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매너놈이 중복서평 안 쓰는 이유, 그리고 첨언

다 까놓고 시작하자. iamX님과 매너놈은 ㅍ모 동호회에서 먼저 얼굴 마주한 동갑내기이며, 몇 번 마주하여 술잔 기울인 적은 있지만(물론 녀석은 안 기울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녀석은 술, 거의 하지 않는다) 2003년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 그간 주고받은 대화로 녀석의 세계관에 공감대를 느끼고 사석에서 면 트고 말 까고 몇 번 시덥지도 않은 농담 주고받은 관계로 온라인에서도 말 트고 산다. 2003년 이후에는 면전 마주한 일은 없지만 두 놈 다 인터넷 뒷조사엔 도가 틀 만큼 틀 인간들이라 그 이후 행적은 서로가 잘 알고 있으나 티내진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너놈이 남의 블로그에 처음 가서 남기는 댓글에 말 툭툭 트면서 이런 소리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움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iamX님은 "인터넷 서점의 중복서평을 고발한다 - 1"이란 포스팅을 지난 주 월요일에 쳤다. 본인이 꽤 오래전부터 공감했지만 이런저런 뒷감당과 설명이 귀찮아 감히 밖으로 내놓고 이야기 하지 못한 얘기였다. 해당 글의 원본 링크한다.

http://iamx.net/blog/377

해당 글 보시면 알겠지만, 매너놈은 이런 시니컬하고 버르장머리없는 댓글까지 달아놓았다.

mannerist 2007/01/09 11:10 L R X
호호호.

다시 한 번 불 좀 질러볼까. 이따 저녁때 링크 좀 따간다. 또 착한나라 사람들 징징대는 목소리가 귓속에 메아리치는구만.

("모처"에서 거의 매일같이 마주하는지라 인사는 생략;)

난 iamx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 대 쥐어박으면 될 걸 왜 이리 다구리를 쳐."

매너놈의 생각도 그렇다. iamx님의 비난의 정도가 좀 심하긴 하지만 그리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위서가님이 교보 블로그에서 제기하셨던 서평의 질과 동일 서평의 범람으로 인한 전체적 퇴화에 대해서는, 본인은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 고로 제외한다(관심있는 분은 여기 가서 해당 포스팅 찾아보시길.http://booklog.kyobobook.co.kr/toktomish ). 오로지, 매너놈이 지적하고 싶은 건 '돈'문제다. 전제해야될 건, 매너놈의 관점에선 공적인 돈, 지가 노력으로 벌어들일 돈은 단돈 10원도 칼 같이 떨어지도록 깔끔을 떨어야지, 안그러면 사람 망가지는건 순식간이라는 거다.



1. 온라인 서점에 올리는 서평이 오로지 '책'만을 위한 존재인것이 가능한가?

결론부터. 불가능하다.

올리는 사람이야 그런 의도로 올린다고 할 지라도 포스팅해서 오케이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그 텍스트 문자열은 필자의 의도대로 '좋으나 안 팔리는 책'의 홍보 역할을 하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의 컨텐츠로써 마케팅의 수단이 되고 동시에 각 인터넷 서점에서 실시하는 마일리지 혜택과 우수 서평 인센티브 부여의 잠정적 대상이 된다. 이런 마일리지는 대부분 금전적 인센티브의 성격을 지니므로 서평은 등록된 순간 필자의 선의와 상관없이 해당 개인에게 적든지 크든지, 이익이 돌아가게 된다. 그러한 혜택을 자신이 먼저 포기하지 않 한, 인터넷 서점에 서평을 올리는 행위는 최초 필자의 의도와 동시에 지대 추구 행위의 성격을 띄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이런 혜택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인터넷 서점에 올리는 서평은 두 가지의 성격, 안 팔리나 좋은 책에 대한 홍보와 같은 최초 필자의 의도와 동시에, 해당 필자의 개인 이익 추구의 두 가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둘 중 어느 것의 순기능 혹은 역기능이 클 것인가? 매너놈은 정확히 판단내리기는 힘들지만 둘 다 무시할 수준은 못된다고 본다.



2. 그렇다면 동일한 글로 서로 다른 두 군데에서 이익을 추구하는게 온당한 일인가?

찝찝한 일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동일한 칼럼이 한겨레 조간 23면과 경향의 칼럼란에 실려있다고 상상을 해 보기 바란다. 땡스투 마일리지 적립금 부여는 금액이 작잖아, 이주의 서평에 당첨 안 되면 가능성에 그치는 거잖아.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익 추구의 가능성이란 점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이주의 서평에 당첨되지는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서평을 많이 올리는 사람에게 각 인터넷 서점은 어떤 형태를 띄든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두 군데 인터넷 서점에 서평을 동시에 올리는 거, 한 번 쓴 거 가지고 울궈먹는 찝찝함 때문에, 그리고 알라딘에서 땡스투 받거나 이주의 마이리뷰 당첨된 녀석이 다른동네에서도 당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때문에, 그런 경우 매너놈이 예를 든 사례와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에 그런 일은 안 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말고 딴동네에 끄적'이 존재한다. 한 군데 리뷰로 썼으면 다른 동네에는 포스팅으로 갈음한다. 리뷰 당첨의 가능성을 없에기 위해서였다. 다른 데 써서 원고료를 받은 글도 마찬가지이다. 매너놈이 사보에 실은 글도 그래서 리뷰가 아니라 이 카테고리에 쓴다. 땡스투의 가능성에 대해 깜박하고 그 상품 링크는 걸어놨는데 이 글 마무리하자마자 끊을 생각이다. 이정도 깔끔함은 지켜야 매너놈은 그나마 어깨 피고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당시에는 페이퍼에 대한 thanks to 제도가 내 기억엔 없었지 싶다.(이 관련 이야기는 아래에 계속)



3. 그럼 젠장, 내가 쓴 글 내 홈피에도 쓰지 말란 얘기냐?

무슨. 사적 이익 추구의 가능성이 없는 곳은 상관없다. 즉 자기 개인 홈피에 게시한 글을 인터넷 서점 1군데에 올리면 그닥 문제될 건 없다. 자기 개인 홈피에 부가가치를 부여하여 볼때마다 돈 받게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렇다면 그 돈으로 이익을 추구하거나 그런 가능성이 있는 곳은 1곳인 거니까.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던것처럼, 이미 한 번 댓가를 받았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이익을, 혹은 그 가능성을 추구하는것은 문제 있다고 본다.



4. 그래서 첨언.

