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렁큰 타이거 5집 - 하나하면 너와나 (One Is Not A Lonely Word)
드렁큰 타이거 (Drunken Tiger) 노래 / 지니(genie)뮤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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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었던 몇몇 곡에 대한 간략한 느낌.

01  긴급 상황 (Feat. Gemini)

굉장히 급한 비트의 노래. 무얼 얘기하는지는 잘 모르겠음.

02  편의점 (Feat. Gemini)

늦은 새벽까지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던 남자가 김밥이며 라면, 담배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어간다.
거기서 마주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걸쭉한 로맨스.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남녀의 생각이 트로트 가락에 실려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부분은 T가 featuring 했다.

03  이 놈의 Shake it (Feat. Gemini)

"흔들어 제껴 이놈의 shake it"

04  Skit Intro - 가수지망생 1. (5,000원)

매니저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독백? 잔소리? 타이거JK의 대답은 다음 곡에.

05  Skit - 가수지망생 1. (5,000원)

음악의 3대 요소가 멜로디, 야마, 가사라는 윗곡 남자에 대한 타이거JK의 대답.
전인권풍. 무척 깬다.

06  Liquor Shots (술병에 숟가락 - Feat. 바비 킴, Ann)

이 곡이 타이틀이었던 것 같은데, 당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단, 한가지. 그의 노래에는 '훅(hook)' 이니 '어퍼컷(uppercut)' 과 같은 권투용어가 종종 등장하는데, 어쩌면 그의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건 아닐까.
말로 풀어내긴 영 힘드네.

12  Symphony 3 (Feat. Sean2slow, YDG)

'공짜로 약자 대변해주는 노래' 라는데,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건, '강자'이거나 '강자에 기댄 자'가 아닐런지.
여튼, 션2슬로우의 플로우(flow)에는 다시 한번 감동.

13  고집쟁이 (Feat. Dynamic Duo, 은지원)

음반의 주인인 타이거JK 를 비롯해서, 다이나믹 듀오, 은지원, 등 무브먼트 크루가 함께 한 곡.
삶의 고집들을 한가지씩 늘어놓는, 함께 부르기에 걸맞았던 노래. 최자와 은지원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음.
"감사의 말씀 천만에"

14  Once Upon A Time (나의 어리석은 방황)

소문으로만 듣던 타이거 JK 의 5집 앨범을 들으며.
몹시 난해한 와중에, 그만의 뚜렷한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물론, 난해하다는 것도 하나의 스타일인데, 과격하지만 무엇에 대해 과격한지 아리송하다.
"Once Upon A Time" 은 얘기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곡 중 하나. 재미교포(맞나?)인 그의 어린 시절의 방황을 옅볼 수 있다.

15  Skit - 가수지망생 3. (동문서답 - 호랑정권 & 판돌이 Shine)

힙합도 쉽게쉽게, 누구나 따라할 수 있게, '오픈마인드'로 가자는 음반의 감초, 매니저아저씨의 마지막 주문.

16  백만인의 콘서트 (노래방 Rap)

"이제 힙합을 한번 배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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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cool 2006-04-0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이거 jk의 lyricism은 이중구조를 알지 못하면 이해가 힘들죠. 역시나 님도 인상깊었던 곡 리스트에서 채인,체인이 빠졌군요. 이 곡은 전체가 비유법이고 본인의 음악인생에 대한 격려와 의지를 드러낸 곡입니다.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가사를 가진 곡인데...한국방송특성상 타이틀곡은 거의 타율적으로 정해진다는(힙합의 경우 가사가 특히) 법칙에 의해 술병에 숟가락같은 경우 역시 가사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그룹의 정수를 드러냈다보긴 힘들죠. 역시나 리스트에서 빠진 내 인생의 반의 반 같은 경우는 상당히 멋진 트랙이고...가사나 음악적으로나 난해한 면이 있지만 저는 그것도 국내 힙합의 스펙트럼을 넓힌 의미있는 시도라고 봅니다.
 
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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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로 복원된 조선시대 사회주의운동

요즘엔 꼭 소설책 한권은 곁에 두려고 합니다.
두꺼운 책들을 읽다보면 자칫 지루해지기도 하고, 사실적이고 분석적인 책들과는 사뭇 다른 멋을 지니고있는 것이 소설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대부분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인데,
소설을 읽으며 머리 속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일이 굉장히 재밌습니다.

