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한국
공병호 지음 / 해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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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병호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른 적이 있는데, 이분 굉장하더라구요.

집필한 책도 어마어마할 뿐더러, 기업 대학 할 것 없이 강연도 엄청나게 많이 하시는 분입니다.
목록을 훑어보니 경제의 이해나 기업경영에 대한 도움글을 많이 쓰시던데, 『10년 후 한국』이 나온지 얼마 되지않아 『성찰』이라는 에세이를 또 발간했다니 집필력이 꽤 왕성하신가봐요.

구설수에 오른 공병호 소장의『10년 후 한국』을 대충 뒤적이고 몇자 적어봅니다.

# 주객전도

공소장께서 후반부에 직접 말씀하시길, 평소와 다르게 다소 비관적인 내용의 글을 썼다고 하시더군요.
실제 그렇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의 비관적 요소를 꼬집고, 이 요소들이 향후 10년간 지속된다면 한국사회가 낮은생산성-높은실업률 이라는 암담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가 주를 이루고 있죠.

공소장님의 시종일관 걱정하시는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경제가 어렵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분배니 평등이니를 외치는 자들이 판을 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경향이 향후 10년은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하시네요.

바로 이런,
진보세력의 성장이나 한국사회의 좌선회에 대한 두려움.
『10년 후 한국』의 하나를 이루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어째 한발 앞서 나가시는 듯 합니다.
진보세력의 성장이니 좌선회니 보다는, 다수의 빈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더 고민되어야 할텐데요.

# 조삼모사

시험성적이 안좋았던 아이에게,
" 공부 좀 열심히 해라. 넌 그러다가 인생 망친다. " 라고 거듭 윽박지르는 부모님이 있다고 치죠.

아이에겐 두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새롭게 자극받아 오늘도 학교로, 야간 자율학습으로,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코피 쏟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당히 엄마 눈치보며 읽고싶던 책도 읽고, 친구들과 밴드활동도 하는겁니다.

시간이 흘러,
짜자잔-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한 아이가 행복해졌을까요?

답을 내리셨나요?
전 어느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비관적인 얘길 하자면,
고등학교 때 불행해지고 나중에 대학졸업장으로 좀 덜 불행해지느냐,
고등학교 때 좀 덜 불행해지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불행해지느냐의 차이입니다.

조삼모사.
공소장님의 해법이란게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왜 불행해지느냐에 대해서 아주 친절히, 다방면으로 설명해주고 계신데요,

10년 후에 낮은생산성-높은실업률 사회로 이르는 것과,
오늘 당장 그의 해법대로 치열한경쟁-저임금 사회로 이르는 것과 그다지 큰 차이는 없어보입니다.

『10년 후 한국』을 팔아준 어깨 축쳐진 30-40대분들이,
도토리 4개에 기뻐하기 전에, 도토리가 총 몇개인지 세어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책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라네요.)

# 다소불쾌

제게 그리 유쾌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큰 단락의 제목에서 말씀드린, 주객전도 더하기 조삼모사는 둘째 치고라도,
표현 자체도 굉장히 거칠어서 다소 불쾌했습니다.

빈곤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나,
사회적 부가 창조적 소수의 전유물인양 얘기하는 것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태도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이 부유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테스트로 제시한다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성공하는 국가들의 9가지 습관들' 의 일곱번째 항목이라는게,
" 당신의 나라는 부상자를 쏘아 죽일 용의가 있는가? " 라니,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시장주의자-자유주의자' 라는 자칭을, '시장만능주의자' 라는 타칭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떨지.

# 통화주의

매듭은 짓고,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공병호 소장님의 책을 보면,
오늘날,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 경제적으로는 통화주의를 표방하는 분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많이 인용되어 있죠.
제가 아는 분 중에 빠진 분이 있다면, 서울대 경제학과의 송병락 교수님 정도?

특히 자주 인용되는 『자본주의와 자유』, 『노예의 길』(본문에는 『예종의 길』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는 각각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폰 하이예크의 저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저자 송병락 교수, 『현실과 지향』의 복거일씨가 그렇습니다.