정군님의 글을 보고 좀 아쉬웠던 것은, 이런 측면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충성소비자론'으로 도맷금했다는 점. 여기에 '나는 좋은 책을 소개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만 올릴 뿐이다. 다른 측면은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라면, 매너놈은 더 붙일 말이 없다. 최소한의 전재, 동일 행위의 여러 성격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무슨 말을 더 붙이겠는가. 정군님의 심기가 좀 불편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래서 아쉽다. 소개글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고, 만만찮은 생각도 많이 접하셨으리라 짐작하지만, 다른 시각 - 물론 그게 대단히 과격한 언사로 겹겹이 둘러싸여있고, iamx님 본인도 분기탱천이 앞어 이 문제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 기울인 적이 없다면 쉽게 알아채긴 힘들겠지만 - 에 대한 고려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앞에서 했던 이야기 다시 한 번.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터넷 서점에 올리는 서평 행위가 필자의 좋은 의도와 인터넷 서점의 잇속이란 다중적 측면을 동시에 띄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 떳떳하려면 적어도 한 군데에서 받는 혜택을 제외한 다른 인터넷 서점에서 받는 혜택을, 자신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여,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자본주의 서점 공급 시스템이 부과한 다중적 측면의 한 쪽을 떨궈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매너놈이 허용할 수 있는 중복서평 등록은, 알라딘과 교보 양쪽에 서평을 올리면서 교보문고 서재 대문 혹은 자기소개에 '알라딘과 중복거제한 서평이며, 알라딘 서점의 이주의 마이리뷰 후보가 됨과 동시에 땡스투 가능성이 있는 포스팅으로도 등록되므로, 교보문고에서 부여되는 모든 인센티브는 사용할 예정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쓰고 이를 지켜, 자신의 서평을 지대 추구의 ㅤㄷㅓㅈ에서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런 선언이 없거나, 혹은 두 군데 이상의 서점에서 동일한 서평으로 부과된 마일리지를 사용한다면, 금액의 작고 큼을 떠나 상기에 제기한 도덕적 책임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5.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을 해야 해?

매너놈의 대답은 예. 이다. 동일한 행위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는 다면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수긍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책 한 권 더 읽혀 뭘 할 것인가. 세상엔 책 많이 읽은 인간 말종, 널리고 널렸다. 시사저널을 이지경으로 만든 사태 최정점에 있는 이학수는 서양미술과 고흐에 전문가 뺨치는 감식안을 가졌으며, 눈에 뵈는 여자마다 껄떡대고 두번째 만난 여성에게 섹스가 어쩌구, 즐기는 관계가 서로 좋지 않겠냐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뒷담화 퍼뜨리는 것도 모자라, 도무지 매너놈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태어나서 매너놈의 배때지 쑤셔버리고 싶다는 말을 내뱉은 양반은 매너놈이 아는 남자 중 가장 소장 장서가 많은 남자였다.



6.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정군님을 비롯한 중복 서평 거제하시는 분들 재고를 부탁드린다.
논점과는 조금 벗어나지만 매너놈의 잡문과 더불어, 이 글도 읽어보시길 권한다.
http://booklog.kyobobook.co.kr/toktomish/B2912824/36495

그리고, 저런 '치사한'혐의를 벗기 위해서라도, 한 군데를 제외한 나머지 인터넷 서점에서 부여되는 마일리지에 대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시는 게 어떨지 싶다. 이게 힘들다면 소극적으로라도, 다른 곳에서 부여받은 마일리지를 사용하지 않아 1년 혹은 특정 기간 후 자동 소멸되게 한다면, 그것도 차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봐서 알라딘, 인터파크, 예스24, 리브로에 달린 모든 책의 독자리뷰 50%가 동일한 때를 - 지금 추세로 봐서 그리 멀지 않은듯함 - 상정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한 표, 그것이 안 팔리는 책 잘 팔리는 것과 별 상관관계 없을거란 데 다시 한 표 던진다.





iamx님께 넋두리_이건 오늘 ㅅ누나랑 전화하면서 도 한 얘긴데, 내가 먼저 치고 나간다고 얘기만 해 두고 밍기적거리다가 당신이 톤 조정 못한 글이 이쪽 풀려 당신에 대한 적잖은 조리돌림으로 풀리고 있는 것 같다. 씁쓸하면서도 미안하다. 월요일 집구석 제사 지내자마자 이십대 들어 처음 제대로 걸린 몸살감기에 2006년 실적 마감까지 겹쳐 미쳐 돌아갔다는 핑계가 절반, 그리고 이야기를 꺼내면 어떤 형태를 띄든 내가 심정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사람까지 대상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감기 기운이 떨어진 어제 저녁 내가 망설였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더불어, 내가 월요일 댓글을 쓰면서 염두에 둔 글의 내용은, 당신의 해당 글을 링크시키고 비난의 수위가 지나친 점은 있지만 문제제기만은 타당하며, 그런고로 알라딘 운영진은 다시 한 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내용으로, 한 두 페이지 정도에서 끊으려고 했었음. 저 댓글의 냉소적이고 오만방자한 어투와 매치가 안되는거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동갑내기 친구놈과 어깨 두드리면서 주고받는 말이 공식반응하고 같은게 이상한거지 뭐. 그렇다우.

살아있으면 뭐. 언젠가 또 만나겠지. '업계'사람들에게 안부나 전해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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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2.0 시대, 포털과 언론의 바람직한 관계는? 
[기고] 매체의 권위 벗어난 '개방' '분산' '공유'의 정신
 

(출처: 프레시안)

미국의 시사주간지

하지만 이런 현상을 낯설어 하는 이들도 아직은 많다. 이와 함께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타고 전파되는 'UCC 열풍'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저작권 문제, 콘텐츠의 신뢰성 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웹(Web)'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지적돼 온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떼 놓을 수 없는 도구로 자리잡은 '웹'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불과 14년 전의 일이다. '웹'이 없던 시절에는 복잡한 명령어를 사용할 수 있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 1991년 스위스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소속 물리학자 팀 버너스 리가 인터넷을 이용해 보다 쉽게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www'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3년 4월 '웹'은 첫 모습을 드러냈다.

'웹'의 다양한 부작용에 주목하는 이들조차 지난 14년 간 '웹'을 통해 빚어진 변화의 의미를 통째로 부정하지는 못한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웹'이 큰 변화를 낳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웹'을 만들어 낸 이들이 품었던 '개방', '분산', '공유'의 정신을 이유로 꼽는다. '웹'의 탄생이 소수의 정보 독점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21세기의 시대정신에 부합했다는 것.

수많은 부작용과 해결되지 않은 과제에도 불구하고 'UCC 열풍'이 전문가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것이 '웹'을 만들었던 이들이 꿈꾸었던 것과 맞닿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정보의 생산에 참여하고 자유롭게 그것을 나누는 세상'이라는 꿈이다. 'UCC 열풍'은 최초의 '웹' 기술이 가져온 것만큼의 변화를 낳을 수 있을까.

사실 언론이 'UCC 열풍'에 주목하기 전에도 이런 의문을 품었던 이들은 많았다. 그들은 정보기술(IT)의 세계에서 'UCC'로 대표되는 어떤 새로운 흐름이 일고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웹2.0'이라 칭했다.

단지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웹을 처음 만들었던 이들이 꿈꿨던 '대중의 폭넓은 참여와 공유'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는 기술과 서비스가 태동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2.0'이라는 것이다.

