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과학의 발전을 단절적인 과정으로 봐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과학혁명’이라는 말은 과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용어다. 시기적으로는 대략 1500년에서 1700년 사이에 해당하는데, 특히 17세기가 그 정점(頂點)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근대과학의 성립 및 그것이 사상, 사회 등에 미친 폭넓은 영향을 일컫는 말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시작으로 뉴턴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케플러의 천체 운동법칙, 갈릴레이의 천문학 연구, 로버트 보일의 화학 연구, 하비의 생리학 및 해부학 연구, 뉴턴의 물리학 법칙 등이 모두 과학혁명 시기의 중요한 성취에 속한다. 그밖에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과학 연구기관 및 단체가 속속 설립된 것도 이 시기의 중요한 발전이다.

물론 과학혁명은 위와 같이 역사 속의 특정 시기에 이루어진 과학 발전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로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비약적인 과학 발전을 일컫는 말로도 사용된다. 즉 무언가 엄청나게 큰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혁명적인 변화’라고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를 지닌다. 토머스 쿤(Thomas Kuhn·1922~1996)이 1962년에 내놓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는 부분적으로는 전자의 과학혁명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과학 발전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출간되기 무섭게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쿤이 과학발전의 객관적 보편성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과학적 지식을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지식으로 당연시하곤 한다. 또한 그러한 지식이 조금씩 쌓이면서 과학이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벽돌을 한 장씩 쌓아 높고 튼튼한 벽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쿤에 따르면 과학은 그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쿤은 과학 발전이 ‘정상과학→이상 현상→위기→혁명→새로운 정상과학’의 식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즉 특정이론 A에 의해 과학 지식이 계속하여 발전하다가 그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 시대 과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패러다임(paradigm)으로는 문제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을 때 정상과학의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쿤의 말을 들어보자.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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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생물을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인식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제 아무리 양육 환경이 좋더라도 출신의 근본은 속일 수 없다는 의미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도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근본은 보잘것없지만 당사자가 자수성가했을 때 흔히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두 속담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생물학계에서 치열하게 논의되었던 두 관점, 즉 결정론(determinism)과 환경론(environmentalism)을 각각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정론이란 생물체의 모양, 습성, 행동 등은 모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주장이다. 환경론이란, 물론 그런 천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태어난 이후 성장할 때의 주변 환경에 의해서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결정론과 환경론의 대립은 사실상 인류 역사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흑백 인종차별과 히틀러의 순혈주의가 결정론적 주의(主義)에 근거한 것이라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교육평등 주장은 환경론에 뿌리를 두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결정론은 20세기 들어서 다시 유전자결정론으로 발전했는데, 이는 부모로부터 전해지는 모든 비밀이 유전자(게놈)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유전자결정론 또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생물학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유전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20세기 후반기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의 대부분 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했지만 유전의 매개물질이 DNA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유전자결정론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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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설득에 필요한 심리 원칙 밝혀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관련 자료들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전체 자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하나만을 사용하여 필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곤 한다.” -본문 중에서

미국에서 1985년 출간된 ‘설득의 심리학’(Influence: Science and Practice)의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치알디니는 인성과 사회심리학 학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가 설득 현상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그의 삶 자체가 설득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독일계 미국인이 주로 살고 있던 밀워키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혈통은 순수한 이탈리안 계보를 갖고 있었다. 또 그가 살고 있던 동네에는 대부분 폴란드계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치알디니는 비교적 남에게 잘 속는 어리숙한 사람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잡상인과 기부금 모집인, 그 외 다양한 장사꾼의 손쉬운 표적이 되어 원하지도 않던 잡지를 정기구독하거나 자선 행사의 티켓을 엉겁결에 받아들곤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오랫동안 속칭 ‘봉’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 때문에 더더욱 설득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설득(說得)이라는 한자 단어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말씀 설, 얻을 득, 즉 ‘말씀을 통해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얻는다는 것일까? 상대방의 마음(전공 용어로는 ‘태도’라고 한다)과 행동을 얻는 것이 설득의 목적이다. 우리 사회에 설득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사회에서는 설득이 필요 없다. 설득은 오히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환경에서 더 유용성을 발휘한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언어라고 한다. 서로간의 다름은 언어의 설득 파워를 테스트하는 훌륭한 무대가 되고 있다. 사람의 심리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바탕으로 언어를 구사하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설득 전문가 치알디니 교수는 다음의 여섯 가지 원칙이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현우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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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합리적인 관료제의 운영원칙 제시
막스 베버의 ‘경제와 사회’
 
