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금욕적 절약 생활이 자본 축적을 가능케 해

근대 자본주의는 왜 서양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을까?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Max Weber·1864~1920)는 학술지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에 1904년과 1905년에 걸쳐 이 질문에 답하는 논문을 기고했다. 그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이다. 베버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말한다. ‘보편적인 의의와 가치를 지닌 발전선상에 놓여 있는 듯한 문화적 현상이 오직 서구 문명에서만 나타난 사실은 어떤 일련의 환경에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일정한 종교적 관념이 경제적 정신 혹은 경제체제의 에토스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의 문제’이며 ‘근대적 경제생활의 정신과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합리적 윤리 간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소명(召命) 관념과 칼뱅주의를 비롯한 청교도 신학의 예정설(豫定設)에 주목한다. 하느님에게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 관념과 소수의 사람만이 하느님이 내리는 영원한 은총을 받도록 선택되었다는 예정설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임하는 노동 윤리와 금욕적인 자세로 이어진다.

소수의 사람만이 하느님이 내리는 영원한 은총을 받도록 선택되었다면 도대체 누가 그렇게 선택 받았는지, 과연 나는 선택 받은 인간인지 궁금하고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바로 선택 받은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한다. 만일 선택 받았다는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 자체가 영원한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불경(不敬)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세속적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신이 내린 소명으로서 직업에 충실한 것이 구원에 대한 의심을 없애는 방법인 것이다.

‘금욕은 더 이상 과외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요구되는 행위였다. 자연적 생활과 구별되고 종교적으로 요구된 성도의 특별한 생활은 더 이상 세속 밖의 수도원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그 질서 안에서 행해졌다. 내세를 바라보면서 세상 안에서 생활방식을 합리화한 것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사상이 낳은 결과였다.’

결국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얻는 이윤을 철저히 절약하고 축적하는 금욕주의 윤리가 바로 자본의 축적을 가능케 했다. 베버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근대적 문화에 구성적인 요소 중 하나인 직업 사상에 입각한 생활방식은 기독교적 금욕의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 베버는 그런 정신의 예로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인용한다. 이를테면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돈임을 잊지 말라. 매일 노동을 위해 10실링을 벌 수 있는 자가 반나절을 산책하거나 자기 방에서 빈둥거렸다면, 그는 오락을 위해 6펜스만 지출했다 해도 그것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 외에도 5실링을 더 지출한 것이다. 아니 갖다 버린 것이다.’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가 도덕이나 종교와는 무관한 개인적 이윤 추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가 종교적 의무로서의 직업에 대한 엄격한 책임 의식과 금욕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본 것이다.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금욕주의는 수도원의 닫힌 벽을 걸어 나와 일상생활의 직업으로 옮겨왔고 현세의 도덕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금욕주의는 기계제 생산의 기술적·경제적 조건으로 자리잡으면서 근대적 경제 질서라는 강력한 우주를 형성하는 데 그 역할을 수행했다.’

한 사람의 상인, 청교도 금욕주의에 충실한 한 상인을 떠올려보자. 그 사람은 상인으로서의 직분이 하느님이 자신에게 내린 소명이라 여긴다. 그는 결코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일 없이 최선을 다해 번 돈을 계속 축적한다. 그는 자신이 영원한 은총을 받도록 선택 받은 자라 굳게 믿으면서, 상인으로서 생활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꾸려나간다. 베버가 보기에 바로 그런 사람,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람이 지닌 종교적 관념이 근대 자본주의 탄생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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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자유로운 토론 막는 전체주의 비판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합리주의는 비판적 논증에 귀 기울이고 경험에서 배우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런 태도를 말한다. ‘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노력하면 우리는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논증과 관찰 같은 수단을 통해 많은 중요한 문제에 관해 사람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이다. - 본문 중에서

