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위기 진단’ 진보학자들 논쟁 불붙었다
최장집 교수 “한나라에 정권 넘겨야” 일파만파
조희연-손호철 교수, 반박-재반박 뜨거운 설전

 
(출처: 한겨레 고명섭 기자)
 
한국 정치 위기 진단을 놓고 진보학계의 지도급 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사이에 논쟁이 불붙었다. 논쟁에 불을 댕긴 쪽은 조희연 교수다. 조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1월22일치 4면) 등 여러 매체에서 최장집 교수가 한 발언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인터넷 진보매체 <레디앙>에 기고했고, 이에 대해 손호철 교수가 조 교수의 주장을 일면 동조하고 일면 비판하는 글을 같은 매체에 기고하자 조 교수가 다시 손 교수를 반비판하면서 논쟁의 판이 커졌다.

애초 쟁점을 제공한 최 교수의 논지를 요약하면 노무현 정부는 무능력과 비개혁 때문에 실패했으며, 실패한 이상 특단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으로, 사회적 갈등을 제도정치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채 운동정치(포퓰리즘=민중주의)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정치를 무력화한 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 집권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의 이런 주장에서 출발한 세 학자의 논쟁을 진행 순서대로 정리해본다.

조희연의 최장집 비판=조 교수는 최 교수가 한국 정치의 위기에 대한 ‘지적’은 올바르게 했지만 ‘진단’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원인은 잘못 짚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정당과 국회를 배제한 데 실패 원인이 있다는 최 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조 교수는 사회적 힘을 이끌어내는 ‘진보적 민중주의’ 전략을 구사하지 못한 데 참여정부 실패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도정치로 갈등을 수렴하는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보수적 저항을 돌파하는 제도정치 바깥의 사회적 힘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확언했다. 민중주의란 정당이나 국회 등 제도권 정치를 뛰어넘어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고 대중과 결합하는 전략을 가리킨다. 진보적 민중주의는 ‘사회경제적 개혁’을 급진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데, 그러려면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르는 대중의 분노를 급진적 방향으로 키워야 한다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제도정치가 정상화하고 그 제도적 틀로 사회적 갈등을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민중주의적 사회운동’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조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 문제를 진보세력과는 아무 상관 없는 ‘타자의 문제’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과 열린우리당 등 중도자유주의세력을 포함한 진보·개혁 세력 전체가 지닌 본질적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문제의 하나로 그는 노무현 정부가 ‘헤게모니 정치’를 실행하지 못한 것을 들었다. 참여정부는 지나치게 정체성에 집착해 집권 기반을 협소화했을 뿐, 보수적 대중의 동의를 얻어내 함께 가는 기반확대 전략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호철의 반론=손호철 교수는 조 교수의 최장집 비판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자유주의 세력이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줘야 한다”는 최 교수의 주장에 더 무게를 실었다. 손 교수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역설적으로 긍정적 요소가 있다며, 정권이 넘어가면 오히려 한국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해 한나라당식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적 양극화와 민중 생존의 파탄을 경험”하면 “문제의 핵심이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걸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에게서 대안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 교수가 말한 ‘두려움의 동원 정치’를 다시 거론한 손 교수는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안에서까지 ‘한나라당에 권력이 넘어가도 좋으냐’는 식으로 윽박질러 문제를 풀려는 것은 코미디”라며 “이제 유치한 ‘두려움의 동원 정치’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이 논리에 ‘두려움의 동원 논리’가 여전히 있다는 인식이 깔린 반론인 셈이다.

조희연의 재반박=이에 조 교수는 “우리 현실의 복합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손 교수의 한나라당 집권 긍정 논리는 최 교수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며, “한나라당 집권 촉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오해도 나올”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손 교수의 논리는 “한국 자본주의가 더 파국적인 상황을 맞아야 대중이 더욱 급진화하고 변혁운동 기반이 강화된다는 1980년대식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며 매우 위험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한나라당의 집권은 한국에서 ‘신보수주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1930년대 독일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한 뒤 긴 파시즘 시대가 열린 것처럼 진보세력에게 불리한 상황만 안겨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2004년 탄핵반대 투쟁에서 확인됐듯이 올바른 일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진보세력의 공간도 확장시킨다며, “탄핵반대 투쟁이 열린우리당에게만 혜택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대약진에도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7년 대선도 마찬가지”라며 “현재와 같은 구도로 지속되는 것이 좋은가, 한나라당의 패권적 구도가 흔들리는 것이 진보정당의 약진에 좋은 것인가 한번 생각해보라”고 주문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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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름 2.0)



국내 유일의 전문, 전업 인터뷰어로 불리는 지승호가 통산 열 번째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를 선보였다. 정치인에서부터 사회 운동가, 언론인, 영화감독을 넘나드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취재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을 얻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인터뷰의 사나이 지승호를 만나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의 정체성과 고민에 대해 물었다.

지승호ㅣ<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라잉 넛, 그들이 대신 울부짖다>(공저) <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우리가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도 좋은가> <마주치다 눈뜨다> <유시민을 만나다> <7인 7색> <감독, 열정을 말하다> <금지를 금지하라>

Q. 2002년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단행본 인터뷰집 작업을 시작한 이후 4년 만에 열 번째 결과물 <금지를 금지하라>를 내놓았다. 부지런한 건가 욕심이 많은 건가?

욕심이 많으니까 부지런한 거 아니겠나. 나야 전업 인터뷰어인데 이것 안 하면 먹고 살 게 있어야지.(웃음) 권수를 세면서 인터뷰집을 낸 건 아니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열 번째 책을 내고 보니 이제야 유아기를 벗어나 소년기 정도에 이른 것 같다. 한 백 권 정도에 이르면 많이 깊어졌다, 성숙해졌다 말을 들어도 부끄럽지 않겠지.

Q. 백 번째 인터뷰집? 정말 욕심도 과하다.

그 정도는 써야 딸내미 대학교도 보내고 시집도 보내고…. 난 이거 아니면 먹고 살 수단이 없다니깐 자꾸 그런다.

