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역사, 사연이 똬리를 틀듯 둘러싸여 있는 평사리의 최참판댁,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탈환의 최후 목표였던 평사리의 집을 거금 오천 원을 주고 조준구로부터 되찾았을 때, 그것으로 서희의 꿈은 이루어졌고 잃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회수했던 것이다. 그때 서희의 감정은 기쁨보다 슬픔이었고 허망했다. 그리고 뭔지 모르지만 두려움 낯섦, 과거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낯섦이었다. 서희는 회수한 평사리의 집에 꽤 오랫동안 접근하지 못했다. 그렇다. 서희는 과거를 두려워한 것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은 모두 음산한 비극뿐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사리의 집은 의식 속에 방치된 채, 서희는 현실에 쫓겼는지 모른다. _ 박경리, <토지 16> , p512/594


  [토지문화재단 독서챌린지] 32주차. 개인적으로 <토지> 5부 1권의 마지막 16권을 정리하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개인의 복수를 마무리하는 서희의 심경이 담긴 부분이다. <토지>의 시작 아버지 최치수와 할머니 윤씨 부인의 잇달은 죽음으로 간도로 내몰렸던 서희는 수십 년의 시간동안 간도와 진주를 거치면서, 조준구를 옥죄고 결국 평사리의 집을 되사오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짓는다. 한 푼없이 조준구를 극한으로 내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남겨주고 말없이 보내준 서희의 모습은 통쾌한 복수와는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서희가 허락한 조준구의 여유는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닐까. 이를 평사리의 집을 바라보는 서희의 감정을 통해 헤아리게 된다. 


 졸음같이 달콤한 죽음의 유혹이 또다시 영광에게 스며들었다. 소년 시절에 겪었던 죽음에 대한 센티멘털, 그 미숙(未熟)한 동경에 삼십 장년이 휘청거린다. 아무 희망도 없었다. 정열과 그리움도 없었다. 세월에 바래어지고 마모된 것 같은 어머니와 누이 등의 초라한 모습에서 느낀 것은 슬픔이나 애달픔보다 세월의 찬바람이었고 움츠려지는 뭔가 형용하기 어려운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6> , p250/494


 서희는 흐느껴 울었다.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으나 흐르는 눈물은 멎지 않았다. 그가 앉은 별당, 어머니 별당아씨가 거처하던 곳, 비로소 서희는 어머니와 구천이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어머니는 불행한 여인이었던가, 나는 행복한 여인인가 서희는 자문한다. 어쨌거나 별당아씨는 사랑을 성취했다. 불행했지만 사랑을 성취했다. 구천이도, 자신에게는 배다른 숙부였지만 벼랑 끝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다가 간 사람, 서희는 또다시 흐느껴 운다. 일생 동안 거의 흘리지 않았던 눈물의 둑이 터진 것처럼. _ 박경리, <토지 16> , p516/594


 영광이 느꼈던 죽음에 대한 센티멘털, 별당아씨와 구천에 대한 사랑 등 복합적인 감정 등이 복수 후 남겨진 서희의 마음 한 켠에 몰아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토록 원했지만 감히 돌아갈 수 없었던 기억의 공간. 다시 그 공간의 대문으로 서희가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복수 후 남겨진 여유 속에서 자신을 정리할 수 있었던 여백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서희는 평사리 고택의 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서희의 아들 환국 또한 법당문을 열고 아버지의 관음상을 바라본다.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낡은 것들 속에 새로움이 한결 선명한 관음탱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관음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관음상을 응시한다.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든 수월관음(水月觀音), 또는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웠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청초한 선(線)에 현란한 색채, 가슴까지 늘어진 영락(瓔珞)이며 화만(華鬘)은 찬란하고 투명한 베일 속의 청정한 육신이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어찌 현란한 색채가 이다지도 청초하며 어찌 풍만한 육신이 이다지도 투명한가. _ 박경리, <토지 16> , p564/594


 나는 그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힌 채 그가 합장을 올릴 때도 그냥 멍하니 불상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선 내가 예상한 대로 좀 두텁게 도금을 입힌 불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내가 미리 예상했던 그러한 어떤 불상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 향로를 이고 두 손을 합장한, 고개와 등이 앞으로 좀 수그러진, 입도 조금 헤벌어진, 그것은 불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이 초라한, 그러면서도 무언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등신대(等身大)의 결가부좌상이었다. 그렇게 정연하고 단아하게 석대를 쌓고 추녀와 현판에 금물을 입힌 금불각 속에 안치되어 있음직한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엄성 있는 그러한 불상과는 하늘과 땅 사이라고나 할까, 너무도 거리가 먼, 어이가 없는,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悲願)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콱 움켜잡는 듯한, 일찍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러한 어떤 가부좌상이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나는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미묘한 충격을 나는 어떠한 말로써도 설명할 길이 없다. _ 김동리, <등신불> 


 <토지>에서 법당 문을 열고 환국이 바라본 관음상은 아름다움(美) 자체다. 반면, <등신불>에서 '나'가 금불각의 문을 열고 바라본 불상(佛像)의 모습은 인간이 모든 감정을 다 담고 있는 섬뜩하고 끔찍한 추(醜)의 모습이다. 등신불의 '나'는 혼란에 빠져 질문을 던진다. 저렇게 인간의 고통을 잔뜩 짋어진 불상의 모습이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을까. 