( 앞의 두 저작은 품절되어 구할 수가 없었고,
뒤의 몇가지 저작은 처음 '경제학이 뭐야?' 하면서 뒤적일 때 접했던 책들입니다. )

『10년 후 한국』도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만, 『자본주의와 자유』이 책 정말 엄청났었죠. 이 책이 나온게 1960년대인데, 그 한해에 50만부 이상이 판매되고, 그 인기가 1970년대까지 이어져 그의 이론을 주제로 한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급기야 그는 76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구요.

그 다음은? 정책에의 반영이죠.
미국의 닉슨-레이건, 영국의 대처, 이스라엘의 베긴,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까지 광범위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 레이건과 대처의 경우 책에도 인용되죠. 다 나온다니까요. ^^; )

# 다음에는

다음엔, 위 경제정책의 결과가 어떠했느냐에 대해서 후기를 올려보겠습니다.

사실, 공병호 소장이 제시하는 정책의 결과를,
밀턴 프리드먼이 정책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던 미국, 영국, 이스라엘, 칠레 정부의 과거와 부등호로 연관시키는 데에는,
제 깜냥으로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일정 이상의 시사성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공병호 소장 역시도 책 후반부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경제정책 아홉가지와과 도덕률 여덟가지를 제시하는데,

작은정부, 민영화, 탈규제, 금융자유화, 정도는,
위 경제학자 및 논자들의 공통적인 지향점이 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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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s2108 2005-01-30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이책을 읽고 짜증과 불쾌감을 떨칠수가 없었습니다.
엄청난 저서를 내고 강의도 많은 사람의 생각이 너무나 편협되고, 정말...답답합니다. 이 책 사신분들 삼가 위로의 말씀 올립니다.
각종 자료 짜집기해서 책내는거 이런거 나빠요....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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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질과 정신의 관계는 어떠하냐?' 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겁니다.


흔히,
유물론이라 하면, 물질이 정신에 끼치는 영향을,
관념론이라 하면, 정신이 물질에 끼치는 영향을 중시하죠.


예를 들어,
갑 을 모두 '성매매'에 반대한다고 가정하고,
두 사람이 술자리에서 얘기를 하는데, 이런 얘기가 오고갔다 치죠.


갑: 사람이 돈을 주고 사람을 사는건 있어선 안돼. 남자들이 각성해야 한다구.
성매매는 근절되어야 하니까, 특별법을 강력하게 시행해서 성매매를 못하게 해야한다구.


을: 성매매는 나쁜 것이고 특별법은 시행되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중요한건 돈 문제라구. 성매매를 두고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남자들과 돈이 필요한 여자들이 있는 한, 그들은 어떻게든 포주를 통해서 만날거야. 따라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포주들의 행포가 더 심해질거라는 부작용도 예상해야돼.


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런 얘기들 속에는,
갑과 을이 철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을 떠나서, 물질과 정신에 대한 갑과 을의 철학적 사고가 담겨있다고 봐야합니다.


비유인 만큼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제도라는 강제를 통해서 사회적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갑은, 관념론에,
의식변화는 바람직하지만, 의식변화 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을은, 유물론에 가깝습니다.


2.


몇일 전에 제레미 러프킨 교수의 <소유의 종말>을 읽고 난 느낌은,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 은 물론이고, 앨빈 토플러의 <제3물결>, 한스 페터 마르틴이 공저한 <세계화의 덫>, 등과 유사한 그것이었습니다.


첫번째 공통점은,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풍부하다 못해 질려버릴 정도죠.


제레미 러프킨 교수는 이 책 <소유의 종말> 을 쓰기 위해서,
꼬박 6년 동안, 350여권의 책과 1천여편의 논문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석 부분도 굉장히 두텁구요.


두번째 공통점은, 과거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덫> 의 경우는 세계화 자체를 화두로 하기 때문에 다소 한정되지만,
나머지 책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 자체를 고찰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세심하죠.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을 쉴새 없이 넘나들면서, 흐름을 정식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제기되었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어떠한가.