철학자 칼 포퍼(Karl R. Popper·1902~1994)는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사회주의 운동에도 참여했다. 빈대학에서 26세 때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1937년에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과학철학과 사회철학 분야에서 20세기 거장의 반열에 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은 그가 뉴질랜드 망명 시절인 1938년에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고 집필하기 시작하여 1943년에 완성했으며 1945년에 출간되었다. 전체주의가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시기에 집필됐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제목대로 포퍼가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판단한 사상가들, 이를테면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같은 이들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포퍼의 비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과학철학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점쟁이가 당신에게 “올해 운수 대통할 것”이라 예언했다. 그런데 당신은 큰 사고를 당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점쟁이를 찾아가 따졌다. 점쟁이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운수가 대통해서 큰 사고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거다.” 점쟁이의 예언은 반증(反證)할 수 있는 가능성, 그러니까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점쟁이의 말은 과학이 아니다.

칼 포퍼가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을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기 위한 ‘반증가능성 이론’이라고 부른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은 과학을 자처하지만 과학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반증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고,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법칙으로 내세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과학적인 법칙이 아니라 점쟁이의 예언에 가깝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기존 이론의 오류를 수정하여 더 나은 이론을 세우고 그 이론의 오류를 다시 수정하여 좀더 나은 이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컨대 반증을 통해 오류를 점진적으로 수정하면서 과학은 발전한다. 포퍼의 이러한 과학철학은 사회철학에서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것이 지금의 불평등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나은 방법인지 토론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도출한 합의에 따라 기존의 제도나 법률을 수정한다. 그렇게 수정한 제도나 법률에 다시 문제점이 있다면 역시 토론을 통해 새로운 합의를 도출한다. 이런한 과정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 한마디로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개혁 노선인 것이다.

소수의 지배층이 권력을 장악하고 시민의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 ‘닫힌 사회’에서는 문제를 개선해 나갈 수 없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포퍼가 보기에는 ‘철저하게 닫힌 사회’에 불과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지닌 철학자가 통치하는 플라톤의 이상(理想)국가는 가능하지도 않고 가당치도 않은 꿈에 불과하다.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자(者)가 통치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결국 독재에 대한 옹호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국가는 비판과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혁명에 의해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닫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또한 역사의 일정한 법칙을 상정하고 그 법칙의 절대성을 강조함으로써, 반증될 수 없는 사이비 과학을 주장했다. 더구나 그가 꿈꾸는 공산국가는 혁명을 통해 달성된다는데, 이것은 결국 사회 전체를 단번에 변화시켜 어떤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릇된 기대일 뿐이다. 
 
포퍼가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완전한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완전한 사회를 혁명과 같은 수단을 동원해서 단번에 이룩할 수 있다는 꿈을 버리고, 이 세상을 좀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선 점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을 그는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engineering)이라 부른다. 마치 결함 있는 기계를 기술자가 고치고 개선해서 좀더 나은 기계를 만들어 내듯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내세운 포퍼가 폭력과 유혈을 수반하는 혁명에 반대한 것은 당연하다. 폭력과 혁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더구나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고 더 많은 폭력을 불러오며 자유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그가 폭력, 혁명, 독재 등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나치즘과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가져온 비극을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와 ‘점진적 사회공학’이 지닌 문제점은 없을까? 첫째, 혁명이나 폭력을 통하지 않으면 도저히 개선할 길이 보이지 않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에서 점진적 사회공학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열린 사회의 핵심적인 조건인 시민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은 긴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 비판과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면 정말로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전체주의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이자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옹호인 것만은 틀림없다. 포퍼가 꿈꾸었던 ‘열린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 때문에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펼친 주장에 계속해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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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화학물질의 해악을 낱낱이 고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1950년대 정도만 해도 여성 과학자는 미국에서조차 대단히 희귀한 존재였다. 또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여성 과학자는 남성 과학자들의 위세의 눌려서 그야말로 얌전히 실험실만 지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1962년 자그마한 몸매의 한 여성 과학자가 세상을 뒤바꿀 만한 놀라운 일을 저질렀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책을 발간해 그때까지만 해도 ‘꿈의 화학약품’으로 간주되던 농약과 살충제의 위험성을 낱낱이 고발했던 것이다.