Q. 과연 전문 인터뷰어라 그런지 질문에 응하는 태도가 도전적이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문 인터뷰어라는 감투는 내 말이 아니다. 사실 매우 가치중립적인 용어라 문제가 될 건 없지만, 기자 분들이 듣기에는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빤히 기자라는 직업이 있는 상황에서 네가 뭔데 도대체 전문 인터뷰어라는 거야, 라고 생각할 것 같고. 아닌 게 아니라 인쇄매체가 내 작업에 대해 무관심한 건 사실이다. 벌써 열 번째 책인데 자칭 진보 매체들조차 관심 있게 지켜보려 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전문 인터뷰어라는 말은 출판사에서 홍보를 목적으로 아예 책에 박아 넣기도 하는데, 괜히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스스로 ‘전업 인터뷰어’로 자칭하고 다닌다. 그럼 좀 겸손해 보이려나 싶어서.

Q. 결국 인터뷰라는 작업이 전문적인 영역일 수 있느냐는 고민인 것 같다.

전문적이라는 말에 좀 거부감이 드는 게,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이 작업에 대한 접근성을 차단하고 장벽을 쌓는 것 같다.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 않나. 언론의 자유란 뉴스매체를 위해 보장된 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열려 있는 기본적 권리다. 누가 인터뷰를 하든 문제될 게 없다. 전문성을 해친다고 생각지 말고 좀 더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정직하게 보도하고 인터뷰했으면 좋겠다.

Q. 그런데 사실상 그 언론의 자유라는 게 뉴스매체들에 한해 허용돼 있지 않았나. 얼마 전 한 독립영화 감독은 시위현장을 카메라에 담다 시위대로 몰려 연행되기도 했다. 당신은 일종의 언론 권력을 해체한 꼴이다. 주류언론의 미움 혹은 무관심을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건데, <감독, 열정을 말하다>를 내고 그나마 자부심을 가졌던 부분이 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취재원과 접촉할 때, 그 사람을 만나려면 자신이 속해 있는 매체의 권위가 있다든지 기자의 명성이 대단히 뛰어나다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전업 인터뷰어로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대중적인 명사가 아닌 이상 취재원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언론매체와도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김지운 감독이 내 진심을 이해하고 작업에 동참해 “좋은 만남이었다”는 평가를 해준 건 정말 고무적이었다. 김지운 감독에 대한 책이 얼마 전에 나왔는데, 책에 넣을 인터뷰를 진행해야 한다는 출판사의 말에 “내가 할 이야기는 지승호와 다 했으니 그 인터뷰를 책에 넣어 달라”고 했단다. 결국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 들어갔던 인터뷰를 50매 분량으로 줄여서 건네줬다. 주류언론의 기자가 아니더라도 좋은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건 역으로 좋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꼭 주류언론의 기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Q. 인터뷰라는 작업 자체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 이번 열 번째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와 그간의 작업을 극찬하는 기사를 썼는데, 첫 번째 댓글을 보니 “전문 인터뷰어? 얘는 그냥 남이 하는 말 그대로 옮겨 적어서 책으로 만드는 것뿐 아닌가?”라고 썼더라. 인터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면 자기가 당해보기도 많이 당해보고, 해보기도 많이 해봐야 한다. 최종적으로 인터뷰가 정리돼 나올 때 조사 하나 잘못 붙이면 이야기의 뉘앙스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지 않나. 어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아, 이건 내가 한 말이다”라며 만족할 정도로 그 내용을 정리하는 일은 진정 어렵고 고된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가 정말 여태껏 창조적인 면 없이 그저 남의 말을 기록하기만 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워낙 주류언론의 시선이 내 작업에 대해 냉담하다보니, 그렇게라도 생각 안 하면 견디기 힘들다. 차라리 내가 부족하니까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Q. 일종의 피해의식 같이 들린다.

피해의식 많다. 운동선수를 보면 몸 전체의 밸런스가 좋다기보다 어느 특정부위를 훈련으로 혹사시켜 일종의 기형이 된 사람들이 많다. 발레리나 혹은 축구선수의 발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지 않나. 하지만 내가 하는 작업 같은 경우는 아무리 진심을 가지고 노력해도 그게 뭐냐고 폄하해버리면 그만이다. 증명할 수 있는 게 없다. 가치판단의 영역이니까.

Q. 그건 변명 아닌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변명은 굉장히 중요하다. 변명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그만큼 고민이 없다는 의미다. 일단 변명을 시도한다는 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거 아닌가. 변명을 하면서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할 수 있는 거다. 그게 첫걸음이다.

Q.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당신이 하는 인터뷰 작업이 결국 ‘변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적인 장을 마련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 욕을 하더라도 최소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나서 평가를 하자는 거다. 주류언론을 통해 노출되는 인터뷰 기사들은 대부분 매체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목적을 위해 의도를 가지고 악의적으로 편집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백 마디를 하면 그중에 전체적인 맥락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엉뚱한 한 마디를 끄집어내 헤드라인으로 뽑는다. 그런 기사를 통해 어떻게 한 인간을 평가할 수 있겠나. 내 인터뷰 작업은 있는 그대로 한 인간의 생각과 모습을 드러내 세상과 정당한 소통을 하게 하는 데 그 가치를 두고 있다. 꼭 변명의 차원이 아니더라도, 언론이나 대중에 의해 정신적 상흔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 “당신의 진심을 이해한다”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참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Q.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신해철 같은 예술인부터 김규항, 홍세화, 강준만, 진중권, 이상호, 손석희 같은 지식인과 언론계 인사들, 그리고 유시민, 김근태, 강금실 같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당신만큼 폭넓은 스펙트럼의 취재원을 만난 인터뷰어도 드물 것이다. 신기한 점은 그들 모두 당신에게 각별한 신뢰를 가지고 두 번, 세 번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한다는 거다. 비결이 뭔가?