저는 여기서도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굉장히 관념적이죠. 제도나 의식의 변화에 매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3물결>이야 낙관적인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이었으니 다소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치더라도,
제3부문 비시장경제 <노동의 종말>, 유럽 경제공동체와의 균형 및 세계적 규모의 통치기구 <세계화의 덫>, 지역 문화 및 교류의 활성화 <소유의 종말> 의 귀결은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이 풀린다고 해야할지.
지금까지 세밀하게 사회의 변화들을 고찰하고서는, 반면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는겁니다.


" 이렇게 이렇게 변했는데 이게 문제니까 이제 이렇게 하자? "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고 난 독자의 한마디.
" 그게 말처럼 그리 쉽간디? "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식으로 이것저것 끄집어내는 즉흥적인 방식이 아닌,
맥락있게 문제를 짚어내는 이들의 노력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3.


제레미 러프킨 교수가 얘기한 <소유의 종말> 다음에 오는 사회는 접속의 시대입니다.


'접속의 시대'
이 그럴싸한 제목이 조금 낯설다면, '정보화 시대' '네트워크 시대' 라고 불러도 괜찮겠습니다만,
<제3물결>의 앨빈 토플러는, 이런 단어들이 모두 마음에 안든다면서 '제3물결사회' 라고 뭉뚱그려버렸죠.


뭐 사회의 변화라는 것이 일부분에 한정되어 일어날 수 없다는 점만 이해하시면,
앨빈 토플러님과의 갈등은 피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밤낮 연구만 전문적으로 하는 학자가 아닌 바에야,
사회 전반적인 변화까지 바라본다는게 쉽지 많은 않은 일이고,
직접 느끼지 않으면 별로 다가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당장 우리가 느끼는 것이야,
요즘엔 안정적인 직장이란 없다더라는 정도,
요즘엔 근면 보다는 창조적인 사고가 좀 더 대우를 받는다더라 정도,
요즘엔 재테크를 다들 일찍일찍 시작한다더라 정도겠죠.


뭐 그럼 여기서 시작해보는겁니다.


사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할 때 하더라도,
왜 그런지 정도는 알고있어야 하니까요.


4.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창조적인 사고를 더 크게 인정해주는 것도 모두 기업이니 만큼,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빠르겠죠.


이를 단순히 보면,
기업의 생산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구조조정 같은거요.


요즘 기업들은 최대한 덩치를 줄이려고 하죠.
운영과 브랜드, 마케팅, 판매망을 제외하고는 될 수 있는 한 소유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뭐 유명한 회사 중 하나인 Nike만 보더라도,
Nike는 생산공장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회사니까요.
대신, 입지가 좋은 해외업체와 생산계약을 맺죠.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 역시도,
실제 생산라인에는 현대자동차 직원이 반, 하청업체 직원이 반 이러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기업의 생산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한번 더 생각하셔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기업의 생산방식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게 아니니까요.


고용의 좌지우지 하는 것이 기업이라면,
기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시장이죠.


결국, 고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시장이 되는 셈입니다.


5.


뭐 시장이란게 그렇습니다.
빵집이 잘된다더라 하면 우 빵집으로 몰려갔다가,
PC방이 잘된다더라 하면 우 PC방으로 몰려가죠.


물론, PC방으로 사람들이 몰려간 것은,
빵집 장사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기도 하죠.
빵제조업이라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산업분야야 다양하지만, 사람은 더욱 다양한 법.
이렇게 만들어낸 여러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는 것은 금방이겠죠.


이런 식으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되면,
즉, 동네에 빵집이 있을 만큼 있다면,


이제 빵집이 있다는 것 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듭니다.
빵집을 차리긴 했는데, 장사가 안될 수 있는겁니다.


빵집 차리는 문제가 끝나면,
이제 문제가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빵을 많이 만드는 문제로, 빨리 만드는 문제로.
그리고, 또 옮겨갑니다.
빵을 맛있게 만드는 문제로, 빵을 배달해주는 문제로.
계속 옮겨갑니다.
빵 판매 이벤트의 문제로, 문제로 문제로..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수많은 빵의 문제들을 다시 한번 보시면 산업의 이동이 보입니다.
제조업(빵집 차리기, 빵 많이 빠르게 만들기) - 서비스업(빵 배달하기) - 마케팅산업(빵 팔기 이벤트) 까지,
빵 산업의 변천이라고나 할까.