'UCC', '웹2.0' 등의 용어가 낯설게 여겨지는 이들이라도 이런 개념에 바탕한 서비스에는 대개 익숙하다. 대표적인 것이 네이버의 '지식인'서비스. 누리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초보적인 '웹2.0' 서비스인 셈이다. 소규모 벤처기업이던 네이버를 거대기업으로 도약하게 된 것도 이런 서비스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네이버는 '웹2.0'의 정신을 절반만 수용했다는 비판을 종종 받았다. 누리꾼들의 참여를 네이버라는 거대 포털의 틀 안에 가뒀다는 것. 언론도 이런 비판에 동참했다. 언론이 제공하는 기사를 네이버가 자의적으로 배치하면서 편집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권력 행사는 네이버의 성장을 가능케 했던 누리꾼들의 참여 정신과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네이버는 지난달 초 이런 비판을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 중 하나가 '아웃링크' 방식의 뉴스 면 개편이다. 포털의 뉴스 면 편집권 일부를 해당 언론사에 넘기고, 누리꾼들이 자유롭게 언론사를 택할 수 있게 한 것. 그리고 뉴스를 클릭할 경우 해당 언론사의 웹 사이트가 열리게 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기존의 언론-포털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그리고 '웹'을 창안한 이들이 품었던 이상에 비춰볼 때 어떤 의미와 한계가 있을까. IT칼럼니스트 김중태 씨가 이런 의문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김 씨는 '웹2.0'을 다룬 <시맨틱 웹>을 비롯, IT분야에서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으며 IT업체 관계자들이 '웹'이 낳을 변화의 방향에 대해 종종 자문을 청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김 씨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중에게 낯설던 시절부터 '정보화'가 낳을 변화가 과학기술자들만의 관심사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해 왔다. 인문사회과학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것. 그리고 김 씨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한글 문화운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래서 김 씨의 글에는 '클릭'을 대체하는 한글 표현인 '딸깍' 등이 쓰인다. 다음은 김 씨의 기고 전문이다. <편집자>

모든 정보의 연결을 꿈꾸며 세상에 나온 웹

웹을 만든 팀 버너스 리는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상태에서 서로의 자료를 공개하고 이렇게 공개된 자료를 하이퍼텍스트를 이용해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한민국 안에서 정보 유통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포탈 사이트는 웹의 기본정신과 거리를 두었다. 포탈 1위인 네이버의 지식인이나 블로그를 예로 들자면 네티즌이 공개한 자료를 이용해 만든 게시판임에도 외부 웹검색이 불가능하다.

네이버의 정체 자체가 다른 사이트에 공개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검색해서 보여주는 검색 사이트이면서 정작 자기 사이트의 문서는 외부에서 검색할 수 없는 이기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닫힌 인터넷'이라고 비난을 받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네이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포탈, 신문사 사이트를 비롯해 대형 사이트 상당수가 가지고 있는 문제다. 웹2.0이라는 열풍이 전세계를 휩쓸 때도 그 흐름에 선뜻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는 닫힌 구조를 가진 서비스였기 때문인 것이다.

2006년에 인터넷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웹2.0은 쉬운 웹(easyweb)을 향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의 글쓰기를 이용하면 과거와 달리 두꺼운 HTML 문법과 FTP 사용법을 몰라도 글을 쓸 수 있고, 코덱이니 인코딩이니 하는 작업을 몰라도 동영상 파일을 손쉽게 사이트에 올려 공유할 수 있다. 그 결과 2006년 한 해 동안 일반인이 만든 동영상을 뜻한 동영상 UCC가 큰 인기를 끌었다.

쉬운웹을 통해 정보 독점을 벗어나고 공유와 분산 시대로 향하다

이러한 공개와 공유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 한국의 포탈도 웹2.0 시대를 준비했다. 네이버는 2006년에 불여우(Firefox) 브라우저 지원을 시작으로 공개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s,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함수들의 집합. 이를 공개할 경우 특정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제공, 네이버 지도의 Ajax(웹에 접속한 PC에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 이용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 변환, 아웃링크(뉴스를 클릭하면 뉴스를 제공한 사이트가 열리는 서비스) 등의 정책을 실시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역시 웹표준 지키기를 비롯해 블로거뉴스, 다음TV팟 등의 다양한 웹2.0 서비스를 실시했다.

폐쇄적인 시스템을 이용한 정보 독점으로 성장한 국내 포탈이 좀더 개방적으로 바뀐 이유는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정보 독점이 가능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보의 생산과 유통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라는 계층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네이버 지식인에 답변을 다는 대신 자신의 블로그에 지식과 경험을 올린다.

포탈을 거쳐야 검색이 가능하고 유통이 가능했던 정보는 RSS(자주 업데이트되는 웹사이트의 새로운 정보를 자동으로 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와 같은 배포도구의 보급을 통해 중앙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유통이 가능한 분산화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신문사나 포탈 등이 장악하던 중앙집중식 정보 독점이 개인에게 점차 분산화되기 시작하면서 중앙기관의 힘은 약해지고 개인의 힘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 결과 좀더 많은 사람에게 성장의 기회가 생겼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정부나 언론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었다. 이 모든 일은 개인용 정보기기의 발달과 쉬운웹의 발달 덕분이다.

이제는 기자가 폭탄 테러 현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동네 사람은 이미 블로그에 현장 사진과 함께 테러 상황을 보고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동네 사람이 찍어 올린 사진과 글은 RSS라는 배포도구를 통해 순식간에 네티즌에게 퍼지게 되고, 올블로그나 플릭커, 유튜브 같은 공유 사이트를 통해 몇 시간이면 전세계에 퍼진다.

평범한 대학생 임정현 씨가 캐논 변주곡을 기타로 연주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유투브에서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기까지 포탈이나 언론이 한 일은 없다. 자기 방의 캠으로 찍은 동영상을 웹에 올린 임정현 씨의 노력과 이 동영상을 보고 추천한 네티즌,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가 동영상 UCC 열풍을 가져오고 한 개인을 스타로 만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처럼 웹2.0이라는 낱말로 표현되고 있는 쉬운웹의 물결은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웹사이트와 매체에 새로운 변화를 줄 것이다. 웹을 통해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딴지일보>, <미디어몹> 등과 같은 온라인뉴스가 만들어지고 시민기자가 가능해진 것처럼 쉬운웹을 통해 메타사이트 방식의 새로운 언론이 생길 것이고, 1인기자 시대가 가능해질 것이다.

메타언론의 주요 경쟁력 기준은 개인 정보를 최대한 많이 가져오는 것과 이들 정보에서 대중적 가치가 높은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뽑아내는 추천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살아남으려면 기존 언론 역시 분산하고 개방하고 혼합하는 변화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 네티즌이 사이트로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서야 하며, 저작권을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2차 생산물을 획득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웹에서 출발한 포털이 끊임 없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언론사는 과거의 영화에 사로잡혀 변화에 둔감하다. 그 결과 언론사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포탈의 힘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애초 포털이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이유는 언론매체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수 많은 서비스 중 하나로 뉴스 서비스를 시작했고, 다른 포탈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존 신문사에 돈을 줘가면서 뉴스를 공급받았던 것이다.

