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었던 것은 고미숙님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2004)에서였다. 어떤 철학자의 글을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철학자가 이 책 그림자 노동의 저자인 이반 일리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확한 표현은 모르겠지만 대강의 워딩은 이러했다.

 

 

 

 

 

 

 

 

 

현대인의 노동은 근본적으로 노동 그 자체에서 소외된 것이다. 가사노동은 임금노동의 형태가 아니므로, 노동의 범주에서 한 번 더 소외된다. 가사노동은 이중으로 소외된 노동 형태이다.  

 

가사 노동의 특이점은 무임금과 보완성에 있다. 가사 노동을 위해 인력을 고용할 수 있고, 가사 노동하느라 애썼다고 스스로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도 있겠으나, 원칙적으로 가사 노동은 수익을 창출할 수 없는 종류의 노동이다. 가사 노동은 그 자체가 의미 있는 노동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이고 원만한 삶을 위해 수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보조적이다. 돈이 되지 않는 노동 행위이고, 보완적인 노동 행위이다.

예전과 달리 가사 노동의 많은 부분은 기계의 힘을 빌려 비교적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마솥 올려놓고 불 조절을 해가며 밥 하지 않는다. 전기밥솥이라면 쌀을 씻어 넣고는 버튼을 두 번 누르면 밥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집안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 다 먹은 밥통은 씻어야하고, 청소기가 닿지 못하는 곳은 닦아주고 털어주어야 한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되, 샤워 후에 바닥에 나뒹구는 젖은 수건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꺼내고 널고 개켜서 각각의 서랍에 넣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가사 노동의 어려움에 대한 애달픈 간증, 노명우님의 이야기 잠깐 들어본다.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끝없는 노동이라고 한다. 만일 당신이 남자라면, ‘혼자 산다는 것은 하지 않으면 티가 나고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시시포스의 운명과도 같은 가사노동에 수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생략)

최악의 것은 청소죠. 그건 정말 끔찍해요. 매일 해봐야 진짜로 알 수 있을 텐데. 이를테면 당신이 금요일 날 무엇을 닦아 놓아도 다음 주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곳에 똑같은 먼지가 앉아 있을 거예요. 그러니 지겹지 않겠어요. 최소한 맛이 가게 하는 일임엔 틀림없죠. (...) 이건 거의 바다 한복판에서 걸레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요. (96)

 

이반 일리치는 <고용의 그늘에 가린 노동>에서 이렇게 말한다.

상품 집약적 사회에서는 임금 노동의 생산물을 통해서만 기본적 필요가 충족된다. 이 점에서는 주거와 교육이 다르지 않고 교통과 분만이 다르지 않다. 이런 사회에서는 직업윤리마저도 임금을 받는 고용만을 인정하고 독립적으로 먹고 사는 행위는 폄하한다. 그러나 임금 노동의 파급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급 노동을 두 유형의 상반된 활동으로 갈라놓기까지 한다. 임금 노동이 예전의 무급 노동 영역을 잠식해온 현상은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 새로운 종류의 무급 노동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줄기차게 외면당해 왔다. 즉 산업 노동과 서비스에 대한 보완물로서의 무급 노동이 그것이다. ...

오늘날 가정 부문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예속은 가장 뚜렷한 사례이다. 우선 가사 노동은 무급이다. 그리고 여자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남자와 합심해 집안 전체를 이용함으로써 갖고 구성원의 생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므로 자급자족 활동도 아니다. 오늘날의 가사는 생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산업적 일용품들에 맞춰 획일화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으로 하여금 여성 특유의 방식으로 임금 노동을 위한 재생산, 재충전 및 자극제 역할을 하도록 강제한다. (28)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 안 된다는 자각과 내가 하고 있는 노동 행위가 어디까지나 보완적이라는 인식은 두 개의 물음을 촉발한다. 내가 하는 일은 정말 의미가 없는 일인가,하는 물음과 그렇다면 나는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하는가,하는 물음이다.

