 괴상망칙한 <민족개조론> 같은 것도 튀어나오게 된 거지. _ 박경리, <토지 12> , p251/590


  양주동(梁柱東, 1903 ~ 1977) 교수가 '우리나라가 가진 재주가 10이라 했을 때 이광수가 가진 재주가 6'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뛰어난 천재 이광수. 그는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했지만, 이후 <민족개조론>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한계를 지적하며 전향을 한다.  본문에서 그는 민족의 성격을 근본적인 부분과 부속적인 부분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도 부속적인 면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춘원(春園)은 민족의 각성을 위해 소수 엘리트의 깨우침을 강조한다.


 

 조선민족은 적어도 과거 오백 년간은 공상과 공론의 민족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오백 년 민족생활에 아무것도 남겨 놓은 것이 없음을 보아 알 것이다. 과학을 남겼나, 부를 남겼나, 철학, 문학, 예술을 남겼나, 무슨 자랑 될 만한 건축을 남겼나, 또 영토를 남겼나, 그들의 생활의 결과에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송충이 모양으로 산의 삼림을 모두 벗겨 먹고, 하천의 물을 말끔 들이마시고 탕자(蕩子) 모양으로 선대(先代)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다 팔아먹었을 뿐이다. _ 이광수, <민족개조론> , p78/100


 이렇게 직업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하여 근면함으로 주색에 빠지거나 잡담, 장기와 바둑(博奕)을 즐길 새는 업지마는, 그에게는 향기로운 가정의 즐거움과 문학, 예술, 혹은 종교나 철학을 즐기며, 혹은 순결한 교우의 즐거움과 동지의 모임의 즐거움을 가진다. 그러고 그는 일정한 운동으로 건강과 용기와 쾌락을 얻는다. 그는 국가에 대하여서는 모든 의무를 다하는 국민이다. 그의 삼가는 모든 단체에 대하여는 충실한 회원이다. 그러므로 그는 혹은 체면에 끌려 혹은 군중심리에 끌려 용이하게 무슨 허락을 하지 않지만, 한번 허락한 이상 그는 결코 변함이 없다. 그는 위인이 아닐는지는 모르나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다. _ 이광수, <민족개조론> , p82/100


 

 그렇다면, <민족개조론>의 문제는 무엇일까. 마치 플라톤의 <국가> 또는 스파르타의 정체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엘리트 이론의 전제는 '인물'과 '금전'이다. 신교육을 통해 인물을 양성하고 자금을 통해 투자가 필요하다는 이광수의 주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독립적'이 아닌 일본의 힘에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본인은 이 길이 가장 빠르게 근대화되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결국 일본제국 내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민족개조론> 속에서 1920년대 이후 지식인들의 사상 전향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보기에 우리 민족에 결핍한 것은 사상이기보다 실행이니 우리가 아는 것만이라도 실행만 하면 살 수가 있으리라 하다. 가령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학술이나 기예(技藝)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한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한다. 교육과 산업을 발달시켜야 한다. 이런 것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그대로 실행함이다. _ 이광수, <민족개조론> , p88/100


 다른 한편, 일본에 유학갔던 환국은 어머니와 함께 진주로 내려간다. 그 전에 감옥에 갇힌 아버지 길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는 환국. 환국의 생각 속에서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로 정리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 이론을 떠올리게 된다.


 남자아이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어린 나이에 그 작은 남자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대상 리비도 집중을 개발시키는데, 그것은 원래 어머니의 젖과 관련되어 있고 의존 Anlehnung 유형에 의한 대상 선택의 원형이 된다. 이 아이는 자기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아버지 문제를 처리한다. 일정 기간 동안 이 두 관계가 나란히 지속되다가 이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망이 더 강렬하게 되고 아버지는 그 욕망에 대한 장애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그의 아버지와의 동일시는 적대적인 색채를 띠게 되고,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그를 제거하려는 욕망으로 바뀐다. 그 후부터 자식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양가적이다. 그것은 마치 처음부터 동일시 속에 내재되어 있던 양가성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와 어머니에 대한 애정 일변도의 대상 관계는 남자아이에게 있어서 단순한 긍정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내용을 형성한다. _ 지크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 p247/460