 소신 공양으로 성불을 했다면 부처님이 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부처님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모든 불상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은 거룩하고 원만하고 평화스러운 상호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 가까운 부처님다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룩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맛은 지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금불각의 가부좌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고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얼굴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어떠한 대각(大覺)보다도 그렇게 영검이 많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_ 김동리, <등신불>


 사실, 이러한 질문은 <등신불>의 '나'만 제기한 문제가 아니었다. 부활 후 심판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그리스도왕' 또는 양 떼를 인도하는 '착한 목자'가 아닌 '수난의 예수'를 인정하는 것은 중세 유럽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중세 이후 극적으로 묘사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부활이라는 극적인 상승을 위한 예정된 하강의 이미지로서 자리매김되었을 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정점을 보여준 극단적인 참혹함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부활'이라는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일반이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성불(成佛)'이나 '부활(復活)'의 과정일 때 비로소 가능할테지만, <등신불>에서 '고통'은 하나의 완성이기에 '나'는 혼란에 빠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수치스러운 증거를 자신의 범미주의적 시각으로 다시 흡수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의 예수는 분명 흉한 모습이지만, 그런 피상적인 흉함을 통해서 그 희생의 내면적인 미와 우리에게 약속한 영광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비로소 현실적인 남자로, 매 맞고 피 흘리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런 한편 십자가 책형과 수난의 여러 단계에 대한 묘사는 그 자체가 수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찬양하는 것이므로 극적으로 사실주의적이 되었다... 수난 받는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문화에 전해지면서 수난의 에로티시즘은 점점 더 강결해졌다. 결과적으로 고통에 시달린 성스런 얼굴과 신체에 대한 묘사는 자기만족과 성적 모호함에 가까운 하나의 유희가 되며, ... _ 움베르트 에코, <추의 역사> , p49


 반면, 환국은 '관음상'을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아버지가 그려낸 관음탱화는 완벽한 진선미(眞善美)의 재현으로서 관음상의 모습은 주위를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쩌면 환국은 관음상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인생의 황혼에 선 서희의 모습. 한 송이 국화와도 같은 모습이었을까, 빛 속에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었을까.


 마흔여덟의 최서희는 아직도 아름다웠다. 서산에 해가 지는, 그 노을빛같이 아름다웠다. 물살을 가르며 가는 배, 뱃전에 서 있는 여인, 하얀 숙소(熱素)겹저고리 치마를 입고, 옷고름이 나부끼고 치맛자락이 강바람에 나부낀다. 그는 진정 아름다웠다. 고귀하고 위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외로운 모습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6> , p474/594


 미학의 기원 중 하나는 수많은 문명에서 신은 빛과 동일시된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셈 족의 바알, 이집트의 라, 페르시아의 아후라 마즈다는 모두 태양이나 빛의 은혜로운 행위를 상징하는 신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플라톤의 이데아의 태양으로서의 선의 개념과 맞닿게 된다. 그리고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이런 이미지들은 그리스도교의 전통 속에 자리잡는다... 플로티노스는 <엔네아데스>에서 단순한 형태로 인해 각 부분의 균형미를 끌어낼 수 없는 태양의 색과 빛, 혹은 한밤에 눈부시게 빛나는 별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자문한다. 그는 이데아와 유사한 방식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불의 미를 찾을 수 있다. _ 움베르트 에코, <미의 역사> , p102


 '등신불'은 그 외양의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기적을 행하는 권위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토지 16>에서 찾아본다. 노동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 후 혀 끝에 전해지는 밥 한 톨로 전달되는 배고픔으로부터의 해방감. 이에 대한 서술이 답이 될 수 있을까.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 흘리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술 말아 먹는 순간 혀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 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質量)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6> , p536/594


 궁극적으로 해탈(解脫)과 같은 궁극의 상태를 현세에서 체현하기 직전 <등신불>의 만적(萬寂)과 <토지>의 길상의 상황이 달랐던 것에 주목하게 된다. 만적이 이복동생 사신(謝信)을 보고 느꼈던 고통, <욥기>에서 욥이 하느님께 부르짖는 외침 속에서 절대경지와 만났다면, 길상은 그와는 달리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하는 아들들과 양딸 양현과 함께 하는 상황에서 되찾은 자신의 길이었기에 더 평안하게 궁극의 경지를 만났던 것은 아닐런는지.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결국 미술작품에 재현된 미(美)는 내용이 절대경지를 표현했다 할지라도 그 바탕과 끊을 수 없는 인연(因緣)과 연결되어 있는 접점에 불과함을 생각하게 된다.


 착하고 어질던 사신이 어쩌면 하늘의 형벌을 받았단 말인고, 사신은 문둥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_ 김동리, <등신불>


  개인적으로 <토지 16>은 일종의 완성(完成)의 의미로 읽힌다. 서희의 복수는 그가 남겨둔 작은 여지와 여백을 통해 회복과 재생으로 완결되며, 길상은 금어(金魚)로 관음탱화를 완성하며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완성이 완결(完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토지>가 5부 1권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는 구도 속에서도, 여지를 남겨둔 조준구에 대한 관용이 그와 가족들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소설의 내용과도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는 없는 인과율(因果律)에 의한 복수가 더 큰 것임을 서희는 알았던 것일까.


 조준구의 감각에도 산내음이 풍겨오는 사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형형히 빛나는 눈동자, 조준구는 믿는다. 해도사가 시적을 이루어 자기 병을 낫게 할 것이라는 예감을 믿는 것이다. 자기와 무관한 일이거나 불리할 경우에는 귀신이건 영신(惡)이건 미신으로 간단하게 단정해 버리지만 자기 자신에게 유리할 경우에는 미신이 아닌 것이다. 악(惡)과 탐욕의 속성인 것이다. 하여 치매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완전하다고 믿는 것이 또한 그들의 속성인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6> , p428/594


 해도사는 휘한테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똥벼락을 맞은 조병수가 대성통곡을 했다는 얘기, 가엾고 측은하며 사람이 어찌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떠날 길을 왜 생각지 않는가 하며 통곡을 했다는 얘기, 해도사는 병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심정이 바로 지금 그와 같았다. 측은하고 가엾고, 미워할 수가 없었다. 정말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구제받지 못하는 자에 대한 슬픔이었다. 하늘 아래 홀로 서 있는 자에 대한 슬픔이었다. 삭을 대로 삭아버린 육체를 안고 버둥거리는 한 생명에 대한 슬픔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6> , p432/594


