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 옮김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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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는 우선 이 책의 제목이 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으로 번역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ffective people' 이 꼭 '성공하는 사람' 을 의미하는 것을 아닐테니까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예의 자기개발서 처럼 자기관리의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는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공의 열쇠를 찾는 사람 처럼, "대체 7가지가 무엇이냐?"고 궁금해하는 분들께 이 책은 실망을 안겨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습관이 형성되는 구조에 대한 것입니다.

1.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 : 반사적 행동과 주도적 행동
2.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 인생 헌법과 자기사명서
3.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 : 황금알 이론과 시간관리 4사 분면
4. 승-승을 생각하라
5. 먼저 이해하고 이해시켜라
6. 시너지를 내라
7. 끊임 없이 쇄신하라 : 운동을 통해서 주도성이라는 습관의 강점을 개발하자.

책은 차근차근히 읽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암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번호는 나열을 위해 붙여진 것이 아니라, 선후관계를 의미합니다. 1번 습관을 익히지 못한 이들은 2번 습관도 좀처럼 익히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패러다임'과 '습관' 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하구요.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매번 무너지는 계획 앞에 좌절하는 당신이라면, 새로운 계획표 대신 자신이 지금 진정으로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 부터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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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빨리 석방된다
김주덕 지음 / 서음미디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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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가 구속되면 그의 무죄를 생각하기 보다는, 구속시킨 국가기관의 공신력을 먼저 믿는 경향이 있다. 즉, 구속 자체를 어떤 판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구속이란 공권력에 의한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구금 절차로서, 검찰의 일방적인 정황증거 만으로 개인의 신병을 장기간 구속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구속 수사 원칙' 입니다.
국가와 공권력을 마치 가치판단의 절대적인 기준인 것 처럼 물신화하는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주덕 변호사는 오랜 검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검사일 때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비약하자면, 책에 정리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곧 검사가 피의자 내지 피고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죠.

고소 - 경찰수사 - 검찰수사 - 공판 - 형집행 으로 이어지는 형사사건의 절차와 법률용어들이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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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의 권력
윤기설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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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의 권력>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책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의 천국(네덜란드), 주35시간 노동제의 폐지와 고용 후 2년 이내의 자유로운 해고(프랑스), 임금인상 없는 노동시간 연장 합의와 실업급여 축소(독일), 임금동결(일본), 무노동무임금의 관철과 대체근로의 허용(미국),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의 제약(영국).
아무리 둘러봐도 양보하고 빼앗기는 것 밖에 없으니, 이쯤 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무척이나 염치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얻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내어주는 대가로, 경쟁력이 확보되고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는거죠.
하지만, 세계적인 경쟁체제에서는 경쟁력의 강화가, 곧 투자와 고용의 발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력의 강화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기 때문이죠.

확실히 잃고, 불확실하게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제5의 권력>이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하지만, <제5의 권력>은 반쪽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첫번째, 기존의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 두번째, 이것은 한국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세계 노동운동 공통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훌륭한 노동조건을 가진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운동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들은 확실히, 빼앗기고 있고 양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5의 권력>이 이것을 두고 마치 대안인 것 처럼 포장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느 노동운동의 지도자도 이러한 변화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차악을 선택할 뿐이죠. 그런데, <제5의 권력>은 이렇게 말합니다. "거봐, 쟤네들도 이렇게 하잖아."
온전한 진실은,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해있지만 아직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덥썩 물어서는 안되는데, <제5의 권력>이 그러합니다.

노동운동은 <제5의 권력>과는 다른 방식의 변화를 준비하고 이뤄내야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시장이 세계적으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기업가들이 국가 간의 장벽을 넘어 투자하기란 점점 더 쉬워지고 있습니다. 안정된 고용을 유지하는 데에 그치는 기존의 노동운동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기업가들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안정된 고용이란 환상을 추구하다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겁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싸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행이 자본주의는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그마저의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는 더 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해야합니다.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공동의 요구를 가지고 싸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싸움을 조직할 수 있는, 전국적인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보탬]
노동조합을 만들고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자본주의가 인정한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법률입니다.
대화, 타협, 운운하기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필수조건이라는 것이죠. 쉽게 얘기해서 노동 3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대화나 타협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자가 이것을 이해하고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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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로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역사
엘 피스곤 지음, 김명신 옮김 / 부광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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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미FTA가 화두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시장을 통합하겠다는 한미FTA.
통합된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들을 만나야 하는 양국의 사업가들과 이들의 이해를 반영해야 하는 양국의 정부가 한참 협상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미FTA라는 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멀리 WTO까지는 올라가야 합니다. WTO란 전 세계의 시장을 한번에 통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인데, 언뜻 봐도 그리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지방에서 줄곧 1등을 해왔던 우등생이 전국수학능력시험장으로 나서는 두근거림이라고나 할까요.

