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브룩스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로봇이 감정을 가지고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로봇이 인간과 같아지면 사람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앞으로 50년 안에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88)

 

 

1국면 : 이세돌 vs 알파고

 

 

 

 

알파고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다. 201510, 유럽 바둑 챔피언 판 후이 2단과의 경기에서 50으로 이겼을 때만 해도 알파고가 이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되지 않았다. 이세돌도 한 번 질까말까라며 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인간대표이세돌은 인공지능알파고와의 대결에서 39일 제1국에서는 어이없게, 310일 제2국에서는 안타깝게 지고 말았다. 2국에 패한 직후 인터뷰에서는 한 번만이라도 이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제2국을 살펴보자면 이런 모습이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흰 돌은 이세돌 돌이고, 검은돌은 알파고 돌이라는 것뿐이다. 어느 수가 인간이 둘 수 없는 기막힌 수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놀라운 지점은 기본적으로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는 알파고가 스스로 공략법을 찾아내는 딥러닝 기법을 적용해 실력을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부문에서도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 AI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며, 지금의 경우처럼 인공지능 AI가 승리하고 인간이 패배할 경우가 많아지리라 예상된다. 이세돌의 모든 경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알파고와의 대결은 <이세돌 vs 이세돌>의 격돌일 수 있겠지만, 알파고가 다른 바둑 기사들의 기록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확히는 <이세돌 vs 지금까지의 모든 바둑기사들>과의 대결이다.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한 이세돌, 도전을 받아들이던 자리에서 어느새 도전자의 자리로 옮겨앉고 말았다.

 

2국면 : 이세돌 바둑학원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슈퍼 컴퓨터 딥블루(Deep Blue)’와의 대결에서 딥블루가 승리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바둑 경기에서는 인간이 단연 우세했고,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수보다 많다는 바둑에 대해서만은 오랫동안 인간우위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파고를 프로그램했던 사람들조차 이세돌과의 격돌에서 50 : 50의 승부를 예측했다. 하지만, 현재 제2국까지는 알파고의 연승. 이세돌 9단은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야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체스경기에서 슈퍼컴퓨터가 인간과의 경기에서 이긴 후에 체스에 대한 열기와 관심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것은 이세돌과만 연관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아롱이가 다니는 이세돌 바둑 학원의 미래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롱이가 다니는 이세돌 바둑 학원이세돌과는 특별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름만은 확실히 이세돌 바둑 학원이다. 이세돌의 분패로 바둑 학원의 미래가 암울해진 이 찰나, jtbc에서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기 4국 촬영을 위해 바둑학원을 방문한다고 하니, 아롱이와 나는 이번주 초등부 예배를 마치자마자 바둑학원으로 달려갈 것임을 굳게 다짐했다

 

3국면 : 남동생 vs 누나

이 국면은 너무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라 미리 손수건을 준비해야만 하겠다. 아롱이는 지난 11월부터 바둑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3년 이상 다녔던 수영을 그만두고 나서, 넘쳐나는 시간과 활화산같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던 차에, 이전부터 다니고 싶다던 바둑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간 날, 바로 그날 등록을 했다. 다른 사교육을 해보지 않아 결제하러 카드를 건네는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근처에 어린이만을 위해 바둑학원이 없기도 하고, 원장님이 현재 활동중인 프로 7단의 실력자이기도 해서 바둑학원은 6세에서 9세의 남자 아이들로 앉을 자리조차 부족해 보였다. 11살의 아롱이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늦은 편이었는데, 방과후 26급에서 시작해 현재는 19급으로 실력이 향상됐고, 바둑학원에서의 1분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정말 열심히 바둑학원을 다니고 있다. 바둑이야말로 아롱이의 특기 없음을 상쇄해준 특기 중의 특기.

키도, 몸무게도, 공부도, 수영도,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플릇도, 중국어도, 맙소사, 이탈리아어, 심지어 식사량까지. 넘사벽 누나를 넘어서는 유일한 종목이 바둑이다. 그저께 이세돌 9단의 2국패 소식을 접하고 상심한 우리 세 사람을 보면서 딸롱이는 '알파고스럽게' (‘알파고스럽게란 내가 만든 신조어인데, 냉철한 판단에 감정을 배제한 어조로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툭 던지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게, 왜 바둑학원에 보내요? 바둑 배우면 뭐해? 알파고가 사람보다 잘 두네, .”