 유명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아들과 아버지를 경쟁자로, 그리고 억압의 구조 속에서 제도에 대한 복종을 말하며 이를 발전시켜 의식-무의식 구도를 형성한다. 이런 면에서 '아들 - 아버지', '아들 - 어머니'의 관계 설정은 프로이트 이론의 대전제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 존재의 각인이 반드시 어머니를 사이에 둔 대립 구도 속에서 형성될 것인가? <토지>의 환국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절대적인 존재, 환국의 마음속에서의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다. 독립투사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 아버지라는 존재 그 자체가 환국에게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핏줄의 부름이며 어릴 적에 뇌리에 박혀버린 그 모습, 그 음성이 절대적인 것이다. 그것들은 세월과 더불어 한층 강하게, 굳게 각인된 것처럼 마음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2> , p305/692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유의사에 반하는 그 모든 사회적 강제를 구현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의지에 따라 행동하려는 통로를 막아버리고 너무 빨리 성적 쾌락에 빠져다는 것을 금지하며, 가족 간의 공동 재산이 있을 경우 그것을 누리는 것을 억압합니다. 아버지가 죽기만을 엿보는 이와 같은 심리는, 그러므로 황태자의 경우에 비극으로까지 치달을 만큼 엄청난 정도로 발전합니다. _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 강의> , p207/518


 아들 환국에게 한없이 커보이는 절대적인 존재로 비춰지는 아버지 길상. 그렇지만, 아버지 길상은 성장기의 환국에게는 멀리 떨어진 그리운 존재였다. 환국의 의지를 강제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길상이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도 절대적인 존재로 아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성(性)욕구로 의식-무의식을 설명하려는 프로이트 도식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와 공포로 인해 가졌던 동질감 또한 어머니에 대한 성적인 욕구가 아닌 가족애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을 리비도(Libido)로 설명하려는 프로이트 이론의 한계를 생각하게 된다.


 서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결코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았으며 약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던 그였으나 자신이 병드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공포에 떠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두고 죽을 수 없다, 절대로 죽을 수 없다고 외쳐대는 것 같았다. 서희와 환국이는 필사적으로 그런 공포를 엄폐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들은 어머니에게 태연했다. 그러나 다 같이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_ 박경리, <토지 12> , p327/692


 차창 밖에는 싱그럽고 짙푸른 수전(水田)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논둑에 흰 새 한 마리 하늘을 우러러 보며 그림같이 서 있다. 순간 환국이는 그 흰 새 한 마리가 어머니의 모습같이 생각되는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수전에 머문 흰 새 한 마리.(p306)... 푸른 수전과 흰 새 한 마리, 눈물의 응결 같은 푸른 보석과 어머니의 하얀 모시옷. 환국은 눈길을 들어 차창 밖을 내다본다. 손안에 물이 흘러버리듯 만남의 그 격렬한 시간은 가고 없다. 차창 밖의 시시각각 날아가 버리는 연변 풍경 같은 것인가. _ 박경리, <토지 12> , p307/692


 어쩌면 프로이트 이론은 근친상간의 이야기가 점철된 헬라(그리스) 문명과 히브리 문명권에는 적절한 설명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히브리-헬레니즘 이외 문명권에서 모든 심리문제의 근원을 리비도(성충동)로 밝히려는 프로이트 이론이 공감받기 어려운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도식으로 심리와 문화를 해석하려는 작업이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도 차창을 바라보는 환국의 모습을 지켜보며 떠올린다...


 다소 두서없는 내용의 페이퍼가 되버렸지만, 이번 주 독서챌린지는 매일의 독서가 서로 다른 자극을 준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시대의 역사물이면서도 인물들의 마음과 심장소리가 느껴지고, 그와 함께 시대의 큰 변화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한 주간의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PS. <토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불안한 인물은 상현이다. 작품 내에서 '고뇌하는 지식인' 캐릭터를 맡고 있는 상현은 매 권마다 술에 취해 다른 이들과 언쟁을 벌이는데, 절대로 아무렇게나 말하질 않는다. 나름 당대 지식인들의 사상과 저서를 언급하면서 평을 하는데, 그 내용을 따라가기가 참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이렇게 놓친 인물이 양계초(梁啓超, 1873 ~ 1929)다. 양계초의 <신민설 新民說>도 <토지> 초반부에 언급되어 내용을 정리하던 중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어 결국 중반이 넘어서도록 페이퍼에 올리질 못했다. 이런 책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상현이 주사(酒邪)처럼 읊조리는 책과 사상만 정리해도 어느정도 시대 분위기는 파악하지 않을까 싶다. 놓친 부분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로 정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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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색 세루 두루마기에 자줏빛 털목도리, 회색 털장갑, 그만하면 진주의 추위쯤, 든든한 차림인데 그러나 기화는 춥다. 몹시 춥다. 헐벗고 벌판을 거니는 것처럼. 그것은 추위라기보다 막막한 외로움이었는지 모른다.(p483)... 최초엔 길상을 잃었고, 다음엔 상현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를 버린 기화는 또 버림받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었고, 마지막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을 망각한 것이다. 도망은 상실과 망각에서 오는 일종의 충격일까. _ 박경리, <토지 11> , p484/670