두 가지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은 내가 실제로 돈을 벌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아이가 가까운 곳에서 직접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됐을 때, 빠르게는 아이가 어린이집 종일반으로 들어갔을 때부터 늦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조금 더 늦게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은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크고 돈은 더 많이 필요한데 어디에서 돈을 벌 것인가.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현실은 녹록치 않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불황, 사상 최고치로 치솟는 청년 실업률, 경단녀 말 그대로 경단녀가 설 자리는 없다. 일을 놓은 지 12년 됐다. 회사를 4년 다녔는데, 회사를 다니지 않은 햇수가 그에 3배다. 나는 아줌마고, 늙었고, 뒤쳐졌다. 특별하게 잘 하는게 없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엔 나이가 많다.

좀 더 솔직하게 쓰자면, 나는 살림을 잘 못 한다. 잘 못한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살림을, 막 한다. 대충대충 산다. 먹는 것도, 치우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보통에 못 미친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이런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안타깝도다! 펜을 들려고 시도했던

여성은 주제넘은 종으로 여겨지고,

그 과오는 결코 속죄될 수 없다네.

그들은 말하지. 우리가 성과 그 역할을 잘못 알고 있다고.

자녀 양육, 유행, , 의상, 사교,

이것이 우리가 선망해야 할 소양이라고.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거나 질문하는 일은

시간 낭비일 뿐이며, 우리의 미를 가리고,

꽃다운 우리를 정복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반면 노예처럼 집안 살림을 돌보는 무미건조한 일에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능력을 써야 한다고. (109-110)

 

글을 읽고 쓰는 것, 생각하거나 질문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성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며 질문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능력,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집안 살림을 돌보는 일에만 사용하라는 압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집안일을 잘 해서, 반찬을 잘 만들어서, 정리정돈을 잘 해서, 인테리어에 소질이 있어서, 자신이 잘 하는 그 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집안일만 잘해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돈을 벌 수 있다. 문제는 집안일을 잘 못한다는 데 있다.

 

핵가족이든 확대가족이든 가족이 상호보완적이면서 상호배타적인 두 노동, 즉 하나는 주로 남성에게 배당되고 다른 하나는 여성에게 배당된 노동들을 연결하는 수단이었던 적은 역사상 어느 시점에도 없었다. 두 상반된 활동이 가족을 매개로 불가분의 혼인 관계를 맺는 이 공생 현상은 상품집약적 사회만의 특징이다. (45

  

 

 

가끔 방송을 통해 돈 버는 아내와의 역할분담으로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남성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그 불만의 내용이 일반 가정의 아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가사 노동이 특정한 성을 여성화시켰다기 보다는, 가사 노동의 성격 자체가 그 일의 주체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장 큰 슬픔이라면 가사 노동이 여성이라는 성,에 배당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위가 박탈된, 전혀 새로운 계급인 가정주부의 탄생을 1830년대 미국의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음식 가공과 저장, 양초와 비누 제조, 실쌈, 제화, 퀼팅, 양탄자 짜기, 소형 가축 기르기, 텃밭 농사 등이 모두 가정 안에서 이루어졌다. ... 가정의 자급자족을 유지하는 데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집에 가져오는 수입은 비슷했다. 경제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

하지만 1830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상업적 영농이 자급농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생활 임금을 버는 일이 상례가 되었으며, 부정기적 임금 노동은 빈곤의 징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정의 안주인에서, 자녀가 일하러 가기 전에 머무는 장소, 또는 남편이 휴식을 취하고 수입을 지출하는 장소의 관리인으로 전락했다. 앤 더글러스는 여성의 이러한 변형을 지위 박탈’(disestablishment)이라고 불렀다. (198-9)

 

요약하자면, 유인원에게 가정의 역할을 투사해 보금자리를 지키는 것이 여성 고유의 역할이라 주장하는 생물학적 신화화와 상품집약적 산업사회의 등장으로 인한 자급자족사회의 붕괴로 가정주부라는 새로운 계급이 탄생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계속 일하고 쉬지 않고 일하지만, 무임금 노동의 그녀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가사 노동에만 전념하는 한 그녀들에게 주어질 것은 없다. 혜택이 없고, 보상도 없다.