예전에는 농담처럼 내 인터뷰어로서의 장점이 비굴함이라고 했다. 내가 인터뷰를 하는 대상들이 주로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다보니, 그들을 만나기 전에 굉장히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내 인터뷰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뺏는 것 아닌가. 보통 며칠에 걸쳐 질문지를 만드는데, 꼬박 두 달이 걸리기도 한다. 관련된 모든 인터뷰 기록과 보도 내용, 취재원이 만든 영화 혹은 책을 몇 차례에 걸쳐 읽고 분석한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의 두 번째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박찬욱 감독을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만든 질문만 200개다. 이 전에 봉준호 감독을 만났을 때는 140개 정도의 질문을 준비했었다. 그렇게 노력을 들이면서 결국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왜곡 없는 그대로를 독자에게 전달하자는 것 하나뿐이다. 다행히 번번이 진심이 통해 ‘최소한 이 사람은 기사를 위해 취재원을 이용하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Q. 한정된 지면에 압축된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들의 고충도 있다.

나도 기자생활을 해봤다. 하지만 그런 기사가 그 사람의 진의를 왜곡 없이 전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굳이 매체에 소속된 기자가 되려 하지 않는 거다.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취재원의 입을 통해 들은 다음 그게 마치 그 인간의 가치관인양 말하는 기자들이 많은데, 그건 정말 최악의 인터뷰다.

Q. 당신의 정치적 정체성이 궁금하다. 언뜻 진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김규항 선생이 나보러 “너는 거북이처럼 점점 왼쪽으로 나아간다”고 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 스스로를 딱히 좌파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거다. 아마 난 자유주의자에 가까울 것이다. 남에게 피해 안 주면 사회나 국가가 개인에게 간섭하는 걸 극렬하게 반대하는 편이니까. 그러고 보면 나야말로 건전한 보수 쪽에 속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한홍구 선생을 만났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젠다가 모두 우파적인 것들이라고 하더라. 경찰이 사람 잡아다가 함부로 때리지 말라는 거, 남 속이지 말고 도덕적으로 살자는 게 좌파적인 마인드가 아니지 않나. 자본주의 사회가 건전하게 돌아가려면 가진 사람들이 더 모범을 보여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 그거야말로 ‘진짜’ 보수우파가 해야 할 주장의 정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진보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위해 애쓰며 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진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며 기록하게 되는 것이겠지.

Q. 한 번 인터뷰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듣는 건 무엇 때문인가?

진중권, 강준만, 홍세화 같은 지식인들을 매년 만나 인터뷰하고 기록해도 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거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담론 생산자들을 만나 그 내용을 성찰하고 고민해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해보자는 의미에서 말이다. 큰 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란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부분과 불합리한 모순들, 착취와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다. 그들의 기록이 꾸준히 모이면 세상을 바꾸는 데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이번 열 번째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는 당신에게 단순히 수치상의 의미 이상으로 다가올 것 같다.

물론이다. 그래서 가증스럽게도 셀프 인터뷰까지 끝에 싣지 않았나.(웃음) 이번 책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회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오해받고 마녀사냥 당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다. 개인적으로 이상호 기자 인터뷰를 제일 잘 했다 싶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에게 바치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삼성이라는 권력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면서도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이다. 이번 출판기념회 때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와 인터뷰하기로 약속해놓고 굉장히 많이 후회했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어려운 인터뷰였다. 워낙 이상호 기자가 예민했던 시기니까. 그런데 그때 자신이 했던 고민들이 기록으로 남은 걸 보니 정말 뜻 깊게 생각된다며 고맙다고 하더라. 개인이 어떤 한 시점의 생각과 고민을 300매 분량의 글로 정리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데 난 그걸 공짜로 해준다. 얼마나 좋나.(웃음)

Q. 그런데 당신의 인터뷰 작업으로 세상을 바꾸기에는 버겁다고 생각지 않나? 누가 요즘 정치인 인터뷰를 읽고 싶겠는가.

‘아찔한 소개팅’같이 돈과 외모로 모든 걸 판단하는 얄팍한 상술의 프로그램을 봐도 이젠 예전처럼 흥분하거나 욕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모든 게 무기력해지고 의미 없어진 세상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최근에는 좀 더 대중 친화적인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려 한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도 그런 맥락의 작업이었다. 영화감독을 만나 단순히 영화뿐만 아니라 스크린쿼터, FTA 등 사회 전반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게 영 엉뚱한 작업이 아니라는 희망과 확신이 생겼다.

Q. 그럼 당신의 대중 친화적인 다음 인터뷰 상대는 누군가?

일단 <감독, 열정을 말하다>의 두 번째 시리즈를 작업해야 한다. 박찬욱 감독과는 이미 약속을 잡았고, 개인적으로는 홍상수 감독과 김기덕 감독을 만나보고 싶다. 다른 계획도 하나 있는데 대중가수와의 인터뷰를 구상 중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책 한 권을 통째로 신해철과의 인터뷰로 꾸며볼 생각이 있다. 그와는 전에도 한번 인터뷰를 했었다. 정말 재미있는 아이콘 아닌가? 마광수 교수는 자기 홈페이지에 독자가 올린 누드 사진 때문에 조사를 당했는데, 신해철은 공중파에 나와서 “나는 여고생 교복을 트렁크에 넣고 다니면서 심지어 사용한 적도 있다”고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자연스레 웃어넘긴다. 게다가 그의 통찰력과 화려한 언변을 봐라. 어떤 상황에서 분야를 막론한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순발력 있게 반응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보통 내공이 아니다. 꽤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Q. 서점에 가면 책의 성격별로 여러 가지 코너가 나뉘어 있다. 당신의 책들은 그중 어디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역시 사회과학 코너가 가장 가깝지 않을까. 사람들에 관한 지난 기록이 인문학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지금 현재 생각하고 있는 문제의식들에 대해 기록하는 것보다 더 인문학적인 게 어디 있나. 옛날 글을 뒤져 현재의 담론을 생산할 게 아니라,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우선이다. 사람들이 그 중요성에 대해 좀 더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누구나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왔지만, 오히려 남의 이야기는 더 안 듣게 된 것 같다. 자기 이야기만 하는 세상이다. 남의 이야기 좀 들어보자. 그의 온전한 의견과 생각을 읽고 듣자. 그리고 평가하자. 그리고 판단하자. 그게 옳다.