포털로서는 뉴스를 사오는 돈이 일단은 부담이다. 결국 경쟁에서 진 사이트는 추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1세대 포털인 네띠앙 등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누구도 네띠앙이 신문사 때문에 망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네띠앙은 단지 경쟁에서 진 기업이고 경쟁에서 진 기업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문사가 망한다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져서 사라지는 것이지 포탈 때문이 아니다.

신문의 경쟁자는 동종 신문에서 스포츠지, 경제신문, TV, 라디오, 영화, 잡지를 거쳐 케이블TV, 위성방송, 온라인신문, 온라인잡지, DMB, IPTV, 포탈, 무가지까지 확장되고 있다. 신문이 살아남으려면 이 모든 경쟁자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는 방식 대신 자사의 기사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정책을 실시해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다음은 블로거들이 올리는 글을 기사로 제공하는 블로거뉴스를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종교방송인 CBS는 인터넷언론과 무가지 시장에 진출하며 영역을 확대했다.

반면 디지털조선이나 조인스닷컴, 동아닷컴은 독자적인 언론으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고, 모기업에서 모든 책임과 운영경비를 부담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SBSi, iMBC 등 역시 방송국도 아니면서 인터넷 기업도 아닌 애매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 기업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기존 매체의 권위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138년 전통의 독일 업체로 1936년에 세계 최초로 컬러 필름을 판매한 아그파가 파산한 이유는 디지털시대를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수십 년 전부터 디지털카메라를 대비해 온 코닥은 여전히 건재하다.

1975년에 코닥의 엔지니어 Steve J. Sasson이 만든 KODAK Ptorotype CCD Digital Camera는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초의 디지탈 카메라다. 코닥은 이미 1991년에 상업용 제품인 DCS100을 출시하며 디지털카메라 시장과 디지털 인화시장에 대비하지만 아그파는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한 기업은 망하고 한 기업은 살아남았다. 미래를 준비하고 변화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특히 디지털시대에 더욱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남이 마련해준 아웃링크, 내가 마련하는 변화

2006년 12월 1일부터는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에서 제한적인 아웃링크 방식을 시작했다. 아웃링크는 네이버에서 뉴스 제목을 딸깍(클릭)할 경우 해당 뉴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이동시켜주는 방식을 말한다.

예전에는 네이버뉴스 안에서 <프레시안> 기사를 보여줬지만 아웃링크는 <프레시안> 사이트의 해당 기사 화면으로 이동시켜주는 방식이므로 네이버라는 주소를 벗어나게 된다. 단 모든 뉴스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검색 결과에 나타난 뉴스 등으로 적용 범위에 제한을 두고 있다.

아웃링크는 언론사의 요청을 네이버가 수용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지만 대형 언론사에게 큰 이익을 안겨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뉴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검색결과 등으로 한정되어 적용되기 때문에 아웃링크로 해당 언론사를 방문하게 될 네티즌의 수는 한정된다. 또한 아웃링크로 해당 언론사를 방문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들 네티즌은 해당 기사만 보고 창을 닫을 확률이 높다.

언론사는 자기 사이트로 방문객을 보내달라고 요구만 했지, 아웃링크로 유입된 네티즌을 붙잡는 방법과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2007년 초부터 IE7(인터넷 익스플로러 7) 브라우저가 보급되어 탭브라우징이 일상화될 경우 사람들은 아웃링크로 열린 탭을 더욱 쉽게 닫을 것이다. 네이버에서 보고 싶은 기사를 탭으로 주루룩 열어서 본 뒤에 하나씩 닫는 방식으로 탭브라우징을 사용할 것이다. 결국 외부에서 기회를 마련해준다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준비하고 변화한 언론사만이 그 결과를 얻을 것이다.

더구나 아웃링크를 통해 방문객과 함께 악용(abusing, 음해성 댓글에 대한 책임 등을 가리킨다) 처리비용도 자신들에게 넘어오기 때문에 방문객 증가를 마냥 기뻐할 수 없다. 규모가 작은 사이트일 경우 아웃링크로 유입된 방문객에서 빼내는 수익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 반면 트래픽 부담이나 악용 처리비용에 들어가는 비용은 크게 증가할 우려가 있다. 아웃링크의 득실을 따지려면 아웃링크로 인해 전가되는 비용 문제까지 내다봐야 하는 것이다.

개방, 분산, 공유, 공개가 화두다

지금까지 폐쇄적인 국내 포탈은 점차 개방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다음을 예로 들자면 daum.net이라는 도메인에 서비스를 가두려는 욕심을 포기했다.

다음블로그는 daum.net이라는 도메인을 포기하고 티스토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미디어다음의 블로거뉴스는 2007년에 다른 포탈사이트의 블로거나 설치형 블로거들에게도 개방될 것이다. 다음의 각종 서비스는 공개API로 제공되어 다양한 곳에서 활용될 것이며, 다음의 TV팟 동영상은 외부의 모든 홈페이지 문서에 삽입될 것이다. daum.net이라는 도메인에 가두고 폐쇄적으로 독점하려는 마음을 버리는 순간 더 큰 땅이 다음의 땅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개방화와 분산화, 공개와 공유는 웹2.0 시대의 중요한 흐름이고 이에 맞추기 위해 포탈은 노력하고 있다. 반면 언론사는 변화에 느리다. 아직도 기사의 저작권을 주장하고 자기 사이트로 와서 보라고 외친다. 언론사의 기사와 사진을 다른 사이트의 문서에 삽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신문사가 없고, 공개API를 지원하는 신문사가 없다.

그러나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한다. 초창기 웹의 시대에는 신문사로 와서 기사를 보라고 했지만 웹2.0 시대에는 신문사의 기사를 미니홈피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도록 분산형 도구를 지원해야 한다.

네티즌들이 한 개인의 블로그에 놀러갔다가 A신문사의 기사를 보고 그 자리에서 덧글을 쓰거나 기사를 작성해 송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신문사 사이트가 아닌 곳에서 기사를 검색하고 덧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블로거들이 인용하는 뉴스가 자기 회사의 뉴스가 되도록 최대한 편리한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블로거들이 생산한 각종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 잘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당장 언론사들이 추구해야 할 단기 과제다.

웹2.0 시대는 기존 매체와 사이트의 변화를 요구한다. 분명한 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네띠앙은 죽었고, 네이버는 더욱 커졌다. 똑같은 환경에서 온라인 매체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반면 <굿데이>를 비롯한 몇몇 기존 신문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변화의 주체는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포탈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고 해서 기존 신문사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신문사 스스로 변화할 때 살아남는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은 '쉬운웹'이며 '공개, 공유, 분산, 수집과 추천'임을 유념하자.