 

여성이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닌 것(non-work)이기 때문이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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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마치고 간만에 나들이


우리 동네는 후보가 세 명.
1, 2, 3번 중에 가차 없이.. 퐉!

비례정당 투표에서는 망설이고 망설이고...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에게 미안해요... 속으로 말했다.

간만에 서울랜드. 사람들이 많다.
저는 투표하고 왔어요. 투표하고 오셨어요? 라고 마구마구 묻고 싶다.

어제 통화한 친구에게... 거기가 노원병이야? 노원갑이야? 했더니, 안철수 지역구라 해서 좀 도와달라...
둘째 언니, 둘째 형부, 셋째 언니, 셋째 형부, 친구와 친구 신랑, 친정어머님. 친구의 친구들과 기타 친구들.
야권분열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나, 왜 그렇게 생각이 짧나, 욕 좀 같이 해 주시고... 전화 좀 돌려달라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결과 나오면 치킨+콜라 쏜다고, 온 가족한테 쏜다니 좋다며, 서둘러 전화을 끊었다.

기다려지면서도 조금 떨리는 그런 시간이, 이제 2시간 15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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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3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13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30금 쌍담 - 섹스.폭력.정치.종교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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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을 쌓기 위한,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성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인문학만이 각광받는 시대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는 이유가 공부를 잘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인문학만이 소비되는 시대다.

삼십금 쌍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인문학 정신의 근본이 금기에 도전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영화, 감각의 제국, 시계태엽 오렌지, 살로, 소돔의 120, 비리디아나를 통해 섹스’, ‘폭력’, ‘정치’,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위선적 태도를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항복을 고발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불편했던 건 사진이다. 네 개의 영화 중 한 개의 작품도 본 적이 없어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감독의 느낌과 생각을 이렇게 날것 그대로 표현한 영화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들이, 거의 모든 사진들이.... 참....

 

 

 

 

 

 

 

감각의 제국은 신성의 에로티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 내내 육체와 심정의 에로티즘을 다루고 있죠. 그런데 왜 인간은 이토록 섹스를 하고, 일체감을 얻으려고 할까요. 바타유는 동물과 인간의 섹스를 구분합니다. 동물의 섹스는 후손을 남기기 위한 생산성을 무엇보다도 중시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섹스는 생산에 관심이 없어요. 우리들 모두 자손을 꼭 남기고 말겠어!’라고 생각하며 섹스를 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섹스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죠. 바타유에 따르면 인간은 에로티즘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유일무이한 동물이에요. 그래서 에로티즘과 에로티즘을 통한 쾌락을 이해하면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41)

사랑의 핵심에는 늘 불륜성이 도사리고 있어요. ... 결국 불륜이라는 건 무리에서 떠나는 행위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불륜을 저주하는 건 고착화된 욕망이에요. 기존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죠.(60)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들인 사다와 기치의 사랑이 불편했던 건 그들이 불륜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섹스를 노출하고 싶어하고, 관객에게 자신들의 벗을 몸을 자꾸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사다와 기치처럼 육체노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지만, 글쓴이가 지적한 것처럼 다른 부분에서의 노출은 즐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리뷰를 써서는 내 컴퓨터에만 저장하지 않고 이 글을 복사해, 나의 서재에 올리고, 사람들의 좋아요좋아하는이런 행위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노출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내 생각에 대해 지지를 받고, 내 느낌에 대해 공감을 받고, 내 일상에 대해 웃음을 얻고, 또 얻으려한다는 건, 나 자신을 노출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받게 되는 보상이다. 노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라면 나 또한 사람인지라, 그러하겠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의 노출, 나의 벌거벗음이 어떻게,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겠다.

섹스에 대해서라면, 후손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섹스가 아니라, 오로지 즐거움, 쾌락을 위한 통로로서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읽힐 수 있겠다. 섹스를 통한 즐거움이 인간만의 것이라고는 믿지 않지만, 여러 동물 중에 후손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쾌락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생각한다. 섹스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섹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말하지 못 하겠다.