이번에 단양에 다녀오는 길에도 소설책 한권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안재성씨의 이력은 말 그대로 386. 60년대 생에, 8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으나 광주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제적을 당했고, 이후에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동구권 몰락과 함께 과거를 청산해버린.

요즘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끔 글을 쓴다는 안재성씨의 책 <경성트로이카>는 1930년대 일제치하에서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청산해버린 과거의 사회주의운동을 우연한 계기로 다시 접하게됩니다. 경성트로이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효정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죠.

구도와 내용 면에서는 손석춘씨가 쓴 <아름다운 집>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아름다운 집>이 혁명가 이진선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다면 <경성트로이카>는 이효정 할머니의 회고와 저자가 공부했던 김경일 교수의 <이재유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 내용에 있어서는 조선시대 사회주의자들의 일대기를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김경일 교수가 연구한 '이재유' 라는 사람은 <경성트로이카>의 주인공 격이기도 한데, 당시 경성지방 - 오늘날의 서울 - 노동운동 및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혁명가입니다.)

# "허무한 일이요"

책을 읽으며, 내내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떠올랐습니다. 대부분 일독하셨겠지만, <태백산맥>은 일제 말기의 빨치산 투쟁을 그리고 있죠.

시대적 맥락에 따른다면, <태백산맥>은 <경성트로이카>의 후반부에 붙일 수 있을겁니다. <경성트로이카>에서 경성을 비롯한 조선, 만주, 중국 곳곳을 넘나들며 일본의 지배에 맞서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꿈에 그리던 해방된 조선에서 일본군이 아닌 한국정부와 북한정부에 의해 스러지게됩니다.

"일정 때 우리가 놈들의 힘을 빼앗으려고 싸우는 동안 당신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웠소. 우리가 학업과 생업을 포기하고 공장과 감옥을 떠도는 동안 당신들은 국가를 운영할 기술을 배우고 사람 고용할 돈을 모았소. 일제가 물러나고 보니 우리 같은 사람은 쓸모가 없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구려. 참 허무한 일이요. 허무한 일이요"

마지막으로 체포된 혁명가 김삼룡이 자신을 심문하는 경찰관에게 던진 말입니다.
과거 자신의 운동을 스스로 청산해버리고 홀홀히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안재성씨가 굳이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을 복원한 소설을 써낸 이유가, 김삼룡의 한마디에 담겨있습니다.

일제시대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더불어 일본의 지배에 맞서 싸우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합니다.
이 두 세력은 일본제국주의라는 적을 상대로 하나로 뭉치게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간회'입니다. 그런데, 신간회는 광주학생운동 -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인 학생이 조선 여고생을 희롱하면서 생김 - 을 기점으로 다시 나뉘게됩니다.
항일시위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 두 세력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데, 먼 장래를 위해 당장의 싸움을 자제하고 힘을 기르자는 주장과, 당면한 싸움을 전면화해야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을 가르게됩니다.

물론, <경성트로이카>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상을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파업이라는 무기를 통해서 항일시위를 벌였으며, 일년이 멀다하고 일본군에 의해 체포와 고문을 당해야했던 조선시대 사회주의자들.
책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체포'일 정도로, 이들은 헌신적으로 싸웠고, 그만큼의 견제와 억압을 받은 것이죠.

# 스러진 천덕꾸러기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활동을 계속하던 이들이 해방을 맞은 것은 1945년 8월 15일.
이들은 꿈에 그리던 합법적인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조선인민공화국'과 '조선공산당'을 수립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일제 치하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은 대중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고, 조선공산당은 불과 몇 달 만에 수만명의 당원을 확보할 정도로 세가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좌초되는 것은 그 해 12월의 신탁통치.
미국과 소련은 모스크바 삼상회의를 통해서 신탁통치를 결정하게 되는데, 조선공산당은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반대하고도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 곧 급추락하게 됩니다.
유일한 견제세력이던 사회주의 세력의 추락은, 미군정과 친일파, 우익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었고, 그토록 해방을 기다렸던 사회주의자들은 해방된지 일년 만에 다시 불법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다시 일제시대처럼 지하활동을 시작하거나, 월북하게되죠.

하지만, 박헌영을 비롯해 이천여명에 가까운 남로당 출신 월북 사회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을 비롯해 북한 공산당에 의해 견제를 받았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숙청되는 운명에 처합니다.
남쪽에 남아서 지하활동을 하던 이들, 즉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빨치산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한정부와 남한정부가 벌이는 휴전협상 아래, 그(녀)들은 천덕꾸러기 처럼 소탕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 이질감

이질감입니다. 본문 내내 등장하는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의 처절하고 헌신적인 투쟁과, 그(녀)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해방 이후의 허무한 몰락의 과정은 이질적입니다.