 글의 마지막은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인 <욥 기>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짓는다. 만적이 스스로 해탈의 길을 선택했다면, 자신의 고통을 절대자에 대한 참회로 극복하는 욥의 모습은 같은 듯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교부들에 따르면, 욥은 하느님의 전지(全知)와 하느님께서 인간 삶의 모든 사건을 통제하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때 하느님에게 의로움을 인정받는다(올림피오도루스). 욥은 진실한 겸손(대 그레고리우스)과 온전한 참회를(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보여 준다.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배우기 위해 질문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붇는 그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하느님 앞에서 시인하는 것이다(대 그레고리우스). 교부들이 욥 안에 그리스도교적 삶의 기본 덕들이 예시되어 있다고 본 것은 분명하다. 욥이 참회했을 때는 그가 아직 시련에서 구원받기 전이며 여전히 환난 중에 있었다. 이제 욥은 사제가 되며 방문객들이 예물을 가지고 온다. 그는 자녀들을 위해 희생제품을 바친 바 있는데 이제 친구들을 위해 희생 제물을 바친다. 의인을 비난하는 사람은 중대한 잘못에 대해 속죄한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_만리오 시모네티/마르코 콘티, <교부들의 성경 주해 : 욥기>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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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키가하라 전투(Battle of Sekigahara, 1600)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죽은 후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다이묘(大名)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는 곧 야심을 드러냈다. 1585년 정부를 관리할 5명의 부교(五奉行)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되었던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1563~1600)는 곧 이에야스의 야심을 눈치채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무단 혼인을 금지한 히데요시의 법을 어기고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들과 사돈을 맺어 무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이에 미쓰나리는 이에야스가 법을 어겼다고 고발하여 죄를 추궁했고, 그 결과 다이묘들이 양분되어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됐다... 1600년 10월 21일 미쓰나리의 서군과 이에야스의 동군은 미노노쿠니(美濃國)의 세키가하라에 집결했다. 10만 명에 이르는 잡다한 구성의 서군은 내분으로 분열했고 훈련을 잘 받고 단련된 8만명의 동군에 적수가 되지 못했다. 동군은 그날이 다 갈 무렵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고 3만 명이 넘는 서군을 살해했다. 미쓰나리는 체포되어 처형됐다. 이 전투는 일본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그 뒤 264년 동안 일본을 통치하게 될 에도 바쿠후(江戶幕府)가 탄생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_ 조지 차일즈 콘, <세계 전쟁사 사전>, p506/1247


 개인적으로 이번 대선의 전후 관계를 보면서 세키가하라 전투를 떠올리게 된다. 한편으로 한일전(韓日戰)으로도 인식되는 이번 선거에서 일본전국시대 전쟁을 소환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기에 애써 무시했지만, '안철수-윤석열 단일화'라는 사건은 다시 세키가하라를 떠올리게 한다. 야마오카 소하치(山岡?八, 1907~1978)은 <도쿠가야 이에야스>에서 세키가하라 전투의 결정적 순간으로 마쓰오산에 주둔한  고바야가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秀詮, 1582~1602)의 참전으로 묘사한다.


[그림] 세키가하라 포진도(출처 : https://senjp.com/sekigahara/)


 아들 히데타다(德川秀忠, 1581~1632)가 결전 직전에도 합류하지 못해 미쓰나리의 서군에 비해 열세에 놓였고, 포진 위치도 좋지 않은 상황의 도쿠가와군은 고바야가와군의 내응을 약속받았지만, 그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도쿠가와는 고바야가와군을 향해 독촉의 사격을 가했고, 이후 고바야가와군이 서군진영으로 돌입하면서 전황은 결정된다. 전투에서 결정적인 5분이 대승과 대패를 가르는 것은 세키가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철수-윤석열의 단일화는 도쿠가와의 총탄처럼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고, 이제 유권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싸움에서 또 하나 승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고바야가와 히데아키 역시 마쓰오산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군사력과 마쓰오산의 전략적 위치로 보아, 만일 그가 동군으로 돌아서게 된다면 서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야스는 본진에서 계속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고바야가와가 결심을 하는 시각을 재고 있었다. 이 한 순간이 혼전의 균형을 어떻게 깨뜨리느냐는 갈림길인 것이다. 앞을 못보는 오다니 요시쓰구도 온 신경을 고바야가와의 반응 여하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 총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것은 고바야가와 히데아키 자신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으나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기회주의적인 중립이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고바야가와는 비로소 정말 그렇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드디어 고바야가와군의 총포대가 산 아래의 오다니군을 향해 발포를 시작했다. 동서 양군의 세력 균형이 결정적으로 깨어지는 순간이었다._ 야마오카 소하치, <도쿠가와 이에야스 22> 中


  오전6시. 사전투표를 하고 돌아왔다. 지난 2010년과 2014년에 이재명을 성남시장으로, 2018년에는 경기도지사로, 2022년에는 대통령으로 투표한 투표소의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새벽에 투표하는 이들이 주로 나이드신 어르신이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20대 청년들의 발랄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령대로 그들의 지지성향을 가늠하는 것이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 과거와 오늘의 투표장 모습의 차이임을 확인한다. 이런 변화가 지난 시간의 변화임을 생각해본다면, 87년 체제의 틀과 이러한 틀안에서 형성된 현재 정치구도가 얼마나 민의(民意)를 반영하지 못하는가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유기체의 성장은 반복되는 세포분열로 일어난다. 이때의 세포분열은 체세포분열잉라 불린다. 체세포분열은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의 엄청난 개수를 생각할 때 사람들이 흔히 추측하듯이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수정란은 두 개의 '딸세포'로 분열하고, 다음 단계에서 4개의 딸세포, 이어서 8, 16, 32, 64....개의 딸세포가 생겨난다... _ 에르반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p45


 성장을 위한 분열이 허락되지 않는 정치. 구체제의 틀은 우리에게 통합을 강요하고, 성장을 방해한다. 이제는 그 틀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지난 체제의 한계를 딛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과거 서양의 68의 모습과도 같이 갈등과 분열로 표현되겠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사회의 성장 과정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선거를 통해 새롭게 선출된 권력이 만들어낼 구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며칠 사이에 급변하는 선거국면에서 두서없는 여러 생각들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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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03-05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찍 투표 하셨네요! 저도 7시반에 갔는데 생각보다 줄 길어서 놀랐어요! 역대 최고 투표율이 될 것 같네요..

