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내 입맛에 맞게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출판인 중에는 이런 생각으로 직접 출판활동에 뛰어든 사람이 종종 있다. 일종의 딜레탕티즘이 출판에서 나타난 경우인데, 도서출판 책세상도 애초의 출발점은 이 고급한 취미활동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1986년 인쇄소를 운영하는 김직승(58) 사장이 소설가 조해일, 시인 호영송, 작고한 시조시인 전영대씨 등 문학하는 벗들과 의기투합해 출판사를 세웠다. 김 사장이 대표가 되고, 호 시인이 기획을 전담하는 주간을 맡고, 다른 문인들이 자문역을 맡았다. 문학이 좋아 모인 이들의 관심은 문학, 그 중에서도 한국문학과 프랑스문학이었다.

책세상의 성격이 크게 방향을 튼 것은 94년 김광식(42) 현 주간이 전임자로부터 주간 자리를 물려받으면서부터다. 김 주간은 책세상의 무게 중심을 문학에서 인문학쪽으로 성큼 이동시켰다. 출간 종수도 연 10권 미만에서 20여권으로 늘리고, 무엇보다 굵직굵직한 기획을 잇따라 발진시켰다. 딜레탕티즘에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옮아간 것이다.

그 변모를 보여주는 첫 사례가 `카뮈 전집'이다. 호 주간 때인 87년 내기 시작한 카뮈 책을 김 주간은 아예 전집으로 틀을 바꿨다.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1인번역으로 1년에 한 권씩 출간돼온 `카뮈 전집'은 다음달 13권째가 나온다. `위대한 작가들'은 `카뮈 전집'에 이어 김 주간이 단독으로 기획한 전기 시리즈다. 97년 <릴케>를 내놓은 이래 <카뮈>까지 모두 9권이 나온 이 시리즈는 현존 전기 가운데 가장 질이 높다고 판단되는 것을 전공자에게 의뢰해 번역한다는 원칙 아래 만들어온 책세상의 `자존심'이다. 올해 안에 <제임스 조이스> <도스토예프스키>가 추가로 나올 예정이며, `작가들'이 끝나면 미술가, 음악가, 사상가로 시리즈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밀리터리 클래식'은 책세상이 자랑하는 또다른 기획이다. 먼저 출간한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가 독자의 호응을 얻은 데 힘입어, 독립된 기획을 구상한 끝에 나온 이 시리즈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고전 <전쟁론>을 필두로 해 지난해 말 <제공권>까지 모두 10권으로 완간됐다. 전쟁론에 관한 한 국내에선 독보적인 시리즈라 할 것이다.

책세상의 기획력은 니체 사망 1백주기를 맞아 얼마 전 펴내기 시작한 `니체 전집'(전 23권)으로, 또 올해 시작해 연말까지 마감할 예정인 `릴케 전집'(전 13권)으로 벋어나가고 있다. 이 전집류는 완전한 번역본, 곧 정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돈을 생각하면 벌이기 힘든 일들이다.

책세상은 올 들어 또 하나의 새로운 기획을 탄생시켰다. 지난 5월 탁석산씨의 <한국의 정체성>으로 얼굴을 내밀어 지금까지 19종이 나온 `책세상문고·우리시대'가 그것이다. 하나의 주제를 짧지만 밀도 있게 펼치는 이 문고 시리즈는 30~40대 패기만만한 필자들이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토론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김 주간의 의지가 밴 작업이다. 당대의 쟁점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고전의 무게를 지닌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 책세상의 듬직한 어깨가 스스로 진 짐이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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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7-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sb 2006-07-1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명섭 기자님이 쓰신 글인걸요.
 

(출처: 한겨레)

'씩씩바이러스'에 지구촌이 감염
펴낸책 모두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여행가’에서 ‘닮고 싶은 사람’으로 독자층 확장
미사여구 없앤 생생한 비유 술술 읽히지만
쓸 땐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치고
“내가 말하는 투로 써야 독자들이 날 느껴요”
 
구본준 기자 박종식 기자
 

“제가 저술가라고는 저~언혀 생각 안해요. 저술가라면 타이틀이 너무너무 엄청나요. 어느 때는 작가라고 해도 민망해요.”