생물학자로서 교육을 받고 한동안 연방정부 산하 기관에서 해양생물학자로 일했던 카슨은 자신이 습득했던 과학적 정보를 유려한 필치로 풀어낼 수 있는, 과학과 문학을 겸비한 보기 드문 재원(才媛)이었다. 하지만 ‘침묵의 봄’의 발간이 타고난 능력만으로 될 수 있었던 일은 물론 아니었다. 책의 내용은 당시 번창일로에 있던 화학회사들과 화학공업계에, 그야말로 메가톤급 핵폭탄이 될 것이 자명했다. 만약 그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하고자 하는 결연한 용기와 의지가 카슨에게 없었더라면 책 발간은 아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침묵의 봄’ 발간 이후 4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레이첼 카슨이 존경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용기 있는 고발 정신’ 때문이라고 하겠다. 열성적인 생태주의자이자 자연보호주의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슨은 1964년 56세 때 된 암으로 사망하였다.

사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온통 뒤바꾸는 기폭제가 되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그런데 ‘침묵의 봄’은 당시만 해도 기적의 화학물질로 칭송되던 각종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들이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의 주범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고발함으로 써 그런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다.

“미 대륙의 한가운데 모든 생물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평화로운 한 마을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닭들이 이상한 질병에 걸렸다. 소 떼와 양 떼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농부들의 가족도 앓아 누웠다. …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내 새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을 알아챘다. 봄이 돌아왔지만 새들의 지저귐은 들을 수 없고 들판과 숲과 습지에는 오직 침묵만이 흘렀다.” 이 책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카슨은 그런 침묵의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라고 인류에 경고하였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원흉으로 살충제와 농약을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의 대량 사용을 적시하였다. 화학물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전을 위해서 개발된 약품들 중 일부가 유해곤충의 박멸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지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화학약품은 소량만 살포해도 효과가 탁월하고 약효가 오랜 기간 지속되며 무엇보다도 제조가 용이해 값이 싸다는 장점 때문에 매년 엄청난 양이 농경지와 자연에 뿌려졌다. 그리고 매년 점점 더 많은 화학약품이 개발되면서 그 독성과 지속성 역시 점점 더 강력해졌다.

자연에 살포된 농약과 살충제가 애초 박멸하고자 했던 해충에만 효과를 나타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먼저 농부들을 중독시키고(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농약중독 사례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이어서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통해 ‘느릅나무 잎-지렁이-울새-독수리’의 순서로 화학물질이 축적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런가 하면 화학물질의 오랜 지속시간으로 말미암아 DDT와 PCB처럼 이미 오래 전에 생산이 중단된 화학약품도 여전히 하천과 호수의 침전물 속에서 검출되고 있다. 심지어 전혀 그런 물질을 접촉해 본 적이 없는 에스키모인의 몸 속에서까지도 발견된다.

카슨의 경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카슨은 탐욕에 가득 찬 인간은 점점 더 강력한 화학물질을 개발하고 또 그것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결국은 자연계의 균형이 깨지고 급기야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는 새들부터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슨에게 있어서 ‘침묵의 봄’은 곧 지구의 멸망을 예고하는 서막이다. 

‘침묵의 봄’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현대인의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보다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농약과 살충제를 마구잡이로 사용한 결과 봄이 찾아와도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것을 어찌 봄이라 하겠는가? 그런 환경 속에서라면 우리 생활이 제 아무리 풍요롭다고 해도 어찌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침묵의 봄’은 환경오염의 재앙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은 비록 느리게나마 서서히 세상을 바꾸어 나갔으며 이제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과거 40년 전의 상황과 비교할 때 적어도 레이첼 카슨이 우려했던 ‘침묵의 봄’은 현실로 재현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지금도 일부 환경낙관론자들은 카슨의 경고가 너무 과장된 것이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대에 앞선 그런 경고가 있었기에 ‘침묵의 봄’이 현실화되지 않았을 것이리라.