WTO 협상이 만만치 않으면서 등장하는 것이 FTA입니다. 한번에 전 세계의 시장을 통합하긴 어려우니, 평소 교역이 많았거나 지리상 가까운 국가들 사이에서 먼저 시장을 통합해보는 것이죠. 엊그제 한칠레FTA 협상을 했던 것과 같이, 한미FTA는 전세계의 시장을 거미줄처럼 엮어들어가는 수많은 FTA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두고 '세계화'라고 합니다. 굳이 한미FTA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에서 외국의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죠. 한미FTA는 그것을 더 활발하게 만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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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계화'라는 낭만스러운 표현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시장의 세계화' 내지는 '자본의 세계화' 라고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화를 통해 세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죠. 각국의 사업가들이 좀 더 나은 투자 조건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게 되는 것 처럼, 노동자들 역시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얼마 전,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 검문을 강화했던 것이나, 그 전에 유럽의 흑인 젊은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데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각박한 태도가 깔려있는 것이죠.

세계화를 둘러싼 이런 모순적인 풍경은, 우리가 세계화를 너무 단순하게 단편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켜줍니다. 한미FTA가 WTO라는 국제무역협정에서 부터 비롯되었듯이, 국제무역협정은 왜 갑자기 시작되었는지, 더 넓고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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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로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는 멕시코의 정치풍자만화가 엘 피스곤의 풍자만화집입니다. 한미FTA협정에 반대하는 분들이 종종 멕시코 사례(미국-멕시코FTA)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요, 막상 자국에서 FTA를 경험한 그는 미국-멕시코FTA에 국한해서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멀리 돌아 자본주의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세계화, 아니 정확하게 시장의 세계화는, 200여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그것이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 정책과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복지국가와 사회주의국가의 탄생, 냉전의 와중에서 한숨 돌렸다가, 1970년대 인플레이션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계화라는 것은, 끊임없이 시장을 세계화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기본 운동법칙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군대를 동원해 공공연히 시장을 개척했다면, 1970년대의 그것은 돈을 이용합니다.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채무와 이것을 빌미로 한 해당국 시장의 개방입니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을 억눌렀던 대처, 미국의 레이건을 시작으로 해서,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 브라질과 같은 남미 국가 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과 같은 유럽권 국가들의 정부가 등장합니다. 저자의 시각이 좀 더 넓었다면, 한국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들어갔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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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자체를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시장의 세계화'일 뿐이죠. 즉, 누구에 의한, 무엇을 위한 세계화인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미FTA와 같은 시장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을 이들, 그래서 이에 반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남겨줄 것입니다.

단순히 한미FTA에 대한 찬반논쟁은 정말 중요한 논점을 흐릴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협상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할 사람인지, 아니면 협상의 결과에 상관 없이 시장의 세계화에 의해서 고통받는 사람인지 잘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아무렴, 국적은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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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박헌영 일대기
임경석 지음, 이정박헌영기념사업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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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정 박헌영 전집의 일부입니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 김규식, 등과 함께 해방 이후 정국을 주도했던 그에 대해서 객관적인 자료는 부족한 채, 왼쪽이든 오른쪽의 편향적인 평가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쓰여졌습니다.
일대기는 그와 관련한 신문이며, 경찰 및 미군정의 자료들을 연대기 대로 나열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저자의 판단은 최대한 절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한 어리석은 접근 중의 하나는, '왼쪽이 옳으냐 오른쪽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며, 자칫 소모적인 비난으로 치우치기도 합니다.
좀 더 발전적으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들의 행보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해방이라는 권력의 공백기 상태에서 각각의 세력과 인물들이 구상했던 사회상과 실천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박헌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연구가 50년 동안이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가는 대중들의 정치적 열망을 대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에 대한 연구는 곧, 해방 직후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에 대한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에 대한 연구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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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통해서 우리는,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전형을 옅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만, 박헌영 역시도 그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1919년 3ㆍ1 운동을 통해 정치활동을 시작하며, 이어진 일제의 탄압, 그리고 망명. 망명지는 1923년 간도대지진 이전까지는 일본이었고, 이후에는 중국이었습니다. 물론, 정치활동과 상관없이 일제 하 200만에 가까운 조선인들이 일본, 만주, 중국, 미국, 등지로 떠나게 되죠.