다만, 마음에 들면 일단 무조건 자고 보라,는 제안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격렬한 호흡과 몸짓으로 서로의 육체를 격하게 더듬으며 탐닉한 후에, 말 그대로 뜨거운 밤을 보낸 후에, 지난 밤 불태운 열정이 성욕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이었는지를 알게 된다(80)는 것인데, 보수적이고 체제 순응적이며, 기혼의 여자사람이라서 그런가. 내게는 인간 수컷의 교묘한(?) 호소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뜨거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마음은 쉽게 변한다.

인간 수컷이 그건 호소가 아니었다고 하면, 그 말도 믿어주겠다. 호소가 아니라면 유혹일 테고, 유혹이 아니라면 유인(誘引). 그것도 아니면 인유(引誘).

 

살로, 소돔의 120는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몰락하고 그 잔당들이 모여 수립한 괴뢰 정권의 대표자들인 공작, 주교, 판사, 의장이 자신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베푼 사악한 연회에서 일어난 추악하고 사악한 일들을 보여준다. 난잡한 성교 파티와 폭력. 잔인한 고문과 살인. 서로에게 을 먹으라 강요하며, ‘최고의 항문을 선정하는 이 미친 사람들의 미친 행동들은 불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그것이다. ‘파시즘에 굴복했을 때, 저항을 잃어버렸을 때, 인간은 무참히 짓밟힌다는 것, 똥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 말이다.

피아니스트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사유를 시도했던 인물이에요. 성에 모인 여러 부류의 인물 중에 오직 그녀만이 숨구멍을 찾아냈죠. ... 파시스트들은 소년과 소녀들을 사물로 취급합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아름다운 엉덩이를 선별하는 장면입니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는 것이죠. 이러한 시선은 파시스트만 지닌 게 아니에요.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죠.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물화해요. 그런 면에서 파시즘과 자본주의는 서로 연결됩니다. 인간을 사물처럼 대하는 파시즘은,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와 등가를 이루죠. (165)

그게 파시즘입니다. 무조건 나에게 맞추라는 거죠. 파솔리니는 이 지점에 집중하고 있어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힘의 논리는 금기의 명령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극한의 금기, 사실 이건 우리 스스로가 불러일으키는 어떤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저항하지 않는 삶은, 인간 대접은커녕 똥만 먹어야 한다고, 장난감처럼 놀리다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명백히 선언하고 있습니다.(165)

파시즘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해악을 감독은 ’, 사람들이 가장 불쾌해하는 똥으로 표현한다. 그 불쾌함으로 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려 한다. ‘파시즘을 방치하면 너희들 다 좆 된다.’ ‘파시즘을 따르면 너희들은 똥을 먹게 될 것이다’,(174)라고 말하는 것이다.

 

쎄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이중적 기호가 일반적인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섹스, 폭력, 정치,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같이 자극적이고, 언사는 쎄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절이 종종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꽤 많다.

차 한 잔 곁들이며 우아하게 읽고 싶은 인문학은 어느 새, 섹스와 폭력, 피범벅의 난장판과 근친상간의 위험한 현장으로 일순 변해 버린다.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섹스, 악한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 파시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가장 안전한 대상으로서의 신을 거부하는 인간.

나는 인간 본연의 심성, 본래의 성정에 대한 믿음이 적다. 인간은 충분히 사악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대로, 끌리는대로 하라.’는 이야기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금기에 도전하는 삶, 행복하게 살기보다 용감하게 사는 삶, 편안하게 살기보다 자유롭게 사는 삶에 대해 동경한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나.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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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4-1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출`을 은근 즐기는..아니 은근도 아니네요. 제 서재 곳곳에 글이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죠 ㅎㅎ 그렇지만 이런 `노출`은 상당히 유쾌하고 즐거운거 같아요.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육체적 노출`보다 `정신적 노출`이 제겐 더 쾌락(?)적 인거 같아요 ㅎ 그리고 소개해주신 영화나 책을 읽지 못했지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에 <살롬, 소돔의 120일>을 묘사해놓은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 부분을 읽으며 정말 불쾌했던 기억이 많았는데요 그래서인지 커피 한 잔 곁들이며 읽기엔 정말 힘드셨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또 `인간은 충분히 사악한 존재`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도덕성`과 `이성` 또 `감성`이라는 의식으로 내재된, 억압된 존재들이기 때문인데..만약 그게 풀려버린다면 혹은 그런 통제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될지.. 정말 생각만해도 아찔해집니다. 더욱이 전에 읽었던 <세컨드 타임>이나 <오르부아르>라는 소설에서도 아니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전에 <눈 먼 자들의 도시>만 봐도 정말 끔찍한 세상이었으니까요.어휴~~ 생각만해도 ~~!!!