겨울호랑이 2022-03-05 11:54   좋아요 1 | URL
햇살과함께님께서도 일찍 하셨군요. 어제 높은 투표율을 보니 아무래도 늦게 가면 고생할 듯해서 일찍 갔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아이폰 신제품 출시를 대기하는 줄만큼은 아니지만, 일찍 나와서 투표하는 이들을 (특히 20대) 보면서 줄을 섰지만, 흐뭇함을 느꼈습니다. ^^:)

갱지 2022-03-05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절한 비교라고 생각되면서도 이래저래 찝찌입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네요-

겨울호랑이 2022-03-05 13:34   좋아요 1 | URL
갱지님의 말씀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 역시 윤석열 후보와 일본 무속과 관련 기사, 그리고 세키가하라 전투에 등장한 인물들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침략자들임을 생각했을 때 글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더 좋은 경우를 알고 글에 남았으면 좋았을텐데, 그 이상의 내용까지는 제 생각이 미치지 못해 매우 아쉽습니다...

레삭매냐 2022-03-05 1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키가하라가 미노에 있는 장소
였군요. 미처 몰랐네요.

사이토 도산 이래, 미노가 쟁탈전
의 중심이었는데 결국 (일본) 천
하쟁패의 전장이었네요.

하도 부정 투표 타령들을 많이
해대서 본투표하려고 마음 먹었다
가, 오미크론의 기승이어서
어제 사전 투표 하러 갔다가 사람
들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돌아
왔네요.

본투표를 해야겠습니다, 수고하
셨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05 16:03   좋아요 1 | URL
세키가하라 전투가 관동(에도)와 관서(오사카)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그 중간에 위치한 미노 지방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입니다. 사전투표율이 높은 것이 어느 후보에게 유리할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사전투표율은 본투표일까지 남은 기간에 극심하게 벌어질 네거티브를 방지할 것은 분명하기에 사전투표를 했습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되세요! ^^:)

페넬로페 2022-03-05 15: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를 세키가하라 전투에 비유해 쓰신 글에 감명 받습니다.
20대의 딸아이는 87년의 상황을 잘 모르고 있더군요.
대선에서의 20대의 선택이 궁금해지네요.
자신의 삶들이 후퇴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선택이 중요한데 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05 16:14   좋아요 2 | URL
지금 기성세대에게는 경험으로 남아있는 사건들이 지금 2030세대에게는 한국전쟁이나 일제 시대만큼이나 실감이 안 되는 듯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 1987 민주화운동 등이 대표적인 사건이 아닐까 하네요. 기성세대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뼈 속 깊이 각인된 모국어와 같은 일들이,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배워야하는 외국어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쓰는 ‘어쩔TV 저쩔Tv‘같은 용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처럼요. 좀 더 많은 소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 역시 그런 노력이 부족하기에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03-05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전투표를 했습니다만 저도 제 맘을 잘 모르겠습니다. ㅋㅋ
정권이 유지되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크게 바뀌는 것이 없고,
역사가 조금씩 점진적으로 진보한다는 믿음도 없는데,
왜 투표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주말에 저 자신 행동을 곰곰이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03-05 17:45   좋아요 2 | URL
사실 전업 ‘정치인‘과 이들 옆에서 기생하는 이들 외에 직접적인 이익을 보는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더는 나쁘게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마음도 그 중 하나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렇습니다. 비록 각자의 시선이 달라 서로 다른 길을 지향하지만요... ^^:)

북다이제스터 2022-03-08 20:45   좋아요 1 | URL
어떤 정치와 국가에도 한가닥 작은 믿음조차 없는 저에겐 어려운 말씀이세요.
그럼에도 내일 선거결과가 궁금해지는 건 또 제겐 이상한 일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2-03-08 22:00   좋아요 0 | URL
어떤 시스템이나 사상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야 하는 도구임을 생각하면,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저보다 한 수 위이신 것 같아요. 앞으로도 희망을 가졌다가도 실망하기도 하겠지만, 아직은 지켜보기보다는 한 걸음이라도 거야할 방향으로 가고 싶네요... 제가 아직은 철이 없나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03-08 22:17   좋아요 1 | URL
피투표자가 투표자에게 투표하라고 난리치는 것이 뭐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
저만 이상한 것인가요? ^^

겨울호랑이 2022-03-08 22:20   좋아요 1 | URL
저는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만.... 피투표자 입장에서도 많은 표를 얻어야 대표성과 명분을 획득할 수 있을테니, 자신의 입장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만.... 다른 뜻도 있을 수 있겟지만요... ^^˝;)

북다이제스터 2022-03-08 22:22   좋아요 1 | URL
예전과 다르게 후보자 두명에게 투표하라는 수십 통 자동 안내 전화받았습니다.
대체 제 전번은 어찌 안 건지… 승낙도 안 했는데 꼴이 자본주의 무서움과도 같습니다. ㅠ

겨울호랑이 2022-03-08 22:3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저도 선거기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많이 와서 아예 받지를 않았네요. 워낙 개인정보가 마케팅 정보로 많이 활용되는지라 참 그렇습니다...
 