사진 | 김수홍
허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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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7-01-3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는 시비돌이님이시죠. 축하드려야겠군요 ^^

sb 2007-01-3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너해 전에 '인터뷰'에 무척이나 매력을 느꼈었는데, '전문 인터뷰어'를 표방하는 지승호씨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그가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낸 후였죠. 지승호씨도 알라딘 서재를 운영하는 모양이군요.
 

(출처: 프레시안)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는 이유는?"
[방담]전·현직 기자ㆍ언론운동가가 본 <시사저널> 사태

어찌보면 한 주간지의 내부 홍역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지난해 6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삼성 기사를 일방적으로 삭제하며 불거졌던 금 사장과 기자들 간의 갈등은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 이 사태에 반발하는 기자들에 대한 잇따른 징계로 이어졌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제기했던 단체협상은 결렬됐다.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기자들은 금창태 사장 퇴진과 심상기 회장의 사태 해결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태는 지난 9일 기자들이 빠진 채 잡지가 발행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는 금창태 사장의 지휘 아래 편집위원 및 외부 필자들의 기고로 채워진 잡지가 지난 9일 899호에 이어 지난 16일에는 900호로 발행됐다.

기자들과 독자들은 이를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은 편집인인 자신이 지휘하는 이상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짝퉁'이란 용어를 쓴 필자들과 언론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자 및 일반 시민들이 '나를 고소하라'며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19일 저녁 서울 충정로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부활하라! 진품 시사저널' 문화제를 열었다. 고종석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위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등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린 독자 및 언론계 인사들은 앞으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견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초유의 사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사저널>의 문제가 결코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또 결코 한 주간지의 내홍 정도로 치부할 일도 아니라고 한다.

<시사저널> 사태는 민주화 이후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본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언론과 자본의 관계를 화두로 이번 <시사저널> 사태가 갖고 있는 함의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류이근 <한겨레21> 기자, 최성진 전 <뉴스메이커> 기자,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신호철 <시사저널> 기자가 참석한 이 방담은 지난 16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열렸다. <편집자>

<시사저널> 사태 뜯어보기

프레시안 : 여기 모인 분들은 현재 <시사저널>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 편하게 얘기했으면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사태를 바라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사태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발행되고 있는 잡지에 대한 소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신호철: 지난 899호에는 '조중동 죽이려다 친여 매체 다 죽이나'라는 제목이 뽑혀 있었다. 이분법적으로 조중동과 친여매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초등학생과 같은 사고다. <시사저널>이 산업잡지가 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정치적인 성격이 변해가니까 문제가 있는 거다.

류이근 :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존 우리가 읽어 왔던 <시사저널>이 진품이었다는 얘기다. 지금의 <시사저널>을 메꾸고 있는 기사들이 진품과 어울리지 않게 돼버렸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되풀이 될 것 같다. 크게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잡지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한겨레>도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다른 언론들이 이 문제에 너무 침묵해 왔다. 어느 언론사도 지금 <시사저널>이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미시적으로는 언론사 내 편집권 독립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대부분 언론들이 대기업 광고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들이 스스로 발언할 용기도 없을 뿐더러 발언할 때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그런 것들을 기자들이 발언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장과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 등 전직 언론인 선배들이 칼럼 등을 통해 '이게 기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게 기사가 되는 것이냐'며 직접적으로 현직에 있는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기자들이 답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송지혜 : 저도 이번 사태가 참 가슴아프다. 언론재단이 지속적으로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에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큰 세력이 (정치)권력이라는 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는 1위가 사주, 2위가 재벌 또는 광고주의 입김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는 그것과 딱 맞닿아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외압을 경영진이 방어해줘야 할 텐데 오히려 기사를 빼고 편집권을 훼손했다. 그동안 언론재단의 조사에 나타났던 언론자유 침해의 가장 큰 두 가지 요소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더 이상 상식과 선의에 기댈 수 없는 문제"

최성진: 899호 이후부터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그 이유는 기자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의지해 왔던 부분은 법보다는 상식이라는 잣대였고 그것을 믿고 기사를 썼는데, 899호 만드는 시점부터 사측에서 상식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성 기사 삭제 문제가 불거져서 장기간 파행을 겪고 있는 이때에 삼성 측과 관련된 인사가 와서 편집에 개입한다든가, 전직 <중앙일보> 기자들이 와서 편집을 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현직 중앙일보 기자가 커버스토리 썼는데 이런 행태가 상식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류이근: 상식에 지나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실 899호를 이렇게 만들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만들었다. 자칫 상식에 기대하면 문제의 성격이나 사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1인 사주의 선의를 기대하긴 참 어렵기 때문이다. 1인 사주가 운영하는 매체들의 폐해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봐 왔다. 정권, 자본의 압력이 그대로 편집국이나 기자들에게 투영되어 문제가 부각된 사례들은 많이 있었다. 사주들의 선의는 어디까지나 기업으로서의 매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편집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을 제도화시켜내지 못했을 때 편집권은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최소한 사주가 갖는 소유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기자들은 편집권 문제를 제도화, 명문화 하지 않았을 때 사주의 선의에 쉽게 배반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성진: 류 기자는 '선의'라고 했고 나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상식이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류이근: 취재 과정에서 금창태 사장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기사를 들어낸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을 징계조치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형식 논리로 보면, 또 사주의 상식으로 보면 자신이 발행인 겸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또 놀랐던 것은 지난번 899호 발행 뒤 사태가 새롭게 전개된 점이다. 초유의 일이라고 하던데,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뒷감당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현재 잡지를 만들고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안하고 언론을 피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인터뷰 등에도 떳떳하게 응하던 태도에서 바뀌었다.