본인이 프로 글쟁이라고 생각 안하는 사람. 자기가 글을 잘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책이 왜 잘 팔리는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사람. 그게 한비야(48)씨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분명 저술가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한씨는 꼭 10년전 <바람의 딸 한비야 걸어서 지구를 세바퀴 반>이란 책으로 처음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혈혈단신으로 6년 넘게 전세계를 걸어서 돌아다닌 여자. 다음에는 우리나라를 걸어서 종단한 이야기(<바람의 딸, 우리 땅에서 서다>를 들려줬다. 역시 바람의 딸 답다. 그러다 어느날 중국어를 배우러 떠나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쓰더니, 이번에는 세계 곳곳 긴급구호현장을 누비고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를 썼다. 이건 매번 진화해댄다. 그리고 진화의 결과를 몇년 만에 한 번씩 들려준다.

4종, 7권. 지금까지 한씨가 쓴 책은 그게 전부다. 그러나 한씨의 책이 이끌어낸 호응은 실로 ‘경이적’이다. 실패한 책 하나 없고, 낸 책이 모두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문학, 비문학을 통틀어 한씨만큼 확실하게 독자를 거느린 글쟁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책 <~세바퀴 반> 4권이 100만부 이상, <~우리 땅에 서다>가 20만부, <~중국견문록> 48만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41만부. 책을 낼수록 판매부수가 늘고 생명력도 길어지고 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출간 1년이 지난 지금도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2~3위권을 지키고 있다.

판매부수가 50만부에 이른다는 것은 상업적으로 볼 때 작가의 차원이 일반 저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과 여 양쪽 모두에게 인기가 있어야 가능하고, 좌와 우를 막론해야 가능하다. 청년층과 장년층 어느 한쪽에게만 인기가 좋아서도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모든 연령, 모든 성별, 모든 성향을 뛰어넘는 호응을 얻어야 가능한 수치다. 곧 한씨가 남녀노소 모든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다.

자기책 외울정도…편집자는 죽을맛

독자들이 꼽는 한씨의 최대 매력은 바로 ‘건강함’이다. 한씨의 책을 읽으면 ‘씩씩바이러스’나 ‘행복바이러스’ 그리고 ‘봉사바이러스’에 옮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매력은 한씨의 모든 책이 공통적이다. 하지만 저술가로서 한씨는 세번째 책 <중국견문록> 이후 한단계 변신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두 책에서 한씨는 ‘여행가’를 벗어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와는 다른 생생한 표현, 그리고 한씨만의 독특한 유머가 묻어났다. 그런데 <중국견문록>부터는 ‘사회적 역할모델’로 거듭났다. ’정력적이고 호기심 많은 드센 여성 여행가’가 긴급구호활동가가 되면서 ‘닮고 싶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팬층은 더 넓어졌다.

실제 한씨의 사인회에는 30~40대 직장 남성들이 딸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한씨의 책을 편집했던 지평님 황소자리 대표는 “아버지들이 동년배로서 자기가 못해본 것을 해내는 이 여성을 자기 역할모델로 여기는 동시에 딸에게도 역할모델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행복하자, 부자가 되자 그런 구호들이 넘쳐나는데 한비야를 만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10만원만 내면 각 대륙별로 한 사람씩을 구할 수 있다는 거죠. 내 삶이 제대로 가고 있나 불안할때, 모호하고 불안한 삶을 되돌아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을 때 한비야의 목소리가 있다는 거에요.”