여튼, 1923년 이후 중국으로 모인 조선의 정치가들은 자연스럽게 러시아 및 중국의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게 되고, 그 속에서 그(녀)들 각자의 정치적 경향은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박헌영의 경우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조선에서부터 외국어(영어 및 에스페란토어)에 능숙했던 그는 러시아 대학에서 수학합니다. 그가 러시아로부터 정치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예측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이후의 그의 활동은, 조선 내에서 공산당을 설립하는 것으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두차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고, 해방이 될 때 즈음 그는 목수로 위장해 지하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조선공산당을 수면 위로 띄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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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좌익' 내지는 '공산당' 이라는 한마디로 일축하는 해방 이후의 세력이란, 사실 굉장히 다양한 세력들의 집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좌익' 으로 묶인 상당수 세력 중에, 실제 해방 이후에 사회주의 강령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세력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해방 이후의 정치적 이슈는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오랜 일제 치하와 독립에 대한 열망 속에서, 해방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슈는 (1) 친일파 청산 (2) 봉건적 지주제의 청산 (3) 스스로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닦는 것 이 세가지에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해방 직후 대중들의 정치적 지지는 이러한 요구의 대변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었죠. 조선공산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세가 급변하는 것은, 모스크바 삼상회의 직후 불거진 찬탁/반탁이 정치적 이슈로 부각하면서 부터입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는, 조선인들 스스로 국가를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 당시 조선에 진주하고 있던 미국과 소련 양국이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제반 원조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 회의안을 기점으로 조선은 찬탁/반탁의 열풍으로 휩싸이게 되고, 응당 이 회의안에 찬성했던 정치세력들의 입지가 줄어들게 됩니다.

더 이상은 외국에 의한 지배를 원하지 않았던 조선인들의 열망에 비해, 그것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다수 정치세력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이 조선인의 정부 수립을 인정하고 지원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었던 듯 하며,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안에 찬성했던 정치세력들이 찬탁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 반사적 이익을 통해 정치적 입지가 넓어진 것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안을 제출했던 미국과 미군정, 그리고 한국민주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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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탁/반탁 논쟁과 더불어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의 정체성을 옅볼 수 있는 것은, 좌우합작입니다.
좌우합작은 조선인민당의 여운형 선생이 주도합니다. 그런데, 좌우합작의 핵심은 좌와 우를 합작한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의 핵심은 자주적 정부의 구성에 있습니다.

앞에서 해방 이후 정치적 이슈의 핵심은 (1) 친일파 청산 (2) 봉건적 지주제의 청산 (3) 스스로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닦는 것 에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좌우합작이란 (3) 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선공산당은 (1)과 (2)가 전제되지 않은 좌우합작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좌우합작은 여운형의 암살과 함께 실패하고 맙니다.

조선공산당이 좌우합작에 반대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남과 북의 분리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1) (2) (3) 세가지 모두에게서 대중적 지지를 받았던 조선공산당이 스스로의 정치적 목표를 포기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1) (2) 없는 (3) 만을 이룰 수는 없었던 조선공산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1) (2) (3) 모두를 이루고자 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좌우합작 실패를 즈음하여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이, 활동의 축을 북으로 옮기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3당 합당을 통한 남로당의 결성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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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옮겨간 이후의 박헌영의 행적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없었습니다.
곧 이어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정전협상 이후 그는 미국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합니다. (조선노동당 내에 남과 북 모두 여러 경향이 혼재되어 있었다는 것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나, 새로운 자료를 통해 신중히 접근해야 할 부분입니다.)

박헌영. 그 역시 정치 외에 개인적 행적을 거의 남기지 않은 열정적인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조선공산당 당수이기 이전에, 해방 이후 조선인들의 정치적 열망을 대변하고자 했던 정치가였고, 북으로 넘어가기 까지 친일파 청산, 봉건 지주제의 청산, 자주적인 국가의 수립이라는 열망 그대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불필요한 이념 논쟁' 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념 논쟁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불필요한 것은 이념 논쟁의 흉내를 내는 엉터리 편가르기 싸움입니다.
박헌영 그에 대한 연구가, 해방이라는 정치적 열망으로 가득찬 역사의 한 순간을 돌아보는데 있어서, 진정한 이념 논쟁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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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une 2006-08-2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을만 하던가요? 요즘 한국공산주의운동사연구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서점에서 보고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sb 2006-08-27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 박헌영 일대기>는 '박헌영 전집'의 일부입니다. 전집의 나머지 6권은 그의 글이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대기는, 신문이나 재판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시간 순서대로 그의 행적을 복원한, 일종의 자료집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