신호철: 폭풍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아닌가 본다.

류이근: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금 사장이 원하는 것이 이런 형태의 잡지가 계속 생산되는 것인지, 아니면 기자들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강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전자라면 가장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송지혜: 금 사장이 공동대책위원회로 꾸려진 시민단체들의 면담도 거부했다.

최성진: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류이근: <중앙일보> 계열사가 899호부터 많이 참여했다. 실제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의 상당수가 <중앙일보> 출신이고, 그런데 정작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서는 시사저널 사태를 볼 수 없다.

"언론의 자유 외치던 조중동은 왜 아무 말도 없을까?"

최성진: 899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냉정하게 말하면 <시사저널>의 문제였는데, 이제 더 이상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에는 '왠만하면 다른 회사의 문제는 그냥 넘어가거나 침묵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류이근: 경쟁사 혹은 타 언론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고 본다. 취재하면서 '이제 그만해라', '경쟁지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묵하는 것이 관행 아니냐, 이걸 깨도 되는 건가'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굉장히 불편했다.

문제에 대해 방관, 동조, 침묵하라는 말이다. 기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이 사회 감시라면 그 사회라는 공간 안에는 언론도 들어간다.

최성진: 애초 이 사태의 발단이 삼성 기사에 있었고, 상식적으로 <중앙일보>와 삼성의 관계가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태의 와중에 <중앙일보> 기자가 <시사저널> 기사를 쓴다는 것이 문제다.

이송지혜: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있는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우습다.

류이근: <시사저널> 자체가 한국 사회 내에서 가지는 독특한 역할이 있었다. 그런 잡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조중동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 아닌가? 언론의 자유를 말했는데, 조중동은 이 문제를 언론의 자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자유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다"

프레시안: 이번 사태를 대강 아는 독자들은 '기자들의 파업은 결국 독자들의 손해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류이근: 노사갈등으로 보더라도 <시사저널>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임명된 적 없는 편집위원들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손해가 되고 있다.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인식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아예 악의적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송지혜: 또 사측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나?

신호철 : 미온적이다. '이거 이거 안 받으면 너네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이송지혜 : 답답한 것이, 지금 시사저널 기자들은 과도하게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후생복지와 관련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문제로 하는 파업도 정당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기업의 압력을 받아 편집권이 부당하게 유린당한 점이다.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측이 잘못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신호철 : 편집인은 편집권을 경영의 문제로 본다. 그런데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며, 노동의 권리 중 하나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근로조건이다.

류이근: 기자들의 요구사항이나 정당한 편집권에 대해 명시적인 장치를 <시사저널>에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한겨레>는 사장이 발행인까지 맡고 있다. 그러나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따로 있고, 편집국장이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고 편집인은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오만하고 예민한 기업의 '언론 검열'"

프레시안 : 물론 편집인, 편집국장의 편집권 문제도 언급돼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경영과 맞물리는 광고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류이근: 사실 현업에 있는 기자들도 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사실 언론사의 광고국와 광고주는 통상적인 갑을관계가 역전돼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 기업에 대한 기사가 크게 다뤄지면 광고국의 의견이 곧바로 기자한테 또는 데스크한테 간다. 이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언제든지 그런 일이 재발할 수 있고,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최성진: 기자로서 재벌 관련된 기사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 미담이나 선행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 재벌의 비리 문제 등에 관한 기사를 쓸 때면 필수적으로 해당 기업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 그럴 때 홍보실을 통해 취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렇게 되면 바로 광고국으로 접촉이 들어와 일종의 딜을 제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기자 개개인 스스로도 일종의 자기검열 비슷하게, 최소한 귀찮아서라도, 재벌관련 기사는 잘 쓰지 않게 된다.

프레시안 : 예전에는 권력을 가진 기관이 검열을 했다면 이제는 결과적으로 재벌들이 검열을 하는 격인 것 같다.

류이근: 재미있는 것이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본의 횡포나 부당한 압력에 대해서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또 우리가 잡지를 만들어서 파는 과정도 일종의 자본의 행위이기도 하다. 자본주, 재벌들의 문제제기와 간섭에 대해 기자들이 체감적으로 가장 큰 압력 중의 하나라고 꼽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덜하다.

이송지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삼성은 언론인들을 잘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쟁쟁한 언론인 출신들이 그 홍보실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렇게 밖으로 표출된 <시사저널> 사태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삼성과 관련된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어제 에버랜드에서 사고가 났는데 몇몇 언론에 의해 알려졌는데도 '모 놀이동산'이라고 한 언론도 있었다.

최성진: 심지어 몇몇 경제지는 이 에버랜드 사고를 쓰지도 않았다.

류이근: 대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막으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몸부림이다. 당위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결국 문제는 기자들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다. 사주, 조직이 그런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모기장을 촘촘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성진: 해당 기자가 대응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피땀 흘려서 생산한 기사를 끝까지 지켜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기자 개인의 영역이나 시사저널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에서 그걸 지켜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민언련,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에서 기구나 제도적 차원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송지혜: 그런 측면에서 공영방송이나 특정한 사주가 없는 <한겨레> 같은 매체에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기사를 막는 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삼성같은 그룹은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분명 있다.

따라서 언론으로부터 감시받고, 사회의 여러 다른 관계 속에서 감시받고 견제받는 가운데 운영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을 부당한 개입이나 외압을 통해 해결하려 한 것은 삼성이 마땅한 비판 받아야 할 문제다. 삼성은 'X파일' 사건부터 시작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단죄받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이런 식으로 편법으로라도 자신과 관련된 부당한 기사를 막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이 가슴아프다. 누구로부터도 비판받고 평가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치권력보다 더 오만한 태도다.