 (노무현은) 이어 "이런 분들이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서로 경쟁해서 원칙 있는 정치를 펼쳐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노 후보의 발언 직후 연설장에 않아 있던 정 대표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으며 노 후보는 발언 직후 연설장 분위기가 미묘해지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노 후보 발언 직후 종로 4가 한 음식점에서 국민통합21 주요 당직자들을 소집해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노 후보가 단일화 정신을 훼손한 채 이미 대통령이 된 것을 전제로 전횡을 하는 듯한 졸렬함을 드러냈다"며 지지를 철회키로 의견을 모았다. _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 편 : 노무현 시대의 명암 2>, p318/642


 오늘 새벽의 안철수-윤석열의 단일화 뉴스는 선거(사전투표) 전날 이뤄진 전격적인 선언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이로부터 2002년 12월 18일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결렬화를 떠올리는 듯하다. 선거에 미칠 파급력면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단일화 성사와 파기는 원심력과 구심력처럼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정치인 안철수의 '새정치' 여정의 끝에서 20여년 전 홍사덕(洪思德, 1943~2020)의 무지개 연합을 떠올리게 된다.


 각기 다른 이유로 '정치 자체의 위기'를 걱정하는 양대 세력에게 2000년 4월 13일로 예정된 제16대 총선은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4.13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이합집산이 활발해진 가운데,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이는 뛰어난 언변과 수려한 용모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홍사덕이었다.(p38)... 홍사덕은 1월 8일자 <한겨레>인터뷰에서 "국운을 개척하는 심정으로 새로운 정치를 하기 위해 무지개 연합을 만든다"고 선언했고, 그 결과 1월 19일 '무파벌/지역타파/개혁신진'을 표방한 '무지개연합'을 공식 출범시켰다. 그러나 그는 출범식 선언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인 1월 27일에 한나라당에 입당함으로써 그의 홈페이지에는 격한 비판이 빗발쳤다._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 편 : 노무현 시대의 명암 1>, p39/618


 10년 넘도록 실체가 모호한 새정치를 표방하면서 여러 차례 번복하고, 단일화 이후 자신의 몸값과 안랩 주가를 올렸던 1,900억대 재력가 안철수와 20~30억이 없어 자신의 뜻을 접고 한나라당에 들어간 홍사덕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도 생각하게 되지만, 적어도 국민과의 약속을 눈깜박할 사이에 뒤집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여겨진다. 안철수와 홍사덕을 통해 우리나라 정치에서 양당제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와 함께 다당제 정치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안철수의 재산을 생각하면 그에게 부족한 것이 돈은 아니었을텐데, 그럼에도 그가 독자적으로 완주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홍사덕의 무지개연합이 보여준 한계점은 한국정치에서 '돈 없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점이라면, 안철수의 새정치가 보여준 한계점은 무엇일까. 정치테마주로서 '안랩'의 주가 부양이 정치인 안철수가 아닌 경영인 안철수에게 더 중요했기 때문일까. 정말 잘 모르겠다...


 PS. 홍사덕과 기자들과의 대담 내용을 보면서 우리나라 기자들도 저런 깊이있는 질문을 할 때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되는 것을 보면 사회가 계속 발전해온 것만은 아닌 듯하다.


 정치가 현실인 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1주일 만에 뒤집어도 된다는 것까지 의미하진 않을 게다. 그와 같은 '변절'에 대해 홍사덕 자신이 내세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홍사덕은 기자들과 주고받은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 : 자신이 생각하는 당을 만들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답 : 어림짐작 20억, 넉넉히 계산하면 30억이다.

 문 : 결국 20억이 없어서 한나라당을 선택한 건가?

 답 : 좋은 뜻 있는 사람에겐 돈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문 : 무지개 연합을 시도했지만 돈이 안 모여서 한나라당으로 갔다고 했는데, 한나라당으로 가니 돈 사정이 좀 풀리나?

 답 : 여기는 큰살림이니까 나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문 : 홍사덕 위원장은 말을 참 잘한다. 그런데 말솜씨보다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이다. 아무리 말솜씨가 좋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궁색하면 말같이 들리지 않는다. 무지개연합이라는 새 정치를 주창하다가 한나라당이라는 헌 정치를 하려 하니 요즘 당신이 하는 말이 말같지 않다는 생각 안 해보았나? _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 편 : 노무현 시대의 명암 1>, p4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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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03-06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당신이 하는 말이 말 같지 않다-
사이다:-).
현재 언론도 언젠가는 부패도가 내려갈 터닝포인트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막연하게라도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06 12:50   좋아요 1 | URL
저도 2000년의 언론 기자가 이렇게 핵심을 잡아 이야기하는 글을 읽고 시원함과 함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함께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는 MBC 100분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언론 현실에 대해 밝힌 생각에 공감하게 됩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개선되기를 바라기보다 뉴미디어에 의한 대체가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갱지님 감사합니다.^^:)
 


 정의의 기초는 신의이다. 이는 말한 것과 계약한 것의 변치 않음과 진실됨을 뜻한다. 여기서 신의라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사람에 따라 이해가 잘 안 될지 모르지만, 용어들의 생성 과정에 대해 열심히 조사한 바 있는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말해진 것은 잘 이루어졌다는 데서 신의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니 믿기로 하자.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키케로의 의무론> , p31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106~BC43)는 로마를 대표하는 철학자, 정치가, 수사가다. 그는 나름의 정치철학과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언변을 가가지고 철학가, 정치가로서 공화정 말기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는데, <키케로의 의무론>은 그의 정치철학이 드러난 책이다. 본문에서 그는 공화정(共和政)의 옹호자로서 덕(德)의 전형을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Marcus Atilius Regulus, BC307 ? - BC250)에서 발견한다. 카르타고의 포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강화조약의 거부를 강조한 그의 모습에서 키케로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에 반대되는 도덕적 선의 전형을 찾는데, 이러한 덕의 전형은 오늘날 우리에게 '검소하고 우직한' 로마인의 이미지로 남아있기도 하다.

