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공] 진보쪽 비판에 귀 기울기지도 않더니…
[방] 더 신자유의적 집단엔 왜 너그럽나
 
이지은 기자 이창곤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진영 비판을 계기로 반론과 재반론 등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진보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20일엔 김창호 국정홍보처장과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진보진영 비판 대열에 합류했으며,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민웅 성공회대 외래 교수가 노 대통령의 인식을 반박했다. 편집자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노동시장 유연성이 진보 유연성 아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20일 인터넷에 올린 ‘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에서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유연한 진보’로 자처함으로써 낡은 기득권을 연장하는 게임에 뛰어들었다”며 “이런 논쟁에 참가하지 마시라”고 촉구했다. 진보학계의 논쟁은 노무현 정부 실패의 원인을 찾는 데서 시작됐는데,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부터 잘못이라는 것이다.

노 의원은 비정규직 확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등 구체적 정책을 들어, 자신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는 노 대통령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은 양극화가 과거 정부 때부터 심화해 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가) 양극화를 속시원히 줄이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그것을 더 벌여놓는 정책을 추진한 것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정규직이 전체 취업자의 60%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가 없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방치했기 때문”이라며 “(진보 진영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것도 개방 자체를 반대해서가 아니라, 무분별한 개방이 사회 양극화를 결정적으로 심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특히 노 대통령이 스스로를 ‘유연한 진보’라고 말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 의원은 “진보도 유연해야 하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보의 유연성은 아니다. 이를 받아들이면서 유연한 진보라고 자처한다면,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열사에 비해 (친일파인) 최남선이나 이광수가 ‘유연한 민족주의자’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쏘아붙였다.

노 의원은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과 진보 진영의 인식 차이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민간의 인식 차이다. 노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길 바란다”며 ‘국민들을 가르치겠다는 자세’를 버리라고 말했다.

김민웅 성공회대 외래교수,“진보적 가치 왜곡…정치적 실패 정당성 부여”

김민웅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현실적 조건으로 인한 제약 때문에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과, 이러한 진보적 가치와는 어울릴 수 없는 가치를 진보의 내용 속에 동일한 종류처럼 섞어버리는 것은 분명 다르다”며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권은 진보의 가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왜곡시킨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진보적 가치의 내용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그 실현을 이루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실패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논리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진보의 가치에 대한 모독이자 역사의 진행방향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권은 초기부터 자신에게 가해지는 진보진영의 비판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달라져야 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그 진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자신은 유연하고 남들은 교조라고 하는 생각도 이에 포함된다”고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김창호 국정홍보처장,“관념적 좌파와 결별을…특정학자 아닌 담론 비판”

“진보 진영만 사는 나라냐”는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진영 비판에 김창호 국정홍보처장과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가세했다.

김창호 처장은 20일 국무회의 브리핑 뒤 “머릿속에 있는 말 좀 하겠다”며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작심한듯 진보진영을 비판했다. 그는 먼저 “진보세력도 일부 관념적인 좌파이론으로부터 결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진보세력도 일부 관념적 좌파와 결별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진보가 성립되는 것 아니겠느냐”며 말했다.

김 처장은 또 “진보의 핵심은 유연성에 있는데 유연성을 상실한 진보의 경우는 진보로서의 자기 가치를 실현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말에는 담론 유형에 대한 비판이지 특정학자에 대한 비판으로 보면 대통령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처장은 이어“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양극화라고 비판하는데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더 양극화인 한 사회집단에 대해서는 너무 너그럽지 않으냐. 그런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며“(진보세력이) 참여정부 쪽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면서 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세력에 대해서는 너그럽거나 심지어 옹호하는 태도 가지고 있다. 이 모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고 반문했다. 그는 “진보의 위기는 철저한 자기혁신의 부재”라고 진단을 내린 뒤에 “일부 관념 좌파, 살롱 좌파는 안 된다. 유연한 진보로 나가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와 대통령 지지도는 별개”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이날 ‘참여정부 실패, 정당한 평가입니까’란 제목의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이번 논쟁의 발단을 연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직접 겨냥했다. 최 교수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노무현 정부는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며 “정부가 실패하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교체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나라당이라고 안 되고 하는 그런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에게 전하는 공개편지 형태로 쓴 이 기고에서 조 교수는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국민의 노무현 대통령 지지도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며 “낮은 지지도만으로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하는 주장은 전형적인 개체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최 교수를 꼬집었다.