 토지 독서 챌린지 22주차. 이번 주로서 3부 3권도 마무리되어간다. 그 사이 최참판댁 갈등의 시발점이라 할 김 환(구천)도, 용이네 집에 풍파를 일으키던 임이네도 떠나가면서 이제는 서희를 비롯한 2세대가 집 안의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들1세대의 퇴장 외에 작품 속에 묘사되는 시대상속에서 급격한 변화를 체감한다. 동학 농민 혁명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이었던 작품 초반부와 <토지> 중반부에 묘사되는 1920년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런 변화는 작품 속에 묘사되는 기화(봉선)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기화의 진정한 변화는 사실 옷차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과 희망을 잃어버리면서 결국 아편에까지 손을 대면서 기화는 걷잡을 수 없을만큼 무너져 내린다. 어린 시절 어머니 별당아씨를 잃어버린 서희를 옆에서 위로하던 봉선이었지만, 어른이 된 기화는 반대로 서희에게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자신을 '아편쟁이'라 단죄하는 기화는 자신의 딸마저도 버릴만큼 약해져 버렸고, 서희는 기화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현재 기화는 서희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지만 세월은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주종(主從)이라는 벽을 차츰차츰 허물어왔다. 그것은 기화보다 서희가 더 많이 느낀다. 극심한 사회적 변동이 원인이겠지만 가장 오래된 추억을 함께 간직한 두 사람의 처지 탓이며, 가시밭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다는 실감은 어쩔 수 없는 연민, 애정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애정은 권위를 무너뜨린다.(p439)... '불쌍한 것.' 다정다감했던 그 감성은 어디로 갔는가. 사무치게 깊었던 그 숱한 한은 어디로 갔는가. 너그럽게 이해하고 푼수를 알며 물러나 앉을 줄 알던 그 조신스러움은 어디 갔는가. 욕심 없고 거짓 없던 그 천성은, 아니 연연(軟娟)하고 그 풍정(風情)이 사내들 마음을 사로잡던 기생 기화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그에게서는 양현을 향한 모성마저 없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들었나. 마약의 심연으로, 다정다감함이 유죄요, 다정다감함의 단죄(斷罪)인가. _ 박경리, <토지 11> , p446/662


 아편(鴉片). 이제는 고전적인 약물이 되고 말았지만,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 1907~1991)의 <캠브리지 중국사>에 의하면 19세기 말에 중국 인구의 약 10%가 아편 중독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강력한 마약이었다. 물론, 청(淸)의 아편은 인도에서 재배되어 밀수의 형태로 청나라로 수출되고, 다시 인도 면화산업에 재투자되었다는 점에서 1920년대 당시 만주와 국내산 아편이 유통된 우리나라와 진행된 양상은 달랐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중독자가 있었음을 생각해본다면, 전체 인구의 약 10%가 중독되었다는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청나라의 아편이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아편은 시대의 절망에 빠진 이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점은 차이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마약 문제의 심각성과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가움은 매한가지가 아니었을까.