웹2.0 시대는 포탈과 언론사의 경쟁시대가 아니다. 변화하려는 자끼리의 경쟁시대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자는 경쟁 대열에 서지도 못하고 자멸할 것이다. 언론은 포탈 사이트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 이상의 노력을 자기 변화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웹2.0 시대는 스스로 변하는 자일수록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김중태/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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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7-01-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군요^^ 퍼갑니다^^
 


(출처: 한겨레)



시간은 언제나 널널, 실컷 놀고…일해요

깔끔해도 너무 깔끔했다. 만화가 이원복(60·덕성여대 예술학부) 교수의 서울 테헤란로 작업실은 벽 한쪽에 캐비넷이 줄지어 있는 것 말고는 온갖 잡다한 것이 일체 없었다. “사실은 오히려 어지르는 편이에요. 이것 저것 늘어놓으면 찾지를 못해서 꼭 필요한 것만 꺼내놓아 깨끗해 보이는 겁니다. 대신 집은 완전 난장판이에요. 집은 제 놀이공간이거든요.”

이 교수는 뜻밖에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놀기’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교수의 1년 작업량은 책 2권 정도. 쪽수로는 500쪽 안팎이므로 하루 작업량은 대략 2쪽 분량이니 실제 작업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인맥이니 그런 것을 아주 싫어해서 사교 모임에 나가지도 않으니까 시간은 언제나 ‘널널’합니다. 실컷 놀고 남는 시간에 즐겁게 일하면 되요. 창조적 휴식을 갖는 거죠. 그게 확대재생산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노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또 있으랴. 놀려면 돈·시간·건강이 필요한데, 대부분 사람들에겐 늘 이 셋 중 한두가지가 없기 마련이다. 이 교수는 그런 점에서 선택받은 사람이다. 저술가로 거둔 성공, 그리고 교수란 직업이 그에게 경제적 여유와 시간을 확보해준다. 휴식이 필요하면 과감하게 여행을 떠난다. 가장 자주 가는 곳은 9년 동안 유학했던 독일. 해마다 두 세번씩 간다. “행복해요. 만화 그리면서 대접 받고, 내 시간 즐길 수 있고, 남는 시간에 일할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남들 염장 지르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사실이니까…. 제 보기에 돈은 생존 개념만 넘어가면 자유의 의미에요. 여행 떠나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것, 그게 돈이고 자유죠.”

분명 이 교수의 말이 듣는 사람을 배아프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그가 44년 동안 만화를 그려왔다는 사실이다. 올해 환갑인 이 교수의 일정은 언제나 집-학교-작업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다른 만화가들과 달리 ‘교양 만화’라는 ‘블루 오션’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44년 개척한 ‘블루오션’ 교양만화

이 교수가 만화를 그린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1962년 우연히 후배 아버지가 다니는 소년신문에 놀러갔다가 후배 아버지가 그가 만화를 잘 그린다는 말을 듣고는 “아르바이트 한번 해보라”고 권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필명을 쓰면서 미국 만화를 트레이싱지로 베껴가며 만화를 그렸다. 일찍 부모가 돌아가셨고, 7남매 중 막내여서 별다는 간섭을 받지 않았던 덕분에 가능했다. 대학에 들어간 197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림풍은 일본것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던 그의 인생에 최대 전환점이 왔다. 바로 독일 유학이었다.

유학을 결심한 것은 만화를 제대로 배우고 싶고, 또한 그림체도 바꾸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유럽에도 만화를 가르치는 대학은 없어서 가장 비슷한 일러스트레이션을 골랐다. 유학 생활 6년에 접어들 즈음 그동안 유럽 생활속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유럽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스테릭스>에서 영향 받은 새 그림체와 구성방식으로 시작한 만화가 <먼나라 이웃나라>다. 유럽 문명에 대해 알아야 할 각종 교양 상식을 알기쉽게 들려주는 새로운 방식의 만화였다. “만화에도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우영, 허영만씨처럼 그림을 잘 그릴 수는 없겠고…, 그래서 제게 맞을 것 같은 저만의 장르로 찾은 게 ‘교양’이었어요.”

<먼나라 이웃나라>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미국편으로 끝나기까지 20년 넘게 이어온 이 만화는 지금까지 1000만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되며 여전히 이 교수의 만화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다. 또한 이 만화는 ‘이원복 만화’의 틀을 완성했다. 이후 이 교수의 만화는 이 만화에서 세운 틀을 벗어나지 앟는다. 어려워보이는 지식을 이 교수식으로 객관화, 일반화해 설명하는 것이다.

이 교수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제 선정이다. “세상을 싸돌아 다니다 보면 뭔가 보이는 게 있어요. 우리 사회에 지금 이게 빠져있구나, 이게 부족하구나 느껴지는 것들이 주제가 됩니다.” 그 다음은 자료 차례. 외국 이야기면 현지에 가서 실제 ‘분위기’를 가장 중요하게 눈여겨본다. 나머지 자료는 물론 책과 인터넷으로 구한다. “인터넷은 신이 내린 선물이에요. 예전에는 외국 신문·잡지 구독료로 월 100만원씩 썼는데, 요즘에는 실시간으로 다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게 우리나라에선 인터넷 신문이 왜 공짜냐는 거에요. 외국은 다 유료인데 말이죠.”

이렇게 모은 지식은 백과사전을 기본으로 해서 가공한다. 정확성과 중립성을 위해서다. 그 다음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린다. 연필 밑그림까지는 그가 그리고, 펜 작업은 제자들에게 맡긴다.

세상 모든 것엔 ‘키워드’가 존재

이 교수는 자신을 콘텐츠 생산자라기 보다는 콘텐츠 전달자라고 본다. 교양만화는 ‘콘텐츠 70, 그림 30’이며 당연히 그 핵심은 콘텐츠 전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가 하는 작업을 오만하게 이야기하면 문화 통역인 것 같아요. 문화라는 것을 만화라는 언어로 통역하는 겁니다.”

이 콘텐츠란 것의 기본 원리는 ‘단순명료’란 네 글자다. 지식이나 정보 자체는 단순·명료한 것인데 이걸 어렵게 해석해서 그 위에 덧씌웠기 때문에 어려워 보이는 것이므로, 다시 이런 해석을 벗겨내 단순명료한 본래 알맹이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복잡해보이는 여러가지를 묶어 명쾌하게 일반화하는 것인데, 말은 쉬워도 상당한 지적 자신감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에는 키워드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 신앙,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이교수는 말한다.

난 만화가…교수는 직업일뿐

이런 일반화 능력에는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독일에서 유학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외국에서 10년 가까이 살아봐서 동양과 서양의 사고를 모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독일에 자주 찾아가는 것도 유럽식 사고를 수시로 접하기 위해섭니다.”

실제 이 교수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가 합리성이다. “만화는 과학이에요. 결정적인 순간에 웃기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을 통한 결정적 반전이 필요해요. 그걸 짜내는 데에는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합리적 사고를 깰 때 웃음이 나오는 것이니까 합리적 사고를 알아야 역발상이 나오는 거죠. 그 역발상이 과학입니다.”