그는 이어 “참여정부와 실패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검증해야 한다”며 “양극화 때문에 참여정부가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면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가장 양극화가 심한 나라 중 하나다. 그렇다면 미국은 민주주의로서 가장 실패한 나라냐”고 물었다. 조 교수는 또 “대통령이 재정문제를 어떻게 할지 토론해 보자고 하니까 언론은 ‘세금인상’이라고 보도해 버렸다. 그때 진보학자들은 양극화를 해결할 대안과 방법을 내놓으며 공론의 장을 살리기 위해 어떤 기여를 하셨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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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7-02-2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회찬 씨는 여전히 '촌철살인'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자는 못된다고 보여집니다.
김창호 처장의 발언은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결별하라'는 요청은 분명한데, 누구와 결별하라는 것인지 - '관념적 좌파' - 두루뭉실합니다. 게다가, '너그럽다'는 감정이고, '이율배반'은 논리죠.
 

(출처: 한겨레)

‘구약폐기론’ 반박 “요한복음 해석하는 것 자체가 도전행위”
“앞으로 정치적 집회 참여 안해…사학법은 대선후보 검증”
 
조연현 기자 김정효 기자 
 
개신교 교단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용규 목사는 20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도올 김용옥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새로운 계약(신약)이 맺어지면 옛계약(구약)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며 ‘구약성경 폐기론’을 편데 대해 “성경에 대한 몰이해”라며 반박했다.
이 목사는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이뤄지며, 예수님도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고, 완전케 하러 왔다’고 했다”면서 “(구약 폐기론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또 김 교수가 기독교계 대표와 공개 논쟁을 제의한데 대해 “일일이 대꾸하지 않겠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다만 “(도올의 교육방송 인터넷 영어강의인 요한복음 강해를) 어느 정도 들은뒤 논평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기총의 대선 행보에 대해선 “한기총이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사립학교에 이어 복지기관에도 개방형 이사를 도입해 사유권을 침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만큼 대통령이 된 뒤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검증할 것”이라며 사학법 재개정 운동을 대선과 연계할 뜻을 내비쳤다. 이 목사는 “(한기총은) 앞으로는 정치적 집회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한기총의 기자간담회엔 최근 대표회장에 취임한 이용규 목사와 총무 최희범 목사가 참여해 도올 김용옥 교수를 공격했다. 이들은 “지난해 영화 <다빈치코드>의 개봉을 앞두고 한기총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해 오히려 선전 해줬기 때문에 ‘도올 발언’에 대해서도 논쟁하지 않겠다”며 발을 뺐다. 그러나 기자들이 질문이 ‘도올 발언’ 한기총의 ‘대선 개입’ 문제에 집중되면서 도올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도올이 구약폐기론을 주장하며, 공개 논쟁의 제의했다.

최희범 총무=도올은 동서를 아우를 수 있는 보기 드문 실력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철학자다. 철학자가 성서를 해석하려는 것은 자기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성서는 철학이 아니라 신앙의 마음으로 봐야 한다. 성경을 철학서적으로 취급하면 종교가 무너져 버린다. 따라서 그와 논쟁하지 않겠다.

-신학과 철학이 회통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용규 회장=하나님은 영이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의 눈으로 봐야 한다. 지식, 과학의 눈으로 보면 열리지 않는다.

-그것이 기독교가 지동설조차 세상의 상식이 된 이후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한 것 아닌가.

이 회장=과학을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지식이나 과학의 한계를 얘기하는 것이다.

-신학계에서 ‘구약 폐기론’이 나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 않은가.

최 총무=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일부 교회의 문제로 전체 교회를 매도하고, 교회를 훼손하고 파괴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음모가 숨어 있다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 뚱딴지처럼 그가 요한복음을 강의하겠는가.

-도올이 교회를 훼손하고 파괴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 총무=의구심일 뿐 근거는 없다. 다만 그가 요한복음을 해석하는 자체가 도전행위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알레고리적, 즉 우화적(비유적) 해석이 있다. 구약의 사건들을 그렇게 해석하면 성경의 역사와 기독교의 역사를 전부 새로 써야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회장=도올이 (<요한복음강해>에서) 모세가 홍해를 건너는 것과 주몽이 강위를 건너는 것을 일맥상통한 것처럼 해석한 것도 신학자나 목회자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왜 아무데나 갖다 붙이나.