 1836년 무렵에는 매년 대략 1,820톤의 아편이 중국으로 수입되고 있었다. 아편 중독자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1836년 당시 서양의 통계로는 대략 1,250만 명의 흡연자가 있었다고 한다... 스펜스 Jonathan Spence는 꼼꼼한 연구를 통해 1880년 말경이면 10%의 인구가 아편을 흡연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심각한 중독자가 대략 3~5%라고 한다면 1890년경에는 1,500만명의 중독자가 있었을 것이다. _ 존 K. 페어뱅크, <캠브리지 중국사 10 (상) >, p296


 1831년 봄베이 식민정부는 남부 마흐라타 Mahratta에 원면 구입 대행사를 개설했다. 1839년에는 기반시설과 시범농장에 대한 추가 투자와 아편 생산에서 얻은 자본을 면화에 투입하는 방안이 동인도회사 내에서 논의되었다... 인도의 면화 수출을 늘리고 개선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다... 그리하여 엄청난 추가 공급선이 열렸다. 그 공급선을 통해 면직물 제조산업의 주요 부문에서 느꼈던 원료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53/688


 어느 사회나 마약중독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좋을리 없다. 치유할 수 없는 정신병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토지>의 기화 역시 마찬가지로 느꼈을 것이고, 기화는 버림받아 상처받은 마음에 아편을 했다는 자책감을 더하며 서서히 무너져 간다. 무너지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찾으면서. 중독에서 죽음에 이르는 마약중독에 관해 오후의 <우리는 모른다>는 두 실험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달한다.


 마약의 중독성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수컷 쥐에게 '순수한 물(이하 물)'과 '모르핀을 섞은 물(이하 마약음료)'을 제시합니다. 쥐는 물 대신 마약음료를 선택하고, 결국 중독이 됐다가 어느 순간 죽어버리죠. 방법이 조금 다를 뿐 이런 식의 실험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쥐에게 관을 삽입해 약물을 투여하기도 하고, 원숭이에게 코카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과는 늘 중독, 그리고 죽음이죠. _ 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p396/412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에 소개된 하나의 실험은 마약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고, 다른 하나의 실험은 마약을 제공하되 보다 쾌적한 환경과 다른 대체물들을 쥐들에게 제공한 실험이다. 첫 번째 실험이 마약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전형적인 실험이었다면, 두 번째 실험에서는 쾌적한 환경의 쥐들이 보다 높은 비율로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남을 보여주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의 실험이 기화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알렉산더 박사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중동성이 강한 마약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금단현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부정적인 주변 환경이 우리가 금단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_ 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p398/412


 다시 <토지>로 돌아와 보자. 만약, 기화가 길상과 상현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더라도 주변에 누군가 기화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 양현을 키우는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뒤늦게 서희와 만나게 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가 되고 말았다. 이제 머지 않아 기화 역시 <토지>의 장에서 월선처럼 사라질 것이다. 참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월선의 죽음이 애잔함을 남겼다면, 봉선의 무너져 내림은 안타까움을 전달한다.... 


 개인은 자신보다 오래되고, 자신보다 영속하며, 모든 면에서 자신을 감싸는 집단적 존재와의 유대를 더욱 강하게 느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행동의 유일한 목표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자신보다 더 중요한 목적의 수단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삶 본래의 목적과 지향성을 회복했기 때문에 삶의 의미가 되살아날 것이다. _ 에밀 뒤르켐, <자살론>,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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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2-12 0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중국 인구의 10%가 아편을 했다면 제국주의자들이 한 나라를 말살하고자 한 집요함이 얼마나 악날했는지 알수 있을것 같아요~~
마약에 대한 실험의 결과에 공감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네요.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 너무 안타까워요.
아편이란 단어는 왜이리 슬픈지 모르겠어요^^
겨울호랑이님께서 토지를 읽으신지 벌써 22주차시네요.
완독을 응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2-12 10:41   좋아요 3 | URL
마약 통계가 정확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나라 말기의 마약 문제는 정말 심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도 그런 부분이 다루어지지만, 서양의 자본주의로부터 크게 당했기에 오늘날 중국에서는 마약 범죄에 유난히 민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 보다 필요한 것이 주변의 사랑과 관심임을 생각해 본다면, 처벌보다는 예방에 보다 중점을 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토지」는 지난 7월부터 시작해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네요. 페넬로페님 격려에 힘내어 완독에 가까이 다가갑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

mini74 2021-12-12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도 중독자가 꽤 많았다고 봤어요 또 일본이 도망가면서 아편도 엄청 풀었다고 하더라고요 ㅠㅠ 겨울호랑이님 토지 읽으면 새록 새록 예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2-13 06:14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어떤 이들은 일제 시기를 통해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말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가 입은 손해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더 많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니님 오늘도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