물론, 이질감은 몸뚱이의 죽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월북한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자유조차 보장하지 않는 북의 현실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자는 현실을 왜곡했습니다. 몸뚱이의 죽음보다 더욱 처절한 것은, 정신의 죽음이었죠.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주의의 늪에 깊숙히 빠져들었던 남한사회에서 이 이질감은 논의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과거의 상흔을 잊은 채 깊이 가라앉았어요.

하지만, 한번 깊이 가라앉아버린 이질감은, 반공주의가 어느정도 사라진 후에도 다시 떠오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무릎을 꿇었을 저자 안재성씨 역시, 이 이질감을 극복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는 겁을 내는 어린아이처럼, 보고싶은 과거만을 회상하고 복원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가 복원한 사회주의는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질감의 원인, 코민테른

두개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르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안재성씨와 이효정 할머니가 아무리 애를 써서 과거를 복원한다 한들, 복원된 사회주의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의의는 허공에 흩어질 테니까요.

사회주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극중 일면에서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극중 국제선과 국내선과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주인공 이재유가 결성한 '경성트로이카' 조직과 같이 경성지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사회주의자 권영태 그룹. 이 두 그룹은 경성지역 사회주의운동을 위해 통합하려고 하나 갈등하게 되죠. 권영태 그룹은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 세계 공산당의 연합조직 - 의 별칭)의 지시를 받는 국제선 조직이었고, 이재유 그룹인 '경성트로이카'는 자생적인 국내선 조직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갔다가 돌아온 후 신문사나 잡지사에 취직하는 등의 비슷한 경력을 쌓고 있었다. 현장의 대중 조직 건설 보다는 국제선과 연결되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같았다. 이재유는 이들 지식인 출신 사회주의자들을 신용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공산당이 노동자와 농민 출신 중심으로 재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국제선과 국내선이 얼마나 현장에 기반을 가지고 있느냐를 떠나서,
소련 공산당을 위시로 한 스탈린의 코민테른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지령적이고 일방적인 지도체계를 유지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코민테른의 경직성은 <태백산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 당시 남한 뿐 아니라 북한의 사회주의 운동에서 코민테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죠.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코민테른으로 등치되는 그 순간, 사회주의는 정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조선공산당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입장을 급선회 한 것 역시 코민테른의 지시였는데, 민중의 요구보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지령적으로 수용했던 박헌영 선생은 되려 북한에서 미국의 간첩으로 몰려 숙청을 당하게 됩니다. 이미 코민테른은, 세계의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어 갈 조직이 아니라,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여타 연합국과 한반도 나눠먹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온전한 얼굴, 그리고 살아있는 운동

코민테른의 발자취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운동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죠.
사회주의 국가를 모델화 시켜 소련이나 북한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코민테른 운동과 등치시키는 순간, 그 운동은 죽게되고 정체하게 될 것입니다.

동구권이 몰락하고 많은 운동권들이 운동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그(녀)들중 누구도 동구권의 권력구조, 산업구조, 소련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오류에 대해서 돌아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들의 운동이 죽어있고 굳어있는 무엇이었다는 것은 아닐까요. 동구권이 몰락했다 한들 한국의 상황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그(녀)들을 떠나게 만든 것입니까.
그(녀)들에게, 저자인 안재성씨에게 운동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실제, 유럽에서는 1930년대, 즉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집권을 하던 즈음부터,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였고,
동구권 몰락 이후에도, 적어도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 이념이 권력을 잡기 전인 일제시대에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다 죽어 간 혁명가들의 생애를 복구하는 일은 의미가 있지만, 사회주의자들의 긍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그 이념이 가진 근원적인 문제를 가려 버리는, 내 스스로 원치 않는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저자 서문에서

극구 서문에서 자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가며 조심스러움을 내비치는 안재성씨,
그가 이효정 할머니와 복원해낸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얼굴은 단지 반쪽이 아닙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조선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온전한 얼굴일 뿐입니다.

애써 반쪽을 만들고저 하는 저자의 서문과, 책 말미의 처참한 죽음들이 이질감을 주는건 그 때문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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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시대의 불꽃 8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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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집어들며

80년 광주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윤상원 열사의 평전을 집어들었습니다.