-도올의 주장은 우리민족이 유대민족의 역사를 자신의 민족의 역사로 여겨 기독교를 외세의 강요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최 총무=<주몽>과 <대조영>과 <연개소문> 등 방송국마다 현실에 없는 삼족오를 띄우는 것이 단군신화와 단군상 등과 연계되어있지않은지 의구심이 든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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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7-02-2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거가 있든 없든 의구심을 가지는건 한기총 마음이겠지만, '구약 폐기론' 이나 '요한복음'에 대한 논쟁이 무산된건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회통은 해야한다면서, 해석하는 것은 도전행위라니. 종교 지도자들끼리 만나서 밥 먹는게 회통인가. (농담입니다.)
 

(출처: 한겨레)

“정치권력보다 오만가능성 적다”
“기업권력 자제력 잃었다”
 
고명섭 기자  김경호 기자
 

사회=논쟁 촉발의 계기가 된 ‘기업사회론’의 논지를 먼저 분명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동춘=기업사회란 세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 기업권력이 정치권력이나 법·행정을 압도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둘째, 기업이 아닌 사회조직이 기업을 모델로 하여 조직되는 사회다. 과거에 군사사회가 군대를 모델로 삼아 공장이나 학교를 조직했던 것처럼 기업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조직이 기업을 모델로 한다. 셋째, 기업의 문화나 시장논리가 다른 문화의 가치를 압도하고 모든 사회구성원이 종업원과 소비자로 지칭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기업사회로 전환되기 시작해 97년 외환위기 이후 그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고 본다.

공병호=사회를 표층과 심층으로 나눠본다면, 김 교수가 말씀하신 기업사회는 표층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표층적 현상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 전에 심층의 변화를 따져봐야 한다. 1990년 사회주의권 붕괴와 글로벌 자본주의화라는 심층적 변환이 있었다. 냉전의 시대로부터 세계화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고,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런 심층적 변화가 표면에 드러난 것이 기업사회론에서 말하는 현상일 것이다.

사회=김 교수는 기업사회 특징의 하나로 정치·사회가 기업활동을 통제하기보다는 기업에 봉사하는 구실을 하는 것을 꼽았는데….

김동춘=우리 사회에서 ‘규제’라는 말이 쓰이는 방식을 보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이다. 그러나 규제를 그렇게만 봐선 안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규제 없이 그대로 놔두면 필연적으로 약육강식의 사회가 된다. 사회공동체의 처지에서 보면 규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내 경우를 말하면, 1990년대 세계화 담론이 등장했을 때 한동안 ‘기업에 국경이 없다’는 이야기에 동조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1년 남짓 공부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울타리 없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걸 똑똑히 보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라는 국가, 국민, 교육제도, 한국어 등의 인프라 없이는 대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한국이라는 국가적 인프라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회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이 횡행한다. 불필요한 통제는 좋지 않지만, 국가의 개입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미국에서조차 국가 개입이 있다.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 기업을 처벌하는 것조차 규제나 통제로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 어느 일간지에 대학교수가 삼성이 8000억원 내놨으니 이제 발목잡지 말라는 주장을 폈다. 이런 생각이 문제다. 사회가 기업에 봉사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공병호=중요한 것은 국민, 서민이 잘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질이 전부는 아니지만, 보통의 서민들에게 가장 화급한 것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를 위해 정치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치어리더, 유인자 구실을 해야 한다. 정치나 사회가 기업에 봉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물질의 풍요를 생산하는 것이 기업이라는 사실에 있다. 일반 국민에게 풍요를 주기 때문에 기업을 돕는 것이다. 우리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그런 경쟁을 하고 있다.

김동춘=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정치의 가장 중요한 일인 건 사실이고, 그래서 정치가 나서서 기업투자도 장려한다. 문제는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이건희 삼성 회장 소환이 국회에서 문제가 됐을 때, ‘우리가 이건희 회장 소환할 자격이 있느냐’ 그런 말들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이렇게 국회의 정당한 활동까지 축소시키는 게 문제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발언을 했다. 법무부 장관이면 법이 우선이고 질서를 바로잡는 게 우선인데,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공병호=정부가 법집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공정성이다. 위법한 행위는 명백하게 (처벌)해야 한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합법적 절차에 따른 정치의 역할이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발해 기업주의 편의를 봐주는 것, 나는 그런 건 납득하기 어렵다. 법집행은 공정해야 하고 불법행위와는 선을 그어야 한다.