이런 당위적 메시지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역시 저술가로서 한씨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씨 글의 특징은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술술 읽히는 점이다. 미사여구로 글을 꾸미는 법도 없다. 대신 생생한 비유를 곁들인다. 그래서 한비야 최고의 장점을 그래서 ‘전달력’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씨의 글이 이렇게 쉽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도 술술 쓸 듯하지만, 실은 그 정반대다. 한씨는 원고를 자기 마음에 꼭 들 때까지 수십번씩 퇴고한다. 그래서 교정지가 ‘딸기밭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불바다가 되어’버린 듯 새빨개진다. 한씨는 또 자기 책의 목차는 물론, 목차의 순서, 각 항목별 쪽수와 분량을 모두 스스로 정한다. 그러다보니 자기 책 본문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 “저는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정말로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좋은 소재로 왜 이정도 밖에 못쓰냐며 자학하는 스타일이다. 글을 쓴 다음에는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본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수만명이 죽어가는 현장이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는 연시이건, 글이란 것은 운율이고 리듬이라고 생각해요. 호흡이 짧아지거나 거칠다 싶으면 다 고쳐요. 입으로 읽어서 거칠면 눈으로 읽어서도 거칠다고 생각해요.” 한밤중에 글을 쓰고는 친구며 편집자에게 전화해서 무조건 읽어주면서 점검해댄다. 좋은 아이디어나 표현이 떠올라도 전화를 한다. 당연히 편집자들은 ‘죽을 노릇’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장의 호흡은 물론 한권 전체의 강약중강약 호흡도 따진다. 그러다보니 거의 자기책을 외우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투를 써야 독자들이 나를 느껴요. 독자들은 결국 글쓴이의 오감을 빌어 내 호흡을 같이하고 싶어하는 거잖아요. 저는 제가 현장을 전하는 리포터에 가깝다고 봐요. 긴급구호 현장을 본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든 전해야 하잖아요.”

이 모든 것의 기본은 한씨 자신의 ‘일기’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그토록 일기를 많이 써야 문장력도 늘고 생각도 깊어진다고 했던 이야기의 모델이 있다면 바로 한비야다. 한씨의 일기장은 취재수첩 같이 생긴 작은 스프링노트. ‘그날 하루 느끼고 떠올린 모든 것들’을 적는다. 기자와 인터뷰하면서도 수시로 메모를 해서 누가 취재를 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취재 중에도 수시로 메모

한씨는 요즘 피 흐름이 좋지 않아 잠시 휴식중이다. 북한산 줄기를 바라보는 한씨 아파트 내부는 글과 관련된 것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파에도 책상에도 화장실에도 안경과 책들이 있었다. 몸은 안좋다면서도 이 에너지덩어리 같은 글쟁이는 온갖 아이디어와 꿈을 받아적기 힘들 정도로 쏟아냈다. 자연히 다음 책이 궁금해졌다. “정한 것은 없지만, 어떤 방향이 될지는 알지요.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차서 도저히 토해내지 않으면 못견딜 때까지 기다렸다가 써야해요.” 아, 이번 책도 4년만에 나왔지. 한씨 팬들은 이미 기다리는 데 익숙할 듯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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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삶의 고수 찾아 십년 문필봉 ‘고수’ 되었네
직장 그만두고 10여년 산천 누빈 게 글감
문·사·철, 유·불·선, 천문·지리·인사
‘구궁’ 버무려 ‘제도권 동양학’ 넘어서
글솜씨 비법은 “한 문장에 하나의 생각만”
샐러리맨 공허함 달래준다고 좋아하죠

 
“문필가를 알려면 그 서재를 봐야지요.”

하지만 문외한인 기자에게 그 차이가 쉽게 보일리야. 그저 ‘정신’과 ‘역사’에 관한 책들이 많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는 집안 곳곳 가구 대신 책장이 놓여있는 게 여늬 집들과 가장 달라보였다. 글쟁이 조용헌씨가 사는 전북 익산시 어양동의 복층식 아파트는 집안 곳곳이 서재였다. ‘진짜 서재’는 아랫층인 지하층 전체였는데, 마루 벽 전체가 책꽂이였다. 맞은 편에 놓인 커다란 화이트보드에는 유명 학자며 책이름 같은 명사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마루 바닥 가운데 있는 둥그런 나무틀. “글쓰다가 이렇게 누워서 몸을 펴는 겁니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이 쓰는 것을 본떠 판다는 ‘기지개용 도구’였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를 놓은 책상이며 가구들이 앉은뱅이다. 동양학 전문 저술가니 좌식생활을 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할텐데도 무척이나 새로워 보였다.

“난 저술가라고 안하고 문필가라고 해요. 풍수에 문필봉이란 게 있는데, 집터 앞에 삼각형으로 솟은 문필봉이 있는 걸 최고로 쳐요. 조지훈 종택이나 영랑 생가에 가보면 문필봉이 앞에 있지요. 옛말에 문필봉은 있어도 저술봉은 없으니 문필가라 하는게 맞지요.”(막상 조씨의 아파트 앞에는 문필봉이 없었다. 대신 양쪽에 어양중과 영등중 두 중학교를 거느리고 있어 어느 정도 문기(文氣)를 전해받는 듯했다.)