사실, 평전 내지는 위인전은 한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어왔는데,
적어도 투쟁을 하다 돌아가신 열사들의 평전은 개인의 삶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열사의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는 늘상 '투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투쟁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점 때문이죠.

뭐 여튼 저 역시 열사의 평전을 통해서,
80년 광주가 광주 시민을, 그리고 학생 출신 노동운동가 였던 열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옅보고 싶었습니다.

일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일반적인 수준에서 80년 광주는, 군부의 독재, 공수부대의 잔인한 진압, 시민들의 민주화 항쟁,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늘날 광주를 이렇게 기념행사 수준으로 전락시켜버린건,
흔히 비판받듯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나버린 사람들이 아니에요. 한정지은 광주의 의미 자체죠.
그래서, 기존에 부여해놓은 공식적인 멘트를 뛰어넘는 것, 광주를 단지 '죽어있는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교훈'으로 배우는 것이 제 출발점이 됩니다.

# 봉기

가장 먼저 주목했던 점은, 광주의 봉기적 성격이에요.
아시겠지만, 광주 항쟁의 불길을 당긴건 전남대 조선대 학생들의 시위였죠.

'서울의 봄' 이라고 해서, 10ㆍ26 이후부터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시키기 전까지의 평화시기를 뜻하는데,
물론 평화적 분위기는 표면적이었을 뿐이고, 실제 정계에서는 전두환의 암투가 시작되고 있었죠.
이 시기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학도호국단을 없애고, 민주적 학생회 건설을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여튼, 처음에 시민들은 학생들의 시위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는데,
나중에 이들은 광주 항쟁의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는거죠.
소수의 학생들과는 다른 시민들의 압도적 숫자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거에요. 실제, 이후 도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은 시민들이었으니까요.

이건 굉장히 재밌는 구도입니다.
학생들이 주도한 시위가 시민들에 의해 본격화된다는 사실이 말이죠.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혁명의 구성요소를 들어 '의식성'과 '자생성'을 얘기했는데,
광주를 두고 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어려운 경제 정치적 상황 - 당시 광주는 두가지 모두에서 고통받고 있었죠 - 에서,
학생들은 의식성을, 시민들은 자생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의식성과 자생성이 결합될 경우에만, 봉기는 가능해지는거죠.

결정적인 시기, 이를테면 87년 노동자대투쟁이나 97년 노동법개악저지투쟁과 같은 시기가 아니라면,
운동은 소위 활동가라 불리우는 이들, 이를테면 노동조합 상근자나 노동운동가, 학생운동가, 정당활동가, 등등의 몫인 것 처럼 보여져요.

그런데, 이들의 운동은 자생성과 결합되지 못할 경우에는 분명히 한계를 가질거에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처럼 운동이 숨죽이고 있는 때에도, 참을성있게 활동을 해나가며, 극단적인 오류 - 고립된 소수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보려는 - 로부터 벗어나야겠죠.

# 지도부 그리고 <투사회보>

두번째는, 시민들이 모두 일어난 이후의 문제인데요,
윤상원 열사가 광주 항쟁 당시에 발간했던 <투사회보>는 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거에요.

윤상원 열사는 광주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봉기와 도청으로의 진격이 무질서하게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민합니다. 힘이 한곳으로 모아지지 않는다는 점을요.
<투사회보>는 이런 고민에서 만들어 진 것인데, 공수들과 물리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그 혼란스럽던 정국에서, 많게는 40,000부 적게는 5,000~6,000부 가량 찍어내어 시민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하게됩니다.
<투사회보>는 공수의 진압이 시작된 19일부터 열사가 산화한 26일까지 10차례 발행되었고, <투사회보>를 통해서 시민들은 소식을 공유하고, 조금씩 집중된 힘을 발휘하게 되는거죠.

공수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후, 투사회보 작업실에서 벌어진 후배 서대식과의 대화가 열사의 심정을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형님, 공수놈들이 총을 쏴대는 데 이까짓 종이쪼가리난 만들어서 뭐합니까. 시민들이 총을 쏘고 있다구요!"
"야, 이 자식아. 유인물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총칼 들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흥분해 가지고 총든 시민들 통제할 수 있겠어? 감정만 앞서 가지고 계엄군을 이길 수 있겠냐구. 우리가 할 일이 없어서 이 짓을 하고 있는 줄 알아? 시민군을 통제할 수 있는 지도부가 없는 현실에서 선전선동은 생명과 같은 거야. 투쟁열기를 높이고 투쟁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할 일임을 명심해! (중략) 전두환이는 총칼보다 투사회보 한 장을 더 무서워해. 알았어?"