뭐 그뿐 아닙니다.
이렇게 이동하는 빵집 사장님의 고민에 따라 빵집 종업원들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겁니다.
사장님은 이제 면접에서 이런걸 물어보니까요.
" 자네 1분에 빵 몇개 만들 수 있나? " 가 아니라, " 자네라면 빵을 어떻게 팔겠나. "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빵집 사장님은 빵공장을 팔아버릴 수도 있겠죠.
빵 기계니 배달이니 다른 빵집과 크게 차별화 할 수 없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테니까.


6.


빵에 관한 이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곰곰히 보면,
사실 특별할게 없습니다.
그저 빵을 팔기 위해서였죠.


빵집 사장님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빵을 팔기 위해서)' 라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결국, 시장의 문제라는겁니다.


빵집 사장님의 고민이 무엇이건, 빵집 종업원의 고민이 무엇이건,
노동의 시대건, 접속의 시대건,


결국은, 빵을 팔기위한 일대 헤프닝,
즉 시장의 문제입니다.


러프킨 교수의 풍부한 근거자료와 세심한 전개논리 속에 소외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점입니다.


그는, 빵집 사장님의 심리 변화와 각 빵집의 판매전략 판매조건 등을 각양각색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우리 동네 빵집 뿐만 아니라 옆 동네 윗 동네 빵집들까지 모조리 조사하고 분석하지만,
결국은 시장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저작 <노동의 종말> 이 빵집 종업원들의 애환을 담은 것이라면,
<소유의 종말> 은 이제 빵집 브랜드로 체인사업을 벌이는 빵집 사장님과 그렇게 빵집 사장님과 멀어진 빵집 종업원의 애환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경영 컨설턴트 - 피터 드러커와 같은 - 의 명언에 혹하지 맙시다.


그의 명언도 결국 이게 전부니까요.
" 우리에게 중요한건 빵집이 아니다. 빵을 사는 고객일 뿐이다. "


경제학자들에게도 기죽지 맙시다.
" 우리는 빵을 먹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팔기 위해 만들 뿐. "


7.


여튼,
제가 러프킨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잡히지 않으면서 예시만 무지하게 많으니까요.


여튼, 시장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뺀체 제방업계에 대해서 장황하게 서술한 러프킨 교수 종말시리즈의 결론은,
'제3부문 비시장경제'<노동의 종말> '지역 문화의 활성화'<소유의 종말> 입니다.


그런데, 원인이 빠져있는 문제 분석에서 올바른 결론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의 결론은, 제도와 의식 변화를 촉구하는 관념의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 이렇게 이렇게 변했는데 이게 문제니까 이제 이렇게 하자? "


그래서, 다시 한번.
열심히 책을 읽고 난 독자의 한마디.
" 그게 말처럼 그리 쉽간디? "


8.


왜 어려운지 차근차근 얘기해보겠습니다.
빵 얘기를 하려던건 아니었는데, 빵 얘기가 나온 김에 계속 빵 얘기로.


'제3부문 비시장경제'란 이런겁니다.


예전에 10명이 필요하던 빵공장에 제빵기계가 들어오면서 이제 제빵기계 운전하는 1명만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명은 빵 포장하는 일로 바뀌었는데, 또 포장기계가 나와서 8명은 다른 일로.


뭐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아무리 다른 일로 사람을 돌려도 한계가 있죠.
결국 빵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빵집 종업원들의 생계가 걱정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빵집 종업원들에게 새 일을 주는겁니다.
다름 아닌, 노인정 봉사활동!


빵집에서 한달에 100만원을 받던 갑동이는 노인정 봉사활동의 필요성을 강의받은 후, 봉사활동을 하면서, 50여만원의 사례금을 지급받죠. 그리고, 생계비 지원 명목으로 세금 면제, 혹은 교통비 면제도 이루어지구요.
국가의 재정 지원은 세금 확충을 통해서 해결합니다.


