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는 프랑스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안나 가발다의 대표작으로 이 작품은
그녀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출간 직후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만 무려 165만 부가 판매되었고 전 세계 38개 언어로
번역되어 28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2009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된바 있다고 한다.
얼핏 이야기는 통속적으로 느껴진다. “당신 그게 무슨 소리예요?”(p.5)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밤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시아버지인 피에르가 며느리인 클로에와 손녀 둘을 멀리 시골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떤 사연인지 나오지는 않지만 분위기상 클로에의 남편이자 피에르의 아들이 바람을 피운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이는 곧 사실로 밝혀진다. 집에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클로에를 데리고 손수 운전해 멀리 시골길을 달려 가는 동안에도
피에르는 그동안 가족들 앞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친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것이 단순히 아들의 부정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때문인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데 아무도
없는 시골 집에 도착한 클로에는 믿었던 남편의 배신감에 두 딸을 돌봐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그녀의 시아버지인 피에르는 마치 우리 시대의 아버지 같은 느낌인데 다정다감하고는 거리가 멀고
남자이고 아버지이기에 감정을 내보이기 보다는 속으로 삭히는 대신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나머지 가족과 회사 직원들)을 잘 챙기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여자와 떠나기 위해 자신의 공부마저 그만두고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서 유물
복원을 하고 있는 가정주부인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남편 아드리앵, 그는 지나치게 권위적인 아버지 앞에서 늘 주눅들어 있던 남자다.
그런 그가 아내인 자신의 도움으로 당당함을 지니는 순간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난다.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클로에에게 피에르는 과거 자신의 아름답고 명석한 두뇌를 지녔으나 사랑에 있어서는 바보같았던, 그래서
젊은시절 요절한 형 폴에 대해 들려준다.
그리고 클로에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나약하고 소심하고 그래서 대인관계를 보다 매끄럽게
이끌어나기 못함을 권위 속에 감추고 있었던 피에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게다가 그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유부남으로서 부정을 저지른 사실을 듣게
되는데...
마치 지금 자신의 아들이 과거 20여 년전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되는것 같은 이야기다. 그런
피에르가 클로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사자인 클로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기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남편의 배신으로 고통 받는 클로에와 마흔이 넘어 생애 처음이자 스스로도 믿지 않았던
사랑을 경험했으나 결국 그녀를 떠나보낸 피에르, 피에르와 사랑에 빠졌으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려하지 않았기에 이별을 택했던
마틸드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상식에서 보자면 클로에의 남편인 아드리앵, 그녀의 시아버진 피에르, 마틸드는 분명
지탄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르는 남편이 떠난 후 아이들과 남겨져 고통과 슬픔에 빠진 클로에에게 오히려 떠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아느냐고 묻는다.
적반하장 같은 그 말에 대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어지는 피에르의 말과 마틸드의 이야기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를 느낄수도 있고 여전히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들에 대해 누가 나쁜 사람이며 누가 피해자라고 단정짓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이들의 사랑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다를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작가가 피에르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일어나버린 일
때문에 주저앉지는 말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기에 이후 새로운 사랑이 다시 찾아오든 아니던 지금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