조씨는 문필가의 본질을 논어에 나오는 ‘학야녹재기중’(學也祿在其中), 곧 ‘공부를 하면 녹이 그 안에 있다’는 말을 약간 바꿔 ‘필야녹재기중’(筆也祿在其中)이라고 설명한다. 글 써서 먹고 산다는 이야기다. 이 문필가란 요즘 말로 ‘1인기업가’이며, ‘시대의 스토리텔러’란 게 그의 지론이다. 펜 하나 달랑 들고 홀로 이야기꾼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데 정작 그가 문필가로 살기로 결심한 것은 3년 전이었다고 한다. 1999년 첫 책을 낸 뒤로 한 참 지나서였다. “그 때는 직장에서 월급받았으니까. 책은 뭐 그냥 낸거지. (인생의) 승부는 안걸어요. 재미로 하는 거지.” 말투는 의뭉한듯 한데 거침이 없다. 출판가에는 조씨가 출판사 사장과 담당 편집자의 관상이며, 출판사 건물의 풍수를 보고 계약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 물었는데 그건 아니란다.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따져요. ‘전통 플러스 동양적 팬터지’ 이게 내 아이덴티티인데 이게 출판사의 출판방향과 맞는지 보는 거죠.”

글감에 ‘전통+동양적 판타지’ 가미

조씨가 첫 책을 낸 지 이제 7년, 쓴 책은 아직 10권에 못미친다. 그런데도 조용헌씨의 책 제목에는 ‘조용헌의~’라는 브랜드가 붙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가 저술가로서 또렷하게 자기 존재를 각인시킨 덕분이다. 조씨는 자기가 글쓰는 장르를 직접 만들어냈다. 이름하야 ‘강호동양학’.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주제이면서도 정식 학문이나 제도권 지식으로는 여겨지지 않는 ‘동양학’을 들고 나온 것이다. 사주명리학이며 풍수, 그리고 도사들의 이야기 등 우리 생활속에서는 하나의 문화와 전통으로 살아 있지만 정색을 하고 책으로 다루지는 않았던 것들을 책으로 펴냈다. 그가 말하는 강호동양학은 동양문화의 열쇳말들인 문·사·철과 유·불·선, 그리고 천문·지리·인사라는 아홉가지를 구궁(九宮)으로 한다. 이 아홉가지 열쇠로 풀어내는 동양학, 정통 제도권 동양학을 둘러싼 더 넓은 의미의 동양학, 그게 강호동양학이다. 이 강호동양학이 저술가로써 조씨의 강점이자 차별화 요소요, 매력이다.

조씨는 불교민속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뒤 잠깐 직장생활도 했지만 샐러리맨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혼자 전국을 누볐다고 한다. 10년 이상 전국 이름난 절집이며 명문가, 산속에 사는 아웃사이더들들 찾아다니며 보고 들은 것들이 그만의 컨텐츠다. 조씨는 이 글감들을 동양학 지식에 버무려 ‘전통’과 ‘동양적 팬터지’란 두가지를 들려주는 책을 쓰는 데 주력한다.

조씨는 2000년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푸른역사)란 책으로 그 이름을 알린다. 전국 명문가들의 가훈과 교육철학, 그리고 한국적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도덕적 책무)의 전통을 들여다본 책이었는데,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5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이후 <조용헌의 사주명리학>(2002·생각의나무), <방외지사>와 <고수기행> 등의 책을 해마다 펴내면서 저술가로 자리를 굳혔고, 종합일간지와 시사잡지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연수입은 1억원 이상인데, 원고료:인세:강연료의 비율이 각각 4:2:4다.

저술가로서 조씨 최대의 무기는 역시 차별화한 ‘동양학’이란 소재다. 그가 주로 취재하는 대상은 “컨텐츠를 지닌 사람들”이다. 찾기도 힘들고 말 트기도 힘들지만 오래하니 요령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양반들이 꼭 점조직 같아서 오대산 사람을 만나면 지리산 사람을 소개해주고 지리산에 가면 계룡산 사람을 알려줘요. 어려운 것은 명문가 후손들처럼 자존심 센 분들 인터뷰하는 거지요. 처음 만나면 쉽게 말씀을 안해요. 그럴 때는 풍수나 보학, 한시 같은 것들로 이야기 한 자락 슬쩍 운을 떼 관심을 끌어서 말문을 틔워야 해요.”

