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1.01 개봉 / 18세 이상 / 130분 / 드라마 / 한국
야 유 회 <1999년 봄>
젊은시절의 꿈, 야망, 사랑, 모든 것을 잃은 중년의 영호. 그는 20년 전 첫사랑과 함께 소풍을 나갔던 곳에 찾아가지만 20년이란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 가버린 후...
사 진 기 <사흘전, 1999년 봄>
동업자에게 사기당하고 마누라한테 이혼당하고 아무 것도 남은 것 없는 마흔 살의 영호. 어렵사리 구한 권총한정으로 죽어버리려 하는데 느닷없이 찾아온 사내의 손에 이끌려 첫사랑 순임을 만나게 된다.
삶은 아 름 답 다 <1994년 여름>
서른 다섯의 가구점 사장인 영호. 마누라 홍자는 운전교습 강사와 바람을 피우고 그는 가구점 직원 미스 리와 바람을 피운다. 과거 형사시절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과 마주치는 영호.
고 백 <1987년 4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권태로움에 지쳐버린 닳고 닳은 형사, 영호. 홍자는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만삭의 몸이다. 그러나 군산의 허름한 옥탑방, 카페 여종업원 품에 안긴 그는 순임을 목 놓아 부르며 눈물을 터뜨린다.
기 도 <1984년 가을>
신참내기 형사, 영호. 그는 선배 형사들의 과격한 모습과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폭력성에 의해 점점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순수함을 부인하듯 순임을 거부하고 자신을 짝사랑 해왔던 홍자를 택한다.
면 회 <1980년 5월>
영호는 전방부대의 신병. 그는 자신을 면회 왔다가 헛걸음치고 가는 순임의 모습을 보게된다. 영호는 그녀를 소리쳐 부르고 싶지만 다른 장병들의 휘파람 소리와 요란한 트럭 소리에 묻혀 그저 그녀를 떠나보내고 긴급출동하는 트럭에 올라 타는데...
소 풍 <1979년 가을>
갓 스무살의 영호와 순임. 그들은 난생 처음 순수한 사랑의 행복감에 잔뜩 젖어있다. 영호는 순임이 건네 준 박하사탕 하나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 젊음도 아름답고 인생도 아름답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79년의 어느 가을이었다.
*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는 구조의 영화 <박하사탕>. 1999년에서 1979년으로, 이 20년의 간극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대극에 버금가는 고증과 디테일이 요구되었다. 80년대 이후 경제발전 및 도시개발로 인해, 불과 10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조차 찾기 힘든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 덕분에 촬영장소 헌팅은 장장 9개월에 거쳐 이루어졌다. 80년 대 초반 서울변두리 공단지역의 모습을 재연해 내기 위해 전북 군산까지 내려갔었고, 79년 철교 밑의 야유회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철도청에 도움을 요청, 전국 철교들의 위치를 알아 낸 뒤 직접 확인해보고서야 충북 제천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내기도 했다. 소품을 구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7-80년대 국민학생들이 메고 다니던 책가방을 찾기 위해 스텝들은 각자 자기집 다락 및 창고 를 뒤져서 가방을 찾아왔고, 79년 야유회 장면에 쓰였던 음료수와 과자들은 제과회사에 문의, 제품 패키지 변천에 관한 자료를 받아서 그 당시 패키지대로 제작해야만 했다.
촬영장소로 헌팅을 해 놓은 전북 군산의 둔율동이 재개발로 인해 모두 철거되어 없어져 버리자, 제작진은 약 1000여 평에 이르는 공간에 세트를 제작, 80년대 공단주변을 복원해 내었다. <공단식당>으로 시작해서 그 주위에 공업사, 미용실, 세탁소 등을 만들고, 철거로 인해 자갈밭이 된 땅에 황토를 깔고 돌을 골라낸 뒤 유성페인트와 색소를 섞은 물을 뿌려 검은 땅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트의 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식당 앞에 쌓인 연탄이며 주황색 공중전화기, 주변 벽과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와 80년대 초반의 포스터까지 재현해냈다. 소품 하나까지 직접 확인하는 이창동 감독의 주문에, 미술 스텝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많은 땀을 흘려 세트를 완성해 냈다.
이창동감독이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들에게 요구한 것은 '치밀한 캐릭터 분석'이 아니라 '그저 배역대로 살라'는 것. 감독은 배우 자신이 그 배역처럼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를 원했고, 촬영장에서 별다른 연기에 대한 주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의 모습대로 하는 행동이 배역과 어우러져 화면에 녹아들기를 바랄 뿐. 배우라는 직업이 말 그대로 '연기하는' 직업이고 보면, 이창동감독의 이런 주문을 배우들이 더 힘들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배우들은 감독의 주문이 이해가 안될 때마다 '납득시켜달라'고 이야기했고, 그 때마다 감독은 배우들과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고 그 배역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두 번째 챕터, 영호와 순임이 15년여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중환자실 장면의 촬영. 이때 <박하사탕>의 투자회사인 유니코리아의 최인기 실장과 영화연구소 김혜준 소장이 촬영장에 찾아와, 스텝들을 격려하고 즉석에서 환자역을 맡아주었다. 촬영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화장실은 가야하지만 기껏 완성한 분장을 지울 수는 없는 일. 목과 코에 호스를 끼운 상태로 병실을 나가는 최인기 실장을 보고, 병원 복도를 지나 다니던 사람들은 중환자가 멀쩡하게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로 병원 복도에 앉아 잡지를 읽거나 다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등, 이날 중환자실 앞에서는 실제로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밖에 경향신문의 배장수 기자는 영호가 카메라를 팔러갔던 카메라집 주인으로 등장. 다른 영화에서도 까메오로 자주 등장했던 그는, 그 동안 갈고 닦은 노련한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평소 이스트필름과 친분이 두터운 배우 양희경씨가 라디오DJ역에 흔쾌히 응해 영화에서 목소리만으로 출연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