그나저나 내일이 벌써 선거일이예요. 지난번 글에 고민하고 계셨는데 결정은 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비가 온다고 하니 우산 꼭 챙기셔서 멋진 한 표 행사하시길 바래요!!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ㅎㅎ

단발머리 2016-04-19 10:21   좋아요 0 | URL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은 제목만 아는 책인데, 은근 관심이 가네요. <살롬, 소돔의 120일> 묘사해 놓은 부분만도 불쾌하군요. 요 위의 책에는 사진이 정말 불쾌합니다.
한 번 이상 보기 어려운 영화라고 하더라구요. ㅎㅎㅎ

투표하러 가서는 기표소 안에서 좀 오래 있었지요. 좋아하는 사람 두 사람에게, 미안하다~ 했어요.
그리고 퐉! 기표했어요. 참, 예상을 많이 빗나간 선거 결과인데, 그래도 새누리 과반 저지에 일단 박수를 치고 싶어요. 이제 마음대로는 못 하겠지요.

해피북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요.
또 재미있는 책이야기로 만나요. ㅎㅎㅎㅎ
 

 

 

 

 

 

 

 

 

 

 

 

 

 

 

 

원래 계획 없이 살기는 하는데, 딸아이 독서모임 책을 사러 교보문고에 나갔다가 그 옆에 옆에 있던 책도 하나 집어왔다.

 

 

 

 

 

 

 

 

 

 

 

 

 

 

 

딸아이 독서모임 책은 이쪽 세계에서는 나름 유명하다던데, 한 챕터 읽어봤더니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 패쓰. (딸롱이 쏘리~ 너희들이 투표해서 정한거잖니~ 메롱!)

 

 

 

 

 

 

 

 

 

 

 

 

 

 

 

다니엘 스틸이라는 이름은 『진짜 영어공부』라는 책에서 처음 봤는데, 미국에서는 유명한 베스트소설 작가란다. 그냥 아무런 기대없이 들고 와서는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고 있다. 알라딘 리뷰 찾아 봤더니, '아줌마용 소설'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아줌마들이나 읽는 소설'이라면 별로지만,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소설'이라면 은근 관심이 간다. 같은 이야기인가.

 

일단 이 문장에서부터 시작이다.

 

She loved her husband, her children, her house, their friends. She loved everything about all of it, and there was nothing she would have changed. It was the perfect life. (14쪽)

 

It was the perfect life. 할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 다음 문장은 이거다. 

 

"... For both our sakes... for all our sakes...  I want a divorce." 

 

피곤하다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내 이럴줄 알았다. 나쁜 놈.

읽어본다. 재미로... 

 

어제밤에 알라딘 상자 속에서 <도라에몽 북마크>와 만났다. 

하이드님도 이쁘다고 올리셨던데, 실제로 보니 진짜 완전 맘에 든다. 

근래 알라딘 사은품 중에 최고다. 알라딘 노트 시리즈 다음이다.

알라딘 노트는 사랑이다.  

 

그래서, 이 페이퍼는 기승전-도라에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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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4-0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니엘 스틸 저 책 사놨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딨는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팔아버렸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사놓기만 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6-04-06 10:23   좋아요 0 | URL
저 책이 뭐.... 다니엘 스틸 입문편이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저 책 성공하면,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아직은 재미있어요. 27페이지 읽고 혼자 흥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행복한 전업주부 Paris에게 남편이 폭탄선언을 했어요.
나... 이혼하고 싶다.
여자가 있다. 스무살 어린 직장 동료다. 아들 둘 키우고 있는 이혼녀다.