한국 만화사에서 이 교수는 자신이 의도한 이상의 의미와 위상을 지닌다. 만화가 저질문화로 취급받던 시절 그처럼 학벌좋은 교수가 만화를 그린다는 점 자체가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실제 그가 처음 한 인터뷰의 주제는 어떻게 교수가 만화를 그렸냐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저를 뽑았던 대학 재단 이사장께서 몇년 뒤 웃으면서 ‘당신 본질이 만화가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교수로 안뽑았을 것’이라고 하신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이 교수는 요즘 덕성여대 학교 모델이다.

세상이 바뀌고 만화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대한 이 교수의 대답이다. “제 정체성이요? 당연히 만화가죠. 교수는 제 직업일뿐입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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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11-2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운 이야기네요. 따라하고 싶은. ^^
 

1. 들어가며

현재 국회에는 2005년 11월 8일에 발의된 2개의 지식재산법안(정성호 의원안, 김영선 의원안)과 2006년 7월에 발의된 지식재산기본법안(이병석 의원안) 등 유사한 법률제정안 3개가 논의되고 있다. 이 법안들의 기본 이념과 실체 규정들은 모두 일본의 지적재산기본법을 차용해 온 것으로 내용에 차이가 거의 없고, 추진 기구만 다를 뿐이다. 정성호 의원안과 김영선 의원안에 대해 과기정통위에서 지식재산부 또는 지식재산처를 신설하는 것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을 2006년 6월에 냈고, 이병석 의원안은 이 과기정통위의 의견을 수용한 형태이다. 이러한 경과에 비추어, 아래에서는 이병석 의원안을 중심으로 지식재산기본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힌다.

2. 기본이념의 문제점

법안은 ‘지적재산권’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들과 지적재산권에 해당하지도 않는 것들(도메인 이름, 상호)을 모두 끌어안아 ‘지식재산’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포괄한 다음, 이것이 국가경제와 인류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러한 단정에 기초하여 법안은 지식재산의 창조, 보호, 활용 3가지를 핵심 정책으로 삼고, 이를 위해 모든 국가조직을 비롯하여 지방자치단체, 대학교, 공공연구기관은 물론 심지어 사기업까지도 정책 수행을 위해 적극 노력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어떤 사고과정을 거치면 발명이나 저작물, 상호, 영업비밀, 도메인 이름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렇게 묶은 ‘지식’을 ‘재산’으로 만들고 이것을 권리로 보호하면 인류사회가 발전한다는 논리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법안이 제시하고 있는 3가지 정책은 바로 특허청이 추진하는 정책과제다. 특허청이 2006년에 발표한 4대 정책 과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사·심판 서비스 수행’, ‘지식재산의 창출기반 강화’, ‘지식재산권의 활용 촉진’, ‘지식재산권의 보호 강화’이다. 어떻게 특허청의 정책과제가 국가 전체의 책무로 바뀌고, 대학교와 공공연구기관의 책무가 될 수 있으며, 사기업의 의무로 둔갑할 수 있다는 말인가?

3. 일본 고이즈미 내각의 전략을 따라가는 것이 한국의 국가 전략인가?

일본의 고이즈미 내각은 2002년에 지적재산기본법을 제정하였고 2003년에는 지적재산전략을 담당할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설치하였다. 여기서 만든 일본의 지적재산전략대강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은 근면한 국민성과 중화학공업, 특히 가공조립형의 산업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제품 제조’가 강점이었고, 그 토대는 구미의 기술을 도입, 개량하고, 강고한 팀웍을 살려 현장에서 생산기술을 향상시켜 나간다는 일본형 생산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저렴한 노동 단가와 생산기술의 향상을 배경으로 하는 아시아 제국 등의 추격, 글로벌 사회의 정보화 진전 등에 의하여 과거의 성공을 지지하는 경제모델로부터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고, 새로운 성장 모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결국 고이즈미 내각이 지적재산권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1990년대 들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일본의 산업경쟁력 저하와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돌파하려는 전략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1970년부터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원천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생산현장에 적용하여 저가의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일구어왔던 일본이 90년대 들어 급격한 생산성 약화를 격자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이나 중국, 대만 등의 기술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은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일본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사용했던 ‘사다리’를 개도국들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걷어차는 것이다.

지적재산을 확대하고 보호를 강화해야 많은 창작물이 생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언제나 이미 많은 지적재산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였다. 미국이 의약품 특허를 강조하는 이유는 미국 제약사들의 기술 수준이 낮아서 특허권 보호를 강하게 해야 의약품 개발의 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특허를 확보할 의약품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적재산권을 강조하는 이유가 첨단 기술분야에서 경쟁력이 낮아 이를 높이기 위한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자기보다 경쟁력이 낮은 나라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수준이 낮을 때 그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나라는 없었다. 한미 FTA 협상에서 터무니없는 저작권 보호 강화를 요구하는 미국도 자국의 저작권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에는 외국 저작물을 미국의 출판업자들이 ‘해적질’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해 주었다. 미국 저작권법이 외국 저작물을 차별한 것은 1790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2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저작권에 관한 최초의 국제조약인 1886년 베른협약에 100년이 넘게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베른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가 외국 저작물에 대한 내국민대우를 하기 싫어서란 점은 미국 저작권법 교과서에도 나오는 얘기다.

지적재산권의 보장이 없으면, 지적 ‘상품’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지적상품을 독점하려는 거대 독점 기업들이 만들어낸 논리이다.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분명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개별지식 상호간에 의존성이 높은 첨단기술분야일수록 특허권의 강화가 기술발전에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많다. 또한, 가장 공격적인 지적재산권 강화를 주장하는 미국의 의회 보고서에서도 지적재산권 제도로 인한 사회적 편익이 손실보다 많은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제도의 정당성은 여전히 논란 중이라고 한다.

4. 변리사회와 특허청의 조직 이기주의로 추진되는 법안

지식재산기본법이 추진되는 동력 중 하나는 변리사의 직역 이기주의다. 즉,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확대를 위한 것이다. 현재 변리사에게는 특허침해 민사소송에 대해서는 대리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특허법원이 관할하는 행정소송에 대해서만 대리권을 인정받고 있다. 변리사회는 소송대리권을 확대하기 위해 그동안 행정소송에 대한 관할만 맡고 있는 특허법원을 민사소송까지 관할해야 한다고 관할집중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특허법원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해 왔으므로 특허법원이 민사소송까지 관할하게 되면, 소송대리권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논리가 바로 재판의 전문화, 소송절차의 신속화이다.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강조하고 이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법안이 통과되면, 지적재산권자의 보호를 위한 재판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이를 담당할 법원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된다. 실제로 법안에는 “지적재산권 관련 사건에 대한 소송절차가 보다 신속하게 진행되고 권리구제가 충분하기 이루어지도록 재판의 전문화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법안 제14조).