아롱이는 고개를 떨구고 남편과 나의 낯빛은 흙빛으로 변했다.

1국면, 인공지능 AI에 추월당한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어 심히 안타깝고, 2국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세돌 바둑학원또한 잘 되기를 바라지만, 3국면의 실제는 정말 암담하다. 이게 우리가 이세돌을 응원하는 진짜 이유다.

이세돌 힘내라! 인간 대표로서의 부담이 클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믿고 당황하지 말고 알파고에 당당히 맞서라. 이세돌 학원의 미래가 네게 달렸다. 우리 문원장님과 이세돌 바둑학원 어린이들이 진심으로 너를 응원한다.

이세돌, 힘내라! 아롱이의 상심을 오늘에는 멈춰주어라!

이세돌 파이팅! 이세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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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2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2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6-03-1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만든 도구들이 인간을 능가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듭니다. 이미 인류가 그동안 숱하게 발명해낸 `도구들`이 대체로 `인간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능력들`을 충분히 보여왔으니 말이지요. 이번 `알파고 대국`을 지켜본 어떤 인공지능 전문가가 했던 말인 즉슨, ˝인간이 발명해낸 자동차가 인간보다 훨씬 더 빨리 달린지가 이미 100년도 넘었는데, 무얼 그리 놀라나?˝ 라던 얘기가 제게는 `가장 정곡을 찌르는 말`처럼 들리더군요.

단발머리 2016-03-19 09:15   좋아요 0 | URL
인공지능 전문가가 했던 말이 저에게도 가깝게 느껴지네요.

제가 특히 관심을 갖는 건, 인간이 만든 도구 중에 하나인 인공지능이 `직관`, 인간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직관을 가질 수 있느냐,하는 거예요. 좀 더 알고 싶기도 하구요.
배움의 길은 끝이 없네요. ㅎㅎ

서니데이 2016-03-12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어제와 같은 결과였어요.^^;
단발머리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단발머리 2016-03-19 09:16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댓글이 늦었어요.
서니데이님도 오늘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래요~~ *^^*

순오기 2016-03-1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롱이를 만나봐서 `알파고스럽게` 대사를 던진 모습이 막 그려지네요~^^
이세돌을 응원했지만 처음부터... 이기긴 힘들겠다 생각했어요.ㅠ

단발머리 2016-03-19 09:16   좋아요 0 | URL
ㅎㅎ 아침에는 `알파고`이고 저녁에는 딸롱이로 돌아옵니다.
이세돌 한 번이라도 이긴거 잘 한거라 생각해요.
1대 1200이니까요. ㅎㅎ

2016-03-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롱이에게 힘을 주세요~ 전 아롱이 편~게임 덜하고 책을 더 읽으면. . .이런 말이 먹힐까요? ^^;;

단발머리 2016-03-19 09:17   좋아요 0 | URL
아롱이는 뭐, 항상 즐겁습니다.
낯빛 흙빛은 저랑 신랑이죠.
게임은 많이 하고 책은 안 읽으려고 해요. T.T
 

 

 

Meanwhile, he was saying to me, “I turn sentences around. That’s my life. I write a sentence and then I turn it around. Then I look at it and I turn it around again. Then I have lunch. Then I come back in and write another sentence. Then I have tea and turn the new sentence around. Then I read the two sentences over and turn them both around. Then I lie down on my sofa and think. Then I get up and throw them out and start from the beginning. (18)

  

  

 

그가 알건 모르건, 그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는 내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이고, 내가 아는 유일한 작가이고, 내가 읽는 작가이다.

읽었던, 읽고픈, 그리고 계속해서 읽는, 읽고 또 읽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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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3-1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님, 저 이것 옆에 있는데 지금 완독은 못했어요. 필립 로스! 정말 생전에 한번 만나보고 싶은 작가랍니다. 이 대목 저도 기억해요.

단발머리 2016-03-10 13:40   좋아요 0 | URL
ㅎㅎ 안녕하세요, blanca님~~

저도 아직 끝까지 못 읽었어요. 전에 blanca님 필립 로스의 다른 책 원서로 읽고 리뷰 남기신 것 보았어요.
저는 책 제목도 기억이 안 나네요....