주인공, 충격에 빠져 아직 대사가 없어요.
오늘밤만 지나고 남자는 떠난대요.
여기까지 읽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 추측엔, 상심한 여주인공이 `데이트 게임`을 창시해서, 마구마구 데이트하는 거 아닐까요.
내 원도 한도 없이, 데이트하리라!!!
너는 스무살? 나는 서른살 연하랑 데이트 하리라! 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6-04-06 10:32   좋아요 0 | URL
다니엘 스틸은 엄청 유명한 로맨스소설 작가에요. 이 작가가 쓴 것 중에 많은 것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을 거에요. 저도 한 편 본 것 같아요. 제목은 기억이 안나는데, 젊은 여자가 나이든 남자랑 부부인데 그 남자가 병에 걸려 병간호를 하며 조용히 살고 있거든요. 그런데 자꾸 마주치는 다른 남자가 좋아져서, 나는 안돼, 저 사람이 좋아지면 안돼, 막 이러는데 남편이 보내주던가...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나요. ㅎㅎ

저는 다니엘 스틸과 쌍벽을 이루는 로맨스소설 작가 `산드라 브라운`을 애정합니다. 산드라 브라운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 성인 남녀의 사랑을 써내서 제가 진짜 좋아해요. 야한 것도 진짜 잘쓰고 그래서 제가 막 흥분흥분 ㅋㅋㅋㅋㅋ

다니엘 스틸 저 책은 아마 읽겠다고 샀다가 음, 역시 난 안되는구나, 하고 팔아버린 것 같아요. ㅋㅋ

단발머리 2016-04-06 10:42   좋아요 0 | URL
흐흠.... 글쿤요. 유명하고, 작품도 많고, 많이 팔리고... 부자겠다... 그쵸? ㅎㅎ

미국은 시장이 크기도 하지만, 이 쪽도 잘 나가는 것 같아요.
흥미위주의 스릴러나 환타지도 잘 팔리구요.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순수문학쪽이 강하고, 작품도 무슨무슨상을 받았다고 해야 많이 나가니까요.

아직 뭐... 무슨 의미나 이런 건 모르겠는데, 그냥 가벼운 맘에 읽고 있어요.
`산드라 브라운`도 끌리는데요. 성인 남녀의 사랑이라면...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6-04-0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도라에몽 북마크만 보여요~~ 저도 찜 해야겠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4-06 13:28   좋아요 0 | URL
정~~~~~~~~~~~말 예뻐요.
특히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구요.
물론 저만큼은 아니지만요^^

해피북 2016-04-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 알라딘 북마크~~~~안돼요 ㅎㅎ
북마크쯤은 넘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으로보니 너무 귀엽네요 ㅎㅎ

저는 요즘 열심히(?)는 아니지만 ㅋ 일본어 공부 중인데요. 단발머리님처럼 원서도 읽고 이야기나눌 수 있는 날이 왔음 좋겠어요 ㅋ

단발머리 2016-04-12 09:51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 저기 위에 도라에몽은 정말 예뻐요.
저도 알라딘 굿즈는 노트만 좋아라 하거든요. ㅎㅎㅎ
근데 도라에몽 북마크는 정말 강추입니다.

일본어공부하신다니 넘 멋져요.
일본어가 처음에는 쉽다, 쉽다 해도 제대로 공부하려면 쉽지 않다 하더라구요.
공부에 큰 진척있으시기를... 저는 맨날 30페이지 읽고 책을 던져버리는....
그 날은 해피북님께 먼저 올것 같은대요. ㅎㅎ
 
숨통이 트인다 - 녹색 당신의 한 수
황윤 외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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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녹색당에 관해서는 정리가 잘된 아무개님과 다락방님의 페이퍼 링크를 걸어둔다.

아무개님 페이퍼 : http://blog.aladin.co.kr/701246196/8351232

다락방님 페이퍼 : http://blog.aladin.co.kr/fallen77/8354270

 

내가 바라는 것, 내가 희망하던 것을 문자로, 활자로, 책으로 만난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내가 생각하는 제일 주요한 의제, 녹색당의 색깔을 선명한 녹색으로 만들어 주는 주요 공약은 탈핵기본소득이다.