조씨는 “책을 펴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이나 샐러리맨들이 느끼게 되는 공허함을 달래주는 글을 썼을 때 독자들이 남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펴낸 책들이 평범한 삶의 규칙을 벗어나 독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방외지사>나 독특한 자기 분야를 일군 사람들을 소개하는 <고수기행>이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꾼인 자신 역시 이런 사람들과 통하는 탓도 크다. “이야기꾼은 삐딱해야해. 평범한 사람들 만나면 상상력이 줄어요. 문필업은 반항적 기질이 있어야 해요.”

이야기꾼으로서의 ‘글발’도 조씨의 강점으로 꼽힌다. 조씨의 글은 단문이 특징이다. ‘한 문장에 하나의 생각’(one idea one sentence), ‘문어와 구어의 일치’가 그의 글쓰기 철학이다. 좋아하는 글쟁이는 언론인 박권상, 그리고 외국작가 오스카 와일드다. 오스카 와일드는 문장이 짧고 관계대명사가 없어 읽으면서 헷갈리지 않기 때문에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쓸것 많은데 몸 안 좋아 ‘운기조식’

조씨의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비교적 크게 엇갈리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으며, 막연하게만 알던 동양학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해준다는 것이 긍정적 평가의 축을 이룬다. 반면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어디까지가 객관이고 어디까지가 주관인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있다. 조씨 자신은 자신이 학자라기보다는 ‘이야기꾼’이란 점을 강조한다. 학문적으로는 공인받지 못했어도 구전된 부분 등을 다루는 것은 작가적 허용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시대의 이야기’로 보아달란 주문이다.

조씨는 앞으로 불교의 명찰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쓸 계획이다. 명문가 이야기의 후속편도 준비중이다. 쓸 것은 많은 데 몸이 다소 안좋아 현재는 운기조식 중이라고 한다. “주화입마가 풀리면 글쓰는 속도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조씨는 웃었다.

익산/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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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독어·라틴어·불어 섭렵 ‘도판 읽기’ 독보적 경지
독일 유학 10년만에 귀국 아내 설득 1년간 ‘놀며’ 글쟁이 단련
1차 원전 처음으로 직접 해석 기존책 오류 잡고
‘미문’으로 대중 포섭 “펜대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요”
 
구본준 기자 이정아 기자
 

출판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예술 장르는 단연 미술이다. 책에 작품 그림이 실리면 보기에도 좋고, 수천년 세월 미술속에 쌓인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해 책으로 쓸 소재도 많다. 사진도 같은 시각예술이지만 출판 측면에서는 미술과는 비교가 안된다. 최근 ‘교양’ 바람과 맞물리면서 출판시장에는 대중적 미술책이 1년에 수십종씩 쏟아져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처럼 미술이 출판으로 대중들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도 채 안된다. 1990년대 이후 미술책을 전문적으로 쓰는 저술가들이 등장해 교양미술책을 펴내기 시작하면서 미술책은 출판의 중요한 새 분야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미술전문 저술가 노성두(48)씨다.

노씨는 국내 미술교양서 필자를 대표하는 1세대 전문 저술가다. 미술저술가들을 나눌때 교양인 차원에서 출발해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미술을 소개하는 ‘저널리즘 기반의 저술가’와, 미술사와 비평을 전공한 연구자 출신의 ‘아카데미즘 기반의 저술가’로 구분한다면 이주헌씨는 전자를, 노성두씨는 후자를 각각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씨는 신문사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 출신, 노씨는 미술사학자 출신으로 서로 기반과 출발점은 다르지만 오로지 책만으로 승부하는 프로 저술가로 나선 첫세대 미술저술가란 점에서 같다.