최성진: 기업에 해가 되는 기사를 막는 것도 있지만 사주와 관련된 평범한 기사들마저도 무조건 내지 말라고 요구한다. 오만한 자세와 더불어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예민한 자세라고 본다.

"실제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상상하는 '삼성의 힘'이다"

프레시안 : 요즘 언론의 경제적 종속의 문제는 꼭 기업에 의해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금속노조의 의견 광고를 거절했던 일도 있다. 이미 언론 자체 내부에 상당히 기업 또는 재벌의 속성이 들어와 내면화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류이근: 기본적으로 수입의 80~90%를 광고에 의존하니까 발생하는 문제다.

신호철 : 그 중에서도 삼성과 기타의 기업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곳곳에 삼성의 힘이 계측된다. '시사모' 등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얘기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삼성을 의식하는가, '삼성 의식지수'가 나타난다. 삼성의 일이라 그런 일은 안 하겠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당장 오늘 방담도 섭외하는 과정에서 두 명이 안 됐다.

사람들은 삼성의 실제적인 힘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힘을 상상한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다른 기업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명시적인 편집권 규약과 사회적 기구 마련, 대안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삼성이라는 권력이 언론과 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광고 때문 아니냐.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언론사의 수익구조를 개편해야 하나?

류이근: 상당히 본질적인 문제다. 모든 잡지들 마찬가지일 텐데 삼성의 광고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수익구조 개편은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으며 대략 열 발자국쯤 앞서나간 생각인 것 같다. 삼성으로부터 광고를 받으면서 발생하는 긴장감,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의 문제다.

사주의 의지도 중요하고 편집권을 지켜내려고 하는 기자의 의지도 중요한 것 같다. 미시적으로는 광고주와 관련된 기사를 넣고 빼고, 톤을 조절하는 문제와 관련해 편집국과 광고국 간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는지 좀 더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송지혜: 재벌의 언론관리가 단지 광고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연수 등으로 언론인들을 관리하는 수단은 많다.

류이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모순이다. 영세한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경우는 자본주들이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서 연수도 가고 때로는 그들의 협찬을 통해 취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모두 떠나 청정지역에 살고 싶다?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돈 많은 언론사는 현실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최성진: 지금 <시사저널> 사태와 같은 일을 어떤 개인의 영역이나 하나의 매체에서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연대의 틀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기자협회라든지 관련 단체들이 많이 있지 않나. 재벌 관련 기사로 인한 연대 같은 것을 하나 설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생각한다.

이송지혜: <시사저널> 공대위가 사실 그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안고 있다. 당면해서는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과 관련된 공대위이지만 그 공대위에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본으로부터 언론 독립'이다.

<시사저널>의 건강한 기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로 던져진 것 같다. 암담하지만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냥 묻히고 넘어갈 수도 있던 문제였는데 한가닥 희망을 본 것 같다.

프레시안: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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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백과사전이 인터넷 때문에 없어져? 그건 아냐!" 
[인터뷰] <인간>, <지구> 낸 DK의 조너선 메트칼프
 

백과사전이 달라지고 있다. 넉 달 간격을 두고 출간된 <인간(Human)>, <지구(Earth)>는 21세기 백과사전이 어떻게 바뀔지를 예고한다. 이 책들은 '인간', '지구'와 같은 하나의 열쇠말을 통해서 그간 인류가 쌓아올린 온갖 지식을 한 권의 책에 총망라하고 있다. 책 전체에 걸쳐 실린 내용의 이해를 돕는 사진은 세계의 출판 수준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인간>(김동광·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몸, 마음, 인생, 사회, 문화, 민족, 미래의 일곱 섹션으로 나뉘어 각각에 대한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온몸의 구석구석을 훑는 '몸' 부분부터 250종 이상의 민족, 언어, 풍속을 소개한 '민족' 부분까지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잘 정리된 정보에 뿌듯할 정도다. 동양, 한국에 대한 정보는 특별히 역자들의 노고로 정확도를 기했다.

<지구>(김동희·이동찬·이상훈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역시 제목대로 '우리별 지구'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육지, 해양, 지하, 하늘을 넘나들며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자연 현상을 생생한 사진 및 정확한 정보와 함께 소개했다. 특히 지구 온난화에 대한 명쾌한 서술은 이것이 왜 과학계에서는 '공인된 진실'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모두 영국의 출판사 DK(The Dorling Kindersley)에서 나왔다. DK는 도감, 백과사전, 어린이 책에 관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30년 전통의 출판사다. DK의 영향력은 '동해'의 표기를 놓고 한일 양국 정부가 신경전을 벌일 때, DK가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하기로 한 결정이 언론에 널리 보도된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21세기가 시작하자마자 DK는 <동물(Animal)>(2001), <지구(Earth)>(2003), <인간(Human)>(2004)을 차례로 내놓았다.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출판의 새로운 방향을 의욕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프레시안>은 <인간>, <지구>의 국내 번역·출간에 맞춰 21세기 출판의 한 경향을 선도하고 있는 DK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인간>, <지구>는 물론 국내에 아직 소개가 안 된 <동물>을 직접 기획·편집한 DK의 조너선 메트칼프 편집인이 인터뷰에 응했다. 메트칼프 편집인은 DK에서 20년 이상 편집인으로 근무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메일(email)을 통해 진행됐다. 다음은 그가 직접 작성해 보내준 이메일 인터뷰 전문.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대등한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프레시안 : <인간>, <지구>는 몇 개 나라에서 번역·출간되었는가?

조너선 메트칼프 : 영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 이외에도 <인간>은 17개 언어로 19개국에서 출판됐다. 그리고 <지구>는 23개 언어로 29개국에서 출판됐다.

프레시안 : 영어권 국가에서 <인간>, <지구>의 반응은 어떤가? 영어권 국가와 비영어권 국가 사이에 반응에 차이가 있는가?