 

100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모든 인간사를 대수롭지 않다고 하여 경멸하는 것,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다 참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불굴의 정신과 용기라는 덕의 속성이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키케로의 의무론> , p239


 118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들은 쾌락을 제공하고 고통을 제거하는 지식으로서 지혜를 그들의 체계 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고통을 참기 위한 합리적인 수단으로서의 이헤 체계를 가르칠 때, 어떤 식으로든 용기를 설명한다. 쾌락의 절정은 고통의 제거와 일치한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정의는 그런 식으로 주장하면 흔들리거나, 아니 오히려 이미 기세가 꺾인 상태에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공동체와 인류사회에서 현저하게 식별할 수 있는 저 모든 덕들도 역시 그렇다. 왜냐하면 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선심, 돈을 막 푸는 것, 예의범절이 그 자체로서 추구되지 않고 감각적인 쾌락이나 개인적인 유익함을 위해서만 권장된다면, 이것들은 전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키케로의 의무론> , p254


  다른 한 편으로 그는 뛰어난 수사학자였다. 변호사로서 뛰어난 언변을 갖추고 있던  키케로는 전형적인 로마인의 생각을 담은 연설로 유명한데, 그에게 로마의 국부(pater patriae)라는 불멸의 명성을 가져다 준 사건 역시 BC63 카틸리나(Lucius Sergius Catilina, BC108?~BC62) 내란 음모를  파헤친 연설이었다. 그는 여러 면에서 뛰어난 로마 공화정의 우수한 정치인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뛰어난 능력과 사상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이기고 정계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정치 감각이 필요했던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82] 결론적으로 칭찬과 비난의 모든 원천은 덕과 악덕의 분류에 있다. 그러나 연설문을 전체적으로 맥락 잡아 구성할 때에는 다음의 사실이 부각되어야 한다. 어떤 이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길러졌는지,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성격이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중요한 일이 혹은 경이로운 뭔가가 일어났다면, 그리고 특히 그것이 신적인 현상으로 보이는 뭔가라면 말이다. 그 다음으로 어떤 사람의 판단과 말과 행동은 앞에서 논한 바의 덕목에 걸어 부각해야 한다. 그리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 및 사건 추이 경과의 경우는 '발견' 논고에 문의하면 된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수사학> , p270


[83] 정책 연설의 목적은 유용성이다. 의사 결정과 의견 개진은 모두 이 유용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에 따라 어떤 일이 실현 가능한지 아닌지와 어떤 일이 꼭 필요한지 아닌지를 정책 제안자나 반대자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만약 뭔가가 실현 가능하지 않다면, 제안이 비록 유용함에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고, 만약 뭔가가 꼭 필요한 일이라면, 이는 나머지 일들은 물론 공적 활동에서의 명예나 실리 앞에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p272)... [84] 그런데 실현 가능성을 따질 때, 아울러 얼마나 쉽게 실현될 수 있는지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 실현이 너무 어려운 경우 그것은 종종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필요성'을 검토할 때에는, 비록 절대적인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럼에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중요도가 매우 높은 일은 종종 꼭 필요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수사학> , p272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 체제, 토론과 연설,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지키려 했던 키케로의 분투는 공동체의 '이익(uilitas)'이라는 목표를 지향한다. 또한 키케로의 로마는 '도덕적 아름다움(honestum)'으로 완성되어야 했다. 상충하기 마련인 이익의 문제, 상충하는 쌍방이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는 이익의 합리성을 넘어선 것,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토론하고 타협하고 단합하고 발전하게 하는 것은 바로 '도덕적 아름다움'이며, 궁극적으로 그것이 좀 더 높은 수준에서 공동체의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키케로는 말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불행으로 내모는 현실은, 온정적이던 사람들마저 더는 온정적일 수 없는 불행의 일상화를 초래할 것이며, 이런 현실은 불행 자체보다 훨씬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라고.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설득의 청지> , p7/268


  형과는 달리 현실적이었던 동생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Quintus Tullius Cicero, BC102~BC43)는 형의 이런 부족한 부분이 더 크게 신경쓰였던 듯 햇는지, 형에게 선거에 이기기위한 여러 수단들을 제시한다. 당신의 고귀한 이상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먼저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투구(泥田鬪狗)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 이것이 담긴 책이 <설득의 정치>다. 독자들은 동생 키케로의 책을 통해 오늘날의 선거가 과거 선거제도의 충실한 재현임을 깨닫게 된다. 이점은 제20대 대통령선거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로와 실망을 함께 갖게 된다. 


 여기가 어딘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당신이 누구인지를 항상 기억하십시오. 광장에 발을 내디딜때마다 매일매일 자신에게 되뇌어야 합니다. "나는 주변인이다. 나는 집정관이 되고 싶다. 여기는 로마다." _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 , p20/162


 당신에게 빚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이야말로 선거에서의 지지로 빚을 갚을 때라는 점을 꼭 상기시키십시오. 당신에게 빚진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미는 도움의 손길에 당신이 곧 보답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십시오.(p24)... 특권 계급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당신이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 눈에 당신이 대중에 영합하는 사람으로 비쳐서는 안 됩니다. _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 , p26/162


 당신의 변론 덕분에 재판에서 승리한 사람들도 잊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확하게 말해주십시오(p62)... 아주 작은 호의를 베푸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를 당신 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을 지지하게 만들기가 한결 쉬울 겁니다. 지금 당신을 지지하지 않으면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이 되어 공개적인 망신을 당할 거라는 사실을 이해시킵십시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당신을 지지해준다면 언젠가는 당신의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_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 , p64/162