사회=자유경쟁에 맡겨둘 경우 강자만이 살아남는데, 정부나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병호=국가가 앞장서서 재분배정책을 펴고 세금 부담을 높이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20세기에 이미 다 써본 정책이다. 지금은 자본이 무한 자유를 누리는 시대다. 세계의 규칙을 만들 힘이 우리에겐 없다. 우리는 규칙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자본거래에 막대한 세금을 매기면 자본이 들어오지 않는다. 국가가 보호하려고 했던 서민이 결과적으로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재분배정책은 항상 의외의 결과를 낳고 만다.

김동춘=무한대에 가까운 자본자유, 기업자유 시대라고 하지만, 세계 전체로 보면 서민의 삶의 조건이 하향평준화하고 있다. 세계화 상황에서 복지국가 독일이 위기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시스템 작동을 개입 없이 내버려 두면 안 된다. 타협의 접점을 마련해야 한다. 규제를 풀면 (외국)자본이 들어온다는 주장은 위험하다. 규제를 철폐하더라도 한국의 인프라나 다른 여건이 매력 있어야 들어오지 규제만 푼다고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탈규제보다 인프라가 중요하다. 규제만이 문제라면 삼성이 왜 유럽에 투자를 하겠나.

사회=김 교수가 글에서 ‘기업 파업’ 이야기를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병호=20대 때부터 기업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본 경험으로 말하면, 그들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여서 깃발 들고 파업하겠다고 협박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자본파업하는 건 불가능하다. 파업하자마자 다른 기업이 그 자리에 달려들게 돼 있다.

김동춘=공장이전이란 방식의 기업파업은 있을 수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회피하거나 공장을 국외로 이전함으로써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는 실례가 있다. 스웨덴도 그런 경험이 있다.

공병호=나는 기업가를 자유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독점 유혹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정거래위가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내부로 들어가보면, 그들의 심리는 매일 전전긍긍이고 노심초사다. 소비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언제 밀려날지 알 수 없다. 삼성공화국이라고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소비자가 엄청난 권력이다.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행위를 지속할 수 없다. 고객에게 구애해야 하는데, 그런 비합리적인 일을 계속할 수 없다. 그들은 불안하고 취약하다.

김동춘=나도 그런 점에서 기업권력을 정치권력과 같은 것으로 보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이 시장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있고, 일정한 수준에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 있는데 그게 안 될 때, 다시 말해 과도하게 상황을 장악하려고 할 때 공화국이라는 표현에 맞는 상태가 나타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삼성이 공정거래위 조사를 방해하려 한다든지, 언론의 논조를 장악하려 한다든지 정권을 입맛에 맞게 창출하려 하는 것은 정당한 선을 넘은 상태다. 이런 상태를 두고 사람들이 삼성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견제해야 하는데, 기업의 권력에 비해 사회의 견제력이 너무 약하다.

공병호=자제력을 잃었을 때 그런 오명을 덮어쓸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다. 힘이라는 것은 스스로 제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러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차이가 있다. 강조하고 싶은 건 사업하는 사람들의 절망적 상황, 벼랑끝에 서 있는 상황을 한국 사회가 좀더 따뜻한 눈길로 봐줬으면 하는 것이다. 기업가들은 선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오만해질 가능성은 정치권력보다 훨씬 적다. 오만해지면 소비자로부터 멀어진다. 경제권력은 생각하는 것보다 오만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적다.

정리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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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7-02-2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부의 규제, 세계의 규칙에 대한 공병호 소장의 극단적 태도에 대해서, 김동춘 교수는 "규제 보다 인프라가 중요하다."며 적절히 대응합니다. 공화국에 소비자 권력으로 맞서는 공 소장의 동문서답이 우습군요.

여울 2007-02-2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공 소장의 식견이 의심스럽네요. 인문학적 소양의 깊이?도 말입니다. 논쟁이랄 것 까지 없는 싱거움이 보입니다.