녹색당 비례대표 2번 이계삼 후보는 5년째 밀양 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계신다. 국어교사셨고, 새로운 교육에 대한 희망으로 퇴직한 지 사흘 째 되는 날, 손자뻘 되는 용역들의 폭력에 깊이 절망한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자결하신 사건을 계기로 밀양투쟁에 함께 하게 되셨으며 이번에 녹색당 비례대표가 되셨다.

두 분의 어르신이 목숨을 버렸고, 수백 세대 주민들이 10년 동안 싸웠습니다. 저와 대책위의 일꾼들이 몇 년간 사생활을 거의 반납해가면서 개미처럼 일하고 또 일했건만 저 끔찍한 765천볼트 송전탑은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던 것일까요. 지난 20여 년 동안 엄청난 규모의 핵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이루어졌습니다. 전기가 남아 돌고 있고, 전력 소비의 가파른 증가세는 이미 꺾였으므로 새로운 핵발전소와 송전선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왜 저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전국 곳곳에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짓겠다며 새로운 싸움판을 만들어나가는 것일까요. 핵발전소 건설이 누구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술책인지, 그것이 지금 무엇을 짓밟고 있는지, 태어나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살해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밀양 주민들의 10년의 저항이 밝혀낸 중요한 진실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왜 전국 곳곳의 또 다른 밀양들은 머리띠를 매고, 어설픈 팔뚝질을 하며 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73)

 

 

 

탈핵에 대한 문제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암담해지는데, 제일 기본적인 것이라면, 우리가 교육받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핵발전소가 안전하고 깨끗하며 효율이 높은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라, 작은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아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핵폭탄 발전소라는 데 있다. 핵원료 보관 50년이 가능한 기술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10만년의 보관 기간이 필요한 핵원료를 만들어내고 있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그래 조금 더 쓴다, 120, 130년도 못 사는 인간이 10만년 동안 자연계와 분리되어야 하는 핵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 설명 : 충남 당진에 설치된 765kV 송전탑 송전선 아래에서 전자파의 영향을 실험하기 위해 설치한 폐형광등에 불이 들어오고 있다.  그냥 꽂아놓기만 하고, 사람이 들고 있기만 한건데 불이 들어온다.

[출처] 밀양 송전탑|작성자 청다움 >

 

작은 단위의 마을 공동체를 완전히 파괴하는 송전탑이 마을을 가로, 세로로 난도질하며 줄줄이 세워지고, 밤마다 울어댄다는 이 전선을 타고 서울로, 도시로 농민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전기가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으로 산업체에 공급된다. 발전소를 짓고, 송전선로를 연결하고, 발전소를 짓고, 송전선로를 연결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핵마피아, 전기 마피아를 개인이, 작은 마을 공동체가 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돈으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고, 용역을 동원해 마을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고, 국가를 이용해 마을 주민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녹색당은 이 모든 국가와 자본의 전횡 앞에서 농민들과 함께, 힘없는 이 나라의 시민들과 함께 해왔다. 이미 알려진 밀양의 이야기는,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은 모두 이야기의 종합판이다. 돈이 모든 의제를 태풍처럼 빨아들인다. 한 개인이란, 마을이란, 공동체란 그 앞에서 크레인으로 밀어버려야 할 장애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계삼 후보가 국회에 꼭 들어가게 되시기를 바란다. 농민을 위한 한 수, 밀양을 위한 한 수, 우리의 미래를 위한 한 수다.

 

두 번째는 기본 소득에 관한 것이다.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요동치는 세계 경제, 더하여 국가의 총체적 무능 때문에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 노인 빈곤화 문제 역시 심각하다. AI의 등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또한 눈앞에 예측되는 상황이다. 일자리, 좋은 일자리가 너무 부족하다.