 당신에게 의무감을 느끼는 부류에는 당신의 변론 덕분에 재판에서 승소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이들은 당신이 아니었다면 재산과 명성, 때로는 목숨을 보존할 수 없었을 사람입니다. 그러니 당신 옆에 서서 따르라고 그들에게 당당히 요구하십시오. 신세를 갚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으니 반드시 당신과 동행하며 존재감을 드러냄으로써 보답해야 한다고 말하십시오. _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 , p105/162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는 정치인에게는 친구가 많지 않을 겁니다.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기대는 언제나 깨지기 마련입니다. 구름이 흘러가듯 상황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지키지 못한 약속은 대부분 잊히고 당신에 대한 분노도 희미해질 것입니다(p123)... 약속을 깬 결과는 불확실하고 그것으로 상처 입은 사람도 적습니다. 하지만 약속 자체를 거절할 경우 결과는 확실하고 더 많은 유권자들에게 즉각적인 분노를 일으킵니다. _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 , p125/162


 당신의 선거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당신에 대한 호감을 심어주는 겁니다. 하지만 원로원을 향해서든, 일반 대중을 향해서든 명확하고 구체적인 약속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애매한 일반론을 고수하십시오. _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 , p135/162


 뇌물은 때때로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법정으로 끌고 갈 것임을 경고하십시오(p139)... 실제로 당신의 경쟁 후보들을 뇌물죄로 법정에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당신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만 알려주어도 충분합니다. 두려움이 실제 소송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_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 , p141/162


 동생의 조언 덕분인지 키케로는 BC63에 집정관에 당선하는데 성공하고, 같은 해 카틸리나 음모를 저지하면서 정치인으로서 정점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렇지만, 이 성공이 후에 그의 발목을 잡게 되어 카틸리나 등을 재판없이 처형했다는 이유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인생의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의 호재가 사실은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과 함께 경계와 위로를 함께 준다.


 출근을 앞두고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나온 안철수-윤석열의 전격단일화 선언 뉴스를 접했다. 키케로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연설가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치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보면, 이에 못미치는 현실 정치인들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페이퍼 첫 문장처럼 '정의의 기초는 신의다'라는 기본 명제까지 깨뜨리는 모습은 좀 지나치지 않나 싶다. 무슨 장난질을 펼치더라도 대부분 유권자들은 이미 마음을 정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뜻과 열망'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벌이는 막장극을 보며 현혹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의 쇼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투표가 끝나면 분명 어느 한쪽에서는 '위대한 국민의 선택'이라 할 것이고, 다른 편에서는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라고 메세지를 낼 것이라는 사실..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연설> 앞부분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더는 현혹되지 말자.


 1.1 카틸리나,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인내를 남용할 것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의 광기가 우리를 조롱할 것인가? 어디까지 당신의 고삐 풀린 만용이 날뛰도록 놓아 둘 것인가? 팔라티움 언덕의 야간 경비, 도시의 보초병, 인민의 공포, 모든 선량한 시민의 회합, 빈틈없는 경호 아래 개최된 오늘의 원로원, 이곳에 참석한 위원들의 표정을 보면서 당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가? 당신 계획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을 느끼지 못하는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짐으로써 당신의 음모가 이미 좌절된 걸 보지 못하는가? 어젯밤에, 그저께 밤에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를 불러 모았는지, 어떤 계획을 꾸몄는지, 당신은 우리 가운데 누가 모를 것으로 생각하는가?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설득의 정치> <카틸리나 탄핵연설>, p7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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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이는 월선의 무덤가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일어섰다. 달리 할 말도 없거니와 감회도 없었다. 할말이나 감회가 없었다기보다 죽음과 이별의 냉혹함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해야 옳은지 모른다. 절대적 침묵이 냉혹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절대적 사실에는 누구든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홍이도 길들여졌던 것이다. 그리움이며 고마움이며 한 인간의 심신을 형성해준 요람이었을지라도 그 인연들이 형체없이 사라지고 청산이 되었는데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원한 침묵의 냉엄함과 망각의 비정,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_ 박경리, <토지 16> , p26/592


 토지문화 독서챌린지 31주차. 홍이는 월선의 무덤가에 있다. 김두수의 협박담긴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홍이는 자신의 마음과 다른 행동으로 심한 마음고생을 한다. 분열되는 자아. 그것이 홍이의 지금 모습이 아닐까. 홍이는 자신의 영원한 어머니 월선 앞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말이 없음을 말할 수 밖에 없는 홍이. 홍이는 소외되고 외로웠다. 하지만, 소외된 홍이의 침묵은 무(無)가 아닌 새로운 가능태(可能態)임을 우리는 읽을 수 있고 소망하게 된다.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침묵은 그야말로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위대하다. 침묵은 존재한다. 고로 침묵은 위대하다. 그 단순한 현존 속에 침묵의 위대함이 있다. 침묵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침묵은 모든 것이 아직도 정지해 있는 존재였던 저 태고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침묵은 창조되지 않은 채 영속하는 존재이다. _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 p17


 요컨대 우리는 발화되기 이전의 파롤과, 그것을 끊임없이 에워싸고 있는 침묵의 배경을 고찰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이 없으면 파롤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파롤과 뒤얽혀 있는 침묵의 끈들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p51)... 표현하는 예술이 지니는 새로움은, 침묵하는 문화를 죽음과도 같은 순환에서 빠져 나오게 한다. 예술가는 숭배나 반항에 의해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재개하려고 한다. _ 메를리 퐁티,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 p139/262


 침묵과 침묵의 배경을 통해서 우리는 새롭게 말해질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단순한 발화행위 자체보다 행위가 속해있는 배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월선의 무덤가에서 말이 없는 홍이. 홍이의 모습은 단순한 감회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나온 또다른 발화 행위가 아닐까. 그리고 이는 홍이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처한 공통된 상황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 민족은 일본의 볼모다. 일본이 망하리라는 희망적 정세 앞에서 우리가 앞날을 어둡게 절망적으로 내다보는 것은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소모될 것인가, 얼마나 살아남을 것인가, 해서 희망과 절망의 양면을 지닌 날카로운 칼끝에 우리가 서 있다고 말한 게야. _ 박경리, <토지 16> , p48/592