마법천자문 2007-02-20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너무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부를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공병호라니.. ㅎㅎ
 

(출처: 정책브리핑)

“참여정부 정책홍보시스템이 권언유착 청산했다”
최영재 교수, 언론재단·언론정보학회 토론회 발제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정책홍보시스템이 해방 이후 지속돼온 권언유착 관계를 획기적으로 청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부학부 교수는 6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재단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공동 주최한 ‘참여정부 정책홍보시스템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 “참여정부(2003년~2007년)가 기획, 시행한 언론홍보 제도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정부-언론관계 역사에 ‘주요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최 교수는 “변화의 크기로 보면 해방 이후 정부와 언론의 거리가 참여정부에서처럼 명실공히 ‘상호독립’이 가능한 거리로 유지된 적이 없었다”며 “이로써 과거의 권언유착관계는 획기적으로 청산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날 ‘참여정부 홍보·언론시스템 평가와 과제’란 발제를 통해 참여정부 정책홍보시스템의 큰 방향을 △정책정보를 일반 국민에게 노출시키는 ‘개방성’ △언론사 간 차별을 허용치 않는 ‘공평성’ △오보 등에 시스템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는 ‘체계성’이라고 요약했다. 또 “개방형 국정홍보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민주적 정부와 민주적 언론제도를 정착시켜 선진국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정당성과 전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호평했다.

최 교수는 “그럼에도 도입 초기부터 개방형 국정홍보 시스템을 ‘언론통제적 수단’으로 보는 비판적 시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현행 홍보 시스템 하에서도 결과적으로 정부와 정부 정책에 적대적인 기사들이 여전히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홍보시스템마저 제도적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책홍보시스템은 국민 직접 커뮤니케이션 정책(Going Public)”

최 교수는 참여정부 언론홍보정책의 특징을 △ 건강한 긴장관계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의 관계 △ 신문법과 오보 대응 등에서 나타난 사회책임주의 언론개혁 △ 브리핑 제도와 기자실 개방으로 요약되는 개방형 홍보-취재시스템 △ 국정브리핑과 청와대브리핑을 통한 국민 직접 커뮤니케이션 정책(Going Public)이라고 정리했다.

이어 “Going Public이란 정파적이고 공격적인 언론의 통로를 피해 직접 국민에게 정책정보를 제공하고 국민과 대화하는 새로운 언론정책의 형태”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가 개방형 정책홍보시스템을 추진한 배경과 관련, “언론이 정부의 정책정보, 국정상황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예를 들어 “참여정부에서는 미국에서 대통령 취임 초기 약 100일간 지속되는 밀월(honeymoon) 기간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오히려 언론은 2003년 취임 초 밀월기간 동안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그 이후 기간보다 더욱 심하게 했다”고 현 정부가 처한 언론상황을 묘사했다. 최 교수는 구체적으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초기 조선일보와 한겨레 기사를 분석한 결과,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는 조선일보가 25건 중 한 건, 한겨레는 10건 중에 한 건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날 지난해 7월 중순부터 한 달간 정부 6개부처(통일부 행자부 교육부 외교부 재경부 산자부) 출입기자 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정홍보시스템 도입 이후의 취재보도관행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 조사기간 중 보도된 신문기사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자들은 브리핑제 도입과 기자실 개방, 오보대응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평균 점수 이상으로 ‘바람직하다’(5점 척도에서 3.5~4점 사이)고 응답했다. 반면 정책홍보관실 신설은 그저 그렇다(3점)는 평가를 받았다.

출입기자들 “시스템 자체는 긍정적이나 운영만족도는 떨어져”

최 교수는 “그러나 기자들은 개방형 정책홍보시스템의 실제 운용에 대해서는 모든 분야에 대해 평균 점수 이하의 불만족을 나타냈다며 이는 제도 도입 취지와는 달리 운영상의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부처관련 기사에 대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 75%에 달하는 기사가 관급기사로 채워졌다”며 “이것은 기자들이 개방형 홍보시스템 도입 이후 공식 채널의 취재경로가 증가했다고 대답한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평가했다.

분석대상 기사를 다시 긍정 부정 중립으로 분류한 결과 개방형 홍보제도 아래서 공식적인 채널을 이용한 기사는 긍정적인 기사보다도 부정적인 기사가 3대1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언론보도가 대체적으로 긍정보다 부정이 많은 경향을 반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제도의 공개성과 투명성 구조 자체만으로 긍정적인 뉴스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최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기자들은 참여정부의 정책홍보시스템에 대해 제도로서의 규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만족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며 “단적으로 브리핑은 많은데 기사거리가 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안으로 △브리핑제도의 내실화 △오보대응은 하되 언론자유 신장 차원에서 접근 △부처 홍보평가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 △부처의 홍보 자율성 확보 △취재원과 기자 간의 공감대 형성 △부처 장관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전문적인 대변인제 운영 △광고회사의 매체전략과 유사한 효율적인 매체관리 전략 수립 △선택과 집중에 의한 이슈관리 전략 수립 등을 제시했다.