메트칼프 : 사실 처음부터 이들을 시리즈로 출판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책 중 가장 광범위한 내용을 권위 있게 다루면서도, 가장 비주얼한 방법을 통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참고서를 만들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시리즈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동물>이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믿을 수 없는 성공을 거두면서, 우리는 '지구'와 '인간'처럼 다른 핵심 주제에 대해서도 동일한 편집, 표현 방식을 적용하게 되었다.

영어권과 비영어권 사이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주제부터 보편성 있는 것들을 택했고 내용도 전 세계인에게 유용하면서도 공감할 만한 것들로 채운 탓이다. 물론 영어권 국가에서 판매량이 더 많다. 이 지역의 성숙한 출판 시장은 전체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프레시안 : <인간>, <지구>의 출간 작업에는 다양한 저자와 많은 스태프가 참여했다. 그들의 협력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메트칼프 :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춘 편집장을 찾으려 노력한다. 책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DK의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편집장과 함께 책의 구조와 내용에 대해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 결과물을 DK의 간부,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같은 제3의 권위 있는 기구, 전 세계 출판 파트너들이 평가를 한다. 평가를 반영해 수정한 청사진에 따라 편집장은 섹션별로 저자와 전문 자문위원을 추천·지정한다.

그 뒤 섹션별로 함께 일할 편집자, 디자이너를 지정한다. 이들은 섹션별로 생생하면서도 세밀한 레이아웃을 마련하기 위해 저자, 전문가와 직접 접촉한다. 일단 레이아웃이 확정되면, 그것에 맞춰 들어갈 본문, 사진이 준비된다. 이렇게 준비된 것을 다 종합한 후 다시 한 번 DK의 간부, 권위 있는 기구의 전문가, 편집장(의견이 조율되지 않을 때 최종 결정을 내린다)에게 교정지가 보내진다. 이 과정은 마지막 단계까지 두세 차례 반복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인간>, <지구>와 같은 협력 작업을 진행할 때 가지고 있는 특별한 원칙이 있는가?

메트칼프 : 대등한 파트너십이 그 원칙이다.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도 독자층에게 주목을 받는 책을 내기 위해서는 편집자, 디자이너가 대등한 파트너십에 입각해 함께 일해야 한다. 이들은 서로의 견해를 수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이들은 이 책의 전반적인 기획 의도,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DK의 간부, 자문에 응한 전문가의 견해도 존중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 원칙을 구현하는 데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특히 편집자에게 있어서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메트칼프 : 물론 탁월한 편집 능력과 독창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유머 감각을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편집자와 동등한 당사자인 디자이너에게도 해당된다.

"확인, 확인 또 확인만이 양질의 책을 만드는 방법"

프레시안 : <인간>, <지구>와 같은 책은 정보의 정확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어떻게 보장하는가? 원서에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과 관련해서는 소소하지만 부정확한 정보도 보인다.

메트칼프 : 우리는 확인, 확인, 또 확인한다. 해당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선정해 함께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또 세부사항에 대해서 전문가, 편집장 또 객관적이며, 이상적으로는, 문화적으로 다른 관점을 지닌 제3자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권위 있는 기구 등을 동원해 다양한 단계에 걸쳐 점검한다.

불가피하게 일부 실수 또는 의견이나 강조점의 차이가 포함된다.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리고 그 뒤 전 세계에서 인쇄가 들어간 직후부터 우리는 평가와 수정을 하려고 노력한다. 또 이 과정에서 DK와 국제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출판 파트너와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마다 DK는 해당 국가의 출판 파트너와 함께 그 국가와 관련된 특수성을 책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놓고 논의하고 있다.

프레시안 :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환경 위기 문제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접근하는가?

메트칼프 : 우리는 이 시리즈에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강하게 부각시키려고 항상 노력했다. 그러나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와 절망뿐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런 접근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행성과 이 행성에 살고 있는 생물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에 대해 인식하도록 했다. 그들이 더 많이 이해하게 됨에 따라 우리의 행성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레시안 : DK는 판형의 변형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비영어권의 경우에는 번역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트칼프 : DK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 세계로부터 많은 고객과 시장을 끌어 모아 가능한 한 야심찬 대형기획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동 제작 비즈니스 모델로 달성된 규모의 경제에 힘입어 DK는 다른 방식보다 훨씬 더 널리 우리의 책을 출판할 수 있다. 최소의 비용으로 공동 제작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출판 파트너에 있어서 이미지와 레이아웃은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본문 길이가 늘어나는 현상은 여러 언어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독일 지사에서는 영어가 독어로 번역될 때 3분의 1 정도 더 늘어난다는 점을 늘 제기한다. 우리는 이미지 주변에 충분한 여백을 두어 번역으로 늘어난 본문이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부수적 편집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점을 인정한다.

프레시안 : DK가 공동 제작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DK의 출판 노하우를 배우고 싶은 한국의 출판사 입장에서 이런 DK의 태도는 다소 이기적으로 여겨진다. (DK는 번역 과정에서 판형의 변형을 허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책을 직접 제작해 공급한다.)

메트칼프 : 공동 제작 모델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우리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적인 제작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취하지 않고는 우리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에 필요한 자금을 적절하게 조달할 수 없을 것이다. 공동 제작은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고, 그 속성상 DK가 노하우를 출판 파트너와 공유함으로써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21세기에도 책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프레시안 : 기존의 유명한 백과사전이 종이 기반에서 인터넷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인간>, <지구>와 같은 책을 왜 기획했는가?

메트칼프 : 학술서적이라기보다 상품을 제작하는 출판사로서 우리는 이런 유형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만큼 수입을 올리는 온라인 모델이 없다. 또 종이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인간>, <지구>같은 제목을 단 책이 나올 때, 그 영향과 질에 대한 충분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프레시안 : <인간>, <지구>의 가장 큰 장점은 텍스트와 그래픽의 결합을 통해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의 정보 전달은 이미 월드 와이드 웹과 같은 인터넷 환경에 가장 적합하다. 굳이 종이 책에서 이런 방식의 정보 전달을 고집할 이유가 있는가?