인천 노씨의 아파트는 안방이 작은 방이고 원래 안방인 가장 큰 방은 자료실이다. 책과 도록이 자료실 네 벽을 차지한 것은 물론 방바닥까지 점령해 중간 중간 발디딜 틈만 남겨놓고 있다. “오해하실까봐 말씀 드리는데요, 지금 이 상태가 치운 겁니다.” 워낙 작업량이 많다보니 책상위가 정돈될 틈이 없다. 그래도 이 복잡한 자료더미 안에서 노씨는 원하는 그림이 들어 있는 도록을 10초면 척척 찾아낸다.

노씨는 99년 첫 책을 낸 이후 지금까지 모두 61종의 성인·어린이용 미술책을 짓거나 번역했다. 해마다 8~10권씩을 펴낸 셈이다.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도판해석 능력은 다른 미술저술가들이 부러워하는 노씨의 자산이다. 미술가와 그림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술가들은 여럿이어도 노씨처럼 서양 미술 도판을 직접 보면서 그림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내는 미술저술가는 없었다. 또한 미술사 주요 1차자료를 직접 원전해석할 수 있는 저술가도 노씨가 처음이었다. 독일어는 물론 르네상스 미술로 박사학위를 딴만큼 이탈리아어, 그리고 고전미술의 공식언어랄 수 있는 라틴어, 영어와 불어를 번역할 수 있는 어학능력도 노씨만의 트레이드마크다. 영어판을 통해 2차 습득하는 지식이 아니라 원전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미술저술가는 지금도 드물다. 고정팬들은 노씨의 문장이 미문이란 점을 첫번째 매력으로 꼽는다.

99년 첫책 이후 61종 짓거나 번역

노씨가 저술가로 나선 것은 교수자리를 얻지 못한 게 계기가 됐다. 학부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던 노씨는 독일로 유학가서 미술사학으로 전공을 바꿔 10여년 공부한 뒤 94년 귀국했다. 그러나 교수자리는 그에게 오지 않았다. 96년 결혼 직후 노씨는 아내에게 “다 때려치우고 글을 써서 먹고 살테니 앞으로 1년만 버텨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1년 동안 노씨는 자신을 저술가로 ‘재부팅’하는 체질개선작업에 돌입했다.

이 기간에 노씨가 전범으로 삼은 ‘글스승’은 2명이다. 첫번째가 고은 시인이다. “땀냄새 나는 현장감이 일품”이어서 고은 시인의 시를 거듭 음미하며 읽었다. 다음 글쓰기 모델은 <중앙일보> 바둑전문기자 박치문씨. “검은돌 흰돌 두개만 가지고 우주처럼 써대는 수사에 감탄해” 문장을 곱씹었다. 그렇게 자기 문체를 만들면서 번역할 책 목록을 뽑아 여행가방에 책을 넣고 무작정 출판사들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번역서가 <알베르티의 회화론>(사계절)이었다. “원래는 고전번역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금방 깨달았죠. 번역, 그것도 고전번역은 정말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술에 모든 활동을 맞췄고, 그의 이름을 알린 첫 본격 저술서로 나온 책이 <보티첼리가 만난 호메로스>(사계절·99년)다.

노씨가 세운 저술 원칙 1번은 ‘신뢰성’이다. 노씨가 보기에 우리 미술책의 문제점은 비전공자들이 쓴 미술책이 많아 너무 오류가 많고, 그런 오류가 정설처럼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7년쯤 전 어린이책 베스트 1위에 오른 미술책을 들춰봤다가 크게 충격을 받았어요. 맞는 내용보다 틀리는 내용이 더 많았습니다.” 이후 노씨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미술책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됐다. 성인용 정통 미술단행본은 잘 안팔리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내린 선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쳐야 겠다는 의무감이 앞섰다. “밀로의 비너스가 ‘8등신’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미술책에 흔히 나오지요.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인체 비례의 기준은 머리가 아니라 발바닥이었어요. 머리 기준은 15세기 이후 등장한 것인데도 검증도 않고 인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주검 60구를 해부해 인체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는 것도 대표적인 오류다. “다빈치가 쓴 수기를 직접 번역해보니 30구였습니다. 왜 60구란 수치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믿을만한 책을 쓴다는 자부심을 잘 보여주는 책이 최근 나온 청소년용 미술책 <춤추는 세상을 껴안은 화가 브뢰겔>이다. 브뢰겔 그림을 이해하려면 16세기 네덜란드 속담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그림에 숨어있는 당시 네덜란드 속담 126개를 모두 번역해 부록을 실었을 정도다.