필립 로스님이 오래 오래 사셔야 저도 만나고, blanca님도 만나고, 노벨문학상도 타시고 할텐데요. ^^

책읽는나무 2016-03-10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멋지십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6-03-10 13:41   좋아요 1 | URL
멋지지 않아요. 요 위의 문장은 하도 쉬워서요.

I write a sentence.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6-03-10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문장 마음에 듭니다. 애서가들이 특정 작가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죠. ^^

단발머리 2016-03-12 11:59   좋아요 0 | URL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동경하는 작가의 말인데요.
저에게는, 필립 로스의 말로 들리네요.

I write a sentence. ㅎㅎㅎㅎ

2016-03-1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 아롱이게 기쁨을 선사했네요. 이세돌 9단이..
단발머리님~가족 회식하시겠네요~~ ㅎㅎ

단발머리 2016-03-19 09:18   좋아요 0 | URL
저랑 남편이 완전 좋아했구요.
오히려 아롱이랑 딸은 그냥저냥.
저는 무척이나 기뻤어요. ㅎㅎㅎ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추천사 중 하나는 정희진님이 쓰신 것이다. 근 5-6년간 내가 읽었던 추천사 중 최고다. 추천사 없어도 이 책 읽었겠지만, 추천사대로 이 책을 가지고 다녀야겠다, 그렇게 생각해본다. 

 

 

읽기가 사는 고통을 덜어 준다는 말은 사실이에요. 외로움도, 죽고 싶은 마음도 진정시켜 줍니다. 잠시의 위로가 아니라 곁에 있어 줍니다. 읽기만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믿어요.                                              - 정희진 

 

 

오늘이 '여성의 날'이라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던데, 겸사겸사 페미니즘 책 좀 모아본다. 

어제 한겨레 신문에서 <성난 여성들의 무기는 책>이라는 기사에서 소개된 책들이다.  

 

 

이 중에 읽은 책이 5권. 남아있는 책이 10권이다.

읽기만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나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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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3-0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 책이 이 중에서는 다섯권이네요. ㅎㅎ [나쁜 페미니스트]는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뒀어요. 다음 지름에 넣으려고요. 힛.

단발머리 2016-03-08 19:25   좋아요 1 | URL
저랑 똑같이 5권이예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페미니즘의 도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빨래하는 페미니즘], 이렇게 읽었어요. 저는 비교적 쉬울걸로 찾아 읽었네요. [제2의 성]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 때문이죠.

저두 [나쁜 페미니스트]부터 시작할까 해요.
이제 더 이상 착한 척 하지 않겠어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겠어요!!! 히히힛!

2016-03-09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2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6-03-09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페미니즘의 도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빨래하는 페미니즘] 이렇게 네권 읽었네요.

저는 요새 `모난 돌에 정 맞는 중` 이라 좀 정신이 없네요....

꽃샘 추위답게 쌀쌀합니다. 감기조심하셔요~


단발머리 2016-03-12 12:05   좋아요 0 | URL
우리 같은 책 네 권을 읽었네요. 신나라~~
조금 더 어려운 책도 읽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요. 자꾸 미뤄두고만 있어요.
신간 나오면 아무래도 신간 쪽으로 눈이 가기도 하구요. ㅎㅎ

`모난 돌에 정 맞기`에서 정 맞기는 신나는 일이 아닐텐데....힘내세요~~~~~~
오늘 아침도 쌀쌀해요, 아무개님도 환절기 잘 보내시구요^^

[그장소] 2016-03-17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내용이네요 ㅡ읽기 가..위로 되고..곁에있어준다니..!^^ 지극히.동감예요!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100)

 

 

 

소리를 내어 말하기 전, 아직은 침묵할 때라고, 고독한 독서에 빠질 때라고, 아직은 그럴 때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고독한 독서를 할 때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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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08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는 일종의 강박 충동이라고 하죠.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충동 말이죠. 왜 그럴까요. 저도 글을 쓰지 않으면 왠지 허전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책도 많이 읽어야 하는데,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네요. ;^^

단발머리 2016-03-08 09:35   좋아요 0 | URL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강박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창작의 시간과 과정들이 작가들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럽겠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그 글을 읽는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행복한 시간이 주어지니까요. *^^*

2016-03-08 0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3-08 09:43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 말에 끌려요.