‘침묵의 봄’이 발간된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만약 21세기가 40년 전 카슨이 살았던 시대보다 환경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한다면 여기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카슨의 주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다행스럽게도 카슨이 고발했던 주장의 상당 부분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화학물질의 독성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고 자연계에서 쉽게 분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화학물질의 경우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인체 호르몬과 유사한 화학구조를 가진 미량의 화학물질이 여전히 자연계에 존재하면서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그러한 예라 하겠다.

40여년 전에 발간된 저서에 대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평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그 저서가 과학기술 분야의 책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책 또한 오늘날 우리 현실에 꼭 맞는 그런 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사용되는 농약은 더 이상 카슨 시대의 농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책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여성 과학자의 예리한 관찰력, 용기 있는 고발정신,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통찰력이다. 가뜩이나 혼돈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한 번쯤은 시대를 앞서 살았던 카슨의 입장이 되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물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도 경외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농약과 살충제 같은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면 그런 야만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함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를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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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작업의 낭비요소 없애 생산성 높여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눈에 보이는 물적 자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노력이 더 크게 낭비되고 있다.” - 프레더릭 테일러
 
1911년 출간된 ‘과학적 관리법’(The Principle of Scientific Management)은 조직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작업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원리를 정립한 경영학 최고의 고전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저자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는 산업혁명 이후 공장생산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던 관행을 타파하고, 작업현장을 과학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시간연구’와 ‘동작연구’를 바탕으로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기본원리를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업적은 훗날 노동조합이 활성화하면서 “인간노동을 기계화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경영에 분업을 통한 전문화를 도입하고 과학적인 작업 방식을 정립한 테일러리즘은 막스 베버의 관료제와 더불어 기업조직과 경영활동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기본원리로 평가받고 있다.

훗날 노동자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지만, 사실 과학적 관리법은 노사공동의 번영을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테일러는 능률이 향상되어야 고임금을 실현하면서 동시에 기업 차원에서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는 관세 인하, 경영권 세습 규제, 사회주의식 세제 개혁 등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정작 기업과 개인의 번영을 위해 필수적인 생산성 향상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테일러는 노동자의 나태한 태업을 막는 것이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이라 보았다. 당시의 노동자는 ‘기계의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비능률적인 주먹구구식 방법을 계속 사용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테일러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생산성 증대와 원가절감을 통해 제품가격을 떨어뜨려야 수요가 늘어나고 새로운 고용이 창출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구두를 기계화에 의해 대량 생산하게 되면 평균 5년에 한 켤레 정도 구입하던 소비자가 1년에 두 켤레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낮아지고, 이로 인해 수요가 늘어나면서 신규고용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테일러는 “과도한 노동에 대해 동정하기보다는 왜 낮은 생산성으로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저임금의 원인이 태업에 있다”고 지적했다.

태업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자연적인 태업이다. 또 하나는 조직적 태업으로,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혼자 너무 열심히 일하면 다른 동료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므로 하향 평준화식의 태업을 하게 된다. 과학적 관리법에서는 “이러한 조직적인 태업을 막기 위해 임금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하루의 임금이 정해진 상태에서는 하루에 해야 할 작업량이 적을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로 인해 태업의 악순환 고리가 생기게 된다. 이런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서는 작업량만큼 임금을 지급하는 차별성과급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철 운반 및 벽돌 쌓기, 자전거 베어링 검사 등의 모든 작업에는 업무 수행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필요하다. 과학적 관리법을 적용할 경우 벽돌 운반에 필요한 총 동작을 18번에서 5번으로 줄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작업대에 벽돌을 가지런히 쌓아놓으면 필요한 곳으로 벽돌을 옮기는 작업을 단순화시킬 수 있다. 즉 작업하기 편리한 위치에 벽돌을 내려놓는 판을 마련하는 등 간단한 도구를 고안해 수천 년간 해온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함으로써 1인당 1시간에 쌓을 수 있는 벽돌의 개수를 120개에서 350개로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오래 일하게 하는 것보다 제한된 시간에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예컨대 자전거용 볼베어링 생산 공장에서 여공들은 전통적으로 하루에 10시간30분씩 작업하고 있었다. 과학적 관리법에서 진행한 시간 연구의 결과 하루 10시간30분의 작업 시간을 10시간, 9시간30분, 9시간, 그리고 8시간30분으로 단축하면서 임금은 동일하게 지불했더니 산출량이 오히려 증가했다. 즉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분명히 하고, 볼베어링 제조 공정의 숙련 정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여 숙련도에 따라 공정에 투입하는 방식을 조정한 결과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단순히 솔선수범하는 근면한 자세보다 과업의 과학적 관리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일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적정한 인재에게 적정한 과업을 할당하고, 성과보상을 합리적으로 한다면 모든 사람이 태업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논리다. 결국 종업원이 자율적으로 작업하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정립된 과학적 방식을 관리자가 종업원에게 적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관리자와 종업원이 협력해서 과학적으로 작업에 임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공동의 책임을 지는 것이 과학적 관리법의 근본 철학이다.