미술저술가의 길을 연 개척자로서의 위상과는 달리 그의 실제 수입은 의외다 싶을 만큼 적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본격 저술가로, 그것도 미술저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동시에 우리나라 미술출판의 현실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해마다 8권 이상 책을 내는데 그가 ‘책’만으로 버는 수입은 한 해 2000만원 안팎. 노씨가 쓴 책을 보면 번역서를 뺀 일반인용 책은 의외로 적고, 그나마 나오는 기간도 1~2년에 한 권 정도다. 그리고 이 책들은 대부분 말랑말랑한 에세이류가 많아 ‘노성두의 주 저’란 이름을 내걸 만한 책은 없다는 비판도 듣는다. “죄짓는 기분이죠. 그런데 도무지 조금이라도 학문적인 책은 내고 싶어도 낼 엄두가 안나요. 언론에서도 크게 다룬 책이 3000부도 안팔린 경우도 있습니다.”

저술 원칙은 ‘믿을만한 책’

우리 출판시장에서 교양미술책은 팔리는 주제만 중복출판된다. 인상파, 특히 고흐에 대한 책만 계속 나온다. 노씨가 다루는 근대 이전 고전미술들은 아직 대중들에겐 어려운 미술이란 관념이 강하게 박혀 있다. 그 간극이 메워질 때까지 저술가로서 노씨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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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이덕일의~’ 이름값 최소 5만부
대학교수 직함 없이 저술만으로 승부
‘소설가 지망 사학도’ 술술 읽히는 글발 내공
데뷔 10년 만에 30권 베스트 순위 착착
직장인처럼 출퇴근…원고 마감 어기는법 없어
 
구본준 기자 김정효 기자 

한국 출판계에서 ‘자기 이름을 내건 책’만으로 살아가는 글쟁이, 곧 프로 저술가는 극소수다. 문학쪽은 오히려 더욱 전업작가가 적고, 인문·사회·경제쪽, 그리고 실용서쪽에서 최근들어 분야별로 한두명씩 서서히 저술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역사 전문 저술가 이덕일(45)씨는 가장 성공한 글쟁이로 꼽힌다. 책 이름에 ‘이덕일의~’라고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개인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역사쪽에서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는 저술가, 특히 ‘대학교수’란 배경도 없이 책만으로 승부하는 저술가는 그가 유일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이 늦었던 ‘늦깎이 사학자’ 이씨는 1997년 서른일곱살이란 나이에 첫 책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석필)을 쓰면서 저술가로 데뷔한 뒤 꼭 10년 동안 30여권의 책을 쓰면서 역사쪽에서 최고의 인기저자로 자리잡았다.

역사쪽에서 대중적인 인문서 쓰기를 시도한 이가 이씨 혼자만은 아니었다. 80년대 후반 한국역사연구회 등이 ‘역사 대중화’를 시도한 뒤 여러 소장학자들이 대중과 직접 소통을 시도했다. 히지만 현재까지 남아 출판시장에서 통하는 이는 이씨뿐이다. 그만큼 이씨의 등장은 90년대 이후 출판계의 새로운 변화를 상징한다. 이씨가 저술가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 때로는 지금까지도, 받았던 가장 큰 오해가 ‘재야 사학자’란 호칭이란 점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 역사분야에서 ‘재야’란 말은 정식으로 역사를 전공하지 않고 홀로 공부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학과(숭실대)를 졸업했고 <동북항일군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정통 역사학 연구자인 이씨는 ‘재야’가 아닌데도 이씨처럼 저술활동만 전념하는 전공자가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씨를 재야일 것으로로 넘겨짚은 것이다.