안차수 교수 “언론오보대응에 긍정적인 옵션도 고려해야”

최 교수의 발제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안차수 경남대 교수는 “새로운 정책홍보시스템의 목표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며 “비정상적인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광의의 의미에서 대국민 정책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목표에 따라 성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며 “언론 오보대응에 있어서도 법적소송이나 반론청구와 같은 위협적 수단 외에 긍정적인 옵션들을 함께 고려해볼만하다”고 제안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홍보는 의지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다”며 “현실을 감안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홍보관의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며 “일정한 적응기간이 필요하며 시스템 정착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어 “홍보시스템 자체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정책발표 시에는 면밀하고 신중한 검토를 거친 후 발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강수 홍보분석관 “정책홍보시스템은 완료형 아닌 진행형”

세번째 토론자로 나선 서강수 국정홍보처 홍보분석관은 “정책홍보시스템에 대한 토론회는 처음인 것 같다”며 “홍보시스템에 대한 홍보부족을 지적하는 발언에 공감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서 분석관은 참여정부 정책홍보시스템이 탄생한 배경으로 △정치·사회적인 환경변화 △민주화로 인한 국민들의 참여욕구 증가 △공공영역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증가 등을 꼽고 “정부는 닫힌 정부가 아닌 열린 정부를 지향하는 있으며 수평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정책을 만들어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참여정부 정책홍보시스템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수범 교수 “정책에 대한 정확한 진단 가능한 평가지수 개발해야”

이수범 인천대 교수는 최영재 교수의 발제와 관련 “정부와 언론 간의 관계가 좋지 않아 개방형 정책홍보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며 “(정부 홍보시스템을 평가하면서) 지나치게 대언론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끝으로 “이 정도 평가를 많이 하는 단계에 왔으면 현 정책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평가지수 정도는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영태 (medialyt@korea.kr) | 등록일 : 200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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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정브리핑)

‘신문 경쟁’ ‘여론다양성’ 원칙 세웠다
‘자전거일보’ 등 신문 유통시장 혼란 바로잡아

[정책리포트] 공정한 신문시장

‘자전거일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만큼 2000년대 초반 신문시장에선 ‘자전거’가 단연 화두였다. 월 구독료 1만2000원짜리 신문을 보는데 10만 원이 넘는 자전거 경품이 제공되다보니 “신문 지국이 아니라 자전거 지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곳에서 자전거를 뿌리면 그 지역의 신문시장은 곧바로 초토화된다”는 게 당시 신문지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급기야 2003년 1월에는 자전거 판매업자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매출이 50% 이상 줄어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며“법적 제재를 해달라”는 이유였다.

과다 경품을 앞세운 신문업계의 물량경쟁은 2000년대 초 ‘자전거일보’ ‘비데신문’ 등의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극심했다. 신문 경품은 역사가 길다. 1970년대에는 설탕이 있었다. 그 후 컵, 손톱깎이 등으로 발전하다 90년대 중반부터는 믹서, 레저용TV, 뻐꾸기시계, 버너, 다기능 도마, 교자상,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 원목탁자, 발신자표시 전화기, 킥보드, 에어컨형 선풍기, 소형 진공청소기, 돗자리, 밥솥, 정수기, 자전거, 비데, 백화점상품권 등 신접살림을 차려도 좋을 만큼 끝없이 이어졌다.

과열 경쟁은 살해 사건까지 빚었다. 1996년 7월 판매 경쟁을 벌이다 중앙일보 경기 남원당 지국 직원이 조선일보 지국원을 살해한 사건은 언론계 안팎에 충격을 줬다.