일전에 읽었던 건데, 제목이 정확히 기언이 안 나네요. <책 읽고 글쓰는 동안에만 행복했다>던가...
작가들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었는데, 그 책에 그런 구절이 있더라구요.

˝오늘도 하루 종일 책만 읽었다.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저도 오늘을 그렇게 보내려구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능할까요? ㅎㅎ

다락방 2016-03-08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상대에게 차마 말로 못하는 것을 글로 쓸 때 더 쉬워지더라고요. 그 사람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이 보는데도 그래요. 예전에 어딘가에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대상을 정해놓고 그 사람에게 얘기하듯이 쓰라고 한 걸 본 적 있는데, 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거든요. 불특정 다수가 읽을 것이다, 라기 보다는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정해두고 글을 쓰는 쪽이 더 잘 써지더라고요. 결국 누군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글인데 그런 글을 통해 고백하는 것이 제겐 좀 더 편해요. 말보다 글이 저는 좀 더 편한가봐요.

단발머리 2016-03-08 09: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같은 경우는, 다락님의 글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계속해서 다락님의 글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열혈팬들도 많고 하니, 더욱 그러실 듯 해요.

불특정 다수보다 한 사람을 정해놓고 글을 쓴다는 건 참 좋은것 같아요. 그 때 글이 더 잘 써진다면 더 좋구요.
다락님 글의 진수는 다락님이 정한 그 어떤 한 사람이, 혹시 나는 아닐까, 하고 믿게 만든다는 거죠.
제가 꼭 그렇다는 말씀은 아닙니다요..... ㅎㅎ

수이 2016-03-0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다가 숙제는 언제 하려고;;;;;;;;

단발머리 2016-03-08 11:1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게요. 나두 내가 걱정되네요~~~

cyrus 2016-03-0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글쓰기 방식이 저와 다르군요. 저는 불특정 다수가 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단발머리님이 인용한 문장을 약간 변형해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어느 누구도 안 보는 이야기(글)를, 훗날 독자가 될 수 있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어제 쓴 글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글의 가치를 알아보고 읽는 사람이 나옵니다. 저는 이걸 염두하고 글을 씁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글을 써야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서평 대회에 응모하려고 쓰는 글입니다. 심사위원(출판사 직원)에게 잘 보여야하니까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3-12 12:07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cyrus님은 불특정 다수를 염두에 두고 글쓰기를 하시는군요. cyrus님은 팬층이 두터우시니 그렇게 하셔도 좋을 듯 해요.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글을 써야하는 상황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그나저나 심사위원이 좋아하는, 선정하는 서평이란건 어떤 건가요? 진짜 궁금해서 여쭈어 보아요. 서평 대회 응모해본적이 없어서, 심사위원을 염두에 둔 글쓰기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구요. ㅎㅎㅎ

cyrus 2016-03-12 12:38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보는 분들은 있어도, 매일 제 글은 자주 읽는 팬 같은 분은 없어요. 다락방님, 단발머리님, 양철나무꾼님처럼 편안하게 책 내용을 알려주는 분들이야말로 독자들이 자주 보고 싶고, 가장 선호하는 글을 쓰십니다. ^^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서평대회용 글은 해당도서를 읽으려는 독자와 제 글을 심사하는 사람(출판사 직원)이 본다고 염두하면서 써요. 독자에게는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을 알립니다. 대부분 출판사 서평대회 심사는 출판사 직원이 합니다. 그러면 출판사에서 작성된 서평과 다른 독자서평을 참고하지 않고, 나만의 책 소개를 합니다. 출판사용 서평, 언론사 서평, 그리고 독자 서평에 있는 내용을 쓰면 글의 개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평에서 직원에게 이렇게 어필하는거죠.