결국, 세금을 통한 생계 지원.
서유럽 복지국가들의 모델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제3부문 비시장경제이죠.


하지만, 리프킨 교수가 제3부문 비시장경제라는 대안을 담은 <노동의 종말>을 발표하고, 학계 경영계에 바람을 넣은 것이 95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서유럽 복지국가들은 꾸준히 복지정책을 축소해왔으니까요.


( 오해가 생길까봐 말씀드리는데, 서유럽 복지국가의 사례는 저 역시 충분히 다루어보지 못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의 분위기 부터, EU 로의 결속이 더해지는 오늘까지의(엊그제 헌법 발표했대요.) 변화는 리프킨 교수의 모델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


[보탬]


<소유의 종말> 독서후기를 쓰려고 하다가 얘기가 장황해졌네요.
나름대로, 리프킨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글로 풀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다음 후기에는 그의 예민한 지적들을 담아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소유와 접속' 이라는 관념에 대한 다방면적인 접근들은 굉장히 뛰어났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소유의 종말' 이라는 화두에 대한 우리나라의 실정도 돌아보고 싶고.
정보산업이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최근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도,
러프킨 교수가 던져주는 문제의식은 참 많습니다.


아 결국 후기는 못쓰고 잡담만 늘어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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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조지 소로스 / 김영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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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지 소로스의 경우는 칼 포퍼에게 수학을 한 사람인데,
그 스스로 칼 포퍼의 철학에서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음을 얘기하고 있구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인식의 기본틀'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오류성과 반사성' 이 그것이죠.


2.
그런데, 저는 '오류성'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
" 당신도 충분히 오류를 범할 수 있다. "


는 것은,
맹신적인 사고를 거부하는 옳은 태도입니다만,
자칫, 진리를 쫓는 진지한 논의마저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소지가 있거든요.


오류성 자체는 옳은 개념인데,
오용될 소지가 있다는거죠.


" 누구도 완벽할 수 없어. " 라고 귀를 막아버리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하는 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 아이러니(irony) 니까요.


만약, 저라면 이렇게 얘기하겠어요.
" 전 완벽하다고 얘기한적 없는데요. 전 완벽한 것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제 생각을 얘기한거에요. 당신도 당신의 생각을 얘기하면 되구요. "


조지 소로스의 오류성은 그렇다고 봅니다.
(이건 선입견이긴 하지만, 냉전시대에 활약했던 칼 포퍼도 그다지.)


아마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에 대해선 이렇게 얘기하겠죠.
" 흥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니까 "


3.
경제 파트로 넘어오면 좀 더 재밌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열린사회에서는 기대가 현실에 반영된다고 얼버무렸는데,
제가 보기엔, 기대가 주식값에 반영된다고,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얘기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배당금을 보고 주식투자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겁니다. 흔히, 대박 터진다고 해서 주가를 보고 투자를 하죠.
어느날 일어나보니, 500원짜리 주식이 5,000원이 되어있더라느니 뭐라느니. 어제밤 돼지꿈은 높은 연봉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시세평가로 대체되구요.
주식이란 어차피 현재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는 행위니까요.


몇달 전에 한 학자가(이름이 가물가물) 근대 이후 한국사회를 돌아보면서 평가한 논문을 봤는데,
그는 '경제 분야의 주도권만 변화하지 않았다.' 고 평가하더라구요.
이거 학자의 권위를 빌리는 모양새긴 한데, 제 느낌과는 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4.
요즘 대학에선 케인즈 경제학이, 재계에선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득세하는 모양입니다.
(아 물론, 대학에선 이것저것 다 가르켜줍니다만.)


조지 소로스의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란,
재계에서 득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불안성에 대한 자발적 우려에서 나온거구요.
이는 사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논리 중에서 한 부류를 이루고있습니다. 재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제기되는 문제의식이에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논리로 많이 채택되고 있는 <세계화의 덫> 도 그와 비슷한 맥락인데,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의 '한겨레'쯤 되는 독일 언론사의 언론인이죠.