지식재산기본법이 추진되는 또 다른 동력은 특허청의 조직 이기주의다. 특허청의 주수입원인 특허출원, 상표출원을 더 많이 하도록 하고 특허와 상표가 대접받는 사회로 가면 자기들의 역할이 커지지 때문이다.

변리사와 특허청은 특허권을 얻으려는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기 때문에, 될수록 많은 기술 지식을 특허출원하여 재산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조직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믿고, 이를 극대화하는 사회체제를 구축하려는 동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는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자기 역할을 망각한 것이다.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하여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해 해야 할 사무의 대리를 업으로 하는 자이고(변리사법 제2조), 특허청은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무와 이에 대한 심사, 심판을 위해 만든 행정조직이다(정부조직법 제37조). 이에 따르면, 정작 특허청이 해야 할일은 기업들이 기술 지식을 독점화하려고 특허출원을 했을 때, 독점의 가치가 있는 기술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심사하는 것이다. 일종의 규제 역할을 해야하는 곳이 바로 특허청이란 말이다.

지적재산권의 경제적 효용에 대한 결론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을 모방한 지적재산권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득이 되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이 추진되는 이 법안은 지적재산권 강화로 이득을 보는 특정 집단의 이기주의와 다를 바 없다.

5. 지적재산권 제도의 내재적 한계

지적재산권은 헌법 이전의 자연적 권리가 아니고 실정법상의 권리이며 따라서 입법권자에 의한 재산권 형성에도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한계는 바로 공익과의 균형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 다음, 제2항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화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조 제1항도“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의 다음 권리를 인정한다. (a)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b)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c)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문학적 또는 예술적 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인권규범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나 과학의 진보,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와 상호보완 관계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2001년 12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UN 위원회에서는 “지적재산권법의 시행과 해석에 국제인권 규범이 융화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지식에 대한 사적 이익과 공공이익의 보호 사이의 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창작과 혁신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노력에는 사적 이익이 과도하게 충족되어서는 아니되며, 새로운 지식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을 향유할 공중의 이익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하여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지적재산권 제도가 갖는 내재적 한계와 공익 사이의 균형은 법안에서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권리의 창출과 보호 및 권리의 활용 3가지만 정책으로 삼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제도가 원래 의도했던 목적은 이 법안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고, 오히려 ‘지식’의 생산과 사회적 이용은 저해되고, 시장독점을 무기로 하는 ‘재산’의 덤불만 늘어날 것이다. 발명과 같은 기술 지식이나 저작물은 돌연변이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생긴다. 개별 지식들을 모두 재산권으로 만들어 사유지에 편입시키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하로 지식이 소비되는 ‘사유지의 비극’ 문제가 생길 수 있다.

6. 통합 추진 체계와 입법의 필요성 문제

미국이나 일본의 공격적인 지적재산권 전략에 대해 범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할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 추진을 위해 입법이 필요하다고 볼 수 없다. 이미 국무총리실에서 범정부차원의 대책 마련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총리실에서 추진하는 작업이 지나치게 권리의 보호에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4년부터 국무총리실에서 ‘지적재산권보호정책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협의회는 국무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법무, 외교, 교육, 문화, 산자, 정통부, 예산처 차관, 관세, 경찰, 특허, 식약청장, 국정홍보처 차장을 정부 위원, 분야별 전문가 10명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에 분산 추진되어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범정부종합대책 수립의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조직된 것이다.

따라서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의 수립이 필요한 경우라면 국무총리실에서 필요에 따라 위와 같은 협의회를 구성하면 충분하므로, 지식을 재산화하는 것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려는 위험한 내용의 법안을 굳이 입법할 필요는 없다.

7. 결론

지적재산권 제도가 지식의 생산과 사회적 이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제도의 운영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지적재산권을 통한 사유지의 담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지적재산권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산될 수 있는 지식,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의 공유지를 많이 확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법안은 국가의 역할은 정반대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하지 않고 약효도 없는 의약품이 시장에 유통되었을 때 생기는 위험만큼이나, 독점의 가치가 없는 기술이 특허권을 통해 시장독점을 할 때 생기는 사회적 해악은 크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에서 정부가 할 역할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지식인지 아닌지를 엄격하게 가려내고, 지적재산권자가 시장에서 부당한 독점을 행사하는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역할이다.

정작 해야 할 정부의 역할은 포기한 채, 산업경쟁력이란 미명으로 지식의 상업화·상품화만을 부추기는 법안은 지식과 문화의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므로, 법제화가 되어서는 안된다.

2006년 11월 1일
이하 단체 연명

공공의약센터, 문화연대,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평화마을
피스넷,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 HIV/AIDS인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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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이 정권은 EBS가 '수능방송'인 줄 아는가" 

EBS 구관서 사장을 둘러싼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구 사장이 임명된 뒤, 이를 거부하는 EBS 노동조합과 팀장 전원은 연일 구 사장의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조와 팀장들이 구 사장을 반대하는 까닭은 그가 교육부 관료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의혹이 제기되는 부당한 행태들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구 사장은 아들의 위장전입은 시인하면서도 딸의 교사 임용 특혜와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중복 의혹 등에 대해선 거부하며 맞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구 사장은 노조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에 냈다. 그는 이어 지난달 27일 보직을 사퇴하고 간부회의에 불참 중인 팀장들에게 "사내질서를 위반하는 행위 등을 계속하고 있어 규정에 의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구 사장의 이런 강경대응에 EBS 노조도 성명을 내고 "지난달 19일 국정감사에서 구관서 씨는 국회의원들에게 적극적인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며 "칼을 들이대며 대화를 강요하는 군부독재의 퇴물 관료는 EBS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계속되고 있는 노조와 구관서 사장과의 팽팽한 갈등은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EBS 추덕담 노조위원장을 만나 노조가 생각하는 문제와 해법을 들어봤다. 지난 9월 초 구관서 사장에 반대하며 삭발했던 그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많이 자라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노조에 대한 가처분신청도 노태우 정권 이후 방송계에선 처음"
 
프레시안: EBS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추덕담: 구관서 씨가 EBS 사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 싸움을 시작했다. 여러가지 대응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구관서 씨가 법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고 물리력을 동원하겠다는데 우리도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어차피 구관서 씨가 이 상태로 사장이 돼도 사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구관서 씨가 물러날 때까지.

프레시안: 구 사장의 자진사퇴만이 해법일까?
추덕담: 공인들은 대부분 흠결이 나오면 '부끄럽다. 물러나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그런데 구관서 씨는 '무슨 잘못이냐. 문제없다'며 버틴다. 교육부 관료가 아들을 위장전입해서 부정입학시켰다? 그것은 건설교통부 직원이 개발예정지에다 말뚝 박아놓은 것과 같다. 주동황 전 방송위원도 위장전입 때문에 물러났다. 논문 문제에서도 민교협이 '박사 논문이 거의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아무리 교육부 관료들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 시대 관행이었다지만 이제 바뀌었다. 황우석 사태 이후로 연구윤리도 강화된 시점이다.