저는 광주와 같은 봉기에서 지도적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지도적 역할' 이 자체만으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실제 봉기의 주체, 운동의 주체를 잘 이끌어 줄 수도 있고, 반대로 억압할 수도 있죠.

# 지도적 역할의 양면성과 수습위원회

정말, 지도적 역할의 양면성이란, 광주 항쟁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데,
사실 알만한 사람만 아는 것 같아요.

광주에 대해서 안다 하는 사람들도,
도청 장악 이후에 장열히 산화했다는 사실만을 기억할 뿐, 장악 이후의 시민들 내의 갈등이나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아요.
역사는 교훈을 얻지 못하면,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는데 말이죠.

아시겠지만, 공수들은 도청을 스스로 비우고 시 외곽으로 퇴각하죠.
일종의 권력의 공백기. 도청으로 밀려든건 시민이지만, 공백상태에 있는 권력을 잡은건 시민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광주시 부시장을 비롯한 광주지역 명망가 - 교수, 변호사, 등등 - 들이었죠.
이들은 수습위원회를 꾸려 지도부의 역할을 자처하는데, 광주의 상황실을 차지하고는 계엄사와의 협상에 들어가더니, 곧 이어 무기를 반납하자는 선무방송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진으로 한번즈음 봤을 법한 도청 앞 시민궐기대회 역시도, 시민들을 흥분시킨다는 이유로 열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수습위원회의 협상에 귀기울여 줄 것을 당부합니다.

윤상원 열사는 이런 수습위원회의 태도에 반대했죠.
그는 계업사와의 협상을 할 수 있는 힘은 수습위원회가 아니라 시민들의 결집된 힘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장을 유지 혹은 강화한 상태에서 시민궐기대회를 통해 시민들의 힘을 더욱 모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열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시 시민군의 상황실장으로 수습위원회와 갈등하던 박남선을 만나게되고, 결국 새로 지도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당시 수습위원회와의 갈등은, 도청 장악 이후에 협상이 한참이던 23일, 박남선의 수기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시간이 갈수록 수습위에 대한 나의 불만은 더해가고 있었다. 구속된 몇 사람을 빼와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자기들이 했단 말인가? 지금까지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은 왜 신경을 써 주지 않고 엉뚱한 일만 하는가? 왜 총을 회수해 가 계엄당국에 바치는가? 왜? 지금도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에 죽어가고 있는데 무기회수가 웬 말인가?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런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무기를 절대 넘겨주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권총을 빼들고 가서 무기고를 지키고 있는 시민군에게 '만일 내 허락이 없이 무기를 내주었다간 죽여버리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 '들불야학'과 <투사회보>

시민들이 도청을 장악한 22일을 전후로 한 상황은,
실제 봉기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열사의 삶은, 단지 도청을 지키다 죽어간 민주열사 이상으로 열사가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나갔는지를 - <투사회보>제작, 수습위원회 장악, 무기반납 반대, 도청 사수 - 보여주는 것 같구요.

덧붙여, 제 개인적인 관심사 덕분에 거의 언급하지 못했지만,
광주 이전에 열사의 삶은 '들불야학'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전대 정외과를 졸업했고,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주택은행 행원으로 입사했던 그는, 1년 남짓한 은행원 생활을 접고 광주로 내려와 '들불야학'과 함께 현장의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고, 이 '들불야학'은 이후 <투사회보>를 제작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게되죠.

실제, 평전에는 열사의 대학생활 이후에는, '들불야학'과 <투사회보> 두가지를 주로 다루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저와 달리 '들불야학'에 초점을 두고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 마치며

마음 같아선, 좀 넉넉하게 잡아 한국의 근현대사를 둘러보고 싶은데,
사정이 별로 여의치가 않아요.

광주와 관련해서는 익히 읽혀왔던 황석영 선생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제가 알고있는 광주 관련 서적 중에서 사료로서의 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 같군요. 윤상원 열사의 평전이나 박남선씨의 수기의 경우는, 지도부 내부의 갈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지만, 시민들의 분위기를 옅보기는 쉽지 않거든요. 황석영 선생의 책이 기록형식으로 되어있으니, 그 부분의 부족함을 메워주리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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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2
이태하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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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인과 비종교인, 그 갈등의 실마리를 찾아

책을 지은 이태하 교수는 철학을 하시는 분입니다. 서경대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다는군요.
<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 이라는 제목에 섞인 '반성'이라는 단어가 암시하지만, 이 교수 께서는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의 갈등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해요.