˝난 이 책을 남들과 다른 관점으로 읽었는데, 나는 내 방식대로 책을 소개하겠다. 어떻소? 출판사 담당자, 마음에 듭니까?˝

이렇게 쓰면 심사위원의 눈에 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 생각이 틀릴 수 있어요. 항상 이런 방법으로 썼는데, 당첨되지 못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

2016-03-12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12 12:5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양철나무꾼님, 단발머리님 글의 공통점은 글에 공감하는 분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잘 알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듯이 글을 쓰시니까 가능한 일이죠. 문장력이 좋다고 해서 좋은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웃기게 하고, 재미있게 해주고, 공감하게 만드는 글이 잘 썼습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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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책보다 1센티미터 정도 작은 크기, 1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분량, 201212월 테드×유스턴 TED×Euston 강연을 다듬어 출간된 이 책은 페미니즘이라는 무거운 주제, 10초 안에 사람들을 모세의 홍해처럼 둘로 가를 수 있는 이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는 선입견을 가볍게 밀쳐버린다.

보세요, 저는 이렇게 얇은 책이에요. 보세요, 저는 이렇게 가벼운 책이에요.

그 다음으로는 표지. 내가 워낙 하늘색(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부디 다른 사람도 그러하기를. 나는 이 색을 하늘색이라 부른다)과 분홍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남성과 여성, 서로 다른 성에 속해 살고 있으면서도,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 두 개의 성을 영문자 WM으로 디자인화한 게 마음에 든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여성을 상징하는 W가 남성을 상징하는 M앞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 또한 눈길이 간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는 페미니스트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편견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사회적으로 페미니스트를 불편해 하고 있음을 느끼는 여자들의 경우, 벨 훅스의 표현대로라면,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경우, 더 큰 오해와 반발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51)를 강조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순간, 고백하는 순간 그 사람의 언변은 곡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속여야할까, 말하지 말아야할까.

이런 난처한 상황에 대해 저자는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재치 넘친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14)

이 방법은 비교적 응용이 쉬워 일상생활에서 바로 적용가능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안녕하세요, 단발머리입니다. , 저는 페미니즘에 찬성합니다. 페미니즘의 모든 이론이나 해석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바탕이 되는 제일 기본적인 생각,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혹은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 그럼요. 저는 페미니스트예요. 저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고 남자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립스틱을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시안 페미니스트예요.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45)

나는 뭐든지 경험해봐야 안다고 믿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아도 결혼의 폐해에 대해 알 수 있고,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았다해서 아이의 빛나는 순간순간을 알아채지 못할거라 생각지 않는다. 결혼했어도 외로울 수 있고, 제 배로 낳은 아이라도 인격이 없는 것처럼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수시로 무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경험해봐야 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똑같은 근거로 남자라고 해서, 여자들의 사정을, 여자들의 입장을, 여자들의 상황을 끝까지 모를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가까이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누나가, 자신의 여동생이, 자신의 딸이 처한 환경, 주어진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되는 걸 직접 보게된다면, 남자들도 젠더에 대해 의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건강한 남자, 건전한 남자조차도 그런 젠더’, ‘젠더의 다름으로 인한 불합리와 모순을 스스로발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스웨덴 여성 로비라는 단체가 출판사, 스웨덴유엔연맹, 스웨덴노동조합연맹등의 후원으로 이 책을 스웨덴의 모든 16세 학생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젠더 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가 정부의 핵심 의제이고, 현재 장관 스물네명 중 열두명이 여성이며, 남녀 불문 480일의 육아휴직이 법으로 명시되어 있는 나라에서 말이다.(90)

오늘 아침에도 한국인 읽기 능력 최하위? 독서의 중요성이라는 기사가 떴던데, 어른들이야 책 한권 읽는다고 생각이 크게 바뀔리 만무하지만, 전국의 중학교 3학년들에게 이 책 한 권씩.

만원의 행복.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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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4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만 느끼는건지 모르겠지만, 도서정가제 시행하고나서부터 독서 안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하는 내용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결론은 항상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내용의 글을 읽으면 정신 차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책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 더 많아졌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책을 안 읽는 이유는 도서정가제 때문입니다. ^^;;

단발머리 2016-03-07 08:2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도서정가제 이전보다 지금 책을 더 많이 사는 것 같거든요.
저는 책을 많이 사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도서정가제 영향을 덜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cyrus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런것 같기도 해요. 도서정가제가 우리의 적인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