여튼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되찾자'는 겁니다.
쉽게 얘기하면, 과거에는 기업을 국가가 통제했는데, 지금은 기업이 국가의 품을 떠나 세계로 진출했으니,
이제 기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규모가 아니라 세계규모의 통제기구가 필요하다는 논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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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 인간 나라 2 - 세계 정신 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 신화의 세계편 신의 나라 인간 나라 2
이원복 글 그림 / 두산동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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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정말 회원분들 이름이 가물가물하네요.
요즘엔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문득 '아 이 책에 대한 후기를 누가 올렸더라?' 할 때가 있습니다.


몇일 전에 신화와 관련된 만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 주옥같은 후기들. 정말 아쉽습니다.


이원복 교수 다들 아시죠? <먼나라 이웃나라>로 알려진.
<먼나라 이웃나라> 외에도 다양한 경제분야 관련한 저작도 써내셨었는데,
작년께인가 해서 종교, 신화, 철학을 주제로 한 책이 나왔죠.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 시리즈.


2.
여러분은 신화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신가요.
제 경우엔 신화가 꽤 따분하게 느껴졌었거든요.
(북클럽에 독서후기가 올라왔을 때 더 진지하게 읽어둘걸 그랬나봐요.)


지금은 굉장히 다른 느낌이랍니다.
철학 이전에 종교가 있었다는건 알았는데,
종교 이전에 신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답니다.


철학은 Philosophy.
Philo(지혜) + Sophy(사랑). 인간의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가까운 신화 속의 신이든, 종교 속의 절대신이든, 신의 행동과 말이 아닌 인간의 지혜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철학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3.
좀 더 따져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신화와 종교의 차이?
신화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철학으로의 변화들을 보면, 변화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여기서의 변화란 신화가 종교로 대체되고, 종교가 철학으로 대체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설명방식에 새로운 설명양식이 보태어지는 과정입니다.)


신화와 종교를 비교하는데에는,
① 경전의 유무 ② 번안의 가능성 ③ 윤리나 도덕과의 연관성 ④ 민족, 집단과의 연관성
등등으로 기준을 둘 수 있다고 합니다만,


꼭 이렇게까지 체계화하지 않더라도,
그 왜 삘(Feel)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뭔가 엄숙함의 깊이가 다르죠.
엄숙함이라는 것은, 권위와 연관이 있구요.


종교와 신화는,
모두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되,
종교는 권위있는 이해. 비약하자면, 강요된 이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은, 종교에는 번안의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의 이해, 하나의 통치질서가 필요해진 것이리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또 이렇게 따져보는거죠.
역사적으로 하나의 통치질서가 필요해진 때라면? 왜?


4.
그런데, 사실 이렇게 호들갑이면서도,
신화 자체가 그리 흥미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 건너뛰며 몇시간만에 주욱 읽어나갔죠.


신화도 방법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시대에 신화가 있었다면, 지금은 철학이 있고 과학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의 행동이나 감정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과학이 숨쉬고 있는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신화의 스토리가 아니라, 신화의 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화의 정신. 스스로의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적극성이겠죠.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
스스로의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적극성.
생각 생각.
그런데, 생각하는 것에 참 게을러지는 우리입니다.


주제넘는 소리지만, 스스로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환경, 주어지는 일들에 허덕이고 있지는 않은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 대학 다닐 때는 취업을 위해서, 직장 다닐 때는 결혼 자금 마련을 위해서, 결혼 후에는 자식을 위해서. 수많은 '위해서'들.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조건들에 적응하기에 너무 바쁜건 아닐런지요.


잠시 뒤쳐질지라도 한번 멈춰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주어진 조건들에 적응하는 방법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들 자체를 이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뜬금없었네요. ^^;


[보탬]


저도 아직 종교편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종교가 신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느니만큼, 신화편에서도 종종 소개가 되었습니다.


오 이것도 굉장히 흥미있더라구요.
특히, 창조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조로아스터교.