제작년이었나요, 오랜 기독교 신자이셨던 아버지께서 돌연 교파를 옮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현재 우리 나라에는 크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성공회 등등 여러 교파가 있고, 또 그 교파 내에서도 다양한 교단으로 쪼개져 있죠. 거대 교파인 장로교에서 생소한 대한예수교침례회로 적을 옮기신 것입니다.

집안에 갈등이 굉장히 많았고, 그 갈등을 풀어가는 중에 저는 대한예수교침례회의 수련회까지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 평행선

고등학교 이후로, 그러니까 소위 머리가 큰 이후로, 저와 '신앙'은 줄곧 평행선을 이뤄왔습니다. 응당 아버지를 쉬이 이해하기 힘들었죠.
수련회는 그 평행선의 접점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교파를 옮긴 이후에 신앙'생활'이 달라진 아버지가 제게 실마리를 제시한 덕도 있었구요.
이 교수 역시도 평행선에 주목합니다.

각각의 평행선을 '종교'와 '과학'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런지요.
실제, 개신교인들이 제공하는 불신감이란, 대략 그(녀)들의 '배타성'에 기인하다고들 해요.

하지만, '개신교인들의 배타성이 문제다' 라고 쉬이 결론 내리기엔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분명, 배타하는 주체와 배타당하는 객체 사이의 불균등한 세력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요.
개신교인들은 분명 한국사회에서도 엄청난 세력을 이루고 있는 배타하는 주체인 셈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배타당하는 객체일겁니다.

세력관계를 차치하고 본다면, 배타당하는 객체 역시도 배타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배타성이란, 토론이나 설득의 과정 없이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행동이 빚는 폭력성을 뜻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 점에서 이 교수의 이 책, 분명 읽어볼 가치가 있을겁니다.

# '상보성'을 아시나요?

이 교수의 전공인 '종교철학'은, 메타학문입니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종교철학의 연구대상인 학문이란, 다름 아닌 신학이구요.

따라서, 아쉽게도, 이 책의 결론이 명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즈음은 적지 않이 예상할 수 있습니다.
계속 평행선의 비유를 들자면, 종교철학은 평행선의 접점을 찾기 보다는, 평행선의 거리를 좁힐 따름입니다. 종교철학자는, 종교의 전제조건이 되는 세계관, 즉 신학의 일관성 내지는 정합성만을 검토할 테니까요.

그는 과학과 종교의 '상보성'을 얘기합니다.
만약, 과학과 종교라는 평행선을 만나게 하려고 했다면 '상호보완성'이라고 하겠지만,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니 '상보성'이 옳은 표현일겁니다.

상보성은 접점 보다는, 두 평행선이 향하는 방향에 더욱 주목합니다.
각각의 평행선은 각각의 역할을 하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죠. 같은 방향이란, 다름 아닌 '삶의 문제의식' 이구요.

교수는 자살사건을 예로 들었으나, 전 연애담을 예로 들께요.

갑동이와 병순이가 서로 헤어졌다면,
'삶의 문제의식'은, 두 사람의 슬픈 마음이요,
'과학의 역할'은, 두 사람의 행적을 좇는 것이고,
'종교의 역할'은, 행적의 바탕이 된 이유를 밝히는 것입니다.

병순이와의 헤어짐이 너무 슬프다며 찾아온 갑동이에게,
절친한 친구인 을동이는, 그간 있었던 '사실'을 들음과 동시에, '사실'에 내재된 두 사람의 속내를 곰곰히 생각해 볼테니까요.
삶의 문제의식을 해결하는데에는, 사실 만으로는 몹시 부족하다는겁니다.

# 주연은 내어줄지언정

오늘날의 철학은 과학에게 꽤나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철학계의 동향은 전연 모르니, 철학자 탁석산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에서 철학자가 현실 문제에 의견을 제시하는 사례는 생명 공학과 관련한 윤리 문제가 거의 다가 아닌가' 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그의 논평처럼, 철학은 과학에 주연을 내어줄지언정, 연극판 밖으로 쫓겨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밤하늘의 수많은 십자가들이 이를 보여준다면 섣부른 판단일런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오히려, 평행선의 접점을 만들고 심지어 하나로 만드려 하는 억지 노력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접점에 서있는 두 평행선의 이름은 '철학적인 과학'과 '과학적인 철학'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상보적 노력의 밖에는

이쯤되면, 수련회를 다녀온 후의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가 조금 풀리는 듯 합니다.