“과학적 관리법은 노동자를 꼭두각시로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을 갖추게 되면 보다 흥미롭게 과업을 수행하면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과학적 관리법이 노동자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과업 수행 방식을 혁신하는 창의적인 제안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즉 기존의 방식보다 우수한 새로운 방식을 작업자들이 제안하여 공장 전체에 적용하는 것이 과학적 관리법의 기본 철학이므로 오히려 종업원의 창의성을 높일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21세기에 와서도 과학적 관리법은 여전히 유효하고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과학적 관리법은 노사공영(勞使共榮)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능률 향상을 통한 노사공영은 현대기업이 추구하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둘째, 과학적 관리법은 현대 지식경영의 효시이다. 관리자는 과학적 관리에 필요한 지식을 창출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하고, 노동자는 학습된 지식을 실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지식경영이다. 셋째, 하루의 공정한 작업량을 설정하고 작업량에 따라 차별성과급을 주는 제도는 성과에 따른 연봉제를 추구하고 있는 현대기업이 추구하는 기본방향과 일치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업조직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과학적 관리법은 낡은 방식을 버리고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조직을 혁신해야 한다는 경영의 기본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모든 고전에서 배우는 교훈의 공통점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과학적 관리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기본은 아마도 ‘전문화’와 ‘혁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학교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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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과학으로 ‘살아 있는 지구’ 개념 밝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Gaia)
 
우리는 ‘저명한 과학자’라면 당연히 세계 굴지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몸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과학이라는 것이 대부분 엄청난 연구비와 잘 훈련된 연구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오직 널리 알려진 대학과 연구소만이 그런 자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에는 예외도 있는 법.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대표적인 인물로, 그의 생활방식은 자신의 ‘가이아 가설’만큼이나 독특하다.

젊은 시절의 러브록은 여느 과학자들과 다름없이 영국과 미국의 여러 대학과 연구실을 전전했다. 하지만 화학과 의학 두 분야에서 모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극미량의 화학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가스크로마토그래프라는 분석장치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과학자로서의 명성과 부(富)를 동시에 얻었다. 과학계에서는 1960년대부터 DDT를 비롯한 유해화학물질이 환경 속에 축적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만약 러브록의 발명품이 없었더라면 그런 극미량의 유독물질에 대한 연구는 훨씬 지연되었을 것이다.