 조선인들은 모두 순간순간 그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 억압과 빚어진 습성 같은 것이지만 이제는 북녘땅에서 실려오던 신화 같은 것은 없다.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 있을 뿐 전쟁의 함성, 전과(戰果)만 대서특필, 전해질 뿐, 모든 것은 일본이 파놓은 깊이 모를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창씨개명, 조선어 금지, 지원병 제도, 민족신문의 폐간, 노동력 차출, 식량공출, 유명무명의 조직 확대, 관리들과 학교 교사까지 준군복(準軍服)인 카키 빛 국민복으로 갈아입은 지도 오래이며 중학교는 물론 여학교까지 교련이라는 명칭하에 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다. 친일파는 친일파대로 우국지사는 우국지사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지식인 학생들, 장사하는 사람, 막노동꾼, 농민, 고기잡는 사람, 하급관리, 월급쟁이들 할 것 없이, 각기 위치와 관점은 다르지만 보다 가혹한 수난이 이 민족에게 닥쳐오고 있다는 예감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으로 감지되는 것이며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젊은 엄마에게도 어느 순간 불안과 공포는 찾아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_ 박경리, <토지 16> , p184/496


 1930년대 후반, 태평양 전쟁 직전의 상황에 더할 수 없는 어둠이 내려오던 시기에 모든 이들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침묵의 세계는 결코 순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변혁이며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소외된 의식이 느끼는 죽음과도 같은 절망은 이제 새로운 도약의 동력이 된다. 이것이 <토지>에서 길상의 관음탱화로 표현되는 것은 아닐까.


 침묵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세계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산산조각이 난 한 세계의 잔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잔해는 그것이 잔해인 까닭에 사람들을 무섭게 만든다. 때로 어떤 도시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거리의 소음 한 가운데에서 쓰러져 죽는다. 그럴 때는 마치 가로수 꼭대기에 아직 여기저기 앉아 있는 침묵의 조각들이 갑자기 죽은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는 것 같다. 그 침묵의 잔해들이 죽은 자의 침묵에게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 같다. 한순간 그 도시는 정지하게 된다. 침묵의 잔해들은 이제 그 죽은 사람의 곁에 있으며 죽음의 틈을 통해서 그와 함께 죽음 속으로 사라지려고 한다. 죽은 자가 침묵의 마지막 잔해들을 동반한다. _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 p212


 길상이 요주의(要注意) 인물로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사실 서희의 경우는 외관상 분리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간도에서 돌아온 후 이십여 년 동안, 김환과 길상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활동과 투쟁을 교묘히 엄폐해가면서 꾸준히 최씨 일문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져왔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앞뒤가 다른 가면을 쓰고서도 늘 앞면만 보여왔다 할 수 있고, 그러니까 친일적 경향을 띠면서 회유의 손길을 뻗쳐놓을 필요가 있었고 요소요소, 상당히 광범위하게 호의(好意)의 통로를 만들어놨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6> , p478/494


 개인 스스로가 끝내 도달하는 보편적인 모습이 '죽음'이라는 순수한 존재(das reine Sein, der Tod)이다. 이는 절로 그렇게 되어가는 자연의 결과로서, 의식의 행위는 아니다... 인간이 공동의 세계에서 누리는 죽음의 안식은 참다운 의미에서 자연에 속하는 것은 아니므로 자연이 죽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듯이 내세우는 교만함을 불식하고 죽음의 진실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 죽음을 당한 가족이 치러야 할 의식(儀式)의 참뜻이라고 해야만 하겠다. _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정신현상학 2> , p28


 길상도 홍이처럼 소외된 세계 속의 인물이다. 자신의 내면은 독립을 외치고 있지만, 감시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부인 서희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그의 주변은 친일(親日)의 세계다. 그 역시 내면의 목소리를 감추고 분열되고 소외된 의식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다시 근원의 모습으로 돌아가 관음탱화(觀音幀畵)에 매진하는 것은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자아의 침묵이라는 언어행위는 아닐런지... 이번 독서챌린지에서는 전쟁에 끌려가는 민족의 불행이라는 보편적 상황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는 개별자들의 소외와 죽음과도 같은 고통, 그리고 이러한 고통의 승화로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글 속에서는 의미 작용이 조각상 속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다른 방식으로 집결되며, 어떤 것도 그 파롤의 유연성에 비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언어는 말하는 것이고, 회화의 목소리는 침묵의 목소리인 것이다. _ 메를리 퐁티,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 p144/262


  정신의 첫번째 현실성은 종교의 개념, 다시 말하면 직접적이고 따라서 자연적인 종교이다. 여기서는 정신이 자기를 자연 그대로의 직접적인 형태를 띤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두번째 현실성은 자연적인 요소를 탈피한 자기의 형태 속에서 자기를 인지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곧 예술종교이다. 형태가 자기의 모습으로 고양되기 위해서는 의식이 대상을 창출해야만 하는데, 이렇게 되었을 때 의식은 대상 속에서 자신의 행위와 자기를 직관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 현실성은 앞의 두 경우에 안겨져 있던 일면성을 제거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자기가 하나의 직접적 존재인 것 못지않게 직접성이 그대로 자기가 되어 있다. _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정신현상학 2> , p247


 절대예술의 단계에 오면 정신은 예술을 넘어선 곳에서 더욱 고차적인 표현을 이루어내게 된다. 즉 자기로부터 태어난 인륜의 실체가 표현될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이 자기가 표현의 대상이 되고, 개념으로부터 자기를 낳을 뿐만 아니라 개념 그 자체를 형상화하여 개념과 제작된 예술작품이 서로 동일한 것임을 확인하게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륜적 실체가 단지 현존하는 세계를 이루는 데 그치지 않고 순수한 자기의식 속으로 되돌려지게 될 때 이 자기의식은 개념을 등에 업고 활동하는 주체가 되며 여기에 힘입어서 대상으로서의 정신이 산출되기에 이른다. _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정신현상학 2>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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