대한예수교침례회의 비판 자체는 충분히 긍정적인 것이었습니다.  - 물론, 이곳 역시도 '오대양사건'으로 대표되는 많은 말썽(?)을 일으켰고, 많은 의혹이 있지만 - 그것은 기존 개신교 우파 내지는 다수파를 이루는 교파들의 옳지 못한 행적들에 대한 비판에 근거하는데, 재정 마련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금전거출이라든지, 세력 확장을 위한 무리한 사업 집행들을 도마에 올립니다.

하지만, 그(녀)들의 통쾌한 비판의 이면에는, 바로 '과학적인 철학' 이 있습니다.

그(녀)들은 창조과학회(http://www.kacr.or.kr)라는 학회의 부흥을 기반으로, 성경의 기적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이는 과학과 철학의 상보성에 어긋나는 셈이에요.

창조과학회의 과학적 논거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판단할 일이겠지만,
그(녀)들의 이런 노력이란, 과학의 힘을 빌어 철학을 설득하려는 '과학적인 철학'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적인 철학이든 그냥 철학이든,
그(녀)들의 이런 노력이 인간의 실존적인 물음에 대해서 자꾸 현실 도피적으로 흐르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던, 마르크스의 명제는 이곳에 자리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그(녀)들은 아슬아슬한 자동차 경주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어요.
자신의 실력으로 관객에게 속도감을 선사하지 못하고, 경쟁 선수를 위압하려 지나치게 옆에 붙었다가 불의의 사고로 치닫는 안타까운 장면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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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민주주의가 오고 있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
박동진 지음 / 책세상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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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적 신화

익히 들어온 '정보화 사회' 선언.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새로이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환상을 심어주기에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기존 사회에 대한 실망과 갈등, 그리고 새 사회에 대한 갈망이 어우러져,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미처 충분히 살펴보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화 사회'를 받아들였는지도 모릅니다.

<전자민주주의가 오고있다>의 저자 박동진 교수는, 이를 두고 '정보적 신화' 라 이르고 있습니다.

정치에서는 인터넷의 보급과 전자투표의 활성화를 두고 직접민주주의의 시대를,
일상생활에서도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같은 가전기기의 네트워크화를 두고 생활의 편리함을,
전사회적으로 정보화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의 신화 부수기가 자못 기대되지 않습니까.

그가 주목하는 부분은 전자투표의 활성화를 두고 일컬어지는 직접민주주의, 혹은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입니다.
전자투표를 통한 용이한 정치에의 참여가 민주주의를 -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주장, 심지어 참여의 활성화를 떠나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극복한 직접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제 기술과 정치의 만남을 지켜봅니다.

# 정치와 경마

" 정치가 전문화되는 순간부터 데모스는 자신들의 모든 삶을 정치게임에 내맡기게 되며, 이때 민주주의는 사라진다. " (27쪽)

기술에 의해 자극받아야 할 만큼, 대의제 민주주의는 못난 것이었나 봅니다.

민주주의 본연의 형태인 직접민주주의를 두고, 통제 불가능한 대표에 의해서 수행되는 오늘날의 간접민주주의를 변호하는 논리는 효율성이었습니다.
고대 도시공동체와 비교할 수 없이 커져버린 국가규모에서 당시의 광장문화를 재현하기란 좀처럼 힘들다는 것이죠.

이 효율성의 논리란 여간 드센 것이 아니어서,
과거의 군사정권이나 체육관 선거와 같은 대통령 간선제는 폐지되었어도, 오늘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 이 효율성의 논리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명명백백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 민주주일텐데,
'정치인'이라는 직함이 보여주듯이, 정치는 전문가(?)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되어버렸고,
민중은, 데모스(Demos)는, 마치 경마나 경륜을 하듯 자신의 삶을 정치게임에 내맡긴 채,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배팅을 제외하고는 그저 게임의 결과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할 따름입니다.
게임의 결과인 물질적 이득에만 관심이 있을 뿐인 이들이, 게임 자체를 즐길리 만무합니다.