극심한 부의 양극화와 사회 곳곳의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서로를 불신하는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선물이 생긴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것처럼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안전망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아무런 보장이 없어서 삶을 포기해버리거나 다른 이들의 삶을 테러해버리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102)

기본소득은 삶의 전환을 위한 입구이자, 녹색당이 제안하는 탈핵, 탈토건, 농업, 먹거리, 에너지 전화, 동물권, 소수자 인권 등의 의제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104)

만약 대한민국이 OECD 평균 국민부담률(조세+사회보장기여금) 수준인 34.4% 수준까지 국민부담률을 끌어올린다면, 전 국민에게 1인당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재원이 마련됩니다. 증세분 145조 원에 예산 낭비 절감분까지 합치면 가능한 일입니다. (121)

 

아들러의 심리학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무언가를 공헌한다고 할 때, 그것이 특별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공헌한다는 것은 대개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공헌하지 않더라도, 현재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느끼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타인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만이 공헌이 아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공헌하는 것이다.’ (166)

타인을 존재 자체로서 인정해주는 것, 존재하는 것만으로 타인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그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건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국가에게 속한 일이다. 하고 있는 일의 성격이나 종류 혹은 그 양에 상관없이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정도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하는, 국가라면 할 수 있는, 국가가 해 주어야 하는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정치, 더럽다고 욕하는 정치, 그 놈이 그놈이라며 고개 돌리게 하는 정치, 바로 정치의 영역이다.

아래의 글은 이계삼님의 글 중 일부다. 읽으면서, 중간 중간 울컥해 글씨가 흐릿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책을 덮었다. 한참 뒤에야 겨우 다시 읽어 내려갔다.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시립 도서관에 가면 열람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스물 일고여덟 살 되는 졸업생들이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대부분 경쟁률 수십대 일이라는 공무원 시험, 이름도 긴 무슨 무슨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의미를 찾지 못해 자퇴하고 길거리에서 딸기를 파는 졸업생, 사립대학 등록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자퇴하고 케이블 TV 설치 기사를 하는 졸업생, 저는 늘 이런 식으로 거리에서 제가 가르친 친구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청춘의 시간을 이렇게 어이없는 방식으로 착취하는, 한 존재의 지적 도덕적 성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밥벌이도, 인생길을 헤쳐갈 삶의 기술도 전수해 주지 않고, 16년간 학생들을 죽도록 경쟁만 시켜놓고서는 결국 산업예비군, 취업준비생,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로 만들어 세상으로 밀어넣는 이 교육 체제를 대체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63)

이 시대, 이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나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죽음과 폭력에 대한 급박한 위협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에, 작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에, 나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난 그렇다. 좁은 나라, 인구가 많은 나라,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경쟁. 앞집, 뒷집, 옆집, 윗집, 아랫집. 엄마친구딸, 엄마친구아들, 아빠친구아들, 아빠친구딸과 경쟁하며 살았다. 이제는 경쟁에서 물러나 있다. 제일 뜨거운 경쟁의 시기를 지나왔다. 하지만, 아이들. 이 나라의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암담하다. 하나의 목표, 하나의 표적을 향해 적성과 성격,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미친 듯이 달려가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평생을 불평등과 불합리 속에 살아가라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네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 미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 때문에 맘이 아프다.

우리집은 오래도록 야당을 지지해왔다. 재산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지역적 연고 때문이기도 하다. 대를 이어 충성해왔다. 이번에 처음으로, 나는 정의당을 지지해야겠다고, 비례 대표 투표에서는 4, 정의당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스스로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얀 천을 밀치고 기표소 안으로 들어설라치면, 문재인 대표 생각에, 정치가 하기 싫다고 그렇게 도망갔던 분, 사람들의 기대에, 시대적인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응하셨던 분, 사심없고 한없이 착한 그 분이 생각날 것 같아, 사실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녹색당. 녹색당 같은 정당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엄마, 아빠, 이모, 사촌 동생 1, 사촌동생 2, 동생 1, 시어머니, 시아버지, 도련님, 동서까지 내가 관리하는 표는 10개이지만, 내가 기표할 수 있는 투표용지는 단 하나.

고민의 시간이다. 고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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