어린아이가 된 기분입니다-
관련 서적 있으면 소개 좀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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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교수님
 
전에 한참 토론 비스무레한 것이 벌어진 적이 있었죠.
그때 어떤 회원분께서 북클럽은 독서 동아리이니까, 순수 독서후기에 좀 더 중점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었구요.


그때 전 이런 생각을 했었더랬죠.
순수한 독서후기와 안순수한 독서후기를 나누는 기준이 있기는 한걸까 라구요.


책에 있는 내용만을 다룬다고 해서 순수한 독서후기이고,
현실을 다룬다고 해서 안순수한건 아닐테지요.
어차피 책에 쓰여진 글이든, 사람의 말이든, 행동이든, 알게모르게 현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책을 읽을 때 필요하다는 `배경지식` 은 그래서 쓸모가 있는 것이구요.


예를 들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기 위해서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사회적 변화들을 알아야 쉽게 혹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 처럼.
(얼마 전에 썼던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대한 후기에서도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대적으로 축소왜곡되어 출판된 점을 말씀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책을 읽고 쓰되, 책에 없는 내용을 쓰는 독서후기가 더 잘 쓰여진 독서후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없는 내용을 쓴다는 것은, 책에서 배우고 느낀 내용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다는 뜻이죠.


에구 서론이 길어졌는데요,
저 역시 이원복 교수님의 경제관련 저작 (서울대 송병락 교수님하고 같이 썼었죠)들을 보면서 진홍님과 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마찬가지 맥락에서,
사람의 생각의 표현인 말이나 글(책)이 얼마나 순수성(중립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꽤 부정적입니다.
더군다나, 현실에서 힘과 우위를 다투는 주제를 비교 내지 분석하는 성격이 글이라면 더더욱이요.


우위가 존재하는 현실을 중립성을 견지한 투명테이프를 덧붙인다는 것은 곧,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위가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보면,
`작가의 시각`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의 우위` 가 되는 셈입니다.
이 교수님의 만화 역시도 현실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셈이 되겠구요.


그래서,
이 교수님의 만화를 보는 진홍님께서는,
만화의 순수함과 안순수함이라는 잣대 보다는, 만화가 반영하는 현실의 우위 자체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시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종교편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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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 나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 2
데이비드 J. 리버만 지음, 주미숙 옮김 / 창작시대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스스로에게 불만이 많은 요즘인가 봅니다.
책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손을 뻗친 책이 <나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 였거든요. 어머니께서 구입하신 것인지, 곳곳에 밑줄과, 익숙한 필체의 메모도 볼 수 있군요.


차분히 서문을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으련만,
성급히 차례부터 뒤적입니다.


총 2부에 77가지 제목.
각 제목은 모두 솔직한 자기고백입니다.
'눈앞에서 뻔히 새치기를 당해도 아무 말 하지 못한다.' 던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지나칠 정도로 의식한다.' 던지,
'남의 험담이나 연예인 얘기를 즐긴다.' 등등


아마도 제목에 나열된 문제점을 스스로에게 느끼는 사람들이,
나름의 해결방법을 기대하며 책을 뒤적였겠거니 지레 짐작하면서 저 역시 서문을 읽기 시작합니다.


뭐 결론적으로,
데이비드 J.리버만은 독자들에게 그럴싸한 해결방법을 제시해주지는 않습니다만,
이 책은 어찌어찌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리버만은 굉장히 입바른 소리만 할 뿐,
요즘 유행하는 자기개발서/실용서들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서문에서 리버만은,
"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에 대한 의지만을 키운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라고 딱 잘라 말하는데, 리버만의 풀이방식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서문 탓입니다.


물론, 그의 책에도 세세한 도움사례가 없는건 아닙니다만,
그가 77가지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문제의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문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법'에 가깝습니다.


삶의 다양한 갈등 - 제목에서 드러내는 바와 같이 흔히 우리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 을 보여주고,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법, 이해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리버만의 전개방식입니다.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골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할 것.
마지막으로, 행동의 변화를 통해서 생각의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을 주문합니다.


스스로에게 골이 깊은 문제가 있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 책은 문제의 해결책 보다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죠. 읽느니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을거라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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