“공식적인 조직은 가부장적인 방식보다는 관료적인 방식에 의해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진다.” -막스 베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1864~1920)는 경제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사후에 발간된 대표적인 저서 ‘경제와 사회’(Wirtschaft und Gesellshaft·1922)에서 그는 경제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힘의 원천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사회적 질서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경제행위를 화폐, 기술, 노동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해석하고 있는 이 저서는 너무나 방대하여 전체를 압축해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베버가 제기한 다양한 논의 중에서 현대 조직의 운영원리에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조직체제에 대한 논의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베버는 관료제를 가장 이상적인 조직 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성공적인 관료제의 운영을 위해서 조직은 전통적인 권위에 의해 운영되거나, 특정한 카리스마에 의해 운영되어서는 곤란하다. 관료제는 합리적이고, 법적 권한에 의해 조직이 운영되는 제도이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권한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권한은 정통성을 가져야 하며, 정통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일에 걸쳐 타인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합리성과 합법성을 획득해야 한다. 베버는 권한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합리적·법적 권한이다. 합리적·법적 권한은 법규화된 질서나 조직의 규칙에 의해 만들어지는 권한이다. 이러한 합리적·법적 권한은 관료제의 근간으로 공식적인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권한이다. 

둘째, 전통적 권한이다. 이는 전통과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권한으로, 오랜 역사적 전통에 대한 신뢰에 의해 합법성이 부여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존속해온 것에 대해서는 의심 없이 무의식적으로 권한을 인정하게 된다. 예컨대 가부장적인 권한이 대표적인 전통적 권한이다. 전통적 권한은 가정이나 비공식적인 조직의 운영에는 필수적이나 공식적인 조직에는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공식적인 조직은 전통적인 권한에만 의존해서는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

셋째, 카리스마적 권한이다. 이는 특정한 시기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된 질서로, 권한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열렬한 신뢰에 의해 만들어지는 권한이다. 이러한 권한은 이성적 판단을 초월한 것이지만, 현대와 같은 합리적 시대에도 여전히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탁월한 지도자의 창조적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카리스마적 권한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카리스마에 근거한 권한은 지속성이 약하다. 카리스마는 혁명적 힘을 지니고 기존의 안정된 제도적 질서를 뒤집어 버릴 수는 있지만, 카리스마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합리적·법적 또는 전통적 권한으로 변화해야 한다.

결국 공식적인 조직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권한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고 카리스마에 근거한 권한은 일시적일 뿐이다. 공식적인 조직은 합리적·법적 권한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이상적인 관료제는 합리적인 운영원칙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관료제의 전형적인 운영원칙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분업의 원칙이다. 조직은 부분의 합이다. 각각의 부분들이 분업의 원리에 따라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효율적인 전체를 구성하게 된다.

둘째, 명령 체계 및 계층의 원칙이다. 분업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조직 전체의 목적을 위해 역할이 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 조정을 위해서는 합리적·법적 권한에 의한 명령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러한 명령을 통해 계층적인 조직이 구성된다.

셋째, 공개 채용의 원칙이다. 공식적 조직이 지속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인력이 유입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규인력의 유입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개적인 채용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통적인 권한관계에 의한 정실인사나 카리스마적인 권한에 의한 무작위 채용이 이루어지면 합법성을 유지할 수 없다.

넷째, 경력에 따른 고정급 원칙이다. 안정적인 조직의 운영은 계층적인 질서를 근간으로 한다. 이러한 계층적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위계에 의해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력이 많은 상급자가 하급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보상은 고정급으로 지급되어야 구성원간의 안정적인 관계가 유지된다.

다섯째, 통합제도에 의한 통제의 원칙이다. 분업의 원칙에 의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부분은 조직 전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통합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계층적인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통합을 위한 통제는 관료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베버의 관료제는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운영방식이지만, 관료제만으로 현대조직을 운영해서는 곤란하다. 현대에 있어 관료제는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경력에 따른 고정급은 구성원을 나태하게 만들고 변화를 거부하게 한다. 공무원 조직의 경직성은 바로 이러한 안정적인 급여체제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통합을 위한 통제는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저해한다. 모든 조직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창의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는데,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베버의 관료제는 변화를 거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과연 관료제는 타파되어야만 할 대상인가? 그렇지 않다. 베버는 관료제를 통해서 권한과 원칙을 강조했다. 가부장적인 권한으로 합리적·법적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 변화는 아니다. 카리스마에 의해 혁명적 변화를 이루는 것도 일시적으로는 통쾌하지만 부작용도 많다. 합리적·법적 권한에 의한 관료제는 원리와 원칙에 근거한 조직운영을 강조한다. 역사상 수많은 형태의 조직이 생성, 소멸되었으나 가장 생명력이 강한 조직형태는 피라미드 구조의 관료적 조직이다. 조직은 개인의 합이고 대중은 근원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이 변화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성향이 바뀌어 가는 현대 조직은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관료제를 벗어나 보다 혁신적인 조직을 생성시키고 있다.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비체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관료제는 너무 체계적이라 경직된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적인 제도 변화도 원리, 원칙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합리적·법적 권한에 의한 관료제는 원리와 원칙에 근거한 조직운영을 강조한다. 역사상 수많은 형태의 조직이 생성, 소멸되었으나 가장 생명력이 강한 조직형태는 피라미드 구조의 관료적 조직이다. 조직은 개인의 합이고 대중은 근원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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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소유보다 존재에 충실할 것을 주장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나는 나를 위한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 … 소유가 나의 목표일진대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그만큼 나의 존재가 커지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탐욕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 나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현대사회는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결코 더 행복하지 않다.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 그리고 피로는 가중된다. 그들은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고 과도한 경쟁에 휩싸이며 과다소비에 빠진다. 이러한 과다소비는 현대사회의 다른 문제인 환경오염을 악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소유를 과시하기 위해 명품에 집착하는, 소위 명품족도 이러한 현상의 하나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이러한 현대 산업사회 문제의 근본에는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산업사회는 사람들을 ‘그가 갖고 있는 것’에 의해 평가한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나 집은 물론이고 그의 직업, 위치, 경력이 그를 규정짓는다. 이런 소유적 모드의 세계에서는 더 많이 갖는 것이 더 나은 인간으로 평가받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렇게 소유적 모드에 집착하는 한 인간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프롬은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오히려 ‘소유(Haben)’가 아닌 자신의 ‘존재(Sein)’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롬은 ‘존재’적 모드가 지배하는 사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첫째, 새로운 사회는 무한성장보다는 필요에 의한 선택적 성장을 지향한다. 둘째, 물질적 이익보다는 정신적 만족을 추구한다. 쾌락이나 다른 사람의 인정(認定)이 아닌 진정한 내면적 깨달음에 삶의 중심이 있다. 셋째, 사람들은 기본적인 삶의 안정을 보장받으며 관료제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인 결단에 의한 삶을 살아간다.