# 게임의 성격

" 전자민주주의의 새로운 한 축은 체제 유지를 위한 절차적 측면의 보수적 논리로 기능해온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
" 직접민주주의라는 이상화되고 신화화된 이념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원적 의미를 복구하는 논술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다시 말해 권력은 데모스로부터 나온다는 수사가 아니라, 데모스가 권력을 수행하는 것을 상징하는 비관적 저항적 실천적 논술로 직접민주주의를 전망하는 전자민주주의를 요구해야 한다."

오늘날 정치게임 경마장은 한산하기 그지 없습니다.
'인생역전'이라는 게임의 결과에 기대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가산을 탕진하는데 매우 적합하다는 혹평을 들으며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죠.

마사회 측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게임의 결과가 조작이나 우연이 아니라, 게이머의 철저한 분석에 따라 결정된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습니다.

다시 '인생역전'의 저울에 무게가 실리는 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박동진 교수는 전자투표와 같은 기술의 발달이,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민중의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에 그친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경마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수많은 조건들, 이를테면 말의 건강상태나 컨디션, 기수의 능력, 등등을 좀 더 세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다한들,
그것은 배팅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경마인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게임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이죠.

굳이 게임에 비유하자면,
'민주주의 정치'란, 자신이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야하는 일종의 '아케이드 게임' 일텐데,
이미 오늘날 정치게임의 성격은 그것과 다르며, 전자투표라는 기술의 발달로 이 게임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동진 교수는 직접민주주의 논쟁에 앞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를 질문하며 멀리 돌아갑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로 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은 게임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 기술과 게임의 성격

" 하나의 새로운 정치적 절차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

기술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그것은 게임의 성격과는 별개로 작용해요. 그것은 경마를 더욱 경마답게 할 수도 있고, 아케이드 게임을 좀 더 아케이드답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경마나 경륜에 비유할 만한 오늘날의 정치게임을 아케이드 적으로 만드는 것은,
기술을 통해서 이루어 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술은, 정치게임의 성격을 변화시킬 정치적인 투쟁에 이용될 성질의 것입니다.

기술 자체의 중립성이라는 맥락에서, 박동진 교수는 세가지 가설을 제시합니다.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냐에 따라,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그려진 바와 같이 소수의 권력층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민중을 감시하는 '정보독재사회'가 될 수도 있고, 오늘날 일반적인 경향으로 드러나는 것 처럼, 대의제 민주주의에의 참여를 보완하는 것에 그치는 '정보민주주의 사회'가 될 수도 있고, 그가 지향하는 직접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말이죠.

그의 결론은 자못 실천적입니다.
" 비민주적인 전자감시 사회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보다는 민주적 전자감시의 허구성을 파헤치기 위한 저항적 논술이 더 민주적인 논술이 된다. "

기술의 발달에 대한 환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실천적인 접근방식 - 정치적 투쟁 - 이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정보매체의 민주화' 내지는 '협의민주주의'에 잘 배어있습니다.

# 협의민주주의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정신

'정보매체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적은 분량이나마 다소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NEIS나 전자주민카드, 전자지문데이터베이스 논쟁과 같이, 분권화로 익히 선전되어온 네트워크가 실제로는 행정권력에 의한 개인정보의 초집중화를 가져오는데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하지만, 이는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연계할 때 좀 더 풍성하게 얘기할 수 있으니, 홍성욱 교수의 <파놉티콘 - 정보사회 정보감옥> 독서후기에서 좀 더 다루도록 하고, '협의민주주의'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참여의 증대가 현대 정치 문제의 해결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정치적 진실은 시민 토론에서 나오는 것이지 아이디어의 경쟁에서 나오지 않는다. 민주적 참여의 주요 수단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 라는 것이 제가 받아들인 협의민주주의의 정신입니다.

협의민주주의는 '어떻게 논쟁을 결론지을 것이냐'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니 만큼, 그 자체로는 완결된 논리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협의민주주의의 약점이라기 보다는, 간접ㆍ직접 민주주의에서 간과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성격을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세력들이 전자투표와 같은 기술적 발달을 두고 직접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는 바탕에는,
참여의 증대를 통해서 직접민주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오해가 바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직접민주주의까지 끼어들어, 민주주의의 자식들이 서로 정통성을 논쟁합니다.
하지만, 협의민주주의는 점잖게 타이릅니다. 간접이든 직접이든 너희들 중 누가 대를 이어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 구성원 각자가 정치의 독립적이고 평등한 주체가 되는 것, 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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