프레시안: 구관서 사장이 임명된 뒤 어떤 점이 달라졌나?
추덕담: 인사 단행이다. 오자마자 며칠 새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부서장들을 다 바꾸고 새 인물들을 임명했는데 임명 근거를 잘 모르겠다. 들리는 얘기로는 고등학교 후배, 옛날에 교육부와 연관됐던 이들 중심으로 뽑았다고 이야기한다. 회사가 장난도 아니고 본인이 방송에 문외한인데 EBS의 정체성을 생각치 않고 자기에게 맞는 사람만 뽑아서 회사를 꾸려나가겠다니. 노조에 대해 업무정지방해 가처분신청을 낸 것도 방송계에서는 노태우 정권 이후 처음이다. 교육부 관료 시절 관련기관대책회의를 부활시켰던 것처럼 전형적인 관료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열린우리당은 비겁했고, 한나라당은 열의가 부족했고…"

프레시안: 지난달 19일 방송위원회와 EBS 국정감사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 듯 하다. EBS 사태를 KBS와 연관지어 정파적으로 해석 혹은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사태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추덕담: 국감 때 구관서 씨에 대해서는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도덕성이 결여돼 있는 사람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접근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비겁했고, 한나라당은 열의가 부족했고, 민주노동당은 고군분투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EBS 사장이 밀리면 정연주 전 사장도 못 지켜낸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정연주 끌어내리기 위해서 EBS 사장도 사퇴시키자'라고 말한다. 사실 정연주 전 사장과 구관서 씨의 개인적 부도덕성이 무슨 관계가 있겠나.

프레시안: 방송위원회는 왜 그랬을까? 재검증을 거쳤지만 결국 처음 결정대로 구 사장을 임명했다. 현재 사태에 대해서도 아무 반응이 없다.
추덕담: 방송위는 지금 구관서 씨에게 다 맡겨놓는 분위기다. 국감 질의 때도 방송위원들은 '사장 임명 뒤에는 우리도 모른다'고 답변하더라. 최민희 부위원장은 본인의 직무대행 시절에 구관서 씨를 사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책임이 무엇인가. 언론운동을 했던 이가 책임지는 자세는 자신의 철학을 건 행동 아닌가. 최 부위원장은 그 누구보다도 EBS 정체성에 대해 같이 고민했던 분이다. 지난 6월 EBS의 사외보에 'EBS의 정체성을 위해서 노력해달라. 공익성 강화가 EBS 경쟁력의 강화다'라는 요지의 기고까지 했다. 그런데 방송위원 되자마자 "그동안 방송전문가가 사장으로 가서 해놓은 것이 뭐가 있나?"라고 말하다니.

"공적재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없고, 제작비용은 부족하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노조와 팀장들이 구 사장을 반대하며 지키려 하는 EBS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추덕담: 2000년 공사로 독립한 이후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편성제작 특별팀(TFT)도 만들었다. 문화채널, 직업채널, 지식채널, 또는 그런 규정을 하지 않는 방법까지 두고 고민했다. 그런데 정권에서 지키고 싶어하고 관심있는 유일한 것은 수능방송이다. 수능은 EBS의 한 영역이다. EBS는 평생교육, 민주시민교육, 문화교육 등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방송이다. 그런데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이나 깊은 고민 없이 오직 참여정부의 가시적 성과라고 자평하는 수능사업을 어떻게 좀 더 잘 할 것인지 생각해 교육부 출신 관료가 낫지 않겠느냐는 접근으로 사장을 임명했다. 이것은 EBS의 역사와도 맞물려 있다. 오랜 기간 '공사 독립'을 주장한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기관 형태가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EBS가 학교 교육의 보완재가 아니라 문화·교양을 아우르는 채널로 가야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 산하기관이 아닌 공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프레시안: 일각에서는 EBS 구성원들의 자기정당성 문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수능교재 사업에 구성원들 자체가 매몰돼 있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들린다.
추덕담: 수능방송의 역사는 매우 길다. 전두환 정권부터 시작했고 참여정부 때 다시 한 번 국책사업으로 발전시켰다. 자세히 말하면 한나라당에서 안을 내고 현 정부의 청와대에서 발전시켰다. 우리가 '책 파는 데 함몰된 것 아니냐'고들 하는데 실제로 EBS 재원구조를 볼 필요가 있다. 예산 1800억 중 26%가 공적재원이다. 이것이 전부 제작비로 쓰이는데 실제 제작비는 더 든다. 공영방송의 재원은 공적재원이 되야 되는데 돈을 벌어서 제작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다. 수능교재사업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적재원을 어떻게 해줄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송위는 "우리는 늘려줄 방안이 없어서 국고보조금 잘 타올 수 있는 사람을 사장으로 임명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은 세금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방송은 KTV와 같은 관제방송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정책을 홍보할 수밖에 없다.

"지금 EBS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통을 겪는 중"

프레시안: 추 위원장은 공영방송의 공공성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추덕담: 사회적으로 관심을 못 받는 사람들, 그러나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시청 기회와 교육적 기회를 주는 것이 공익성이라 본다. 교육방송의 공영성은 좀 특별하다. 유아·어린이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 시골 아이들도 서울 강남 아이들도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고 같이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TV를 통한 교육적 효과는 유아, 어린이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기회의 평등에 대해 특별히 유아·어린이 분야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시청대상층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소외계층이다. 유아 프로그램은 품이 많이 드는 반면 돈은 안된다. 광고도 안붙고 시청률도 낮고. 돈 많이 들지만 꼭 필요하기 때문에 공적재원이 필요한데, 재원이 부족하니까 수능 사업을 통해서 조달한다. 바람직한 재원구조는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공영방송 모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재원을 그런 식으로라도 충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본말이 전도되서 수능이 전부다, 그러니까 교육부 관료인 구관서 씨를 임명했다?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공영방송 프로그램을 잘하기 위해서 수능 사업이 필요한 것인데 수능사업이 전부라고 규정한다면 지난 16년간 벌여 왔던 노력을 완전히 무시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프레시안: 오랫동안 투쟁하고 있다. 지치기도 할 텐데.
추덕담: 힘들다. 빨리 끝내고 싶다. 그런데 본인이 저렇게 막무가내로 버티는 이유가 개인의 독선이나 오기뿐만은 아닌 듯해 안타깝다. 내부적으로는 본질적인 정체성 문제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비롯된 것보다는 덜 힘들다. 파업도 고려하고 있다. 계속 말했듯이 이 싸움은 구관서 씨라는 일종의 상징에 대한 싸움이기도 하다. 정권이 EBS의 역할이나 철학을 1980년대처럼 수능방송, 학교방송으로 되돌리려 한다. EBS가 공영방송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구관서 씨에 대한 반대는 그 시작이다. 이 싸움이 EBS를 망가트린다기보다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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