메트칼프 : 위에서 말한 것에 덧붙인다면, 나는 정보가 화면상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책의 형태로 제공되는 종이에 찍힌 본문과 이미지 정보를 우리가 섬세하게 결합해 인식하는 방식을 염두에 둘 때, 또 우리가 쪽을 옮겨가며 참조할 수 있는 속도를 고려할 때 아직까지 책보다 더 나은 수단은 없다.

프레시안 : 앞의 질문과 연관 지어서 과연 앞으로 백과사전 더 나아가 종이 책은 어떤 운명에 처할 것으로 보이는가? <인간>, <지구>가 과연 백과사전, 종이 책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가?

메트칼프 : 막대한 정보를 취급하고, 실시간으로 변하고, 새로운 연구로 인한 잦은 수정이 불가피한 학술적인 백과사전의 경우 인터넷의 등장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매력적인 이미지와 함께 정제되고 철저하게 검증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인간>, <지구>와 같은 책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소로 인해 이 책은 학습을 즐겁게 만들고, 특히 가정에서는 지식을 집약한 소중하고 감사한 선물로서 건네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지구>는 21세기의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책상의 한 쪽에 놓여질 것이다.

프레시안 : 당신은 책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가? 책의 미래는 어떨 것 같은가?

메트칼프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DK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다. 물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방식은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DK도 항상 변화해야만 한다. 현재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해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출판할 것인지 선택할 여지가 넓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책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일단 더 전통적인 형식의 책을 선호하는 베이비붐 세대와 그 위의 세대가 여전히 있다. 더 나아가 권위가 있으면서 정보가 풍부할 뿐 아니라 아름답고, 즐겁고, 사고의 확산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책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면 보다 젊은 시장 역시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한국에서도 인기…열흘 만에 1000부 팔려

메트칼프 편집인의 낙관은 한국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다. 지난 9월에 먼저 나온 <인간>은 언론의 조명을 크게 받지 못했음에도 입소문만으로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넉 달 만에 3000부가 팔렸다. 5만5000원이나 되는 책값을 염두에 두면 보통의 책 2만 부가 팔린 것과 비슷한 효과다.

최근 출간된 <지구>는 거의 모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열흘 만에 1000부가 팔렸다. 역시 5만9000원이라는 고가를 염두에 두면 의미 있는 판매량이다. 돋보이는 기획과 양질의 정보가 뒷받침된다면 책값의 고저와 상관없이 찾는 독자층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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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뒷거래 구조 청산에 가장 완강히 저항하는 집단이 언론" 
노대통령, 언론 맹렬비판…"기자들이 기자실서 기사 방향 담합"
 

2박3일의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이 건강 이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17일, 2007년 들어 3번째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뒷거래 구조의 청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집단"이라고 다시 언론을 맹공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어떤 정책이 대선용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대선용이다 아니다는 시비에 대해 전혀 위축되지 말고 각 부처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했다.

노 대통령 "해외 기자실 실태 파악해 보고하라"

이날 노 대통령은 "우리가 하는 모든 정책을 다 대선용이라고 이렇게 꼬리표, 딱지를 붙여 비방하고 있다"고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 외에는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대신 언론으로 화살을 돌렸다.

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보고 받은 '국민건강증진계획'이 어제 TV에 나올 때는 단지 그냥 '출산 비용지원' '대선용 의심' 수준으로 폄하되고 말았다"며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방송사의 보도방향에 대해 노골적 불쾌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역사적 맥락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안타까운 (언론) 상황을 평가할 수 있고, 작게 보면 기자실이란 것이 이런 기사를 획일화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 (다양한 보도가 나올 수 있는데) 획일적으로 출산비 부담으로 나온다. 이게 어디서 만들어졌냐면 기자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부처 기자실로 책임을 돌렸다.

노 대통령은 "보도자료를 갖고 충분히 브리핑을 할 때는 많은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로 어느 방향으로 보도할 것이냐를 딱 압축시키는 작용을 어디서 하냐면 기자실이라는 곳에서 한다"고 덧붙였다. 부처 기자실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 방향을 담합하고 있다는 것.

이어 노 대통령은 "특히 외교부 장관에게 부탁드리는데, 각국의 대통령실과 각 부처 기자실의 운영 상태를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 가지고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있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보도자료를 가공하고 만들어 나가고 담합하는 구조가 일반화 되어 있는 것인지 보고해 달라"며 이같이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보고를 한 번 더 다시 해 주시고, 남은 1년 동안이라도 필요한 (언론) 개혁은 할 것은 다 하도록 그렇게 방향을 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언론과의 갈등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그 대신 노 대통령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가 87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21세기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며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경제 체제는 87년 이전 체제를 다 청산했고 참여정부가 정치영역에서 87년 체제를 마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소위 특권과 유착, 반칙과 뒷거래의 구조를 청산하는 것인데 여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집단"이라고 덧붙였다.

"대선용이라는 시비 개의치 말고 일하라"

한편 노 대통령은 "요새 우리 한국 정가에는 '대선용'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상당히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다"면서 "실제로 있지도 않은 남북 정상회담을 꺼내서 '그것은 대선용 아니냐?'라고 몰아치고 시비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관한 각종 '설'들을 부인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어차피 정당이, 정치인이 국정을 주도하고 있는 마당이니까 어느 것이 대선용이고 어느 것은 대선용이 아니라고 어떻게 구별할 수 있냐"며 " (그런 비판은) 현대 정당정치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용이라고 시비 걸릴 것 아니냐' 이런 데 일체 개의치 말고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이냐 아니냐' 이것만 판단해서 일을 해 주시기 바란다"고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했다.

이는 야당이나 언론의 '정략적 비판'에는 개의치 않고 각종 의제들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남은 1년 기간' 동안 언론과의 전면전을 선언함에 따라 청와대는 물론 다른 정부 부처들의 대언론 긴장감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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