에리히 프롬은 190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대학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공부하고 1933년 나치스의 발흥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예일대, 뉴욕대 등 여러 곳에서 강의를 했다. 1950년에서 1965년 사이에는 멕시코 국립대학의 의학부에서 가르쳤으며 1980년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사회문제 해결에까지 적용한 후기 프로이트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청년기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으며 현대인의 불안과 자유의 의미에 천착했다. 특히 대중이 파시즘의 선풍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근대인에게서의 자유의 의미’를 탐구했다. 현대의 정신적 불안은 개인적인 정신분석요법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사회구조변혁과 인간의 심리적 해방을 동시에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인간의 자유’(1947) ‘건전한 사회’(1955) ‘선(禪)과 정신분석’(1960) ‘사랑의 기술’(1971) ‘소유냐 존재냐’(1976)와 같은 저작으로 결실을 맺었다.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는 ‘사랑의 기술’과 더불어 프롬의 후기저술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는 저작이다. 산업사회가 절정에 있던 1976년에 발표된 이 책에서 프롬은 현대 산업사회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에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소유를 추구함으로써 무력감과 고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히도 소유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으며 이러한 추구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10억원을 가진 사람은 100억원을, 100억원을 가진 사람은 1000억원을 갖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는 인류가 산업화가 가져온 불행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유모드’에서 ‘존재모드’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두 가지 판이한 삶의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프롬이 든 예(알프레드 테니슨의 시와 일본의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는 너무나 적절하다. ‘갈라진 벽 틈새에 핀 꽃이여/ 나는 너를 그 틈새에서 뽑아내어/ 지금 뿌리째로 손안에 들고 있다….’ ‘눈여겨 살펴보니/ 울타리 곁에 냉이꽃이 피어있는 것이 보이누나!’

‘꽃을 본 테니슨은 그 꽃을 뿌리째 뽑아 들고 소유한다. 그래서 꽃에 대한 그의 관심은 꽃의 생명을 단절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바쇼는 다만 바라보기만을 원한다. 또한 꽃을 그냥 관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꽃과 일체가 되기를, 꽃과 결합하기를 원한다.’(본문 중에서)

여기서 프롬은 바쇼의 태도가 무엇을 소유하거나, 소유하기 위해 탐하지 않고 기쁨에 차서 세계와 하나가 되는 실존양식이라 설명한다. 지식을 주워 담고 필기하고 단순 암기하는 데 골몰하는 공부습성을 가진 학생과 지식을 내면화해서 자기화하는 학생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두 모드의 차이를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터넷에 거의 모든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검색만을 즐기고 오려 붙이기를 하는 학생과 꾸준한 독서로 지식을 내면화하고 인터넷의 정보검색을 통해 그것을 더 강화하는 학생의 진짜 실력 차이는 궁극적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동양문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했던 프롬은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서 동양의 존재 모드적 사고방식의 장점을 받아들이려 한 것 같다. 소유와 정복을 추구하는 다이내믹한 서양문명은 동양문명의 정체성에 충격을 가했지만 이제 동양문명은 서양문명의 한계를 일정 부분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은 아닐까. 산을 보면 정복하려 하는 서양의 진취적 태도와 산을 관조하며 산과의 일체화를 즐기는 동양문화의 차이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소유냐 존재냐’는 현대사회의 병리를 치유하려는 프롬의 노력이 집약된 저작이다. 그가 주장한 내용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적실성을 잃지 않고 있고,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분출하는 벌거벗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프롬의 경고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이 열악한 한국 출판시장에서 현재도 스테디셀러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강규형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주임교수·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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