과당경쟁으로 신뢰 잃고, ‘제살 깎아먹기’

과열경쟁은 신문사들의 수익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김영주 언론재단 연구위원은 국정브리핑 기고에서 “신문사 재정의 80% 이상을 광고수익이 차지하다 보니 개별 신문사들은 보도의 질을 높여 독자를 늘리기보다 고가 경품과 무가지를 통해 구독자 수를 늘리고, 광고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량공세를 앞세운 경쟁은 관행으로 굳어졌고, 결과적으로 신문시장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신문은 제값 내고 보는 게 아니라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렸다. 무리한 확장 경쟁은 신문 절독이 “담배 끊기보다 힘들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게 했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신문이 불법 경쟁을 공공연히 벌이는 모습은 앞뒤가 맞지 않다. 게다가 출혈 경쟁은 부실 경영을 낳는다. 한국기자협회가 “광고주를 현혹하기 위해 벌이는 경품 파티로 신문 경영이 더 부실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언론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2002.5.22 우리의 주장).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익명의 신문사 사주는 “연간 300억~400억원이 출혈 경쟁으로 낭비된다”며 “이 돈을 절약하면 신문 종사자들의 대우가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선 지국장들은 경품 사용을 ‘울며 겨자먹기’라고 말한다. 대개 경품 사용으로 확보한 신규독자 가운데 70% 이상은 기존의 다른 신문 구독자다. 그만큼 이탈 독자가 많이 생긴다는 얘기다. 결국 경품 사용 후 1년이 지나면 지국 수입은 ‘현상 유지’ 수준이라는 게 지국장들의 설명이다. 출혈경쟁이 발전적 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부에서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고가경품’이 위험한 이유, “여론 다양성 훼손”

경품은 단순히 시장질서를 해치는데 그치지 않고, 훨씬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부자신문’들이 경품을 통해 물량공세를 펴면 ‘가난한 신문’들은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소수 의견은 힘을 얻지 못한 채 여론은 획일화하고, 심지어 왜곡 가능성도 높다. 몇몇 신문이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계층만 대변한다고 생각해보자. 단편적인 ‘사실’은 알려지더라도 전체를 조망하는 ‘진실’은 가려지기 쉽다. 다양한 여론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위협받게 되고, 사회적 손실은 커진다. 매체 선택권을 박탈하는 ‘고가 경품’은 그래서 위험하다.

신문이 ‘질적 경쟁’을 벌이고, 독자들은 자유롭게 신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신문업계도 ‘자율규제’를 통해 시장정상화 노력을 벌여왔다.

신문협회는 1960년대 이후‘영업정화위원회’ 활동, 신문판매협의회 구성, 신문판매윤리강령 제정 등 자정 노력을 펼쳤다. 1977년에는 ‘신문판매 정상화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고, 1996년 조선일보 지국원 살해사건 직후엔 ‘신문 판매질서 확립 공동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199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고시를 제정하고, 2001년 폐지했던 신문고시를 부활할 때에도 신문업계는 ‘자율규제’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말 그대로 자율에 그치면서 근원적 처방에 실패했다.

불가피했던 정부의 신문판매시장 정상화 조치

이 과정에서 언론관련 단체들의 시장정상화 목소리는 날로 커졌고,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신문고시 개정을 통해 불법 경쟁을 단속하고,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신문유통원 설립,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위원회 구성 등을 단행했다.

신문고시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개정됐다. 신문업계가 자율적으로 규제하던 신문고시 위반사건을 공정위가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신문고시는 연간 구독료의 20%를 초과하는 경품과 무가지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그해 5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공정위가 조사한 신문지국은 1316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신문고시를 위반한 904건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고, 12억715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2005년 4월 1일부터는 불법경품 등에 대한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했다. 이후 2006년 9월까지 모두 117건에 포상금 1억4777만 원을 지급했다. 일부에서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신문고시는 이미 2002년 7월 헌법재판소의 전원 합의를 통해 합헌 결론이 났다. 헌재는 “신문고시는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을 완화하고,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해야 할 신문의 공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제정된 만큼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선풍기 지급’에 첫 수금월도 구독일자보다 4개월 후로 명시돼 있는 애독자 카드. 이 신문 지국은 시민 신고로 적발됐다. 현재 신문시장 신고포상금은 최고 1000만원까지 지급된다.

“참여정부 잘한 일, 신문고시 개정”

신문고시 개정은 신문업계 안팎의 지지를 받았다. 기자협회가 전국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신문고시 개정은 참여정부 언론정책 중 ‘잘한 일’ 2위에 올랐다(2004.2). “잘했다”는 응답이 50.3%, “잘못한 편”이 12.4%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각계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대(對) 언론조치’ 중 가장 잘한 것 1위로 꼽혔다(2003.6). 일선 신문 지국들은 더욱 강력한 규제를 주문했다. 언론학회의 ‘전국 신문판매지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2531개 지국 중 79.7%가 “판촉활동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서울 소재 지국은 83.7%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2004.3).