저술가로서 이씨는 올해 경력의 절정을 맞고 있다. 1999년 나왔던 <누가 왕을 죽였는가>를 개정한 <조선왕 독살사건>이 지난해 다시 나온 뒤 10만부 넘게 팔리고 있고, 최근 펴낸 <조선 최대 갑부 역관>도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이씨 책 두 권이 동시에 상위 순위에 올라있다. 또 <~역관>이 이씨의 책으로는 처음으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씨를 향한 출판사들의 구애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출판계에서 추산하는 이씨의 시장가치는 ‘5만부’. 올해 출판시장에서 이씨의 가치를 환산한 수치로, 이씨의 이름으로 5만명까지는 끌어올 수 있다는 의미다. 5000부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인문·교양쪽에서 5만부란 수치는 다른 분야의 10만부 수준이다. 이씨는 30~40대 남성들을 고정팬으로 거느리고 있어 최소 1만부는 기본으로 넘긴다. 이런 점 때문에 이씨는 대형 종합출판사 김영사의 ‘빅4’ 필자 가운데 1명으로 꼽힌다. 다른 3명이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 <식객>의 허영만 화백, <토익, 답이 보인다> 시리즈로 토익시장 최고의 베스트셀러 저자인 김대균씨인 점을 보면 이씨의 힘을 알 수 있다.

김영사 ‘빅4’ 필자 중 한명
 
이씨가 저술가로 성공한 최고의 강점은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글쓰기’에서 나온다고 출판계는 분석한다. 학자풍의 딱딱한 글을 쓰지 않는 수준을 넘어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소설가 지망생(이씨는 실제 역사소설 <운부>를 쓰기도 했다)답게 이씨의 책들은 소설처럼 술술 읽을 수 있는 게 매력이자 장점이다. 김영사 신은영 실장은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그 이야기에만 빠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고 글을 쓰기 때문에 독자들이 머릿속에 극적인 장면을 그림을 그리듯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책 내용을 차별화하는 틈새 주제 포착능력도 강점으로 꼽힌다. 누구나 아는 방향으로 책을 쓰지 않고 책마다 반드시 새로운 보여주는 게 있다는 말이다. 논쟁이 일었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처럼 책마다 ‘걸고 넘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는 출판사나 편집자가 가장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이씨의 글은 이야기가 맛깔진 반면 전하는 메시지가 약해 주장하는 바를 명확히 모르겠다는 평도 듣는다. 너무 글 ‘테크닉’에만 의존한다는 평도 있다. 이는 이씨의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지만, 이씨의 철학과 전략에 따른 선택이기도 하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책은 오래 못가는 것 같아요. 전에는 제 주관과 판단을 글에 집어넣기도 했는데 몇년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 부분들이 꼭 목에 딱딱하게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이야기 전개에는 주관을 넣어도 마지막 결론은 독자들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이걸 어기면 독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아요.”

직장인처럼 규칙적인 생활과 철저한 자기관리도 이씨의 성공비결 가운데 하나.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까지 일하고, 가끔 야근도 합니다. 일이 되든 안되든 앉아서 글을 쓰든지 책을 보면서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게 원칙입니다.” 이씨는 술마시는 시간을 빼면 항상 글을 쓰거나 공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마감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마련인 대부분의 필자들과 달리 원고 기한을 어기는 법이 없다. 자기 일정과 작업량을 잘 감안해 합리적으로 마감을 정하기 때문이다. “책도 상품인데 아이스크림을 겨울에 낼 수는 없잖느냐”고 이씨는 웃었다.

지금은 ‘역사 저술가’로 이름을 굳혔지만 그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이씨 스스로도 “늘 어렵게 살았던 터여서 ‘라면 세 개에 소주 한 병이면 하루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던 것”이라며 “아마 온실에서 도전한 사람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른바 ‘일류대’ 출신이 아닌 그가 대학교수에 도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긴 했기에 저술가를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시장)으로 일찌감치 정하고 도전해 거둔 성과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씨는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대학 기웃대지 않고 잘먹고 살면서 전문가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 점”을 자부심으로 꼽는다.

불행하게 가신 분 한풀어줘 보람

역사 저술가로서의 보람을 물었다. “한 시대의 시대정신을 추구하다 불행하게 돌아가신 분들에게 애정이 많이 가는 편입니다. 책으로 그런 분들의 한을 풀어준다고나 할까, 그게 보람입니다.” 이씨는 저술가로서 앞으로의 방향을‘평전’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보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씨는 평전 쓸 대상으로 우선 3명을 정해두었다. 이순신을 발탁한 정치가 유성룡,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아야 했던 비운의 학자 윤휴, 그리고 정조 임금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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