러브록은 40대 중반부터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자신의 저택 겸 연구실을 마련하고 이후부터 독립적인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는 특히 환경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1960년대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잠시 연구하는 동안 ‘지구의 모든 생물이 마치 하나의 초생물체(Superorganism)처럼 함께 행동하면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과 물질순환 과정을 주도한다’는 전혀 새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획기적인 사고는 1970년대에 ‘가이아 가설’로서 처음 제안되었으며 1979년 발간된 ‘가이아’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가이아’는 이후 지구과학과 환경과학, 진화생물학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러브록은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과학자, 새로운 사고와 연구 방식을 고집하는 자유분방한 과학자로서 지금도 연구에 분주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은 과거 40억년 전 생물이 지상에 처음 출현한 이후 끊임없이 주위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화되어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고 단정한다. 즉 태양복사열 증가, 화산폭발, 운석의 충돌, 대륙이동 등 여러 지질학적 원인에 의해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대기와 해양의 조성이 변화하고 또 기후가 바뀌었으며, 생물은 그러한 주위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점진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을 밟아왔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그런데 지구에 생명이 처음 출현했던 당시의 원시 대기에는 산소가 전혀 없었던 것에 비해 오늘날의 대기권에는 산소가 21%나 들어 있다. 또 바다는 지구 탄생 이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생겨났는데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만약 하천을 통해서 염분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었다면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점점 더 높아져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35억년 동안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음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최근까지도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누구도 합리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엽 러브록은 전혀 새로운 제안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과학의 장을 열었다. 그는 먼저 지난 30억년 동안 대기권의 원소 조성과 해양의 염분농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 만약 생물의 존재가 지상에 출현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탄소, 질소, 인, 황, 규소 등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들이 대륙과 해양을 오가며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그 메커니즘이 전적으로 생물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생물들은 기후를 조절하고, 해안선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대륙을 이동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생물체의 엄청난 능력에 착안하여 러브록은 자연스럽게 이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의 복합체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고 단정짓기에 이르렀는데, 그는 이러한 지구의 실체를 일컬어 ‘가이아’(Gaia·주 참조)라고 명명하였다.

러브록은 40억년의 생물 역사가 보여주듯이 가이아가 대단한 자가조절 능력을 발휘하는 거의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과거 운석의 낙하로 모든 공룡이 한꺼번에 멸종하는 대재앙이 발생하는 등 지구는 크고 작은 재난을 무수히 많이 겪었지만 전체 생물종이 일시에 사라진다거나 또는 그로 인해서 중요한 물질순환의 과정이 단절된다거나 했던 일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가이아의 생존 능력이 그처럼 강인하다’는 부분을 오해한 일부 시민환경단체들은 가이아 가설과 러브록에 대해 한때 상당한 비난을 퍼붓기도 하였다. 지구의 생존능력이 그토록 강하다면 우리는 환경파괴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발명품이 현대사회에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그는 타고난 환경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가이아가 몇 가지 환경적 재난에는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을 크게 강조한다. 마치 우리 자신의 몸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팔다리의 중요성과 두뇌, 허파, 심장의 중요성이 서로 다른 것처럼 지구를 구성하는 가이아의 각 부분도 그 중요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브록은 감기와 폐결핵에 대한 인체의 저항력이 다른 것처럼 환경오염도 그 종류에 따라서 가이아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러브록은 열대우림 지역을 지구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열대우림은 방대한 양의 수증기를 발산하고 동시에 구름의 형성을 돕는 여러 종류의 가스와 입자상 물질을 엄청나게 방출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흰 구름은 그 자체가 태양열을 반사해서 외계로 빠져나가는 에너지의 양을 증가시키고 또 구름에서 비를 내리게 하여 대기권의 온도를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열대우림을 인체에 비교한다면 마치 피부와 허파의 역할을 합친 것과 같다고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열대우림을 손상시키는 일은 대규모적인 핵전쟁보다도 더 가이아에 끔찍한 일이라고 그는 우려한다.

러브록은 ‘행성 지구가 현재 지구온난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기상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가이아 이론은 이러한 지구온난화의 추세가 열대삼림의 파괴에 덧붙여질 때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우리 인류를 포함하여 생물권 전체에 엄청난 재난을 초래하게 될 것임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 주(註) | 가이아’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을 일컫는 말로, 지구의 생물을 마치 어머니처럼 보살피는 여신이다. 제임스 러브록은 그 신화를 과학으로 대체했는데, 지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서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최적의 생존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항상 지구의 환경조건을 스스로 바꾸어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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