신문고시 개정과 신고포상금제 실시로 판매시장은 다소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다. 공정위가 중앙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규독자 중 위법한 경품 및 무가지를 받은 비율은 63.4%(2003)→ 41.9%(2005) → 35.1%(2006)로 줄었다. 그러나 판매시장의 오랜 관행이 하루아침에 정상화되기는 쉽지 않았다. 공정위는 2006년 12월 “신고포상금제 시행 직후 거래질서가 일시적으로 개선되기도 했으나 2005년 말 이후 다시 불공정거래행위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매체선택권 보장 위해 신문유통원 설립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한 또 다른 축은 신문유통원 설립이다. 유통구조를 개선해 신문산업 진흥과 국민의 폭넓은 매체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게 설립 취지다. 신문유통원이 담당하는 공동배달은 언론계의 오랜 주문사항이기도 했다. 매체선택권을 보장하고, 다양한 여론형성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고속도로와 같은 공공인프라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요구였다. 자본력이 약한 신문사는 배달망이 무너져 신문을 잘 만들더라도 ‘질적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배달 체계의 효율성을 높여 고비용 구조 개선도 기대했다. 공동배달제 연구는 2000년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본격화했고, 2003년 경향신문 등 5개 중앙일간지를 주축으로 과천에서 시범운영을 거쳤다.

신문유통원은 2005년 1월 제정된 신문법 37조에 따라 2005년 11월 문을 열고, 공동배달제의 법적 토대를 만들었다. 기능적으로는 지국의 배달, 판촉, 수금 업무 중 배달에 대해 위탁수수료를 받고 대행해준다. 강기석 신문유통원장은 “신문은 공익에 이바지하는 민간기업”이라며 “공공재인 신문이 물량경쟁으로 도태되지 않고 질적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통한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신문유통원은 2006년에 공배센터 73곳을 구축했고, 2007년에는 223곳을 추가로 설립할 계획이다. 공동배달은 배달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유통원에 따르면 실제 공동배달을 하고 있는 서울 서소문 공배협의회의 경우 평균 배달단가가 공동배달 전 1부당 1,100원에서 925원으로 줄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신문의 경우 1부당 3,000원에서 큰폭으로 낮아졌다. 부수가 많아지면서 1부당 배달단가가 절감되는 효과다. 또 지국들이 배달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판촉이나 독자관리에 충실해질 수 있다. 지국간 합의를 통해 과도한 경품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이점이다. 강기석 원장은 “전문지나 각종 간행물 배달 등 2차 사업을 통해 수익모델을 만들 것”이라며 “배달원의 근무여건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경쟁 지국간 합의를 통해 민영 공배센터를 운영하고,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일이 간단치는 않다. 2006년 가을 공배센터에 참여하기 시작한 서울의 한 지국장은 “지국들이 2차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면 지금처럼 무리한 확장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거대 신문들이 지국의 공배센터 참여를 사실상 막고 있어 주저하는 지국들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공동배달제는 프랑스,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수십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스웨덴은 1969년 도입해 공동배달회사를 이용하는 신문에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보다 앞선 1947년 정기간행물 공동배급회사인 NMPP를 설립하고 국가 지원을 시작했다. 당시 공동배달제 근간을 마련한 전 통신분야 정무장관 로베르 비셰는 “언론의 자유는 편집자가 원고를 작성한 시점부터 독자가 그 기사를 읽는 순간까지 계속돼야 한다. 그러므로 신문, 잡지들에게 동등하고 정당한 운송 및 배급 조건을 보장하는 것은 진정한 언론자유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도 신문유통원에 대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린바 있다. 헌재는 2006년 6월 29일 신문법 위헌 제청사건에 대한 결정에서 “신문유통원을 이용해 공동배달망에 가입할지 독자적인 배달제도를 유지할지는 각 신문사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며 “(신문기업에 대한)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유통원을 통한 국고지원으로 신문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통제의 길이 열리게 된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신문고시 개정, 신문유통원 설립과 함께 2004년 3월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이 제정되고, 2005년 10월 신문발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경영이 어려운 언론사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기초인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신문사는 기사의 질로 경쟁하고, 독자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신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작업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특별기획팀 (webmaster@korea.kr) | 등록일 : 200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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